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라앗 앞에서 : 두려움

다윗과 골리앗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이긴 사건입니다. 본문을 자세히 읽다 보면, 다윗의 승리 외에도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는 주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울왕은 물론 다윗의 형제들과 이스라엘 군인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배웁니다.

 

사무엘상 17장은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본문이지만, 본문의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다윗이 백성들로부터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받게 된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초심을 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교만하게 행동하는 사울을 버리시고, 사무엘 선지자를 시켜서 베들레헴의 목동 다윗을 왕으로 기름 부으셨습니다. 다윗이 왕이 된 것은 사무엘 선지자와 다윗의 가족만 알고 있을 뿐 사울이나 백성들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에게 이스라엘 왕은 다윗이었기에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이처럼 다윗과 골리앗에 대한 말씀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블레셋 장수 골리앗 앞에서 사울과 이스라엘의 모든 군대는 몹시 놀랐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골리앗에 맞서서 싸울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골리앗은 키가 3미터에 가깝고, 그가 입고 있는 갑옷의 무게가 57킬로그램(126파운드)입니다. 7 킬로그램(15파운드)에 이르는 칼을 손에 들고 있으니 그를 보고 겁먹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처럼 골리앗은 이스라엘의 안전과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두려움을 느낍니다.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두려움은 염려와 근심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것들을 통제하거나 해결할 수 없을 때 두려움으로 발전합니다. 그래도 마음 속에서 생기는 두려움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면서 다스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맞닥뜨린 골리앗 처럼 외부에서 밀려오는 두려움입니다. 안전을 위협하는 두려움입니다. 자신이 상대하기에 힘겨워 보입니다. 골리앗처럼 크고, 완전 무장한 채로 다가와서 위협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물리칠 수 없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나타나서 모욕하는 말을 쏟아내니 자존심이 상하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없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마주친 골리앗을 우리도 갖고 있습니다.

 

골리앗이 무너져야 하듯이 안팎에서 생기는 두려움도 무너져야 합니다. 우리 앞에 선 골리앗을 보고 떨며 두려워한다면 하나님을 떠난 사울 왕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움을 몰아내고 담대하길 원하십니다. 다윗처럼 골리앗과 마주하고, 그를 향해 달려나가서 무너뜨리길 원하십니다. 우리의 힘으로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두려움을 이기는 것입니다. -河-

용기

좋은 아침입니다

 

미국 군대에서 가장 힘들다는 해병대 보병학교에서

최초로 여성 장교가 졸업하게 되었다는 보도를 접했습니다.

 

2012년, 여성 장교에게 보병학교 입학을 허용한 이래

35명의 여성이 도전했지만 13주 훈련을 통과하지 못했고

이름을 밝히지 않으려는 이번 여성 장교만이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가장 힘든 장교 훈련이랍니다.

훈련소에 입소한 첫날 10%가 포기하고,

전체의 25%가 중도 탈락하는데,

여성 최초로 훈련을 마치고 일선에서 군대를 지휘하게 된다니.

이 분의 용기가 대단합니다.

 

세상은 물론

우리 자신이 처한 곳에서

아니 각 개인의 삶에서 어떤 일을 최초로 해내는 것은 박수받아 마땅합니다.

 

앞선 사람들이 실패했던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모두 힘겨워하는 일을 끝까지 참고 성취하는 것은

그 일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대단한 업적입니다.

 

2.

지난주부터

사무엘상 17장에 있는

<다윗과 골리앗>에 대한 말씀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블레셋 장수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 앞에 섰을 때,

그 누구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난공불락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때 아버지 심부름을 온 베들레헴 목동 다윗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모욕하는 골리앗 앞에 섭니다.

 

그러고 보면

다윗 역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홀로 나선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해낼 수 없음을 알면서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해서 용기를 냈습니다.

그리고 골리앗을 무너뜨렸습니다.

 

3.

살다 보면, 어떤 일을 위해서

용기가 필요한 때가 의외로 많습니다.

 

혼자서 가는 길입니다.

아무도 성공하지 않은 길일 수 있습니다.

끝까지 갈 확률이 높지 않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 길을 시작하는 믿음과 용기입니다.

 

그 힘들다는 해병대 보병 학교에 지원했던

36명의 여성이 그 길을 갔습니다.

