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일상 속의 체험

처음이 좋아도 끝이 흐지부지하면 그동안의 모든 과정이 수포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성경에서 신앙을 달리기에 비유하는 것도 중간에 열심히 달려서 마지막 결승점에 도착하지 않으면 상을 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상은 그만두고 결승점을 통과해야 기록이 남습니다.

 

이스라엘의 첫째 왕 사울은 키가 보통 사람보다 어깨만큼 컸던 그의 체격에도 불구하고 매우 겸손했습니다. 왕으로 제비 뽑히자 그의 체격에 어울리지 않게 수레바퀴 뒤에 숨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왕이 된 후에 자리가 잡히고 전쟁에서 승승장구하면서 교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선지자가 해야 할 일을 자신이 했습니다. 아말렉을 칠 때, 모든 것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좋은 것을 숨겨놓고 하나님께 제물로 드릴 생각이었다고 거짓말까지 했습니다. 어쩌면 사소한 일인데,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중심이 하나님을 떠난 것을 알았습니다.

 

급기야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십니다. 사울의 교만이 하늘을 찌르니 그를 기름 부었던 사무엘 선지자는 죽을 때까지 사울을 보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시고 다윗을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으로 기름 부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 왕은 다윗입니다. 그 다윗이 지금 전쟁터에 온 것입니다. 다윗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에 대해서 분노합니다. 40일 동안 골리앗을 향해서 힘 한번 쓰지 못하고 출동과 후퇴만 반복하는 사울과 이스라엘 군대에 대해서도 분노했습니다. 다윗이 사울 앞에 불려갑니다. 베들레헴 목동 다윗을 본 사울 역시 그가 골리앗을 이길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골리앗과 맞서 싸울 사람이 없으니 다윗을 예사롭게 넘길 수도 없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양을 칠 때 경험했던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자신이 사자와 곰을 쳐서 이겼으니 할례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도 쉽게 이길 것이랍니다. 짐승들로부터 자신의 양을 구한 것처럼 골리앗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다윗이 다시 한번 “살아계신 하나님”을 언급합니다(36절).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자신을 구해주신 하나님께서 골리앗으로부터 건져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다윗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그에게는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체험이 있었고,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말도 되지 않지만 그 경험을 골리앗과 싸움에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체험이 하나님을 향한 고백으로 이어졌고 골리앗을 마주할 용기를 주었습니다.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윗을 통해서 배웁니다.-河-

성령의 바람

지난 화요일 새벽,

교회에 도착하니 낙엽이 타는 듯한 냄새가 났습니다.

 

처음에는 기온이 떨어지면서

이웃집에서 벽난로를 때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나파 밸리의 산불 냄새였습니다.

냄새는 물론 재가 날아왔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지난 주일 저녁,

나파와 산타로사 지역에서

동시다발로 산불이 발생했습니다.

 

생명을 잃거나 아직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분들부터

집이며 재산이 모두 불에 타서 없어진 분들까지

산불의 화염이 핥고 간 자취가 너무 큽니다.

 

이번 산불은

“디아블로 윈드(diablo wind)”로 불리는

내륙에서 불어온 바람을 타고 거침없이 번졌습니다.

 

디아블로 윈드는

봄철과 가을에 부는 폭풍 바람으로

특히 건조한 가을에 치명적인 산불을 일으킵니다.

그 위력이 대단해서 “악마 바람”이라고 이름을 붙였답니다.

 

시속 80마일에 육박하는 바람과 함께

불길이 쏜살같이 번지는 위력을 갖고 있으니

가히 악마라고 불릴 만합니다.

 

불에 타서 황폐하게 된 산타로사 시가지의

전과 후(before and after)의 사진을 보니

앞으로 복구하고 완전하게 회복하는데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습니다.

 

2.

지난 주일 밤에는 라스베이거스의 총격 사건이 일어나더니

이번 주일에는 우리 동네에서 큰 산불이 일어났습니다.

정말 이곳저곳에서 악마의 바람이 부는 듯합니다.

