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신앙

 

 

 

 

좋은 아침입니다.

 

1.

신축년(辛丑年) 새해 첫 달이 지나갑니다.

 

소처럼 느릿느릿

그렇지만 해야 할 일을 꼼꼼하게 챙기면서

걷기로 결심했던 새해입니다.

 

여느 해처럼

빠른 속도로 걷기 힘들 것을 우리는 압니다.

조바심을 낸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닙니다.

혼자서만 앞으로 치고 나갈 수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2020년 거의 한 해를

팬데믹으로 살았기에

새해의 삶이 더 이상 새로운 일상(new normal)도 아닙니다.

 

2.

참빛교회 목사로서 갖고 있는 고민은

언제 우리가 다시 모여서 예배할 수 있을까보다

각자의 자리에서 예배하고 흩어져 지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우리의 신앙이 식고 행여나 부서지는 것은 아닐까 입니다.

 

신앙은 혼자 가는 길이 절대로 아닙니다.

공동체로 모여 있을 때 유지되고 깊어지고 넓어집니다.

 

연말에 참빛식구들께 선물한

헨리 나우웬의 책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에 이런 글이 나옵니다.

 

상처를 안고 사는 우리가 서로 마음을 나누려는 소원이 가장 아름답게 표현되는 때는

함께 식사를 할 때가 아니겠는가? 식탁, 음식, 음료, 말, 이야기, 이러한 것들이 서로에게

각자의 삶을 내어 주려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일 뿐 아니라 실제로 그것을 실행하는

가장 친밀한 방법이 아니겠는가? 나는 ‘함께 떡을 뗀다’는 표현을 아주 좋아하네. 그때는

깨어지고 나누어 주는 것이 확실하게 하나가 되기 때문이지. (93쪽)

 

지난 주일 예배 후 <참빛 테이블 토크>에 초대된 권사님께서

주일 예배 후에 함께 떡을 떼며 식사하던 때가 그립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같은 심정입니다.

 

3.

우리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합니다.

 

교회보다도

경제와 학교가 먼저 열려야 합니다.

함께 만나서 예배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지만

안전한 세상이 속히 올 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양보하고 더 길게 기다릴 수 있습니다.

 

대신,

우리가 지속해서 힘써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신앙에 깊이를 더하는 일입니다.

 

신앙을 나무에 비유하면,

팬데믹 동안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리는 것입니다.

 

잎과 줄기도 중요하고, 무엇보다 열매가 꼭 필요하지만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고, 신앙을 표현할 기회가 적은 지금은

깊이 있는 신앙을 훈련하기 딱- 좋은 시간입니다.

 

웬만한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신앙을 갖추기 원합니다.

전도를 비롯한 이웃과의 관계는 제한을 받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더욱더 깊어지기 원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과 단둘이 만나는 “골방 시간”을 꼭 가지시길 부탁드립니다.

 

아이들이 있어서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르셔도

잠자리에 들기 전, 단 몇 분이라도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갖는 것입니다.

 

보슬비에 옷이 젖듯이

하나님과 단둘이 갖는 골방 시간이 깊이 있는 신앙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가 나를 사랑한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이름을 내가 그를 높이리라. (시 91:14)

Because he holds fast to me in love, I will deliver him;

I will protect him, because he knows my name. (Ps 91:14)

 

하나님,

참빛 식구들이 고요한 시간 골방에서

주님을 찾을 때마다, 꼭 만나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1. 28 이-메일 목회 서신)

 

 

시편 91편 (4)

네가 나를 사랑한 즉

 

성경 말씀대로 살면 모든 것이 잘 되고 어려운 일이 생기지 않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래서 열심을 다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삶이 말씀대로 펼쳐지지 않습니다. 거기서 고민이 생기고 회의가 밀려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책임은 아닙니다. 우리가 잘못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막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말했지만, 실제로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한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실수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솔직히 힘듭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만 믿기로 언약을 맺었는데, 이들이 먼저 계약을 어겼습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가나안 신들을 섬긴 것입니다. 선지자들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나라를 잃고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와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질문이 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만들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갖게 되는 일반적인 질문입니다. 시편 91편 앞에서부터 시작된 질문들입니다.

