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세메스 언덕길

좋은 아침입니다.

 

1.

이번 주 성경 통독에서

사무엘상 6장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쟁을 하지만 이길 도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법궤(the ark)까지 동원했지만 속수무책입니다.

당시 민족 지도자였던 엘리 제사장의 아들도 전장에서 죽고

그 소식을 들은 엘리도 죽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법궤까지 블레셋에 빼앗겼습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 상징이었습니다.

법궤를 메고 여리고 성을 돌았을 때 성이 무너졌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올 때,

법궤를 메고 요단강에 들어가니 강이 갈라져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전하게 건널 수 있었습니다.

 

그런 법궤를 빼앗긴 것은

하나님께서 블레셋에 볼모로 잡혀간 것이나 다름없는 일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법궤를 자신들의 신 인 다곤 옆에 모셨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보니 다곤 신이 엎드려져 있습니다.

이튿날은 다곤 신상의 머리와 손목이 끊긴 채

몸통만 문지방에서 뒹굴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법궤가 가는 곳마다

독한 종기가 생겨서 도시 전체가 초토화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법궤를 가져간 블레셋에 재앙을 내리신 것입니다.

 

2.

블레셋 사람들이

법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합니다.

 

법궤를 끌고 벧세메스 언덕길을 올라갈 암소 둘을 데려왔습니다.

한번도 멍에를 매지 않은 암소입니다.

게다가 젖먹이 새끼를 가진 암소입니다.

 

멍에를 한 번도 매지 않은 암소가

새끼가 있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벧세메스 언덕길을 올라간다면

그동안 있었던 모든 사건과 사고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확증하겠다는 것입니다.

 

암소 둘이

새로 만든 수레를 끌고 벧세메스 언덕길을 올라갑니다.

처음 매어 보는 멍에와 처음 끄는 수레입니다.

 

집에는 젖을 먹는 새끼들이 있습니다.

암소 둘이 꺽꺽 울면서도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똑바로 걸어갔습니다.

 

게다가 언덕을 다 올라가서는

희생 제사의 제물이 됩니다.

비록 암소들이지만

목숨을 바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한 셈입니다.

 

3.

벧세메스 언덕길을 올라가는 암소 두 마리를 보면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길을 오르신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조롱, 멸시, 천대, 채찍을 모두 참으시고 좌우로 흔들림 없이 걸어가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인생길도 벧세메스의 언덕길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힘겨운 길입니다. 처음 가는 길입니다. 처음 해 보는 일입니다.

벧세메스의 암소들이 새끼를 두고 왔듯이, 가슴을 쓸어 내리며 걸을 때도 있습니다.

그 길이 무엇인지, 왜 가야 하는지 모르고 걸을 때도 있습니다.

끝에는 손해(희생)만 볼 뿐 혜택을 누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빛 되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벧세메스(“태양의 집”) 언덕길을 걸어갑니다.

우리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선포되고

주님의 일이 세상에 펼쳐지길 바라며 걷는 믿음의 길입니다.

 

사순절 셋째 주를 맞는 참빛 식구들이

각자에게 주어진 벧세메스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 가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삼상 6:12)

And the cows went straight in the direction of Beth-shemesh along one highway, lowing as they went.

They turned neither to the right nor to the left (1Sam 6:12, ESV)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벧세메세의 인생길을 걷는 참빛 식구들과 동행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3. 21이-메일 목회 서신)

성경의 식물들 (4): 로뎀나무

성경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고 통쾌한 말씀 가운데 하나가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대결하는 장면입니다. 엘리야 시대의 북이스라엘은 아합왕과 바알신을 섬기는 시돈 출신 이세벨 왕비가 통치했습니다. 아합왕은 왕비 이세벨의 영향을 받아서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것을 핍박하고, 대신 바알 종교를 수입해서 널리 퍼뜨렸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떠나서 바알을 섬긴 아합왕을 “그 이전의 이스라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왕상 16:33)고 평가했습니다.

