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아버지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한쪽은 신을 믿는 사람들이고, 다른 쪽은 신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신의 존재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미루는 불가지론자들도 있지만, 결국 이분들도 신을 믿지 않으니 후자에 속할 수 있습니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신이라는 초월적인 존재를 거추장스럽게 여깁니다. 신을 믿는 것 대신에 양심, 자연법칙 또는 물질에 의존해서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분들이 신을 믿지 않는 대표적인 이유는 신은 고대 이래로 연약한 인간이 만든 조작품 또는 생각을 띄워(투사)놓고 그것을 의지하는 방식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믿는 사람들도 여러 가지 형태를 띱니다. 세상 곳곳을 다스리는 많은 신이 있다고 믿거나(다신론), 세상 자체가 신이라고 보거나(범신론), 오직 한 분이신 유일신을 믿습니다. 유일신을 믿는 대표적인 종교는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로 아이로니컬 하게도 모두 구약 성경 창세기의 하나님 한분 만을 믿습니다. 매우 흥미롭지요.

 

유일신을 믿는 세 종교 가운데 우리 기독(그리스도)교는 예수님을 통해서 한 분이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갈 수 없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없이 기독교 자체가 성립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자신을 거역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보내주신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로 믿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예수 믿는다”는 말을 하고, 이것이 곧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올바른 표현일 것입니다.

 

교회력에 따르면 주현절이 지나고 곧 사순절을 맞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기억하고 그 삶을 살아가는 기간입니다. 올해는 사순절을 보내면서, 우리의 신앙을 다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믿는 성삼위 하나님에 대해서 살펴보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주일설교에서 많은 내용을 나눌 수 없어도 꼭 필요한 교리를 소개하고, 성삼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은 성부 하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향해서 “아버지”라고 부르신 것을 따라서 우리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변함없이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자신을 거역한 백성들을 다시 구원하기 위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하시는 하늘 아버지 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사랑과 은혜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처럼 고백하기 원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시편 18:1)-河-

여호와 우리 주여

한 달이 훌쩍 지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올 한 해 열두 달이 지날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때로는 달력이 없었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달력의 기원은 고대 이스라엘은 물론 인류 문명의 발상지에서 공통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해가 뜨고 지는 하루, 보름달이 찾아오는 한 달, 계절이 바뀌고 밤과 낮의 길이가 변동하는 한 해까지 인류 최초의 과학자이자 현자들은 달력을 만들어서 자연의 이치와 더불어 살아갈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달력을 이용하기보다 자신의 삶을 달력에(시간에) 맞추는 아이러니가 발생했습니다. 햇수가 지나도 몸에 이상이 없다면 성경의 갈렙처럼 인생 팔십에도 청춘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80세라는 나이를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몸이 아파지는 것을 느끼고 의기소침해집니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갈 때마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심란합니다. 새해를 시작한 지 엊그제 같은데 새해의 결심을 지키지도 못한 채 새달이 지나가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를 줍니다. 편리를 위해서 시간을 만들어놓고 도리어 시간에 지배받는 식입니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가 <작은 일에 충성>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에게, 세상 속에서 작은 일에 충성하기 원합니다. 큰일을 생각하고 한 해를 통째로 생각하다 보면 조급할 수 있습니다. 그것보다, 지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충성하면서 하루를 살고 한 가지씩 주어진 일을 차근차근 해내는 것입니다. 시간의 흐름에 쫓기지 않고 시간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시간의 흐름에서 자유로웠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마치 어떤 일에 몰두하면, 시간의 흐름을 잊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우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과 보내는 개인 경건의 시간, 골방 기도의 시간, 공동체 예배와 친교 시간이 창조적이고 생산적이길 원합니다. 둘째로, 자기 일에 몰두하는 한 해가 되기 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남의 일을 돌아봄과 동시에 자기 일을 돌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한 달란트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주변에 있는 지극히 작은 한 명의 이웃을 섬기기 원합니다. 자신보다 연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다가가서 받은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시편 기자가 고백하듯이 주의 손으로 지으신 하늘과 그곳에 베풀어 두신 해와 달을 보면서 주님을 만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창조세계를 세심하게 느끼고, 그곳에 깃든 하나님의 손길을 작은 것까지 포착하는 삶의 여유를 갖기 원합니다. 자고 일어나는 하루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곳에 임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하는 경이로운 순간, 거룩한 시간으로 2018년을 장식하기 원합니다. -河-

