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해설 (9): 피난처 있으니

찬송가 70장: 피난처 있으니

교회력에 따르면 오늘이 성령 강림 후 마지막 주일입니다. 교회력은 예수님께서 오실 성탄을 기다리는 대강절로 시작해서, 성탄절, 주현절, 사순절, 부활절 그리고 성령 강림절로 이뤄져 있습니다. 대강절부터 부활절은 예수님의 생애에 초점을 맞춥니다. 마지막 성령 강림절은 오순절 성령강림부터 반년 정도 이어지는데,  십자가의 은혜와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인도와 능력으로 자라가는 기간입니다. 강단 색깔도 초록입니다.  오늘은 성령강림 후 마지막 주일입니다.

 

지난주까지 로마서 12장을 공부했습니다. 대강절이 시작되는 다음 주부터는 늘 그랬듯이 <성서일과lectionary>에서 알려주는 본문을 갖고 4주간 말씀을 준비할 예정입니다. 목사인 제가 설교 주제와 본문을 정합니다. 물론, 참빛 식구들을 마음에 두고 꼭 필요한 말씀을 준비하려고 노력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시는 말씀을 기도 가운데 찾습니다. 그래도 제가 정하는 본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성서 일과에서 주어진 본문을 갖고 말씀을 준비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연속 설교 중간에 살펴보는 <찬송가 해설>시간입니다. 찬송가 70장 “피난처 있으니”의 배경을 공부하겠습니다. 서양 음악은 중세 이래 기독교 음악이 주도했습니다. 찬송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게다가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우리 찬송가에는 서양 곡들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그래도 2006년에 발행한 <21세기 새 찬송가>에는 총647곡 가운데 한국인이 작사한 찬송 121곡, 작곡한 찬송이 127곡이 수록되었습니다. 그 이전 찬송가에 고작 17곡 수록된 것에 비하면 우리 나라 사람이 만든 찬송이 많이 수록된 셈입니다.

 

우리가 오늘 살펴볼 “피난처 있으니”도 우리나라 사람이 작사한 찬송입니다. 그런데 누가 찬송시를 썼는지 알 수 없습니다. 대신, 시편 46편을 배경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 되심을 고백한 찬송임이 틀림없습니다. 구한말 일제에 나라가 넘어가는 격변기에 하나님만이 피난처되심을 믿고 고백한 것입니다.

 

곡조 역시 누가 지은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1745년경 <음악선집 Thesaurus Musicus)에 처음 실렸습니다. 그 후에 영국에서는 여왕의 영광을 칭송하는 노래에 이 곡을 갖고 왔고, 그로부터 지금까지 영국 국가의 곡조가 되었습니다.  대영제국이 위세를 떨치면서, 같은 곡을 갖고 국가를 부른 경우가 20여개국에 달했답니다. 구한말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애국가가 창작되고 불렸는데, 1898년 독립협회가 독립문에서 부른 애국가에 영국 국가에 쓰인 곡을 가져와서 불렀습니다. <아메리카 America>로 불리는 미국 애국가에도 같은 곡이 사용되었습니다.

 

이처럼 찬송가 70장 <피난처 있으니>의 곡은 영국 국가에서 갖고 왔지만, 찬송시는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함께 고백한 신앙 간증입니다. 나라가 일제에 넘어가는 백척간두의 순간에 하나님을 의지하겠다는 다짐입니다. 우리도 어렵고 힘들 때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의지하기 원합니다. -河-

숨은 감사

1.

감사절(Thanksgiving Day) 아침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추수감사절이라고 부르는데

농경 사회의 영향입니다.

 

물론 한 해를 마감하는 면에서

“추수”라는 말을 쓸 수 있지만,

영어에서 유래된 명절이고 우리가 미국에 있으니

미국식으로 <감사절 Thanksgiving Day>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다.

 

수십년 사용하던 용어를 하루 아침에 바꾸기 어렵기에

우리 교회에서는 조금씩 차근차근 감사절로 부르고 있습니다.

 

2.

성경에서 감사절의 유래를 찾는다면

이스라엘에서 가을철 포도 농사를 마치고 지켰던

수장절 또는 초막절입니다.

유월절, 오순절과 함께 구약의 3대 절기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음력을 사용했기에

양력으로 치면 9월말에서 10월 말 사이에 옵니다.

올해 초막절은 9월 29일부터 10월 6일이었습니다.

 

수장절을 초막절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초막절이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천막을 치고 일주일 동안 밖에서 지냈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 광야 생활을 재연한 것입니다.

 

동시에,

한 해 동안 비를 내리시고 햇볕을 비추셔서

한 해의 농사를 수확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도 잊지 않았습니다.

