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5: 시편 124편

다섯 번째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시편 124편은 대표적인 감사시입니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성전에 올라오는 발걸음이 항상 감사하고 기쁠 수는 없습니다. 123편에 있었듯이 심한 멸시와 조소를 받고 성전에 오는 발걸음은 솔직히 무겁습니다. 속이 상하니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구할 뿐입니다. 이에 비하면 시편 124편은 감사의 마음이 매우 큽니다.

 

다윗의 시라는 표제어가 붙어 있습니다. 다윗의 소년기는 감사가 넘쳤을 것 같습니다. 목동 다윗은 악기를 연주하면서 들에서 양을 보살폈습니다. 풍족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부족함도 없었습니다. 막내로 태어났기에 형들보다 부담도 적었습니다.

 

도리어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면서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10여 년 이상을 광야에서 쫓겨 다녔습니다. 사울 왕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윗을 잡아서 죽일 생각이었습니다. 크게 잘못한 것 없이, 사울의 시기와 질투의 희생양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되었습니다. 30세에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입니다. 다윗은 진심으로 감사했을 것입니다. 왕이 된 다윗은 전쟁에 나가서 승승장구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자신의 이름을 딴 다윗성도 건축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상징인 법궤를 예루살렘에 모셔올 때 옷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춤을 췄습니다.

 

시편 124편은 다윗이 예루살렘에 왕이 되는 시점의 감사일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하지 않으셨다면 결코 예루살렘에서 왕이 될 수 없었습니다. 수많은 대적이 다윗을 치러 올라왔고 맹렬하게 공격했지만, 다윗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남았습니다.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라”(5절)는 고백을 통해서 그의 고난이 극심했음을 짐작합니다. 이처럼 시편 124편의 감사는 순탄한 적당히 인생을 산 사람의 입술의 감사가 아니라, 죽음의 순간까지 내려갔다가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의 진정한 감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와 민족이 가장 힘든 순간에 소망을 기대하면서 시편 124편을 노래했습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새가 사냥꾼의 올무에 갇힌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그때도 이들은 해방과 자유를 꿈꾸면서 시편 124편을 노래했습니다. 결국70년 포로생활에서 해방되고 자유가 찾아왔습니다. 예루살렘에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편임을 확인하면서 시편 124편을 노래하며 성전에 올라왔을 것입니다. 다윗을 비롯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한결같은 고백은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8절)였습니다. 할렐루야! -河

왕의 직무

좋은 아침입니다.

 

1.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미국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트럼프가 대통령 선거에 나섰을 때

공화당 후보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냥 웃어 넘길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왔습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힐러리도

국가의 기밀을 사적으로 관리한 것을 비롯해서 정직성이 문제입니다.

워낙 돈 많은 특권층에 속하니

힘없는 서민들 입장에서 아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열흘이 지나면

앞으로 4년을 이끌어갈

미국 대통령이 당선될 것입니다.

기도가 저절로 나옵니다.

 

현재 조국 대한민국도

대통령과 그 주변 인물들로 인해서

예상치 못한 혼란에 빠져있습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했는데

요즘 지도자들의 모습 속에서

귀감과 품격을 찾기 힘드니

우리 같은 범인들의 마음만 타 들어갑니다.

 

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왕이 세워지는 걱정하셨습니다.

 

왕이 세워지면 그들이 백성들을 위해서 일하기 보다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고

백성들을 더욱 힘들게 할 것을 염려하신 겁니다.

 

그래도 왕이 세워지면

왕 한 명에게 권력이 집중되기보다

제사장과 선지자들이 균형을 맞춰서

세상을 이끌어 가길 원하셨습니다.

 

구약성경 신명기 (17:14-20)에서

왕의 업무를 구체적으로 알려 주셨습니다.

그만큼 왕업(kingship)을 염려하신 것입니다.

 

– 반드시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왕으로 세워야 합니다.

