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선지자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새벽기도회와 수요예배에서는

예레미야서를 읽고 있습니다.

 

새벽 기도회에서는 성경을 한장씩 읽어 나갑니다.

하루에 한 장씩 읽어가도 보슬비에 옷이 젖듯이

5년여가 지나면 성경을 일독하게 됩니다.

일독 차례에 따라서 예레미야에 와 있습니다.

 

수요예배에서는 신구약 성경을 두루 각 책별로 공부합니다.

그동안 신약성경은 공관복음서를 빼고 모두 읽었습니다.

구약도 잠언과 전도서, 소예언서까지 꽤 많이 읽었습니다.

이제 남은 구약성경 가운데 예레미야서를 읽고 있는데

우연히 새벽기도회와 겹친 것입니다.

 

지난 수요예배에서는

예레미야 9장을 읽었습니다.

1절부터 예레미야 선지자의 별명이

왜 눈물의 선지자인지 알려주는 말씀이 등장했습니다: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 (예레미야9:1)

Oh that my head were waters, and my eyes a fountain of tears,

that I might weep day and night for the slain of the daughter of my people!

 

2.

구약의 선지자 가운데

예레미야 만큼 감성이 풍부한 인물이 없습니다.

 

예레미야서를 읽다 보면

그는 늘 하나님 앞에서 탄식하고

애원하고 눈물로 기도합니다.

 

예레미야의 마음과 삶 속에

예수님이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예레미야의 눈물을 보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백성을 위해서

주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 역시 이웃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는 영적 감성을 갖고 있는지요.

 

신앙이 우리 자신 안에서 맴돌면 안 됩니다.

신앙이 나를 넘어서 이웃에게 펼쳐지고

그 안에서 주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마음을 닮아서

이웃의 아픔에 눈물로 동참하고,

아픈 이웃들과 함께 우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주르륵 눈물이 흐를 정도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우리 교회에도

골방에서 눈물로 기도하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아프고 힘든 이웃들과 함께 공감하고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기 원합니다.

 

물론 우리가 사는 미국과 태평양 건너 조국

그리고 하나님을 잊고사는 세상을 위해서도

눈물로 기도하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각박하고 이기적인 세상 속에서

주님의 사랑을 눈물과 진심으로 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5.18 이-메일 목회 서신)

베드로전서 2: 믿음의 확실함 (1)

우리가 살펴보는 베드로전서는 소아시아의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미리 아심을 통해서 택함 받은 자들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별했고 성자 예수님의 피뿌림으로 하나님 백성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편지를 시작하면서 각자의 지역에 흩어져 살지만 하나님께 택함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넘치길 기도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1:3-12)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3-5절은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구원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씀이고, 6-9절은 하나님을 믿고 어려움을 겪지만, 결국에는 기쁨이 될 소망에 대해서 알려주고, 마지막 10-12절은 예언자들이 알려준 구원이 예수님을 통해서 비로소 성취되었음을 확인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꿰뚫는 주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게 되는 “구원”입니다.

 

3절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서 우리도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는 새로운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도 않는 하늘의 유업을 얻게 되었기에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믿음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끝까지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편지를 시작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소아시아에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은 어렵게 예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예수님을 믿는 것은 생활방식을 완전히 바꾸는 것입니다. 그동안 함께 했던 가족이나 이웃들과 단절일 수 있습니다. 심한 경우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히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험과 환난은 영원한 생명에 비교하면 잠깐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큰 기쁨이 생깁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믿음이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도 믿음 없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미리 아심과 선택하심에 반응하는 방법도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게 되고 구원을 얻습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금보다 귀한 확실한 믿음을 갖고 있으면 이길 수 있습니다(7절). 금은 불에 연단하면 녹고 사라지지만 믿음은 끝까지 남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시험과 환난을 이겨내면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와 달리 소아시아에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은 실제로 예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믿음으로 영광스러운 구원에 참여할 것을 믿고 기뻐합니다. 구원받는 자의 아름답고 멋진 모습입니다. 이 모든 것이 확실한 믿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할렐루야!-河-

흩어진 나그네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부터

베드로전서 말씀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는

지금의 터키에 해당하는 소아시아에

흩어져서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사도 베드로의 편지입니다.

특정 교회에 보낸 편지가 아니기에 “공동 서신”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흩어진 나그네는

고향 예루살렘을 떠나서 소아시아에 살고 있던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Jewish Christians)을 가리킬 가능성이 큽니다.

 

이들은 타향에 살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나그네 삶입니다.

주류에 속하지 못한 마이너리티(minority)입니다.

