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와 패자

좋은 아침입니다

1

평창에서 올림픽이 열리고 있지만

미국에서 올림픽을 즐기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 선수들이 참가하는 종목과

미국 선수가 잘하는 종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젯밤에는 올림픽이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NBC를 클릭했다가

미국과 캐나다의 여자 아이스하키 결승전을

연장전(OT)부터 생중계로 시청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는 여자 아이스하키에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강자들이랍니다.

월드컵에서는 여덟 번 싸워서 일곱 번 미국이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올림픽에서는 1998년 이후

네 번 연속 캐나다가 미국을 꺽고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4년 전 러시아 소치 올림픽에서는

미국이 줄곧 이기고 있다가 막판에 동점 골을 내주고

연장전에서 캐나다에 패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강릉에서 또다시 두 팀이 맞붙은 것입니다.

이번에는 캐나다가2-1로 이기고 있다가 막판에 동점골을 내주고

4년 전과 마찬가지로 연장전에 돌입했습니다.

 

아이스하키 규칙을 잘 모르는데,

연장전에서는 골키퍼를 제외하고 양 팀 네 명씩 경기했습니다.

쉽게 골을 넣을 것 같았지만, 이미 지쳐버린 체력에

골키퍼들의 선방으로 연장전도 무승부로 끝났습니다.

 

덕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이스하키의 “슛아웃/shootout”을 보게 되었습니다.

축구의 승부차기처럼 양 팀에서 다섯 선수가 번갈아 나서서

중앙선부터 퍽을 몰고 가서 골키퍼를 피해서 골을 넣는 방식입니다.

 

막상막하여서 다섯 선수 가운데 양 팀 모두 두 선수만 골을 넣고,

가장 잘하는 선수들이 다시 나와서 번갈아 슛아웃을 시도합니다.

 

미국 선수가 능숙하게 골키퍼를 속이고 골을 넣었습니다.

상대편 캐나다 선수는 세계에서 가장 골을 잘 넣는 탁월한 선수였는데

그만 골키퍼에게 막히고 말았습니다.

축구로 치면 메시가 승부킥을 실축한 것과 같은 겁니다.

 

미국팀은 얼싸안고 20년만의 승리를 자축했습니다.

캐나다 선수들은 자리를 뜨지 못한 채 눈물을 흘렸습니다.

운동장에서는 승리의 눈물을, 덕아웃에서는 아쉬움의 눈물을 흘립니다.

승자와 패자가 그렇게 갈렸습니다.

 

2.

스포츠에서

영원한 승자가 없다는 말이 실감났습니다.

 

그런데 어디 스포츠만 그럴까요?

우리 인생에서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습니다.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인생길을 걸어갑니다.

 

이것을 알기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승리했다고 교만할 것도 아니고

패배했다고 기죽을 일도 아닙니다.

묵묵히 그리고 여전히 성실하게 주어진 인생길을 걸어갈 뿐입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분복(分福, portion)을 지금/여기서 누리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고,

뚜벅뚜벅 신앙과 인생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어제 경기를 생각하니

마지막 골을 실수한 캐나다 선수가 마음에 걸립니다.

그 중요한 경기에서 실수했으니, 마음이 얼마나 힘들까요!

어제 했던 실수가 평생 생각날 것 같습니다.

어제 일을 인생 교훈으로 삼고 훌훌 털고

또다시 얼음판으로 나오길 바랍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할 때가 있으며 (전도서 3:4-5)

a time to weep, and a time to laugh; a time to mourn, and a time to dance;

a time to cast away stones, and a time to gather stones together;

a time to embrace, and a time to refrain from embracing;(Ecclesiastes 3:4-5)

 

하나님 아버지,

승리와 패배, 성공과 실패,

크고 작은 것, 높고 낮은 것과 같은

세상의 기준을 뛰어넘는 신앙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2.22이-메일 목회 서신)