 

시편 88편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버리신 것 같다고 한탄했습니다. 하나님과 자신들의 끈이 끊어진 것 같았습니다. 시편 89편에서도 현재의 고난이 언제 끝날 지 하나님 앞에서 호소합니다. 악인들이 승리한 것에 대한 한탄도 섞여 있습니다. 시편 90편에서는 하나님께서 다시 찾아 오시길 간청합니다. 모세 시대에 이스라엘과 함께하셨던 하나님께서 다시 자신들에게 임하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시편 91편에서는 하나님을 향해서 새롭게 신앙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의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무엇보다 시편 91편은 예배 상황입니다. 예배를 인도하는 시편 기자가 자신의 고백과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이 여전히 함께하시고 이스라엘을 지켜 주심을 선포합니다. 백성들이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고 화답하고, 인도자는 다시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지키실 것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시편 88편부터 이어진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입니다. 물론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힘들게 하셨는지는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는 백성들을 건지시고 높이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절대로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약입니다.

 

우리도 2021년 새해를 힘겹게 시작했습니다. 어려울수록 하나님 품으로 달려가고, 두렵고 불확실할수록 하나님을 의지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책임지실 것을 믿고 신앙의 길을 걸어갑시다.-河-

인생길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 설교에서

<호모 비아트로 Homo Viator>  라는 말을 소개했습니다.

길을 걷는 존재, 여행자와 같은 인생이라는 뜻입니다.

 

“한 평생”이라는 말은

우리가 걷는 인생길이 ‘한’없이 길다는 의미와

한 번뿐인 인생이라는 뜻이 있을 겁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한평생은

어느 시인의 싯구대로 “소풍”이요

노래 가사 대로 “나그네길”입니다.

 

그 길을 걸으면서

오르막과 내리막과 같은 인생의 굴곡

때로는 험한 길, 때로는 고속도로와 같은 평탄한 인생길을 만납니다.

 

그 길을 가면서

미움, 시기, 질투, 경쟁, 실패

사랑, 화해, 양보, 승리, 기쁨까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합니다.

 

그 길을 함께 걸을 “길동무”가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고, 가장 큰 축복입니다.

 

 

2.

지난 월요일 아침

우리 교회의 최 연장자셨던

낸시 바렛 권사님께서 94세로 하나님께 가셨습니다.

 

낸시 권사님의 한평생도

말 그대로 곡절(曲折)의 삶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가셨건만

남편은 권사님과 갓난아이만 남겨놓고

전쟁터로 나가서 행방불명이 되셨습니다.

 

70년대 한국의 경제개발 시기에

주택을 개조해서 사고파는 사업을 하셔서 나름 성공하셨습니다.

 

재혼을 하셔서 일찍이 미국에 오셨습니다.

아들을 미국에서 공부시키고 싶다는 소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권사님 소원대로 버클리 공대를 졸업한

어느덧 70이 넘으신 아들의 효도를 마지막까지 충분히 받고 하나님께 가셨습니다.

 

권사님 집 뒤뜰은 가파른 절벽입니다.

그곳을 모두 일구셔서 산비탈의 정원을 만드셨고

그곳에 갖가지 꽃들과 채소를 심으셨습니다.

 

한시도 가만히 계시지 않던 부지런한 권사님이십니다.

깔끔하시기가 이를 데 없으셨습니다.

 

지난 5-6년은 거의 노환으로 집에 계셨습니다.

코로나 전에 심방 가면, 교회 걱정을 하시고,

따뜻해지면 교회에 꼭 오고 싶다고 저희 손을 꼭 잡으셨습니다.

노련하게 신앙을 표현하지 못하셔도

끝까지 하나님을 놓지 않으셨던 멋쟁이 권사님이셨습니다.

