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보는 교회 (5)

돌보는 교회라는 올해 표어를 따라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자신을 돌보고, 교회를 돌보며, 이웃을 돌보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핏값을 주고 사신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이지 분별하면서 자신을 돌봐야 합니다.

 

가정과 교회를 포함한 공동체를 돌보는 것도 필수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믿음의 분량대로 공동체를 섬깁니다. 우리 각자가 예수님의 몸을 이루는 지체라는 마음으로 각자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합니다. 서로 거짓없이 사랑하고, 악이 아니라 선에 속해야 합니다. 형제를 사랑하고 서로 우애하며 존경하기를 먼저 해야 합니다. 사랑받기를 기다리거나 돌봄을 기대하지 말고 먼저 사랑하고 돌보는 것입니다. 우리 서로 이렇게 돌봄을 실천하면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하나님 나라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힘으로 공동체를 돌보면 쉽게 지칩니다. 그리스도인의 돌봄은 신앙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합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커다란 어려움이 닥쳐도 견뎌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끊임없는 기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공동체 섬김에 대한 실제적인 교훈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고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입니다. 로마 교회는 비교적 풍부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어려운 성도들이 있었을 텐데 그들을 도우라는 권면입니다. 대도시 로마를 찾는 나그네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들도 대접하라는 부탁입니다. 이것은 바울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씀입니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그를 대접하는 손길이 있었기에 전도 여행이 가능했습니다.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는 말씀은 교회 안팎에 모두 해당합니다. 로마 교회 안의 갈등은 서로 시기하고 미워하는 관계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면 불평하고 미워하며 심한 경우 서로를 박해했을 것입니다. 교회 밖에서의 핍박과 박해는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처럼 박해하는 자를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라고 부탁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미덕입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와 함께 우는 것은 한마음을 품고 서로를 긍휼히 여기라는 부탁입니다. 말 그대로 공동체임을 마음과 몸으로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앞에서는 물론 빌립보 교회에도 부탁했던 대로 마음을 같이 하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을 같이하고 서로를 겸손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은 그리스도 교회에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공동체가 이렇게 세워집니다. 우리가 서로 돌볼 때 이룰 수 있는 꿈의 공동체입니다.-河-

레위기 11장

좋은 아침입니다.

 

1.

이번 주 성경 통독이

그렇게 어렵고 지루하다는 레위기에 왔습니다.

통독 반원들께는 레위기에 집착하지 마시고 쭉쭉 읽어 가시길 부탁드렸습니다.

그만큼 레위기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는 어제 레위기 11장을 만났습니다.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 먹을 수 있는 짐승과 먹어서는 안 되는 짐승을 구분합니다.

 

굽이 갈라지고 새김질하는 짐승은 정하기에 먹을 수 있습니다.

둘 중의 하나만 해당하는 낙타, 토끼, 돼지는 먹을 수 없습니다. 불완전하다는 것입니다.

비늘과 지느러미를 가진 물고기도 먹을 수 있습니다.

비늘과 지느러미를 완벽한 물고기의 조건으로 본 것입니다.

독수리, 타조, 올빼미처럼 먹이를 탈취하는 조류는 먹을 수 없습니다.

날개가 있으면서 동시에 네발로 기어 다니는 곤충도 부정합니다.

메뚜기처럼 날개가 있어도 네 발로 뛰는 것은 먹을 수 있습니다. (레위기 11장 1-23절)

 

심지어, 부정한 짐승의 사체를 만지거나 접촉해도 부정합니다.

이처럼 정한 것과 부정한 것 (clean vs. unclean)에 대한 규정이 복잡하고 엄격합니다.

 

2.

그런데 레위기 11장에서 알려주는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었습니다.

 

첫째로, 특별한 기준이 없고 하나님께서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임의로 정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종을 요청하셨다는 것입니다.

정한 것과 부정한 것 사이에 뚜렷한 기준이 없는 것을 고려한 해석입니다.

 

둘째는, 본문의 부정한 짐승들은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 민족의 제사에 사용된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그러니 먹을 수 없습니다.

돼지가 대표적인데, 그렇다면 바알신의 상징인 소고기도 금해야 했기에 일관성이 없습니다.

 

셋째는, 의학이 발달한 근래에 제기된 의견으로 위생상의 이유라는 것입니다.

