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그 이후 (4)

기다리는 사람들

 

우리는 지금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이 얼른 개발되기를, 바이러스 전파를 통제할 수 있는 테스트와 추적 시스템이 구축되기를, 학교나 직장은 물론 교회가 문을 열고 함께 모여 예배할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

 

기다림에는 끝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이뤄지는 기다림은 견딜 만 합니다. 그런데 희망이 보이지 않는 막연한 기다림이 계속 되면 몸과 마음이 지칩니다. 때로는 하나님을 향해서 탄식과 원망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다림(인내)을 믿음의 정도를 가늠하는 척도라고 하는가 봅니다.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기대와 달리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십자가형을 받으시면서 기다림의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메시아로서 큰 능력을 행하시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실 줄 알았는데,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것을 보고 실망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았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이 다시 모여서 패잔병처럼 처져 있을 때, 예수님의 부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셔서 손의 못 자국과 옆구리 창 자국을 보여주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갈릴리로 내려가셔서 베드로를 만나시고 “사랑”으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장차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할 사도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40일 동안 부활하신 자신의 몸을 오백여 형제들에게 한꺼번에 보이시고, 제자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알려주셨습니다.

 

하늘에 올라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부터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될 것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갔던 두 제자, 갈릴리에 가서 다시 고기를 잡던 베드로였기에 성령이 임할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 것을 신신당부하신 것입니다.

 

예전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무슨 뜻인지 모르던 제자들인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고 예수님 말씀이 진리라는 확신도 생겼습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늘 모였던 다락방에서 성령을 기다리며 기도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제자들의 변화된 모습입니다.

 

그곳에 모인 제자들이 120명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떠나시고 10일이 지났을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막연한 기다림 인줄 알았는데 기다림에 끝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말씀을 꼭 붙들고 기다린 덕분입니다. 우리의 기다림에도 반드시 끝이 있음을 믿고 믿음으로 이 시간을 지내기 원합니다.-河-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주일 말씀에서 만났던 인물은 시몬 베드로였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일곱 명의 제자가

갈릴리로 내려가서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과거의 삶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한 가닥 희망이 있다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약속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마가 16:7).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지만,

육신으로 함께 하실 때와 달리 제자들과 동고동락하지 않고

필요할 때만 나타나신 것 같습니다.

 

2.

어부로 돌아간 베드로의 마음은 혼란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예전에 있던 자리로 돌아왔지만

이미 3년을 예수님과 함께했기 때문인지 마음이 잡히지 않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심란한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고기 잡으러 바다로 나갑니다:”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요한21:3).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던 날과 똑같이(누가 5:1-11)

그날도 밤새도록 물질을 했지만 한 마리 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마음과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날 새벽,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숫가에 오셨습니다.

“주님이시라”는 말에 베드로는 곧바로 물로 뛰어들어 예수님께 갑니다.

 

3.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 오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처음 예수님을 만났던 갈릴리 바다,

베드로는 여전히 빈손인데,

예수님 말씀대로 그물을 내리니 153마리의 고기를 잡았습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와 같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던 곳에 모닥불이 피어 있었는데

그날 아침도 예수님께서 모닥불에 생선과 떡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베드로는 모닥불을 보는 순간, 죄책감이 더 크게 살아났고

예수님께 야단맞을 마음의 준비를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베드로 간에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흘렀을 것 같습니다.

아니, 베드로 혼자 느끼는 긴장입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입을 여셨는데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였습니다.

사랑을 말씀하시다니요! 베드로가 얼마나 놀랐을까요?

 

그렇게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사랑을 고백하고

예수님께서 부탁하신 양을 먹이고 치는 새로운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4.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 기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 최선일까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셨듯이

하나님의 사랑(아가페)으로 가족과 이웃을 보듬어주고,

때로는 친구의 사랑(필레오)으로 서로 공감하면서

힘든 시간을 버티고 지내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일 것입니다.

 

마침, 5월 우리 교회 달력의 표어도 <사랑>입니다.