 

그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가 엘리야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되는 가뭄 속에서 까마귀를 통해서 엘리야를 먹이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엘리야가 아합왕을 찾아가서 바알 선지자들과의 대결을 요청합니다. 엘리야는 혼자였고 450명의 바알 선지자들이 모였습니다. 제단에 쌓아놓은 제물에 불을 내리는 신이 진짜라는 것입니다. 바알 선지자들이 한나절 동안 춤을 추면서 자신들의 신을 불렀지만, 불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엘리야의 차례가 되었고, 하나님께서 불을 내려 응답하셨습니다. 가뭄도 그치게 하셨습니다.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을 모두 제압했습니다. 통쾌한 승리였습니다.

 

아합왕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바알 선지자들을 칼로 죽인 것을 왕비 이세벨에게 고하니 이세벨이 화를 내면서 엘리야를 죽일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엘리야가 이스라엘 남쪽 끝에 있는 브엘세바까지 피신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식물인 로뎀나무 아래 앉아 쉬면서 자신의 목숨을 가져가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엘리야가 그만큼 지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그를 어루만져 주시고 먹을 양식을 공급해 주십니다. 그리고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던 호렙산으로 가라고 말씀하시고, 그곳에서 엘리야의 마지막 사명을 알려주셨습니다. 아합 가문을 심판할 왕들과 엘리야 자신의 후계자로 엘리사를 세우라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몸을 맡기고 쉬었던 로뎀나무는 팔레스타인 사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덤불 나무입니다. 12피트(3.5미터)까지 자라고, 사막의 여행자들에게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입니다. 가지로 빗자루를 만들 수 있어서 영어로 빗자루 나무(broom tree)라고 부릅니다. 성경에서는 로뎀나무가 연료가 쓰이거나 (시120:4), 뿌리를 양식으로 먹을 수 있다고(욥30:4) 소개합니다.

 

사막의 로뎀나무가 엘리야에게 쉼터가 되었습니다. 바알 선지자와의 대결에서 큰 승리를 거뒀지만, 왕비 이세벨의 경고에 위협을 느낀 엘리야가 다시금 하나님을 만난 장소입니다. 우리에게도 로뎀나무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강해도 지칠 때가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어루만져 주시고 새 힘을 주시는 우리 인생의 로뎀나무를 인생길 곳곳에서 경험하기 원합니다. -河-

고넬료

좋은 아침입니다.

 

1.

토요일 새벽기도회에서는

사도행전을 한 장씩 읽어 나갑니다.

토요일에만 읽으니 진도는 느리지만

차례대로 꾸준히 성경을 읽는 것은 언제나 중요합니다.

 

목소리가 크고 화려하지 않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꾸준히 자기 일을 하는 것이

우리 교회의 특징입니다.

 

저는 우리 참빛 식구들께서 각자의 자리에서

<소리없이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바라면서 목회하고 있답니다.

 

2.

지난 토요일에는 사도행전 10장을 읽었는데

베드로를 통해서 세례를 받고 예수님을 믿은

로마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가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사도행전 본문은 고넬료가 어떤 사람인지

비교적 자세히 소개하였습니다.

 

이달리야(로마) 부대에서 적어도 100명의 군인을 거느린 백부장입니다.

로마에서 식민지에 파견된 군지휘관이니 힘이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로마 부대라면 세계 최강입니다.

로마 사람이니 로마의 신들을 믿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달랐습니다.

그는 식민지 백성들이 믿는 구약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창조주가 되시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진리임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2절).

 

당시 유대교에서는 유대인이 아닌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God-fearers)”이라는 명칭만 주면서

할례를 받고 아브라함의 후손인 자신들과 구별했습니다.

일종의 차별인데, 로마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는 그것을 감수하고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확실히 만나고, 하나님 안에서 진리를 발견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고넬료는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날도 제 9시(오후 3시)에 기도한 것을 보면

매일같이 규칙적으로 기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고넬료는 “백성들을 많이 구제”했습니다.

지난달 속회 공부에서 배운 복음서의 또 다른 백부장이 생각납니다(눅7:1-10).

 

이처럼 고넬료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균형,

즉 신앙과 생활의 통합을 이룬 멋진 인물이었습니다.

 

3.