세균을 옮기기 쉽거나 박테리아 등을 갖고 있는 위험한 짐승들이라는 것입니다.

상하기 쉽고 종종 전염병을 일으키는 돼지가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서 부정한 짐승이 건강상 해롭다는 지적이 없다는 것이 함정입니다.

 

네 번째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는 견해입니다.

구약의 율법에서는 온전한 것(wholeness)과,

창조 섭리에 맞는 자연스러운 것(normality)을 중요시 합니다.

레위기 11장에서 정한 것으로 분류한 것들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또한, 먹이를 새김질하는 짐승을 정한 것으로 구분한 것은

하나님 말씀을 새김질하듯이 묵상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식입니다.

상징적인 해석은 그럴듯하지만, 비약이 있고 주관적입니다.

 

3.

쉽지 않습니다.

어느 한 가지 의견만 지지하거나 고집할 것도 아닙니다.

어떤 견해가 맞는지를 두고 집요하게 연구할 것도 아닙니다.

본문 자체가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11장의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의 구분이 만고불변의 진리라면

하나님께서 정확한 기준을 제시하셨을 것이니

본문의 규정을 현대에 맞출 필요도 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너희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 11:44-45)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임의적 명령이든, 이방의 풍습을 따르지 말아야 했든지

위생상의 이유나 상징적인 의미에서든지 11장의 규정을 지켜야 했습니다.

당시에는 그것이 몸을 더럽히지 않고 하나님 백성에 걸맞은 거룩한 삶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거룩함”은 무엇일까요?

우리 몸을 스스로 더럽히는 것들은 없는지요?

구약의 이스라엘이 먹는 것으로 거룩함을 유지했다면

우리는 무엇을 갖고 거룩함을 지켜야 할까요?

 

“거룩함”이라는 단어를 붙잡고 오늘 하루를 살아 봅시다.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레 11:44)

For I am the LORD your God.

Consecrate yourselves therefore, and be holy, for I am holy. (Lev 11:44)

 

하나님 아버지

구약의 복잡한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하나님 백성으로 거룩함의 길을 걷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2. 7이-메일 목회 서신)

참빛 식구들의 일주일

자기를 돌보는 삶에 대해서 살펴볼 때, 로마서 12장 1절을 함께 나눴습니다. 우리의 몸(구체적인 삶의 현장)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것이 자기 돌봄의 목적이라고 했습니다. 매주 모이는 주일예배와 더불어 가정과 세상 속에서 보내는 6일간의 삶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 교회는 흩어지는 교회를 지향합니다. 우리 교회에 모임이 많지 않은 가장 큰 이유입니다. 주일에 모여서 함께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서로 격려하며 친교한 후에 세상으로 흩어집니다. 그리고 각자의 삶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때때로 신앙이 좋은 것과 교회 활동을 많이 하는 것을 혼동했습니다. 주일이나 주중에 교회에 와서 살고, 자기 삶을 희생하면서 교회 활동하는 것을 신앙이 좋다고 했고 그런 교회를 두고 성령 충만하다고 했습니다. 이런 식의 교회 활동에 익숙해서 우리처럼 예배 후에 세상으로 흩어지는 교회의 모습이 어색할 수 있습니다. 뭔가 활동을 해야 할 것 같고 신앙의 열심이 식은 것 같은 느낌이 들수 있습니다. 그동안 그렇게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교회 활동을 줄이고 가정과 세상에서의 삶을 중요시한다고 해서 신앙이 미지근해지거나 우리 교회 방식에 길들어서 여유시간을 헛된 곳에 쓰면 안 됩니다. 저 역시 우리 교인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6일을 힘닿는 대로 돕겠습니다. 올 한해 다음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한 주간을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주일은 참빛식구들이 함께 모여서 드리는 공동체 예배입니다. 조용한 기도부터 마지막 축도와 식사 기도까지 모든 순서에 주님의 임재를 구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일주일 동안 세상에서 살아갈 힘과 지혜, 주의 은혜를 충분히 경험하기 원합니다. 친교를 통해서 서로 격려하고, 기도할 제목을 찾아내고, 교회의 하나 됨을 확인하기 원합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카톡으로 보내드리는 메시지를 갖고 각자의 자리에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합니다. 매일의 말씀을 참빛식구들 각자에게 맞게 적용하시길 바랍니다. 수요일에는 저녁 예배에 오실 수 있습니다.

