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9)

–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이사야 9:6).

 

예수님께서 태어나기 800여년 전에 구약시대 이사야 선지자는 다윗의 후손으로 세상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했습니다.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평강의 왕이 세상에 오실 것이라고 했으니, 인간의 몸을 입고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에 꼭 맞는 예언입니다.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으니 기독교에서 성탄절은 축제의 절기입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의 탄생으로 인해서 밝게 맞이할 절기입니다. 탄생의 기쁨으로 성탄절을 가득 채우기 원합니다.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찬양하기 원합니다. 성탄의 기쁨입니다.

 

우리 교회는 성탄절 예배로 따로 모이지만, 출타하시는 성도님들이 많은 관계로 성탄절 전 주일을 “성탄 주일”로 지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성탄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다면, 세상은 여전히 죽음이 판을치고 영원한 생명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강을 경험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펴보는 데살로니가전서에서도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밤과 어두움에 속하지 않았다고 알려줍니다. 우리 모두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살전5:5). 2천 년 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예수님께서 이제는 모든 사람이 보는 가운데, 예고하신 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도둑처럼 오신다고 하셨지만, 빛에 속하고 낮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앞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영원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곧 예수님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하늘의 능력과 힘이 임합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은혜가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랑으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기쁨으로 받을 때,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주시는 확신이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세상을 보는 관점도 바뀝니다. 추구하며 쫓아가던 대상이 바뀝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게 된 이유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신령한 몸을 입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기에 죽음도 뛰어넘었습니다. 그 안에서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토대로 충만한 신앙의 길을 걸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갔던 믿음의 길을 우리도 걷기 원합니다. -河-

기다림

좋은 아침입니다.

 

1.

우리 마음속에

촛불 세 개 밝히고

대강절(Advent) 셋째 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대강절은 교회사에서

첫 번째 절기이니,

우리는 새해를 한 달 먼저 맞은 셈입니다.

 

대강절은 기다림의 절기입니다.

매 주간 촛불을 하나씩 밝히면서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기다립니다.

어두운 세상에 참빛으로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2.

2천 년 전 이스라엘 백성들도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로마의 식민지가 계속되고

헤롯왕을 비롯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권력 싸움을 일삼고

경제적으로 어렵고, 정신적으로(신앙적으로) 피폐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다윗의 자손 메시아를 목이 빠지게 기다렸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로마는 물론 악한 세력들을 몰아내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다윗 왕국을 새로 건설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3.

그때 베들레헴에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습니다.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시고, 폭풍을 잠잠하게 하시고,

병을 고치시고,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말씀은 특별했기에

육신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가장 못된 죄인들이 달리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백성들은 물론 제자들까지 실망해서 예수님을 떠납니다.

 

그런데 거기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사흘 후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완전히 신령한 몸(부활체)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peace be with you”로 인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모든 것을 바꾸었습니다.

오순절 성령까지 경험한 제자들은 180도 다른 사람이 되어서

목숨 걸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는 기독교가 시작되었습니다.

 

4.

종종 우리의 기대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 왕조의 재건을 기다렸는데

예수님은 로마를 무너뜨리는 대신 도리어 그들의 손에 죽으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다윗 왕국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기 위함입니다.

 

아침에 읽는 에베소서 말씀에 있듯이

그것이 하나님의 경륜(계획, 뜻)이었습니다.

그 경륜을 깨닫고, 믿고,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이 곧 신앙입니다.

 

우리의 기다림이 계속되고

행여나 우리의 기대와 다르게 현실이 펼쳐져도

하나님의 경륜을 믿고 그 안에서 인생길을 걸어가기 원합니다.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말입니다.

 

기다림에 끝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때 그 끝은 결국 해피 엔딩이 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참되시고 선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합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And we know that for those who love God all things work together for good,

for those who are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Rom 8:28)

 

하나님 아버지,

기다림의 여정을 걷는

참빛 식구들이 끝까지 주님을 의지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12.19 이-메일 목회 서신)

 

 

데살로니가전서 (8)

– 택하심

데살로니가전서는 인사말에 이어서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는 것 세 가지를 소개하였습니다. 교회가 그 세 가지를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그대로 자라간다면 바울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었습니다.