 

당시에는 소수 종교였던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되었기에 핍박과 고난이 찾아 왔습니다.

 

로마가 다스리는 제국과

여전히 예수님을 믿지 않는 동족 유대인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세상살이에서 손해를 입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스스로 자초한 마이너리티의 삶입니다.

 

베드로서는

이처럼 흩어진 나그네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의 정체성과

어떻게 살아야할 지, 삶의 방식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2.

이번 베드로서를 공부하면서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베드로서의 흩어진 나그네는

하나님으로부터 미리 택함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새로운 소망을 갖고 살아갑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들에게

매우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신앙,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

세상에 속하지 않고 확실하게 구별된 삶을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베드로서를 살펴보면서

신앙의 핵심으로 들어가기 원합니다.

우리 신앙에 너절한 것들을 정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정말 중요한 신앙으로 무장하기 원합니다.

 

순수하고 순결한 신앙입니다.

결코 흔들릴 수 없는 견고한 신앙입니다.

흩어진 나그네의 꿋꿋하고 멋진 모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 자신을 다시 발견하고,

하늘나라 시민으로,

예수님의 제자로 곧게 서는 참빛 식구들이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벧전1:7)

so that the tested genuineness of your faith—more precious than gold that perishes though it is tested by fire—

may be found to result in praise and glory and honor at 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 (1Pet 1:7)

 

하나님 아버지

베드로서를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확실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5.11 이-메일 목회 서신)

 

베드로전서 1: 흩어진 나그네

앞으로 주일예배에서는 베드로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베드로서는 두 편의 편지로 구성되어 있고,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기록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사도 베드로가 하나님 말씀을 기록할 때는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혹자는 네로 황제(주후37-68년)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시절에 베드로가 그리스도인들을 신앙적으로 준비시키기 위해서 기록했다고 합니다.

 

첫 번째 편지인 베드로전서는 오늘날 터키에 해당하는 소아시아 지역에 살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사도바울이 전한 복음이 소아시아 전체로 퍼져 나갔을 것입니다. 그곳에는 주로 예수님을 처음 믿은 이방인들이 살고 있었고, 유대인들도 회당을 중심으로 모였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의 편지를 받은 사람들은 이방인들로서 예수님을 믿었거나 유대교에서 개종한 사람들입니다. 말 그대로 흩어진 나그네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힘든 가운데도 신앙을 지키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 다시금 알려줍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백성이 되었습니다. 왕같은 제사장으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씨가 마음에 심겼기에 거룩한 주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고 영원한 생명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1절에서 말하듯이 우리도 세상 속에서 흩어진 나그네로 살아갑니다. 함께 모여서 예배한 후에는 각자의 자리로 흩어집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나그네가 걷는 순례길입니다. 초대교회가 겪었던 박해는 아니어도 우리 역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치뤄야 할 대가와 알게 모르게 닥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베드로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면서, 세상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얻고 그대로 따라 살아감으로 강하고 멋진 그리스도인으로 세워지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 2절에서는 흩어진 나그네가 누구인지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선택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연히 또는 무작위로 선택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미리아심(예지,豫知)을 따라서 선택되었습니다. 거룩하신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선택에 기쁨으로 순종하도록 돕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은 십자가의 보혈과 더불어 구약에서 드리던 희생제물을 뜻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삼위 하나님의 사역으로  선택되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았다는 사실은 그리스도들이 자신을 발견하는 첫 단계입니다. 선택 받은 하나님 백성으로 세상 속에서 은혜와 평강을 누리고 여기서부터 예수님을 닮는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는 것입니다.-河-

작은 사랑 나눔

올해 우리 교회 표어는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공동체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주님의 교회로 모인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이자 특권입니다. 사랑이 빠진 공동체는 온전한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도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가르쳐줍니다(요한13:35).

 

우리 교회는 여러 세대가 함께 지내지만, 서로 배려하고 격려하고 사랑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어르신들께서 젊은이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니다. 젊은이들은 어르신들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하며 존경을 표합니다. 어려운 일을 당한 참빛 식구들을 위해서 한마음으로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사랑으로 교회가 하나 됨에 감사드립니다. 고린도전서 13장 말씀대로 오래 참고, 온유하며, 자랑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무례히 행하지 않으며, 참되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사랑의 공동체를 세워왔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힘겹고 외로운 타지에서 서로 사랑함으로 성도의 정을 나누고 지난주에 배운 대로 서로 위해서 기도하고 격려하는 것 자체가 큰 힘입니다. 무엇보다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실천하는 것이니 의미 있고 소중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랑이 우리 안에만 머물지 않도록 밖으로 흘려보내는 이웃 사랑도 실천해야 합니다.