 

연초에 달력과 교회 선물을 갖고

잠깐 권사님을 뵈러 갔더니

기도하는 중에 그렇게 흐느껴 우셔서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홀연히 하나님께 가셨습니다.

 

평생 편두통으로 타이레놀을 조제해서 드시고

노년에는 허리도 아프셔서 앉아있기 힘드셨는데

이제 고통도 아픔도 없는 하나님 품에서 영원히 안식하실 줄 믿습니다.

 

3.

권사님의 한평생을 회고하면서

우리가 걷는 인생길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끝이 있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 끝은 빈손으로 홀연히 하나님께 가는 길입니다.

 

무엇이 중요하고, 끝까지 남는 것이 무엇일까요?

상투적이지만 다시 스스로 다짐합니다:

“사람들 마음속에 남는 인생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 손을 꼭 붙들고 주어진 인생길을 걷기 원합니다.

우리 곁에 있는 길동무, 신앙의 동지들과 기쁨을 나누며

오늘 하루, 한평생 그 길을 가기 원합니다.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시 91:11)

For he will command his angels concerning you

to guard you in all your ways.(Ps 91:1)

 

 

하나님,

참빛 식구들이 가는 모든 길을

천사를 동원해서 꼭 지켜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1. 21 이-메일 목회 서신)

 

 

시편 91편 (3)

네 모든 길에서

 

사람은 <호모 비아토르>,길 위를 걷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인생길이라고 하고 신앙의 여정이라고 부릅니다. 길 위는 언제나 복잡하고, 어디로 가야할 지 불안하고, 가만히 멈춰 있을 수 없습니다. 말 그대로 나그네 삶입니다.

 

길 위의 삶은 치열합니다. 편안하게 쉬고 있을 틈이 없을 정도로 이런저런 일들이 수시로 일어납니다. 지난 시간에 읽은 시편 91편 말씀대로 “밤에 찾아오는 공포, 낮에 날아드는 화살,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이 길 위를 걷는 우리 모두가 겪는 일상입니다. 그러니 삶이 고되고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신앙의 경험을 통해 보면,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이런 어려움에서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악인과 선인에게 똑같이 햇볕이 비추듯이, 어려운 일도 모든 이에게 무작위로 닥칠 때가 많습니다. 물론 인생을 잘 관리하고 준비하면 어려움을 피할 확률이 줄어들겠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우리가 읽고 있는 시편 91편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를 잃고 제국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아무래도 자유롭지 않은 속박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70년이 지나면 포로에서 해방될 것을 약속하셨지만, 기다림의 끝이 언제 올지 막연합니다. 믿음이 강해도 기다림은 언제나 어려운 법입니다.

 

그때 시편 91편 말씀은 이들에게 생수와 같았을 것입니다. 천 명이 왼쪽에서, 만 명이 오른 쪽에서 엎드러지지만, 재앙이 하나님 백성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 앞에서 안심했을 것입니다. 힘겨운 포로 생활이지만 다시 일어나서 소망을 잃지 않고 하루하루 살았을 것입니다.

 

세상은 혼란스럽고 삶은 힘든데 그 틈을 타서 호위 호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벼룩의 간을 빼먹듯이 약한 사람을 착취하는 악인들입니다. 옛날이나 요즘이나 사람 사는 곳에는 이런 사람들이 꼭 있습니다. 화가 나고 속이 터질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보응하실 것이라는 말씀 앞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꿋꿋하게 선한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라고 고백하는 주의 백성들의 가는 길을 천사가 보호해 줄 것입니다. 손을 붙들어서 발이 돌에 부딪쳐 넘어지지 않게 할 것입니다. 독사나 사자 같은 숨어있는 재앙도 발로 밟고 통과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피난처삼고 새해를 시작하는 참빛 식구들께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임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을 확실히 의지하면서 새해를 살아갑시다 -河-

날개

좋은 아침입니다.