지극히 작은 자 하나

새해에는 연초부터 권사님들은 물론 아기들까지 강력한 독감으로 혼쭐이 나셨습니다. 독감 예방 주사와 상관없이 찾아온 이번 독감은 폐렴을 의심할 정도의 기침을 동반했습니다. 꼼짝 못하시고 며칠을 누워 계셔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독감 예방 주사에 포함된 백신이 이번 독감을 막아주지 못했답니다. 전문가들이 지구촌에서 이미 유행한 독감을 분석해서 예방 주사를 만들지만, 매사가 그렇듯이 앞 일에 적중하는 것은 언제나 어렵습니다. 참빛 식구들께서 거의 회복단계로 접어드신 것 같아서 감사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작은 일에 충성>이라는 올해 표어에 맞춰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배웠듯이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작은 일에 불과합니다. 매사에 충성을 다해야 할 이유입니다. 또한, 작은 일은 시시하고 하찮은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작은 일도 귀하게 여기심을 배웠습니다.

 

첫 시간에는 시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작은 일은 “정한 마음” “정직한 영” “상한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지난주에는 우리 자신이 관심 가져야 할 작은 일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한 달란트였습니다. 한 달란트를 맡겨주신 하나님에 대해서 그릇된 생각을 하면 큰일입니다.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와 비교해서 한 달란트라고 소홀히 여겨서도 안 됩니다. 행여나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둔다면 게으른 종이라는 비판을 듣게 될 것입니다. 한 달란트를 챙기고 한 달란트의 의미를 발견하기 원합니다.

 

세 번째 시간인 오늘은 이웃을 향한 작은 일을 살펴보겠습니다. 달란트의 비유에 이어서 등장하는 오늘 본문은 24장부터 시작된 종말에 대한 말씀의 결론부입니다. 달란트 비유가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교훈이라면,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성도들은 세상에 살면서 예수님께서 목마르실 때 마실 것을 주었고, 굶주릴 때 먹을 것을 주었고 헐벗었을 때 옷을 입혀 주었으며, 병들고 옥에 갇혔을 때 찾아왔습니다. 알고 보니 세상에서 아주 작은 한 사람에게 베푼 것이 곧 예수님께 한 것이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베푼 선행입니다. 반면, 악한 자들은 예수님을 모른 체했습니다. 선한 일을 한 성도들과 달리 어려운 이웃을 외면한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언제나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 있습니다. 절대적으로 어려운 이웃도 있고, 우리 자신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어려운 이웃도 있습니다. 올 한해 예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우리 주변의 작은 이웃을 섬기기 원합니다.-河-

한 달란트 가진 자

새해가 되니 뚜렷이 하는 일은 없어도 마음과 생각이 바쁩니다. 새해에는 무엇인가 특별한 결심과 행함이 있어야할 것 같고, 동시에 작심삼일이던 예전의 기억이 겹치면서 여러 생각이 교차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마음과 삶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소망을 경험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믿음으로 한 해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오늘 살펴볼 말씀은 꽤 유명한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우리 교회 올해 표어인 “작은 일에 충성”도 오늘 본문에서 왔습니다. 달란트의 비유는 마태복음24-25장에 이르는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단락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때의 징조로 시작해서, 예수님께서 행하실 심판으로 끝을 맺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중간에 세가지 비유가 등장합니다. 충성스러운 종, 기름과 등불을 준비한 다섯 처녀, 그리고 마지막이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세 비유의 공통점은 예수님께서 도둑처럼 불현듯 다시 오실 것이니 그때를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평소에 예수님 맞을 준비를 한 사람은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게 되지만, 예수님 오실 것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산 사람은 그에 해당하는 대가를 지불할 것입니다. 비유를 읽고 있으면, 준비를 잘한 사람보다도 준비를 하지 않은 악한 종, 등불의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어리석은 다섯 처녀, 한 달란트 받은 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달란트의 비유는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한 귀인이 여행을 떠나면서 세 명의 종에게 능력에 따라서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한 달란트는 20년 정도 일해야 모을 수 있는 큰 금액입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들은 장사를 해서 갑절을 남겼습니다. 반면에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돈을 땅에 묻어 놓았습니다. 주인이 돌아와서 자신의 재산을 어떻게 관리했는지 점검합니다. 갑절로 이익을 남긴 두 명의 종은 모두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받지만, 주인의 재산을 땅에 묻어놓은 종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과 함께 갖고 있던 재산까지 빼앗긴 채 밖으로 내쫓깁니다.

