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식물들 (10): 겨자씨

성경의 식물들을 살펴보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던 떨기나무로 시작해서 오늘 함께 나눌 겨자씨까지 열 가지 식물을 나무 중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 떨기나무는 광야를 지키는 잡목이고 쉽게 불에 타는 나무인데, 그곳에 하나님께서 타지 않는 불꽃으로 임하셔서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살구나무로 번역된 <샤케드>는 아몬드 나무로서 봄을 알리는 희망의 나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는 약속의 나무였기에 히브리어 <샤카드(지키다)>와 더불어 성경에 등장했습니다. 성전을 장식했던 레바논의 백향목은 높고 고결한 자태를 자랑합니다. 우리 신앙도 백향목처럼 곧고 높이 자라길 기대했습니다.

 

사역과 삶에 지쳤던 엘리야가 광야로 나갔을 때 그에게 쉼터를 제공한 것은 로뎀나무였습니다.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서 주의 천사가 공급하는 양식을 먹고 다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수문 앞 광장에서 에스라가 읽어주는 하나님 말씀에 커다란 은혜를 받았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힘이라는 느헤미야의 격려와 계속된 말씀 탐구를 통해서 신앙을 회복하고 감사의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평화의 상징인 감람(올리브)나무, 잎이 넓고 푸른 상록수인 화석류 나무,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종려나무, 그 밖에 여러 가지 나무로 지은 초막을 보면서 우리의 신앙과 인생을 돌아보았습니다.

 

이방 땅에서 삶의 터전과 안전을 확보한 아브라함은 수양버들처럼 잎이 늘어져서 그늘이 되는 에셀 나무를 심고 그 아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삶 속에서 감사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무화과나무는 성경에 처음 등장합니다. 하나님께 죄를 지은 아담과 이브가 무화과 나뭇잎으로 몸을 가린 것입니다. 봄철에는 설익은 무화과 파게를 가난한 사람들이 양식으로 삼았습니다. 구약의 선지자 하박국은 무화과 잎이 말라도 하나님 한 분으로 기뻐하겠다고 노래했습니다.

 

물을 잘 머금는 우슬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당시 양의 피를 묻혀서 문설주에 바르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입에 신포도주를 적시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큰 죄를 범한 다윗은 우슬초로 정결케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생명 나무는 성경의 처음과 끝, 그리고 중간인 잠언에서 하나님께서 생명의 근원이 되시며, 생명의 삶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보는 겨자 나무는 작은 씨로 유명합니다. 작지만 그 안에  생명을 품고  있으니 크게 자랍니다. 넓게 퍼진 가지로 인해서 새들이 깃들고 믿음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성경의 식물들처럼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하나님께 쓰임 받은 참빛 식구들이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河-

성경의 식물들 (9): 생명나무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셨습니다/He is risen! 오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다시 사신 것을 기억하며 예배하는 부활절입니다. 부활절은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하고 큰 절기입니다. 지난주일 설교에서 말씀드렸듯이 유대인의 명절 유월절과 맞물려 있어서 음력으로 지키는 부활절은 실제 달력과 맞습니다. 우리 지역이 예수님께서 사셨던 이스라엘과 기후가 비슷하니 이맘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셈입니다.

 

당시에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죽음은 알고 있었지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와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지만,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시는 모습이 워낙 초라했기에 다시 살아날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예루살렘 백성들은 물론 제자들까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큰일을 하실 줄 알았다가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을 보고 예수님의 부활을 기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흘 만에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에서 기독교가 시작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제자들이 부활의 증인으로 생명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니 죽음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하면서 안식 후 첫날인 주일에 모여서 예배했습니다. 예수님의 3년 공생애를 되돌아보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행적을 복음서로 기록했습니다.

