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하나님 (6)

성령의 열매 (2)

 

예수님을 닮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을 가늠하는 지표가 바로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맺도록 도와주시는 결실이기에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는 인간적인 성품과 구별됩니다. 베드로가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을 언급했는데(벧후2:4),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하나님의 성품에 가장 근접할 것 같습니다.

 

오늘 함께 살펴볼 성령의 열매 세 가지는 오래 참음, 자비, 양선입니다. 먼저, 오래 참음은 말 그대로 오래 참는 인내를 가리킵니다. 일상적인 인내도 포함할 수 있지만, 본문의 오래 참음은 환난과 핍박으로 어려웠던 초대 교회 당시의 상황을 반영할 것입니다. 어떤 상황과 어려움에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키는 것이 오래 참음입니다. 바울은 환난이 닥치면 인내할 것을 부탁했습니다. 인내가 연단(단단한 신앙 인격)을, 연단은 소망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롬5:3-4).

 

오래 참음이 성령의 열매인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오래 참으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성품을 두고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시103:8)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어리석은 제자들과 3년을 함께 하시면서 참고 참으셨습니다. 무엇보다 십자가의 모든 고통과 조롱도 참으셨으니 오래 참음은 하나님의 성품임이 틀림없습니다.

 

둘째는 자비입니다. 새번역은 “친절(kindness)”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향한 친절한 마음 또는 관대함을 뜻합니다. 트렌치라는 분은 자비를 “은혜를 표현하는 아름다운 말, 상냥함, 다른 이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 편안하게 해주는 배려”라고 풀어서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비로 대하십니다.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06:1)는 말씀이 대표적입니다.

 

성경에서 자비를 베풀어야 할 대상은 고통 당하는 사람들(나훔1:7), 가난하고 따돌림 당하는 사람들(시68:10),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주의  백성들(시34:8)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차별없이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셋째는 양선입니다. 양선은 자비와 사촌지간으로 “선함(goodness)”이라는 뜻입니다. 친절한 마음이 밖으로 표현된 것이 양선, 즉 어질고 착한 행동입니다. 양선의 반대말을 생각하면, 성령의 열매 양선이 어떤 의미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흘기는 눈, 악한 행실, 인색함, 욕심 많음”등은 선한 행동이 아닙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고 빛의 자녀가 되었다면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엡5:9)의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했는데 착함이 바로 양선입니다.

 

신앙생활은 물론 사람과 상황을 잘 참고 견디며, 자비를 선한 행실로 옮겨서 우리는 삶에 성령의 열매가 풍성히 임하길 간절히 바랍니다.-河-

신명기 신앙

좋은 아침입니다.

 

1.

신명기 읽기를 마쳤습니다.

 

신명기의 주제는 어떤 면에서 매우 단순하고 단호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만 섬기면

모든 일에 형통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거꾸로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섬기면

예비된 복이 저주로 뒤바뀔 것입니다.

 

이 과정이 지체 없이 곧바로 이뤄지니

말씀을 읽으면서 마음은 시원하지만,

실제 생활로 돌아오면 말씀과 실제 사이에 커다란 간격을 발견합니다.

 

우리의 현실과 삶이

신명기 법칙처럼 단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신명기 말씀은

약속의 땅에서 새롭게 시작할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100% 완전한 기대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가나안 신을 섬겼습니다.

 

가나안 종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야훼 종교와 달리

황금으로 만든 황소를 섬기고

도덕을 떠나서 쾌락을 즐기도록 허락하고

철저하게 신전을 찾는 손님(?)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세의 애끓는 부탁을 송두리째 잊어버리고

가나안 신앙, 제국의 신앙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2.

팬데믹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

불확실성이 드리워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백신 개발에 목을 매고 있습니다.

그만큼 백신 개발이 중요합니다.

 

반면, 교회는

이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갈 힘이 되거나

빛을 비추는 등대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팬데믹의 온상지라는 오명을 쓰고 말았습니다.

 

교회를 비롯한 신앙이 해야 할 기능이 분명히 있을텐데

그것을 찾아보기 힘드니 아쉽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지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실지요?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생각과 삶은 어떠해야 할지요?

 

3.