 

목요일에는 목요 서신을 통해서 세상에서의 삶을 점검하고, 자신은 물론 이웃과 세상에 관심을 갖는 시간입니다. 첨부한 주일 설교를 들으시고, 수요예배 교재까지 읽으시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주보의 생명샘을 읽으시면서 지난 주일 말씀을 다시 묵상하시는 것도 도움이 되십니다.

 

토요일 아침에는 새벽 기도회가 있습니다. 가까이 계시는 성도님들의 참여를 권합니다. 무엇보다 토요일은 한 주간의 삶을 마무리하고 주일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아무쪼록 참빛 식구들께서 일주일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시고 세상에서 복음의 빛을 비추는 복된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河-

여호와께서 여기 계시거늘

새해를 맞으면 습관처럼 하는 일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새해 신문을 모두 사서 훑어보았습니다. 신문마다 한 해를 전망하는 특집 기사를 실었고, 새해 특별호는 분량이 평소의 서너 배가 되어서 값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다른 한 가지는 지나간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맞이하는 계획을 세우는 일입니다. 20대 초부터 해오던 습관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자기 사랑이라는 세 가지 큰 제목으로 나눈 후에 각각 세부적인 계획을 세웠습니다. 스스로 점수를 매기면서 한 해를 돌아보고 평가하곤 했습니다. 지나간 해를 돌아보면 아쉬운 것이 많았기에 저 자신에게 높은 점수를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또다시 야심 차게 새해 계획을 세웠습니다. 20대 초반부터 계속하던 저의 새해 의례(ritual)였습니다.

 

새해를 맞으며 꼼꼼하게 세웠던 계획들이 저의 신앙과 삶에 도움이 된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젊은 시절에는 분기마다 새해 계획을 점검하면서 나름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50대 중반을 넘으면서 새해 계획을 더 이상 세우지 않습니다. 인생을 바라보는 저의 관점이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전까지는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쉼 없이 노력하며 살았다면, 50대 중반 이후의 삶은 제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제 삶을 하나님께 맡기고 싶었습니다.

 

일찍이 제자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의 주되심을 인정하는 훈련을 받았지만, 젊은 시절에는 여전히 제가 성취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습니다. 50대 중반을 넘으면서 제가 하려는 일들을 하나씩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무장해제 시키는 작업입니다. 간구하는 기도보다 하나님의 뜻에 응답하고 순종하는 기도가 늘어났습니다.

 

저는 여전히 젊습니다. 인생이나 목회 길에 하고 싶은 일도 많아서 양손에 꼭 붙들고 놓지 못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씩 내려놓고 하나님을 향해서 손을 폅니다. 언젠가는 하나님을 향해서 손을 번쩍 들고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리는 전적인 항복의 순간을 맞겠지요. 그것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성숙한 신앙일 것입니다.

 

구약성경 창세기의 야곱은 집요한 인물입니다. 어디서든지 살아남을 꾀쟁이입니다. 장자가 되기 위해서 태중에서부터 싸우다가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났습니다. 형에게 팥죽 한 그릇을 주고 장자권을 샀습니다. 어머니 리브가의 주도 면밀한 계획을 쫓아 아버지 이삭을 속여서 결국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장자가 되기 위한 계획을 치밀하게 세웠고 그대로 실천에 옮겼습니다.

 

그러던 야곱에게 위기가 닥쳤습니다. 장자권을 빼앗긴 형 에서가 그를 죽일 계획을 세웁니다. 이것을 알아차린 어머니 리브가가 야곱을 삼촌 집으로 피신시킵니다. 야곱은 홀연 단신으로 삼촌 집을 향해서 떠납니다. 걸어서 한 달 이상 걸리는 여정입니다. 야곱이 한 곳에 이르러 해가 지니 돌베개를 베고 잠을 청했습니다. 야곱이 아무리 꾀쟁이어도 더이상 계획을 세울 수 없는 순간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의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야곱이 누워있는 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고, 모든 족속이 야곱과 그의 후손들로 인해서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은 길에서 하나님을 만날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상념에 쌓인 채 우리 식으로 괴나리 봇짐을 지고 터덜터덜 가는 발걸음이었습니다. 돌베개를 베고 노숙했다는 말씀이 야곱의 처지를 잘 말해줍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잠에서 깬 야곱이 탄성을 지릅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돌베개를 세워놓고 그곳을 “벧엘(하나님의 집”)이라고 부르며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물론,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성취해 가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만이 누리는 더 큰 기쁨은 예상치 않게 임하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방법과 기대하지 않은 장소에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가능합니다. 우리 자신이 주도하는 여정이 아니라 하나님을 쫓아가는 즐거움을 맛보기 원합니다. 올 한해를 살면서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는 야곱의 탄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 (2019년 1월 31일 SF 한국일보 종교칼럼)