 

부활은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똑같은 사건이 되어야 합니다. 부활은 죽음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어두운 세력에 무너지지 않고 생명의 빛으로 우리 자신과 삶을 비추는 것입니다. 부활은 영원한 생명을 보장합니다. 우리의 삶이 어떠하든지,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 안에 임할 때 죄로 인한 죽음, 낙심, 두려움을 몰아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살펴보는 구약의 식물은 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에덴동산에 있었고, 나중에 하나님 나라가 임했을 때 보게 될 생명 나무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네 개의 강물이 흐르고 한가운데 생명 나무가 있었습니다. 요한이 환상으로 본 하나님 나라에도 수정처럼 맑은 생명수가 흐르고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서 열두 가지 열매를 맺고 있었습니다. 달마다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는 만국을 치료하는데 쓰입니다. 말 그대로 생명을 주는 나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생명 나무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것을 믿을 때, 생명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살리고 치료하며,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을 의지하면서 날마다 생명의 길을 걷기 원합니다. 가정과 교회 그리고 우리 삶의 처소가 생명 나무가 있는 동산이길 원합니다.-河-

성경의 식물들 (8): 우슬초

3년간의 공생애를 마치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말씀은 메시아의 복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행적은 로마 권력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물론 제자들까지도 예수님께서 로마 식민지를 종식하고 다윗 왕조를 세우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실 것이라고 몇 번을 말씀하셨지만, 그것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예루살렘 군중들은 종려나무를 흔들면서 호산나(“구원하소서”)를 외쳤지만, 예수님께서는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와 같은 예루살렘을 보고 우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가셔서 그곳을 점령한 장사꾼들을 쫓아내셨습니다. 하지만 더이상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찾지 못할 것입니다. 뿌리까지 말라 버린 무화과나무가 그것을 미리 말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유월절 만찬을 마치시고, 3년을 함께 했던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십자가의 길을 가십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마다 습관처럼 가셨던 감람산 겟세마네에서 올리브 기름을 짜듯이 힘겹게 기도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가셔야 할 십자가의 길입니다. 예수님 시대는 물론 이전과 이후의 모든 인류의 죄를 지고 가시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밤새도록 심문을 받으시고 빌라도에 의해서 십자가형이 내려지고 골고다 언덕에서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신 후에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통을 받으실 때 군병들이 우슬초 (hyssop)에 신포도주를 묻혀서 예수님께 드렸다고 했습니다(요19:29). 우슬초에 해당하는 순우리말은 “쇠무릎”이랍니다. 줄기에 소 무릎처럼 생긴 마디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가지마다 작은 꽃이 피고, 물을 잘 머금는 특징이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떠나던 마지막 밤에, 우슬초에 양의 피를 묻혀서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은 죽음의 사자가 지나쳤습니다(유월,pass-over). 여기서부터 우슬초는 죽음의 사자 또는 귀신을 쫓아내는 식물이 되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죽으신 것으로 묘사하는 요한복음에 우슬초가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레위기를 비롯한 구약의 율법에서는 우슬초가 죄를 정결하게 하는 식물로 등장합니다. 우슬초로 정결하게 몸과 마음을 씻었습니다. 시편 51편에서는 신하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다윗이 회개하면서 우슬초로 자신을 정결하게 해 주시길 간청합니다. 우슬초로 죄를 씻고 새사람이 되길 바라는 것입니다.

 

고난 주간을 맞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고 추한 모습을 우슬초로 정결케 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부활절을 맞기 원합니다. -河-

성경의 식물들 (7): 무화과 나무

4월의 첫 번째 주일입니다. 올해 부활절은 늦어서 이번 달 셋째 주일에 맞습니다. 사순절도 마지막 주를 맞고 있는데, 말씀과 기도, 사랑과 구제로 마무리하기 원합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균형입니다. 성경의 식물에 대한 말씀도 부활절을 맞춰서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무화과나무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식물이 무화과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고 자신들이 벌거벗었음을 발견했을 때, 무화과나무 잎으로 몸을 가렸습니다. 여기서 혹자는 선악과에 가장 근접한 지상의 나무를 찾는다면 무화과나무일 것으로 봅니다. 가장 가까운 나뭇잎으로 몸을 가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추측입니다.

