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

좋은 아침입니다.

 

1.

올해 우리 교회 표어는 <작은 일에 충성>이었고

올 초에 교회 표어와 관련한 목요 서신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자동차 앞 유리에 돌이 날라와서 구멍이 났을 때

그것을 정성껏 보수해 주신 분의 경우를 예로 들면서

세상에는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분들이 계심을 소개했습니다.

게다가 알고 보니 그분은 말을 못 하는 분이었기에 더욱 감동적이었습니다.

 

연초에 보냈던 메일 가운데 일부입니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모두 작은 일에 불과할 겁니다.

그러니 매사에 충성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실제로 “작은 일”도 있습니다.

사소하고 스쳐 지나가기 쉬운 일입니다.

올 한해는 그런 일도 챙겨 보고 싶습니다.

 

유리창의 아주 작은 흠집을 보수해주셨듯이

세상에는 작은 일을 천직으로 알고 묵묵히 수행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존경과 박수를 받아 마땅한 분들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이라는 우리 교회 표어대로

올 한해, 아니 오늘 하루

우리 주변의 작은 일에 성실하고

작은 자들을 챙기고

작은 일을 하시는 분들께 감사하기 원합니다.

 

2.

올해가 나흘 남았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삶을 돌아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물론 이웃과 세상 속에서

작은 일에 충성하였는지요?

 

하나님 앞에 무엇을 보여드릴 수 있을지요?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대로

하나님으로부터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을 수 있을지요?

 

물론, 자신 있게 “예스/yes”라고 답할 정도의 강심장은 우리 가운데 없으십니다.

우리는 말 그대로 은혜가 필요하고

올 한해도 은혜로 살았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한 해를 돌아보면서

재빠르게 은혜 속으로 숨거나, 무작정 은혜를 갖다 대지 말고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과연 “작은 일에 충성”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3.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분들께

감사의 뜻을 표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하찮아 보이는 일을 정성껏 하시는 분들입니다.

직장에서, 교회에서, 가정에서

작은 일에 충성하시는 분들입니다.

 

이처럼 작은 일에 충성하는 분들이 계시기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일정하게 유지될 겁니다..

 

더불어, 작은 자 하나를 사랑하시고

창조주 입장에서 보면 정말 하찮은 일까지 챙기시는

신실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한 해를 마무리합시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마 25:21)

Well done, good and faithful servant. You have been faithful over a little;

I will set you over much. Enter into the joy of your master. (Mat 25:21)

 

하나님 아버지

작은 일에 충성하며 한 해를 살아온

참빛 식구들께 힘이 되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 12. 27이-메일 목회 서신)

2018년 12월 4주 성탄주일

성탄 주일: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이사야 9장 6절

성탄예배: 기쁘다 구주오셨네/누가 2:1-20

 

찬양:

거룩한 주 예수

사랑이 예 오셨네

 

봉헌송 연주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어김없이 올해도 성탄절을 맞습니다. 예수님을 기다리는 네 번의 대강절 후에 맞는 성탄절입니다. 그동안 한주 한주 보내면서 마음에 촛불을 밝히며 성탄절을 기다렸습니다.

 

로마서를 통해서 배웠듯이 우리는 물론 세상에 예수님이 꼭 필요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께 나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의로우신 하나님의 기준을 맞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집니다. 그러니 하루빨리 누군가 와서 우리를 구원해 주어야 하는데, 우리를 가장 잘 아는 분이어야 가능합니다. 인간은 물론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뿐인 아들을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오셔야 했기에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셨습니다. 죄가 없는 몸을 입기 위해서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우리가 매주 함께하는 사도신경의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으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와 그의 후손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기름부음 받은 자가 태어날 것을 예고하셨는데, 천여 년 후에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지만 자신을 비워서 종의 형체 즉 피조물인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이 어려움을 겪으시고 무엇보다 우리가 가야 할 죽음의 길을 대신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이것을 두고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신 칭의,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속량, 우리가 져야 할 죄의 짐을 대신 지고 속죄소에 오르신 속죄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인 이사야서 9장 6절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입니다. 한 아기가 낳을 것이고,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 온 세상을 통치할 왕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불릴 정도로 하나님과 같으신 분입니다. 무엇보다 평강의 왕으로 세상에 오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를 화해시키는 것도 평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사역입니다. 부서지고 어그러진 세상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것도 예수님의 평화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성탄절을 맞아서 우리 마음속에 평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모시기 원합니다. 평화의 왕 우리 예수님께서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평화를 주시고, 우리의 삶을 온전히 회복시켜 주시길 원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고, 행여나 부서진 이웃과의 관계가 있다면 평화의 예수님을 맞음으로 화해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성탄절을 맞아서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넘치길 기도합니다.-河-

일상의 보물

좋은 아침입니다.