타국인은 왕이 될 수 없었는데, 이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신들과 그들이 섬기는 점쟁이를 따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 병마를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을 희생시키는 과도한 군비경쟁이나 전쟁을 피하라는 뜻입니다.

 

– 아내를 많이 두지 말고,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쌓아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내를 많이 두면 쾌락에 빠지고 도덕성을 상실합니다.

권력을 이용해서 재산을 축적해서도 안됩니다. 왕의 자기관리 능력입니다.

 

– 율법서를 옆에 두고, 평생 동안 배우고 그대로 지켜 행하라고 했습니다.

왕에게는 하나님 말씀을 비롯한 일정 수준의 지식이 필요합니다.

평생 동안 겸손히 배워야한다는 말씀입니다.

 

– 교만해져서 백성들을 업신여기지 말고, 계명을 따라서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으면

자손 대대로 왕의 자리를 지키게 될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3.

시대가 바뀌었지만

신명기 말씀이 대통령을 선출하고,

대통령이 정치를 잘하고 있는 지 판단하는 기준을 제공합니다.

 

절대로 우상을 섬기지 말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충실하고,

자기 관리에 엄격하며

무엇보다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펴라는 것입니다.

 

조국 대한민국과 우리가 사는 미국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들을 사랑하는 진실된 지도자가 세워져서

나라가 평안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을 막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시편115:13)

He will bless those who fear the Lord, both the small and the great (Psalms 15:13)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지도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 그리고 사랑이 펼쳐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10.28 이-메일 목회 서신)

살아남기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2001년 <타임>지가 선정했던 미국 최고의 신학자입니다. 그는 1940년 텍사스의 시골 마을에서 벽돌공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벽돌 쌓는 일을 배웠습니다. 그런 일은 백인보다 흑인들이 주로 하던 작업이었는데 스탠리의 아버지는 아들이 밑바닥부터 건축 일을 익히기 원했기 때문입니다. 훗날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자신의 신학과 삶을 벽돌 쌓기에 비유해서 이야기체로 풀어냅니다.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목회자가 되려면 대학에 가야 한다는 부모님과 주변의 권유로 텍사스에 있는 조그만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곳에서 자신이 알지 못하던 학문의 세계를 경험하고, 좋은 친구들을 만납니다. 4학년 때는 사교모임에 갔다가 “앤”이라는 여학생을 만나서 일 년 만에 결혼에 이릅니다. 그러나 앤과의 결혼이 자신의 인생에 커다란 짐이 될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스탠리의 아내 앤은 평범한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심각한 정신질환이 있었습니다. 연애 시절부터 은근한 남성 편력이 있었고 때때로 자기 통제가 되지 않아서 화를 내곤 했지만, 스탠리는 아내의 성격과 행동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서 두 사람 사이에는 “아담”이라는 아들도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아내 앤의 성격이 포학해집니다. 조울증이 심해져서 감정 조절이 되지 않고, 때때로 발작까지 했습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스탠리 가정 안에서는 전쟁입니다. 어떤 일이 생길 때마다 아내 앤은 그 책임을 남편인 스탠리에게 돌리면서 남편을 집중적으로 심하게 괴롭혔습니다. 하루도 견디기 힘든 나날이었지만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24년 동안 아내와 아들을 돌봤습니다. 대단한 내공이요 신앙입니다. 결국 아내 앤은 새로운 남자를 찾아서 집을 떠나고, 얼마 후에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자서전 <한나의 아이>에서 자신의 신학 여정과 가정사를 숨김없이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어머니가 구약 성경의 한나처럼 기도해서 스탠리를 얻었기에 자신을 “한나의 아이”라고 불렀습니다. 그의 자서전 <한나의 아이>의 부제는 “어떤 신학자의 회고록”입니다. 텍사스 시골에서 벽돌공의 아들로 태어나서, 예일대학에서 기독교 윤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듀크 대학에서 가르치게 된 학문의 여정을 벽돌 쌓기 하듯이 꼼꼼하고 정확하게 짚어갑니다. 그런데 그가 겹겹이 쌓아가는 인생의 벽돌마다 조울증을 앓았던 아내와 지낸 질곡의 삶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자신이 겪은 어려움을 놓고 답을 찾지 못했다고 솔직히 시인합니다. 아니 찾을 수 없었답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스스로 선택할 겨를도 없이 닥쳐온 우발적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종류가 다를 뿐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어려움이기에 답을 제시하거나 서로 판단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대신에 그는 인생의 페달을 쉬지 않고 밟았습니다. 견디기 힘들었던 개인적 어려움 속에서도 위대한 신학자의 자리에 우뚝 서게 된 비결이었습니다.