달력을 볼 때마다, 아침에 말씀을 읽고 생각하며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고, 가족과 친지들에게 사랑을 전하기 원합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사랑>이라는 최고의 단어를 사용하는 예수님의 입이 되기 원합니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어주고,

아무리 힘들어도 앞으로 나가게 만드는 힘입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요일4:12)

No one has ever seen God;

if we love one another, God abides in us and his love is perfected in us.(1John 4:12)

 

하나님 아버지,

주의 사랑을 전함으로 하나님을 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5. 7 이-메일 목회 서신)

부활 그 이후 (3)

<부활절 그 이후>라는 주제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을 차례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낙심한 채 고향으로 내려가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마음에 뜨거움을 경험하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에 손을 넣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버티던 도마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제는 믿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믿는 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사람을 변화시켰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신비로운 몸을 입으신 것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살지만, 하늘의 소망을 품고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힘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베드로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예수님을 처음 만난 이래 3년 동안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으뜸이었습니다. 배에 가득 고기를 잡았지만, 사람낚는 어부가 될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을 듣고 모든 것을 남겨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예수님처럼 바다 위를 걷기도 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을 받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16:16)이라고 정답을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면서 그에게 천국의 열쇠를 맡기셨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서 예수님께서 절대로 고난받고 죽으실 수 없다고 항변하다가 “사단”이라는 야단도 맞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세 번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니 펄쩍 뛰면서 예수님과 함께 죽을 것이라고 선언했지만, 바로 그 밤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닭이 울자 예수님 말씀을 떠올리면서 가슴을 치고 울면서 회개했습니다. 이처럼 베드로의 신앙 여정은 파란만장했습니다.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자기 의도대로 신앙의 길이 전개되지 않았지만, 베드로는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니 죄책감이 크게 밀려왔습니다. 결국 몇몇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로 내려가서 다시 어부가 됩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있는 베드로를 어김없이 찾아오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시면서 베드로를 회복해 주시고 다시 주님의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베드로 역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회복되고 예수님께서 위탁하신 대로 예수님의 양을 치는 진정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부활의 주님은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고, 다시 시작하게 하시며, 가야 할 길을 알려주십니다. 할렐루야! -河-

교만

좋은 아침입니다.

 

1.

올해 초 중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생겼다는 소식을 접하고

미국에 사는 우리는 다른 나라 얘기로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바이러스가 폭발하고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을 때도

우리와 상관없는 사건으로 생각하고 여유를 부렸습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분이

코로나바이러스는 일종의 신종 플루이고

연세 드신 노인에게는 위험하지만,

젊은이들은 단순한 감기 정도로 앓고 지나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3월 중순이 지나면서

코로나바이러스의 심각성이 제기되고

자가 격리, 휴교, 자택 근무, 식당은 물론

필수적인 부분이 아닌 사업장의 부분 또는 전면적인 폐쇄가 이어졌습니다.

초기에는 마스크를 쓰는 것을 금기시하더니

이제는 마스크 착용이 의무가 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뉴욕에서 들려오는 비극적인 소식에 가슴이 아프고

미국이 세계 최대 감염 국가가 되었다는 뉴스도 달갑지 않습니다.

미국의 의료 체계와 방역 체계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성공적인 코로나 대처가

세계의 이목과 부러움을 사는 것은 당연합니다.

 

2.

태평양 건너편에서 시작된 바이러스를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한 것이 경솔하고 교만했습니다.

 

그래도 베이 지역은

자택 격리를 비롯한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일찌감치 시행했기에

최악의 상황은 예방한 것 같습니다.

 

물론, 5월 한 달도 각별히 조심하고

그 이후에도 면역이 생길 때까지는 경솔하게 행동할 수 없습니다.

 

3.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을 보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과학 문명이 최고라고 자랑하던

현대 인류의 교만을 회개하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것도

세심하게 살피고 조심해야겠습니다.

 

새달을 맞습니다.

5월 한 달도 집에서 지내야 합니다.

 

마침 가정의 달인데,

겸손한 마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새로운 일상을 살기 원합니다.

 

주여, 새날 주소서!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은

많은 물소리와 바다의 파도보다 크니이다 (시편 93:4)

Mightier than the thunders of many waters,mightier than the waves of the sea,

the LORD on high is mighty! (Psalms 93:4)

 

하나님 아버지,

겸손히 주님의 능력을 구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4. 30 이-메일 목회 서신)

부활 그 이후 (2)

의심 많은 도마

 

조심해야 할 신앙의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믿고 복을 받으려는 기복 주의입니다. 물론 신앙의 길을 가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복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은 놀부 심보입니다.

