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2)

새해 벽두부터 중동에서 들려오는 전쟁의 소문으로 세상이 뒤숭숭합니다. 성경 말씀 그대로 세상에는 전쟁의 소문이 끊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탐욕이 존재하는 한, 전쟁은 물론 크고 작은 갈등이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완전한 평화는 불가능하더라도 무고한 목숨을 앗아가고 세계 질서를 망가뜨리는 전쟁이나 폭력이 사라지길 기도해야겠습니다.

 

우리가 살펴보는 이사야서 59장과 60장의 상황도 세상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공의와 정의가 무너지고, 피를 보는 폭력이 난무했습니다. 곰처럼 울부짖고 비둘기처럼 슬피 울며 기도했지만, 하나님의 구원은 멀기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이 길어진 것입니다.

 

그때 주신 말씀이 올해 우리의 표어인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입니다.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주춤거리거나 망연자실 멈출 수 없습니다. “쿰”하고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빛을 비춰야 합니다. 우리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광으로 우리와 함께하실 때 가능합니다. 아니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빛으로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면, 우리가 저절로 그 빛을 비추게 될 것입니다.

 

어두움을 해결하는 방법은 빛을 비추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 어둠이 아무리 강해도 작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어둠이 강할수록 도리어 빛이 더욱 선명해지는 법입니다. 2절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두움이 온 땅을 덮었습니다. 캄캄함이 사람들을 가렸습니다. 앞을 볼 수 없으니 사람들끼리 부딪치고 싸울 뿐입니다. 그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한 것입니다. 각 나라들과 왕들이 빛을 찾아서 예루살렘으로 모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어두운 곳이 많습니다. 겉은 환해 보여도 속이 새까맣게 탄 채 살아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이 비치길 원합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우리가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 각자 삶의 현장에서 빛으로 사는 것입니다.

 

빛으로 사는 것을 두고 세상에서 출세하거나 영향력을 끼치는 자리에 올라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빛을 비추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님이 빛으로 반사된다면 그것이 빛으로 사는 것입니다. 삶을 통해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고, 어렵고 약한 이웃을 돕고, 비뚤어진 세상에서 반듯하게 살려는 의로운 몸짓이 곧 빛의 자녀들의 모습입니다. 한 주간 빛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참빛 식구들로 인해서 어두운 세상이 조금이라도 밝아 지길 기대합니다.- 河-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1)

2020년 새해 첫 번째 신년 주일입니다. 지난 주일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지만 새해 첫 주일이라고 하니 예배하는 마음가짐이 새롭습니다. 그래서 새해가 좋은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는 일상을 사는 교회입니다. 새해를 맞아도 큰 변화가 없습니다. “특별”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경우가 거의 없고 같은 것들의 반복입니다. 매년 드리는 새해 기도제목 신청서도 촌스럽고, 주보도 화려하지 않습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변화를 최소화하지만, 우리 각자 일상 속에 의미를 부여하고 일상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가면서 진정으로 삶이 예배가 되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우리 교회는 교회 안에서의 활동보다 가정과 세상 속에서의 삶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물론 비공식적인 만남은 활성화되어 있지만, 공식적인 교회 행사나 모임이 많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활동하는데 에너지를 쏟기보다 가정을 세우고, 각자의 삶의 터전에서 “작은 예수”의 삶을 사는 데 최선을 다하기 원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교회 주일예배는 매우 중요합니다. 참빛 식구들이 함께 모이고,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임이 주일예배와 예배 후 친교입니다. 올해는 우리 모두 좀더 적극적인 예배자가 되어서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설교 시간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 처음 조용한 기도부터 축도까지 모든 예배 순서에 주님의 임재를 구합니다. 예배 후의 애찬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하기 원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해서 예배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며 예배 가운데 성령의 지혜, 위로, 능력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이처럼 삼위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예배하는 참빛 식구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주보에 광고하듯이 함께 부르고 싶은 찬양이 있으면 찬양팀에, 듣고 싶은 찬양은 찬양대에, 원하는 설교 주제는 제게 말씀해 주시면 저희 예배팀에서 참빛 식구들의 제안을 최대한 반영하겠습니다. 교회 사역에 대한 좋은 의견도 안내석 제안함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 모두 적극적이고 간절히 사모하는 열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기 원합니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가 <일어나 빛을 발하라 Arise, shine, 쿠미/오리>입니다. 옛날 이스라엘이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 말씀입니다.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살라는 하나님의 요청이었습니다. 새해는 물론 2020년대를 맞으면서 우리 참빛 식구들이 세상 속에서 빛이 되길 기도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참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서 전하길 원합니다. 우리모두 빛으로 사는 한 해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河-

