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의 교회와

오늘은 교회력으로 주현절 후 첫째 주일입니다. 주현절(Epiphany)은 예수님께서 메시아로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일반적으로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공생애를 시작하신 때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이처럼 교회력은 성탄절 이후에 주현절로 빠르게 달려갑니다. 기독교 최고의 축제인 부활절에 맞추기 위함입니다. 주현절 기간에는 마가복음에서 배웠듯이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으로 옷을 입고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시편 63편을 갖고 올 한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나가고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아야 할 지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다윗이 유다 광야에 있을 때”라는 표제어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시편 63편은 다윗이 마르고 황폐한 광야에 있을 때 주님을 찾은 기도이고 신앙고백입니다. 우리의 삶도 광야길이기에 다윗의 고백이 실제로 다가옵니다. 삶이 평탄해도 우리의 마음이 마르고 황폐할 때가 있으니 유다 광야에서 주님을 찾은 다윗의 마음이 더 깊이 다가옵니다.

지난주에는 1절 말씀을 통해서 간절히, 의도를 갖고, 집중하면서 하나님을 찾은 다윗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다윗의 영혼이 하나님을 목말라했습니다. 자신의 육체가 지칠 정도로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광야 길을 걸을 때는 주변에 펼쳐진 환경을 둘러보거나 자신의 마음에 휩쓸리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께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찾고 바라는 마음가짐과 태도가 중요함을 배웠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면서 2016년 새해를 걸어가기 원합니다.

오늘은 시편 63편 2절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유다 광야의 다윗은 성소에서 주님을 바라보던 때를 회상합니다. 여기서 “바라보다”라는 뜻에는 단순히 어떤 사물이나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성소에 임하는 하나님의 비전을 보는 것을 뜻합니다. 성소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발견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다윗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해서 성소를 찾았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을 기대하면서 성소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렇게 유다 광야의 다윗은 성소에서 만났던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때 주셨던 비전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광야에 있으면서도, 성소에 임했던 주의 권능과 영광을 눈앞에 그리면서 성소를 향해서 기도하고 그때 만났던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구약의 제사나 성소 또는 성전이 사라진 오늘날, 우리에게 다윗이 회상했던 성소는 무엇보다 교회일 것입니다. 아담하고 아름다운 우리 예배처소가 있기에 성소라는 말이 더 확실하게 다가옵니다. 또한 성소는 모든 성도님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일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곧 교회요, 성도의 예배가 주님의 영광과 권능을 경험하는 통로입니다. 가정과 우리 자신도 주님의 성전입니다. 우리 삶 속에 주의 권능과 영광이 임하길 기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섬기는 교회와 예배가 꽤 중요합니다. 이곳에 주님의 권능과 영광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광야와 같은 인생길을 걸으면서 회상하고 바라보아야 할 곳이 곧 우리 교회이고 예배입니다. 우리 교회를 통해서 주님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원합니다. 할렐루야! -河-

은혜로 사는 한 해

2016년 새해 첫 주일입니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는 “은혜로 사는 한 해”입니다. 작년 말에 기도하면서 정한 새해 표어입니다. 은혜 없이 살 수 없는 우리지만 특별히2016년 새해에, 참빛 식구들과 교회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말 그대로 은혜를 사모하면서 살아야 할 한 해임이 틀림없습니다.

어르신들의 건강에도 은혜가 필요합니다. 해를 거듭하면서 건강이 예전같이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최고 연장자이신 박재순권사님부터 모든 어르신께서 올해도 영육간에 강건하시길 바라면서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경기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소규모 사업장은 여전히 힘겹기에 주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젊은이들에게도 주님의 세심한 인도하심의 은혜가 요청됩니다. 젊은이들의 삶이 쉽지 않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비싼 생활비가 큰 부담입니다. 학업, 직장, 연구 위에 하나님께서 힘과 지혜를 주시고 길을 열어주시길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도 주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교회에 젊은이들이 오면서 주일학교 아이들도 늘어나고 교회 사역도 예전보다 활기찼습니다. 올해에도 새로운 분들로 빈자리가 채워지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붙잡아 주시고, 친히 인도해 주셔야 합니다. 지금까지 교회를 지키시고 친히 세우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한 해를 은혜로 살기 원하면서 내일부터 1월 한 달 동안 온 성도님들이 자원해서 릴레이 금식에 참여하시길 부탁드립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대로 싸인해 주시고 하루 중 편한 시간에 금식으로 기도하시면 됩니다. 금식 기도는 위력이 있습니다. 온 교회가 한 달 동안 금식으로 기도하면서 새해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금식 가운데 교회는 물론 참빛 식구들 한 분 한 분을 눈에 그리면서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기 원합니다.

