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새해 (1)

든든히 서게 하소서: 바울의 기도

 

2024년 새해 첫 번째 주일입니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는 “든든히 서게 하소서”입니다. 우리 각자의 신앙이 든든히 서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의 삶도 흔들림 없이 견고해지길 기대합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팬데믹 이후를 맞이하는 교회도 든든히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송구영신 예배에서는 든든히 서기 위한 조건으로 “깊이”와 “넓이”를 소개했습니다. 높은 건물을 짓기 위해서 기초공사를 깊이 해야 하고 터를 넓게 잡아야 합니다. 건물의 겉을 장식하는 것은 그다음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깊이와 넓이를 위한 기초 공사에서 필요한 세 가지를 소개했습니다. 하나님을 제일 먼저 생각하는 우선순위,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신뢰였습니다. 매번 듣던 익숙한 말로 들릴 수 있는데, 가장 기본적인 것에 충실해야 합니다. 기초공사입니다. 그때 예수님을 모퉁잇돌 삼은 신앙의 집이 멋지게 세워질 것입니다. 2024년은 신앙과 삶을 튼튼하게 세워 가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새해 첫 달에는 그해의 표어를 갖고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올해는 에베소서 3장에 등장하는 바울의 기도를 갖고 든든하게 서가는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서도 교회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눈을 밝혀 주셔서 성도에게 주신 소망과 능력을 발견하길 기도했습니다. 성도를 위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능력에 감사하길 기도했습니다. 영적 각성(spiritual enlightenment)입니다.

 

바울의 두 번째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성도와 공동체 안에 간직하고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힘(spiritual strength)을 내면에 장착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for us) 일하시고, 우리 안에서(in us)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길 기도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14-21절은 기도를 시작하는 바울의 마음과 행동(14-15), 바울의 기도(16-19), 기도 후에 드리는 찬양(송영, 20-21)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고, 기도가 끝내고 감격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본문에 해당하는 바울의 기도는 “히나(위하여)”라는 헬라어 단어를 중심으로 셋으로 나눠집니다: 1)능력으로 속사람이 강건하게 되고, 믿음을 통해서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랑 가운데 뿌리가 깊어지고 터가 굳어지길(16-17절); 2)성도와 함께 그리스도 사랑의 너비, 길이, 높이, 깊이를 깨닫기를(18절); 3)에베소 교회가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넘치게 채워 지길 기도합니다(19절). 앞으로 한 달 동안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우리 안에 가득 채우는 시간이길 바랍니다. -河-

든든히 서기

좋은 아침입니다.

 

1.

2024년은 갑진년(甲辰年),

용띠, 그것도 청룡(靑龍) 해랍니다.

 

푸른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패기와 멋짐이

올 한해 모든 분께 임하길 기대하면서

새해를 맞이한 것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무척 끈질기었습니다.

우리 안에 크고 작은 트라우마를 남겼고

실제로 사랑하는 친지들을 잃은 분들도 계십니다.

 

푸른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듯이

팬데믹의 남은 잔재를 모두 털어버리고

힘차게 비상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2.

올해 우리 교회 표어는

<든든히 서게 하소서>입니다.

 

무엇보다

팬데믹 이후

흐트러진 우리 신앙을 복구해서

깊고 넓은 신앙을 갖기 원합니다.

 

송구영신 예배에서 나눴듯이

든든히 서기 위해서

신앙의 깊이와 넓이가 필요합니다.

 

신앙의 깊이는

삼위 하나님을 향한 믿음 속에

뿌리를 깊이 내리는 것입니다.

 

신앙의 넓이는

터를 넓게 잡아서

웬만한 차이와 간격을 포용하고

대범하게 대처하는 마음입니다.

 

올 한해 우리의 신앙이

깊고 넓게 터를 잡으면서

든든히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팬데믹과 작금의 시대 상황 가운데

왜곡되고 흐트러진 신앙을 바로잡고

흔들림 없는 신앙을 갖기 위해서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저는 세 가지를 제안했습니다.

