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연말부터 미국 정부의 모든 예산 집행이 닫혀있습니다(shut-down).

멕시코 국경에 담을 쌓겠다는 대통령과

그것은 재정의 낭비라는 의회의 대치 때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닙니다.

국경을 넘어온 사람 중에는

미국에 해를 끼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넘어올 정도라면 보통 사람들이 아니니 위험요소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넓고 긴 국경에 벽을 쌓는다고 밀입국하는 사람들을 막을 수 없습니다.

국경을 넘는 사람들이 모두 나쁜 사람들도 아닙니다.

무엇보다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면, 국경을 넘은 애절한 사연이 깃들어 있습니다.

세계 최강국이라고 자부하는 미국이 감당해야 할 몫일 수 있습니다.

미국이 돌봐야 할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돌봄에는 부작용도 있고, 희생도 따르고

예상치 못한 일들이 발생합니다.

그런데도 그 일을 감당하는 것이 돌봄입니다.

 

2.

헨리 나우웬은 <돌봄의 영성>에서 다음과 같이 알려줍니다.

 

우리는 이웃을 돌보는 사람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이다.

이 정체성을 주장할수록 점점 더 깨닫는 사실이 있다.

사랑의 창조주가 인간 가족의 모든 구성원을 조건 없이 귀히 여기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제시하려는 관점은 예수님의 이 말씀에 기초한 것이다.

“너희 아버지가 긍휼히 여기시는 것 같이 너희도 긍휼히 여기라”(눅6:36)

 

나는 긍휼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서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자란다고 굳게 믿는다.

이것은 가볍게 하는 말이 아니다. 경청, 심방, 독서, 글쓰기 등을 통해

오랜 세월 다른 사람들을 섬긴 끝에 나온 결론이다.

그동안 나는 숱한 경험에 동참해야 했고, 그중에는 고통스러운 일도 많았다.

 

돌보는 사역을 그만두고 더 쉬운 일을 해볼까 생각한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유혹에 부딪힐 때마다 깨달은 게 있다.

쉬운 일을 욕망할 때마다 예수님을 따라 살기로 한

내 헌신의 가치를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돌봄의 영성, 46-47쪽)

3.

헨리 나우웬의 고백대로

돌봄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기초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할 일입니다.

 

우리는 올 한해 <돌보는 교회>라는 주제로 살게 됩니다.

돌봄을 받으려고 하면 돌볼 수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충분히 돌봄을 받았으니

예수님께서 값 주고 사신 우리 자신부터 시작해서

가정과 교회와 이웃, 그리고 세상을 돌보기 원합니다.

 

돌볼 수 있는 믿음, 마음, 손과 발과 능력이 있음에 감사하면서…

 

너희 아버지가 긍휼히 여기시는 것 같이 너희도 긍휼히 여기라.(눅6:36)

Be merciful, even as your Father is merciful. (Luke 6:36)

 

하나님 아버지

돌봄을 받고 돌봄을 기대하기보다

돌보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1. 10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