 

 

격차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주에 한 신문에서 마이크로 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Bill Gates)에 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빌 게이츠는 17세에 창업해서

얼마 전까지 세계 최고 부자의 자리를 유지했습니다.

현재 그의 자산은 96억 불입니다.

온 세계 사람들에게 10불씩 나눠줘도 20억 불이 남는 정도랍니다.

 

빌 게이츠는 일주일 가족여행에5백만 불을 씁니다.

스피드를 즐기는 그는 최고급 자동차는 물론

2천만 불짜리 자가용 비행기도 있습니다.

 

물론 빌 게이츠와 그의 부인은 자신들이 세운 자선단체에 많은 재산을 기부해서

후진국의 의료와 교육을 돕는 등 좋은 평판을 얻고 있습니다.

자식들에게는 재산의 1% 정도에 해당하는

1천만 불 (우리에게는 천문학적 숫자)씩만 나눠준답니다.

 

기사에는 흥미로운 대목도 있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맥도날드 햄버거를 좋아하고

10불짜리 손목시계를 차고 있으며

옷에는 관심이 없고, 하루에 서너 캔의 다이어트 콜라(Diet Coke)을 마신답니다.

 

그러고 보니 빌 게이츠 역시 우리와 같은 인간입니다.

 

2.

미국은 2008년 경제 위기를 기점으로 소득 격차가 더욱 극심해져서

1% 수퍼 리치(super rich)의 자산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 전체 자산의 절반 정도를 1% 부자들이 차지할 정도입니다.

 

빈부/소득 격차를 줄여야 합니다.

1차 세계대전 때 당시 10만 불 이상 소득을 올리면 80%에 가까운 세금을 냈고

대공황 때도 최고 60% 이상의 세금을 징수했습니다.

세금을 비롯한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부의 공평한 분배가 이뤄져야 합니다.

 

빌 게이츠가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고

콜라를 좋아하듯이 그도 우리와 같은 사람입니다.

아무리 실력이 있고 열심히 살았어도,

같은 사람인데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고 부를 독식하는 것은

불공평을 떠나서 지나친 감이 있습니다.

 

 

이미 늦었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격차를 줄이는 것이 급선무일 것 같습니다.

 

3.

이번 주 성경 통독이 출애굽기였습니다.

 

안식년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일곱째 해가 되면 땅을  묵히고

행여나 저절로 맺는 열매가 있어도 절대로 수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가난한 자들과 심지어 들짐승이 먹도록 놓아두라는 것입니다.

 

50년마다 맞이하는 희년(the year of Jubilee)은 모든 것을 처음 상태로 되돌리는 해였습니다.

땅은 물론 백성들도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람들이 만든 격차를 없애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하나님의 공의, 공평이 임하길 기도합니다.

 

일곱째 해에는 갈지 말고 묵혀 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네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 (출 23:11)

but the seventh year you shall let it rest and lie fallow, that the poor of your people may eat;

and what they leave the beasts of the field may eat. You shall do likewise with your vineyard, and with your olive orchard.  (Exodus 23:11)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는 세상이

하나님께서 애초에 의도하신 더불어 사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1. 31이-메일 목회 서신)

                   

돌보는 교회 (4)

돌봄은 관계와 밀접히 연결됩니다. 가정이나 교회를 비롯한 공동체 속에서의 돌봄은 처음부터 끝까지 관계 속에서 이뤄집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자신을 돌보는 것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뤄집니다. 자신을 한 발짝 멀리 뛰어 놓고 바라보면 우리 자신도 돌봄의 대상인 타인처럼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관계가 좋으면 그곳이 하늘나라입니다. 잠언에서도 마른 떡 한 조각을 갖고 화목한 것이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다투는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미움과 갈등, 다툼으로 관계가 틀어지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평화가 깨지고 기쁨이 사라지니 관계가 깨진 곳은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없습니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인 돌봄은 우리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유지시키는 일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돌봄은 서로 지체 의식을 갖고 은사를 따라서 행하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 곧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명과 은사를 따라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생각을 우리 모두 공유할 때, 교회를 소중히 여기게 되고 온 힘을 기울여서 공동체를 세워갈 것입니다.