 

“살아남기(survival)”는 그의 자서전에 있는 소제목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심각한 정신 질환을 앓는 사람과 같이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은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살아남지 못한다면 누구도 살아남지 못한다.” 고통의 끝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바라보면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희망의 끈을 붙들고 있게 된답니다.

 

스탠리 하우어워스 정도는 아니어도 우리도 인생길 여기저기서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갑자기 닥쳐오기도 하고, 서서히 찾아오는데 미처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왜 그런 어려움이 닥치는지 해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해답지 없이 주어진 인생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답이 없다고 체념하거나 질문만 쏟아내지 말고, 끝까지 견디고 결국 살아남는 것이 신앙의 힘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누군가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고 응원하고 있음을 믿으면서 말입니다. (2016년 10월 27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4: 시편 123편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Song of Ascent) 열다섯 편을 연속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번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와서 드리는 예배가 얼마나 거룩하고 신비롭고 귀한 지 깨닫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성전에서 함께 드리는 공동체 예배의 중요성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가정과 일터 그리고 골방에서 각자 드리는 예배의 귀함도 깨닫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주일 설교에서 함께 살펴본 시편을 주중에 여러 번 읽고 묵상하시면 좋겠습니다. 시편 120편부터 시작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를 복습하는 마음으로 다시 읽으시고, 예습하듯이 앞으로 살펴볼 말씀도 읽으시면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깊어지고 하나님께 이를 만큼 높아질 것입니다. 무엇보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로 묶여진 시편 자체가 기도이고 찬양입니다. 하나님께 나오는 우리의 마음을 잘 노래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 볼  네 번째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인 시편 123편은 짧지만 꽤 은혜롭습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던 세 편의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도 은혜로웠지만 오늘 우리가 만난 시편이야말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에 매우 적합합니다. “하늘에 계신 주”로 시작되는 서두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을 연상시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시다는 고백은 모든 것을 아시고, 세상을 뛰어넘으시는 초월자이자 창조주되심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산을 향해서 눈을 들었지만 결국 도움이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온다는 시편 121편의 고백과도 맥을 같이 합니다.

 

우리는 예배에 와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바라보며 경배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낮의 해와 밤의 달이 해치지 못하도록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세상이 엉망진창으로 돌아가는 것을 안타까운 눈길로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선과 악을 심판하실 하나님이십니다.

 

123편을 기록한 시편 기자는 세상 속에서 힘겹게 살았습니다. 특히,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다가 하나님께 오는 중입니다. 심한 멸시도 받았습니다. 세상에서 잘난 사람이 멸시하더니 이번에는 자기보다 못해 보였던 사람까지 나서서 조롱하니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내세울 것이 없어 하늘에 계신 주를 바라보면서 성전에 올라오는 길입니다.

 

그때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키리에 엘레이손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반복해서 기도합니다. 자신을 불쌍히 여겨주시길 바라는 것은 주님께 나오는 사람이 갖는 최고의 겸손이고 간절함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의 자비를 구하는 기도는 교회사에서 가장 아름답고, 간절하고, 솔직하고 깊은 기도였습니다: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河-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3: 시편 122편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1;1)로 성경이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 되심을 선포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둠과 혼돈의 세상에 빛과 질서를 부여하시는 하나님의 창조를 소개합니다. 하늘과 땅을 구별하시고, 하늘에 해와 달과 별, 공중을 나는 새들, 바다의 물고기를 차례로 만들어 가십니다. 공간을 먼저 만드신 후에 살아있는 생물들로 공간을 채워 가시는 과정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자신의 형상을 가진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을 다스릴 책임과 권리를 부여하십니다.