언제까지니까

발런타인데이 학교에 간 딸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부모는 경찰에 신고하고 이리저리 딸을 찾아다녔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예쁜 딸이 범인의 총에 목숨을 잃었다는 비보를 듣습니다. 플로리다의 한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총격 사고로 목숨을 잃은 예쁘고 인기가 많았던 제이미에 대한 사연입니다. 제이미가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은 친지들은 그녀의 페이스북에 끝없는 추모의 글을 올리며 제이미가 세상에 없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슬퍼했습니다. 부모님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지난주, 플로리다주 파크랜드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백인 우월주의자로 밝혀진 열아홉 살 청년이 반자동 연발 소총을 발사해서 열일곱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가 사용한 AR-15 소총은 베트남전에서 미군이 사용하던 것으로 “죽음의 기계”라고 불리던 무기입니다. 한 번에 열 발 이상을 발사할 수 있어서 코네티컷의 뉴타운 초등학교, 캘리포니아의 샌버나디노, 라스베이거스 총격 사건에 사용되었고 많은 사상자를 냈습니다.

 

플로리다 고등학교에서 총격 사건이 있던 날,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스티브 커 코치는 다음과 같은 인터뷰를 했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총에 맞아 희생당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가 봅니다. 콘서트가 열리는 곳과 영화관에서 총을 쏴도 상관이 없나 봅니다. 양심이 있다면 그렇게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나서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미국 총기 협회로부터 정치자금을 받는 의원들을 국회로 보내면 안 됩니다. 수백억 달러를 들여서 멕시코 국경에 담을 쌓는 어리석은 일을 멈추고 우리 아이들의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서 반자동 소총을 규제하는 일을 하라고 소리쳐야 합니다.” 다소 긴 인터뷰를 제가 요약했습니다. 스티브 커의 인터뷰를 실은 칼럼에서는 스포츠인들은 물론 유명인들이 나서서 정치권을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편, 총기협회는 물론 총기 규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총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문제라고 거듭 주장합니다. 총기사고를 일으키는 사람들에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고, 총기 사용을 억제 또는 금지하는 것은 자위권에 대한 헌법 위반이라는 것입니다. 총기규제를 반대하고 미국 총기 협회로부터 정치자금을 받는 정치인들의 일관된 태도입니다.

 

작년에 텍사스 서덜랜드 조그만 교회에서 스물일곱 명이 목숨을 잃는 총격 사건이 발생하자 미국의 저명한 상하원의원들이 잇따라 희생자를 애도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하나같이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길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기도한다(praying)”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총기협회로부터 수십만에서 수백만 달러의 정치자금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기도야말로 예수님께서 경고하신 위선적 기도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다면, 총기협회 정치 자금을 끊고 총기 규제를 해야 합니다. 말로만 기도하고 뒤로는 거액의 정치자금을 챙긴다면 예수님께서 회칠한 무덤이라고 분노하셨던 예루살렘 지도자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루가 멀다 않고 미국에서는 총격 사건이 발생합니다. 아침에 밝게 학교에 가고 직장에 간 자녀들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옵니다. 모든 생명이 귀하니 단순비교는 조심스럽지만, 미국이 참전한 아프가니스탄에서 2001년부터 현재까지 목숨을 잃은 민간인이 삼만 천명이고 삼천 명 정도의 미군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한 해 동안 총기 사고로 목숨을 잃는 숫자는 만오천 명이 넘습니다. 총기로 자살하는 숫자까지 더하면 천문학적인 숫자가 될 것입니다.

 

하루속히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총기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날 것입니다. 미국이 안전한 나라가 될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메시지에, 시애틀 씨호크의 풋볼 선수 볼드윈의 “예, 말은 그럴듯하지만, 학생도 교사도 그 누구도 절대로 안전하지 않습니다. 말만 하지 말고 행동하십시오, 정신 차리십시오”라는 리트윗이 마음을 칩니다. 말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합니다. 학교에 금속탐지기라도 설치해 달라는 희생자 어머니의 외침에 귀 기울일 시점입니다. 저절로 탄식의 기도가 나옵니다: “하나님, 언제까지니까?” (2018년 2월 22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창조주 하나님