 

달란트를 땅에 묻어놓은 종의 문제는 주인의 성품을 자기 나름대로 판단하고 한 달란트를 땅에 묻은 것입니다. 다른 두 명의 종이 열심히 장사하면서 주인의 재산을 증식시키는 동안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을 위해서 일하지 않고 자기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주인의 성품을 잘 헤아리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매우 이기적입니다.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고 자신만을 보호하려는 태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달란트를 땅에 묻지 않고 마음껏 사용해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받기 원합니다.  -河-

작은 일에 충성

2018년 새해 첫째 주일입니다. 올해는 무술년 개띠해입니다. 일반적으로 개는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충견(忠犬)으로 불립니다. 특별히 무술년과 연관시킨 것은 아닌데 2018년 우리 교회 표어가 “작은 일에 충성하라”입니다.

 

우선, 작은 일이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가리킬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크고 작은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오십보백보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올 한 해 맡겨주신 사명에 최선을 다하고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이라는 칭찬을 듣기 원합니다.

 

또한, 작은 일은 놓치기 쉬운 사소한 것들입니다. 적당히 지나쳐도 될 것 같은 일입니다. 챙기지 않아도 될법한 일입니다. 행여나 열심히 해도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을 일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은 말 그대로 사소한 일을 하나님 앞에서 열심히 행하는 것입니다.

 

작은 일은 해야 하는 일/과업뿐만 아니라 관계도 포함합니다. 소홀하기 쉬운 관계, 지나치기 쉬운 관계, 관심을 가져도 크게 드러나지 않는 사소한 관계들을 챙기고 거기서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교회적으로도 작은 일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참빛 공동체 안에서 행여나 소외되는 분들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분이 우리 교회에서 신나게, 주인의식과 소속감을 느끼면서 하나님을 믿으셔야 합니다. 속회, 남선 교회, 여선 교회, 청년부, 성경공부 모임 등을 통해서 “공동체성”을 경험하고, 말씀과 기도로 서로 연결되기 원합니다. 개인적으로 또는 공동의 관심을 가지신 분들이 신앙 안에서 교제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주일 친교 시간에도 서로 챙기고, 삶과 은혜를 나누면서 우리 모두 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세워 가기 원합니다.

 

교회를 섬기는 것도 작은 일과 연관됩니다. 우리 교회는 늘 그랬듯이 어떤 일을 강제하지 않고 자원해서 섬기고 여력이 있는 한에서 사역을 펼쳐왔습니다. 받은 은사대로 은밀하게 교회를 섬기는 마음과 손길이 더욱 많아지길 바랍니다. 올해에도 작은 일, 궂은일, 누군가 알아주지 않는 일을 말없이 은밀하게 섬기는 손길들을 기대합니다.

은밀하게 구제하는 일을 지속하려고 합니다. 분기마다 작은 사랑 나눔을 실천하고, 고국의 소년소녀가장 돕는 일을 계속하겠습니다. 이밖에도 우리 교회를 통해서 세상의 작은 자들에게 사랑과 소망을 전할 할 수 있다면 성심껏 그 일에 참여하겠습니다.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일이기에 더욱더 진실한 믿음이 요청됩니다.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하는 일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하나님이 칭찬하시고 인정하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참빛 가족이 되기 원합니다.-河-

송구영신 예배 공동기도

하나님 아버지,

2017년을 보내고, 2018년 새해를 맞습니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이 시간,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음이 감사와 기쁨입니다. 시작과 끝을 주관하시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이 시간 기억하며 예배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은혜로 2017년을 보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표어를 갖고 한 해를 살았는데, 과연 우리가 주님께 받은 사랑을 온전히 전하고 실천했는지 돌아봅니다. 여전히 우리 안에 나만 아는 이기적인 마음, 내 것을 더 챙기려는 욕심, 남들 보다 더 많이 갖고 높아지려는 교만이 살아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앞에서 다시금 회개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기로 결심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바르게 인도해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2018년 새해에는 아주 작은 일까지 하나님께 맡기고, 소홀하기 쉬운 것에도 최선을 다하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인생길을 걸어가겠습니다. 주님의 일에 참여하게 하시고, 주변의 이웃들을 찾아가서 손잡아 주고, 위해서 기도하며 사랑을 베풀게 하옵소서. 올 해가 다갔을 때, 주님으로부터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세상이 어지럽습니다. 새해에는 조국 대한민국과 우리가 사는 미국에 그리스도의 평화가 임해서 서로 미워하고, 파당을 짓고, 다투는 일이 줄어들게 하옵소서. 무고한 생명을 빼앗는 전쟁, 테러, 총기 사고를 주님께서 통제해 주옵소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인간의 존엄성이 주님의 뜻대로 유지되는 세상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올 한해도 우리 교회 어르신들을 영육간에 강건하게 하시고, 아이들이 주님의 아들과 딸로 신앙 안에서 자라게 하시고, 참빛 식구들의 신앙과 인생 여정에 주인이 되어 주옵소서. 하나님을 기뻐함으로 정오의 빛처럼 빛나는 인생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