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우리 예수님 (2)

– 백부장의 종을 고치신 예수님

 

마태복음 8-9장은 예수님의 치유 사역 모음집처럼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일 먼저 나병 환자를 고치셨습니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비난을 무릎쓰고 예수님 앞으로 나온 나병 환자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를 맞아주시고 심지어 그의 상처에 손을 대시면서 나병을 깨끗하게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 당시 가장 천하고 사람 취급받지 못한 사람이 나병 환자였을 것입니다. 가족을 비롯한 공동체에서 쫓겨나 따로 살아야 하는 저주받은 인생입니다. 레위기 말씀대로 옷을 찢고 머리를 풀고 사람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부정하다, 부정하다”를 외치며 사는 인생입니다. 이런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나온 것도 대단한 용기와 믿음이지만, 그를 맞아 주신 우리 예수님은 가장 낮은 자를 위해서 세상에 오신 메시아이심이 틀림없습니다.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고쳐주신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예수님의 갈릴리 사역 중심)에 들어가시니 로마 백부장 한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자기 하인이 중풍으로 누워 몹시 괴로워한다고 말했습니다.

 

나병 환자는 비록 공동체에서 추방되어 따로 살아야 했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예수님을 찾아온 백부장은 이방인입니다. 어쩌면 나병환자보다 예수님께 나오기 더욱 어려운 신분입니다. 로마에서 파견된 장교가 자기들이 정복한 식민지 그것도 갈릴리 목수의 아들에게 와서 자기 하인을 고쳐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게다가 자신이 부리는 종이 중풍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종은 주인의 소유물입니다. 아픈 종을 고치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았다는 것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자신과 같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오실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특별합니다. 말씀만 하셔도 종의 병이 나을 것이랍니다. 여기서 예수님을 찾아온 백부장의 성품과 믿음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믿음에 감탄하십니다: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10절) 사방에서 온 새로운 하나님 백성들이 교만하고 배타적인 이스라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할 날이 올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이 중요합니다. “가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13절)라고 말씀하시니 즉시 백부장의 종이 나았습니다.

 

나병 환자를 고치신 예수님께서 로마 백부장의 종을 고치셨습니다. 당시의 고정관념을 깨시는 행동입니다. 벽을 허무셨습니다. 믿음은 민족이나 신분을 초월해서 예수님께만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갖고 자신 앞에 나오는 모든 사람을 받아 주십니다. 말 그대로 “예수님,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河-

예수님, 우리 예수님 (1)

– 나병환자를 고치신 예수님

 

가능하면 주일설교 본문을 신약과 구약성경을 번갈아 다루고 있습니다. 새해 첫 달에는 우리 교회 표어인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가 들어 있는 구약 성경 이사야서 60장 말씀을 나눴습니다. 말씀대로 올 한해 <쿰>하고 일어나서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의 빛을 세상에 전하기 원합니다.

 

참빛 식구들께서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 사셔서 세상의 부조리와 악한 모습이 드러나고, 그곳에도 예수님의 빛이 임하길 바랍니다. 새해 첫 달부터 지구 곳곳에서 들려오는 전쟁, 자연재해 그리고 최근의 신종 폐렴까지 어수선한 세상에 예수님의 치유와 온전함의 은혜가 임하길 기도합니다.

 