 

1.

얼마 전에 소천하신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몬태나 출신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정육점을 하셨습니다.

피터슨 목사님은 어려서부터 정육점에 나가서 아버지를 도왔습니다.

목사님은 종종 그의 저서에서 정육점에서 일했던 기억을 신앙과 연결시킵니다.

 

정육점에서 입었던 앞치마를 보면서

성경의 인물인 사무엘이 입었던 에봇(제사장 복장)을 떠올렸습니다.

성소에서 자랐던 어린 사무엘은 키가 자라면서 에봇을 교체해야 했는데

자신도 자라면서 정육점의 앞치마가 점점 커졌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정육점을 사무엘이 자랐던 성소와 비교한 것도 특별했습니다.

 

“칼은 자기 나름의 의지가 있어” –

정육점 직원이 피터슨 목사님께 해준 말입니다.

실수해서 손을 베면,  “네가 칼을 몰랐다”며 주인의 책임을 물었습니다.

칼도 함부로 사용하지 말고

용도에 따라서 올바로 사용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고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렇게나 고기를 자르거나 손질하는 것이 아니라

고기의 종류와 부위에 맞게 다뤄야 합니다.

 

피터슨 목사님의 아버지는 고기를 자기 마음대로

함부로 다루는 직원을 “해커”라고 불렀답니다.

칼은 물론 고기까지 존중하는 것이 정육점의 관습이었습니다.

 

정육점을 찾는 손님들에 대한 언급도 있습니다.

정육점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가 아버지의 고객입니다.

아버지는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모든 손님을 존중하셨습니다.

이름을 부르면서 맞이하셨기에

정육점에 들어오는 모든 고객은 자신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답니다.

 

정육점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몸을 파는 여성들이 거주하는 곳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 여성들이 고기를 사러 정육점에 들어오면

일일이 이름을 불러주면서 부자 고객과 똑같이 맞이하셨답니다.

 

고기를 구입한다는 면에서

정육점을 찾는 사람들은 차별이 없었고

아버지 역시 모든 사람을 존중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거나 또는 누구를 대하든지

우리 고집 또는 생각대로 하지 말고

상대에 맞게 또는 주어진 조건에 맞게 처신해야 하는데

그것을 피터슨 목사님은 “겸손”이라고 불렀습니다.

 

2.

늘 그렇듯이

피터슨 목사님의 글쓰기는 창의적이고

자잘한 부분까지 공감을 일으킵니다.

 

어릴 적 정육점에서 일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것을 자신의 신앙, 사람을 대하는 태도, 목회자의 덕목으로

발전시키는 솜씨가 탁월합니다.

 

피터슨 목사님에 비하면

우리는 일상의 삶을 너무 쉽게 생각해서 대충대충 넘깁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상 속에 보석을 숨겨놓으셨건만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리 귀하게 여기지도 않습니다.

보석을 숨겨놓으신 하나님께서 꽤- 섭섭하시겠지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주변에 공기처럼 존재합니다.

우리의 숨결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거하는 모든 장소, 우리가 사는 모든 시간도

은혜요 그 속에 숨겨진 보물들이 있습니다.

 

올해가 열흘 남짓 남았습니다.

삶 속에 숨겨진 보물들을 한 개씩 한 개씩 찾아 세어봅시다.

특히, 가족과 이웃 속에 숨겨진 보물들에 주목합시다.

감사가 저절로 나올 것입니다.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시편119:37)

Turn my eyes from looking at worthless things; and give me life in your ways (Ps 119:37)

 

하나님 아버지

일상 속의 보물을 찾을 수 있는

세심한 안목을 갖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 12. 20이-메일 목회 서신)

화목제물

로마서 3장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은 물론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는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깜깜한 세상입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죄의 삯이 사망이니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창세기 아담과 이브 이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고 자기 마음대로 행하면서 생긴 결과입니다. 결국 죄인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롬3:9).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모두 사라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다시 구원의 역사를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라는 말씀이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노력을 쉬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한 인간을 구원하고 회복하기 위한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우선, 죄인이라고 판정받은 인간을 구해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죄인의 옷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야 할 죽음의 길을 가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속량(redemption)”이라고 말한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입니다. 속량은 시장에서 값을 주고 물건을 사는 것입니다. 종이나 포로로 잡힌 사람을 대신해서 벌을 받거나, 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값을 지불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의 죗값을 치르셨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값으로 지불하고 우리를 구하셨습니다.

