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9: 시편 128편

대강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마음속에 촛불 두 개 밝히고 어두운 세상에 생명의 빛으로 오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립니다.

 

대강절을 맞을 때마다, 성전에서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던 누가복음 2장의 안나와 시므온이 생각납니다. 두 사람은 로마가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헤롯이라는 교활한 왕이 로마의 꼭두각시가 되어서 백성들을 괴롭히던 시대에 살았습니다. 제사장들은 물론 예루살렘의 지도자들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급급했습니다. 그때 안나와 시므온은 성전에서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의 부모가 율법의 관습대로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데리고 갔을 때, 예수님께서 백성을 구하실 메시아임을 금방 알아보았습니다. 대강절 두 번째 주일, 우리 마음속에 메시아에 대한 열망이 있는지, 어두운 세상 속에서 빛을 기대하고 빛이 오셨음을 감지할 영적 분별력이 있는지 돌아봅니다.

 

또한 오늘은 12월 첫째 주일입니다. 2016년의 마지막 달이 시작되었고, 늘 그랬듯이 감사와 아쉬움 속에 연말연시를 맞이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바라보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니 감사한 일이 많이 있고, 수요예배에서 사도행전을 통해서 배우듯이 주님의 부흥을 더욱 사모하게 됩니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대로 “은혜로 사는 한 해”였음에 틀림없습니다. 참빛 식구들 한 분 한 분이 그랬고 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보에 나온 연말 교회 일정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한 달 동안 교회를 섬길 일꾼들을 세우고, 목회 계획을 세우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모든 여정 가운데 주님께서 함께하시고, 우리 안에 감사가 넘치고 새해에 대한 기대가 밀물처럼 다가오길 원합니다.

 

오늘 살펴볼 시편 128편에는 “복”이 라는 말이 네 번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거기에 번영과 평안이 합쳐지니 시편 128편 말씀의 분위기가 매우 밝습니다. 1절에 나오는 “복이 있도다”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산상수훈의 “복이 있도다”와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4-5절의 복은 말 그대로 축복(blessing)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은 두 가지에서 비롯됩니다. 첫째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경외감을 느끼고 그 앞에서 무릎 꿇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신앙이라면, 그의 길을 걷는 것은 생활입니다. 행함이 동반된 믿음에 복이 임하고 행복할 수 있음을 깨우쳐줍니다.

 

주님 주시는 행복으로 한 해를 마감하기 원합니다. 어지러운 세상을 축복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세상과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河-

잠을 주시는도다

좋은 아침입니다.

 

1.

누구나 어려움이 있지만

목회 중에도 힘들 때가 있었습니다.

목회하지 않았다면,

겪지 않았을 일이라는 생각이 순간순간 스치곤 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침대에만 누우면 잠이 쏟아졌습니다.

심지어, 낮에도 잠시만 눈을 붙이면

깊은 잠을 자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밤낮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면

마음은 물론 몸까지 망가졌을 것 같습니다.

 

그때 생각난 말씀이

지난주에 함께 나눈 시편 127편 2절 말씀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2.

그런데 요즘은

잠이 쉽게 오지 않습니다.

 

새벽기도회를 위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면

정신이 점점 말똥말똥 해져서

다시 일어나서 책을 보거나, 예배를 준비하다가

늦게 잠을 청할 때가 많습니다.

 

작고 작은 저이지만

세상에 대한 걱정도 태산입니다.

국가나 지도자들이

백성들에게 평안한 잠을 주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새해 목회를 생각하면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염려가 생깁니다.

저에게 목회는 늘 손에 들고 있는 숙제이고 기도 제목이고

무릎 꿇지 않으면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십자가입니다.

 

참빛 식구들의 얼굴을 떠올려도

쉽게 잠이 오지 않습니다.

모두 힘겹게 살아가시는 것이 눈에 선합니다.

어르신들은 건강이,

젊은이들은 앞길을 놓고 정말 다급한 기도가 나옵니다.

 

3.

저뿐만 아니라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한참을 뒤척이는 참빛 식구들이 많이 계실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올해 마지막 달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끔찍이 사랑하시는 참빛 식구들께

하늘의 평안이 임하길 기도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그리스도의 평안이 임하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지난주 말씀을 기억하고 깊이 묵상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개역개정)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그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 (새번역)

He gives to his beloved sleep.(Psalms 127:2)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께 잠을 주시고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더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12.1 이-메일 목회 서신)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8: 시편 127편

매주 주보에 명시되는 교회력에 따라서 스물일곱 번의 성경 강림주간이 끝났습니다. 교회력은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구주 예수님의 강림을 기다리는 대강절(Advent)을 시작으로, 주현절, 사순절과 부활절을 지나서 반년 이상을 성령강림 주간으로 보냅니다. 성령강림절의 강단 색깔이 초록색이듯이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의 도움과 인도하심으로 예수님을 닮아가고 생동감 있는 신앙인으로 자라가는 기간입니다.

