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1: 시편 130

대강절 마지막 주일입니다. 마음 속에 촛불 네 개 모두 켜고 성탄을 기다리며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성탄의 기쁜 소식은 어두운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중심에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를 찾아오신 성육신의 은혜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음을 강조합니다.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의로운 하나님 백성으로 삼아주시고, 에덴동산 이래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채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던 우리에게 다시금 하나님을 찾게 하셨고, 하나님 백성으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번 주 성경 통독에서 읽었던 베드로서에서는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새롭게 된 우리를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벧후1:4)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주의 백성 삼으시고 하나님 자녀라는 높은 지위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우리에게는 하나님 자녀답게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할 책임도 생겼습니다.

 

요즘 세상이 뒤숭숭합니다. 연말연시를 맞으니 우리 마음도 가끔씩 자리를 잡지 못합니다. 이럴 때일 수록 하나님 백성으로 중심을 잡고,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의와 희락과 화평(롬14:17)의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그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기도하고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살펴볼 열한 번째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시편 130편은 지난 시간 말씀과도 연결됩니다. 원수가 등에 고랑을 내는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 속에서 악인의 줄을 끊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났고 그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 성전에 올라왔습니다. 시편 129편에서는 외부에서 오는 환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다면, 시편 130편에서는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합니다.

 

시편기자는 깊은 곳에서 주님께 간구합니다.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니, 자신 속에도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백성답게 살지 못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을 거역하려는 생각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이웃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사랑의 화살은 이기적으로 자신을 향했습니다. 남의 눈에 있는 가시를 들춰내지만 자신의 눈에는 들보가 있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사모합니다. 깜깜한 내면 속에서 빛 되신 하나님을 간절히 찾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 백성으로 회복시켜 주시길 간절히 구합니다. 밤새도록 보초를 서던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듯이 하나님을 기다리며 사모합니다. 거기에 살길이 있고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을 세워줄 수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속 사람이 강한 사람이 힘이 있습니다. 깊은 곳에서 주를 찾고 예배하기 원합니다.-河-

구약성경 아가서

좋은 아침입니다.

 

1.

새벽기도회에서

이사야서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예언서를 새벽에 읽기가 쉽지 않지만,

창세기부터 하루에 한 장씩 읽어가는 순서에 따라 예언서에 왔으니

새벽에 주시는 선지자들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면서 읽어갈 생각입니다.

 

이사야서 전에 <아가서>가 있는데 살짝 건너뛰었습니다.

새벽 시간에 아가서를 읽고 묵상하는 것이

부끄럽고 거북스러워서 개인적으로 읽으시길 부탁드렸습니다.

 

구약성경의 아가서는 매우 독특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표현이 없고

표면에 나타난 말씀은 남녀의 사랑 고백입니다.

 

솔로몬왕과

검은 피부의 술람미 여인 간의 사랑 이야기가

뮤지컬처럼 펼쳐집니다.

 

술람미 여인은 이집트 왕의 공주라는 의견도 있고,

아가서 자체를 두고 솔로몬 왕을 가정해서

남녀의 사랑 고백을 기록한 말씀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2.

아가서는 개역 개정이 아니라

새번역으로 읽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새번역에는

남성과 여성의 고백과

친구들의 코러스가 구분되어 있어서 내용을 파악하기가 한결 편합니다.

 

자세히 읽어보면,

아가서 말씀을 주도하는 인물은 여성입니다.

사랑하는 남성을 기다리고, 때로는 유혹하고,

훌쩍 떠난 연인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섭니다.

 

남성도 여성을 향해서

오글거릴 정도로 사랑을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의 밀고 당기는 숨바꼭질부터

비유적인 표현들이 연거푸 등장합니다.

 

3.

기독교 전통에서 아가서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사랑하는 연인으로 표현한 말씀으로 읽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간절히 기다리고 찾아 나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인처럼

친밀하게 대해 주시고 사랑해 주십니다.

 

연인들이 그들만의 비밀스러운 사랑을 나누듯이

우리도 골방에서 하나님과 친밀한 사랑의 밀어를 나누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 고백을 늦추지 않습니다.