 

우리의 행위나 업적없이 예수님의 속량으로 우리를 구해 주셨으니 그 자체가 “은혜”입니다. 값없이 주신 선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과 은혜에 참여하는 방법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예수님을 따라 살기로 작정하면서 은혜로 구원에 이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구원 사역을 이루신 예수님의 신실함에 참여함으로 속량의 은혜에 들어갑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속량하심으로 우리는 죄에서 구원받았습니다. 죄인이라는 판정이 번복되고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습니다. 의롭다는 판정을 받는 것을 “칭의”라고 합니다. 속량이 상업용어라면 칭의는 법정 용어입니다. 더이상 죄인이 아님을 법적으로 인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이상 죄인이 아닙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의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를 흘리며 돌아가심은 구약시대 피의 제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화목제물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임재 상징인 법궤의 뚜껑을 가리킵니다. 또한 제물을 올려놓던 제단(mercy seat)을 가리킵니다. 피로 속죄의 제사를 드리므로 죄가 사라지고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우리의 죄가 하나님의 속죄소에 올려졌고 하나님 백성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죄인이 예수님으로 인해서 의인이 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은혜이기에 우리는 단지 감사할 뿐입니다.-河-

열정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화요일에는

구글(Google) CEO가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서

자신들이 정치에 개입하거나 편파적인 일을 한적이 없다고 증언했습니다.

 

구글 CEO는 인도 출신입니다.

인도에서 대학까지 졸업하고

미국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일을 시작해서

20여년 만에 구글의 최고 경영자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인도 출신의 기업가들이 꽤 많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CEO 도 인도 출신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왔지만, 영어의 이점이 있기에

그 어렵다는 최고경영자의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나봅니다.

 

흥미를 갖고 이분들의 이력을 살펴보았습니다.

단지, 영어가 자유롭다는 것만이 장점은 아니었습니다.

꽤 적극적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탁월한 능력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하여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우리 교회는 세상에서의 소위 출세/성공에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인으로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제가 지향하는 목회 방향과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적극적으로/큰 목표를 갖고 성공하라는 얘기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출세보다는 섬김과 희생, 자신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는

인내와 성실을 강조합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인도출신 경영자들을 보면서

솔직히 약간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으면서,

하나님 안에서 꿈을 갖고 시작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음 세 가지가 생각났습니다.

 

첫째는 “열정(passion)”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자기 일에 대한 열정이 필요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그 안에서 보람을 느끼는 과정입니다.

 

둘째는 “노력(perspiration)”입니다.

아무리 열정이 충만해도 노력하지 않으면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 올해 표어 대로 작은 일까지 충성하는 태도가 필요입니다.

 

마지막으로 “영감(inspiration)”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도우심을 수단 삼아서 내가 출세한다면

그것 역시 “나 중심”이니 옳지 않습니다.

우리의 열정과 노력을

하나님 뜻에 맞춰 조율하는데 필요한 영감입니다.

 

3.

우리의 목표가 출세나 성공은 아닙니다.

 

우리는 매사에 예수님을 닮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원합니다.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살아간다면

무엇을 하든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최고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열정, 노력, 영감,

우리 삶을 향한 열정, 노력, 영감

허물어진 세상을 다시 세우려는 열정, 노력, 영감!

그 안에서 주의 뜻을 발견하고 최대치로 인생을 살기 원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의 삶이

깊어지고, 넓어지고 높아지길 원합니다.