 

1.

제가 국제선 비행기를 처음 탄 것은

1992년 겨울이었습니다.

다니던 직장에서

본점이 있던 호주로 연수를 가던 길이었습니다.

 

그때는 김포공항발 호주행 비행기가

일주일에 한 번 밖에 없었고

그것도 국적기가 아닌 호주 콴타스 항공이었습니다.

 

밤 비행기를 타고 출국했는데

비행기 창문으로 빛이 따라오면서 깜빡이는 겁니다.

게다가 기체의 움직임도 심해서

불안함에 밤을 꼬박 샜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가 앉은 좌석이 날개 부분이었고

비행기 날개 끝에서 깜빡이는 빛이었습니다.

 

호주 시드니에 도착해서 비행기가 착륙하는데

날개 부분이 덜렁 열리는 것을 보면서

밤새 비상등을 켜더니 무슨 고장이 난 줄 알고

혼자서 마음을 졸였던 우스운 기억이 생각납니다.

 

2.

<Soar, 날아오름> 이라는 책에서

30년 이상을 조종사로 근무했던 저자는

비행기의 안전성에 대해서 조목조목 알려줍니다.

 

비행기 기체의 안전한 설계,

2중 3중의 안전장치,

비행기를 탈 때 가져야 할 마음가짐 등을 설명하면서,

비행기 날개가 비행기의 안전 운항에 필수적임을 알려줍니다.

 

비행기 날개 끝에 살짝 위로 솟아오른 부분은

어릴 적 종이 비행기를 날릴 때 날개 부분을 접어 올리면

곧게 날아가는 원리라고 쉽게 알려주었습니다.

 

악천후나 비상 사태에서도

비행기는 날개와 더불어 평형을 유지하기에

그 무엇보다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3.

지난주일 시편 91편을 나누면서

“날개”라는 표현을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날개 깃으로 자신의 백성을 덮어 주십니다.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깃으로 덮어주는 것,

어머니가 아기를 옷깃으로 덮어주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날개 아래 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날개를 활짝 펴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기에

하나님을 향해서 “나의 피난처”라고 고백했습니다.

 

비행기 날개로 인해서 안전성이 확보되듯이

하나님께서 날개 깃으로 우리를 덮으시니 안전합니다.

불안하고 힘들 때, 하나님 날개 아래로 피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한 걸음 더 나갑니다.

하나님을 바라고 의지하는 자는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는 것처럼 솟아오른다고 했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사40:31)

 

4.

비행기를 안정적으로 운항하게 하는

날개 바로 옆에 앉아 있으면서도

날개 끝의 안전등을 보고 불안해하던 저의 첫 번째 비행기 탑승 경험처럼

행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날개 깃으로 덮고 계시는데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아닌지요?

 

2021년 한 해를 살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피난처 삼고

날아올라야 할 때는 독수가 날개 치며 솟아오르듯이 비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자신감, 용기, 그리고 힘일 것입니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시편 91편 4절)

He will cover you with his pinions,

and under his wings you will find refuge. (Ps91:4).

 

하나님,

힘들게 시작하는 새해지만

참빛 식구들의 신앙과 삶이 날아오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1. 14 이-메일 목회 서신)

 

 

 

시편 93편 (2)

하나님의 진실함

 

오늘은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을 기억하는 주현절 첫째 주일입니다. 대강절(Advent)로 시작한 교회력은 성탄절을 거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나타나신 주현절에 이르렀습니다.

 

영어로 에피파니(Epiphany)라고 불리는 주님의 나타나심은 기독교 신앙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대강절에 함께 나눈 디도서 2장 11절에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라고 했고, 여기서 은혜는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예수님의 나타나심으로 시작합니다. 우리가 찾아가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는 것이 신앙입니다.