 

둘째는 모든 것을 영적으로 해석하고 자신이 하나님과 직접 연결된 듯이 믿는 신비주의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한 방식으로 말씀하실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성경과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는 상식적인 방식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셋째는 지나친 개인주의입니다. 각자의 고백과 결단으로 하나님을 믿지만, 우리 모두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길 원하십니다. 신앙이나 축복을 자기 혼자 독점하려고 하거나, 기독교인 아닌 경우를 배타적으로 밀어내는 것도 조심할 신앙 유형입니다.

 

넷째는 겉과 속이 다른 형식주의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싫어하신 것이 겉과 속이 다른 위선이었습니다. 신앙은 겉치레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내면적이고 실제적인 삶입니다.

 

마지막으로 맹목적인 신앙도 조심해야 합니다. 분별력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입니다. 무엇을 믿고 왜 믿는지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믿습니다. 신앙이 좋아 보여도 뿌리가 없고, 여러 가지 것들이 혼합된 추한 신앙일 가능성이 큽니다. 깊이 고민하고, 질문하며, 때로는 확고한 신앙에 이르기 위해서 회의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쉽게 믿지 않았습니다. 다른 제자들의 말만 듣고 부활을 믿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봐야 믿겠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을 처음 찾아오시고 팔 일이 지났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제자들이 있는 곳에 오셨습니다. 도마도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있었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를 찾아가신 예수님께서 도마도 찾아가십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20:27). 부활을 확인한 도마가 예수님을 향해서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의심 많은 도마는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되었습니다. 도마가 부활을 의심했다고 예수님께서 그를 무시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찾아가셨습니다. 예수님과 신앙에 관해서 진실로 의심하고 회의하는 사람에게 임하는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더 귀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도마 이후에 우리를 포함한 모든 사람을 향한 예수님의 축복 선언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쉼 없이 믿음의 길을 가기 원합니다.-河-

 

부활 그 이후

좋은 아침입니다.

 

1.

교회력에 따라 부활절 둘째 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강단 색깔은 흰색입니다.

 

성령 강림절까지 앞으로 7주간이

예수님의 부활을 경축하고 부활을 사는 부활절 주간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서 온 세상이 어려움을 겪고 있기에

올해 맞는 부활절 주간 50일이 더욱 뜻 깊습니다.

주님의 부활이 얼마나 힘이 되고 소망을 주는지요!

 

2.

부활은 십자가의 끝이자

우리 신앙은 물론 기독교 (교회)의 시작점입니다.

 

사도바울의 고백대로

부활이 없으면 믿는 것도 전하는 것도 헛될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활보다 십자가에 주목했습니다.

십자가에 대한 찬양을 수시로 부르면서

부활 찬송은 부활절에만 부릅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정말 큽니다.

그런데 부활이 없다면

십자가의 고난과 은혜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3.

막연하고, 답답하고, 불안하고 가끔 두려움도 느끼는 Covid 19 기간에

<부활절 그 이후>라는 연속 설교를 함께 나누면서,

참빛 식구들 각자와 우리 교회가

십자가 너머에 있는 부활의 세계에 들어가길 바랍니다.

 

사망이 표적으로 삼는 것들을 이기시고,

절망과 어둠, 죽음의 세력을 이기신

우리 주님의 부활을 보기 원합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를 찾아오신 주님께서

참빛 식구들도 찾아가셔서 함께 하시고

눈을 열어주셔서 부활의 주님을 느끼고, 증거하기 원합니다.

실제로 부활을 사는 것입니다.

 

4.

부활하신 우리 주님을 만나서

눈이 열리고, 생각이 바뀌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기 원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죽음의 세력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모두 물러날 줄 믿습니다.

 

무엇보다

Covid19으로 인해서 힘겨워하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그가 살아나셨도다> <그가 이기셨도다>는 부활의 소식이 전해지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다시 일어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11:25-26)

Jesus said to her,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Whoever believes in me, though he die, yet shall he live,

and everyone who lives and believes in me shall never die.

Do you believe this?” (John 11:25-26)

 

하나님 아버지,

각자의 자리에서 부활을 사는

참빛 식구들을 꼭 기억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4. 23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