또한, 새해 첫 달에 교회가 기도하면서 준비할 것은 본국에서 대학생을 초청하는 행사입니다. 초청된 두 청년이 우리 교회와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그들의 인생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교회가 그들을 환영하고, 앞으로 초청팀에서 요청하는 것을 자원해서 섬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오늘부터 주일예배 순서도 약간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할 수 있지만 금방 적응될 것입니다. 변화된 예배에 대한 피드백도 기다립니다. 안내 데스크에 있는 건의함 상자에 여러분의 의견을 넣어주시기 바랍니다.

올해도 우리 주일 예배에 성령의 임재가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를 통해서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주의 영광을 보기 원합니다. 우리 모두 참된 예배자로 주 앞에 나가서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기 원합니다. 찬양팀과 찬양대를 비롯해서 예배를 돕는 모든 손길에 주님께서 더욱 큰 은혜를 더해 주시길 바랍니다. 은밀하게 교회를 섬기는 참빛 식구들께 하나님께서 힘을 공급해 주시고 하늘의 복으로 갚아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부터 한 달 동안 살펴볼 시편 63편 말씀을 통해서 신앙과 삶이 하나님께 이르고, 말씀을 통해서 은혜로 살기로 결단하기 원합니다. 2016년 새해에도 주님을 사모하고 바라면서 은혜로 살아갑시다. 할렐루야!-河-

마가복음 10 : 열매 맺는 삶

2015년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올해도 우리 각자의 삶은 말 그대로 다사다난 했습니다. 평생동안 경험하는 삶의 굴곡이 한 해의 삶에도 그대로 나타나서 파도타기 하듯이 인생의 정상과 골짜기를 번갈아 경험했습니다. 어려움이 닥치면 조마조마 했고 어김없이 불안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러다가도 좋은 일이 생기면 금세 얼굴이 활짝 펴졌습니다. 이렇게 일희일비(一喜一悲 )하면서 한 해를 살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역시 올 한해 무척 복잡했습니다. 온 세계가 테러의 공포 속에서 평화를 기원해야 했습니다. 연일 계속되는 총기사고도 골칫거리입니다. 세상이 하나가 되기보다 종교와 인종 그리고 각각의 이해관계로 점점 갈라지는 양상입니다. 엘니뇨로 인해서 올겨울에는 샌프란에 비가 많이 내리지만, 여전히 지구촌 곳곳에서 이상기온 현상이 나타납니다. 미국 경제가 좋아졌다는데 우리네 서민들에게는 치솟는 렌트비가 걱정입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습니다.

오늘 살펴볼 말씀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시니 장사꾼들의 소굴이 되어 있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권력을 휘두르고, 성전을 찾는 사람들도 하나님을 예배하기 보다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느라 바빴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이 더럽혀진 것을 두고 분노하십니다. 그리고 성전을 깨끗이 정화하십니다.