온 교회가 매주 고백하는 사도신경은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믿음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면서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단순한 이해관계가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의 태생적인 관계임을 깨닫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셨기에 우리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전능하십니다. 피조물인 우리와 구별되는 속성이 곧 전능함입니다.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심을 뜻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신다고 우리는 매주 사도신경을 통해서 고백합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사도신경에서는 하나님을 전능하신 아버지에 이어서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창세기1장 1절이 “태초에(In the beginning)”로 시작 하듯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세상이 비롯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토대를 놓으신 말 그대로 창조주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주인이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만드셨으니 모든 세상이 하나님께 속한 것은 당연합니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것이라고 소유권을 주장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주인의 뜻에 맞게 주어진 인생을 계획하고 살아갈 뿐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인생을 올려 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주인이 아니기에 자신보다 연약한 사람을 권력과 힘으로 통제 하는 것이나,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속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만물도 하나님의 뜻에 맞게 관리하고 보존해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은 물론 온 세상의 주인이 되신다는 믿음을 통해서 스스로 겸손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함으로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다면 우리를 책임지실 것입니다.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우리 삶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각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을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사명입니다. 우리를 가장 잘 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최선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오늘 본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편139:14). 하나님을 온 세상은 물론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로 고백함으로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 속으로 깊이 들어가기 원합니다. -河-

언제까지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지난 주일 일곱 번째 참빛 보이스는

청년부 자매들이 꾸몄습니다.

 

디자이너와 애니메이터의 차이도 배웠고

무엇보다 자기 일을 사랑하고

열정을 갖고 주신 소명(vocation)을 감당하는 모습에 도전을 받았습니다.

 

참빛 보이스를 통해서

젊은이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게 되고

구체적인 기도 제목들도 얻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교회는

교회 일을 바짝 줄이고

대신에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기를 소망하고 있기에

참빛 보이스와 같은 시간이 더욱 소중합니다.

 

2.

참빛 보이스에서 배웠듯이

자율 주행차의 기술이 꽤 발전하고 있고

회사마다 마지막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모든 이의 관심은 사고방지입니다.

자동차 스스로 움직이다가, 행여나 오작동이 나서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잃게 한다면

자율 자동차의 존재 가치가 뚝—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니 금세 의회에서 자율 자동차 규제 법안을 만들고

국민의 안전이 최고라고 호들갑을 떨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많은 희생자가 생겨도

꿈쩍하지 않는 케이스가 있습니다.

바로 미국의 총기 규제입니다.

 

어제 다시 플로리다의 한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한 19살의 청년이 반자동 소총을 난사해서

17명의 학생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난달에도 켄터키에서 15세의 학생이 저지른 총격으로

2명이 숨지고 18명이 다쳤습니다.

총기사고가 학교로 번지고, 범행을 저지르는 연령대도 낮아지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서 많은 정치인은

총이 문제가 아니라 총을 악용하는 사람이 문제라고 주장하지만

테러로 인해서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는 것보다

총격과 총기를 사용한 자살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사고 가능성 역시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총격 사건이 생길 때마다 “위로”를 전하는 정치인들의 인터뷰는

더 이상 효력도 설득력도 없습니다.

 

총격 사건으로 서른 명의 목숨을 잃은 후에

총기를 규제하고 2억 달러 이상의 총을 사들인

호주처럼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이민자 규제나 국경에 담을 쌓는 것보다

국민을 훨씬 안전하게 지키는 일입니다.

 

3.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모든 사람이 귀합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은 하나님께 상처를 입히는 것이고

무고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범죄입니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의 스티브 커(Steve Kerr) 코치의 인터뷰 첫마디가 마음을 칩니다:

“그 어떤 조치도 취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는 우리 아이들이 총으로, 그것도 학교에서,

목숨을 잃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가 봅니다”

 

우리가 사는 미국이 안전한 나라가 되길 바랍니다.

힘없는 사람들, 애꿎은 희생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길 간절히 바랍니다.

