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10)

꼭 필요한 세 가지

 

2019년 마지막 주일이고 그동안 살펴보았던 데살로니가전서 마지막 시간입니다. 오늘 함께 예배하면서 지나온 한 해를 돌아보고, 함께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세어보고 감사하기 원합니다. 한 해 동안 참빛 식구들과 매 주일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무엇보다 예배를 섬겨주신 찬양팀, 찬양대, 영상팀, 예배통역 그리고 환영팀과 예배를 담당해 주신 모든 성도님께 감사드립니다.

 

데살로니가 전서를 시작한 지 두 달이 넘었습니다. 읽으면 읽을 수록 전하고 싶은 말씀이 많았습니다. 함께 데살로니가 전서를 읽고 쓰신 성도님들도 저와 같은 생각이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음에 나눌 말씀이 있기에 중간을 건너뛰고 이제 마무리를 해야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믿음, 사랑, 소망으로 시작했습니다. 이 세 가지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지탱하는 토대였습니다. 믿음에 역사(행함)가 있었습니다. 교회의 강력한 믿음은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는 힘이었습니다. 사랑에 수고가 있었습니다. 말로만 사랑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돕고, 격려하고, 바르게 권계하면서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과 사랑에 대해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대신, 오래 참으면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릴 것을 부탁했습니다. 소망이 있었기에 어떤 환난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부활해서 예수님과 함께 영원한 삶을 누릴 것이라는 하나님 나라 소망도 어려움을 견딜 힘이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두 번째 데살로니가 교회에 있었던 세 가지 신앙의 덕목을 배웠습니다. “능력과 성령과 확신”이었습니다. 능력은 힘입니다. 확신은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믿음입니다. 성령께서 능력을 주십니다. 성령께서 믿음에 확신을 더하십니다.

 

오늘은 데살로니가 교회는 물론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또 다른 세 가지 덕목을 살펴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기쁨, 기도, 감사 역시 하나님의 자녀라면 꼭 갖고 있어야 할 하나님의 DNA입니다. 앞에 “항상” “쉬지 말고” “범사에”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할 때 모든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에서 믿음이 과거이고 소망이 미래라면 가운데 있는 사랑은 현재입니다. 능력과 성령과 확신에서 가운데 위치한 성령이 능력과 확신을 가능케 합니다. 기쁨과 기도와 감사에서도 기도가 항상 기뻐하게 만들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게 돕습니다. 이 세 가지 덕목들이 우리 안에 확실하게 있을 때 우리의 믿음이 온전해지고 하나님의 자녀로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더 바랄 것이 없고 세상에서 좋은 평판을 얻는 참빛 식구들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河-

데살로니가전서 (9)

–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이사야 9:6).

 

예수님께서 태어나기 800여년 전에 구약시대 이사야 선지자는 다윗의 후손으로 세상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했습니다.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평강의 왕이 세상에 오실 것이라고 했으니, 인간의 몸을 입고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에 꼭 맞는 예언입니다.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으니 기독교에서 성탄절은 축제의 절기입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의 탄생으로 인해서 밝게 맞이할 절기입니다. 탄생의 기쁨으로 성탄절을 가득 채우기 원합니다.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찬양하기 원합니다. 성탄의 기쁨입니다.

 

우리 교회는 성탄절 예배로 따로 모이지만, 출타하시는 성도님들이 많은 관계로 성탄절 전 주일을 “성탄 주일”로 지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성탄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다면, 세상은 여전히 죽음이 판을치고 영원한 생명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강을 경험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펴보는 데살로니가전서에서도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밤과 어두움에 속하지 않았다고 알려줍니다. 우리 모두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살전5:5). 2천 년 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예수님께서 이제는 모든 사람이 보는 가운데, 예고하신 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도둑처럼 오신다고 하셨지만, 빛에 속하고 낮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앞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영원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곧 예수님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하늘의 능력과 힘이 임합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은혜가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랑으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기쁨으로 받을 때,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주시는 확신이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세상을 보는 관점도 바뀝니다. 추구하며 쫓아가던 대상이 바뀝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게 된 이유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신령한 몸을 입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기에 죽음도 뛰어넘었습니다. 그 안에서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토대로 충만한 신앙의 길을 걸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갔던 믿음의 길을 우리도 걷기 원합니다. -河-

데살로니가전서 (8)

– 택하심

데살로니가전서는 인사말에 이어서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는 것 세 가지를 소개하였습니다. 교회가 그 세 가지를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그대로 자라간다면 바울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었습니다.

 

첫째는 바울 자신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기억하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음을 감사했습니다. 기도는 마음에 있는 것을 하나님께 전달하는 수단입니다. “너희를 기억함은”이라는 말씀은 바울의 생각과 마음속에 데살로니가 교회가 있었음을 알려줍니다. 그것 자체가 감사였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 마음속에 있는 또는 머리에 떠오르는 친지들을 위해서 기도하기 원합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입니다.

 

둘째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현저히 드러나는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갖고 감사했습니다. 그동안 한 가지씩 살펴본 신앙의 토대가 되는 덕목들입니다. 믿음에 행함이 있었고, 확신을 갖고 믿음의 길을 갔습니다.  말로만 사랑한 것이 아니라 손과 발로 사랑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형제 사랑에 대해서 더 쓸 것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바울은 먼저 하나님께 간 사랑하는 성도들의 미래를 놓고 고민하던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알려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지 모르니 항상 깨어서 준비할 것도 부탁했습니다.