날이 저물면서 예수님 일행이 베다니 숙소로 갑니다. 시장하신 예수님께서 한 무화과 나무에 다가가셔서 열매를 찾으시지만, 잎만 무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나무를 저주하십니다. 이튿날 제자들과 함께 무화과나무 옆을 지나는데 제자들이 보니 나무가 뿌리까지 말라버렸습니다. 예수님의 저주가 현실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무화과나무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신앙을 잃어버린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때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심판의 때가 되지 않았음을 뜻합니다. 여기에 쓰인 때(시간)는 단순히 달력에 따라 흐르는 시간이 아니라 특별한 시간을 가리키는 “카이로스”라는 헬라어가 쓰였습니다. 때가 되지 않았지만, 예수님께서 열매를 찾으셨습니다. 날마다 마지막 때를 준비하고 있으라는 교훈입니다.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신앙은 소용없습니다. 잎보다 열매가 우선입니다. 예수님께서 찾으실 때, 주님 앞에 내어 드릴 열매를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은 열매는 없고 잎만 무성했습니다. 장사꾼으로 가득 찬 예루살렘 성전이 대표적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기도는 산을 옮길 수 있다고 약속하십니다. 기도야말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지하는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이 길을 계획하지만 그 길을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눈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로 살면서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을 보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곧 열매 맺는 삶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하나님 앞에 드릴 열매가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우리 잇속대로 살았던 잎만 무성한 신앙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 삶의 열매로 감사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河-

마가복음 9 : 섬기러 오신 예수님

오늘은 우리 교회가 지키는 성탄주일입니다. 지난 한달 여 대강절 기간동안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성탄을 기다리면서 보냈습니다. 한 주간 한 주간 마음 속에 촛불을 하나씩 켜면서 빛으로 오실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실제로 신약성경 요한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셨다고 선포합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의 첫번째 장에 의하면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시던 말씀 (로고스) 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육신이 되셨습니다. 이것을 두고 “성육신”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성탄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매 주일 고백하듯이 성령으로 잉태하셨습니다. 어둠과 죄에 살고 있는 인간의 본성과 달리 죄가 없으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손길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베들레헴은 구약성경에서부터 메시아가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되었던 곳입니다(미가5:2). 떡집이라고 불리는 매우 작은 마을입니다. 호적신고를 하러 온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숙소를 정하지 못한 마리아와 요셉은 짐승들이 사는 외양간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고 그곳에서 예수님은 탄생하셨습니다. 가장 낮은 자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 볼 마가복음 10장은 작은 자와 섬기는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대적하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이혼에 대해서 질문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짝 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뗄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이혼이라는 주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 당시에 이혼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여성에 대한 관심입니다. 이혼의 과정에서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성이 버려지는 이혼을 금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 질문했던 바리새인들에게서 찾아 볼 수 없는 마음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어린아이를 데리고 와서 안수해 주시길 부탁했습니다. 제자들이 어린이가 예수님께 접근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당시에 어린이는 여성과 마찬가지로 사회에서 약자였습니다. 제자들과 달리 예수님께 가까이 올 수 없는 존재입니다. 제자들도 어린이가 자신들의 지경에 들어오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를 맞아 주시고 무릎에 앉히십니다. 어린이가 예수님께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부탁하십니다. 어린이와 같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두고 자칫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을 가져야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적용할 수 있는데 실제로 어린이들이 그렇게 순수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어린 아이와 같이”는 여성과 마찬가지로 주변인 즉 약한 자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인데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하나님 나라로 초대하셨습니다. 낮고 약한 자를 환대하고 섬기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섬기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섬김을 통해서 자신이 메시아임을 보여주셨고, 목숨까지 내어 주심으로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성탄절을 맞아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예배하고, 예수님처럼 낮아짐과 섬김의 삶을 살기로 결단하기 원합니다. -河-