 

첫째는 바울 자신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기억하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음을 감사했습니다. 기도는 마음에 있는 것을 하나님께 전달하는 수단입니다. “너희를 기억함은”이라는 말씀은 바울의 생각과 마음속에 데살로니가 교회가 있었음을 알려줍니다. 그것 자체가 감사였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 마음속에 있는 또는 머리에 떠오르는 친지들을 위해서 기도하기 원합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입니다.

 

둘째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현저히 드러나는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갖고 감사했습니다. 그동안 한 가지씩 살펴본 신앙의 토대가 되는 덕목들입니다. 믿음에 행함이 있었고, 확신을 갖고 믿음의 길을 갔습니다.  말로만 사랑한 것이 아니라 손과 발로 사랑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형제 사랑에 대해서 더 쓸 것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바울은 먼저 하나님께 간 사랑하는 성도들의 미래를 놓고 고민하던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알려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지 모르니 항상 깨어서 준비할 것도 부탁했습니다.

 

바울의 세 번째 감사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그 사랑 안에서 선택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했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그 복음을 받았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와 예정 속에서 이뤄진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셨듯이 데살로니가 교회도 같은 사랑과 계획으로 선택하셨습니다(신7:7-8).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이 자리에 있습니다. 세상의 선택은 자랑거리입니다. 자신만 선택되었다는 경쟁 원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택은 차별이 없습니다. 선택의 기준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선택과 더불어 선택 이후도 중요합니다. 선택 이후에 복음으로 살고, 복음의 능력이 신앙과 삶에 드러나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복음이 제대로 들어갔고 싹이 났고 열매를 맺었습니다. 말로만 임한 복음이 아니었습니다. 복음 자체가 갖고 있는 능력이 역사했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동시에 큰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려움이 닥쳤지만, 성령이 주시는 기쁨으로 어려움을 이기고 도리어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걸어가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이 자신들이 속한 마게도냐는 물론 아가야 지방까지 소문날 정도였습니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믿음의 교회였기에 우리에게도 귀감이 됩니다.-河-

한 가지

좋은 아침입니다.

 

1.

2019년이 보름 정도 남았습니다.

2010년대를 마무리하는 해여서인지

올 한해는 유독 빠르게 지났습니다.

 

이맘때가 되면

지나 온 한 해를 돌아보게 마련입니다.

 

아쉬운 일들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연초에 세운 계획들이 흐지부지 되었거나,

나름 열심히 준비한 일들에 열매가 없을 때 찾아오는 아쉬움입니다.

 

감사한 일도 있습니다.

연초에 참빛 식구들께서 주신 기도 제목을 읽고 있으니

바라던 것들이 이뤄진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들 인생의 고삐를 잡고 계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생겨서 감사하고,

가족들, 교회 식구들 그리고 친지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한 해를 지나면서, 힘든 일도 마주쳤습니다.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지나고 나니 그것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험한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하고 여기까지 온 것에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함께 한 이웃들에게,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도 감사하기 원합니다.

 

2.

한 해를 보름여 남겨둔 지금,

“한 가지”를 정해서 그것을 착실하게 실천하면 어떨까요?

 

저도 한 가지를 선택하려니

욕심이 발동해서 하고 싶은 일들이 떠오릅니다:

 

성경 통독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기,

그동안 마음 먹었던 책 몇 권 읽기,

기도 시간을 조금 늘려서 한 해를 마무리하기,

요즘 세상이 혼란스럽고 사람들 사이에 벽이 높아지고 있는데 세상의 화해를 위해서 기도하기,

한 해 동안 한 번도 연락하지 못했던 친지들에게 성탄 인사하기,

도움이 필요한 이웃 찾아가기, 등등

 

3.

