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1.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로 세상이 뒤숭숭합니다.

 

한국 뉴스를 보면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습니다.

한국 친구들이 있는 카톡방에서도

대부분 바이러스 얘기입니다.

동기 모임을 무기한 연기한다는 공지도 뜹니다.

 

한국이 중국과 가까워 왕래가 잦고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함께 지내니

전염될 가능성이 훨씬 커서 그런 것 같습니다.

 

미국은 그에 비하면 아주 한산한 편입니다.

마스크를 쓴 사람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어제 코스코에 갔다가

마스크를 쓴 아시아계 여성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래도 서로 조심하는 것이 역력합니다.

 

지난 월요일 날 우체국에 갔는데 줄이 무척 길었습니다.

몸살 기운이 있어서인지 저도 모르게 기침을 했더니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저를 주시했습니다.

동양 남성이 기침을 했으니까요.

 

2.

조심하는 것이 나쁘지 않습니다.

이참에 외출해서 돌아오면

손을 오랫동안 깨끗이 씻는 것도 습관으로 만들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너무 민감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편에서는 이번에 유행하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그렇게 센 놈이 아니라는 보도도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작년 말과 올해

독감(flu)으로 만 명이 넘는 분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건사고는 또 얼마나 많습니까?

 

차분하게 대처하면 될 것 같습니다.

바이러스에 걸린 분들이 얼른 일어서길 기도하고,

무엇보다 의료진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각국의 보건당국이 현명하게 대처하길 기대합니다.

 

주일설교에서 말씀드렸듯이

이 또한 지나갈 일입니다.

 

3.

그래도 바이러스가 무서운 것은

공기를 통해서 전염되기 때문입니다.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일정 기간 숨어 있다가

때가 되면 활동을 시작합니다.

노약자의 경우 바이러스의 침투가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어디 바이러스만 그럴까요?

우리 안에 슬며시 들어와서 우리를 무력하게 만드는 것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바울이 로마서 7장에 말한 “죄”가 그렇습니다.

욕심, 염려, 불안, 두려움, 우울, 무력감, 절망, 소외, 연약함, 자기 연민 등등

우리를 무너뜨리는 일종의 바이러스들입니다.

 

손을 씻고 마스크를 쓰고

철저하게 위생을 관리하듯이

우리 신앙과 마음에 파고드는 악성 바이러스들도 몰아내야 합니다.

 

지난주부터 시작된

<예수님, 우리 예수님> 연속 설교 본문처럼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고, 치료하시고, 일으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구합니다.

 

차분하게 주어진 일상을 살아갑시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마8:3)

And Jesus stretched out his hand and touched him,

saying, “I will; be clean.” And immediately his leprosy was cleansed.”(Mat 8:3)

 

하나님 아버지,

어지러운 세상에 평안(샬롬)을 주시고

세상을 사는 참빛 식구들과 늘 함께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2.6 이-메일 목회 서신)

 

 

 

 

예수님, 우리 예수님 (1)

– 나병환자를 고치신 예수님

 

가능하면 주일설교 본문을 신약과 구약성경을 번갈아 다루고 있습니다. 새해 첫 달에는 우리 교회 표어인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가 들어 있는 구약 성경 이사야서 60장 말씀을 나눴습니다. 말씀대로 올 한해 <쿰>하고 일어나서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의 빛을 세상에 전하기 원합니다.

 

참빛 식구들께서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 사셔서 세상의 부조리와 악한 모습이 드러나고, 그곳에도 예수님의 빛이 임하길 바랍니다. 새해 첫 달부터 지구 곳곳에서 들려오는 전쟁, 자연재해 그리고 최근의 신종 폐렴까지 어수선한 세상에 예수님의 치유와 온전함의 은혜가 임하길 기도합니다.