 

예전에 자주 부르던

<부흥>이라는 복음 성가가 생각납니다.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하늘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우리의 죄악 용서하소서 이 땅 고쳐 주소서

이제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이 땅의 무너진 기초를 다시 쌓을 때
우리의 우상들을 태우실 성령의 불 임하소서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진리의 말씀 이 땅 새롭게 하소서
은혜의 강물 흐르게 하소서

성령의 바람 이제 불어와
오~ 주의 영광 가득한 새날 주소서
오~ 주-님 나라 이 땅에 임하소서.

 

우리가 사는 세상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길 기대합니다.

예상치 않았던 사고와 재난으로

망연자실한 분들께 위로와 능력의 바람이 불길 원합니다.

 

주의 영광 가득한 새날이 속히 오고

주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회복하여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시80:7)

Restore us, O God of hosts; let your face shine, that we may be saved! (Psalms 80:7)

 

하나님 아버지,

어그러지고 부서진 세상에

성령의 바람이 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10.12이-메일 목회 서신)

골리앗 앞에서: 분노

다윗과 골리앗에 대한 말씀은 웬만한 사람이면 모두 알고 있습니다. 말씀이 흥미진진하기에 말씀 속에 쉽게 빠져들고 자기도 모르게 다윗이 되어서 앞에 마주 선 골리앗을 대항하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골리앗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지난 세 시간에 걸쳐서 우리 앞에 닥친 크고 작은 골리앗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특별히 “두려움”과 “주춤거림”이라는 골리앗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두려움은 골리앗이라는 무시무시한 존재로부터 찾아옵니다. 우리를 가로막는 골리앗은 언제나 두렵습니다.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폭풍 속에서도 의심하지 않고 예수님을 바라보는 신뢰라고 했습니다. 삶은 두려움의 연속입니다. 안팎에서 두려움이 밀려올 때, 하나님을 향한 확실한 믿음으로 크고 작은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이 골리앗으로부터 생긴 것이라면, 지난 시간에 살펴본 주춤거림은 우리 스스로 불러온 문제입니다. 골리앗은 40일 동안 아침저녁으로 나타나서 겁을 주었지만, 실제로 이스라엘 군대를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군대 역시 전쟁터에 나갔다가 후퇴하기를 반복할 뿐 골리앗을 무너뜨리기 위한 구체적인 시도를 하지 않고 상황에 길들여졌습니다. 서로 미루며 합리화하고, 방심하면서 주춤거리는 것은 골리앗을 무너뜨리는 올바른 태도가 아님을 배웠습니다. 이 밖에도 우리가 마주하는 골리앗은 수없이 많을 것입니다. 어떤 모습으로 골리앗이 우리 앞을 막더라도 당연히 무너뜨려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주제는 “분노”입니다. 전쟁터에 나온 다윗은 분노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군대가 골리앗 앞에서 쩔쩔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다윗에게 골리앗은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삼상17:26)에 불과합니다. 그의 입에서 하나님을 모욕하는 말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반면에, 골리앗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분노하는 다윗을 본 다윗의 큰형 엘리압은 다윗을 향해서 화를 냈습니다. 아버지 집에 가서 양이나 치라는 식입니다. 골리앗을 향해서 분노해야 할 형들은 다윗에게 화를 냈습니다. 그릇된 분노였습니다. 하나님을 모욕하고 하나님 백성을 무시하는 골리앗 앞에서 형들은 물론 이스라엘 군대가 다윗처럼 분노해야 했습니다.

 

다윗의 분노가 엘라 골짜기의 판세를 바꿔 놓았습니다. 베들레헴 목동 다윗이 갖고 있던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분노였고 용기였습니다. 우리 역시 다윗의 형들이 보여준 그릇된 분노가 아니라, 다윗이 갖고 있던 의로운 분노로 세상과 삶을 변화시키고 주의 이름을 세상에 전하기 원합니다.  -河-

하나님의 형상

1.

지난 주일 저녁,

10월의 첫째 주간을 맞이하기 위해서

하루를 마감하던 우리에게 끔찍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11시부터 속보가 뜨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만 해도 라스베이거스에 총격 사건이 있었고

현장을 연결해서 목격자들의 얘기를 듣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엄청난 일이 발생했습니다.

미국의 최근 역사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총격 사건이었습니다.

 

게다가 범인이

멀쩡한 60대의 은퇴자라는 사실에

우리는 또 한 번 놀랐고 아연실색했습니다.