 

드디어 연초에 말씀드린 <작은 사랑 나눔>을 실천할 기회가 왔습니다. 이스트 베이 리치먼드 지역에 있는 학교입니다. 가정환경이 어려운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랍니다. 교장 선생님께서 6학년 임원들에게 소망을 심어주기 위해서 워싱턴 DC 방문을 계획하시고 필요한 자금을 모금하고 계십니다.

 

한인 교회로서 한인들을 섬길 생각을 많이 했는데, 주류 사회를 돕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고 무엇보다 거친 환경에서 자라는 어린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일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각 가정이나 개인별로 최대 $20까지 헌금하시면 됩니다. 여윳돈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꼭 써야 할 자금을 아껴서 헌금하시면 좋겠습니다. 5월 둘째 주일에 헌금해서 우리의 마음을 익명으로 전달할 예정입니다.

 

올 한해 서너 번 작은 사랑 나눔을 실천할 계획입니다. 가능하면 이번 경우처럼 성도님들께서 제안하는 곳을 돕기 원합니다. 주변에 또는 언론 보도나 소식을 듣고 우리의 작은 정성을 모아서 돕고 싶은 기관이나 개인이 있으면 안내 데스크에 있는 제안함에 넣어주시기 바랍니다. 수년 동안 해온 초록우산을 통한 고국의 소년 소녀 돕기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이웃에게도 작은 사랑을 나눌 때, 마음껏 구제할 수 있는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河-

유다 아사왕

좋은 아침입니다.

 

1.

이스라엘은 솔모몬 이후,

남과 북으로 나누어집니다.

 

남쪽 유다는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았고

다윗과 솔로몬의 후손들이 왕이 되었습니다.

여로보암이 첫 번째 왕이 된 북 이스라엘에 비해서 정통 다윗왕국인 셈입니다.

 

남유다의 세 번째 왕이 아사입니다.

아사는 왕이 되면서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산당을 비롯한 우상 숭배하는 신전들을 없앴고,

아세라 여신을 섬기는 어머니를 폐위시킬 정도로

하나님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였습니다(역대하14:2).

 

아사왕은 전쟁에 나갈 때도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당대의 강국인 구스(이디오피아)를 상대해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처럼 아사왕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았습니다.

 

2.

평생을 하나님을 섬기면서 선정을 베풀 것 같았던

아사왕이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북이스라엘이 남유다를 상대로

산성을 쌓고 긴장 상태를 유지하자

아사는 하나님을 찾지 않고 아람왕에게 도움을 청함으로 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니 선지자를 보내셔서 아사에게 다음같이 경고하십니다:

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아사에게 나와서 그에게 이르되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역대하 16:7)

At that time Hanani the seer came to Asa king of Judah and said to him,

“Because you relied on the king of Syria, and did not rely on the Lord your God,

the army of the king of Syria has escaped you.(2 Chron 16:7)

 

아사왕은 분노했습니다.

바른 소리하는 선지자를 옥에 가두고

백성들 가운데 몇 명을 학대했습니다.

 

왕이 된지 39년째에 다리에 못된 병이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사는 하나님을 찾지 않고

나라의 명의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결국 발 병으로 죽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던 아사의 신앙과 삶이 무너졌습니다.

하나님보다 세상 것들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3.

아사왕의 업적을 보면

개혁과 선한 일을 한 것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그가 잘못한 것은 나라의 위기에서 강대국 아람의 도움을 청한 것과

발에 병이 들었을 때 의사를 먼저 찾아간 것, 단 두 가지입니다.

 

그런데 아사의 말년을 초라했고

그가 행한 개혁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세우기는 어려워도 무너지기는 쉽습니다.

사람이 한번 악한 길로 가면 돌이키지 않고

더욱 악해지는 것도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우리의 신앙과 삶을 소중하게 간수하고

손안에 든 새처럼 애지중지 귀하게 키워가야 합니다.