 

2천년 전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팔레스타인은 로마의 식민지였고, 예루살렘 중심의 종교는 말할 수 없이 타락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종교와 정치 지도자들의 권력 다툼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니 힘없는 백성들의 삶이 피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권력에 저항하셨습니다. 그릇된 종교를 무너뜨리고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는 시도를 하셨습니다. 죽음을 불사하고 하나님 나라 복음을 세상에 전하셨습니다. 대부분의 권력자들은 예수님을 불편해하고 급기야 죽일 생각을 했지만, 많은 백성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중에 예수님께서 직접 부르신 열두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갈릴리 어부, 고민하던 세리, 로마 정권을 무너뜨리고 다윗 왕국을 재건하려던 열심당원까지 다양했습니다. 이들은 가족과 재산까지 모두 내려놓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많은 병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당시에 질병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벌로 여겼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병이 나도 의사를 찾아갈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오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는데, 앞으로 살펴볼 마태복음 8-9장에 예수님의 치유 사역이 집중적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만난 병자는 당시에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던 나병 환자였습니다. 나병에 걸리면 공동체에서 쫓겨나서 격리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접근할 수 없었고, 저주받은 인생 취급을 받았습니다. 나병으로 인해서 흉해진 외모만큼 이들의 인생은 완전히 망가진 채 절망적인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왔을 때, 나병 환자 한 사람이 찾아와서 깨끗게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예수님께 나오기까지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의 비난과 저지를 감수하고 왔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서 나병 환자를 만지셨습니다. 그리고 “깨끗함을 받으라”고 명령하시니 즉시 병이 나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꺼리고 혐오하는 나병 환자를 고치신 예수님, 역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 河-

인생길

1.

새해 벽두부터

중동발 전쟁의 기운,

호주발 산불,

중국발 신종폐렴까지 어두운 소식이 들려옵니다.

 

경자년 새해는 흰쥐띠 해라고

무엇인가 좋은 일이 많이 생기길 기대했건만

세계정세가 아직은 잔뜩 흐림입니다.

 

그러던 와중에

지난 주일에는 NBA농구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가 헬기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는 세 살부터 농구를 시작했고,

여덟 살이 된 1996년에 자신이 좋아하는 LA 레이커스에 입단해서

2016년까지 20년 동안 다섯 번이나 팀의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아버지처럼 농구선수가 되려는

열세 살 딸과 함께 자가용 헬리콥터를 타고 이동하다가

짙은 안개에 시야를 잃으면서 헬기가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막 불혹을 넘긴 41세의 젊은 나이였습니다.

 

갑작스러운 스포츠 스타의 죽음을

많은 사람이 추모하고 있습니다.

마치 미국 전체가 그와 딸의 죽음을 추모하는 듯합니다.

 

2.

새해 첫 달에

올해 우리 교회 표어인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Arise and shine”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올 한해 각자의 자리에서 일어나고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의 빛을 전하기로 다짐했습니다.

유별나고 큰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 하나님의 일이 되길 바랐습니다.

 

깜깜한 세상이지만

하나님과 더불어 꿈을 꾸고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동화 같은 세상을 상상했습니다.

 

그렇지만 현실로 눈을 돌리면

말 그대로 한 치 앞을 알 수 없습니다.

조금만 긴장을 풀면

여지없이 어디선가 크고 작은 폭풍우가 밀어닥칩니다.

 

우리가 걷는 인생길이 쉽지 않은 이유입니다.

 

3.

겸손하기 원합니다.

차분하기 원합니다.

정말 중요하고 궁극적인 일에 집중하기 원합니다.

‘순간의 일’과 ‘영원의 삶’을 구별하기 원합니다.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인지

하나님 앞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고 그 일에 힘을 다하기 원합니다.

지금은 그 끝을 모두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연결해 주실 것을 믿고 말입니다.

 

새해의 첫 달을 마무리하면서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생길을 돌아보고 재조정하고

다시 힘차게 새달을 맞읍시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사 60:1)

Arise, shine, for your light has come,

and the glory of the LORD has risen upon you. (Isa 60:1)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이 살아가는 인생길을

주님께서 동행하시고 인도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1.30 이-메일 목회 서신)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4)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로 시작하는 이사야서 60장은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의 모형입니다. 이스라엘에 닥친 현실은 깜깜할 뿐입니다. 정의와 공의가 무너졌습니다. 사람들의 입술에는 거짓과 악독함이 가득합니다. 진리가 사라지니 사람들의 눈이 어두워져서 우왕좌왕 헤매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물론 온 세상이 어둠에 덮였습니다. 그때 임한 말씀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낙원처럼 평화로운 적은 거의 없습니다. 전쟁의 소문이 끊이지 않았고, 질병의 공포, 사람들 사이의 시기와 질투, 폭력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으면서 하나님을 등지고 자신의 길을 가면서 생긴 어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기 위해서 끊임없이 애쓰셨습니다. 비록 자신을 떠났지만,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신 인류를 기필코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구원의 드라마입니다.