 

계속되는 보도를 보면서

총격을 가한 범인이 그동안 사들인 총기의 숫자,

도박장 출입, 동거녀의 정체,

도피할 것을 계획했으며, 공모의 가능성까지

정확한 범행동기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뉴스를 접할 때마다 설레설레 고개를 졌게 됩니다.

 

이번처럼 불특정 다수를 향한 총격까지 왔으니

이제는 정부나 정치권이 나서서 최고 우선순위를 두고

무엇보다 총기를 규제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미국 총기협회의 로비가 강하다고 해도

무고한 희생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길 바라고

희생자 유가족들과 부상 중인 분들의 위로와 회복을 기도합니다.

 

2.

저는 이번 사건을 보면서

다시 한번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자기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모든 사람에게 새겨져 있습니다.

 

지위고하, 남녀노소, 인종 등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이 존귀하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무차별 총격은 물론

생명을 담보로 하는 범죄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을 향한 폭행과 폭언 등은

결국 하나님을 향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60명에 가까운 분들이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통탄할 일입니다. 하나님의 몸과 마음도 무척 아프실 것입니다.

 

범죄를 저지른 분이

모든 이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있음을 알았어도 그렇게 했을까요!

만약에 그렇다면

분노한 시민의 말대로 그분은 죽어서 정말 나쁜 곳에 가야 할 것입니다.

 

3.

세상이 혼란스럽습니다.

험한 일이 자꾸 일어납니다.

우리가 사는 미국에서 일어난 사건이기에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모든 사람의 양심에, 생각과 삶 속에 되살아나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답게 생각하고 행동하기 원합니다.

이웃을 하나님처럼 대우하고 사랑하기 원합니다.

 

세상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1:27)

So God created man in his own image, in the image of God he created him;

male and female he created them.(Gen 1:27)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는 세상에 평화를 주옵소서.

주님을 두려워하는 세상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10.5이-메일 목회 서신)

골리앗 앞에서: 주춤거림

지난 반년 동안 수요예배에서는 예레미야서를 공부했습니다. 구약의 예언서를 읽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상이 반복해서 나오고, 그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가 등장하니 읽는 우리도 위축되곤합니다. 그래도 구약의 예언서는 꼭 읽고 넘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에게 우리의 모습을 대입해 보면서 신앙을 바로잡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야했는지 깨닫게 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더 깊이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서 절반을 남겨둔 채, 지난 수요일부터 마가복음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마가복음은 복음서 가운데 가장 짧고, 내용이 빠르게 전개되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예수님을 깊이 느낄 수 있는 말씀입니다. 앞으로 16주 동안 계속될 마가복음 읽기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수요 예배에 오시지 못해도 목요서신과 안내석의 성경공부 핸드 아웃을 통해서 함께 마가복음을 읽으시길 부탁드립니다.

지난 주에는 우리 앞을 가로막는 두려움이라는 골리앗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안팎에 크고 작은 두려움이 매순간 밀려오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 폭풍 속에서도 예수님께 시선을 떼지않는 믿음을 갖고 골리앗과 같은 두려움을 넘어뜨릴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오늘 살펴볼 골리앗은 “주춤거림”입니다. 블레셋 장수 골리앗이 엘라 골짜기에 등장했을 때, 사울 왕을 비롯한 이스라엘 군대들은 자기 자리에 앉아서 수군거리고, 절망하고, 할 수 없다는 비관론에 사로잡혔습니다.

골리앗이 워낙 크고 강했으니 처음에 그를 보고 두려워한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골리앗이 40일 동안 아침과 저녁으로 나와서 이스라엘을 모욕하고 겁을 주었을 뿐, 실제로 이스라엘을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말로만 으름장을 놓은 것입니다. 그러는 중에 이스라엘 진영에도 은근히 안심하는 분위기가 생겼을 것입니다. 분명 골리앗이라는 엄청난 장수가 존재하고 블레셋에 지면 나라의 운명이 위험 한데도, 블레셋의 공격이 지연되면서 현실에 안주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렇게 40일이 지나면서. 아침과 저녁에 들리는 골리앗의 선전포고에 익숙해 졌습니다. 별일 없을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이 들고 병사들의 사기도 떨어졌습니다.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마음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주춤거림이 있습니다. 내일로 미루고, 해결하지 않은 채 지내는 주춤거림입니다. 당장 어려움이 닥치지 않으니 앞으로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편안한 현실에 안주하는 모습일 수 있습니다. 주춤거리지 말고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주춤거림도 반드시 무너뜨려야 할 골리앗임에 틀림없습니다. -河-