 

지으신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흡족하고 선한 창조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6일간의 창조를 마치시고 제7일에 안식하셨습니다. 이처럼 창세기 1장의 창조는 6일의 일하심과 마지막 일곱 번째 날의 안식으로 이뤄집니다. 6일의 창조 끝에 안식이 있는 것은 십계명에 있듯이 하나님께서 안식의 본을 보여주신 셈입니다. 어떤 학자는 창세기 1장에서 창조의 목적이 안식일에 있다고 주장할 정도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느 곳에 있든지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제 7일에 안식하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표지(mark)였습니다. 안식일을 중심으로 삶의 리듬과 싸이클을 맞춰 놓은 것입니다. 우리도 6일 동안 세상에 살다가 주일에 교회에 와서 예배합니다. 온 교회가 함께 예배함으로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맞추고, 다시 세상에 나가서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주의 영광을 맛봅니다. 하나님 마음속으로 들어가고, 하나님을 우리 마음속에 모시는 신비롭고 은혜로운 시간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시편 122편은 주의 집에 올라갈 것을 서로 격려하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누군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고 말했을 때, 마음이 기뻤습니다. 주님 앞에 나오는 기쁨입니다. 예루살렘에 올라와 보니 모든 백성이 감사함으로 성전에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감격스러웠습니다.

 

이처럼 성전에 올라올 때 우리 마음에 감사와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거룩한 신비 속으로 들어가는 기쁨입니다. 감사와 기쁨은 함께 갑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기뻐하고, 기뻐하는 사람은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음이 감사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해 주신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6일 동안 하나님 백성으로 살게 하시고, 낮의 해와 밤의 달이 해치지 못하도록 보호해 주심이 감사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의 평안을 구합니다. 샬롬 – 평안은 개인으로 말하면 몸과 마음은 물론 영이 온전한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다툼과 시기와 갈등 없이 더불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은 평안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때 임하는 평안입니다. 감사와 기쁨, 평안과 복이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을 예배하는 참빛 식구들 위에 임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河-

조력자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 화요일 저녁은 조금 슬펐습니다.

괜히 아내에게 툴툴거렸고

아내는 제 불평을 모두 받아 주었습니다.

제 기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동네 야구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다 이긴 경기를 놓친 탓입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음 날 운전하면서 라디오를 들으니

자이언츠 팬들이 모두 잠을 설칠 만큼 안타까웠다고 합니다.

야구를 좋아하시는 참빛 식구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2.

상대팀 시카고 컵스는

젊은 선수들로 이뤄진 메이저리그 최고의 팀입니다.

시카고에서 두 번을 졌지만

샌프란에 와서 그 전날 연장 끝에 극적인 승리를 챙겼습니다.

 

엊그제 경기도 9회 직전까지 거의 완벽했습니다.

매튜 무어라는 투수가 8회까지 잘 막아주었습니다.

5대 2라는 점수도 안심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팀에나 올 수 있다는 9회의 비극이

바로 우리 동네 야구팀에 생겼습니다.

감독이 투수를 5명이나 올렸지만

결국 4점을 주고 6대 5로 역전패를 당한 것입니다.

 

샌프란시스코의 고질적인 약점인

불펜이 화를 자초했습니다.

이럴 수가 ㅠㅠ

 

3.

8회까지 잘 던진 투수

매튜 무어는 우리 큰 애보다 한 살 많은 젊은 투수입니다.

공군이었던 아버지를 따라서 멕시코에 살다가 야구 선수가 되었고

18살에 프로야구에 입문해서 바닥부터 산전수전을 다 겪은 선수입니다.