새해에 여러 가지 일을 계획했다면,

보름 남은 연말에는 꼭 하고 싶거나, 중요한 일

“한 가지”만 정해서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일을 해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참빛 식구들께 꼭 필요한 한 가지를 보여주시고,

이뤄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시편119:49)

Remember your word to your servant, in which you have made me hope.(Ps 119:49)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이 마음먹은

“한 가지”를 꼭 이루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12.12 이-메일 목회 서신)

 

 

 

 

 

 

송구영신(送舊迎新)

2019년 마지막 달을 지내고 있습니다. 올해가 2010년대의 마지막 해여서 인지, 교회 식구들께서 올해는 유독 빨리 지나간 것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말 그대로 한 해가 화살처럼 지나갔습니다. 새해를 시작한 지 엊그제 같은데 12월이 되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멈추게 할 수 있어도 째깍째깍 소리 내며 가는 시계의 초침을 멈출 수 없다는 말도 생각납니다.

 

올해 우리 교회는 <돌보는 교회>라는 표어를 갖고 살았습니다. 우리가 늘 그랬듯이 특별히 돌봄의 이벤트를 하거나 자랑할만한 사역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연초에 부탁드린 대로 매 주일 모일 때마다 외로워 보이는 분들이 계시면 다가가서 친구가 되어주고 슬며시 손을 잡아 주면서 한 해를 보냈습니다.

 

올해도 변함없이 초록 우산을 통해서 고국에 있는 30여 명의 아이들을 도왔습니다. 조전도사님께서 시작하신 사역인데 어르신들의 경우 돕는 아이가 18세가 넘어서 다른 어린아이로 교체해서 돕는 경우도 생겼으니 20년 가까이 우리 교회가 말없이 행하는 돌봄입니다.

 

오늘 노숙자 돕기 작은 사랑 나눔까지 올해도 세 번 나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한국에 계신 젊은 전도사님, 우리 지역에서 중독 사역을 하는 단체를 도왔습니다. 20불 이하의 헌금이지만, 이름없이 드리고 이름없이 돕는 것에 의미를 두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돌보는 우리 교회의 사역은 매우 부족해서 언제나 다음을 기약하게 됩니다.

 

참빛 식구들 개인과 각 가정의 삶도 녹록지 않았습니다. 연세가 드시는 권사님들은 육신이 연약해지십니다. 육신 뿐만 아니라 마음도 약해지실 때가 있습니다. 그럴수록 힘을 내셔야 합니다. 믿음으로 육신의 연약함을 이기시고, 무엇보다 하늘의 평안을 누리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삶도 힘겹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여러분의 인생길에 임할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어떤 어려움도 믿음으로 이기고 소망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커가는 아이들은 우리 교회의 보석입니다. 새해에 예수님처럼 키도 자라고 지혜도 자라는 우리 아이들이길 바랍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전히 어지럽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갈라져서 제각각 입니다. 어둡고 불안한 곳을 바라보면 희망의 빛을 발견하기 힘듭니다. 계시록 말씀에서 배웠듯이 역사를 주관하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소망 가운데 끝까지 참고 견디기 원합니다.우리는 이렇게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송구영신의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감사함으로 한 해를 보내고 우리 마음 한편에 좋은 추억들을 간직하기 원합니다. 믿음과 기도로 새해를 맞기 원합니다.-河-

수요예배에서는

좋은 아침입니다.

 

1.

수요예배는

샌프란에 사는 어르신들께서 주로 참석하십니다.

 

조촐한 모임이지만,

매 주일 성경을 한 장씩 읽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창세기 50장을 완독했습니다.

작년에는 예레미야 52장을 독파할 정도로 끈기 있는 모임입니다.

 

이제 신약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만 남았습니다.

구약은 아직 읽을 부분이 많지만,

열두 권의 소예언서, 잠언, 전도서, 예레미야, 창세기를 읽었습니다.

 

아무래도 구약 성경이 지루하고 어렵기에

신약과 구약을 번갈아 읽어갈 계획입니다.

 

목요서신에

수요예배 교재를 첨부하고 있습니다.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여도

교재를 참고해서 성경 본문을 함께 읽어 가시길 부탁드립니다.

 

2.

지난 모임부터

마태복음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세리 출신인

마태(혹은 레위)가 기록한 말씀으로 매우 꼼꼼하게 구약을 인용하고

1장의 족보에서 알 수 있듯이 세밀하게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1:1)로 소개합니다.