고넬료가 기도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그를 찾아와서

베드로를 초청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으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같은 시간에 베드로도 고넬료에게 가라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을 방문해서 복음을 전하니

고넬료와 그의 가족은 성경을 체험하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고넬료를 찾아 온 하나님의 사자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delivery)되어 기억되신바가 되었으니 (4절).

 

그렇다면

우리의 기도와 구제도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고 기억하실 테니

기분이 좋아지고 힘도 생깁니다.

 

신앙과 생활의 통합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지향해야 할 목적입니다.

그런 점에서 고넬료는 우리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사순절을 보내면서

온 가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항상 기도했던 고넬료의 신앙을 묵상합니다.

백성을 구제하는데 힘썼던 그의 삶도 본받기 원합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기도와 구제를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는 말씀에서

힘을 얻고 올해 사순절도 우리의 신앙과 삶을 주님께 드리기 원합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행10:2)

a devout man who feared God with all his household,

gave alms generously to the people, and prayed continually to God.(Act 10:2, ESV)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의 기도와 삶을 꼭 기억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3. 14이-메일 목회 서신)

성경의 식물들 (3): 백향목

성경에서 자주 등장하는 식물(나무) 가운데 하나가 백향목(cedar tree)입니다.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서 70회 정도 언급됩니다. 백향목은 상록수의 일종으로 130피트(약 40미터)까지 높이 자랍니다. 길게는 3천 년 정도를 살 수 있다니 현재 있는 백향목은 예수님께서 오시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던 나무들입니다.

 

백향목은 히말라야를 중심으로 지중해 연안 레바논까지 서식합니다. 워낙 높고 곧게 자라기에 건축에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서까래를 비롯한 주요 건축물에 백향목이 제격이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백향목의 높이는 위엄의 상징이어서, 고대 바벨론을 비롯해서 신을 섬기는 신전의 입구나 주요 구조물에 백향목을 사용했습니다. 백향목의 잎사귀나 줄기는 향을 만드는 재료로 쓰였습니다.

 

성경에서도 다윗과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왕궁과 성전을 지을 때 레바논산 백향목을 수입했습니다. 솔로몬은 레바논왕 히람과 계약을 맺고 백향목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았습니다. 하지만 레바논의 백향목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나라의 교만함을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구약 성경의 예언서에는 교만한 왕이나 세상의 제국을 백향목에 비유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백향목의 위엄이 교만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경고의 말씀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의 유업을 이어서 성전을 건축하는 장면입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온 지 480년이 지났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 40년과 사사 시대를 지내면서 하나님을 거의 잊어버렸습니다. 급할 때만 하나님을 찾고 평소에는 바알을 비롯한 가나안 토속신을 섬겼습니다. 왕이 없어서 이웃 국가들과 맞설 수 없다는 백성들의 불평을 듣고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셨는데 사울도 제 갈 길로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베들레헴 이새의 아들 다윗을 왕으로 기름부으셨고, 다윗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다윗 왕국을 세웠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모실 성전을 직접 짓고 싶었지만, 손에 피를 많이 묻힌 다윗 자신이 아니라 아들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위임해야 했습니다. 대신 다윗은 성전을 지을 모든 재료를 준비해 놓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 다윗의 뜻을 좇아서 솔로몬이 성전을 짓습니다. 화려한 성전입니다. 성전 건축의 마무리로 하나님의 법궤를 모실 지성소를 짓습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입니다. 백향목으로 벽을 가로막아서 지성소를 만들었습니다. 이밖에도 성전의 모든 장식이 백향목입니다. 성경에서 백향목은 성전 건축 뿐만 아니라 죄를 깨끗이 씻는 정결 예식에도 사용되었습니다(레14:6). 의인을 백향목에 비유하는 말씀도 있습니다(시 92:12). 우리도 백향목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귀하게 사용되기 원합니다. -河-

신앙에 대해서

좋은 아침입니다.

 

1.

구름 잡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 구름을 잡을 수는 없습니다.

 

눈으로 보면 하늘에 구름이 뭉쳐서

뭉개 뭉개 떠 있지만,

비행기를 타봐서 알듯이 구름은

그냥 수증기의 모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니 구름을 잡겠다는 것은 말 그대로 허풍입니다.

