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식물들 (8): 우슬초

3년간의 공생애를 마치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말씀은 메시아의 복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행적은 로마 권력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물론 제자들까지도 예수님께서 로마 식민지를 종식하고 다윗 왕조를 세우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실 것이라고 몇 번을 말씀하셨지만, 그것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예루살렘 군중들은 종려나무를 흔들면서 호산나(“구원하소서”)를 외쳤지만, 예수님께서는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와 같은 예루살렘을 보고 우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가셔서 그곳을 점령한 장사꾼들을 쫓아내셨습니다. 하지만 더이상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찾지 못할 것입니다. 뿌리까지 말라 버린 무화과나무가 그것을 미리 말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유월절 만찬을 마치시고, 3년을 함께 했던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십자가의 길을 가십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마다 습관처럼 가셨던 감람산 겟세마네에서 올리브 기름을 짜듯이 힘겹게 기도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가셔야 할 십자가의 길입니다. 예수님 시대는 물론 이전과 이후의 모든 인류의 죄를 지고 가시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밤새도록 심문을 받으시고 빌라도에 의해서 십자가형이 내려지고 골고다 언덕에서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신 후에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통을 받으실 때 군병들이 우슬초 (hyssop)에 신포도주를 묻혀서 예수님께 드렸다고 했습니다(요19:29). 우슬초에 해당하는 순우리말은 “쇠무릎”이랍니다. 줄기에 소 무릎처럼 생긴 마디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가지마다 작은 꽃이 피고, 물을 잘 머금는 특징이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떠나던 마지막 밤에, 우슬초에 양의 피를 묻혀서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은 죽음의 사자가 지나쳤습니다(유월,pass-over). 여기서부터 우슬초는 죽음의 사자 또는 귀신을 쫓아내는 식물이 되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죽으신 것으로 묘사하는 요한복음에 우슬초가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레위기를 비롯한 구약의 율법에서는 우슬초가 죄를 정결하게 하는 식물로 등장합니다. 우슬초로 정결하게 몸과 마음을 씻었습니다. 시편 51편에서는 신하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다윗이 회개하면서 우슬초로 자신을 정결하게 해 주시길 간청합니다. 우슬초로 죄를 씻고 새사람이 되길 바라는 것입니다.

 

고난 주간을 맞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고 추한 모습을 우슬초로 정결케 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부활절을 맞기 원합니다. -河-

성경의 식물들 (7): 무화과 나무

4월의 첫 번째 주일입니다. 올해 부활절은 늦어서 이번 달 셋째 주일에 맞습니다. 사순절도 마지막 주를 맞고 있는데, 말씀과 기도, 사랑과 구제로 마무리하기 원합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균형입니다. 성경의 식물에 대한 말씀도 부활절을 맞춰서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무화과나무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식물이 무화과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고 자신들이 벌거벗었음을 발견했을 때, 무화과나무 잎으로 몸을 가렸습니다. 여기서 혹자는 선악과에 가장 근접한 지상의 나무를 찾는다면 무화과나무일 것으로 봅니다. 가장 가까운 나뭇잎으로 몸을 가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추측입니다.

 

흥미롭게도 예수님께서 세상의 종말을 말씀하실 때, 무화과나무 열매를 보고 종말이 왔음을 분별하라고 하셨습니다. 봄에 잎이 나고, 여름에 열매를 맺는 무화과를 보면서 마지막 때가 왔음을 직감하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이스라엘은 가을에 새해를 시작했기에 여름은 마지막 절기였고, 여름에 열매를 맺는 무화과 나무를 종말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께서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니 나무가 뿌리까지 말랐습니다.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후에 장터로 변한 예루살렘 성전을 정결케 하시는 말씀이 나오는데, 겉은 화려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열매를 찾아볼 수 없었던 당시의 종교를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직 무화과 때가 되지 않았는데도 무화과를 찾으신 것이 어려운데, 언제든지 열매 맺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함을 뜻할 수 있습니다. 수확 때가 오기 전에 잎만 무성한 것을 회개의 기회로 삼으라는 경고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에서는 봄철에 “파게”라고 불리는 처음 무화과 열매가 열린답니다. 맛은 없지만 겨울철을 간신히 보낸 가난한 백성들에게 양식이 되곤 했는데 예수님께서 처음 무화과 파게를 찾으셨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이든지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는 위선과 형식에 치우쳤던 당시의 종교를 가리킵니다.