 

첫째는, 우선순위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장 앞에, 위에 두는 것입니다.

신앙과 삶에 하나님을 앞서는 것이 생겨서는 안 됩니다.

 

둘째는 신실함입니다.

주어진 신앙과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아쉬움과 후회가 없어야 합니다.

신앙뿐만 아니라 우리 삶 속에도 신실해야 합니다.

 

마지막은 신뢰입니다.

우리는 부족합니다. 앞길을 모두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굳게 신뢰하고, 하나님께 맡기고

주어진 신앙의 길을 걸을 뿐입니다.

 

위에 소개한 세 가지는

이미 알고 있는 신앙의 기초입니다.

높은 건물을 튼튼하게 짓기 위해서

기초공사가 필요하듯이

우리 신앙에도 기본적인 사항에 충실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꼭 필요한 것을 점검합시다.

올 한해 우리의 신앙과 삶이 굳게 세워지길 원합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고전 15:58)

 

 

하나님,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갖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4. 1. 4 이-메일 목회 서신)

종이 아니라 아들이니

2023년 마지막 날에 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늘 그렇듯이 다사다난(多事多難) 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한 해였습니다. 세계적으로 전쟁의 소문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치솟는 물가 때문에 외식이나 쇼핑을 망설일 정도가 되었습니다. 우리 삶의 자리 역시 불안할 때가 많았습니다. 권사님들께서는 연세가 드시면서, 몸과 마음이 많이 내려앉으셨습니다. 한국에 계신 가족들의 건강이 늘 염려가 됩니다. 교회적으로도 크고 작은 일들이 생겼습니다. 참빛 식구들 개인과 가정마다 한 해를 돌아보시면 다사다난이라는 말이 실감나실 것 같습니다.

 

그래도 2023년 마지막 날까지 왔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만큼 우리 삶이 치열하고, 생소하고, 때로는 힘겨웠습니다. 그래도 기도와 말씀 가운데 2023년 365일을 믿음으로 완주하신 참빛 식구들께 박수를 보냅니다.

 

오늘은 성탄절 후 맞이하는 첫 번째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베들레헴 말 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약혼기간의 요셉과 마리아 밑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당시의 관습으로 보면 10대의 젊은 부부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요셉의 직업이 목수였으니, 말 그대로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100%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음을 뜻합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어둠을 밝히실 참빛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에서는 세상을 통치할 왕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메시아 예수님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너무 평범해서 메시아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복음이 지나치게 급진적이어서 거부했습니다. 로마 제국을 무너뜨리고 다윗 왕국을 세울 정치적 메시아를 기대했기에 예수님을 애써 거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생각을 뛰어넘은 온 인류와 세상의 구세주로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므로 죽음과 세상의 모든 악한 세력을 이기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이루신 승리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무시고 완벽하게 화해하셨습니다. 말 그대로 평화의 왕이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 모든 사람은 그릇된 것에 얽매여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의 율법에 사로잡혀서 자유를 잃었습니다. 생명의 율법이 서로를 정죄하는 죽음으로 몰아갔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무엇인가에 매인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으니 종에서 아들로 지위가 바뀌었습니다.  성령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외쳐 부르게 하시고, 하나님의 유업을 받는 상속자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종은 없습니다. 얽매인 것에서 해방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특권을 얻었습니다. 할렐루야! -河-

소중함

좋은 아침입니다.

 

1.

2023년 한 해가

이렇게 지나갑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소식이

이따금 들리지만,

끝날 것 같지 않았던 팬데믹도

2023년의 시작과 끝을 훼방하지 못했습니다.

 

태어나서 마스크를 가장 많이 사용했던

지난 3년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미세 먼지로 마스크 착용이 잦다고 들었지만,

미국에서는 특정 직종에 근무하는 분들이 아니면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초기에 당시 대통령부터 마스크를 쓰지 않는 등

마스크 착용에 거부감을 느낀 이유입니다.

