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3)

– 너를 고쳐주리라

 

지난 두 주 동안, 예레미야 선지자를 소개했습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순간에 목에 멍에를 메고 눈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던 선지자였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과 예레미야가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예수님 속에서 예레미야를 발견했고, 예레미야가 예수님을 닮은 선지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부터는 예레미야서 한가운데 위치한 “위로와 소망의 말씀”(30-33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그동안 말씀드렸듯이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예고했습니다.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는” 심판 예언입니다. 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레미야의 예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예루살렘에 임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의 예언 한 가운데 “건설하고 심게 하는” 예언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 있는 이스라엘을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는 소망의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아가게 할 날이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 조상들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니 그들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렘30:3).

 

바빌론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은 예루살렘 중심의 남유다인데, 하나님께서는 이미 앗시리아에게 멸망했던 북이스라엘을 유다와 함께 언급하는 것이 특별합니다.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온전한 회복을 약속한 것입니다. 제국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공격했을 때, 사람들은 겁에 질려 떨었습니다.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다시 조국으로 돌아오게 하실 계획을 이미 세우셨고 그것을 글로 기록하기를 예레미야에게 부탁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희망의 빛줄기입니다.

 

백성들의 마음이 많이 상했습니다. 어떤 것으로도 치료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렘30:12). 스스로 상처를 회복하고 재기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위로의 말씀을 주십니다:”내가 너의 상처로부터 새 살이 돋아나게 하여 너를 고쳐 주리라(렘30:17). 하나님께서 사랑을 베푸시고 새로운 도시를 건축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본문의 하나님 말씀 속에는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을 넘어서 장차 임할 새 하늘과 새 땅의 하나님 나라까지 암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희망이 필요합니다. 우리 힘으로 고칠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과 사랑을 구합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을 간절히 구합니다. -河-

방심

좋은 아침입니다.

 

1.
델타 바이러스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우리 지역도 백신 접종률이 80%에 이르지만
바이러스 감염곡선이 머리를 들고 위를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실내에서는 아직 많은 분이 마스크를 착용하지만
야외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식당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만큼 규정도 완화되었습니다.

 

우리 지역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지난주일 영국에서
영국과 이탈리아의 유럽 축구 결승전 경기가 있었는데
제 눈을 의심할 정도로 수많은 관중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영국도 감염자 숫자가 늘고 있다는 보도를 접했기 때문입니다.

 

2.
제 컴퓨터에서 홈페이지로 쓰는
MSN에 설문조사가 열렸습니다.

 

설문조사에 응한 사람들은
80%가 두 번의 백신 접종을 마쳤다고 답했습니다.

 

델타 바이러스가 걱정되느냐는 질문에
31%는 전혀 염려되지 않고, 26% 약간 염려되고
32%는 신경이 쓰일 정도, 11% 만이 크게 염려된다고 답했습니다.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들은 변이 바이러스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절반 이상이 올여름 다른 주로 여행을 갈 계획이고
편안하게 극장에도 출입하겠다고 답한 사람들이 57%였습니다.

 

75%가 식당 안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고,
72%는 식료품점에 갈 때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우리 지역은 대부분의 사람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장을 보는데
마스크 없이 상점에 드나드는 지역도 많은 것 같습니다.

 

3.
물론 MSN 홈페이지를 방문한 사람들의 설문 조사이고
80%가 백신 접종을 끝낸 사람들이지만,
델타 바이러스의 전파 속도를 고려했을 때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이 매우 느슨해졌음을 느꼈습니다.

 

하긴, 팬데믹이 이렇게 길어질 것을 상상도 못 했습니다.
집에 있는 것도 지칠 만합니다.
혹자는, 백신 접종을 끝냈으니 감기 정도로 지나갈 것을 예상하고
편하게 생활하자고 큰 소리로 이야기합니다.

 

그래도 아직은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잘- 참았으니
마지막까지 말 그대로 유종의 미를 거두길 기대합니다.

 

4.
코로나 바이러스만이 아닙니다.

 

우리 신앙과 삶도 느슨해지지 않았는지요?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을 깨끗이 닦고
거리 두기를 하던 습관이 슬며시 무너지지 않았는지요?