 

이 밖에도 성경에는 무화과나무가 여러 번 등장합니다. 히스기야는 무화과 잎으로 즙을 만들어 상처에 붙이니 병이 나았습니다. 백성들이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 있는 것은 평화와 번영의 상징이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무화과는 포도와 함께 꼭 필요한 양식이었습니다. 따라서 밭에 무화과나무가 무성하고 소출이 많은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영역이 발견되면 내실을 기하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살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 지내시기 원합니다.-河-

성경의 식물들 (6): 에셀나무

세상에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창조세계의 배경을 담당하는 다양한 종류의 식물이 있습니다. 식물들은 자연 만물에 섞여서 저절로 자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시는 생명체들입니다.

 

또한 어떤 식물은 사람에 의해서 경작되고 관리를 받습니다. 집에서 키우는 식물이 대표적입니다. 식물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키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물을 주고, 햇볕이 잘 들어오는 곳으로 옮겨 주어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 자연 속에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정성껏 보호받고 사랑을 받으면 더욱 아름다운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에셀 나무는 잎이 흐드러진 수양버들 나무에 속합니다. 잎과 줄기가 발달해서 그늘을 제공하는 멋진 나무입니다. “에셀”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를 그대로 번역한 것이고 영어로는 Tamarisk tree라고 부르고, 우리말 번역은 “능수버들”정도가 됩니다. 봄철에 분홍색 꽃이 나무 전체를 덮으면 아름다움을 넘어서 우아한 느낌이 들 정도랍니다.

 

성경에서 에셀 나무는 세 번 등장합니다. 첫째는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이고, 나머지 두 번은 이스라엘의 첫째 왕 사울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울도 에셀 나무를 좋아해서 그가 거하던 기브아에 옮겨다 심었고 에셀 나무 아래 앉아서 정사를 살피곤 했습니다. 사울이 블레셋과 싸우다가 전사하자 사람들은 그와 그의 아들을 에셀 나무 아래에 장사지냈습니다. 사울이 무척 아끼던 나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이 이스라엘 남쪽 그랄이라는 곳에 내려가서 살던 때입니다. 아브라함이 처음 그곳에 갈 때는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이면서 정착을 시도했습니다. 하나님의 간섭으로 그랄왕 아비멜렉이 데려간 사라가 풀려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곧 약속의 자녀 이삭을 갖게 될 아브라함과 사라를 밀착해서 보호하고 계심을 봅니다.

 

그랄 사람들이 아브라함이 파놓은 우물을 빼앗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힘겨운 타향살이였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그랄왕 아비메렉과 평화협정을 맺고 삶의 안정을 도모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랄에서의 삶을 기념하고 감사하면서 에셀 나무를 심고 그 아래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창21:33). 이처럼 에셀 나무는 심고 가꾸는 나무입니다. 쉼을 주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입니다.

 

우리에게도 에셀나무가 있는지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나무 그늘입니다. 편안히 쉬며 삶을 영위하는 나무입니다. 그런데 에셀 나무는 우리가 심고 가꿔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이요 자기 돌봄입니다. 우리의 삶이 에셀나무 아래서 드리는 예배가 되기 원합니다.-河-

성경의 식물들 (5): 여러 가지 나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곱째 달 보름에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9-10월입니다. 이집트에서 해방된 이스라엘이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했던 것을 되새기는 절기입니다.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입히고 먹이셨습니다.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때 임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초막절에는 일주일 동안 나뭇잎 등으로 초막(텐트)를 짓고 지냈습니다. 초막절을 장막절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수장절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의 가을 추수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처럼 초막절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오던 때를 기념하는 유월절, 보리 추수를 감사하는 맥추절 (오순절)과 함께 구약시대의 3대 절기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예루살렘 성을 다시 구축하고 남녀노소 모든 백성이 수문 앞 광장에 모여서 모세의 율법을 읽고 말씀의 은혜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제사장이자 성경 학자였던 에스라가 앞에 서서 모세의 율법을 읽습니다. 바벨론 포로기에 태어난 2세들을 위해서 통역을 하고, 말씀의 은혜를 경험한 백성들은 “아멘”으로 말씀을 받고 감격의 눈물을 흘립니다. 70년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말씀을 통해서 위로받고 힘을 얻는 시간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슬퍼하는 백성들을 향해서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힘이라고 알려주면서 축제를 선포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넉넉한 사람들이 음식을 준비해서 나누는 공동체 축제였습니다. 다음 날에는 백성의 대표들이 에스라를 찾아가서 모세의 율법을 다시 읽었는데, 초막절을 지키라는 말씀을 발견하고 백성들과 함께 초막절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그때가 마침 초막절 기간이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이 산에 올라가서 초막을 지을 나뭇가지들을 갖고 옵니다. 여러 가지 나뭇가지가 사용되었습니다.