마가복음 8 : 산 위와 산 아래

특별한 일이 없어도 괜스레 마음이 분주한 연말을 맞고 있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면 제일 먼저 아쉬움이 몰려오는 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삶에 하나님의 은혜를 대입해 보면 한 해의 삶에 주님의 손길이 여기저기에서 느껴지고 감사가 나옵니다. 참빛 식구들 모두 보름 남짓 남은 올 한해를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힘차게 새해를 맞으시길 바랍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해서 주는 그리스도시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자신이 십자가에 죽고 사흘 만에 부활할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 역시 예수님을 향해서 그리스도 즉 메시아라고 고백하면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 왕국을 세울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요한과 야고보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자신들을 예수님의 왼쪽과 오른쪽에 앉혀 주시길 바라는 인사청탁을 합니다. 예수님을 대적하던 종교지도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마저도 예수님의 사역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동상이몽의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장차 큰일을 해야 할 제자들인데 이들마저 예수님이 누구신지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기에 특별훈련을 시키시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산에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광채 나는 흰옷을 입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모하십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 양쪽에 서 있습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 제사장들을 이겼고, 호렙산(시내산의 다른 이름)에서 미세한 음성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죽지않고 하나님께 들려 올라갔기에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실 때가 되면 엘리야가 먼저 와서 메시아의 도래를 알릴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도 세례요한을 엘리야에 비유하셨습니다 (막9:12).

제자들이 깜짝 놀랍니다. 전혀 다른 세상에 와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완전히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세례받으실 때와 마찬가지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막9:7)라는 음성이 하늘에서 들려옵니다. 그때 베드로가 얼떨결에 초막 세개를 짓고 산 위에 있겠다고 말합니다. 베드로에게 산 위에서의 경험은 그 정도로 강력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 아래로 내려가자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있을 곳은 산 위가 아니라 산 아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산 위의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때 확신이 생기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 입장에서 돌아보게 됩니다. 훗날 흰옷 입은 성도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라는 소망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아직은 산 위에 머무를 수 없습니다. 산위에서의 놀라운 경험은 산 아래의 삶을 위한 준비요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산 아래로 내려와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도 산 위의 경험일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하는 활동도 어떤 면에서 산위의 사건들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머무르면 안됩니다. 궁극적으로 산 아래 세상으로 흩어져서 그곳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선교지는 산 아래이기 때문입니다. -河-

마가복음 7 : 신앙고백

12월의 첫 번째 주일이자 대강절 둘째 주일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듯이 그리스도인들은 두 개의 달력을 갖고 있습니다. 음력까지 합치면 세 개의 달력을 갖고 있는 셈입니다. 그레고리력이라고 불리는 일반적인 달력입니다. 1582년 교황 그레고리 13세가 주전 46년부터 지켜오던 율리우스 황제의 달력을 보완해서 만들었습니다. 1년을 365일로 삼고 4년 마다 2월에 윤달을 두는 체계입니다.

다른 하나는 교회력입니다. 초대교회부터 예수님의 부활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생애를 따라서 일 년을 사는 방식입니다. 교회력에 따르면 대강절 첫 번째 주일인 지난주부터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교회력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강절부터 시작됩니다. 세상의 달력보다 한 달 일찍 시작하는 셈이지요. 촛불을 하나씩 켜면서 대강절을 보내는 것은 어둠을 물리치고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마음의 표시입니다. 대강절 두 번째 주일을 맞아서 우리들 마음에 촛불을 하나 더 밝히고 하나님을 예배하기 원합니다.

지난 시간에 이방 땅 두로에서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귀신 들린 딸을 고쳐주신 말씀을 배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이방 지역을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하십니다. 8장 전반부에는 사흘 동안 들판에서 말씀을 전하시고 굶주린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보리 떡 일곱 개와 작은 물고기 몇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이 나옵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기적은 이스라엘 지역에서 행하셨지만,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이방 땅에서 행하셨습니다. 유대인들만 배불리 먹이러 오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서 오셨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많은 기적을 베푸시지만, 눈이 감기고 귀가 닫힌 바리새인들과 적대자들은 여전히 표적을 구하면서 예수님께 시비를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과 논쟁을 하며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복음 전하는 일에 매진하십니다. 제자들은 아직도 어리둥절입니다. 배를 타고 가시면서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시니(8:15) 누룩이라는 말만 듣고는 사천 명을 먹이시고 남은 떡을 갖고 오지 않은 것을 책망하신다는 답답한 생각을 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대적했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진심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와중에도 쉬지 않고 복음은 전하셨습니다.

