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대강절 (3)

성서 일과(lectionary)에 있는 이사야서를 중심으로 대강절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 살펴볼 이사야서 61장은 여전히 바빌론 포로에 있거나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왔어도 페르시아라는 제국이 통치하고 있습니다. 우리 삶이 그렇듯이 이스라엘의 상황도 미완성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특히, 이사야서 61장 1-2절은 예수님께서 처음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회당에 들어가셔서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이 오늘 이사야 말씀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6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눅4:16-20)

 

 

이처럼 이사야서 61장은 하나님의 완벽한 회복을 선포합니다. 주님의 영이 선지자에게 임했습니다. “내게 기름을 부으사”(1절)는 메시아(기름 부은 자)를 가리킵니다. 메시아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과 안성맞춤입니다.

 

1-3절이 메시아 사역이라면, 4-9절은 메시아 사역의 결과입니다. 예수님께서 위로와 기쁨을 주십니다. 재를 쓰고 죄를 회개하던 마음에 기쁨이 임합니다. 슬픔 대신에 찬송이 임하니 근심이 사라집니다. 의의 열매를 맺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이 될 것입니다. “여호와의 복 받는 자손”(9절)이라고 불릴 것입니다.

 

10-11절은 하나님을 향한 찬양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해서 크게 기뻐합니다. 영혼이 하나님으로 인해서 즐거워합니다. 구원의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공의의 겉옷을 입히셨습니다. 신랑이 제사장의 관을 쓰고 신부가 보석으로 단장하는 것 처럼 우리를 하나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들어갔다는 감사의 찬양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유를 주시고 세상에 은혜의 해를 선포하기 위해서 오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성탄을 기다리면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하길 원합니다. -河-

견리망의

좋은 아침입니다.

 

1.

매년 이맘때가 되면

한국의 교수 신문은 사자성어를 공모해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합니다.

 

목요 서신에서는

거의 매년, 올해의 사자성어를 소개하면서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 사회를 돌아보곤 했습니다.

 

2023년에 선정된 올해의 사자성어는

“견리망의(見利忘義)”입니다.

눈앞의 이익에 빠져서 의로움을 잊어버린다는 뜻입니다.

 

중국의 성현 장자(莊子)가 산책을 하는데

매우 커다란 까치 한 마리가 그의 이마를 스치더니

밤나무 숲에 가서 앉았습니다.

 

장자가 새총을 들고 까치를 잡으러

살금살금 밤나무 숲으로 들어가서 까치에 접근하는데

까치는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습니다.

알고 보니, 눈앞에 있는 사마귀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사마귀는 자기를 잡아먹으려는 까치를 모른 채

눈앞에 있는 매미를 노리고 있습니다.

매미 역시 시원한 밤나무 숲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 순간, 장자 뒤에서

밤나무를 지키는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장자를 밤 서리꾼으로 생각한 것인데,

장자 역시 까치를 잡으려는 생각에

남의 집 밤나무 밭을 침범하고 말았습니다.

 

집에 돌아온 장자가 사흘 동안 고민에 빠집니다.

까치를 잡으러 남의 밤나무 밭에 들어간 자신의 그릇된 행동은

눈 앞의 먹잇감만 노리고 있는 까치나 사마귀와 다를 바 없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눈앞의 이익을 생각하다가 옳은 일을 잊어버렸다”는

사자성어 <견리망의(見利忘義)>가 나왔습니다.

 

자기 이익만 챙기고 배만 불리려는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을 빗대서

견리망의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한 것 같습니다.

 

2.

견리망의의 반대는

공자가 논어에서 말한 <견리사의(見利思義)>입니다.

눈앞에 이익을 놓고,

그것이 올바른 것인지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바른 일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도리인데,

개인의 잇속을 먼저 챙기는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

더불어 살기보다, 나만 살면 된다는 이기적 생각도

코로나 이후 사람들 마음속에 크게 자리 잡았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지요?

 

올해 마지막 성경공부 주제였던 <참된 복>에서 배웠듯이

상대적인 복을 절대화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성공이나 출세, 심지어 기도 응답의 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 자신의 이익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길 원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길 원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즐거워하고 함께 우는 마음도 장착하고 싶습니다.

 

야곱에 관한 연속설교 이후 계속 반복하듯이

‘정말 중요한 것’과 ‘그까짓 것’을 분별하고

정말 중요한 것을 먼저 생각하고 실천하길 원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3)

 

 

하나님,

행여나 우리 속에 숨어있는

<견리망의>몰아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12. 14 이-메일 목회 서신)

2023년 대강절 (2)

대강절 둘째 주일 성서 일과(lectionary)의 구약 본문은 이사야서 40장 1-11절과 시편 85편입니다. 이사야서와 시편 말씀 모두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새로운 세상을 예고합니다.