 

펜데믹 동안

마스크를 착용하면서

우리 입가에 머금고 있던 미소(微笑)를 잃어버렸습니다.

마스크로 반쯤 얼굴을 가리다 보니

상대방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우리 얼굴의 표현과 표정이

얼마나 소중한 의사소통 수단이었는지 실감했습니다.

 

아직도 마트나 사람들이 많은 공공장소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감기 기운만 있어도 이웃을 배려해서 마스크를 쓰고

예배나 공공 행사 참여를 자제합니다.

 

코로나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아 있어서 그렇고,

조금 더 세심하게 생각하면

서로를 향해서 조심하겠다는 표시입니다.

 

2.

우리 삶에 소중한 것은

작고 사소한 것, 가까운 것, 일상적인 것에 숨겨져 있습니다.

 

기분 좋은 일을 보고 미소 짓는 것,

깜짝 놀랄 표정을 짓고 감탄의 말을 전하는 것

명확하게 의사전달을 하는 것 등등 –

마스크로 인해서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하니

우리 삶의 뒤편에 숨겨진 것들이 새삼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으면서,

불가피하게 뒤에 숨겨놓았던 것들,

늘 그곳에 있어서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들을

다시 챙기고 마음 한편에 소중히 간직하기를 원합니다.

 

가까운 이웃의 소중함도 깨닫고 싶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소중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특별한 것, 대단한 것,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것보다도

마스크 속에 숨겨졌던 아름다운 미소처럼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것들을 찾아내서

우리가 걷는 인생길에 감사와 기쁨을 더하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는,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고

거기에 물을 주고 가꿔 나가기로  우리 함께 결심합시다.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20)

 

 

 

하나님,

주변에 흩뿌려진 소중한 것을 찾아내서

감사하는 연말이 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12. 28 이-메일 목회 서신)

2023 성탄 주일

평강의 왕

 

오늘이 대강절 마지막 주일이지만, 우리 교회는 성탄 주일로 지킵니다. 지난 한 달여 마음에 촛불을 하나씩 밝히면서 참빛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고 세상 곳곳에 깃든 어두움의 세력이 물러가길 기도했습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본 누가복음의 시므온과 안나를 보면서 예수님을 간절히 기다린 하나님 백성에게 임하는 은혜가 특별함도 배웠습니다. 같은 마음으로 한 주간 예수님을 기다렸기에 오늘 예배 가운데 우리와 함께 하실 예수님의 은혜를 더욱 사모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해서 화목제물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를 죄에서 생명으로 옮기시고 하나님 백성 삼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요일4:10). 사랑의 하나님께서 하나뿐인 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신 이유와 목적입니다. 따라서 성탄절을 맞는 우리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과 더불어 우리 자신의 거듭남(born-again)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는 새로운 탄생을 경축하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마음에 영접했을 때 임하는 것이 평안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 우리 마음과 삶을 지배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할 때 찾아오는 평안입니다.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에서 임하는 평안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해서 하나님께 직접 나갈 수 있다는 은혜 속에서 누리는 평안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과의 분리에서 야기된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죽음을 극복한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평안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강은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에 근거합니다. 이사야서 7장 14절에서 “임마누엘(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다)”로 오실 예수님을 예고했습니다. 이 시간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서 9장 역시 메시아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한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앗시리아라는 제국에 의해서 핍박받고 고통받는 이스라엘에 임할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북쪽의 스블론과 납달리 땅은 앗시리아에 의해서 힘없이 무너졌지만, 요단강 건너 남쪽 유다는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들에게 큰 빛이 비칠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공격한 앗시리아가 탈취물을 나누면서 기뻐하던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했는데, 그것을 능가하는 기쁨이 하나님 백성에게 임할 것입니다. 주께서 압제자의 채찍과 막대기를 꺾어 버리십니다.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모두 불에 타버리고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이 모든 하나님의 역사를 실행하기 위해서 메시아가 오십니다. 한 아기로 태어나셨지만,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평강의 왕이십니다. 그가 통치하는 나라가 영원할 것입니다. 그 아기가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