 

주님의 긍휼을 구합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의 땅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그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 (요엘 2:18)

Then the LORD became jealous for his land and had pity on his people. (Joel 2:18)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살아가는 미국 땅을 기억하시고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들이 법으로 실제화되는 것을 속히 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2.15이-메일 목회 서신)

사순절에는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교회력에 따라서 매년 맞는 사순절이지만 지나칠 수 없는 교회의 절기입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사순절이기에 더욱더 철저히 준비할 수 있습니다.

 

사순절은 부활절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으로 일 년 가운데 10분의 1에 해당하는 기간을 구별해서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초대교회로부터 사순절은 금식과 기도를 통해서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든든히 세웠습니다. 또한, 사순절은 부활절에 세례받을 성도들이 세례를 준비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고난에 머무는 기간이 아니라 부활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부활절을 기다리면서 신앙과 삶을 부활의 주님께 드리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사순절에 행하는 신앙훈련으로 금식이 대표적이었습니다. 금식은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음식을 절제하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자신을 다스리면서 예수님의 부활을 기다리겠다는 표시입니다. 또한, 금식을 통해서 절약한 식량을 갖고 이웃을 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주린 자에게 양식을 나눠주고 가난하고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는 것이라는 이사야서의 말씀 (사58:7)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도 사순절을 보내면서 각자에 맞게 경건의 훈련을 계획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각자의 삶을 단정히 하고,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주보에 있는 <첫 아침을 주님과 함께> 또는 성경통독 스케줄을 따라 하나님 말씀을 읽어가시길 권합니다. 사순절 동안 지난 연말에 실천했던 영적일기를 쓰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사순절 전통대로 금식도 추천하지만, 건강이나 사회생활에서 금식이 어려우시면 부분 금식(일주일에 한두 끼) 아니면 요즘 우리의 에너지를 많이 빼앗가는 스마트폰과 인터넷과 같은 미디아를 절제하실 수도 있습니다. 시간을 정해놓은 규칙적인 골방기도도 권합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일주일에 며칠이라도 우리 교회 또는 근처에 있는 교회의 새벽 기도회에 참석하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사순절을 기간동안 지나칠 정도로 금욕하며 지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사순절의 순수한 전통이 형식적으로 혹은 율법적으로 변질되기 쉽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세상 속에서 여러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기에 금식이나 경건의 훈련을 했다가 불가피하게 지키지 못할 수 있습니다. 너무 과하지 않게 하지만 사순절의 정신을 기억하면서 신앙과 삶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시고 예수님의 길을 걸어가시길 부탁드립니다. 우리 교회는 자발성을 강조합니다. 사순절 기간의 신앙 훈련도 참빛 식구들 각자 자발적으로 계획하시고 실천하실 것을 기대합니다. -河-

남남북녀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은 평창 올림픽이 막을 올리는 날입니다.

미국의 모든 언론이 “Pyeongchang”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평창이 강원도에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어서

구글에서 확인해 보니 원주와 강릉 사이에 있네요.

 

우리는 경기에 주목하는데

참가하는 국가나 선수들은 입장식에서 자기 나라 국기를

누가 들고 가느냐에 커다란 관심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미국 선수단의 기수선정에 대한 해프닝(?)이 기사화되었습니다.

동계 올림픽에 참가한 8종목의 대표들이 모여서

투표로 기수를 뽑았는데 4:4 동점이 되었고

규정에 따라 동전 던지기로 햄린이라는 여자 “루지(luge)”선수가 선정되었습니다.

 

이번 올림픽으로 은퇴를 계획하고 있던 햄린에게 최고의 행운이 임한 것입니다.

미국 국기를 들고 입장할 햄린을 보기 위해서

부모님과 동생이 평창으로 향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햄린과 경쟁했던 셰니 데이비스라는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가

동전 던지기는 뭔가 좋은 방법이 아니고

게다가 2월은 아프리칸 아메리칸을 생각하는

Black history month라고 해시태그를 달아서 트위터에 글을 올린 것입니다.

 

셰니는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 참가해서

개인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던 최초의 아프리칸 아메리칸이었습니다.

기수로 선정된 햄린은 루지라는 비인기 종목의 백인 선수였고요.

