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보는 교회 (3)

자신을 돌보는 것은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리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가 되는 것이 우리 자신을 돌보는 최종 목적입니다.

 

돌봄의 범위는 자신을 넘어서 공동체로 향해야 하는데 오늘 본문이 돌봄의 범위를 공동체까지 넓혀줍니다. 바울이 편지를 보내는 로마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제국의 수도였기에 교회도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찾아와서 예수님을 믿었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과 헬라 출신 교인들 간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때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에 비유합니다. 이것은 에베소서를 비롯한 바울서신에서 끊임없이 강조하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교회가 단지 건물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모임도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예수님께서 핏 값을 치르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행20:28).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들입니다. 팔과 다리와 같은 지체없이 온전한 몸을 이룰 수 없습니다. 각 지체가 몸에 분리되어도 안 됩니다. 지체가 몸을 구성하고 몸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도 지체인 성도들로 인해서 세워집니다.

 

12장 3절은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로 시작합니다. 바울의 편지는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은혜에 기초합니다. 바울이 로마 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지만, 이 말씀이 곧 하나님 말씀이 될 수 있는 근거입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 “각 사람”에게 권면합니다. 일일이 모든 성도에게 권면하는 것이니 바울의 권면에서 면제될 사람이 없습니다.

 

제국의 수도 로마에 세워진 교회였으니 자부심이 대단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은 서로 옳다고 팽팽하게 맞서는 경우도 많았을 것입니다. 공동체가 안고 있는 분열의 씨앗입니다. 바울은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것을 마음에 품지 말라고 합니다. “겸손”을 뜻합니다. 빌립보서 교회에 권면했듯이 자신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분량은 우리에게 믿음의 크고 적음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을 갖고 지혜롭게 처신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데 필요한 것이 은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각 성도에게 은혜를 나눠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은사는 예언, 섬김, 가르침, 위로, 구제, 다스림, 긍휼입니다. 성도들은 받은 은사를 갖고 각자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섬길 뿐입니다. 은사대로 섬긴다고 해서 한 가지 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 돌아보면서 사랑과 선행으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두루 섬겨야 합니다. 우리 안에 교회를 돌보는 기쁨이 충만하기 바랍니다. -河-

비판의 기술

좋은 아침입니다.

 

1.

작년 후반기 동안

주보의 <짧은 글 깊은 생각>에

본회퍼의 “나를 따르라”에서 발췌한 글을 소개했습니다.

올해는 “비판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매주 한 단락 씩 발췌해서 소개할 계획입니다.

 

주보를 성심껏 챙겨서 읽는 분들도 계시고

그냥 넘어가는 분들도 계시는 줄 압니다.

목사인 저는 우리 교인들의 신앙에 도움이 되는 것을

(요즘은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고 제가 잘하는 것 위주로) 제공하려고 합니다.

 

<비판의 기술>은

세인트루이스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심리학 교수로 재직 중인

테리 쿠퍼 (Terry Cooper)가 썼고 한국 IVP가 번역한 책입니다.

 

이 책에서는 비판과 비판주의를 구분합니다.

건전한 비판은 언제나 필요합니다.

하지만 비판을 일삼거나,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어떤 사람이나 그의 생각, 세상을 비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지적합니다.

 

마지막 장은

“열린 마음과 너그러운 가슴을 품은 ‘은혜 충만한’ 삶”이라는 제목으로

은혜의 공동체와 그 안에서 펼쳐지는

서로 돌보는 거리낌 없는 대화를 제시합니다.

 

앞으로 중요한 대목을 주보에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2.

비판의 기술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인간은

타인을 비판하는 데 익숙합니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고

서로 핑계를 댄 것도 일종의 비판입니다.

그러니 비판은 태생적인 것 같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비판하는 방식을 배운 적이 없어서

자기 나름대로의 잣대나, 방법을 사용하지만

꽤 주관적이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거나

공동체도 힘들게 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입을 꾹- 다물고 있어도

속으로 다 판단하고 비판하고 있으니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은 태도입니다.

 

3.

비판에 기술이 필요합니다.

비판하는 것도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앞으로 2-3주 살펴볼

로마서 12장 후반부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이 우리 안에 흘러 넘칠 때

우리 자신은 물론, 가족과 공동체, 넓게는 세상을

비판을 넘어서 은혜로 품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올해 우리 교회 표어인 “돌봄(긍휼)”과 만납니다.

 

멋진 비판은 언제나 환영이지만,

비판주의에 빠지지 않고

큰 바위 얼굴처럼 커다랗고 넓은 신앙의 그리스도인이 되기 원합니다.