 

감람나무(올리브나무)는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나무 가운데 하나인데 평화의 상징입니다. 들감람나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에는 기름을 짜는 나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기도하셨던 “겟세마네”라는 지명은 감람(올리브)유를 만드는 방앗간이라는 뜻입니다. 화석류나무(myrtle tree)는 향기로 유명합니다. 게다가 상록수입니다. 종려나무는 이스라엘 어느 곳이나 잘 자라는 대표적인 나무입니다. 잎이 넓고 커서 초막을 짓기에 적합했습니다. 기타 무성한 나무는 잎이 많고 줄기가 굵은 나무입니다.

 

이처럼 여러 가지 나무들이 초막 짓기에 동원되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드린다는 표시였을 것입니다. 초막절에 쓰인 나무처럼 다양하게 펼쳐지는 우리의 인생과 신앙도 하나님 앞에서 귀하게 사용되기 원합니다. -河-

성경의 식물들 (4): 로뎀나무

성경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고 통쾌한 말씀 가운데 하나가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대결하는 장면입니다. 엘리야 시대의 북이스라엘은 아합왕과 바알신을 섬기는 시돈 출신 이세벨 왕비가 통치했습니다. 아합왕은 왕비 이세벨의 영향을 받아서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것을 핍박하고, 대신 바알 종교를 수입해서 널리 퍼뜨렸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떠나서 바알을 섬긴 아합왕을 “그 이전의 이스라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왕상 16:33)고 평가했습니다.

 

그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가 엘리야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되는 가뭄 속에서 까마귀를 통해서 엘리야를 먹이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엘리야가 아합왕을 찾아가서 바알 선지자들과의 대결을 요청합니다. 엘리야는 혼자였고 450명의 바알 선지자들이 모였습니다. 제단에 쌓아놓은 제물에 불을 내리는 신이 진짜라는 것입니다. 바알 선지자들이 한나절 동안 춤을 추면서 자신들의 신을 불렀지만, 불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엘리야의 차례가 되었고, 하나님께서 불을 내려 응답하셨습니다. 가뭄도 그치게 하셨습니다.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을 모두 제압했습니다. 통쾌한 승리였습니다.

 

아합왕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바알 선지자들을 칼로 죽인 것을 왕비 이세벨에게 고하니 이세벨이 화를 내면서 엘리야를 죽일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엘리야가 이스라엘 남쪽 끝에 있는 브엘세바까지 피신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식물인 로뎀나무 아래 앉아 쉬면서 자신의 목숨을 가져가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엘리야가 그만큼 지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그를 어루만져 주시고 먹을 양식을 공급해 주십니다. 그리고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던 호렙산으로 가라고 말씀하시고, 그곳에서 엘리야의 마지막 사명을 알려주셨습니다. 아합 가문을 심판할 왕들과 엘리야 자신의 후계자로 엘리사를 세우라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몸을 맡기고 쉬었던 로뎀나무는 팔레스타인 사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덤불 나무입니다. 12피트(3.5미터)까지 자라고, 사막의 여행자들에게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입니다. 가지로 빗자루를 만들 수 있어서 영어로 빗자루 나무(broom tree)라고 부릅니다. 성경에서는 로뎀나무가 연료가 쓰이거나 (시120:4), 뿌리를 양식으로 먹을 수 있다고(욥30:4) 소개합니다.

 

사막의 로뎀나무가 엘리야에게 쉼터가 되었습니다. 바알 선지자와의 대결에서 큰 승리를 거뒀지만, 왕비 이세벨의 경고에 위협을 느낀 엘리야가 다시금 하나님을 만난 장소입니다. 우리에게도 로뎀나무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강해도 지칠 때가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어루만져 주시고 새 힘을 주시는 우리 인생의 로뎀나무를 인생길 곳곳에서 경험하기 원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