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가 없었더라면

좋은 아침입니다.

1.

새벽기도회에서

구약성경 욥기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새벽마다 한장씩 읽어온 것이

욥기까지 왔으니

보슬비에 옷이 젖는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구약성경의 욥기는

구약 전체의 메시지에서 옆으로 살짝 비껴 서 있습니다.

모세오경 특히 신명기로 대표되는 구약성경에서는

의인은 복을 받고

악인은 벌을 받는다는 인과응보의 신앙이 주류를 이룹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라살고

의인에 길에 서 있으면

하늘의 복이 임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반대로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고

죄인의 길로 가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명쾌하지만

우리네 인생이나 어그러진 세상을 설명하기에는

조금 단순할 수 있습니다.

2.

욥기로 오면

상황이 바뀝니다.

욥은 당대의 의인이었습니다.

부유했습니다.

열 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신명기 말씀 대로 축복받은 의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고난이 닥쳤습니다.

자녀들과 재산이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사라지고,

온 몸에 종기가 나서 기왓장으로 긁어야 했습니다.

오죽했으면

그의 아내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하나님을 예배했고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하나님과 사단이 내기를 하신 겁니다.

사단은 욥이 복을 받았으니 하나님을 경외하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까닭없이” 즉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할 사람은 세상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욥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을 것임을 믿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대표선수로 욥을 택하시고 인정하셨습니다.

욥은 하나님 말씀대로 잘 버텼습니다.

하나님의 믿음과 욥의 믿음이 만난 것입니다.

3.

욥기의 진수는 3장부터 이어지는

욥과 친구들의 논쟁입니다.

친구들의 신앙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과응보입니다.

욥이 죄를 지어서 고난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인과응보 신앙에 익숙하면

욥기를 읽으면서

친구들의 말에 빠져들 수도 있습니다.

욥은

까닭없이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의인의 고난입니다.

욥은 차근차근

또 때로는 감정에 격해서

친구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변호합니다.

고난 가운데 있던 욥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으로

욥기가 마무리됩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찾아오셨습니다.

폭풍 속에서 임하신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주이심을 밝히십니다.

욥은 재를 뒤짚어쓰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 42:5)

I had heard of you by the hearing of the ear, but now my eye sees you. (Job 42:5)

욥은

까닭없는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4.

욥기는 어렵고 생소합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구약성경의 주류 메시지에서 빗겨 있습니다.

하지만

욥기는 우리 인생은 물론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서 닥치는 고난을 두고 고민하게 만들고,

하나님 백성으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지 알려줍니다.

의인도 고난받을 수 있습니다.

까닭없이 고난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고난을 허락하시고

욥처럼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눈으로 보길 원하십니다.

신앙의 길은 고난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까닭없는 고난도 받아 들이고

고난 속에서 자신이 피조물임을 깨닫고

고난 속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욥기를 읽으면서

귀로만 듣던 말씀이

눈으로 보게 되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다면

아주 깊은 신앙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새벽기도회에 많이 나오지 못하시지만

사순절을 보내면서

욥기 말씀을 (쉬운 성경으로) 차근차근 읽으시고 묵상하시면서

신앙과 삶을 욥기에 비춰서 재조정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 42:5)

I had heard of you by the hearing of the ear, but now my eye sees you. (Job 42:5)

하나님 아버지,

사순절을 보내는 참빛 식구들께서

욥이 만났던 하나님을 만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2.18 이-메일 목회 서신)

화평케 하는 자

세상이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우리가 사는 미국은 올해 말 대통령 선거가 있는데 각 당 후보들이 제각기 자신의 주장을 펼치면서 예비선거를 치르고 있습니다. 후보마다 공약이 제각각입니다. 만약에 그들의 약속이 한꺼번에 지켜진다면 미국은 산으로 갈 것 같습니다. 이렇듯 요즘 시대는 올바른 가치 기준 없이 너도나도 옳다고 말하는 상대주의가 대세입니다. 절대적인 진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 구원과 같은 거대담론이라고 불리는 크고 중요한 주제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개인이나 각 단체의 이해관계가 중요할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나와 내 편만이 존재할 뿐 우리라는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정겨운 모습과 민족이나 국가의 대의를 위해서 온 백성이 단합하는 일보다는 갈등과 분열이 앞선 시대가 되었습니다.