 

긍휼이 전적으로 은혜의 선물 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긍휼을 우리 삶에서 얼마든지 계발하고 훈련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긍휼은 영적 훈련이다. (비판의 기술, 188)

 

하나님 아버지

올 한해 우리의 신앙은 물론

사고, 성품, 삶이 멋지게 자라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1. 17이-메일 목회 서신)

돌보는 교회 (2)

돌봄은 그리스도인에게 꼭 필요한 영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돌봄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가셔서 그들의 병을 고쳐 주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평범한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듯이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친히 돌봄의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 하나님은 위로자와 상담자이십니다.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와 세상을 돌보시는 보혜사가 되십니다. 이처럼 우리는 삼위 하나님으로부터 돌봄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께서 하나뿐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실 정도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구원하실 만큼,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실 만큼 귀합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알기 전에는 우리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을 부인했습니다. 혹은 자신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현재의 자신을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면 우리 자신이 다르게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자신을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나”를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된 자신을 돌보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2절은 기독교 교리(doctrine)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그리스도의 삶에 대한 말씀이 시작되는 서두입니다. 로마서 전체 문맥에 따르면 앞에서 사도 바울이 소개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요약한 표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응축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면 우리 위에 임한 하나님의 모든 긍휼과 사랑입니다. 12장 이하는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을 입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은 물론, 교회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돌보는 것은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를 돌보는 그리스도인의 최종 목표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제사는 이 세대를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에 순응(conform)하지 않고, 대신 변화를 받아서 (transform)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새롭게 된 온전한 변화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변화된 자신을 돌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기 돌봄은 단순한 순응이 아니라 완전한 변화를 지향합니다. 새롭게 된 자신이 하나님과 세상을 향해 떠나는 신앙 여정입니다. -河-

돌봄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연말부터 미국 정부의 모든 예산 집행이 닫혀있습니다(shut-down).

멕시코 국경에 담을 쌓겠다는 대통령과

그것은 재정의 낭비라는 의회의 대치 때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닙니다.

국경을 넘어온 사람 중에는

미국에 해를 끼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넘어올 정도라면 보통 사람들이 아니니 위험요소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넓고 긴 국경에 벽을 쌓는다고 밀입국하는 사람들을 막을 수 없습니다.

국경을 넘는 사람들이 모두 나쁜 사람들도 아닙니다.

무엇보다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면, 국경을 넘은 애절한 사연이 깃들어 있습니다.

세계 최강국이라고 자부하는 미국이 감당해야 할 몫일 수 있습니다.

미국이 돌봐야 할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돌봄에는 부작용도 있고, 희생도 따르고

예상치 못한 일들이 발생합니다.

그런데도 그 일을 감당하는 것이 돌봄입니다.

 

2.

헨리 나우웬은 <돌봄의 영성>에서 다음과 같이 알려줍니다.

 

우리는 이웃을 돌보는 사람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이다.

이 정체성을 주장할수록 점점 더 깨닫는 사실이 있다.

사랑의 창조주가 인간 가족의 모든 구성원을 조건 없이 귀히 여기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제시하려는 관점은 예수님의 이 말씀에 기초한 것이다.

“너희 아버지가 긍휼히 여기시는 것 같이 너희도 긍휼히 여기라”(눅6:36)

 

나는 긍휼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서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자란다고 굳게 믿는다.

이것은 가볍게 하는 말이 아니다. 경청, 심방, 독서, 글쓰기 등을 통해

오랜 세월 다른 사람들을 섬긴 끝에 나온 결론이다.

그동안 나는 숱한 경험에 동참해야 했고, 그중에는 고통스러운 일도 많았다.

 

돌보는 사역을 그만두고 더 쉬운 일을 해볼까 생각한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유혹에 부딪힐 때마다 깨달은 게 있다.

쉬운 일을 욕망할 때마다 예수님을 따라 살기로 한

내 헌신의 가치를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돌봄의 영성, 46-47쪽)

3.

헨리 나우웬의 고백대로

돌봄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기초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할 일입니다.

 

우리는 올 한해 <돌보는 교회>라는 주제로 살게 됩니다.

돌봄을 받으려고 하면 돌볼 수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충분히 돌봄을 받았으니

예수님께서 값 주고 사신 우리 자신부터 시작해서

가정과 교회와 이웃, 그리고 세상을 돌보기 원합니다.

 

돌볼 수 있는 믿음, 마음, 손과 발과 능력이 있음에 감사하면서…

 

너희 아버지가 긍휼히 여기시는 것 같이 너희도 긍휼히 여기라.(눅6:36)

Be merciful, even as your Father is merciful. (Luke 6:36)

 

하나님 아버지

돌봄을 받고 돌봄을 기대하기보다

돌보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1. 10이-메일 목회 서신)

돌보는 교회 (1)

올해 우리 교회 표어는 <돌보는 교회>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돌봄이 필요합니다. 홀로서기라는 표현은 근사하지만, 실제로 홀로 설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하나님께서도 아담이 고군분투하는 것이 안타까우셔서 그에게 동역자 이브를 주시면서 에덴 동산를 가족 공동체로 만드셨습니다. 이브가 있기 전에 하나님은 아담과 교제하셨는데도 이브를 만드신 것을 보면 홀로서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돌봄을 받기만 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자라가면서 돌봄을 받기보다 돌보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돌봐야 할 영역을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습니다. 우선, 돌봄이라고 했을 때 지나치기 쉬운 것이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 자신도 돌봄의 영역입니다. 가정을 비롯한 공동체를 돌봐야 합니다. 가정이나 우리가 속한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이브를 주신 것과 같은 신앙과 인생의 동지입니다. 이웃도 돌봐야 합니다. 우리의 돌봄이 자신과 가정 또는 공동체에 그친다면,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과 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을 돌봐야 합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차례로 살펴볼 주제입니다.

