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우리 가족의 버킷 리스트 가운데 하나는 두 아이가 결혼하기 전에 온 가족이 유럽여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꿈이 너무 야무지고 이상적이어서 얼마 전부터 하와이로 바꿨지만, 여전히 불가능했습니다. 미시간의 큰 아이가 방학을 맞아서 집에 오고 회갑을 맞으신 한국의 누님께서 방문하셨던 지난달에 그랜드 캐년을 다녀오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10년 전 인디애나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할 때 그랜드 캐년을 처음 보았습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동안 어떤 변화가 있을지 기대하면서 이틀에 걸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그 웅장한 그랜드 캐년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그때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해의 움직임에 따라서 명암이 생기고 하루에도 수시로 변하는 깎아내린 듯한 협곡과 그 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콜로라도 강, 심지어 10년 전 가족사진을 찍었던 바위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호텔로 돌아와서 인터넷에 저장해 놓은 10년 전 사진을 보았습니다. 그랜드 캐년은 변한 것이 없는데 사진 속의 우리 가족은 많이 변했습니다. 청소년이던 두 아들은 이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10년 전 우리 부부는 조금 과장해서 신혼부부처럼 젊었습니다. 그랜드 캐년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건만 사진 속에는 시간의 흐름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만약10년 후에 다시 그랜드 캐년을 찾는다면 어떻게 변해있을까 생각하니 슬며시 우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정말로 할아버지가 사진 속에 있을 것 같았습니다.
수요예배에서 전도서 읽기를 마쳤습니다. 전통적으로 전도서는 부귀영화를 다 누린 솔로몬 왕이 노년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 말씀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말씀이 전도서를 대표합니다. 물론 여기서 헛되다는 것은 물방울이 떨어지듯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인생을 비유한 표현입니다. 모든 것이 필요 없다는 체념이 아니라 순식간에 지나가는 인생 중에도 지금 이곳의 현재를 즐기며, 무엇보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전도서는 “청년의 때에 너희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말씀으로 마무리합니다. 그러다 보니 전도서는 청년들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하지만 전도서 말씀을 청년들에게 제한할 수 없습니다. 청년의 때는 누구에게나 바로 지금 이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사무엘 울만이 청춘이라는 시에서 말했듯이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입니다.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젊은 시기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개인적으로 날마다 청년의 때를 사는 것입니다.
성경의 인물 갈렙은 85세가 되었어도 자신을 청춘이라고 밝히면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약속하신 험한 산지를 달라고 여호수아에게 요청합니다. 웬만한 젊은이들도 겁낼 거인들이 사는 땅을 자신이 친히 가서 취하겠다는 것입니다. 청년의 때에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약속을 45년 동안 간직했고, 그것을 성취했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 어떤 태도로 세상을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청년으로 살 때 우리 모두 언제나 청춘입니다.
하물며 말 그대로 청년의 때를 사는 젊은이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시간이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도전하고 해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갖고 있습니다. 비록 실패해도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올 것입니다. 물론 요즘 청년들의 삶이 녹록지 않습니다. 청년 실업은 전 세계가 안고 있는 고민입니다. 청년들 안에 분노가 쌓이고 스스로 인생의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청년의 때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에 매진하면 분명히 길이 열릴 것입니다. 전도서의 표현대로 떡을 물 위에 던지면 언젠가 도로 찾게 될 것입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둘 것입니다.
10년 후, 그랜드 캐년에 다시 서서 사진을 찍는다면 그랜드 캐년은 그대로 있을 테지만 저는 지금보다 많이 달라져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때도 여전히 청춘입니다. 우리는 모두 나이에 상관없이 청년의 때를 살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바라보는 마음가짐과 태도가 중요할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젊을 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청년으로 살기 원합니다. 갈렙처럼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믿음의 장부가 되기 원합니다. (2016년 5월 26일 SF 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