일각천금(一刻千金)

고사성어 일각천금(一刻千金)은 중국 송나라의 시인 소동파의 “춘야(春夜,봄밤)”라는 시에 등장합니다. 겨우내 꽁꽁 얼어붙었던 날씨가 풀리더니 온 세상에 꽃들이 만발했습니다. 사람들은 여유로운 봄날에 함께 모여서 거문고를 타며 한판 흥겨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밤이 되자 모두 집으로 돌아간 정자에 시인은 홀로 남아서 여유롭고 한가로운 봄밤의 정취를 노래합니다. 잠깐 지나가는 봄입니다. 봄꽃도 금방 지고, 정자에 모여서 함께 놀던 친구들도 시간이 지나면 떠날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귀한 봄날입니다. 이처럼 소동파의 시 춘야는 낮의 흥겨움과 봄밤의 고요함을 비교하면서 잠깐 지나가는 봄날을 추억하고 있습니다.

 

일각은 15분 정도의 짧은 시간입니다. “일각천금”은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천금과 같다는 뜻입니다. “시간은 금”이라는 서양 속담과 맥을 같이 합니다. 스쳐 지나가듯이 지나갈 한 해의 봄을 마음껏 즐기자는 권면입니다. 단 15분이라도 허비하지 말고 천금처럼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라는 교훈입니다.

 

아내와 함께 동네를 산책하다 보니, 아기 손 같은 새잎이 가지마다 돋아나던 봄철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낙엽이 길가에 뒹굴고 있습니다. 아직은 여전히 젊지만, 50대 중반이 되니 시간이 제법 빠르게 지나갑니다. 제 마음은 여전히 춘삼월 봄철에 있는데 벌써 9월이 다 지나고 올해도 석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습니다. 주일을 맞고 중간에 수요 예배를 마치면 한 주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그렇게 한 주 한 주 살다 보면 한 달이 금세 지나가서 달력을 또 한 장 넘깁니다. 앞으로 남은 석 달도 순식간에 지날 것 같습니다. 소동파의 “일각천금”이 생각납니다. 15분밖에 되지 않는 시간도 천금과 같으니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을 알차게 사용해야 합니다. 아니 15분의 시간을 천금의 가치로 만들어야 합니다.

 

신약성경에서는 두 가지 헬라어를 통해서 시간을 설명합니다. 우선, 흘러가는 시간인 크로노스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크로노스의 시간을 삽니다.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시간입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살아가는 시간입니다. 반면에 사건 중심의 시간으로 카이로스가 있습니다. 크로노스가 아침을 맞고 저녁이 되면서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과 한 달 그리고 한 해가 지나가는 식이라면, 카이로스는 각자가 의미 있게 꾸며가는 시간입니다. 단지 주어진 시간이 아닙니다.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사건들로 가득 채워진 창조적 현재입니다. 시간을 부여하신 창조주 하나님과 동행하는 은혜의 시간입니다.

 

아무리 무병장수를 해도 삶 속에 카이로스적인 사건이 부족하다면, 구약성경 전도서 기자가 한탄하듯이 헛되고 헛된 인생입니다. 비록 짧은 인생을 살아도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세상 속에서 의미 있는 사건이 넘쳐난다면, 카이로스의 시간대를 살아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크로노스의 흘러감이 아니라 카이로스의 의미 있는 추억과 사건들로 채워지길 원합니다.

 

신약성경의 시간대가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로 나누어 진다면,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때”가 중요합니다. “그 날” “주의 날” 등으로 불리는 하나님의 때는 구원과 심판이 갈리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 거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룬 주의 백성들에게는 은혜의 때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주와 함께 걷는 길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걸으면서 깨알같은 간증과 고백들이 넘쳐나는 시간입니다.