 

이사야서 말씀에서도 하나님께서 먼저 일어나셨습니다. 오래 참으셨지만, 사람들에게 가능성이 없는 것을 발견한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시 세우시기로 작정하십니다.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의 일에 동참할 자신의 백성을 찾으시고 그들에게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고 부탁하시는 것입니다.

 

무작정 말씀하거나 강요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영광으로 임하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빛이 되어 주십니다. 해와 달이 비추는 빛이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사60:19)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빛이 되십니다. 그 빛이 주의 백성들에게 임하니 백성들이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이 빛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빛을 경험한 하나님 백성들에게 소망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꿈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깜깜한 세상이지만, 하나님께서 이루실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일어나서 빛을 발할 수 있는 근거입니다.

 

지난 한 달 동안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우리 교회 올해 표어에 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어려움이 닥치거나 힘이 빠져서 주저앉게 되면 “쿰”하고 일어나길 원했습니다. 내 빛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의 빛을 비춰야 함을 배웠습니다. 자신만의 생각에 갇혀 있지 말고 상자를 열고 밖으로 나오는 것이 일어나서 빛을 비추는 삶임도 깨달았습니다. 어두운 세상만 바라보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꿈꾸시는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이뤄지는 것임을 함께 나눴습니다.

 

일상이 하나님의 일이 되고, 그것이 하나님의 큰 계획으로 연결되어서 일어나서 빛을 비추는 올 한 해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河-

두려워 말라

좋은 아침입니다

 

1.

화요일 아침에 나눈 요한복음 6장 20절에서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It is I; do not be afraid

는 예수님 말씀을 만났습니다.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던 제자들이

갑작스레 불어온 큰바람을 만나서 허둥지둥하고 있을 때,

폭풍속 바다 위를 걸어오시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니 폭풍이 잠잠해졌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갑작스레 제자들에게 폭풍이 몰아쳤듯이

우리 인생길에도 크고 작은 폭풍이 밀려옵니다.

폭풍을 맞닥뜨리지 않는 인생길은 없습니다.

 

그때, 우리에게도

내니 두려워 말라”는 예수님의 음성이 필요합니다.

 

2.

두려워 말라 Do not be afraid

성경에서 자주 만나는 말씀입니다.

 

혹자는 성경에 365번 등장한다고 합니다.

매일 우리에게 두려움이 닥치니

그때마다 “두려워 말라”는 말씀을 붙잡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365번은 누군가 만들어낸 것이고,

(이렇게 신기한 경우는 조심할 필요가 있음)

성경에 두려워 말라는 명령은100-120번 정도 등장합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겁내지 말라”와 같은

유사한 표현이 있어서 정확한 횟수를 세기 힘듭니다.

 

일 년으로 환산하면 매일은 아니어도

3일에 한 번꼴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이 등장하네요.

 

그만큼 우리 안에 그리고 신앙과 인생길에

두려움이 밀려온다는 뜻이고

그때마다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3.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It is I; do not be afraid.