 

두 본문의 배경은 이스라엘이 멸망해서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상황입니다. 이사야서는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는 말씀이고, 시편 85편은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물론 성전까지 무너졌습니다. 예루살렘의 하나님 백성들은 사방으로 흩어져서 디아스포라(흩어진 백성/민족)가 되었습니다. 모세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완전히 버리지 않고 찾아오십니다. 그들의 죄를 조건 없이 용서하십니다. 그들의 모든 죄를 덮어 주십니다.

 

시편 85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회복시켜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다시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섬길 것도 부탁합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시고, 땅을 다시 풍성하게 만드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회복입니다: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추며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시편 85:10-11).

 

시편 85편의 약속이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의와 진리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인간을 가로막던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평화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몹시 사랑하시기에 그 외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결과요 열매입니다.

 

오늘 우리가 공부할 이사야 40장은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을 위로하고 하늘의 힘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위로가 필요합니다. 입에 발린 형식적인 위로가 아닙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위로입니다. 위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함>에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임했습니다:“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사 40:2).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들립니다. 사막에 시내가 흐르고 골짜기가 돋아서 평지가 됩니다. 높은 산은 낮아집니다. 여호와께서 임하시니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나사렛 목수의 아들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선포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바빌론 포로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듯이 하나님을 믿는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모일 것입니다. 대강절 둘째 주일,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실 주님의 나라를 꿈꾸며 하나님을 예배합시다.  -河-

샌드라 오코너

좋은 아침입니다.

 

1.

12월이 시작된 지난 1일

미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

샌드라 오코너(Sandra O’Connor)가

9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텍사스에서 태어난 샌드라 오코너는

애리조나에서 수천 마리의 소를 키우는

목장 집 딸로 자랐습니다.

 

16세에 스탠퍼드 대학에 입학해서

1952년 22세의 나이로 스탠퍼드 로스쿨을 졸업했지만,

여성 차별이 심하던 당시에 오코너가 원하는 로펌에 취업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산 마테오 카운티에서 검사를 돕는 일을 하다가

결국에는 고향이나 다름없는 애리조나로 옮겨서

주의회 상원 의장에 오릅니다. 여성 최초였습니다.

 

1981년 레이건 대통령은

오코너를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 임명하였습니다.

후보 시절 공약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상원이 만장일치로 오코너의 대법관직을 인준했습니다.

 

대법관이 된 오코너는

공화당 대통령 레이건이 추천한 보수 진영의 대법관임에도 불구하고

낙태에 찬성하고, 소수 민족을 위한 어퍼머티브 액션에 찬성하는 등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실용적 행보를 하면서

여성 최초의 대법관으로 커다란 명성을 얻었습니다.

 

25년간 대법관직을 수행하던 오코너는

2005년 종신제 임기인 대법관직을 스스로 내려놓습니다.

치매에 걸린 남편을 간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세상은 놀랐고 또한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

치매에 걸린 오코너의 남편은 요양원에서

다른 여성과 연애에 빠졌다는군요.

 

오코너는 개의치 않고

남편과 함께 TV에 출연하는 등,

치매와 싸우는 가족들을 격려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자기 경험을 살려서 암 환우를 위해서 일했습니다.

 

오코너는 애리조나 목장집 딸에 걸맞은

억척같은 여성이었습니다.

유리천장을 깨뜨리는 일에 앞장선 선구자였습니다.

 

2018년,

안타깝게도 오코너 역시 치매 판정을 받습니다.

엊그제 12월 1일 치매와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2.

오코너는

명예나 권력에 인생을 걸지 않았습니다.

평생 공직을 수행함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었고

그만한 능력도 갖추고 있었지만, 오코너는 남편을 선택했습니다.

 

공적인 일보다

별것 아닐 수 있는 사적인 일에서 의미를 찾은 것입니다.

오코너가 추구하고 바라보는 인생의 목표가

소위 성공에 몰입하는 사람들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대법관 시절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면서

실용적인 판단을 했다는 것도 오코너의 큰 업적입니다.

특별한 가치관을 갖고 살았던 오코너가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고 귀감(龜鑑)이 된 이유입니다.

 

3.

한 해를 마무리하고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준비하는 대강절을 보내면서,

우리의 삶을 돌아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을 ‘그까짓 것’이라고 무시하지는 않았는지,

세상까지는 아니어도

가까운 가족과 친지들에게 귀감이 되었는지 등등.

 

정말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을 꼭 붙들고 삽시다.