 

개인의 삶 속에서도 관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부부관계는 물론이고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도 쉽게 허물어집니다. 희생과 섬김의 동지의식보다 이기주의가 앞서고 강자가 약자를 무시하는 험악한 시대로 변하고 있습니다. 관계의 단절은 세상은 물론 개인의 삶이 메말라갑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서 편안한 삶을 살고 있지만 동시에 마음은 사막처럼 갈라지고 황폐해지니 왠지 모르게 서글퍼질 때도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관계의 단절이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에덴에서 쫓겨난 창세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과의 관계는 물론 아담과 이브, 자연 만물과의 관계가 망가졌습니다. 죄의 결과인 셈입니다. 또한 이브가 사단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따먹었으니 사단의 계략에 넘어간 것입니다. 관계가 단절된 세상은 “탄식(groaning)”뿐입니다. 틈이 점점 벌어집니다. 갈등이 생기고 평화가 깨졌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거역한 죄의 결과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 힘으로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수 없을 만큼 연약했을 때, 하나님을 떠나서 경건하지 못한 상태에 있었을 때, 죄인 되었을 때,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대로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와서 그의 사랑을 힘입고, 자신이 하나님을 거역했던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면 그 사랑 안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속에서 화평케 하는 자(peace maker)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갈등과 혼란에 가슴 아파하면서 그곳에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의 사랑을 세상과 나누는 것입니다. 양보하고, 희생하고, 섬기고 무엇보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작은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는 곳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임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목된 그리스도인의 의무이자 특권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로 사시는 참빛 식구들이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河-

아비가일

인생은 만남의 연속입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부모님과 가족들, 나이가 들면서 가까워진 친지들과 이웃들, 그리고 우리를 가르쳐주신 선생님들과 어르신들과의 만남이 끊임없이 계속됩니다.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신 돕는 배필 즉 배우자와의 만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모든 만남이 복될 수는 없지만, 이왕이면 좋았던 기억들을 간직하고 좋은 만남을 기대하며 사는 것이 행복일 것입니다.

 

구약 성경의 다윗에게도 좋은 만남이 많았습니다. 그 가운데 훗날 그의 아내가 된 아비가일과의 만남이 눈에 띕니다. 아비가일의 이름이 “나의 아버지는 기쁨입니다”라는 뜻이니, 웃음이 떠나지 않는 가정에서 곱고 예쁘게 자랐을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도 아비가일을 두고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아비가일은 고집이 세고 포악한 남편에게 시집갔습니다. 그녀의 남편 이름이 나발인데 어리석다는 뜻입니다. 아비가일의 남편이 부유한 목축업자였다는 사실 외에 달리 좋을 것이 없어보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서 광야생활을 하고 있을 때 먹을 것이 필요했습니다. 아비가일의 남편 나발이 잔치를 벌인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을 보내서 먹거리를 요청합니다. 다윗의 부하들이 들에서 나발의 가축들과 목자들을 지켜준 일이 있었기에 나발이 자신의 요청을 흔쾌히 들어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어리석고 고약한 마음씨의 나발은 다윗을 비난하면서 다윗이 보낸 사람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자존심이 몹시 상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데리고 있던 400명의 군사들에게 칼을 차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나발을 치러 올라갑니다. 다윗은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인물입니다. 나발이 괘씸할 수는 있어도 광야에 사는 일개 목축업자에게 그렇게까지 흥분해서 힘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물론 우리도 별것 아닌 사람이 자신을 비난하거나 작은 일로 자존심이 상하면 참지 못하고 발끈할 때가 있습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그때 나발의 부인 아비가일이 음식을 갖고 다윗을 만나러 옵니다. 여인 혼자서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자기 집으로 쳐들어오는 다윗을 마주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의 발 앞에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애원합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윗의 마음을 돌려놓는 중요한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생명 보자기”로 싸서 보호해 주실 테니 먹거리가 없어도 또한 자존심이 상해도 함부로 칼을 들지 말라는 조언입니다. 다윗이 물 맷돌로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무너뜨렸듯이, 하나님께서 물 맷돌로 다윗의 원수들을 쓰러뜨릴 것이라는 말도 덧붙입니다. 다윗의 마음을 돌려놓기에 충분한 명연설이었습니다. 다윗이 군사를 데리고 자기 자리로 돌아갑니다. 이렇게 아비가일은 자신의 가정을 살렸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사소한 일로 죄를 짓지 않도록 지혜롭게 조언했습니다.