 

이처럼 구약 성경 아가서는

하나님과 우리들 간의 신비로운 관계를

연인의 언어로 표현해준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아가서 차례를 맞았으니

참빛 식구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아가서를 읽으시면서

하나님과 단둘이 깊은 대화와 사귐의 시간을 가지시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이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 때에,

, 설레는 나의 마음! (아가서 5:4)

My beloved put his hand to the latch, and my heart was thrilled within me.(Song 5:4)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 마음의 문틈에 손을 살짝 들이미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마음속에 설렘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주님의 얼굴을 보고, 주님의 마음을 느끼고,

신앙의 신비 속으로 들어가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시는 참빛 식구들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어둡고 혼란스런 세상이지만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거룩한 시간을 꼭 갖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12.15 이-메일 목회 서신)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0: 시편 129편

마음속에 촛불 세 개 켜고 대강절 셋째 주일을 맞이합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외세의 침입과 식민지 통치 속에 백성들의 삶은 날로 피폐해졌습니다. 불안한 시대가 도래하면 그 틈을 타서 자신의 몫을 챙기고, 정권에 아부해서 얻어낸 권력으로 백성들을 괴롭히는 악한 사람들이 꼭 나타납니다. 예루살렘에서 식민지 왕 노릇을 하던 헤롯 왕가와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이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어둡다 보니 성경을 읽다 보면 힘든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힘없고 배고픈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함께 하실 것이라는 위로의 말씀도 많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실 약속하신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인간이 통치하는 세상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메시아가 빛으로 임하면 어둠이 사라지고 밝은 세상이 올 것을 믿었습니다.

 

드디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막상 메시아 예수님이 오셨지만 이스라엘은 알아보지 못한 채 어둠 속에서 헤맸습니다. 그래도 빛 되신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를 믿고 생명을 얻은 백성들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안나와 시므온, 예수님을 따라나선 열두 제자들, 예수님을 만나서 병이 낫고 귀신이 쫓겨난 백성들, 예수님께서 무릎에 앉히고 축복해 주신 어린이들입니다. 우리도 같은 마음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시편 129편은 “이제는 말하기를”로 시작합니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일을 겪고 났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1-3절에 시편 기자가 겪은 어려움이 나옵니다. 어릴 때부터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여러 번이라는 말씀 속에서 괴롭힘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밭 가는 자들이 쟁기로 등을 갈아엎어서 고랑이 생길 정도라고 했겠습니까? 그런데 이제는 말할 수 있다고 안도와 승리를 선포합니다. 의로우신 여호와께서 악인들의 끈을 끊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악인들이 근접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신다고 고백합니다.

 

시편 129편은 “이스라엘”로 시작합니다. 민족이 겪은 고초를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공동체 감사시입니다. 자신들의 힘으로 불가능한 일을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셨습니다. 온 백성이 성전에 와서 감사의 노래를 부릅니다. 시편 129편을 개인적으로 읽어도 은혜가 됩니다. 과거의 고난이 사라지고 이제는 감사와 찬양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세력의 끈을 끊어 주셨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참빛 식구들의 고백과 감사의 찬양이길 간절히 바랍니다.-河-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9: 시편 128편

대강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마음속에 촛불 두 개 밝히고 어두운 세상에 생명의 빛으로 오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립니다.

 

대강절을 맞을 때마다, 성전에서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던 누가복음 2장의 안나와 시므온이 생각납니다. 두 사람은 로마가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헤롯이라는 교활한 왕이 로마의 꼭두각시가 되어서 백성들을 괴롭히던 시대에 살았습니다. 제사장들은 물론 예루살렘의 지도자들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급급했습니다. 그때 안나와 시므온은 성전에서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의 부모가 율법의 관습대로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데리고 갔을 때, 예수님께서 백성을 구하실 메시아임을 금방 알아보았습니다. 대강절 두 번째 주일, 우리 마음속에 메시아에 대한 열망이 있는지, 어두운 세상 속에서 빛을 기대하고 빛이 오셨음을 감지할 영적 분별력이 있는지 돌아봅니다.

 

또한 오늘은 12월 첫째 주일입니다. 2016년의 마지막 달이 시작되었고, 늘 그랬듯이 감사와 아쉬움 속에 연말연시를 맞이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바라보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니 감사한 일이 많이 있고, 수요예배에서 사도행전을 통해서 배우듯이 주님의 부흥을 더욱 사모하게 됩니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대로 “은혜로 사는 한 해”였음에 틀림없습니다. 참빛 식구들 한 분 한 분이 그랬고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보에 나온 연말 교회 일정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한 달 동안 교회를 섬길 일꾼들을 세우고, 목회 계획을 세우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모든 여정 가운데 주님께서 함께하시고, 우리 안에 감사가 넘치고 새해에 대한 기대가 밀물처럼 다가오길 원합니다.

 

오늘 살펴볼 시편 128편에는 “복”이 라는 말이 네 번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거기에 번영과 평안이 합쳐지니 시편 128편 말씀의 분위기가 매우 밝습니다. 1절에 나오는 “복이 있도다”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산상수훈의 “복이 있도다”와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4-5절의 복은 말 그대로 축복(blessing)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은 두 가지에서 비롯됩니다. 첫째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경외감을 느끼고 그 앞에서 무릎 꿇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신앙이라면, 그의 길을 걷는 것은 생활입니다. 행함이 동반된 믿음에 복이 임하고 행복할 수 있음을 깨우쳐줍니다.