 

초등학교 국어책에

무지개라는 글이 있었습니다.

어떤 소년이 무지개를 잡으러 들판을 달려갑니다.

앞에 있는 무지개를 좇아서 산꼭대기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무지개는 늘 앞에 있을 뿐 잡을 수 없습니다.

 

구름을 잡는 것이나

무지개를 좇는 것이나 비슷합니다.

 

2.

때로는 우리의 신앙과 신앙의 용어와 표현이

구름 잡는 것처럼 들릴 때가 있습니다.

 

“선하게 살아야지요

믿음이 적어서요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등등”

– 실체가 있는 것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구름 잡는 이야기로 들릴 때도 있습니다.

 

무지개를 좇아가는 모습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기도하면 다 됩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해요.

사랑하기 원합니다. 등등”

– 맞는 말인데, 가끔은 무지개처럼 보이고 들립니다.

 

3.

주일 설교를 준비하면서

가능하면 구름 잡는 이야기를 피하려고 노력합니다.

무지개처럼 희망 고문같은 논조도 가능하면 지양합니다.

 

그래도 우리 신앙 자체가 영적인 면이 있고

추상적인 (어려운 표현으로 형이상학적인) 요소가 있기에

세심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구름 잡는 얘기로 빠지기 쉽고

그것을 피하려는 것 자체가 솔직히 불가능할 때도 많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제 모습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일 정도로 증거하는 것이라는

히브리서 기자의 고백을 기억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실제적이길 바랍니다.

추상적이고 영적으로 보이는 신앙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입술과 손과 발로 표현될 때는 구체적이길 원합니다.

 

미운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입술,

어렵고 약한 사람에게 슬쩍 내미는 손길,

먼저 가서 궂은 일을 손수 해내는 발길,

악한 말을 몰아내고 선한 말로 가득한 언어습관!

 

믿음으로 살고 은혜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실제로 보여주는

감사, 평안, 기쁨, 찬양, 그리고 자족!

 

2019년 사순절을 맞아서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을 눈에 보이도록 표현하고

그대로 사시는 참빛 식구들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개역개정)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새번역)

Now faith is the assurance of things hoped for, the conviction of things not seen.(Heb 11:1, ESV)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의 믿음이 증거가 되고 실체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3. 7이-메일 목회 서신)

성경의 식물들 (2): 살구나무

지난 시간의 떨기나무에 이어서 오늘은 살구나무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살구나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샤케드>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히브리어 <샤케드>는 살구나무가 아니라 아몬드 나무입니다. 개역 개정에서 살구나무라고 한 것은 잘못된 번역입니다. 도리어 성경에서 살구나무는 사과나무와 관련이 있습니다(아가서 2:3).

 

아몬드 나무는 이스라엘이 위치한 팔레스타인과 중동에서 흔히 볼 수 있고 16피트(약5미터) 정도까지 자라는 큰 나무입니다. 아몬드 나무는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1월이나 2월에 흰 꽃을 피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벚꽃이 피면서 봄이 오듯이 이스라엘에서는 아몬드 꽃이 피면서 봄이 찾아왔습니다. 겨울을 잘 지켜냈으니 봄을 맞을 준비가 되었다는 표시였습니다.

 

갑자기 아몬드 나무로 바꾸면 생소하기에 잘못된 번역인 줄 알지만, 개역 성경을 따라서 “살구나무”로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개역 성경에서 살구나무는 여섯 번 등장합니다. 하란의 외삼촌 집에서 지내던 야곱이 품삯으로 양을 받기로 하면서 살구나무를 비롯한 버드나무 등의 껍질을 벗겨서 양들에게 보이니 그들이 얼룩진 양을 낳았습니다(창30:37).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면서 야곱이 가족을 이끌고 아들 요셉이 총리로 있는 이집트로 피난갈 때, 이집트에서 구할 수 없고 가나안 땅의 특산물인 아몬드(개역 성경은 아몬드를 순우리말인 감복숭아 나무라고 번역함)를 가져갔습니다(창 43:11).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성막을 지었는데, 성막에서 사용하는 순금 등잔대 받침에 살구꽃 형상을 새겼습니다. 이것은 살구나무와 같은 발음을 가진 히브리어 동사 <샤카드 (“지키다”)> 때문일 것입니다. 등잔대의 살구꽃 형상은 하나님께 나오는 이스라엘을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을 뜻했습니다 (출37:19).

