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8)

– 택하심

데살로니가전서는 인사말에 이어서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는 것 세 가지를 소개하였습니다. 교회가 그 세 가지를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그대로 자라간다면 바울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었습니다.

 

첫째는 바울 자신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기억하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음을 감사했습니다. 기도는 마음에 있는 것을 하나님께 전달하는 수단입니다. “너희를 기억함은”이라는 말씀은 바울의 생각과 마음속에 데살로니가 교회가 있었음을 알려줍니다. 그것 자체가 감사였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 마음속에 있는 또는 머리에 떠오르는 친지들을 위해서 기도하기 원합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입니다.

 

둘째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현저히 드러나는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갖고 감사했습니다. 그동안 한 가지씩 살펴본 신앙의 토대가 되는 덕목들입니다. 믿음에 행함이 있었고, 확신을 갖고 믿음의 길을 갔습니다.  말로만 사랑한 것이 아니라 손과 발로 사랑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형제 사랑에 대해서 더 쓸 것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바울은 먼저 하나님께 간 사랑하는 성도들의 미래를 놓고 고민하던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알려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지 모르니 항상 깨어서 준비할 것도 부탁했습니다.

 

바울의 세 번째 감사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그 사랑 안에서 선택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했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그 복음을 받았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와 예정 속에서 이뤄진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셨듯이 데살로니가 교회도 같은 사랑과 계획으로 선택하셨습니다(신7:7-8).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이 자리에 있습니다. 세상의 선택은 자랑거리입니다. 자신만 선택되었다는 경쟁 원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택은 차별이 없습니다. 선택의 기준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선택과 더불어 선택 이후도 중요합니다. 선택 이후에 복음으로 살고, 복음의 능력이 신앙과 삶에 드러나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복음이 제대로 들어갔고 싹이 났고 열매를 맺었습니다. 말로만 임한 복음이 아니었습니다. 복음 자체가 갖고 있는 능력이 역사했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동시에 큰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려움이 닥쳤지만, 성령이 주시는 기쁨으로 어려움을 이기고 도리어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걸어가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이 자신들이 속한 마게도냐는 물론 아가야 지방까지 소문날 정도였습니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믿음의 교회였기에 우리에게도 귀감이 됩니다.-河-

송구영신(送舊迎新)

2019년 마지막 달을 지내고 있습니다. 올해가 2010년대의 마지막 해여서 인지, 교회 식구들께서 올해는 유독 빨리 지나간 것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말 그대로 한 해가 화살처럼 지나갔습니다. 새해를 시작한 지 엊그제 같은데 12월이 되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멈추게 할 수 있어도 째깍째깍 소리 내며 가는 시계의 초침을 멈출 수 없다는 말도 생각납니다.

 

올해 우리 교회는 <돌보는 교회>라는 표어를 갖고 살았습니다. 우리가 늘 그랬듯이 특별히 돌봄의 이벤트를 하거나 자랑할만한 사역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연초에 부탁드린 대로 매 주일 모일 때마다 외로워 보이는 분들이 계시면 다가가서 친구가 되어주고 슬며시 손을 잡아 주면서 한 해를 보냈습니다.

 

올해도 변함없이 초록 우산을 통해서 고국에 있는 30여 명의 아이들을 도왔습니다. 조전도사님께서 시작하신 사역인데 어르신들의 경우 돕는 아이가 18세가 넘어서 다른 어린아이로 교체해서 돕는 경우도 생겼으니 20년 가까이 우리 교회가 말없이 행하는 돌봄입니다.

 

오늘 노숙자 돕기 작은 사랑 나눔까지 올해도 세 번 나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한국에 계신 젊은 전도사님, 우리 지역에서 중독 사역을 하는 단체를 도왔습니다. 20불 이하의 헌금이지만, 이름없이 드리고 이름없이 돕는 것에 의미를 두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돌보는 우리 교회의 사역은 매우 부족해서 언제나 다음을 기약하게 됩니다.