 

3.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매사추세츠 플리머스에 도착한 청교도에게서 유래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신대륙에 도착했지만,

풍토병은 물론 생소한 토양과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첫 겨울을 나면서 절반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때, 아메리칸 원주민들이

씨를 뿌리는 방법, 가축을 키우는 법 등을 알려주면서

첫 번째 추수감사절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청교도들은 자신들에게 도움을 준

원주민들을 초대해서 모두 함께 어울리는

첫 번째 추수감사절을 보냈지요.

 

3.

우리도 한 해를 지내면서,

눈에 띄지 않지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잠시 멈춰서 숨은 도움의 손길들을 떠올리기 원합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주일 동안

초막(텐트)을 짓고 그곳에 살면서

광야에서 고생하던 조상들의 삶을 떠올렸듯이,

우리도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면서

과거의 고난이 현재의 삶으로 승화된 것을 기억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 원합니다.

 

그렇습니다.

한 해를 살면서 눈에 띄지 않지만,

작은 손길들이 우리를 도왔고

과거로부터 면면히 이어져서 결실을 맺은 열매들도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숨은 감사”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우리 삶 이곳저곳에 흩뿌려지듯이 숨겨진 감사를 찾아내고

그것을 마음에 간직합시다.

이 모든 것을 은혜 가운데 주관하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시편 95:2)

 

 

하나님,

숨겨진 감사를 찾아내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11. 23 이-메일 목회 서신)

진짜 그리스도인 (9)

로마서 12장을 마치며

 

지난 두 달여 로마서 12장 말씀을 함께 공부하고 나눴습니다. 비록 한 장이었지만, 이번 연속 설교의 제목처럼 <진짜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에 관해서 명확하게 알려주는 말씀이었습니다. 로마서 12장의 교훈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신앙의 단추: 로마서 12장 1-2절은 로마서 12장은 물론 신앙에서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것은 예수님을 믿기로 다짐하고 그리스도인의 길을 가는 신앙의 첫 단추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을 모실 때,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변화라고 했습니다.

 

거듭남(born-again)이라는 말처럼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 아주 큰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신앙의 길을 가면서도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새롭게 하는 일을 지속해야 합니다. 구원은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계속되는 재창조(recreation)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산제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고 거듭 태어난 그리스도인에게 요청되는 것은 온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함께 모여서 드리는 공동체 예배를 넘어서는 삶의 예배라고 했습니다.

 

분별력: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진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생명과 평안>이라는 잣대를 대입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시길 부탁했습니다.

 

믿음의 분량대로: 로마서가 교회에 보내는 편지였듯이 공동체 섬김을 강조했습니다. 마땅히 할 수 있는 것을 믿음의 분량대로, 받은 은사를 갖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거짓 없는 진정한 사랑: 사랑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은 물론 우리가 실천하는 사랑은 언제나 진실해야 합니다. 사랑의 힘으로 교회를 섬기고, 형제를 섬기며 세상을 섬깁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써야 합니다. 열심으로 주님을 섬기는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원수를 향한 사랑: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해야 합니다. 악으로 악을 갚으면 안 됩니다. 괴롭히고 박해하는 원수까지 축복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환대해야 합니다. 진노와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고 모든 일에 선을 도모할 뿐입니다.

 

함께 울라: 세상은 물론 교회 안에서 즐거워하는 사람과 기뻐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연대(solidarity)와 공감(empathy)이 필요합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가능한 섬김입니다. 같은 생각을 갖고 주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이번에 함께 배운 로마서 12장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멋지고 진실한 <진짜 그리스도인>의 길을 갑시다.-河-

 

 

선으로 악을 이기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주일에 공부하는 로마서 12장은

강력한 말씀으로 끝이 납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21절).

 

악에게 지는 것은

악을 악으로 갚으려는 시도입니다.

교활하고 치밀한 악한 세력에 넘어가서

결국 세상에 악을 퍼뜨리게 될 것입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방법을

로마서 12장 14절 이하에서 찾는다면,

박해하는 자를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과 선을 도모하고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에 맡기는 것입니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마5:38-48)

눈을 눈으로, 이를 이로 갚지 말고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12장도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2.

교회 독서클럽에서 읽었던 월터 윙크의 <예수와 비폭력>에서는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원수들을

어떻게 비폭력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독특하게 풀어내서 알려줍니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마5:39)의 경우,

오른손을 쓰는 사람이 손바닥으로 치면,

상대의 왼편 뺨을 때리게 됩니다.

그러니, 오른손으로 오른편 뺨을 때리려면,

오른손 손등을 사용해야 합니다 (한번 해보십시오).