한 두 가지 잘못으로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일이 잘 풀릴 때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아사를 향한 하나냐 선지자의 말을 꼭 기억합시다:

여호와의 눈은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역대하 16:9)

For the eyes of the Lord run to and fro throughout the whole earth,

to give strong support to those whose heart is blameless toward him.(2 Chron 16:9)

 

전심으로 주님을 찾는 참빛 식구들과 교회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전심으로 주님을 향하는 참빛 식구들 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4.27 이-메일 목회 서신)

리턴없는 인생

몇 달 전, 동네 창고형 매장에서 아내가 사놓은 물건이 있었습니다. 친지에게 선물하려고 구입했는데 그만 시간을 놓쳐서 선물도 못하고 우리가 쓰기에는 양이 너무 많은 데다 물건을 살 때 받았던 영수증도 잃어버렸습니다. 빠듯한 살림에 아내의 시름이 깊어 갑니다. 곁에서 지켜보던 제가 용기를 내서 리턴을 시도하기로 했습니다. 구매한 시간도 3개월 가까이 지났고 영수증까지 없으니 거절당할 것 같았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물건을 가지고 매장을 찾았습니다.

 

입구에서 반납할 물건임을 확인한 후, 담당 직원 앞에 줄을 섰습니다. 그 날은 웬일인지 기다리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금방 우리 차례가 닥쳤습니다. 차라리 줄이나 길었으면 직원들이 무심코 처리할 법도 한데 줄까지 짧으니 마음이 더욱 졸여왔습니다. 세 명의 직원 가운데 매니저처럼 보이는 분이 걸렸습니다. 예상대로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분은 저희가 산 물건을 꼼꼼하게 확인했습니다. 물론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것 그대로입니다. 영수증은 있냐고 묻습니다. 없다고 했더니 권총처럼 생긴 레이저건으로 물건을 스캔합니다. 구입한 날짜를 확인하는 것 같았습니다. 짧은 시간인데 저와 아내에게는 꽤 길게 느꼈습니다. 그러더니 아무 말 없이 초록색 영수증을 주면서 제 카드로 입금되었답니다. 싱거울 정도로 리턴이 쉬웠습니다. 누구보다 아내가 기뻐합니다. 진작 가져올 걸 괜스레 집에 두고 속앓이를 한 셈입니다.

 

누군가 말했듯이 미국은 리턴의 나라인 것 같습니다. 옷가지를 구입했다가 한두 번 입고 리턴한다는 거짓말 같은 얘기도 들었습니다. 몇 개월을 잘 쓰던 전자기기를 리턴하고 신제품으로 바꿔오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리턴이 이처럼 쉽게 이뤄지다 보니 물건을 구입하면서 “맘에 들지 않으면 리턴하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좋지만, 물건을 만들고 대형 매장에 출품한 업체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겠습니다.

 

너무 손쉽게 물건을 리턴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 인생도 리턴이 가능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라고 아내가 묻습니다. 갑자기 무슨 말인가 싶고 가슴이 철썩 내려앉았습니다. 50대 중반이 되면 남편이 약자가 되고 아내가 올라서기 시작한다는데 제가 너무 눈치없이 군림했나 싶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몸을 낮추면서 자동차 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아내는 말 그대로 인생 자체를 생각하며 질문한 것인데 제가 괜히 넘겨짚고 긴장한 것입니다.

 

인생길에 리턴은 없습니다. 리턴은 고사하고 잠시도 멈춰 세울 수 없습니다. 브레이크를 잡아도 소용없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가장 무서운 것이 한 시도 쉬지 않고 째깍째깍 소리 내며 가고 있는 벽에 걸린 시계의 분침과 초침이랍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가 생기지만, 그때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한 번뿐인 인생을 살다가 하나님께 갈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생에 리턴이 없기에 하루하루가 소중합니다. 현재를 가리키는 영어 표현에 선물(present)이라는 뜻이 있듯이 우리에게는 24시간이라는 선물이 매일같이 주어집니다. 이 세상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입니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브랜뉴, 새날을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십니다. 하얀 백지와 같아서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하고 힘을 다해서 채워 넣을 수 있는 가능성입니다. 누구도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우리만의 고유한 날입니다. 그러니 하루하루가 소중합니다. 지우개로 지울 수도 없고 리턴도 불가능한 한 번뿐인 인생입니다.

 

돌아보니, 하루하루가 저절로 생기는 것처럼 살았습니다. 매일같이 해가 뜨니 오늘과 내일이 같은 날이라고 무심코 생각해 버렸습니다. 리턴이 편리한 나라에 살다 보니 인생도 리턴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한 번뿐인 인생을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삶으로 하나님께 올려 드리고 싶습니다. 리턴할 수 없어서 아쉬운 것이 아니라, 리턴할 수 없기에 더욱 귀한 인생길을 걷고 싶습니다. 한 걸음 더 나가면, 내 인생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의 인생도 한 번뿐임을 알고 이웃을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리턴 없는 인생길을 사랑으로 걷기 원합니다. (2017년 4월 27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리턴없는 인생

몇 달 전, 동네 창고형 매장에서 아내가 사놓은 물건이 있었습니다. 친지에게 선물하려고 구입했는데 그만 시간을 놓쳐서 선물도 못하고 우리가 쓰기에는 양이 너무 많은 데다 물건을 살 때 받았던 영수증도 잃어버렸습니다. 빠듯한 살림에 아내의 시름이 깊어 갑니다. 곁에서 지켜보던 제가 용기를 내서 리턴을 시도하기로 했습니다. 구매한 시간도 3개월 가까이 지났고 영수증까지 없으니 거절당할 것 같았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물건을 가지고 매장을 찾았습니다.