 

군사들을 이끌고 나발을 죽이러 가는 다윗의 모습은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숨어있는 동굴에 제 발로 걸어들어온 사울도 살려주었던 다윗이 음식을 달라는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발과 그의 가족을 전멸시키는 것은 졸장부의 행세입니다. 자칫 큰일을 앞두고 창피한 이력을 남길 수 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이 다윗에게 고귀한 품격을 되찾게 도와주었습니다. 이것을 두고 유진 피터슨이라는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아비가일의 아름다움은 다윗을 놀라게 하여 갑작스럽게 빠져 들어갔던 추함에서 그를 구해 내었고, 다윗은 다시 하나님을 보고 듣게 된다.”

 

인생길에서 누구를 만나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추한 마음도 아름답고 고귀하게 변합니다. 다시금 하나님을 보고 듣게 하는 만남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선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이 선하게 변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되찾게 해 줄 만남을 기대합니다. 귀한 만남이 가져올 아름답고 선한 세상을 꿈꾸면서 새봄을 맞고 싶습니다.(2016년 2월 25일 SF 한국일보 종교칼럼)

주의 은혜

사순절을 맞아서 로마서5장 전반부(1-11절)를 함께 살펴보고 있습니다. 로마서는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 로마의 교인들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입니다. 로마라는 지역 특성상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기독교로 개종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에게 예수님을 믿는다는 의미가 무엇이고(1-4장), 예수님을 믿었을 때 어떤 은혜가 임하며(5-8장),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12-15장)에 대해서 차근차근 알려줍니다.

 

당시에는 예루살렘에 살던 유대인들이 로마로 이주해서 살기도 했는데, 이들 가운데 예수님을 믿고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와 구약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있었던 유대인들이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에 대해서 여전히 궁금한 것이 많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구약성경과 비교해 가면서 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진리인지 설명합니다.

 

이번에 살펴보는 로마서 5장은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은혜와 특권을 설명하는 본문(5-8장)의 서두입니다. 1절에서 바울은 앞에서 전했던 복음을 요약합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니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는 제안입니다. 2절부터는 믿음으로 은혜에 들어가고 그 안에 서서 주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할 것을 본격적으로 제안합니다. 신앙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은혜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서서 주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은혜 속에 들어갔을 때, 어떤 어려움이 와도 견딥니다. 인내를 통해서 연단을 이룹니다. 하나님 백성으로 성숙하고 멋진 성품과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소망으로 나갑니다. 여기서 소망은 환난을 극복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부터, 하나님 나라를 향한 소망과 죽음 이후의 영원한 삶을 가리키는 포괄적인 표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믿음 가운데 소망으로 나갑니다. 소망이 우리를 살리고, 견디게 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갑니다.

 

믿음과 소망은 사랑을 통해서 우리에게 임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목숨까지 바치신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에게 쏟아 부어졌다고 했습니다. 선별적으로 부어진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그리고 지속해서 부어졌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예수님께서 경건하지 못한 자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연약함은 말 그대로 힘이 없는 상태입니다. 하나님을 찾을 힘이 없으니 경건하지 못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힘이 되셨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해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사랑을 확증해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음 주에는 “우리가 아직 원수 되었을 때”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평케 되었다고 알려줍니다. 연약한 자, 죄인, 원수로 진행되면서 정도가 심해지는데 하나님의 사랑은 똑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신 사랑입니다. 사순절을 보내면서, 주님의 사랑과 은혜 속에 믿음으로 들어가길 원합니다. -河-

수요예배에서는

그동안 수요예배에서는 잠언 말씀을 매주 한 장씩 살펴보았습니다. 32주에 걸친 대장정이었습니다. 잠언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진정한 지혜임을 알려 주었습니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백성으로 “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살아야 함을 배웠습니다.

 

이번 수요일부터 전도서를 공부합니다. 잠언이 하나님 백성의 구별된 삶에 대한 구체적인 말씀이라면, 전도서는 하나님 백성이 세상을 또는 인생을 어떤 태도로 바라봐야 하는 지에 대한 교훈입니다. 전도서는 솔로몬이 왕으로서 부귀영화를 모두 누린 후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기록한 말씀이라고 전해집니다. 왕으로 한평생을 살았지만,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니 “헛되고 헛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헛된 것은 인생을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보는 한탄이 아니라 인생 자체가 별반 특별하지 않다는 조망입니다. 왕으로 사나 보통 백성으로 사나, 부자든지 가난한 자든지 오십보백보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젊어서부터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분복(分福)을 누리길 부탁합니다.