그중에 최초로 졸업을 앞둔 여성이 있기에

앞으로 더 많은 여성 장교들이 희망을 품고 도전할 것입니다.

 

우리 앞에 크고 작은 일들이 닥칩니다.

지금 하는 일이 힘들어도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해내기 원합니다.

아무도 가 보지 않은 길이어도 “선구자” “개척자”라는 소명을 갖고 걷기 원합니다.

 

각자의 인생길이 힘겨워도

용기를 갖고, 주님과 더불어 끝까지 걸어가기 원합니다.

골리앗을 무너뜨린 다윗처럼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걷는 믿음의 길입니다

 

오늘 우리가 걷는 인생길은

누가 대신 살아줄 수 없고 앞에서 미리 가본 사람도 없이

날마다 새롭게 써나가는 개척자의 길입니다.

그 길에서 하나님의 도움과 인도하심을 경험하고,

마지막까지 걸어가는 사람에게 임하는 감사와 기쁨을 누리가 원합니다.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무엘상 17:37)

And David said, “The LORD who delivered me from the paw of the lion and from the paw of the bear will deliver me from the hand of this Philistine.” (1Samuel 17:37)

 

하나님 아버지,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는 참빛 식구들께

지혜와 힘과 용기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9.21이-메일 목회 서신)

엘라 골짜기의 골리앗

지난 넉 달 동안 소아시아에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보낸 베드로의 첫 번째 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이후에 이들의 삶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습니다. 고난도 찾아왔습니다. 그렇지만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님을 끝까지 믿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았습니다. 베드로는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더욱 바른 신앙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앞으로 두 달 정도 구약성경의 다윗과 골리앗에 대한 말씀을 나눌 예정입니다. 사무엘상 17장에 기록된 다윗과 골리앗에 대한 말씀은 매우 유명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블레셋 장수 골리앗의 이름을 알 정도입니다. 또한 베드로전서의 흩어진 나그네들이 그랬듯이 우리도 살아가면서 골리앗과 같은 커다란 장애물을 만납니다. 그런 점에서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는 곧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엘라 골짜기를 가운데 두고 당시의 강대국 블레셋과 역시 출중한 지도자 사울 왕이 이끄는 이스라엘이 진을 쳤습니다. 엘라 골짜기는 테레빈이라고 불리는 큰 나무들이 서식하는 곳이었습니다. 55피트(16 미터)까지 자라는 큰 나무들이 골짜기에 서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나무처럼 큰 블레셋 장수 골리앗이 맞은편에 진을 치고 아침마다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했습니다.

 

전쟁에 나가기만 하면 승승장구하던 사울 왕도 골리앗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왕이 용기를 내지 못하니 함께 온 군사들도 저절로 겁을 먹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속수무책입니다. 감히 골리앗을 대항해서 싸울 군인들이 없었습니다. 사울은 손을 놓고 40일을 아침마다 골리앗의 모욕적인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때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을 만나러 온 베들레헴 목동 다윗이 물 맷돌 다섯 개로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넘어뜨립니다.

 

하지만 다윗이 골리앗과 맞서 싸우기 까기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형들은 물론 사울까지 나서서 말렸지만,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골리앗을 무너뜨리고 나라를 구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는 말씀을 차근차근 살펴보면서, 우리 안에 임하는 골리앗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것을 넘어뜨리는 비결을 찾게 될 것입니다. 골리앗은 무너져야 합니다. 골리앗을 보고 겁에 질려서 꼼짝하지 못하고 있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이기에 그를 물리치는 것은 영적인 승리입니다. 그런데 골리앗은 강력합니다. 보고 있어도 겁을 먹게 될 정도입니다. 골리앗은 같은 시간에 나타나서 괴롭힐 정도로 집요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그의 도전이기에 분명히 넘어뜨려야 합니다. 골리앗이 넘어지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골리앗을 무너뜨리기 원합니다. -河-

질투의 우상

좋은 아침입니다

 

요즘은 성경 통독과 새벽기도회에서

에스겔서를 읽고 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선지자 에스겔이

하나님의 영에 이끌려 예루살렘을 오가면서

하나님을 떠난 예루살렘의 가증스러움을 고발하고,

하나님께서 바벨론 포로들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쓰실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오늘 새벽에 읽은 에스겔서 8장에는

“질투의 우상 (the ido/imagel of Jealousy)”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루살렘 북쪽 문에 세워진

가나안이나 이방 신들의 형상으로 추측합니다.