벳세다라는 곳에 가셔서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을 고치셨습니다. 앞을 보지 못한 맹인을 고치신 사건은 7장에서 에바다(열려라)하시면서 귀를 열어주신 사건과 짝을 이룹니다. 영적인 눈이 열리고 귀가 열려야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알 수 있고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눈과 귀가 열리는 기적 이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라고 하는지 물으십니다. 이어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물으십니다. 베드로가 대답합니다:”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8:29). 물론 베드로가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고백한 것은 아니기에 책망을 받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의 신앙고백 자체는 완벽합니다. 신앙 고백은 우리 신앙의 토대입니다. 예수님을 누구라고 믿는지에 대한 우리 자신의 고백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참된 제자의 길을 걷기 원합니다. -河-

D-13

좋은 아침입니다.

1.

올해가

13일 남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매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365일이라는 시간을 인생의 저금통장에 넣어주십니다.

365일은 그해에 모두 써야 합니다.

한 해가 지나면 저절로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일 년을 365일로 계산한 달력을 사용한 이래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부여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사용하는 모습은

사람마다 다양합니다.

시간을 사용해서 나온 결과물도

각기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맘때가 되면

한 해를 돌아보게 마련입니다.

아쉬움이 제일 먼저 밀려옵니다.

“이렇게 해야 했는데”

“저렇게 해야 했는데”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뭅니다.

하지만

어떤 길을 걸어가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아쉬움은 남게 마련입니다.

특히 세상의 잣대를 사용하거나

남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아쉬움은 더 크게 밀려올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판가름납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올 한 해 어떤 마음으로/어떤 태도로 살았는지

세심하게 살피실 것입니다.

“착하고 충성된 삶”이 하나님께서 보시는 기준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삶을 살았다면,

처음과 끝이 동일하게 성실한 삶을 살았다면

아니 그렇게 살려고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했다면

결과에 상관없이 합격입니다.

3.

올해 남은 13일도

하나님 앞에서 착하고 충성 되게 살기 원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고

“예수님의 옷을 입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13일이 지나면 2016년 새해가 됩니다.

그러고보니 새해까지 D-13입니다.

성탄과 송구영신의 계절에

착하고 충성스러운 태도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앞길을 미리 예비해 놓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새해를 맞기 원합니다.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잠언21:31)

The horse is made ready for the day of battle,

but the victory belongs to the Lord. (Proverbs 21:31)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새해를 맞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2.17 이-메일 목회서신)

꿈 같은 인생

좋은 아침입니다.

1.

한 달에 한 번씩

존 웨슬리를 전공하신 신학교 은사님을 모시고

우리 지역 목사님 몇 분들과 함께

웨슬리 설교를 읽는 모임을 갖습니다.

웨슬리가 1700년대 인물이어서

그의 설교가 구식인 면이 있지만

의외로 오늘 날 우리에게 도전을 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웨슬리는 의학이나 과학에도 정통해서

당시의 과학지식을 갖고 복음을 전하기도 했고,

영국의 경험론을 반박하면서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강조하고

동시에 지나친 열광주의 대신에 냉철한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무엇보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실 때

믿음이 견고해 지고,

그 힘으로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성화(거룩함 sanctification)를 강조했습니다.

연말이 되면

구세군에서 자선냅비를 갖고 구제금을 모금하는데

(구세군 자선냄비 전통이 샌프란에서 처음 시작되었답니다)

구세군 역시 웨슬리의 사회참여와 자선활동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2.

오늘 읽은 웨슬리의 설교 제목이

“꿈 같은 인생(Human life is dream)”이었습니다.

웨슬리는

우리의 인생을 꿈에 비유합니다.

우리가 현재 꿈속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꿈에서 깨는 순간은

이다음 하나님 앞에 설 때입니다.

그때 하나님을 믿는 우리 앞에

영원한 현실이 펼쳐질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꿈같이 허무할 수 있으니

세상 것들에 너무 연연해 하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웨슬리의 설교를 읽으면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꿈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세상의 삶에서 한 걸음 떨어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인생의 꿈이 끝나고 여러분이 깨었을 때 이 모든 것[영원한 세계에 있는 주님의 아름다움]이 나타난다면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이런 장면을 마음속으로 상상해 보십시오. 주님의 형상대로 새롭게 되어 깨어난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들은 진실로 견고하고, 타락하지 않으며, 시들지 않는 기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잠시 잠깐 멈춰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내려놓고

영원에 삶의 시간표를 맞춰보시기 바랍니다.