 

바울의 세 번째 감사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그 사랑 안에서 선택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했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그 복음을 받았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와 예정 속에서 이뤄진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셨듯이 데살로니가 교회도 같은 사랑과 계획으로 선택하셨습니다(신7:7-8).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이 자리에 있습니다. 세상의 선택은 자랑거리입니다. 자신만 선택되었다는 경쟁 원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택은 차별이 없습니다. 선택의 기준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선택과 더불어 선택 이후도 중요합니다. 선택 이후에 복음으로 살고, 복음의 능력이 신앙과 삶에 드러나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복음이 제대로 들어갔고 싹이 났고 열매를 맺었습니다. 말로만 임한 복음이 아니었습니다. 복음 자체가 갖고 있는 능력이 역사했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동시에 큰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려움이 닥쳤지만, 성령이 주시는 기쁨으로 어려움을 이기고 도리어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걸어가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이 자신들이 속한 마게도냐는 물론 아가야 지방까지 소문날 정도였습니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믿음의 교회였기에 우리에게도 귀감이 됩니다.-河-

송구영신(送舊迎新)

2019년 마지막 달을 지내고 있습니다. 올해가 2010년대의 마지막 해여서 인지, 교회 식구들께서 올해는 유독 빨리 지나간 것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말 그대로 한 해가 화살처럼 지나갔습니다. 새해를 시작한 지 엊그제 같은데 12월이 되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멈추게 할 수 있어도 째깍째깍 소리 내며 가는 시계의 초침을 멈출 수 없다는 말도 생각납니다.

 

올해 우리 교회는 <돌보는 교회>라는 표어를 갖고 살았습니다. 우리가 늘 그랬듯이 특별히 돌봄의 이벤트를 하거나 자랑할만한 사역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연초에 부탁드린 대로 매 주일 모일 때마다 외로워 보이는 분들이 계시면 다가가서 친구가 되어주고 슬며시 손을 잡아 주면서 한 해를 보냈습니다.

 

올해도 변함없이 초록 우산을 통해서 고국에 있는 30여 명의 아이들을 도왔습니다. 조전도사님께서 시작하신 사역인데 어르신들의 경우 돕는 아이가 18세가 넘어서 다른 어린아이로 교체해서 돕는 경우도 생겼으니 20년 가까이 우리 교회가 말없이 행하는 돌봄입니다.

 

오늘 노숙자 돕기 작은 사랑 나눔까지 올해도 세 번 나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한국에 계신 젊은 전도사님, 우리 지역에서 중독 사역을 하는 단체를 도왔습니다. 20불 이하의 헌금이지만, 이름없이 드리고 이름없이 돕는 것에 의미를 두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돌보는 우리 교회의 사역은 매우 부족해서 언제나 다음을 기약하게 됩니다.

 

참빛 식구들 개인과 각 가정의 삶도 녹록지 않았습니다. 연세가 드시는 권사님들은 육신이 연약해지십니다. 육신 뿐만 아니라 마음도 약해지실 때가 있습니다. 그럴수록 힘을 내셔야 합니다. 믿음으로 육신의 연약함을 이기시고, 무엇보다 하늘의 평안을 누리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삶도 힘겹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여러분의 인생길에 임할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어떤 어려움도 믿음으로 이기고 소망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커가는 아이들은 우리 교회의 보석입니다. 새해에 예수님처럼 키도 자라고 지혜도 자라는 우리 아이들이길 바랍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전히 어지럽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갈라져서 제각각 입니다. 어둡고 불안한 곳을 바라보면 희망의 빛을 발견하기 힘듭니다. 계시록 말씀에서 배웠듯이 역사를 주관하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소망 가운데 끝까지 참고 견디기 원합니다.우리는 이렇게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송구영신의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감사함으로 한 해를 보내고 우리 마음 한편에 좋은 추억들을 간직하기 원합니다. 믿음과 기도로 새해를 맞기 원합니다.-河-

데살로니가전서 (7)

소망의 인내

 

오늘은 대강절 첫째 주일입니다. 교회력을 따르면 대강절이 새로운 한 해의 시작입니다. 교회력은 예수님을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로 시작해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절,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을 알리는 주현절,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의 사순절과 부활절, 그리고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거의 반년을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구하면서 보냅니다.

 

대강절은 성탄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대강절 기간 동안 매 주일 촛불을 하나씩 밝히면서 보냅니다. 빛으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을 촛불에 담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력의 첫 기간은 기다림으로 시작합니다.

 

기독교는 어떤 면에서 기다림의 종교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 백성들이 구약에서 예언했던 메시아가 오기를 기다렸다면,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기도한 것이 응답되기를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세상에 이뤄지길 기다립니다. 지난 시간에 배운 대로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길 기다립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소망의 인내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으로 신앙의 첫 단추를 채웠다면, 사랑으로 꽃을 피우고, 소망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믿음이 과거라면, 사랑이 현재이고, 소망은 미래입니다. 이처럼 소망은 앞으로 될 일이기에 성취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소망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믿음과 사랑을 넘어서 소망까지 구비한 온전한 신앙을 갖고 있었습니다. 소망이 있기에 현재의 어려움을 참을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입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렸고, 예수님께서 오시면 선과 악을 심판하시고 의와 믿음이 승리할 것을 믿었습니다.

 

바울에게도 소망이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방문해서 그곳의 모든 성도와 얼굴을 보며 교제하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길이 막혀서 제자 디모데를 먼저 보냈습니다. 또한 바울이 갖고 있던 소망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끝까지 신앙을 지켜서 이다음 예수님 앞에 섰을 때 바울의 자랑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장차 이뤄질 소망과 관련해서 궁금한 점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이미 하나님께  간 친지들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기에, 모든 성도가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산 자와 죽은 자가 주를 예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날이 도둑같이 임할 것이니 깨어서 예수님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이 소망을 품고 사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우리에게도 소망의 인내가 요청됩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영원한 생명을 누릴 그날을 기다리며 끝까지 신앙의 길을 걷기 원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