고의적 무지

좋은 아침입니다.

 

1.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기억하고

우리도 십자가 지고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고난 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고난 주간이라고 해서

지나친 금욕과 절제를 강조하는 것도 신중해야 합니다.

고난주간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예수님께서 겪으신 조롱과 비난, 외로움에 동참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부활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고난주간은

부활을 준비하고 기다리면서

예수님의 은혜를 깊이 느끼고 나누는 시간입니다.

고난의 끝에 부활이 있음을 믿습니다.

 

2.

고의적 무지(willful ignorance)라는 말이 있습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행동하는 것입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무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예수님 주변에는 “고의적 무지”를

보여주는 사람들이 차고 넘쳤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알면서도

모른 척 했습니다.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예수님께 십자가형을 언도한

빌라도 역시 예수님에게 죄가 없음을 알았지만,

백성들의 민란(민란)을 두려워한 나머지 모른 척했습니다.

 

예루살렘의 지도자들도

예수님이 단지 나사렛 청년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오신 분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자기들의 기득권을 위해서 알면서 모른 척 했습니다.

 

백성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과 성전에서 전하는 하나님 나라 복음을 생각하면

십자가에 못 박힐 정도의 인물이 아님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맹목적으로 십자가에 매달라고 외쳤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던 예수님께서

쓰러지셨을 때, 군병들이 십자가를 대신 질 사람을 찾았을 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군병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 애써 외면했을 것입니다.

얼굴을 돌려 외면하는 것도 일종의 고의적 무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아셨습니다.

꿰뚫어 보셨기에 더 외로우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위엄 있게 꿋꿋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3.

고난주간을 보내고 부활절을 준비하는 오늘,

하나님을 향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향한

“고의적 무지”가 우리에게 없는지 살피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라고 담대히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리사욕에 빠져서 하나님의 아들을

고소하고 죽이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맹목적으로 비판하고 군중에 휩쓸릴 것도 아닙니다.

나서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길 원합니다.

 

담대한 신앙,

정직한 신앙,

힘과 권력 앞에 숨지 않고 대면하고 저항하는 신앙,

예수님 앞에 담대히 나설 수 있는 신앙을 갖고 싶습니다.

 

부활절 새벽이 밝으면,

제일 먼저 뛰어나가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맞이합시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하나님,

신앙에 대해서 담대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4. 3. 28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