더불어

이왕 꿈 같은 인생이라면

주님 안에서 멋진 꿈을 꾸면서 새해를 맞기 원합니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골3:4)

When Christ who is your life appears,

then you also will appear with him in glory. (Colossian 3:4)

하나님 아버지,

몸과 마음이 바쁜 연말을 지내면서

하나님 백성으로 우리의 본문을 잊지 않게 하시고

주님과 함께 영광중에 나타날 소망을 간직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2.10 이-메일 목회서신)

다사다난

좋은 아침입니다.

1.

추수감사절은

1620년 미국에 도착한 청교도들이

첫해 수확을 하고 감사의 예배를 드린 것에서 유래했으니

40여 년 동안 지켜 온 미국의 가장 큰 명절입니다.

추수감사절 전날

백악관에서는 흥미로운 행사가 열립니다.

칠면조 한 마리를 풀어 주는

터키 사면식(turkey pardoning)입니다.

혹자는 링컨 대통령이,

혹자는트루먼 대통령, 케네디 대통령부터 시작했다고 하지만

이 행사를 정례화한 사람은

조지 부시 (아버지) 대통령이랍니다.

어제도 오바마 대통령이 두 딸과 함께

백악관에 뽑혀 온

터키를 사면해 주었습니다.

2.

해마다

약 4천5백만 마리의 터키가

추수감사절 식탁에 오릅니다.

정확한 유래는 설왕설래하지만

아마도 죽어가는 그 많은 터키를 위로하려는(?) 마음으로

백악관에서 한 마리 터키를 (사실은 후보까지 두 마리)

대표해서 살려주게 된 것 같습니다.

추수감사절 터키는 특정 농장에서 7월쯤 부화한 새끼들 가운데 응모해서

행사 기간 동안 순하게 있을 우량 터키를 선정합니다.

보통 몸무게가 40파운드를 넘고, 날개 길이가 6피트 이상입니다.

올해의 터키는

우리 지역 근처 모데스토(Modesto) 농장에서 길러졌습니다.

대통령 앞에 앉아 있던 터키가 “정직”이고

후보로 뒤에 있던 터키 이름은

“아베(Abe, 링컨 대통령의 별칭)였습니다.

백악관에서 실시한 트위터 공모에

캘리포니아 아이들이 많이 참여했고,

두 마리 터키를 선정하는 과정에도 아이들의 의견이 반영되었답니다.

사면된 터키들은

해마다 각기 다른 농장으로 옮겨져서 여생을 마감하는데

체중을 너무 불린 나머지 심장마비나 건강상의 이유로

이듬해 추수감사절까지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3.

대통령은

터키 사면식을 하면서 덕담을 하거나 조크를 합니다.

올해 오바마 대통령은

얼마 남지 않은 임기가 아쉬웠는지,

빨리 커 버린 딸을 보면서 흐뭇했는지,

아니면 흰색 터키를 보면서 하염없이 늘어난 자신의 흰머리를 생각했는지

다음과 같은 조크를 했답니다:

“터키는 날지 못하지만, 시간은 날아갑니다

(Time flies, even if turkeys don’t).”

오바마 대통령은 터키 사면식을

아주 달갑게 생각하는 편은 아닙니다.

왜 하는지 의미가 혼란스럽다는 식입니다.

그래도 전임 대통령들이 했으니 특유의 농담을 하면서

“정직”과 “아베”를 살려 준 것입니다.

4.

초등학생들이 올해의 터키에게

“정직”이라고 이름을 붙여준 것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정직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정상이 정상으로 여겨지고,

솔직히 정직하게 살면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두 눈을 가진 원숭이가

한 눈 가진 원숭이 마을에 가서

한눈을 감고 살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수요예배에서 배우는 잠언에서는

끊임없이 “정직”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솔직하게, 정직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바른 삶이라는 교훈입니다.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잠15:8)

The prayer of the upright is acceptable to him. (Proverbs 15:8)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합당이 여기시는 기도를 드리기 원합니다.