 

그것을 두고 “질투의 우상/형상”이라고 부른 것은

그 우상이 하나님의 질투를 유발했기 때문입니다.

 

2.

17세기 영국의 사상가 베이컨은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네 가지 우상을 제시했습니다: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

 

종족의 우상은 인간이나 특정 집단의 입장에서 주관적으로 사물을 판단하는 것,

동굴의 우상은 동굴 속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빛으로 나와서 갖게 되는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은 편견,

시장의 우상은 시장에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용어에 의존해서 세상을 판단하고 거래하는 편견,

극장의 우상은 소신없이 극장의 배우처럼 행동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자신만이 갖고 있는 편견이나,

처한 환경에 갇혀서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을 우상이라고 본 것입니다.

자신은 옳다고 믿고 따르지만 결국 우상에 갇힌 셈입니다.

 

3.

에스겔서 8장에 보면

하나님을 만난 백성들이 이방 신을 섬기고,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섬깁니다.

예루살렘 성벽에 각종 곤충과 짐승의 그림을 붙여놓고 그곳에 절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생명과 진리의 길인데

하나님을 무시하고, 다른 신을 따라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떠나서

다른 신과 자신들의 생각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우상에 갇힌 것입니다.

 

우리도 때로는 편견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자신만이 최고라고 생각하거나

자신의 입장이 진리라고 믿고 있지만

동굴 속의 사고일 수 있습니다.

자신만이 옳다는 종족의 우상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들은 것을 그대로 믿고,

때로는 자신을 숨긴 채

극장의 배우처럼 행동할 수도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 우리의 생각을 정립하기 원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 서는 것입니다.

편견을 버리고, 치장한 옷을 벗고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서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상들을 섬김으로

하나님의 질투를 유발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해서 등을 돌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안에 우상들을 몰아내고

진실하신 하나님 앞에 순전한 마음으로 서기 원합니다.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시고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시117:2)

For great is his steadfast love toward us,

and the faithfulness of the LORD endures forever.

Praise the LORD! (Psalms 117:2)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눈길 가는 곳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발길 가는 곳을 찾아가고

하나님의 마음을 닮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9.14이-메일 목회 서신)

돌보시는 하나님

베드로는 소아시아의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보낸 편지를 권면과 기도로 마무리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믿고 많은 것을 잃었고,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신앙을 굳게 지켰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생명과 진리의 길임을 발견했습니다. 무엇보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사는 것이 가치가 있음을 믿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보내는 서신 마지막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믿음과 태도에 대해서 요약해 주었습니다.

 

우선, 지난 시간에 배운 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해야 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높이시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힘들어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자신의 어려움을 내어 맡기라는 말씀입니다.

 

둘째로,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것의 한 가지 예는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염려를 맡기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염려를 하나님께 던지고 염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책임져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근신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앞에서 허리를 동이고, 고난이 닥쳐도 그것에 맞설 수 있는 갑옷을 입고,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정신을 차리고 기도할 것을 부탁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면서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신앙을 지키는 것은 영적인 싸움입니다. 안이하게 서 있으면 시험에 들고 신앙이 무너져 내립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신앙 가운데 깨어 있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대적해야 합니다. 사도바울도 믿음을 영적 싸움에서 방패에 비유했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시험을 이기고 마귀를 막아내는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넷째로, 고난을 이겨야 합니다. 고난이 찾아오면 혼자만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제들도 함께 당하고 있다는 동지의식을 갖는 것입니다. 고난이 오래될 것 같아도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잠깐이고, 하나님께서 분명히 고난의 끝을 예비해 놓으셨음을 믿고 담대하게 고난을 마주 대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참되고 바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과제입니다. 우리 힘으로 불가능한 영역이 매우 많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친히 온전하게 하시고, 굳건하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고, 터를 견고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河-

마음에 숨은 사람

좋은 아침입니다

 

주일설교에서 살펴본 베드로전서 말씀이

이번 주로 마무리됩니다.

 

넉 달 가까이 베드로전서를 읽었습니다.

그래도 모두 살펴보지 못한 채 넘어간 본문도 많습니다.

대개 주일 예배에서 다루기보다

성경공부나 특강 등에서 다루어야 할 본문들이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6절도 살짝 건너뛰었습니다.