 

주님 주시는 행복으로 한 해를 마감하기 원합니다. 어지러운 세상을 축복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세상과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河-

잠을 주시는도다

좋은 아침입니다.

 

1.

누구나 어려움이 있지만

목회 중에도 힘들 때가 있었습니다.

목회하지 않았다면,

겪지 않았을 일이라는 생각이 순간순간 스치곤 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침대에만 누우면 잠이 쏟아졌습니다.

심지어, 낮에도 잠시만 눈을 붙이면

깊은 잠을 자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밤낮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면

마음은 물론 몸까지 망가졌을 것 같습니다.

 

그때 생각난 말씀이

지난주에 함께 나눈 시편 127편 2절 말씀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2.

그런데 요즘은

잠이 쉽게 오지 않습니다.

 

새벽기도회를 위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면

정신이 점점 말똥말똥 해져서

다시 일어나서 책을 보거나, 예배를 준비하다가

늦게 잠을 청할 때가 많습니다.

 

작고 작은 저이지만

세상에 대한 걱정도 태산입니다.

국가나 지도자들이

백성들에게 평안한 잠을 주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새해 목회를 생각하면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염려가 생깁니다.

저에게 목회는 늘 손에 들고 있는 숙제이고 기도 제목이고

무릎 꿇지 않으면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십자가입니다.

 

참빛 식구들의 얼굴을 떠올려도

쉽게 잠이 오지 않습니다.

모두 힘겹게 살아가시는 것이 눈에 선합니다.

어르신들은 건강이,

젊은이들은 앞길을 놓고 정말 다급한 기도가 나옵니다.

 

3.

저뿐만 아니라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한참을 뒤척이는 참빛 식구들이 많이 계실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올해 마지막 달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끔찍이 사랑하시는 참빛 식구들께

하늘의 평안이 임하길 기도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그리스도의 평안이 임하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지난주 말씀을 기억하고 깊이 묵상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개역개정)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그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 (새번역)

He gives to his beloved sleep.(Psalms 127:2)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께 잠을 주시고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더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12.1 이-메일 목회 서신)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8: 시편 127편

매주 주보에 명시되는 교회력에 따라서 스물일곱 번의 성경 강림주간이 끝났습니다. 교회력은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구주 예수님의 강림을 기다리는 대강절(Advent)을 시작으로, 주현절, 사순절과 부활절을 지나서 반년 이상을 성령강림 주간으로 보냅니다. 성령강림절의 강단 색깔이 초록색이듯이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의 도움과 인도하심으로 예수님을 닮아가고 생동감 있는 신앙인으로 자라가는 기간입니다.

 

교회력에서는 대강절 첫째 주일인 오늘부터 새롭게 한 해가 시작됩니다. 대강절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실 것을 기대한다는 뜻입니다. 대림절 또는 강림절이라고도 부릅니다. 대강절 강단 색깔은 왕이 오심을 기다린다는 뜻에서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보라색입니다. 대강절에는 4주간 동안 강단에 촛불을 하나씩 켜면서 성탄절을 기다립니다.

 

우리도 성탄절까지 마음속에 촛불을 하나씩 켜면서 대강절을 지내기 원합니다. 자신의 몸을 태워서 세상을 밝히는 촛불처럼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비워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자신을 두고 세상의 빛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빛으로 살기를 부탁하셨습니다. 빛은 어둠을 밝힙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암흑이라도 작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빛이 들어오면 순식간에 어둠이 사라집니다.

 

대강절을 맞아서 마음에 빛을 비추기 원합니다. 삶의 어두운 곳에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이 임하길 원합니다. 먹구름이 잔뜩 드리워 있는 세상도 대강절을 맞아서 빛으로 밝아지길 원합니다. 이처럼 대강절은 기대를 갖고 살아가는 기간입니다. 무엇보다 아기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면서 안나와 시므온처럼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입니다. 대강절을 보내면서 우리 안에 소망의 빛이 비치길 간절히 원합니다.

 

오늘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여덟 번째인 시편 127편을 함께 살펴봅니다. 솔로몬의 시라는 표제어로 보아서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이 인생을 돌아보면서 부른 노래임에 틀림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을 지켜 주시지 않는다면 지키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을 세워 주시지 않으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됨을 깨달은 순례자의 간증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전도서의 교훈과도 맞물립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세상과 인생에 주인 되시고 인도자 되심을 인정해야 함을 해가 지날수록 느낍니다. 하나님 안에서 진실하고 의롭게 사는 것이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비결임도 깨닫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인생길을 걷기로 재차 다짐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