 

교회력에서는 대강절 첫째 주일인 오늘부터 새롭게 한 해가 시작됩니다. 대강절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실 것을 기대한다는 뜻입니다. 대림절 또는 강림절이라고도 부릅니다. 대강절 강단 색깔은 왕이 오심을 기다린다는 뜻에서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보라색입니다. 대강절에는 4주간 동안 강단에 촛불을 하나씩 켜면서 성탄절을 기다립니다.

 

우리도 성탄절까지 마음속에 촛불을 하나씩 켜면서 대강절을 지내기 원합니다. 자신의 몸을 태워서 세상을 밝히는 촛불처럼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비워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자신을 두고 세상의 빛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빛으로 살기를 부탁하셨습니다. 빛은 어둠을 밝힙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암흑이라도 작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빛이 들어오면 순식간에 어둠이 사라집니다.

 

대강절을 맞아서 마음에 빛을 비추기 원합니다. 삶의 어두운 곳에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이 임하길 원합니다. 먹구름이 잔뜩 드리워 있는 세상도 대강절을 맞아서 빛으로 밝아지길 원합니다. 이처럼 대강절은 기대를 갖고 살아가는 기간입니다. 무엇보다 아기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면서 안나와 시므온처럼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입니다. 대강절을 보내면서 우리 안에 소망의 빛이 비치길 간절히 원합니다.

 

오늘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여덟 번째인 시편 127편을 함께 살펴봅니다. 솔로몬의 시라는 표제어로 보아서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이 인생을 돌아보면서 부른 노래임에 틀림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을 지켜 주시지 않는다면 지키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을 세워 주시지 않으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됨을 깨달은 순례자의 간증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전도서의 교훈과도 맞물립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세상과 인생에 주인 되시고 인도자 되심을 인정해야 함을 해가 지날수록 느낍니다. 하나님 안에서 진실하고 의롭게 사는 것이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비결임도 깨닫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인생길을 걷기로 재차 다짐합니다. -河

유토피아

영국의 저술가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소설 속의 유토피아는 유토푸스라는 사람이 만든 육지에서 조금 떨어진 섬입니다. 가족 단위로 생활하는 주민들은 한 군데 오래 머물면 타성에 젖고 부패하기 쉽기 때문에 10년마다 이사해야 합니다. 유토피아의 주민들은 하루에 여섯 시간 일하는데, 게으름 피우는 사람없이 모든 주민이 똑같이 일하니 노동생산성이 매우 높습니다. 화폐가 없어서 재산 축적이 불가능합니다. 주민들은 시장에 가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만큼 갖다가 먹고 쓰면 됩니다. 금이나 은같은 귀금속은 노예들을 결박하는 쇠사슬로 사용됩니다. 주민 투표로 선출된 지도자가 독재를 일삼거나 부패하면 곧바로 퇴각시킵니다.

 

16세기 르네상스 시대를 살았던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모든 사람이 꿈꾸는 이상향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유토피아>라는 제목은 “없다”라는 헬라어 <우>에 장소를 가리키는 <토포스>가 결합한 말로서 “지상에 없는 장소(no-place)”를 가리킵니다. 유토피아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탐욕과 교만, 권력에 취한 세상이 유토피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을()로 사는 우리네 범인들은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살아가는 유토피아를 꿈꾸지만, 재물과 권력을 손에 쥐고 수퍼 갑(甲)으로 사는 이들은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사는 유토피아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을 것입니다.

 

토머스 모어의 친구였던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는 <우신예찬>이라는 풍자소설을 썼습니다. “모리아”라는 여신을 통해서 당시에 부패했던 종교계와 가진 자들의 위세를 비판합니다. 두 눈 가진 사람이 외눈박이 동네를 방문하면 바보 취급받는 것이 우리네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동굴 안에서 그림자만 보고 사물을 인식하는 사람들에게 동굴 밖의 세상을 알려주면 도리어 그를 어리석다고 놀립니다. 우신예찬의 주인공 모리아가 세상을 올바로 보고 있지만 바보 취급받듯이 말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96년 전, 유토피아를 꿈꾸며 유럽을 떠나서 신대륙에 도착한 102명의 청교도가 있었습니다. 영국 국교회에 저항하며 바보처럼 살았던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66일 동안 메이플라워를 타고 우여곡절끝에 대서양을 건넜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유토피아를 꿈꾸며 목숨 걸고 대서양을 건넜지만, 신대륙의 혹독한 추위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해 겨울을 나면서 절반이 죽고 50여 명만 살아남습니다.