 

2011년 자신의 고향인 플로리다에서 메이저리그 선수가 되고

올스타에 선발될 정도로 탄탄한 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어깨 수술로 슬럼프를 겪었지만

지난 8월 자이언츠로 팀을 옮긴 이후에는

LA다저스를 상대로 9회까지 노히트 게임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때도 투 아웃을 잡고 마지막에 안타를 맞아서 꽤 안타까웠지요.

 

엊그제도 8회까지 잘 던졌습니다.

결과론이지만

9회까지 맡겼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3.

매튜 무어가 8회까지 잘 던졌지만

그를 돕는 투수들이 게임을 망쳐 놓았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돕는 손길”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한 번 깨달았습니다.

 

혼자서 어떤 일을 완성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거의 다 해 놓아도 마무리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할 때가 있고

처음부터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인생길을 걸어가면서

조력자(helper), 동역자(co-worker),

때로는 좋은 멘토(mento)를 만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참빛 식구들의 인생길 이곳 저곳에

좋은 조력자들이 예비되어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참빛 식구들이 누구에겐가 귀중한 조력자가 되신다면 더욱 좋겠지요.

 

우리의 힘이 되시고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계심을 믿고 말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편 121편 1-2절)

I lift up my eyes to the hills. From where does my help come?

My help comes from the Lord, who made heaven and earth. (Psalms 121:1-2)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참빛 식구들의 도움이 되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10.13 이-메일 목회 서신)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2: 시편 121편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예배의 범위는 꽤 넓습니다. 주일에 함께 모여서 드리는 예배는 물론 수요 예배와 새벽 기도회, 속회예배까지 공동체의 모임을 모두 예배에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찬양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나누는 시간은 교회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특권입니다.

 

개인적으로 아침마다 주님을 만나는 경건의 시간도 예배입니다. 골방에 들어가서 주님 앞에 자신을 내어놓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도 예배입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예배입니다. 생각과 말로부터 모든 움직임을 통해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 앞에 전부 예배로 드려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서 예배자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태도는 “영과 진리”(요 4:23)입니다. 영으로 예배하는 것은 내 마음대로 예배하지 않고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예배 가운데 성령의 함께하심을 바라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이시니 영으로 예배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거룩과 신비가 예배 속에 있습니다. 진리로 예배하는 것은 거짓과 위선을 몰아내고 진실되게 하나님을 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14:6) 이라고 하셨으니 예수님을 믿고 그 이름을 의지하면서 예배합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두 번째 말씀은 시편 121편입니다. 시편기자는 산으로 둘려 있는 길을 지나서 성전에 올라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뜬금없을 수 있지만 스탠포드에서 올라오는 280 고속도로가 생각납니다. 우리는 차로 올라오지만, 시편 기자는 산길을 걸어서 성전에 오고 있습니다다. 도움이 어디서 올지 산을 향해서 질문합니다. 산을 향해서 소리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소리만 메아리 칠 뿐입니다.

 

시편 기자의 상황이 산으로 둘러 쌓여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산 길을 걸어 성전에 가면서 자신을 휘감고 있는 산을 향해서 도움이 어디서 오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때 시편 기자의 마음 속에 울려 퍼지는 대답이 있습니다:”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2). 자신이 걷고 있는 산길은 물론, 저 멀리 우뚝 서있는 산까지 천지만물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자신의 도움이 되심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그 하나님을 만나러 성전에 올라가고 있으니 신이 납니다. 발걸음이 가벼워집니다. 서둘러 가서 성도들과 함께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싶어집니다.

 

신앙은 함께 걷는 길입니다. 서로 격려하고 축복하면서 걸어가는 순례길입니다. 3-8절까지는 성전에 올라가서 서로를 향해서 축복하는 말씀입니다. 각자가 만난 하나님을 서로에게 소개하면서 찬양하며 예배합니다. 하나님은 밤낮없이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의 출입을 지켜 주십니다.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생각하니 인생의 순례길이 기대가 되고 발걸음이 한결 가볍습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