2천년 전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팔레스타인은 로마의 식민지였고, 예루살렘 중심의 종교는 말할 수 없이 타락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종교와 정치 지도자들의 권력 다툼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니 힘없는 백성들의 삶이 피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권력에 저항하셨습니다. 그릇된 종교를 무너뜨리고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는 시도를 하셨습니다. 죽음을 불사하고 하나님 나라 복음을 세상에 전하셨습니다. 대부분의 권력자들은 예수님을 불편해하고 급기야 죽일 생각을 했지만, 많은 백성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중에 예수님께서 직접 부르신 열두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갈릴리 어부, 고민하던 세리, 로마 정권을 무너뜨리고 다윗 왕국을 재건하려던 열심당원까지 다양했습니다. 이들은 가족과 재산까지 모두 내려놓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많은 병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당시에 질병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벌로 여겼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병이 나도 의사를 찾아갈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오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는데, 앞으로 살펴볼 마태복음 8-9장에 예수님의 치유 사역이 집중적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만난 병자는 당시에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던 나병 환자였습니다. 나병에 걸리면 공동체에서 쫓겨나서 격리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접근할 수 없었고, 저주받은 인생 취급을 받았습니다. 나병으로 인해서 흉해진 외모만큼 이들의 인생은 완전히 망가진 채 절망적인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왔을 때, 나병 환자 한 사람이 찾아와서 깨끗게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예수님께 나오기까지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의 비난과 저지를 감수하고 왔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서 나병 환자를 만지셨습니다. 그리고 “깨끗함을 받으라”고 명령하시니 즉시 병이 나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꺼리고 혐오하는 나병 환자를 고치신 예수님, 역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 河-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4)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로 시작하는 이사야서 60장은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의 모형입니다. 이스라엘에 닥친 현실은 깜깜할 뿐입니다. 정의와 공의가 무너졌습니다. 사람들의 입술에는 거짓과 악독함이 가득합니다. 진리가 사라지니 사람들의 눈이 어두워져서 우왕좌왕 헤매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물론 온 세상이 어둠에 덮였습니다. 그때 임한 말씀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낙원처럼 평화로운 적은 거의 없습니다. 전쟁의 소문이 끊이지 않았고, 질병의 공포, 사람들 사이의 시기와 질투, 폭력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으면서 하나님을 등지고 자신의 길을 가면서 생긴 어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기 위해서 끊임없이 애쓰셨습니다. 비록 자신을 떠났지만,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신 인류를 기필코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구원의 드라마입니다.

 

이사야서 말씀에서도 하나님께서 먼저 일어나셨습니다. 오래 참으셨지만, 사람들에게 가능성이 없는 것을 발견한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시 세우시기로 작정하십니다.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의 일에 동참할 자신의 백성을 찾으시고 그들에게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고 부탁하시는 것입니다.

 

무작정 말씀하거나 강요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영광으로 임하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빛이 되어 주십니다. 해와 달이 비추는 빛이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사60:19)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빛이 되십니다. 그 빛이 주의 백성들에게 임하니 백성들이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이 빛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빛을 경험한 하나님 백성들에게 소망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꿈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깜깜한 세상이지만, 하나님께서 이루실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일어나서 빛을 발할 수 있는 근거입니다.

 

지난 한 달 동안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우리 교회 올해 표어에 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어려움이 닥치거나 힘이 빠져서 주저앉게 되면 “쿰”하고 일어나길 원했습니다. 내 빛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의 빛을 비춰야 함을 배웠습니다. 자신만의 생각에 갇혀 있지 말고 상자를 열고 밖으로 나오는 것이 일어나서 빛을 비추는 삶임도 깨달았습니다. 어두운 세상만 바라보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꿈꾸시는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이뤄지는 것임을 함께 나눴습니다.

 

일상이 하나님의 일이 되고, 그것이 하나님의 큰 계획으로 연결되어서 일어나서 빛을 비추는 올 한 해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河-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3)