그리스도인답게 생각하고 구별되게 행동하면서

거룩함, 예수님을 닮아 갑시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그리스도라 (엡4:15)

 

 

하나님,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12.7 이-메일 목회 서신)

2023년 대강절 (1)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성탄을 기다리는 대강절(Advent)입니다.

 

대강절에는 촛불을 하나씩 켜면서 4주간을 보냅니다. 어둠을 밝히고 빛으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예식입니다. 우리도 마음에 촛불을 하나씩 밝히면서 우리 마음과 삶에 깃든 어둠을 몰아내고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기 원합니다.

 

대강절에는 성서 일과(lectionary)에서 제시된 본문을 갖고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성서 일과는 성경 통독과 마찬가지로 매일 구약 두 본문과 신약 두 본문을 제시하고 차례로 읽어가는 성경 읽기 방식입니다. 성서 일과가 교회력을 반영하고 있기에 주일 본문이 대강절과 일치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이사야서 64장은 온 세상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계획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을 뛰어넘는 온 세상에 임할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크고 완벽한데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께 나오지 않고 각자 자기 길을 갑니다. 세상의 빛이 되라고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만 구원받았다는 선민의식에 빠졌습니다. 온 세상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옳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직접 일어나십니다.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십니다. 주님의 날이 찾아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내려오시니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합니다. 불이 숲을 태웁니다. 하나님께서 어디 계시냐고 조롱하던 이 세상 사람들이 깜짝 놀랍니다.

 

지난주일 시편 46편에서는 어려움이 닥친 모습을 산이 흔들리고, 산이 바다에 빠지는 것에 비유했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세상에 임하시는 것을 산이 흔들리는 것에 비유한 것이 흥미롭습니다. 마치 인간의 어려움을 역전시키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로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시는 것은 그가 친히 택하신 자들을 위해서 입니다. 주님을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공의를 행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부족을 깨닫는 사람입니다.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지 않습니다. 완벽하지 않습니다. 더러워진 옷과 같습니다. 시들어 버린 잎사귀와 같습니다. 죄로 인해서 무너진 인간의 모습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대로 내버려 두십니다. 인간의 추악함에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리시고 외면하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산이 진동하는 엄청난 위력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위력입니다. -河-

피난처 있으니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에는

찬송가 70장 <피난처 있으니>에 대한 해설과

시편 46편 말씀을 나눴습니다.

 

찬송가 <피난처 있으니>는

1908년 감리교와 장로교가 편집한 찬송가에 수록되었습니다.

나라가 일본에 넘어가기 2년 전입니다.

 

누군가 시편 46편 말씀에서 커다란 은혜를 받고

당시의 혼란한 시대 상황을 말씀에 녹여내서

<피난처 있으니> 찬송시를 썼습니다.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이리로라.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위에 넘치되

두렵잖네 (1절)

 

나라를 잃고 마음둘 곳이 없이

구한말을 살던 백성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어도,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면서 힘을 얻었을 것입니다.

 

만유주 하나님 우리를 도우니 피난처요

세상의 난리를 그치게 하시니

세상의 창검이 쓸데없네 (3절)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전쟁의 소문이 그치지 않습니다.

소위 선진국들은 앞다퉈서 최첨단 무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드론이 전장에 사용되면서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새로운 판도의 전쟁이 펼쳐집니다.

 

세상의 난리를 그치게 하시는

하나님의 불호령에 귀를 기울일 때입니다.

하나님의 소원대로

창검이 필요 없는 세상이 속히 오길 기도합니다.

 

2.

2023년도 딱- 한 달 남았습니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이 중요합니다.

말끔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우리 인생이 사람이 만든 달력에 따라 펼쳐지지 않습니다.

일년 내내 힘겨웠던 일이 있습니다.

갑자기 생긴 일도 있습니다.

지지부진해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일도 있습니다.

조바심이 나고 때로는 기도하는 것조차 지칠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힘드니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는 것도 부담될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에게 피난처 되신 하나님이 계심을

꼭 기억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도움이시라 (시편 46:1)

 

하나님께서는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받아 주십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가서 피하면 됩니다.

힘이 남아 있으면 힘차게 하나님을 향해서 달려가면 되고

힘이 없으면 터덜터덜 하나님께 나가면 됩니다.

 

하나님께 나가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잠잠히 지켜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힘과 산성(fortress)가 되심을 믿습니다.

 

3.

가야 할 곳, 피할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요!

언제든지 우리를 기다리고 받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남은 한 달,

하나님을 피난처 삼고 주님의 은혜로 삽시다.

우리도 누군가의 피난처가 되어서 하나님 사역에 동참합시다.

 

주께서 하시는 일을 보기 원합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편46:10)

Be still, and know that I am God (Ps46:10)

 

하나님,

우리의 피난처가 되셔서 고맙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11. 30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