 

처음보다 마지막이 더 어렵습니다.
시작은 잘해야 절반이니 자칫 중간에 망가질 수 있습니다.
이제 남은 팬데믹 시국을 깔끔하게 마무리해야겠습니다.
자칫 공든탑이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참빛 식구들께서도
방심하지 마시고, 처음 마음을 갖고 더욱더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팬데믹 뿐만 아니라 매사에
처음보다 끝이 좋은,
아니 처음과 끝이 한결 같은 신앙과 삶을 간직합시다.

 

 

******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살후2:13)
we ought always to give thanks to God for you, brothers beloved by the Lord,
because God chose you as the first fruits to be saved, through sanctification
by the Spirit and belief in the truth. (2The 2:13)

 

 

하나님,
처음 사랑과 처음 마음을
끝까지 간직하게 하고
오늘 하루를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7. 15 이-메일 목회 서신)

회복 (2)

예수님과 예례미야

 

예레미야서 한가운데 위치한 위로와 소망의 말씀을 나누기 앞서서, 선지자 예레미야가 어떤 인물인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어머니 태중에서 선지자로 구별되고 부름을 받았습니다. 예레미야는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는” 심판 예언에 이어서 “건설하고 심게”하는 회복에 대한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예레미야는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하나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의 예언을 통해서 하나님 마음을 백성들에게 전한 것입니다. “눈물의 선지자”라는 별명이 예레미야의 심정을 잘 표현합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 속에서 예수님을 발견합니다. 이사야가 예수님에 대해서 가장 많은 예언을 했다면, 예레미야는 그의 마음과 삶을 통해서 예수님을 미리 알려주었습니다. 구약의 예언자 가운데 예레미야가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마리아에게 잉태되고 태어나셨듯이 예레미야도 어머니 태중에서 구별되고 부름을 받았습니다(렘1:5).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의 변방 아나돗 출신이었듯이, 예수님도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1:46)는 말이 생길 정도의 작은 동네 나사렛 출신이십니다.

 

아나돗 사람들이 자기 고향을 수치스럽게 한다는 명목으로 예레미야를 죽일 생각까지 했습니다(렘11:19). 나무와 열매를 찍어서 없애자는 말을 할 정도로 예레미야의 흔적을 지우려 했습니다. 예수님도 고향에서 배척을 당하시면서, 선지자는 고향에서 높임을 당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13:57). 예수님께서 마음속에 예레미야 선지자를 떠올리셨을 것 같은 대목입니다.

 

예레미야가 당시의 타락한 성전을 비판하는 설교를 했습니다. 그것을 들은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분노하고 예레미야를 죽일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렘26: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성전을 “강도의 소굴”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강도의 소굴”이라는 표현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인용하신 것입니다(렘7:11; 마21:13).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장사꾼들을 몰아내신 것과 성전이 타락한 것을 맹렬히 지적한 예레미야가 중첩됩니다.

 

예수님도 예레미야처럼 우셨습니다. 예레미야가 멍에를 지고 예루살렘을 활보했듯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시면서 구약의 선지자 예레미야를 마음속에 두신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아니 예레미야 속에서 예수님이 보이는 것이 놀랍습니다. 우리의 모습 속에도 예수님이 드러나길 간절히 바랍니다. -河-

눈물

좋은 아침입니다.

 

1.
7월 한 달 동안
주일 예배에서 읽을 말씀은
구약성경 예레미야서입니다.

 

지난 주일 설교에서 나눴듯이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눈물로 외쳤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는 백성들을 보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과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또 울었습니다.
그래서 눈물의 선지자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 (렘9:1)

 
2.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님도 우셨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러 무덤으로 가시면서
나사로의 누이들과 친지들이 슬퍼하는 것을 보고
예수님도 우셨습니다 (요11:32)

 

곧 나사로를 살리실 예수님이신데도
형제들의 슬픔에 잠시라도 진심으로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예루살렘을 내려다보시면서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이 망가진 것을 보고
두 번째로 우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는데
히브리서에서는 “심한 통곡과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히5:7).

 

이처럼 예레미야와 예수님의 눈물은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안타까움의 눈물이었습니다.

 
3.
우리도 눈물을 흘릴 때가 있습니다.
예레미야와 예수님처럼
안타까운 세상이나 사람들을 보면서 눈물을 흘립니다.