 

오늘은 자신을 돌보는 신앙을 나누겠습니다. 기독교 신앙하면 자기희생을 떠올립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눅14:27)라는 예수님 말씀이나 자신을 쳐서 복종시킨다는 바울의 고백(고전9:27)이 때때로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부인하라고 하신 것은 신앙이나 인생이 자기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돌봄만 받으려는 이기적인 신앙입니다. 바울은 실제로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하면서 복음이 전파되길 원했습니다. 바울의 특별한 소명이며 열정입니다. 무심코 따라 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을 돌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웃사랑을 명령하실 때도 “네 몸과 같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몸만 챙기는 본능을 지적하신 말씀이기보다 우리 자신을 돌보는 것을 전제로 이웃 사랑을 부탁하신 것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자신을 돌보는 것은 첫째로 육신을 돌보는 것입니다. 건강한 육체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육신이 건강해야 인생은 물론 신앙생활에도 열심을 낼 수 있습니다. 둘째는 마음입니다.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마음이 흔들리거나 어두워지거나 뚝-떨어지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삶 속에 계신 성령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오늘 본문에서 “몸”이라고 불렀고 육신을 포함한 삶 전체를 뜻합니다.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것이 자기 돌봄의 목표입니다. 올 한해 우리 몸을 멋지게 돌봄으로 삶 전체가 하나님께 기쁨이 되기 원합니다.-河-

마음

좋은 아침입니다.

 

1.

새해에 보내는 첫 번째 목요서신입니다.

올해도 서신을 함께 나누면서

신앙과 삶이 함께 가고,

우리 자신은 물론 이웃과 세상을 주님의 마음으로 바라보기 원합니다.

저로서는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늘 감사하답니다.^^

 

엊그제 한국일보 샌프란시스코 판에

감동적인 미담(美談)이 실렸습니다.

 

40년 전 각각 미국에 입양이 되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각자의 건강정보를 위해서

DNA 테스트를 했고 DNA가 일치하는 자매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두 자매는

조지아주에서 불과 40분 거리에서 10년동안 살고 있었습니다.

 

두 자매는 생후 5개월과 18개월이 되었을 때 미국으로 입양되었습니다.

생모가 공장에서 일하던 미혼모였는데 양육을 포기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입양한 가정에서 잘 자라서

신기하게도 자매 모두 프리스쿨 교사가 되었습니다.

 

40년 만에 만난 두 자매는 가족들의 축하를 받았고

서로 지난 얘기를 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낸 후에

어쩌면 생전에 계실 생모를 찾을 계획을 세웠다고 했습니다.

 

의기투합해서 파티 관련 사업도 시작했답니다.

불혹이 넘어서 재회한 자매가

둘이 있어서 그들의 인생이 더욱 행복하길 기사를 읽으며 기도했습니다.

 

신문 보도에 의하면,

1970-80년대에 미국으로 보내진 입양아가 11만 명이 넘는다니 엄청난 숫자입니다.

기사에 나온 자매들처럼 함께 입양된 형제자매들끼리도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습니다.

 

2.

인생에서 만남만큼 귀한 것도 없습니다.

만남 속에는 헤어짐이 숨겨져 있다지만

헤어짐도 만남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것도

예수님과 만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가족은 운명적인 만남입니다.

우리 교회에서의 신앙생활도 만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웃과의 만남은 물론 우리는 올 한해 누군가를 계속 만나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인생은 만남의 연속입니다.

 

정기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가지실 것도 부탁드립니다.

 

저는 아침에 보내드리는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과 만나겠습니다.

일주일마다 목요서신을 통한 만남도 기대합니다.

 

올 한해 참빛 식구들에게 만남의 복이 임하길 기도합니다.

우리 아이들도 좋은 선생님, 좋은 친구들을 만나길 기도합니다.

세상에서 좋은 동료를 만나고, 조력자들을 만나길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기대하시는 만남도 꼭 이뤄지길 바랍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 아름다운 만남, 신앙의 동역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 8:17)

I love those who love me,

and those who seek me diligently find me.(Prov 8:17)

 

하나님 아버지

세상에서 참빛 식구들의 모든 만남을 예비하시고

주님께서 참빛 식구들을 순간순간 만나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1. 3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