 

예수님 말씀에서 오른편 뺨을 맞았다는 것은

상대방이 오른손 손등으로 톡톡- 쳤다는 것입니다.

뺨을 맞는 사람의 존엄성이 무너지는 커다란 수치입니다.

 

그때 맞은 사람이 왼편 뺨을 돌려댑니다.

왼손 손등으로 톡톡 치면서 창피를 주어야 하는데

당시에 왼손을 사용하는 부정하고 수치로 여겼습니다.

그러면 상대방이 오른손(주먹)으로 왼편 뺨을 쳐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순간 상대를 동등한 경쟁자로 인정하는 셈이 됩니다.

 

그러니 왼쪽 뺨을 돌려 대는 순간,

상대는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물러설 가능성도 큽니다.

 

물론, 원수를 환대하는 것보다는 소극적인 방식이지만,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비폭력 방법임이 틀림없습니다.

 

월터 핑크는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대신에

제 3의 길, 예수님의 길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폭력에 대항하는 창조적 대안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3.

원수를 사랑하고 위해서 기도하는 것,

원수를 갚지 않고 도리어 환대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저는 주일설교에서

이 말씀이 성경 가운데 가장 어려운 말씀 가운데 하나라고 했습니다.

복수하고 응징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른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 길을 가야 함을 우리는 배웠고 깨달았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 쉽지 않지만,

예수님의 마음과 예수님의 사역을 곰곰이 생각하면

예수님께서 알려주시는 지혜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와 능력이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롬12:21)

 

 

하나님,

삶의 현장에서 선을 악을 이길

구체적인 지혜를 알려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11. 16 이-메일 목회 서신)

진짜 그리스도인 (8)

숯불을 머리에

 

성경에서 가장 어려운 말씀을 만났습니다. 우리 인간은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 보복하고 갚아줄 때 쾌감을 느끼고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싫어하고, 잘못한 사람은 벌을 받아야 속이 시원합니다. 그것이 인간 세상의 공정이고 정의요 상식입니다. 우리도 이런 가치관에 물 들어있고, 어쩌면 이것이 우리 안에 깃든 본성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롬12:14,17-21)은 인간의 본성과 세상의 일반적인 가치관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니 쉽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의 근원은 구약성경 잠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네 원수가 배고파 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 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잠25:21-22). 세상 속에서 하나님 백성이 어떻게 처세하고 행동해야 하는 지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율법은 당한 것만큼 갚아주는 동해복수법(同害報復法)입니다. 하지만 구약성경에도 다양한 목소리가 있습니다. 위에 소개한 잠언은 물론 레위기에도 원수를 갚지 말고 사랑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레19:20). 그래도 구약 율법에 흐르는 전반적인 정신은 동해복수(同害報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으라는 구약의 말씀을 언급하신 후에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새로운 율법을 선포하셨습니다(마5:38-4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4).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소아시아의 흩어진 나그네에게 보낸 사도 베드로의 편지에도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3:9). 당한 대로 갚아주고 복수하라는 구약의 율법을 뛰어넘는 높은 차원의 도덕이자 행동 강령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14절)고 교훈 합니다. 쉽지 않지만, 그 일을 하라는 부탁입니다. 바울의 권고를 실천하는데 강한 의지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앞에서 배운 거짓 없는 진실한 사랑(9절)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과 선을 도모하라”(17절)와 “악에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21절)는 말씀은 서로 짝입니다. 그리고 중간에(16-20절)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화목하길 부탁합니다. 원수를 직접 갚지 말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는 것이 원수의 머리에 숯불을 쌓아 두는 것입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길입니다.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생각이고 행동이기에 오늘 본문이 한없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이 꼭 필요합니다. 기도가 필요합니다. -河-

기도에 항상 힘쓰며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에 배운 로마서 12장 12절은

세 가지 말씀이 운율을 갖고 있습니다: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며  Rejoice in hope

환난 가운데 참으며           Be patient in tribulation

기도에 항상 힘쓰며           Be constant in prayer.

 

외워서 마음에 담아두고

수시로 꺼내서 읊조리고

말씀대로 살기로 결심해도 좋겠습니다.

 

세 가지 구절 가운데

“기도에 항상 힘쓰며”가 특별했습니다.

 

기도할 때,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고

환난 가운데 참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항상”이라는 말씀은

삶이 기도가 되고,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훈련과 습관이라고 했습니다.

 

2.

미국에 처음 왔던 전도사 시절에

지역 교회 청년부를 인도했었습니다.

 

금요일이 되면 캠퍼스에 모여서 청년부 모임을 갖고

밤늦게 헤어지곤 했습니다.