새해 첫 달도 절반이 훌쩍 지났습니다. 참빛 식구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사신 줄 압니다. 힘들 때마다 <쿰>하고 일어나고, 앞으로 나가야 할 때는 <쿰>하고 힘을 받아서 새해를 살고 계시는 줄 압니다. 올 한해 주저앉지 말고 순간순간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세상에 예수님의 빛을 비춰야 합니다. 참빛되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면, 우리에게서 예수님의 빛이 발할 것입니다.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 죽음이 베어 있는 세상에 생명의 빛을,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복음의 빛을 세상에 비추는 것입니다. 참빛 식구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빛이 세상에 비치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어두운 세상이었습니다. 정의와 공의가 사라지고, 사람들의 손에는 피가 묻어있고, 악독한 말이 난무했습니다(사59:2).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없고 도리어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하나님을 속이고 패역과 거짓말을 일삼았습니다 (사59:13). 남아있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지만, 하나님의 침묵은 길어졌습니다. 구원의 손길은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나서서 자기 팔로 구원을 베푸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세상을 구하시려는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악한 길로 나갔던 사람들은 그들의 행위대로 심판하시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세상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원수들에게 보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임하시니 끝까지 믿음을 지킨 주의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순간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났지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을 몸소 지키실 것입니다(사59:21).

 

세상은 여전히 어둡습니다. 아직 바뀐 것은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서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사60:1)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의 빛과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임할 것입니다. 어둠으로 뒤덮인 깜깜한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과 빛이 임하니 세상 만국 사람들이 빛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올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이방 나라들이 제물을 갖고 예루살렘으로 올라옵니다. 미디안과 에바의 낙타들, 금과 은을 갖고 오는 스바 사람들, 남쪽 아라비아 게달 민족은 양을 갖고 와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입니다. 당시 땅끝이라고 여기던 다시스에서도 금과 은을 배에 싣고 와서 하나님께 드립니다.

 

함께 어울려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습 속에서 장차 이뤄질 하나님 나라를 봅니다. 슬픔이 사라지고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세상을 밝히고 있습니다. 시기와 질투, 반목으로 어두웠던 세상이 밝아질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면서 올 한해 일어나 빛을 발합시다.- 河-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2)

새해 벽두부터 중동에서 들려오는 전쟁의 소문으로 세상이 뒤숭숭합니다. 성경 말씀 그대로 세상에는 전쟁의 소문이 끊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탐욕이 존재하는 한, 전쟁은 물론 크고 작은 갈등이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완전한 평화는 불가능하더라도 무고한 목숨을 앗아가고 세계 질서를 망가뜨리는 전쟁이나 폭력이 사라지길 기도해야겠습니다.

 

우리가 살펴보는 이사야서 59장과 60장의 상황도 세상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공의와 정의가 무너지고, 피를 보는 폭력이 난무했습니다. 곰처럼 울부짖고 비둘기처럼 슬피 울며 기도했지만, 하나님의 구원은 멀기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이 길어진 것입니다.

 

그때 주신 말씀이 올해 우리의 표어인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입니다.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주춤거리거나 망연자실 멈출 수 없습니다. “쿰”하고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빛을 비춰야 합니다. 우리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광으로 우리와 함께하실 때 가능합니다. 아니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빛으로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면, 우리가 저절로 그 빛을 비추게 될 것입니다.

 

어두움을 해결하는 방법은 빛을 비추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 어둠이 아무리 강해도 작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어둠이 강할수록 도리어 빛이 더욱 선명해지는 법입니다. 2절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두움이 온 땅을 덮었습니다. 캄캄함이 사람들을 가렸습니다. 앞을 볼 수 없으니 사람들끼리 부딪치고 싸울 뿐입니다. 그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한 것입니다. 각 나라들과 왕들이 빛을 찾아서 예루살렘으로 모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어두운 곳이 많습니다. 겉은 환해 보여도 속이 새까맣게 탄 채 살아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이 비치길 원합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우리가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 각자 삶의 현장에서 빛으로 사는 것입니다.

 

빛으로 사는 것을 두고 세상에서 출세하거나 영향력을 끼치는 자리에 올라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빛을 비추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님이 빛으로 반사된다면 그것이 빛으로 사는 것입니다. 삶을 통해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고, 어렵고 약한 이웃을 돕고, 비뚤어진 세상에서 반듯하게 살려는 의로운 몸짓이 곧 빛의 자녀들의 모습입니다. 한 주간 빛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참빛 식구들로 인해서 어두운 세상이 조금이라도 밝아 지길 기대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