 

흥미롭게도 예수님께서 세상의 종말을 말씀하실 때, 무화과나무 열매를 보고 종말이 왔음을 분별하라고 하셨습니다. 봄에 잎이 나고, 여름에 열매를 맺는 무화과를 보면서 마지막 때가 왔음을 직감하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이스라엘은 가을에 새해를 시작했기에 여름은 마지막 절기였고, 여름에 열매를 맺는 무화과 나무를 종말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께서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니 나무가 뿌리까지 말랐습니다.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후에 장터로 변한 예루살렘 성전을 정결케 하시는 말씀이 나오는데, 겉은 화려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열매를 찾아볼 수 없었던 당시의 종교를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직 무화과 때가 되지 않았는데도 무화과를 찾으신 것이 어려운데, 언제든지 열매 맺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함을 뜻할 수 있습니다. 수확 때가 오기 전에 잎만 무성한 것을 회개의 기회로 삼으라는 경고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에서는 봄철에 “파게”라고 불리는 처음 무화과 열매가 열린답니다. 맛은 없지만 겨울철을 간신히 보낸 가난한 백성들에게 양식이 되곤 했는데 예수님께서 처음 무화과 파게를 찾으셨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이든지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는 위선과 형식에 치우쳤던 당시의 종교를 가리킵니다.

 

이 밖에도 성경에는 무화과나무가 여러 번 등장합니다. 히스기야는 무화과 잎으로 즙을 만들어 상처에 붙이니 병이 나았습니다. 백성들이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 있는 것은 평화와 번영의 상징이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무화과는 포도와 함께 꼭 필요한 양식이었습니다. 따라서 밭에 무화과나무가 무성하고 소출이 많은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영역이 발견되면 내실을 기하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살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 지내시기 원합니다.-河-

성경의 식물들 (6): 에셀나무

세상에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창조세계의 배경을 담당하는 다양한 종류의 식물이 있습니다. 식물들은 자연 만물에 섞여서 저절로 자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시는 생명체들입니다.

 

또한 어떤 식물은 사람에 의해서 경작되고 관리를 받습니다. 집에서 키우는 식물이 대표적입니다. 식물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키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물을 주고, 햇볕이 잘 들어오는 곳으로 옮겨 주어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 자연 속에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정성껏 보호받고 사랑을 받으면 더욱 아름다운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에셀 나무는 잎이 흐드러진 수양버들 나무에 속합니다. 잎과 줄기가 발달해서 그늘을 제공하는 멋진 나무입니다. “에셀”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를 그대로 번역한 것이고 영어로는 Tamarisk tree라고 부르고, 우리말 번역은 “능수버들”정도가 됩니다. 봄철에 분홍색 꽃이 나무 전체를 덮으면 아름다움을 넘어서 우아한 느낌이 들 정도랍니다.

 

성경에서 에셀 나무는 세 번 등장합니다. 첫째는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이고, 나머지 두 번은 이스라엘의 첫째 왕 사울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울도 에셀 나무를 좋아해서 그가 거하던 기브아에 옮겨다 심었고 에셀 나무 아래 앉아서 정사를 살피곤 했습니다. 사울이 블레셋과 싸우다가 전사하자 사람들은 그와 그의 아들을 에셀 나무 아래에 장사지냈습니다. 사울이 무척 아끼던 나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이 이스라엘 남쪽 그랄이라는 곳에 내려가서 살던 때입니다. 아브라함이 처음 그곳에 갈 때는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이면서 정착을 시도했습니다. 하나님의 간섭으로 그랄왕 아비멜렉이 데려간 사라가 풀려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곧 약속의 자녀 이삭을 갖게 될 아브라함과 사라를 밀착해서 보호하고 계심을 봅니다.

 

그랄 사람들이 아브라함이 파놓은 우물을 빼앗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힘겨운 타향살이였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그랄왕 아비메렉과 평화협정을 맺고 삶의 안정을 도모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랄에서의 삶을 기념하고 감사하면서 에셀 나무를 심고 그 아래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창21:33). 이처럼 에셀 나무는 심고 가꾸는 나무입니다. 쉼을 주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입니다.

 

우리에게도 에셀나무가 있는지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나무 그늘입니다. 편안히 쉬며 삶을 영위하는 나무입니다. 그런데 에셀 나무는 우리가 심고 가꿔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이요 자기 돌봄입니다. 우리의 삶이 에셀나무 아래서 드리는 예배가 되기 원합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