 

수요예배에 오시는 성도님들께서는 전도서를 함께 읽어가면서 하나님 앞에서 각자의 삶을 돌아보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을 의미 있게 살기로 결단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수요예배에 참석하지 못하시면 주일날 안내 데스크나 목요서신에 첨부된 수요예배 해설지를 참고해서 개인적으로 전도서를 읽어가시길 부탁드립니다. 올 사순절에는 전도서와 더불어 우리의 신앙이 깊어지고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 굳게 서길 원합니다.

 

새벽기도회에서는 욥기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을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욥1:8)라고 칭찬하십니다. 욥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진실한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욥을 시험해 보라고 자신 있게 말씀하실 정도로 온전한 신앙을 갖고 있었습니다. 열 명의 자녀들과 자신이 모은 재산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몸에 종기가 나서 기왓장으로 긁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었지만,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니 거두어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으니 화를 주시는 것도 당연하다고 받아들였습니다. 대단한 신앙입니다. 우리는 욥을 통해서 진정한 신앙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습니다. 참빛 식구들 모두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진실한 신앙으로 나가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말씀에서 배운 대로 살기로 애쓰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로마서 5장 5-6절에는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사랑이 매우 잘 드러나 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바 되었습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 예수님께서 약속대로 거룩하지도 않은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환난을 참아내고 연단을 거친 후에 갖게 된 소망은 우리를 절대로 부끄럽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우리에게 부어주신 주님의 사랑과 목숨까지 내어주신 예수님의 은혜에 들어갈 때 저절로 진실하고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근사하고 멋진 주님의 백성들로 하나님과 세상에 나가실 참빛 식구들을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河-

사순절을 맞으며

올해 목회 계획 가운데 하나가 참빛 식구들께서 교회력에 따라 사시도록 안내하는 것입니다. 교회력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대강절부터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실 것을 기다리면서 마음에 촛불을 밝히며 대강절을 보냈습니다. 성탄절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을 축하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할 구세주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성탄절이 지나고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사건을 시작으로 주현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주현절은 예수님의 공생애를 생각하면서 복음서 속에 나타난 예수님의 마음과 사역을 묵상하는 절기입니다. 교회력에서 대강절부터 주현절까지는 두 달 남짓 짧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오순절 성령 강림을 중요시하기 때문입니다.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절까지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사순절은 일 년 중 10분의 1을 경건의 훈련을 하면서 지낼 수 있는 절기입니다. 교회사에 보면 사순절에는 말씀 묵상, 금식과 기도,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신앙훈련에 힘썼습니다. 올해 사순절은 이번 주 수요일부터 시작됩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각자에게 맞는 사순절 묵상과 훈련을 통해서 신앙이 자라고 이웃을 섬기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올해의 첫 달에 시편 63편을 통해서 광야를 살아가는 하나님 백성의 삶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이제 오늘부터 한 달여 신약성경의 로마서 5장 전반부 말씀을 통해서 사순절을 지내는 우리가 하나님 사랑 속에 깊이 들어가기 원합니다.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에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롬1:16)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상에 선포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우리가 살펴볼 로마서 5장 1-11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 하나님 백성의 확신과 소망에 대한 말씀입니다. 로마서의 첫 번째 네 장에서 믿음이 강조되었다면, 다음 네 장은(5-8장) 소망에 초점을 맞춥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의 끝은 장차 임할 영광에 있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영광입니다. 은혜 속으로 들어가고 그 안에 서 있을 때 갖게 되는 소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평케 됩니다. 창조주되신 하나님과 화목케 하시려고 연약함과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과 소통이 이뤄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십자가의 은혜로 가능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영광스러운 지위를 얻게 되었고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할 소망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환난 가운데서도 기뻐합니다. 기뻐하는 척하거나 억지로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환난을 견디고 그 과정에서 단단한 신앙과 성숙한 성품을 갖게 되는 기쁨을 누립니다. 어떤 환난이 닥쳐도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을 갖고 기뻐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소망과 기쁨을 잃지 않고 주의 은혜를 누리기 원합니다.-河-

주님의 오른 손

작년 이맘때 무명의 목적헌금이 씨앗이 되어서 추진했던 본국 대학생 초청 행사가 열매를 맺어서 오늘 두 분의 젊은이가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짧은 일정이지만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앞으로의 삶에 힘이 되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손길을 깊이 체험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프로그램을 주관해 주신 초청팀과 숙박과 식사, 안내와 기도로 함께해 주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일이 계기가 되어서 우리 교회가 세상을 섬기는 일에 더욱 앞장설 수 있는 은혜가 임하길 기도합니다.