그런데 3장 4절이 마음에 남습니다: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but let your adorning be the hidden person of the heart with the imperishable beauty of a gentle and quiet spirit, which in God’s sight is very precious.(1Pet 3:4)

 

베드로전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향한

순수하고 바른 믿음을 강조합니다.

어떤 시련이 닥쳐도 잠깐 지나갈 것으로 알고

시련을 순금보다 귀한 믿음으로 승화시키길 요청합니다.

 

밖에서 일어나는 핍박이나 고난

안에서 일어나는 염려와 갈등도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믿음을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내면이 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인데

3장 4절에서는 “마음에 숨은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내면 깊은 곳에 숨겨진 또 다른 자아/존재를 가리킬 것입니다.

육신과 마음을 뛰어넘는 영적인 영역(심령 spirit)을 가리킬 것입니다.

 

마음에 숨은 사람, 심령이

온유(gentle)하고 고요(quiet)해야 합니다.

 

좀처럼 흔들리지 않습니다.

안팎에서 파도가 닥쳐오지만

깊이 숨겨진 심령에서 온유와 고요가 활동합니다.

 

절대로 썩지 않는 영원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값진 신앙 인격입니다.

 

2.

신앙은

“마음에 숨겨진 사람”을 순간마다

온유하고 고요하게 관리하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세상을 살면서

자칫 겉모습에 신경을 쓰고

남에게 보이는 것들로 치장하느라 에너지를 사용하곤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동안 공부한 베드로전서에서는

“마음에 숨겨진 사람”을 소개하면서

썩지 아니할 온유와 고요함을 누리길 요청합니다.

 

저는 이것을 위해서

하루 적어도 5분의 묵상(five minute meditation)을 제안합니다.

주님 안에서 고요한 시간, 묵상의 시간을 가지면서

성령 하나님의 만져주심, 위로, 능력, 회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진수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차분하고, 침착하고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온유와 고요함을 누리는 하루가 되기 원합니다.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but let your adorning be the hidden person of the heart with the imperishable beauty of a gentle and quiet spirit, which in God’s sight is very precious.(1Pet 3:4)

 

하나님 아버지,

아무리 삶이 요동쳐도

주님께서 주시는 고요함, 부드러움, 소망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9.7이-메일 목회 서신)

공동체 안에서

베드로전서의 마지막 장까지 왔습니다. 소아시아에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보낸 베드로의 첫 번째 편지를 통해서 우리의 신앙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다시 확인하고 돌아보았습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겪는 고난이 어떤 의미가 있으며, 고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의 삶을 살아가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단지 육체적인 죽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생기는 이전 것들과의 단절도 여기에 속합니다. 옛날 습관과 결별해야 했습니다. 그동안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로부터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비난과 조롱을 받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인생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하고 새로운 가치관을 갖고 살아야 했습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이제는 자신들이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여정입니다. 죽음을 넘어서 부활과 생명의 인생길을 걷는 것입니다.

 

이때 꼭 필요한 것이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함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동지들로부터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공동체를 이루는 근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각자가 받은 은사대로 공동체를 세워가라는 말씀도 배웠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공동체를 이루는 대표적인 두 세대가 나옵니다. 우선, 장로 입니다. 장로는 “원로”라는 뜻입니다. 엄밀히 보면, 교회를 이끄는 영적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고 장차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라고 부릅니다. 공동체를 이끄는 중에 받은 고난이 헛되지 않고 장차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지도자이지만 주장하는 자세를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주의 일에 참여하고 세상의 영광이 아니라 하늘의 영광을 구해야 합니다.

 

장로에 이어서 젊은이들에게 교훈합니다. 여기서 젊은이는 교회는 물론 세상에서 힘있게 활동하는 사람을 가리킬 것입니다.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장로들에게 순종할 것을 부탁합니다. 하나님께서 높이시는 것을 경험하라고 권면합니다. 우리에게도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모든 세대가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면서 겸손하게 주님의 교회를 세우기 원합니다.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고 같은 생각을 품고 사랑의 공동체를 세우기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베드로는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길 것을 부탁합니다. “모든 염려”는 예수님을 믿는 여정 가운데 생기는 불안과 근심입니다. 혼자 감당하기 힘든 염려와 두려움을 하나님께 맡기라는 당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돌보실 것입니다. 교회는 물론 각 개인을 돌보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나그네 된 하나님 백성의 길을 가기 원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