 

우리 자신을 살피며

한 해를 뜻 깊게 마무리합시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들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로마서 12:1)

present your bodies as a living sacrifice, holy and acceptable to God,

which is your spiritual worship.(Rom 12:1)

 

하나님 아버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참빛 식구들의 삶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 12. 13이-메일 목회 서신)

값없이 은혜로

한 해를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많은 일을 할 줄 알았지만 지내고 나면 하나님께서 하셨고, 가족과 이웃들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서 감사가 저절로 나오고 사람들 앞에서 겸손할 수밖에 없는 연말입니다. 남은 한 달을 주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으로 근사하게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을 보내면서 우리 마음속에 촛불을 하나씩 밝히면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맞기 원합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가 당회(교인 총회)로 모이는 날입니다. 연말을 맞아서 출타하시는 성도님들이 많은 관계로 예년보다 조금 일찍 당회를 갖습니다. 올 한해 우리 교회도 안팎의 돕는 손길을 통해서 감사한 한 해를 보냈습니다. 조국의 소년 소녀 가장을 돕는 일을 계속할 수 있었고, 2년 연속 작은 사랑 나눔을 실천했습니다. 아직은 부족하고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우리 모두 한 마음으로 주님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앞으로도 기도와 말씀으로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고, 참빛 식구들께서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우리 교회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로마서 3장 말씀을 차례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떠난 세상은 어둠입니다. 창세기에서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거역하면서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하나님의 기준으로 의롭게 될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하나님께 나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속에 하나님을 모시지 않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죄요 죄인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없이 의로운 한 의,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의롭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고 은혜입니다. 본문 말씀대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데 예수님께서 대신 죄의 값을 치르시면서 우리를 죄로부터 풀어 주셨습니다.

 

“속량(redemption)”이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이것은 누군가 대신 값을 치르고 노예 상태나 감옥 등에서 풀어주는 것을 뜻하는 상업 용어입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사용하는 속량의 의미는 우리가 죄를 지었고 죄의 결과는 사망이기에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예수님께서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 돌아가시므로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죄와 사망에서 해방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은혜로 하나님과 화목되었고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은혜를 다시금 되새기기 원합니다. 우리의 모습을 깊이 돌아보면서 예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 넘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河-

크리스마스 트리

좋은 아침입니다.

 

1.

올해 마지막 달을 보내고 있습니다.

20년 전 한국에 있을 때를 회상하면

이맘때가 되면 캐럴이 거리에 울려 퍼지고

흰 눈도 내리면서 연말연시 기분이 났는데

미국은 땅이 넓어서인지 늘 비슷비슷한 일상입니다.

 

우리 교회도 12월 첫 주가 되면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는 것이 최고의 변화인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미국 가정의 80% 정도가

집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한답니다.

 

예전에는 거의 생나무 트리를 사용했지만

요즘은 인조 트리도 많이 사용합니다.

초기 비용은 비싸지만

매년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중국에서 수입한 플라스틱 제품이 대부분이어서

환경 문제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생나무를 훼손하면서

일 년에 한 달 트리를 세우는 것이 자연 훼손아니냐는 의문도 제기합니다.

 

생나무 트리를 지지하는 분들은

서부의 오레곤이나 동부의 노스캐롤라이나의 대형 트리 농장에서 재배된 것으로

트리를 뽑고 나면 다시 심는 식이고,

침엽수인 트리는 아무 곳이나 잘 자라서 쉬는 땅을 이용하는 이점이 있다고 반박합니다.

 

2.

트리 하나를 놓고도 이렇게 사람들의 견해가 갈리니

세상에서 화평케 하는 자로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요즘 살펴보는 로마서 3장 말씀대로

모든 사람이 각각 자기 생각을 갖고

본능적으로 자기중심의 삶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를 이어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비우고, 희생하시면서

화평케 하는 자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사역이 특별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많이 갈라져 있습니다.

추구하는 삶의 목표, 생각하는 관점,

세상을 보는 견해가 흑과 백처럼 갈라졌습니다.

화평케 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마음을 상실한 것입니다.

 

성탄을 기다리는 대강절을 보내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에 평화가 임하길 바랍니다.

 

자잘한 것에는 의견의 차이가 생겨도

크고 중요한 이슈에 마음을 합치는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말입니다.

 

인조 트리가 좋을까요? 생나무 트리가 좋을까요?

아이들과 함께 트리를 파는 야드에 가서 트리를 골라와서

장식하는 것을 생각하면 생나무가 좋을 겁니다. 향도 느낄 수 있구요^^

비용이나 재활용 측면에서는 인조도 괜찮겠지요.

선택은 각자의 몫입니다. 자잘한 이슈이기 때문입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로마 3:25)

God put forward as a propitiation by his blood, to be received by faith. (Rom 3:25)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는 세상에 평화를 주시고

창조주 하나님 안에서 하나를 이루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 12. 6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