지난 주일에 임원회가 있었습니다. 올해 우리 교회가 집중할 사역을 몇 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7-8월경에 멕시코 단기 선교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일정과 계획이 나오면 따로 공지를 하겠습니다. 8월에 전교인 야외예배를 남선교회 주관으로 가게 됩니다. 2년에 한 번 갖는 야외예배를 통해서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성도의 교제가 있을 것을 기대하니 벌써 마음이 설렙니다. 참빛 보이스도 성도님들의 재능기부에 힘입어 계속하게 될 것입니다. 3월에는 새로 오신 성도님들이나 예수님을 믿기 원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신앙 터잡기 성경공부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올해 11월에는 새 교회로 이전한 지 5주년이 됩니다. 감사의 예배도 준비할 예정입니다.

주일 설거지 당번에 대한 논의도 있었습니다. 주일 식사분량이 많아지면서 설거지가 늘어나고, 속회마다 돌아가는 설거지 횟수가 빨리 돌아와서 설거지 조를 따로 구성하자는 논의였습니다. 성도님들께서 기쁨으로 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교회가 배려하고 지혜를 모으기로 했습니다. 이 밖에도 교회학교와 속회 등 교회가 해야 할 사역들이 있습니다. 지혜롭게 조절해 가겠습니다. 우리 교회는 행사가 많지 않습니다. 대신에 성도님들의 신앙이 자라고, 세상 속에서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힘을 모으고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데 집중하기 원합니다. 우리 교회사역에 좋은 의견이 있으신 분들은 안내 데스크 건의함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늘 그랬듯이 올해도 교회나 성도님들의 삶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표어 그대로 은혜로 사는 한 해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1월 한 달 동안 릴레이 금식을 하면서 성도님들과 교회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참여해 주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기도에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세우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확실한 고백과 믿음을 갖고 올 한 해 은혜로 살아갑시다.

시편 63편의 마지막 시간을 맞았습니다. 유다 광야의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을 갈망했습니다. 성소에서 보았던 권능과 영광을 광야에서 보았습니다. 손을 펴서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자신의 생명보다 귀하다고 고백했습니다. 기쁜 입술로 주를 찬양하고 주의 날개 아래서 쉼을 가졌습니다. 광야에서 누릴 수 있는 은혜를 모두 누린 셈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주의 오른손이 자신을 붙들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광야를 사는 다윗의 신앙이자 삶이었습니다. 올 한 해 우리 앞에 펼쳐진 광야를 다윗과 같은 믿음으로 능히 걷기 원합니다.-河-

오벧에돔

연초부터 미국 전역이 파워볼 열풍에 휩싸였습니다. 당첨금이 16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숫자까지 뛰면서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2불짜리 티켓이 수십 억이되는 꿈을 꾸게 하였습니다. 파워볼 티켓을 산 사람들은 누구나 16억의 행운이 자신에게 찾아오길 희망했을 겁니다. 대부분 우물에서 숭늉을 찾듯이 파워볼에 당첨된 것을 가정하고 그 이후에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속에 그려보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파워볼에 대한 무지개꿈은 당첨자 세 명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해프닝으로 끝났습니다.

 

저는 16억 달러라는 당첨금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파워볼을 비롯한 복권시스템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당첨금에 한도를 정해서 일정 금액을 넘으면 무효로 하던지 미리 상금으로 배분하는 규칙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금액이 천정부지로 치솟게 되니 잠시 잠깐이지만 온 세상을 헛된 공상에 휩싸이게 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행운은 로또처럼 찾아오지 않습니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의 인생이 도리어 망가진 사례도 매우 많습니다.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행운은 매일의 삶에 충실해서 얻는 깊은 감사입니다. 곁눈질하거나 다른 사람과 경쟁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걷고 난 이후에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는 순간이 최고의 행복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족들, 친지들, 성도들과 더불어 담소하고, 은밀히 이웃을 돕고 섬기며 사는 것이 16억 로또보다 가치 있는 인생입니다.