 

반면에, 구약의 예언자들이 경고하듯이 주님의 길에서 벗어나서 우상을 섬기고, 거짓되고 자기 잇속만 챙기며,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무시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때는 심판입니다. 그 날이 되면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임하고 하나님의 때가 재앙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갑니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을 돌이킬 수도 없습니다. 소동파의 말대로 15분이 천금과 같습니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의미로 가득 찬 카이로스와 하나님의 때를 살면서 주의 은혜와 구원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일각(一刻)에 비하면 앞으로 남은 석 달은 꽤 많은 시간입니다. 하루하루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사건들로 이어지며,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후회없이 이웃을 사랑하는 넉넉함을 소유하기 원합니다. (2017년 9월 28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용기 2

좋은 아침입니다

 

엊그제

자신의 이름을 딴 청소기(Dyson)로 유명한

영국의 발명가이자 사업가인 James Dyson은

2020년까지 전기차를 세상에 내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미 2015년부터 400여 명의 직원들과

배터리로 작동하는 전기차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며

앞으로 2조 달러 이상을 투자해서

깜짝 놀랄만한 전기 자동차를 발명하겠답니다.

 

그는 엔지니어이자 사업가에 앞서서 발명가였습니다.

쓰레기 백(bag)을 사용하는 진공청소기가 쉽게 막히고 고장 나는 것에 불편을 느끼던 중

제재소를 방문해서 나무에서 나오는 톱밥을 깨끗하게 빨아들이는

원심력 흡입기를 보고는 그 기술을 소형 청소기에 도입했습니다.

 

또한, 그는 디젤엔진에서 나오는 찌꺼기들을 완전 연소시키는 기술에 관심을 보였고

그것을 통해서 대기 오염을 막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가

특별한 배터리를 사용하는 전기차 시장에 뛰어든 것입니다.

 

혹자는 그의 진공청소기 기술이

기껏해야 헤어드라이어 정도로 확장되었는데

전기 자동차를 발명한다는 것에 회의적입니다.

 

하지만, 이미 앞서서 성공한 테슬라도 있고

다이슨이 갖고 있는 기술과 잠재력을 볼 때

그가 내놓을 혁신적인 전기 자동차를 내심 기대하는 분위기입니다.

 

우리나라 현대를 비롯한 자동차의 거장들이

너도나도 전기 자동차에 뛰어들고 있는 가운데

2020년대는 자동차 산업의 혁명이 이뤄질 것 같습니다.

 

2.

세상은 용기 있는 사람들로 인해서 발전해 왔습니다.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아이디어 하나 갖고 시작하는 사람들,

앞에 있는 골리앗을 향해서 질주하는 사람들,

자기 혼자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고

인류의 문제를 풀어보려는 사람들.

그런데 이들의 용기는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

 

올해 70세인 Dyson만 해도

1970년부터 원심력을 사용한 공기 흡입기를 연구했습니다.

한때는 미술 선생님이었던 아내가 가계를 책임졌고

그의 발명품을 받아주는 회사가 없어서 여기저기 구걸을 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길에 대한 확신과 신념을 갖고

발명가, 사업가의 길을 걸어서 청소기 업체의 거장이 되더니

전기 자동차 산업에 뛰어든 것입니다.

앞으로 Dyson의 용기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지켜보는 것만도 흥미진진합니다.

 

3.

골리앗을 무너뜨린 다윗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모두 골리앗을 두려워하고 있을 때,

다윗은 담대하게 골리앗을 마주했습니다.

 

그의 입에서만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나왔습니다.

전쟁에 나간 이스라엘 군대 가운데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고백입니다.

발상의 전환입니다. 골리앗을 대면하는 용기입니다.

 

다윗의 용기도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양들을 공격하는 야생동물로부터

양을 보호하던 경험에서 우러나온 용기였습니다.

다윗은 일찍이 삶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지럽습니다.

개인의 삶도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믿음에서 우러나온 용기를 갖고 세상을 살기 원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걸어온 삶과

지금 현재 갖고 있는 자산들이

앞길을 열어가는 데 꼭 사용되고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시편31:24)

Be strong, and let your heart take courage,

all you who wait for the LORD! (Psalms 31:24)

 

 

하나님 아버지,

주님 주시는 용기로 세상을 살아가고

세상을 이끄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9.28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