탈락한 셰니는 흑인이고, 햄린이 백인이어서 더욱 이슈가 된 것입니다.

 

투표에서 동점이 나왔으면

화합의 상징으로 둘이 함께 성조기를 들고 입장했으면 하는 생각을 저 혼자 했습니다.

물론 규정이 있으니 그대로 따라야지요.

 

2.

반면, 우리나라 선수들은

Korea라는 국호와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남북이 공동 입장합니다.

 

국제 대회에서 남북이 공동으로 입장하는 것은

2007년 중국에서 열린 동계 아시안 게임이래 11년 만이고

이번 평창 올림픽이 열 번째랍니다.

 

남북이 공동 입장할 때는

남한과 북한에서 각각 남녀 두 명의 기수를 세운답니다.

 

이번 평창 올림픽은 “남남북녀”차례여서

남쪽에서는 남자 봅슬레이 선수가 이미 선정되었고

북한에서는 여자 선수 가운데 한 명이 공동 기수로 나서게 됩니다.

공동 기수를 두고 이런 전통이 있었더니 흐뭇합니다.

 

아무쪼록 조국 대한민국에서 열리는 동계 올림픽이

지나치게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온 세계가 스포츠 정신으로 하나가 되며

화합과 평화를 이루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한반도기를 함께 들고 갈

남남북녀 기수의 모습처럼

한반도에 평화가 깃들고

우리의 소원인 “평화” 통일이 이뤄지길 기도합니다.

 

내가 에브라임의 손에 있는 , 요셉과 이스라엘 지파들의 막대기를 가져다가

유다의 막대기에 붙여서 막대기가 되게 한즉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 (에스겔 37:19)

Behold, I am about to take the stick of Joseph (that is in the hand of Ephraim) and the tribes of Israel associated with him.

And I will join with it the stick of Judah, and make them one stick, that they may be one in my hand. (Ezekiel 37:19)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과 한반도에 평화가 깃들고

온 민족이 하나가 되는 통일이 속히 오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2.8이-메일 목회 서신)

하나님 아버지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한쪽은 신을 믿는 사람들이고, 다른 쪽은 신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신의 존재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미루는 불가지론자들도 있지만, 결국 이분들도 신을 믿지 않으니 후자에 속할 수 있습니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신이라는 초월적인 존재를 거추장스럽게 여깁니다. 신을 믿는 것 대신에 양심, 자연법칙 또는 물질에 의존해서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분들이 신을 믿지 않는 대표적인 이유는 신은 고대 이래로 연약한 인간이 만든 조작품 또는 생각을 띄워(투사)놓고 그것을 의지하는 방식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믿는 사람들도 여러 가지 형태를 띱니다. 세상 곳곳을 다스리는 많은 신이 있다고 믿거나(다신론), 세상 자체가 신이라고 보거나(범신론), 오직 한 분이신 유일신을 믿습니다. 유일신을 믿는 대표적인 종교는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로 아이로니컬 하게도 모두 구약 성경 창세기의 하나님 한분 만을 믿습니다. 매우 흥미롭지요.

 

유일신을 믿는 세 종교 가운데 우리 기독(그리스도)교는 예수님을 통해서 한 분이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갈 수 없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없이 기독교 자체가 성립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자신을 거역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보내주신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로 믿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예수 믿는다”는 말을 하고, 이것이 곧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올바른 표현일 것입니다.

 

교회력에 따르면 주현절이 지나고 곧 사순절을 맞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기억하고 그 삶을 살아가는 기간입니다. 올해는 사순절을 보내면서, 우리의 신앙을 다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믿는 성삼위 하나님에 대해서 살펴보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주일설교에서 많은 내용을 나눌 수 없어도 꼭 필요한 교리를 소개하고, 성삼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은 성부 하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향해서 “아버지”라고 부르신 것을 따라서 우리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변함없이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자신을 거역한 백성들을 다시 구원하기 위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하시는 하늘 아버지 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사랑과 은혜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처럼 고백하기 원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시편 18:1)-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