 

구약성경에 오벧에돔이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왕이 된 후에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 올 계획을 세웁니다. 어렵사리 왕이 된 다윗이기에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아니 그의 마음 한편에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면 커다란 행운이 몰려올 것이라고 기대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법궤를 모셔오는 과정에서 행운은 커녕 재앙이 내렸습니다. 수레를 끌던 소들이 갑자기 뛰자 운반을 책임지던 사람이 법궤를 손으로 붙잡았는데 현장에서 죽은 것입니다. 그것을 본 다윗이 겁을 먹고 법궤 운반을 중간에 포기합니다. 행운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했던 법궤가 죽음을 일으켰으니 다윗과 백성들이 느꼈을 공포가 엄청났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천덕꾸러기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법궤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은 왕의 명령으로 가드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법궤를 머물게 합니다. 로또는커녕, 만지기만 해도 죽는 법궤를 강제로 자신의 집에 들였으니 오벧에돔의 마음 역시 편치 않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모든 사람이 법궤를 피했고 오벧에돔만이 왕의 명령에 순종했을 수도 있습니다. 오벧에돔은 왕은 물론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선한 마음의 소유자처럼 보입니다. 하여튼 죽음을 감수한 모험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법궤를 모신 오벧에돔은 물론 그의 집안을 축복하신 겁니다. 왕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어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법궤를 모셨는데 그것이 축복의 통로가 되었으니 오벧에돔이 얼마나 기뻤을까요! 오벧에돔은 석 달 만에 하나님께서 공식적으로 인정하신 신앙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의 인생에 말 그대로 하늘나라 로또가 터졌습니다. 소식을 들은 다윗이 안심하고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갑니다. 다윗은 법궤와 함께 오벧에돔을 데려다가 높은 자리를 주면서 곁에 두고 싶었을 것입니다. 죽음을 부르던 법궤를 축복의 통로로 만든 대단한 신앙과 영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오벧에돔이 법궤를 지키는 문지기가 되었다고 전합니다. 당시에 문지기는 밤과 낮에 교대로 근무하는 거룩하지만 힘겨운 직책이었습니다. 요즘 식으로 하면, 자신의 집에서 일어났던 일을 갖고 언론 인터뷰도 하고 간증집회도 다니고 무엇보다 높은 지위를 차지해서 편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그는 법궤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출셋길을 마다하고 끝까지 법궤를 지켰습니다. 그 일을 천직으로 알았습니다. 오벧에돔이야 말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달은 인물입니다. 오벧에돔을 통해서 올 한해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야 함을 배웁니다. 헛된 꿈을 꾸기보다 분수를 지키면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최고의 신앙임을 배웁니다. (2016년 1월 28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주의 날개 그늘에서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이자 의무 가운데 하나는 신앙이 자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어떤 곳에 놓인 물체나 고인 물이 아닙니다. 신앙은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자라가는 유기적인 활동입니다. 여기서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구약 성경에 따르면 거룩하신 하나님을 믿기에 우리도 거룩해야 합니다. 거룩은 하나님 백성으로 구별된 생각과 삶을 드러내 보이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얼마나 구별된 삶을 사는 지가 곧 신앙의 성숙을 가늠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알려주는 신앙의 성숙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신 길을 우리도 따라 걷는 것입니다. 거룩함과 마찬가지로 세상 속에서 얼마나 예수님을 닮았는지, 사람들이 우리에게 그리스도인답다고 말하는 지가 신앙 성숙의 척도가 됩니다.

이렇게 각자의 신앙이 자라가고, 거룩하고 예수님을 닮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와 가정 그리고 세상 속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행하고 서로 협력할 때 신앙의 힘이 세상으로 흘러갑니다. 에스겔이 본 환상처럼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세상으로 흘러갈 때 그 물이 세상을 살리는 생명수가 됩니다. 고여 있는 우리만의 신앙이 아니라 세상으로 흘러들어 가는 살아있고 함께 나누는 신앙이 됩니다.

신앙의 성숙은 여러 가지 구체적인 모습과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동안 살펴본 시편 63편을 갖고도 성숙한 신앙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다윗처럼 광야와 같은 삶의 현장에서 “당신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몸과 마음을 맡깁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기쁨이 되려는 삶에 집중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손을 들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낫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여기까지 이른다면 꽤 성숙한 신앙입니다.