5.

그나저나

어제 사면을 받은 “아베”와 “정직”이

남은 생을 편안하게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참빛 식구들 모두

추수감사절 연휴를

감사와 평안 가운데 보내시고

주일에 기쁜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연휴동안 참빛 식구들께 쉼을 주시고

힘차게 새 달을 맞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1.26 이-메일 목회서신)

감사 일기

*좋은 아침이라는 인사를 생략했습니다. 어제 LA에서 일어난 총격사건과 샌프란 시내에서 경찰들이 범죄 용의자에게 가한 총격까지 안타까운 일들이 연일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을 위해서 기도하기 원합니다.

1.

10년 째 지역신문에

종교인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제 칼럼이 나가는 주가

매월 마지막 목요일이다보니

매년 추수감사절에 칼럼을 써야 합니다.

처음에는 추수감사절의 유래에 대한 글을 쓰고

해가 지나면서

추수감사절과 관련된 일화들을 소개했습니다.

특정 절기 때마다

매년 다르게 설교를 하는 것이나

관련된 글을 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새삼 깨닫습니다.

2.

올해 저는 <감사일기>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맞고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감사의 제목을 하루에 다섯 가지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또 감사의 마음을 가족이나 가까운 이웃들에게 표현하자는 주제였습니다.

칼럼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감사일기 쓰는 방법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감사일기는 구체적으로 기록해야 합니다. “좋은 아내, 좋은 가족”처럼 제목만 나열하면 감사일기가 무미건조해 지고 멀지 않아 일기장을 덮게 될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아내가 맛있는 김치찌개를 끓여주어서 감사했다” 또는 “밖에서 기분 상하는 일이 있었는데 집에 들어오자마자 딸아이가 달려와서 허그해 주어서 고마웠다”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써야 합니다.
두 번째는, 하루에 다섯 가지씩 감사의 이유를 찾아서 일기장에 적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다섯 가지를 찾기가 쉽지 않고, 매일 같이 비슷한 내용만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감사 제목을 찾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평소에 스쳐 지나가던 일들 속에서 감사의 제목을 찾아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일기장 밖으로 나가서 하루에 한 번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감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감사 전도사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감사가 습관이 되고, 성품에 녹아들어서 인격이 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올 한 해도 한 달 남짓 남았습니다. 추수감사절에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매일같이 감사일기를 쓰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면 좋겠습니다. 열 명의 문둥병자 가운데 한 명이 예수님께 왔듯이 적어도 일 년 중 마지막 한 달을 감사의 달로 만들어 보는 것입니다. (2015년 11월 26일 SF 한국일보 종교칼럼)”
3.

일기를 쓰는 것은

신앙은 물론 우리들 삶에 매우 유익합니다.

학창시절 숙제하듯이

일정한 형식과 길이를 갖추면서 일기를 쓸 필요는 없습니다.

짧은 메모식의 일기라도

매일이 아니라 일 주일에 두 세번 기록하는 일기라도

우리들 삶을 돌아보고, 감사하고,

하나님께 앞 길을 맡기는 영성일기를 쓰는 것은

우리의 삶과 신앙을 깊고 풍성하게 만듭니다.

올 해의 마지막 달을 지내면서

우리 마음과 생각이 복잡하고, 아쉬울 수 있지만

감사 일기를 통해서 마음이 부요해지고

한 해의 삶에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편 100편은 복음성가로도 알려진

대표적인 감사 시편입니다.

한 구 절 한 구절 곱씹으면서 읽어 봅시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Enter his gates with thanksgiving, and his courts with praise!

Give thanks to him; bless his name!

For the Lord is good; his steadfast love endures forever,

and his faithfulness to all generations.(Psalms 100:4-5)

하나님 아버지,

범사에 감사하라는 하나님 말씀대로

감사로 한 해를 마무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2.3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