 

앞으로 6주간의 주현절을 보내면서, 우리 안에 나타나실 예수님을 기대합니다. 그 예수님을 만남으로 우리의 신앙에 깊은 깨달음이 임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새해가 되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를 찾아오셨듯이,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찾아가셨습니다.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세상이 알지 못했듯이,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도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끝까지 책임지셨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진실하심’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면서, 나라를 잃고 성전도 무너지고 수 천마일 떨어진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갑니다. 그러자 자신들의 잘못은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시편 91편은 여전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심을 확인시켜 줍니다. 지존하신 전능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피난처와 요새가 되심을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올무에서 건져 주실 것입니다. 전염병에서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의 날개로 이스라엘을 덮어서 보호하십니다. 날개는 예루살렘 성전 지성소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했던 그룹의 두 날개를 연상시킵니다.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타나심 속에 피하면 안전할 것입니다.

 

자신의 백성을 끝까지 책임지고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모든 재앙에서 건져주십니다:“밤에 찾아오는 공포, 낮에 날아드는 화살,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 그러니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주의 백성에게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올 한 해 진실하신 하나님께서 참빛 식구들과 함께 하시고 보호하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 의지하며 걷는 한 해의 삶이 되길 바랍니다.-河-

들소의 뿔같이

좋은 아침입니다.

 

1.

팬데믹 기간 동안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 마스크입니다.

그 중에서도 N95 마스크가 인기입니다.

 

N95마스크에 사용되는

특수 소재를 발명한 분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대만 출신의 피터 싸이(Peter Tsai)박사입니다.

 

싸이 박사는

재료공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1981년에 캔자스 대학에 유학 왔습니다.

 

박사과정 시절에는

여섯 개의 박사학위를 가질 정도의 500 학점을 이수했답니다.

자신의 전공은 물론 물리학을 비롯한 연관 학문을 공부한 것입니다.

 

학위를 끝내고 텍사스 대학의 교수가 된 싸이 박사는

1990년에 N95 마스크에 사용되는 특수 소재를 발명했습니다.

 

바이러스를 비롯한 미세 먼지를 막아주는 소재로,

처음에는 가정용 공기정화 필터를 생각했지만,

3M과 협업하면서 공사장이나 먼지가 많은 곳에서 일하는 분들,

의료진들을 위한 N95 마스크로 발전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시작되면서 N95 마스크가 각광을 받게 되자

싸이 박사는 수십 년 전 자신의 발명품이 인류를 구하는데 공헌하는 것에

커다란 보람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2018년에 은퇴했는데, 코로나 이후

연구소와 기업들이 그의 자문을 구하는 바람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삶을 살고 있답니다.

 

2.

신축년(辛丑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는 소띠 해입니다.

 

팬데믹으로 집에서 맞이하는 새해여서

여러모로 답답한 것도 사실입니다.

백신이 나왔지만, 여전히 코로나는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소처럼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싸이 박사가  자기 인생을 살다가 N95 특수 소재를 발명했고,

30여 년 후에 그것이 인류의 안전을 위해서 사용되듯이

우리가 걷는 현재의 인생 여정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보람되고 감사할까요!

 

2021년을 그런 마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3.

주일에 살펴보는 시편 91편 다음 장에 보면

“들소의 뿔”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같이 높이셨으며 (시92:10).

 

여기서 “뿔”은 권위의 상징입니다. 근사함입니다.

“들소”는 힘의 상징입니다.

히브리어 본문은 “주께서 들소처럼 내 뿔을 높이셨습니다”입니다.

 

주께서 우리의 뿔을 들소처럼 높이실 것을 기대하면서

올 한 해 어떤 상황에서도 기죽지 않고

소처럼 자신의 길을 걷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 참빛 식구들께

들소의 강인함과 멋짐을 더해 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뿔을 들소의 뿔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을 부으셨나이다 (시편 92:10)

But you have exalted my horn like that of the wild ox;

you have poured over me fresh oil. (Ps92:10).

 

하나님,

힘든 가운데도 열정을 갖고 새해를 시작하는

참빛 식구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1. 7.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