다시 신명기 말씀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이라면

마음과 삶 한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시고,

팬데믹의 상황을 헤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평정심을 잃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며

기쁨의 환한 미소를 잃지 않는다면 더 없이 감사한 일입니다.

 

불확실한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과 소망으로 이어진다는 말씀(롬5:4)을 붙잡고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의 길을 걷기 원합니다.

 

신명기 말씀처럼 그 효력이 곧바로 나타나지 않아도

조바심 내지 말고

끈기를 갖고 세상에 임하실 하나님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것이 살길이라는

모세가 전해준 신명기 신앙을 마음에 품고

아무도 가지 않는 <뉴-노멀>을 사는 것입니다.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오늘의 일상을 살기 원합니다.

 

힘냅시다!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마음을 힘써 지키라 (신명기 4:9)

 

 

하나님 아버지

힘들수록

참빛 식구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6. 25이-메일 목회 서신)

 

 

성령 하나님 (5)

성령의 열매 (1)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의 인도자가 되십니다. 성령을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님으로 보았을 때, 약하고 비천한 자들과 함께하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더욱 깊이 다가옵니다.

 

앞으로 두 주간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길가, 돌밭, 가시덤불, 좋은 땅에 씨가 떨어졌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열매를 통해서 거짓과 참 선지자를 구별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뿌리까지 마르도록 저주하셨습니다. 이 정도로 열매가 중요한데,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열매 맺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돕고 친절하게 인도하십니다.

 

오늘 본문(갈 5:2-23)에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가 나옵니다. 성령의 열매는 그리스도인의 성품의 변화와 성숙을 가리킵니다.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옛사람이 변해서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갖고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반드시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다면 겉은 화려했지만 속은 더러웠던 예루살렘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입니다. 열매가 없다면 복음의 씨가 길가, 돌밭, 또는 가시덤불에 뿌려졌다는 뜻입니다. 마지막 좋은 밭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려는 마음가짐 즉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가리킵니다. 좋은 밭을 준비하고 그 밭에 씨가 떨어졌을 때 100배, 60배, 30배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입니다.

 

성령의 열매 첫 번째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 그 자체이시니 하나님을 믿는다면 사랑의 열매가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처럼 이웃을 대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두 번째는 희락(기쁨)입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금세 사라집니다. 밖에서 오는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우리 안에서 샘물처럼 솟아납니다. 성령의 기쁨이 있을 때,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화평입니다. 기쁨과 화평은 하나님 나라의 상징입니다(롬14:17).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하나님과 화목했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니 내 안에 평화가 임하고, 세상에 나가서 화평케 하는 하나님의 아들로 살 수 있습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가운데 처음 세 가지만 있어도 행복하고 품격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주시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이 팬데믹 상황에 있는 우리 자신과 교회 그리고 세상에 임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河-

기도 그 이후

좋은 아침입니다.

 

1.

팬데믹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기도하는 시간도 늘어납니다.

 

꼭  무릎 꿇고 기도하지 않아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삶 속에서 드리는 기도, 항상 기도하는 좋은 예입니다.

 

기도하고 나면 (특별히 매우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곧바로 응답하실 것이라는 기대가 생깁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공을 넘겨드렸으니

신속한 응답이 오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입니다.

 

그러다 보니 기도가 응답될 때까지

조바심을 내면서 기다립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기도하는 대신에 자신의 힘으로 더 열심히 노력할 겁니다.

원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운이 없었다고 털털 털고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맡겼다는 생각에서 노력을 덜 하거나,

행여나 기도 응답이 안 되면 하나님은 물론 신앙에 의문을 제기하고

뒤끝이 오랫동안 지속되거나 더 크게 실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기도하는 우리가 조심할 부분입니다.

 

 

2.

기도한 후에 응답되기 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기도 = 응답> 이라는 공식에 조급한 마음을 갖지 않고

끝까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정(情)이 깊어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것을 요구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요구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기도한 것과 그 응답 여부에만 집착하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아니라

비즈니스에서 보는 거래(deal)가 되기 쉽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도 아니고 기도의 본뜻도 아닙니다.

 

기도 제목을 발판 삼아서

하나님과 친밀히 그리고 개인적으로

대화하고 사귐의 시간을 갖는다면 더욱 좋습니다.

 

 

3.

누구나 기도하고 나면 응답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것도 빠른 응답을 원합니다. 솔직히 조바심이 납니다.