이어서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서

한가운데 다윗이 등장하는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했습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 다윗부터 다윗 왕조의 멸망과 바벨론 포로,

바벨론 포로에서 예수님까지

14대씩 3 기간으로 족보를 구분했습니다.

 

여기서 14대는 완전수 일곱(7)의 두 배이니

완벽함을 뜻하고

예수님께서 다윗 왕의 후손으로 세상에 오셨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다섯 명의 여성이 등장합니다.

유다의 며느리 다말, 여리고의 라합, 모압 여성 룻,

헷 족속 우리야의 아내이자 훗날 다윗의 아내가 된 밧세바입니다.

마지막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여성이 등장하는 것이 특별합니다.

그것도 도덕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여성들입니다.

마리아가 약혼한 상태에서 성령으로 예수님을 갖게 되는데

행여나 그것을 책잡을 사람들이 있을까 싶어서

흠을 갖고 있는 여성들이 족보에 들어왔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마리아를 빼고 나머지 다섯 명의 여성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 민족과 관련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이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말씀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만 아니라 모든 민족의 구세주로 오셨음을 보여줍니다.

 

3.

구약성경이 말라기에서 끝납니다.

400년의 공백을 끊고 등장한 마태복음은

구약과의 연관성을 고려할 때 신약성경 맨 앞에 위치하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구약과 신약을 잇는 다리와 같은 역할입니다.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규정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수요예배에

참석하지 못 하셔도

첨부한 교재와 교회 안내 데스크에 마련된 복사본을 참고하셔서

함께 마태복음을 읽으시길 부탁드립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강절을 맞고 있기에

예수님의 탄생을 전하는 마태복음 1-2장이 더욱 뜻깊습니다.

 

말씀과 더불어

한 해를 마무리하시고, 새해를 계획하시는

참빛 식구들 되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마 1:22)

All this took place to fulfill what the Lord had spoken by the prophet. (Matthew 1:22)

 

하나님 아버지,

수요 예배는 물론 참빛 식구들 안에

하나님 말씀이 살아있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12.5 이-메일 목회 서신)

데살로니가전서 (7)

소망의 인내

 

오늘은 대강절 첫째 주일입니다. 교회력을 따르면 대강절이 새로운 한 해의 시작입니다. 교회력은 예수님을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로 시작해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절,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을 알리는 주현절,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의 사순절과 부활절, 그리고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거의 반년을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구하면서 보냅니다.

 

대강절은 성탄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대강절 기간 동안 매 주일 촛불을 하나씩 밝히면서 보냅니다. 빛으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을 촛불에 담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력의 첫 기간은 기다림으로 시작합니다.

 

기독교는 어떤 면에서 기다림의 종교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 백성들이 구약에서 예언했던 메시아가 오기를 기다렸다면,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기도한 것이 응답되기를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세상에 이뤄지길 기다립니다. 지난 시간에 배운 대로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길 기다립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소망의 인내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으로 신앙의 첫 단추를 채웠다면, 사랑으로 꽃을 피우고, 소망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믿음이 과거라면, 사랑이 현재이고, 소망은 미래입니다. 이처럼 소망은 앞으로 될 일이기에 성취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소망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믿음과 사랑을 넘어서 소망까지 구비한 온전한 신앙을 갖고 있었습니다. 소망이 있기에 현재의 어려움을 참을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입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렸고, 예수님께서 오시면 선과 악을 심판하시고 의와 믿음이 승리할 것을 믿었습니다.

 

바울에게도 소망이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방문해서 그곳의 모든 성도와 얼굴을 보며 교제하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길이 막혀서 제자 디모데를 먼저 보냈습니다. 또한 바울이 갖고 있던 소망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끝까지 신앙을 지켜서 이다음 예수님 앞에 섰을 때 바울의 자랑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장차 이뤄질 소망과 관련해서 궁금한 점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이미 하나님께  간 친지들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기에, 모든 성도가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산 자와 죽은 자가 주를 예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날이 도둑같이 임할 것이니 깨어서 예수님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이 소망을 품고 사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우리에게도 소망의 인내가 요청됩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영원한 생명을 누릴 그날을 기다리며 끝까지 신앙의 길을 걷기 원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