 

우리 자신이 힘들 때도 눈물이 나옵니다.
마음 아픈 과거를 생각해도,
어려움이 예상되면 여지없이 눈물이 나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눈물이 나옵니다.
밤잠을 설치고, 침상을 적셨던
시편 기자의 고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눈물의 또 한가지 기능은
카타르시스(정화)입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슬픈 일을 겪었을 때
실컷 울고 나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눈물이 가져다 주는 선물입니다.

 

모든 눈물에는 진심이 담겨 있습니다.
가식적으로 눈물을 흘린다면 그것은 연기이지요.
예레미야나 예수님은 가슴으로 우셨습니다.

 

4.
인생길을 걷다 보면
눈물을 흘리면서 울 일이 많이 생깁니다.
그때는 마음껏 우셔야 합니다.
물론,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더불어
우시기는 것도 꼭 잊지 마십시오.

 

한 걸음 나가서
누군가를 위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더없이 고귀한 순간입니다.

 

지난 주일 설교 마지막 부분을 다시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 한 주간, 예레미야의 파토스, 그 마음을 닮아 봅시다.
함께 울고, 함께 공감하고, 정말 같은 마음으로 기도합시다.
세상에 못된 사람들, 미운 사람들을 위해서도 한번 울어봅시다.
특히, 흩어진 참빛 식구들을 눈에 그리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시다.
마음으로 하나되는 우리 교회이길 원합니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요11:35)
Jesus wept (John 11:35)

 

 

하나님,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참빛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7. 8 이-메일 목회 서신)

회복 (1)

선지자 예레미야

 

기도에 대한 말씀을 마쳤지만, 기도가 삶이 되는 기도의 사람, 참빛 식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에 능력이 있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진정 기도하지 않으면 기도의 능력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2021년의 남은 한 해도 기도로 사시고 각자의 기도 속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7월 한 달 동안은 성경에서 시편 다음으로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예레미야서 가운데 “위로의 책”으로 불리는 예레미야 30-33장을 함께 읽겠습니다. 변이 바이러스가 유행한다는 보도가 있지만, 우리 지역 백신 접종이 80%에 육박하고 팬데믹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느낍니다. 식당은 물론 각종 모임에서 거리 두기가 해제되었습니다. 앞으로 바이러스 전파가 예상대로 통제되면 우리 모두 모여서 예배할 날도 가까울 것 같습니다.

 

지난 1년 3개월을 집에서 포로처럼 갇혀 살았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것이 연상될 정도였습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힘을 쓰지 못하고 온 세상 사람들은 백신을 고대했고 백신이 등장하면서 실제로 바이러스 전파가 잡혔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도 우리의 신앙도 유명무실해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예배로 모이지 못하니 솔직히 각자의 신앙이 식은 것도 사실입니다.

 

옛날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신앙의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바빌론은 자신들이 정복한 야훼 하나님을 무시했고, 바빌론이 섬기는 마르둑이라는 강력한 신을 숭배했습니다. 포로 시대가 끝나고 언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막막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았고, 하나님 말씀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편집했습니다. 바빌론이 숭배하는 제국의 신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야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회복했고 신앙의 힘으로 바빌론 포로를 견뎠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말씀 가운데 하나가 앞으로 살펴보게 될 예레미야 속의 “위로의 책”입니다. 이스라엘의 심판을 예언했던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예레미야서 한 가운데 위치한 위로의 책(30-33장)에서 소망을 노래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의 백성을 찾아오셔서, 새롭게 언약을 맺으시고, 고향으로 돌아올 날을 약속하십니다.

 

앞으로 예레미야 선지자가 전하는 위로와 소망의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과 회복의 은혜를 체험하는 우리 교회와 참빛 식구들이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河-

실로암 망대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몇 주 동안 한국과 미국에서
건물이 갑자기 무너지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광주에서는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그곳을 지나던 버스를 덮치는 바람에
버스 승객들이 목숨을 잃고 다치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지난주에는 미국 플로리다에 있는
12층 콘도 건물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구조작업이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백여 명의 실종자가 있어서
사망자 숫자가 더 늘어 날것 같습니다.