 

기도 후에 찾아오는 초조함은

신앙은 물론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조심해야 할 점입니다.

 

기도 후 밀려오는

조급증을 극복하기 원합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시편 62:1)

For God alone my soul waits in silence;

from him comes my salvation. (Psalms 62:1)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의 기도가 깊어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6. 18이-메일 목회 서신)

성령 하나님 (4)

– 인도자

 

성령을 “보혜사(파라-클레토스)”라고 소개하는 성경 본문은 우리가 그동안 살펴본 요한복음 14장과 16장 뿐입니다. 보혜사는 곁에서 함께 하시고 우리를 부르시며 위로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성령 하나님을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우리말 보혜사(保惠師)는 성령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처럼 쓰입니다. 한자어의 뜻은 우리를 곁에서 보호해 주시고 우리 마음에 은혜를 베푸시는 성령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보혜사 성령께서 그와 같은 일을 하십니다. 성령 하나님을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으로 생각하면서 성령 하나님을 친밀하게 느끼시길 부탁드렸습니다.

 

보혜사에 해당하는 영어 번역은 다양합니다. “위로자(comforter)”라고 번역하면 우리와 함께 하시고 곁에 계시면서 위로해 주시는 성령 하나님을 강조합니다. “변호인(advocate)”이라고 번역한 성경도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변호해 주시고 보증하십니다(롬8:16). 항상 우리 편이 되십니다. 우리를 위해 탄식하면서 기도하십니다(롬8:26).

 

“돕는이(Helper)”라는 번역도 있습니다.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성령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입니까? 이번 기회에 성령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와 친밀함이 더 해지길 바랍니다.

 

보혜사 성령을 “상담자(counsellor)”라고 번역한 영어 성경도 있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민과 질문에 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떠나신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 제자들에게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상담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자신이 떠나면 보혜사 성령이 오시니 제자들에게 훨씬 유익이 된다고 알려 주십니다.

 

그동안 배웠듯이 육신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으십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셨지만, 다른 제자는 산 아래 있어야 했습니다. 몸이 하나이시니 갈릴리 사역에 집중하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제자들은 물론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동시에 상담해 주시고, 도와주시고,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무엇보다 보혜사 성령 하나님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제자들은 물론 예수님을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진리로 인도해 주십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들은 것을 깨우쳐서 생각나게 하시고, 심지어 장래 일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 장래 일이라고 하면, 하나님을 믿는 주의 백성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알려주신다는 뜻입니다. 가야할 길을 제시하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한 주간도 각자의 자리에서 보혜사 성령 하나님의 인도함을 따라 살기 원합니다 -河-

사로잡힘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주일 설교 서두에

일 년째 암 투병 중이신 목사님의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암이 찾아오면, 대부분 “암에 걸렸다”고 하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암에 걸려들고

그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에는 살리는 말이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이왕이면 살리는 말을 사용하고

기를 죽이고, 낙심을 불러오고,

행여나 부정적인 결과를 예측하는 말은 숨겨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전,

한국에서 중고등부를 가르칠 때,

온 종일 자신이 하는 말을 녹음해 보라고 제안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대로 실천한 아이는 없던 것 같습니다.

대신에 한 주간 자신의 말을 조심했을 것입니다.

 

말에 힘이 있습니다.

말한 대로 이뤄진다는 말도 거짓은 아닌 것 같습니다.

 

팬데믹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몸을 움직일 일이 줄어들면서

말이 많아지고 자신도 모르게 표현이 거칠어질 수 있습니다.

 

힘 있는 말,

격려하고 살리는 생명의 언어를 구사하길 바랍니다.

행여나 말로 인해서 우리의 삶이 무너져서는 안 됩니다.

 

2.

지난 석 달여 집에 갇혀 살았습니다.

마음대로 외출하지 못합니다.

친지들을 만날 수도 없습니다.

거주 이전의 자유를 박탈당한 것 같습니다.

 

구약성경의 이스라엘도

예루살렘이 멸망하면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70년 동안 유배 생활을 했습니다.

 

포로(captivity)입니다.