 

입구에서 반납할 물건임을 확인한 후, 담당 직원 앞에 줄을 섰습니다. 그 날은 웬일인지 기다리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금방 우리 차례가 닥쳤습니다. 차라리 줄이나 길었으면 직원들이 무심코 처리할 법도 한데 줄까지 짧으니 마음이 더욱 졸여왔습니다. 세 명의 직원 가운데 매니저처럼 보이는 분이 걸렸습니다. 예상대로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분은 저희가 산 물건을 꼼꼼하게 확인했습니다. 물론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것 그대로입니다. 영수증은 있냐고 묻습니다. 없다고 했더니 권총처럼 생긴 레이저건으로 물건을 스캔합니다. 구입한 날짜를 확인하는 것 같았습니다. 짧은 시간인데 저와 아내에게는 꽤 길게 느꼈습니다. 그러더니 아무 말 없이 초록색 영수증을 주면서 제 카드로 입금되었답니다. 싱거울 정도로 리턴이 쉬웠습니다. 누구보다 아내가 기뻐합니다. 진작 가져올 걸 괜스레 집에 두고 속앓이를 한 셈입니다.

 

누군가 말했듯이 미국은 리턴의 나라인 것 같습니다. 옷가지를 구입했다가 한두 번 입고 리턴한다는 거짓말 같은 얘기도 들었습니다. 몇 개월을 잘 쓰던 전자기기를 리턴하고 신제품으로 바꿔오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리턴이 이처럼 쉽게 이뤄지다 보니 물건을 구입하면서 “맘에 들지 않으면 리턴하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좋지만, 물건을 만들고 대형 매장에 출품한 업체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겠습니다.

 

너무 손쉽게 물건을 리턴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 인생도 리턴이 가능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라고 아내가 묻습니다. 갑자기 무슨 말인가 싶고 가슴이 철썩 내려앉았습니다. 50대 중반이 되면 남편이 약자가 되고 아내가 올라서기 시작한다는데 제가 너무 눈치없이 군림했나 싶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몸을 낮추면서 자동차 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아내는 말 그대로 인생 자체를 생각하며 질문한 것인데 제가 괜히 넘겨짚고 긴장한 것입니다.

 

인생길에 리턴은 없습니다. 리턴은 고사하고 잠시도 멈춰 세울 수 없습니다. 브레이크를 잡아도 소용없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가장 무서운 것이 한 시도 쉬지 않고 째깍째깍 소리 내며 가고 있는 벽에 걸린 시계의 분침과 초침이랍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가 생기지만, 그때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한 번뿐인 인생을 살다가 하나님께 갈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생에 리턴이 없기에 하루하루가 소중합니다. 현재를 가리키는 영어 표현에 선물(present)이라는 뜻이 있듯이 우리에게는 24시간이라는 선물이 매일같이 주어집니다. 이 세상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입니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브랜뉴, 새날을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십니다. 하얀 백지와 같아서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하고 힘을 다해서 채워 넣을 수 있는 가능성입니다. 누구도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우리만의 고유한 날입니다. 그러니 하루하루가 소중합니다. 지우개로 지울 수도 없고 리턴도 불가능한 한 번뿐인 인생입니다.

 

돌아보니, 하루하루가 저절로 생기는 것처럼 살았습니다. 매일같이 해가 뜨니 오늘과 내일이 같은 날이라고 무심코 생각해 버렸습니다. 리턴이 편리한 나라에 살다 보니 인생도 리턴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한 번뿐인 인생을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삶으로 하나님께 올려 드리고 싶습니다. 리턴할 수 없어서 아쉬운 것이 아니라, 리턴할 수 없기에 더욱 귀한 인생길을 걷고 싶습니다. 한 걸음 더 나가면, 내 인생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의 인생도 한 번뿐임을 알고 이웃을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리턴 없는 인생길을 사랑으로 걷기 원합니다. (2017년 4월 27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