 

레위인 고라가 성직에서 소외되었다는 이유로 아론과 모세에게 반기를 든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땅이 갈라지면서 고라와 그를 따르던 무리를 삼켰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명하셔서 지파별로 지팡이를 가져와서 증거궤 앞에 하룻밤을 놓아두도록 했습니다. 다음 날이 되자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나고 살구 열매가 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론을 제사장으로 세우시고 그를 주목하신다는 뜻이었습니다(민 17:8).

 

마지막으로 살구나무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예언자로 부르실 때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살구나무(샤케드) 환상을 보여주셨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끝까지 지켜보겠다(샤카드)는 뜻이었습니다. 이처럼 성경의 살구나무(아몬드나무)는 하나님의 보살핌과 연결됩니다. 또한 하나님 백성이 주님 앞에서 깨어있어야 함을 일깨워줍니다. 겨울이 지나고 가장 먼저 피는 살구꽃처럼 새달을 맞는 우리의 신앙도 꽃피우길 원합니다. -河-

무익하고 헛된 것

좋은 아침입니다.

 

1.

어느덧 2월의 마지막 날을 맞았습니다.

권사님들 말씀처럼 흘러가는 시간을 잡을 수 없고,

한 달이 때로는 한 해가 순간에 지나감을 보냅니다.

 

또다시 새달을 맞으면서

“세월을 아끼라”(엡5:16 )는 말씀이 저절로 떠오르고

우리 의지의 연약함을 고백하며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이번 주 큐티 말씀은 디도서였습니다.

디도는 바울의 동역자로서

믿음도 좋았지만 사려 깊고 마음이 따뜻한 그리스도인이었던 같습니다.

바울이 디도를 통해서 위로를 받을 정도였습니다(고후 7:6).

 

바울은 그레데(Crete) 섬을 방문했다가

그곳 교회와 성도들의 삶이 엉망진창인 것을 보고

디도를 그레데 교회의 임시 목회자로 남겨 두었습니다.

 

그레데 교회는 여느 교회가 마찬가지로

보통 사람들은 물론 노예까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모여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레데 섬에 사는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게으르고,

거짓말을 일삼고, 때로는 차마 사람으로 할 수 없는 행동을 했기에

“악한 짐승”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디도 1:12).

 

그레데 성도들도 예외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복음에 대한 감격이 있지만

그들의 삶은 옛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디도가 그레데 교회를 돕고

그곳에 바른 지도자들을 세우길 부탁합니다.

디도서 1장에 나오는 지도자들의 덕목이 특별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만큼 그레데는 물론 그데데 교회가 타락했기에

다른 곳에서는 보통 그리스도인이 그곳에서는 탁월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2.

2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이렇게 한 달을 보내고 새달을 맞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도 그레데 교인들과 같은 속성이 남아 있습니다.

현대인의 교양(?)으로 치장을 해서 보이지 않을 뿐 보기 흉한 생각과 행동들입니다.

주님 앞에 내놓고 회개하지만, 번번이 고쳐지지 않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디도서의 그레데 교인들에게 손가락질할 수 없습니다.

 

2월을 보내고 새달을 맞으면서

우리 속에 있는

무익하고 헛된 것(unprofitable and worthless)”을 멀리하기 원합니다.

 

선한 것을 행하는 것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또한, 참빛 식구들께서 행하는 대부분의 일은 선합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 삶 속에서

“무익하고 헛된 것”을 골라서 뽑아낸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때 우리의 삶이 “아름답고

사람들에게 유익”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디도 3:8)

I want you to insist on these things, so that those

who have believed in God may be careful to devote themselves to good works.

These things are excellent and profitable for people. (Titus 3:8)

 

하나님 아버지,

새달을 맞는 참빛 식구들의 신앙과 삶이

선하고 아름답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2. 28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