 

오늘 본문(롬12:9-13)은 공동체를 세우는 구체적인 원리와 태도를 알려줍니다.  그 한가운데 “사랑”이 위치합니다. 교회를 섬기고 성도들을 돌보는데 사랑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 본문의 교훈은 교회뿐 아니라 가정과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교제까지 확대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선, 거짓 없는 사랑으로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해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거짓없이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공동체와 형제자매를 살리는 선함을 사랑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둘째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형제 사랑은 말 그대로 서로 사이 좋게 지내는 것입니다. 미움과 갈등을 삼가야 합니다. 존경해야 합니다.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먼저 사랑해주고, 관계를 개선하며, 존경해 주길 기다릴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나서야 합니다. 돌봄은 받는 것보다 베풀 때 기쁨이 있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부지런히 주를 섬겨야 합니다. 행여나 이웃을 섬기다가 주님을 섬기는 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고 환난 중에 참고 기도하는 신앙의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은 성도의 쓸 것을 공급하고 나그네를 대접하는 구체적인 돌봄입니다. 이렇게 주를 섬기며 이웃을 돌볼 때, 우리가 속한 교회와 공동체가 천국으로 변할 것입니다.-河-

롤러코스터

좋은 아침입니다.

 

1.

새해 첫 달이 지나갑니다.

힘차게 새해를 시작했지만 20여 일이 지나면서

새해 역시 평범한 일상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작심삼일( 作心三日)이라는 말이 생겼겠지요.

 

우리는 올 한해를 지내면서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꼭대기와 골짜기를 반복해서 경험할 것입니다.

우리의 감정, 생각, 관계, 세상의 삶,

심지어 우리의 신앙도 높낮이를 경험하면서 한 해를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솔직한 모습이요 우리가 가진 밑천의 한계입니다.

 

지난번 설교에서

로마서 12장 2절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롬12:2)라는 표현 속에는

“다시” 새롭게 한다는 의미가 들어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순간마다 다시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함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2.

  1. S 루이스는

악마가 그리스도인을 유혹하는 전략을 흥미롭게 묘사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The Screwtape Letters>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침체와 건조함의 골짜기”에 있을 때

그것을 잘 활용해서 시험에 들게 하는 악마의 전략을 알려줍니다.

 

새해를 맞으면서

올 한해는 흔들림 없이 살겠다고 결심했지만,

벌써 침체와 건조함의 골짜기에 내려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비관해서 힘들어하거나

반대로 “그럴 수 있다”고 지나치게 낙관하면서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데

악마가 그 순간을 교묘하게 파고 든다는 것입니다.

 

악마가 가장 힘겨워하는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인생의 골짜기를 걷고 신앙이 흔들리더라도

계속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의도를 잃지 않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아무리 돌아봐도 원수 [악마에게는 원수,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것 같고

왜 그가 자기를 버렸는지 계속 의문이 생기는데도 여전히 순종한다면,

그때보다 더 우리의[악마의] 커다란 전략이 위협받을 때는 없다”

 

3.

우리의 삶의 길이 장밋빛 융단일 것이라는 기대는

그동안의 경험상 일찌감치 접었습니다.

 

엉겅퀴와 가시덤불을 번갈아 내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의 삶은 롤러 코스터의 반복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릴 적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즐겼듯이

우리의 인생도 결을 따라 살면서 즐겨야 합니다.

거기서 무너지면 C.S 루이스의 표현대로 악마가 가장 좋아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분명히 일으켜 세우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어떠하든지 매번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꿋꿋하게 신앙의 길을 걷기 원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And we know that for those who love God all things work together for good,

for those who are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Rom 8:28)

 

하나님 아버지

새해를 살면서

합력해서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어떤 상황에도 신앙만은 흔들리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1. 17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