 

광주에서 생긴 사고는
건물 철거 작업 중에 도로를 폐쇄하는 등
안전관리 소홀이 애꿎은 시민들의 희생으로 이어졌습니다.
버스에 탔던 승객들의 사연을 대하면서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플로리다 건물은 40년 전 습지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수년 전부터 건물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내렸지만,
세밀한 검사 없이 무시하다가 어이없는 참사를 당했습니다.

 

플로리다 건물의 잔해를 보면서
1995년 6월 퇴근 시간 무렵에 무너져 내린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가 생각날 정도였습니다.

 

2.
예수님 당시에도
예루살렘에 있던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서
열여덟 명이 죽은 사고가 있었습니다 (눅13:1-5)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 몇을 죽여서 그 피를 제물에 섞었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빌라도에게 희생당한 사람들이
죄를 지어서 벌을 받은 것임을 은근히 밝히면서
자신들은 죄가 없는 의인임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남이 당한 사고를 죄와 연결하고
자신은 그런 사고를 당하지 않았으니 의로운 사람이라고 여기는
어리석고 초보적인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에게 죽은 사람들이
다른 갈릴리 사람들보다 결코 죄가 많은 것이 아니라고 일갈하십니다.

 

그러면서,
예루살렘에서 18명의 사상자를 낸 실로암 망대가 무너진 것을 언급하십니다.
망대의 붕괴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다른 사람들보다 죄가 많아서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대신, 누구도 그런 사고를 당할 수 있으니
늘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회개를 당부하십니다.

 

3.
지금은 많이 수그러들었는데
예전에는 자연재해나 큰 사고를 죄와 연결하는 기독교인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자칫 그런 재난을 겪지 않은 자신이 의인이라는 오만함의 표출일 수 있고
재난당한 사람을 죄인 취급하는 그릇된 심보입니다.

 

광주나 플로리다 참사와 같은 사건 사고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함께 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를 잃은 유족들의 슬픔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회개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 사회에 적용하면,
무고한 생명을 빼앗아가는 사건과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 안전망을 철저히 구축하고 관리 감독하는 일입니다.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말아야겠습니다.

 

2021년 하반기의 시작인
7월 새달의 첫날을 맞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안전하고 평화롭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편 121:1-2)

 
하나님,
우리가 사는 세상을 각종 사건과 사고로부터
안전하게 지키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1. 7. 1 이-메일 목회 서신)

2021 기도 (5)

성도의 기업

 

2021년 기도에 관한 말씀 마지막 시간입니다. 올해는 골로새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기도 생활은 물론 기도의 내용을 점검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요청하는 간구가 대부분입니다. 내가 필요한 것을 요청하니 자칫 하나님 중심의 기도가 아니라 자기(나) 중심의 기도가 되기 쉽습니다. 당장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간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골로새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만남)에 집중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생각, 행함, 성품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이 골로새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입니다. 필요한 것을 구하는 우리의 기도에 비하면, 바울의 기도는 신앙에 초점을 맞춥니다. 골로새 교회의 먹고 사는 일에 관심이 없어 보일 정도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는 예수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기도 마지막(12절)은 감사의 기도입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통해서 성도에게 주어진 기업을 얻게 되었음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선한 열매를 맺으면서 하나님께 합당하게 살고, 모든 견딤과 인내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의 끝은 곧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의 기업에서 “기업”은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대로 가나안 땅을 얻고 각 지파 별로 분배 받은 기업을 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기업이 할당되었는데, 예수님을 통해서 모든 성도가 기업을 얻게 되었으니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백성이 되었기에 현재도 성도의 기업을 누리고,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벽한 주의 기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13-14절은 기도에 이어서 성도의 기업을 부연해서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세력이 통치하는 어둠 속에서 우리를 건져서 예수님께서 통치하시는 빛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적합한 거룩한 백성으로 삼기 위해서, 그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고 결국에는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모든 죄를 속량하셨습니다. 모든 죄가 사라지고 거룩한 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성도의 기업을 얻게 되었습니다.

 

2021년 한 해 동안 골로새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를 기억하고 우리의 기도가 깊어지길 바랍니다. 삶에 지치고 당장 급한 일에 쫓기는 우리이기에 하나님께 드리는 간청이 앞서지만,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기도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삶이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성도의 기업을 마음껏 누리기 원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