 

현재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

우리 인생길에 마주친 두려움,

예상하기 싫어도 앞으로 닥칠 두려움,

“두려워하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으로 이겨내기 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 41:10)

Fear not, for I am with you;

be not dismayed, for I am your God;

I will strengthen you, I will help you,

I will uphold you with my righteous right hand. (Isa 41:10)

 

하나님 아버지,

다양한 경로에서 순간순간

또는 지속적으로 쫓아오는 두려움을

하나님 말씀으로 다스리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1.23 이-메일 목회 서신)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3)

새해 첫 달도 절반이 훌쩍 지났습니다. 참빛 식구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사신 줄 압니다. 힘들 때마다 <쿰>하고 일어나고, 앞으로 나가야 할 때는 <쿰>하고 힘을 받아서 새해를 살고 계시는 줄 압니다. 올 한해 주저앉지 말고 순간순간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세상에 예수님의 빛을 비춰야 합니다. 참빛되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면, 우리에게서 예수님의 빛이 발할 것입니다.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 죽음이 베어 있는 세상에 생명의 빛을,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복음의 빛을 세상에 비추는 것입니다. 참빛 식구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빛이 세상에 비치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어두운 세상이었습니다. 정의와 공의가 사라지고, 사람들의 손에는 피가 묻어있고, 악독한 말이 난무했습니다(사59:2).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없고 도리어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하나님을 속이고 패역과 거짓말을 일삼았습니다 (사59:13). 남아있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지만, 하나님의 침묵은 길어졌습니다. 구원의 손길은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나서서 자기 팔로 구원을 베푸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세상을 구하시려는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악한 길로 나갔던 사람들은 그들의 행위대로 심판하시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세상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원수들에게 보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임하시니 끝까지 믿음을 지킨 주의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순간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났지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을 몸소 지키실 것입니다(사59:21).

 

세상은 여전히 어둡습니다. 아직 바뀐 것은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서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사60:1)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의 빛과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임할 것입니다. 어둠으로 뒤덮인 깜깜한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과 빛이 임하니 세상 만국 사람들이 빛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올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이방 나라들이 제물을 갖고 예루살렘으로 올라옵니다. 미디안과 에바의 낙타들, 금과 은을 갖고 오는 스바 사람들, 남쪽 아라비아 게달 민족은 양을 갖고 와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입니다. 당시 땅끝이라고 여기던 다시스에서도 금과 은을 배에 싣고 와서 하나님께 드립니다.

 

함께 어울려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습 속에서 장차 이뤄질 하나님 나라를 봅니다. 슬픔이 사라지고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세상을 밝히고 있습니다. 시기와 질투, 반목으로 어두웠던 세상이 밝아질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면서 올 한해 일어나 빛을 발합시다.- 河-

위로부터 오신 이

좋은 아침입니다

 

1.

새해 첫달에 나누는 아침 말씀은

<요한복음>입니다.

 

요한복음은

독수리 복음서라고 불릴 정도로

예수님을 높은 곳에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로 묘사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요1:1) –

요한복음의 첫 구절은 창세기로 소급해 올라가서,

말씀(로고스)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함께 하셨음을 선포합니다.

 

그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는데

어두운 세상은 참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2.

요한복음 3장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바리새인이자 고위관리인

니고데모에 대한 말씀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을 보고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기다리던 메시아일 수 있기에

신분이 노출되지 않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알려주셨습니다.

 

본문에는 니고데모의 반응이 없는데

요한복음 뒤에 가면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서 향품을 갖고 옵니다(요19:39).

 

3.

요한복음 4장은

갈릴리로 내려가시던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라는 동네에서 한 여인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모든 면에서 니고데모와 다릅니다.

 

니고데모가 유대인이었고

여인은 유대인들이 천하게 여기는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니고데모는 높은 위치에 있었고

여인은 남편이 다섯 명도 넘을 정도로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유대인 남성과 사마리아 여인 사이에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간격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물을 좀 달라”(요4:7)고

먼저 여인에게 접근하셨고

결국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복음을 전해 주셨습니다.

니고데모와 달리 사마리아 여인은 즉석에서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알고, 동네로 뛰어가서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위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사마리아 수가성의 여인에게도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4.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사 60:1)

예수님의 빛을 세상에 발하기 원합니다.

니고데모부터 사마리아 여인까지

차별없이 임하는 복음의 빛을 세상에 비추는 것입니다.

 

땅에서 난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위로부터 오신 예수님에게 해답이 있습니다.

이 예수님과 더불어 올 한해 살아갑시다.

 

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32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33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요 3:31-33)

 

하나님 아버지,

위로부터 오신 예수님의 빛을

세상에 비추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1.16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