 

참빛 식구들 개인과 각 가정의 삶도 녹록지 않았습니다. 연세가 드시는 권사님들은 육신이 연약해지십니다. 육신 뿐만 아니라 마음도 약해지실 때가 있습니다. 그럴수록 힘을 내셔야 합니다. 믿음으로 육신의 연약함을 이기시고, 무엇보다 하늘의 평안을 누리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삶도 힘겹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여러분의 인생길에 임할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어떤 어려움도 믿음으로 이기고 소망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커가는 아이들은 우리 교회의 보석입니다. 새해에 예수님처럼 키도 자라고 지혜도 자라는 우리 아이들이길 바랍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전히 어지럽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갈라져서 제각각 입니다. 어둡고 불안한 곳을 바라보면 희망의 빛을 발견하기 힘듭니다. 계시록 말씀에서 배웠듯이 역사를 주관하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소망 가운데 끝까지 참고 견디기 원합니다.우리는 이렇게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송구영신의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감사함으로 한 해를 보내고 우리 마음 한편에 좋은 추억들을 간직하기 원합니다. 믿음과 기도로 새해를 맞기 원합니다.-河-

데살로니가전서 (7)

소망의 인내

 

오늘은 대강절 첫째 주일입니다. 교회력을 따르면 대강절이 새로운 한 해의 시작입니다. 교회력은 예수님을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로 시작해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절,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을 알리는 주현절,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의 사순절과 부활절, 그리고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거의 반년을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구하면서 보냅니다.

 

대강절은 성탄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대강절 기간 동안 매 주일 촛불을 하나씩 밝히면서 보냅니다. 빛으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을 촛불에 담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력의 첫 기간은 기다림으로 시작합니다.

 

기독교는 어떤 면에서 기다림의 종교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 백성들이 구약에서 예언했던 메시아가 오기를 기다렸다면,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기도한 것이 응답되기를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세상에 이뤄지길 기다립니다. 지난 시간에 배운 대로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길 기다립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소망의 인내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으로 신앙의 첫 단추를 채웠다면, 사랑으로 꽃을 피우고, 소망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믿음이 과거라면, 사랑이 현재이고, 소망은 미래입니다. 이처럼 소망은 앞으로 될 일이기에 성취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소망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믿음과 사랑을 넘어서 소망까지 구비한 온전한 신앙을 갖고 있었습니다. 소망이 있기에 현재의 어려움을 참을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입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렸고, 예수님께서 오시면 선과 악을 심판하시고 의와 믿음이 승리할 것을 믿었습니다.

 

바울에게도 소망이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방문해서 그곳의 모든 성도와 얼굴을 보며 교제하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길이 막혀서 제자 디모데를 먼저 보냈습니다. 또한 바울이 갖고 있던 소망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끝까지 신앙을 지켜서 이다음 예수님 앞에 섰을 때 바울의 자랑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장차 이뤄질 소망과 관련해서 궁금한 점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이미 하나님께  간 친지들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기에, 모든 성도가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산 자와 죽은 자가 주를 예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날이 도둑같이 임할 것이니 깨어서 예수님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이 소망을 품고 사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우리에게도 소망의 인내가 요청됩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영원한 생명을 누릴 그날을 기다리며 끝까지 신앙의 길을 걷기 원합니다. -河-

2019년 11월 4주 말씀과 찬양

데살로니가전서 (6): 사랑의 수고 2/ 살전 5:12-15

 

찬양(추수감사절)

감사찬송

 

보혈의 은혜

 

봉헌송: 하나님의 은혜 (이경민 지휘자)

데살로니가전서 (6)

사랑의 수고 (2)

 

오늘은 2019년 추수 감사 주일입니다. 매년 맞는 추수 감사절이지만 우리 삶의 모습과 상황이 다양하듯이 감사절을 맞는 마음도 다릅니다. 올 한 해는 하나님께서 어떤 은혜를 주셨는지,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 신앙과 삶에 어떻게 임했는지 돌아보고, 행여나 올해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았다면 앞으로 임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면서 감사절 예배를 드리기 원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감동할 정도의 믿음과 사랑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교회가 행하는 사랑의 수고는 바울이 더이상 쓸 것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바울에게 배운 대로 서로 사랑했습니다. 신앙의 첫 단추인 믿음이 사랑으로 이어지니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소문이 사방으로 퍼졌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사랑의 수고는 바울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바울은 유모가 아이를 기르듯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사랑으로 돌봤습니다. 복음을 나누는 것은 물론 교회를 위해서 목숨까지 내어줄 수 있다고 고백할 정도입니다. 때로는 아버지가 자녀를 권면하듯이 위로하고 바른 길로 인도했습니다. 사랑을 받은 사람이 사랑을 나눌 줄 아는 법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로부터 받은 사랑을 교회 안팎에 나눴습니다.