 

이들이 찾은 신대륙도 유토피아는 아니었습니다. 망연자실하고 있을 때, 아메리칸 인디언 원주민들이 씨를 뿌리고,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고, 가축을 키우는 법 등을 가르쳐줍니다. 어리석고 야만인처럼 여겼던 원주민들이 청교도들에게 살길을 열어준 것입니다. 그해 가을, 청교도들이 원주민들을 초대해서 감사의 예배와 축제를 벌였는데 그 순간은 유토피아였을 것입니다. 첫 번째 추수감사절의 아름답고 정겨운 모습입니다.

 

세상에 유토피아는 없을 것 같습니다. 토머스 모어가 그린 유토피아 역시 완벽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는 “디스토피아(나쁜 곳)”로 불릴 정도로 추하고 슬픈 일들이 매일같이 일어납니다. 편견도 심해서, 두 눈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사람을 바보 취급하고 진실을 왜곡합니다. 정치 지도자들은 선거 때마다 유토피아를 약속하지만, 권력을 손에 쥐면 자기 배를 채우고 갑질하기에 바쁩니다. 하나님께서 선하고 아름답게 만드신 세상이 망가지는 것을 보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유토피아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의와 희락과 화평의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 임하길 기도합니다. 대서양을 건넌 청교도들처럼 밀려오는 파도를 넘어서 유토피아를 향해서 나갑니다. 힘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연대하고 서로 격려합니다. 어리석다고 손가락질당해도 진실되고 바른길을 걸어갑니다. 더불어 사랑을 나누고, 깜깜한 세상에 빛을 밝힙니다. 정의가 물같이, 하나님의 공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라는 아모스 선지자의 말씀도 기억합니다. 세상 속에 개입하실 하나님의 손길을 기대하면서, 유토피아를 마음 속에 꼭꼭 숨겨둔 채 눈물로 씨를 뿌립니다. 가까이는 추수감사절에 함께 모이는 가족, 교회 식구들 그리고 이웃들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 유토피아를 경험하길 간절히 원합니다. (2016년 11월 24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추수감사절에

올해도 어김없이 추수감사절을 맞습니다. 396년 전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메이플라워를 타고 102명의 청교도가 신대륙에 도착했습니다. 지금도 보스턴 근교 플리머스에 가면 메이플라워호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고, 이들이 첫 번째로 밟았다는 바위가 기념물로 보관되어 있습니다.

 

청교도들이 66일간의 항해 끝에 신대륙에 도착했지만, 미국 동부의 혹독한 추위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겨울을 나면서 절반이 죽고 봄을 맞았지만 살아남은 50여 명도 신대륙에 정착하는 것이 막막했습니다. 그때 원주민들과 그들의 추장이 씨를 뿌리는 방법부터 가축을 키우는 비결까지 자세하게 알려줍니다. 원주민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청교도들은 신대륙에서 첫 번째 추수한 그해 가을, 원주민들을 초대해서 감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지키는 추수감사절의 유래입니다.

 

그 이후 해마다 추수감사절을 지켜오다가, 1863년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11월 셋째 주 목요일을 국가 공휴일로 제정하였습니다. 추수감사절이 되면 온 가족이 모이고, 원래의 습관대로 칠면조 고기를 먹으면서 만찬과 사귐을 갖습니다. 우리나라 고유의 명절 추석과 매우 흡사합니다. 올 추수감사절에도 4천만 이상이 이동한다니 미국 최대의 휴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요즘은 상술이 발달해서 추수감사절이 쇼핑하는 절기로 전락한 느낌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추수감사절 이튿날 새벽부터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을 하더니 요즘은 추수감사절 저녁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추수감사절의 원래 정신이 점차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추수감사절에는 변함없이 깊은 감사가 깃들어 있습니다. 낯선 땅 신대륙에 도착해서 1년을 살아남은 청교도들의 진심 어린 감사입니다. 우리도 미국에 와서 살고 있습니다. 수십 년 전에 오셔서 정착한 어르신들부터 갓 미국에 오신 식구들까지 우리는 모두 조국을 떠나서 미국에 왔다는 공통점을 갖고 살아갑니다. 우리의 삶도 녹록지 않습니다. 당장 올 한 해를 돌아봐도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는 고백이 절로 나옵니다. 어느 한 가지 쉬운 일이 없었고, 곳곳에 돌부리가 있어서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셨고, 일으켜 주셔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물론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줄 믿고 추수감사절을 맞이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찬양대를 중심으로 참빛 식구들 모두 음악 예배로 주님께 드립니다. 하나님께 마음껏 감사하고, 한마음으로 주님의 이름을 마음껏 찬양하기 원합니다. 할렐루야!-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