 

우리 모임에 악기를 전공하는 자매들이 있었는데

인사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갈 때,

자매들은 “연습하러 가요”라고 말하면서 연습실로 향했습니다.

 

주말 저녁이라도 연습을 게을리 할 수 없답니다.

혹시라도 연습을 놓치면 연주하는 소리에 나타나고

자신은 물론 교수님도 알아차리신다고 했습니다.

 

자매들의 연습하는 모습이 저에게 커다란 도전이 되었습니다.

성경을 자매들처럼 읽고 있는지,

기도를 쉬지 않고 하는 지,

목회의 길을 가는 전도사로 신앙의 훈련에 애를 쓰는지,

저를 돌아보곤 했습니다.

 

3.

“기도에 항상 힘쓰며”는 훈련입니다.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늘 말씀드리듯이,

훈련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성품이 되면 자연스레 기도의 사람이 됩니다.

 

너무 좋거나 너무 힘들 때만

주님께 나와 무릎을 꿇는 특별 행사가 아니라

기도가 습관이 되고 성품이 되기 원합니다.

 

‘그냥’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전을 완공하고

하나님께서 성전 봉헌식을 하는 솔로몬 왕이

“무릎을 꿇고  손을 펴서 하늘을 향하여” 기도한 것을

어제 수요예배에서 공부했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잘 믿던 솔로몬의 모습입니다.

 

무릎을 꿇는 것은 겸손의 표시요

하늘을 향해서 손을 편 것은 사모함의 표시입니다.

우리도 남은 두 달 그렇게 기도합시다.

 

기도가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절로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서 손을 펴는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할

하나님 백성의 아름다운 모습이고

가장 강력한 능력입니다.

 

기도에 항상 힘쓰며 (롬12:12)

 

 

하나님,

기도가 습관이 되고,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11. 9 이-메일 목회 서신)

진짜 그리스도인 (7)

기도에 항상 힘쓰며

 

로마서 12장 9-21절은 한 묶음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마음을 새롭게 한 그리스도인들의 구체적인 생활방식입니다.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실천 사항들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 태어나는 것은 로마서 12장의 대전제임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9절 전반부는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로 시작했습니다. 진실한 사랑이 9-21절의 배경음악이고 말씀을 이끌어가는 힘이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살펴본 11절부터  새롭게 12-13절을 공부하겠습니다.

 

11절에 세 가지 동사가 등장했습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열심을 품고”라는 우리 번역에 “영(spirit)”이라는 단어가 빠졌으니 헬라어 본문을 그대로 옮기면 “영으로 뜨거우십시오”가 될 것입니다. “열심”에는 “물이 끓는다(boiling)”는 뜻이 있다고 지난주에 말씀드렸습니다.

 

첫사랑을 잃어버린 요한 계시록의 에베소 교회를 생각했습니다(계2:4). 하나님을 처음 믿을 때는 마음이 뜨거웠는데, 어느 순간에 사랑과 열심이 식었습니다. 어디서 첫사랑을 잃어버렸는지 찾고 기억하고 다시 시작하길 부탁했습니다. 물이 끓는 열심이 우리 안에 있고, 그 열심으로 주님을 섬기기 원합니다. 주님을 섬기는데 게으르면 안 됩니다.

 

주님을 섬기는 것은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교회에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믿음의 분량과 은사대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웁니다. 그리고 교회와 세상 속에서 진실한 사랑을 다양한 모습으로 실천합니다. 이처럼 로마서 12장은 열심으로 주님을 섬기는 방식을 알려주는 매뉴얼입니다.

 

12절 역시 세 가지 동사로 이루어졌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세 가지 현재 분사들입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은 기쁨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소망으로 즐거워합니다. 개인적으로 기쁜 일이 생길 때도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 소망이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기쁨의 원천입니다. 반면, 어려운 일이 찾아오면 참고 견뎌야 합니다. 참으면서 끝까지 견디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열심으로 주님을 섬기는 에너지가 기도에서 나옴을 꼭 기억합시다.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에 항상 힘써야 합니다.

 

13절은 공동체 안에서 성도를 향한 사랑입니다. 성도의 쓸 것을 공급하는 것은 초대 교회가 매우 잘하던 구제였습니다. 먹을 것, 입을 것, 필요한 것을 실제로 공급하고 돕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진실함과 행함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그때 사랑의 힘이 발휘됩니다. 손님을 대접하는 것은 나그네를 대접하라는 구약의 전통과 더불어, 당시 순회 전도자들에게 거처를 마련하라는 말씀입니다. 열심으로 주님을 섬기기 원합니다. 항상 기도에 힘쓰기 원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