 

그래도 교회는 언제 어떻게 무너질지 모르기에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더욱더 서로 사랑하기를 기도했습니다. 바울이 변함없이 그들을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당부입니다(3:12). 사랑이라고 해서 무작정 받을 생각만 하지 말고 자기 일은 자기가 감당하길 부탁합니다. 각자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자기 손으로 일하는 것도 사랑을 실천하는 한 영역입니다(4:11).

 

바울은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다시 사랑을 언급합니다. 신앙 공동체에서 사랑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인도하는 신앙의 지도자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보이라고 부탁합니다. 그때 교회에 질서가 잡히고 평안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실천해야 할 사랑의 수고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려줍니다. 게을러서 자신의 일을 하지 않고 무작정 의존적인 성도들을 권계해야 합니다. 부드럽게 타일러서 손수 일하도록 도우라는 실제적인 교훈입니다. 마음이 약한 자를 격려해야 합니다. 마음이 약한 자는 쉽게 낙심하고 절망하는 성도들입니다. 과거의 상처로 인해서, 삶의 어려움으로 인해서, 인간관계로 인해서 마음이 약해진 성도들에게 힘을 실어 주어야 합니다.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버팀목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오래 참고 선을 따라야 합니다.

 

구체적인 교훈인데, 이 말씀만 실천해도 교회가 사랑의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오늘 말씀을 실천에 옮기는 참빛 식구들 되시기 바랍니다. -河-

데살로니가전서 (5)

사랑의 수고 (1)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신앙을 생각할 때마다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항상 기억했습니다. 이 세 가지 신앙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이후에 펼쳐지는 데살로니가전서 전체를 요약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하나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았습니다(13절). 말씀에 기초한 신앙입니다. 복음에 역사(행함)가 함께 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주관하고 인도하시는 분이 성령 하나님이셨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소문이 각처로 펴져 나갑니다(1:8) 믿음의 역사가 복음의 전파로 이어진 것입니다. 복음의 빛을 세상에 비추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신앙생활의 첫 단추인 믿음에 머물지 않고 사랑까지 이르렀습니다. 사랑에는 “수고”라는 말씀이 달려있습니다. 말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했다는 표시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사랑이 넘쳤습니다(3:12).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사랑에 관해서 쓸 말이 없다고 말할 정도입니다(4:9). 믿음이 사랑으로 연결된 데살로니가 교회의 신앙이 부럽습니다.

 

사랑에는 수고가 따라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마게도냐 지방의 교회들을 도운 것 같습니다. 사랑을 실천한 것입니다. 교회 안의 어려운 성도들도 도왔는데, 바울은 교회가 돕는다고 일하지 않고 게으르게 사는 것을 경고합니다. 자기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손을 움직여 “수고”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을 받으려 하지 말고  부지런히 일해서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무조건 받아주는 것은 아닙니다. 무분별한 사랑은 교회에 혼란을 가져옵니다. 무엇보다 교회는 화목해야 합니다. 바울의 교훈대로 교회 지도자들을 사랑 안에서 귀히 여겨야 교회에 질서가 잡히고 평안할 것입니다(5:13). 바울이 그랬듯이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때로는 아버지의 자세로 게으르고 부족한 교회 식구들을 권면해야 합니다.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는 것도 사랑의 수고입니다.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향해서 오래 참는 것이 사랑의 실천입니다. 사랑의 수고는 교회 밖에서도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것입니다. 누구를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는 것이 사랑의 수고입니다(5:14).

 

믿음이 아무리 좋아도 행함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죽은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갖고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굳건한 믿음이 요청됩니다. 믿음이 하나님과의 관계라면, 사랑은 이웃과의 관계입니다. 믿음이 역사할 때, 사랑이 임합니다. 그런데 사랑에는 수고가 따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 행함이 있는 사랑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한 주간 사랑을 실천하고 세상에서 선하게 살아갑시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