데살로니가전서 (10)

꼭 필요한 세 가지

 

2019년 마지막 주일이고 그동안 살펴보았던 데살로니가전서 마지막 시간입니다. 오늘 함께 예배하면서 지나온 한 해를 돌아보고, 함께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세어보고 감사하기 원합니다. 한 해 동안 참빛 식구들과 매 주일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무엇보다 예배를 섬겨주신 찬양팀, 찬양대, 영상팀, 예배통역 그리고 환영팀과 예배를 담당해 주신 모든 성도님께 감사드립니다.

 

데살로니가 전서를 시작한 지 두 달이 넘었습니다. 읽으면 읽을 수록 전하고 싶은 말씀이 많았습니다. 함께 데살로니가 전서를 읽고 쓰신 성도님들도 저와 같은 생각이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음에 나눌 말씀이 있기에 중간을 건너뛰고 이제 마무리를 해야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믿음, 사랑, 소망으로 시작했습니다. 이 세 가지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지탱하는 토대였습니다. 믿음에 역사(행함)가 있었습니다. 교회의 강력한 믿음은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는 힘이었습니다. 사랑에 수고가 있었습니다. 말로만 사랑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돕고, 격려하고, 바르게 권계하면서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과 사랑에 대해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대신, 오래 참으면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릴 것을 부탁했습니다. 소망이 있었기에 어떤 환난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부활해서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삶을 누릴 것이라는 하나님 나라 소망도 어려움을 견딜 힘이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두 번째 데살로니가 교회에 있었던 세 가지 신앙의 덕목을 배웠습니다. “능력과 성령과 확신”이었습니다. 능력은 힘입니다. 확신은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믿음입니다. 성령께서 능력을 주십니다. 성령께서 믿음에 확신을 더하십니다.

 

오늘은 데살로니가 교회는 물론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또 다른 세 가지 덕목을 살펴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기쁨, 기도, 감사 역시 하나님의 자녀라면 꼭 갖고 있어야 할 하나님의 DNA입니다. 앞에 “항상” “쉬지 말고” “범사에”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할 때 모든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에서 믿음이 과거이고 소망이 미래라면 가운데 있는 사랑은 현재입니다. 능력과 성령과 확신에서 가운데 위치한 성령이 능력과 확신을 가능케 합니다. 기쁨과 기도와 감사에서도 기도가 항상 기뻐하게 만들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게 돕습니다. 이 세 가지 덕목들이 우리 안에 확실하게 있을 때 우리의 믿음이 온전해지고 하나님의 자녀로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더 바랄 것이 없고 세상에서 좋은 평판을 얻는 참빛 식구들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河-

데살로니가전서 (9)

–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이사야 9:6).

 

예수님께서 태어나기 800여년 전에 구약시대 이사야 선지자는 다윗의 후손으로 세상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했습니다.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평강의 왕이 세상에 오실 것이라고 했으니, 인간의 몸을 입고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에 꼭 맞는 예언입니다.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으니 기독교에서 성탄절은 축제의 절기입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의 탄생으로 인해서 밝게 맞이할 절기입니다. 탄생의 기쁨으로 성탄절을 가득 채우기 원합니다.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찬양하기 원합니다. 성탄의 기쁨입니다.

 

우리 교회는 성탄절 예배로 따로 모이지만, 출타하시는 성도님들이 많은 관계로 성탄절 전 주일을 “성탄 주일”로 지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성탄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다면, 세상은 여전히 죽음이 판을치고 영원한 생명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강을 경험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펴보는 데살로니가전서에서도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밤과 어두움에 속하지 않았다고 알려줍니다. 우리 모두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살전5:5). 2천 년 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예수님께서 이제는 모든 사람이 보는 가운데, 예고하신 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도둑처럼 오신다고 하셨지만, 빛에 속하고 낮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앞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영원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곧 예수님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하늘의 능력과 힘이 임합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은혜가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랑으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기쁨으로 받을 때,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주시는 확신이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세상을 보는 관점도 바뀝니다. 추구하며 쫓아가던 대상이 바뀝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게 된 이유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신령한 몸을 입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기에 죽음도 뛰어넘었습니다. 그 안에서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토대로 충만한 신앙의 길을 걸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갔던 믿음의 길을 우리도 걷기 원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