오늘 살펴보는 말씀에서도 성숙한 신앙에 대해서 배웁니다. 첫째는 감사와 찬송입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감사의 고백을 합니다. 광야의 삶이 척박한데도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것과 같은 만족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구원해 주신 은혜를 생각할 때 찬송이 나옵니다. 기쁨의 찬송입니다. 성숙한 신앙은 항상 기뻐하고 모든 일에 감사합니다.

둘째로 주의 말씀을 읊조리는 습관입니다. 광야의 다윗은 침상에서 주님을 기억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면서 묵상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주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그 말씀을 자신의 것으로 삼고 그대로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하는지가 신앙성숙을 가늠하는 잣대입니다. 말씀이 생명의 양식이 되어서 거룩함에 이르고 예수님을 닮게 됩니다.

셋째로 광야의 삶에서 지치고 외롭고 두려울 때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는 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주님을 피난처 삼고 그다음 일을 도모합니다. 사람들, 상황, 세상의 즐거움, 행운 등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어려울 때 주님을 먼저 찾고 주님께 나와서 무릎 꿇는 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올 한해 참빛 식구들 모두에게 신앙의 성숙이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河-

주의 인자하심

교회가 진행하는 대학생 초청 프로그램이 다음 주로 다가왔습니다. 1년 동안 차근차근 기도하면서 추진해 왔습니다. 또한 두 학생이 함께할 프로그램도 준비되었습니다. 온 교회가 같은 마음으로 이들을 환영하고, 특별히 두 학생의 숙식과 안내를 원하시는 분들은 초청팀(정은숙권사)에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1월 한 달 동안 교회가 릴레이로 금식하고 있습니다. 금식 기도에 참여해 주신 분들은 물론 온 교회가 한 해를 기도로 시작하기 원합니다. 특별히 이번 금식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우리 교회와 성도님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이타적 금식기도입니다. 금식하시면서 기도할 때, 올 한해 우리 교회의 사역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잠잠히 기도하는 가운데 성소에 임할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시길 원합니다. 또한 성도님들을 눈에 그리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 중에 생각나시는 성도님들의 이름을 불러 가면서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새해 첫 달을 우리 교회가 금식으로 기도하면서 은혜로 사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유다 광야에서”라는 표제어가 붙어 있는 시편 63편을 차례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광야의 다윗은 하나님을 향해서 “당신은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 간절히 하나님을 찾고, 그의 영혼이 주를 갈망하고, 그의 지친 육체로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성소에서 경험한 주님의 힘과 영광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지난 두 주간 시편 63편 1-2절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주님의 백성들이 광야를 걸어가는 바른 태도를 배웠습니다.

다윗은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사랑 속으로 들어갑니다. “주의 인자하심”은 변함없는 주님의 사랑을 일컫는 말입니다. “헤세드”라는 히브리어는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신약성경의 헬라어 “아가페”와 같은 뜻입니다. 다윗은 주님의 사랑이 자신의 생명보다 낫다고 고백합니다. 그의 삶을 능가하는 주님의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자신의 목숨보다 주님의 사랑이 더 귀함을 발견했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시니 광야에서 죽어도 아쉬움이 없다는 최고의 찬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속에 깊이 잠긴 경험을 하였던 다윗의 멋진 고백입니다.

그 사랑이 광야에서 임하니, 목마르고 배고프고 외롭고 추운 광야에서 찬양이 나옵니다. 힘이 없어 큰 소리로 찬양할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다윗의 찬양은 광야에 울려 퍼졌고, 하늘까지 이르렀을 것입니다. 이처럼 다윗은 생명을 보존하기 어려운 광야에 있으면서도 평생에 주님을 송축하겠다고 결심합니다. “송축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라크”에는 무릎꿇다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평생에 하나님을 향해서 무릎을 꿇고 살겠다는 결심입니다. 자신의 생명이 보장되지 않은 광야이건만 다윗의 시선은 이처럼 미래를 향합니다. “바라크”라는 동사를 하나님을 향해서 쓰면 송축하다가 되지만, 우리를 위해서 쓰면 “축복하다”가 됩니다. 광야의 다윗에게 복이 임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주님을 송축하고, 주님의 이름 앞에 손을 드는 축복입니다.

올 한해 우리가 걷는 인생길에 주님의 변치 않는 사랑이 임하고, 그 사랑 앞에서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을 향해서 손을 들기 원합니다. 할렐루야!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