게다가 남의 나라에 잡혀간 유배(exile)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70년 바벨론 포로 동안

요즘 아침에 읽고 있는 구약성경 <신명기> 말씀을 기준으로

왜 예루살렘이 멸망할 수밖에 없었고

포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지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비록 포로로 갇힌 신세였지만

지나온 과거를 반추하고

결국 회복해 주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은

영적 부흥기였습니다.

 

학자들은 바벨론 포로기에

구약성경 대부분이 완성되었다고 봅니다.

 

 

3.

집에 머무는 것이 지루하고

같은 날의 반복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느슨해지고 게으를 수 있습니다.

 

행여나 마음이 힘들고 내려앉으며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듯 염려와 근심, 두려움과 낙심에 걸려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팬데믹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우리 내면을 돌아보고, 마음을 새롭게 하고

깜깜한 동굴 안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앉아 동굴 입구의 빛을 보면서

새로운 일상을 근사하게 살기 원합니다.

 

주일에 나누는 말씀처럼

하나님을 확실히 의지하고, 성령에 사로잡힌다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내가 이제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열심을 내어 야곱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며

이스라엘 족속에게 사랑을 베풀지라 (에스겔 39:25)

Now I will restore the fortunes of Jacob and have mercy on the whole house of Israel,

and I will be jealous for my holy name. (Ezekiel 39:25)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아닌 것에 사로잡힌 것이 있다면

성령의 능력으로 그것에서 해방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6. 11이-메일 목회 서신)

 

p.s.

–  저녁 10시는 참빛교회 기도 시간입니다. 기도 가운데 주의 부흥을 보게 하옵소서.

–  교회를 묵묵히 지키시는 어르신들이 영육간에 강건하게 하옵소서.

–  교회를 함께 세워나갈 청년들과 젊은 가정을 지속적으로 보내주옵소서.

–  진로를 놓고 기도하는 성도님들의 길을 열어 주옵소서.         

–  구제와 선교하려는 교회의 꿈이 성취됨을 보게 하옵소서.

–  부족함을 채우시는 주님을 보게 하소서.

     

 

세상 속에서 살아가시는 참빛 식구들께 보내는 서신입니다. 첨부한 주일 설교와 수요예배 교재를 읽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설교 용량이 큽니다. 아마 곧 지우셔야 할 겁니다. ^^

 

본 메일은 참빛 교회와 관련된 여러분께서도 함께 받으십니다. ^^ 

저희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면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혹시 수신을 원치 않으시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고맙습니다.^^

 

 

 

 

 

성령 하나님 (3)

진리의 영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보혜사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보혜사는 우리 곁에서 우리를 부르시고, 위로하시고, 인도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2천 년 전에 팔레스타인 땅에 오셨던 예수님 대신 우리 안에 계시는 분으로 이해하시길 첫 번째 시간에 제안했습니다. 성령을 지나치게 영적인 존재 또는 이성과 반대되는 감정적인 형태로 오해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한마음으로 기도하던 120명의 제자에게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표현인 강력한 바람과 불로 그곳에서 기도하던 제자들 각 사람 위에 임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해진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베드로가 설교하니 3천 명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 말씀대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증인으로 살았습니다. 성령의 능력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7절에 의하면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성령을 바람에 비유했듯이 세상은 성령을 볼 수도 없고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주의 제자들은 성령을 느끼고 성령과 더불어 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제자들과 함께 하신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14:6)이라고 하셨듯이 성령 하나님도 제자들에게 진리의 영으로 오실 것입니다.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께서 길이 되심을 보여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성령을 보혜사로 부르시고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성령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내신다는 것은 처음 시간에 배웠듯이 예수님과 같은 분임을 뜻합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생각나게 도우실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상대화되고 절대 진리가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기준이 모호해져서 각자의 생각에 따라서 행동합니다. 다원화된 세상이 조화를 이루며 화합을 하면 좋지만, 수많은 진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듯해서 혼란스럽습니다. 구약성경 사사기 말씀대로 모든 사람이 각자의 생각대로 행동합니다(사21:25).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리를 쫓는 사람들입니다. 삼위 하나님의 사역과 관계 속에서 진리를 찾고, 그것이 드러난 성경 말씀을 기준 삼아서 신앙의 길을 갑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진리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갈 바를 몰라서 헤매고 있을 때, 성령께서 우리의 길이 되시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보여주시고 깨우쳐 주실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기 원합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