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5: 시편 134편

지난 10월부터 시작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열다섯 편의 시편 나눔이 오늘로 마무리됩니다. 주보와 함께 드린 <예배에 올라오는 마음가짐>을 성경책 앞이나 책상 등에 붙여놓고 주일이 다가올 때마다 한 번씩 읽고 예배를 준비하시면 좋겠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는 환난 중에 성전에 올라오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말씀(시편120편)으로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백성이 가서는 안 되는 게달과 메섹에 머물렀습니다. 그곳에 머물러 있는 것 자체가 그릇된 일이었음을 회개하면서 성전에 올라왔습니다. 그 이후로 14편의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는 하나님 백성의 삶의 현장,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 옛날부터 계속된 마음의 짐과 상처 등 하나님 백성의 신앙과 삶을 있는 그대로 노래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마지막은 하나님을 향해서 송축하는 찬양입니다. 세상의 장소인 게달과 메섹으로 시작해서 주님께서 계시는 시온 즉 예루살렘 성전으로 끝을 맺습니다. 무엇보다 마지막 노래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유진 피터슨은 본문을 해설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복을 받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 궂은 날이든 맑은 날이든, 좋은 땅에서든 나쁜 땅에서든 은혜를 경험하며 믿음의 여정을 가는 사람들은 송축하는 일에 익숙하다.” 유진 피터슨의 말대로 은혜를 경험하면 세상살이에 여유가 생기고 자신의 삶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될 것입니다. 어떤 일이 생겨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꿋꿋하게 헤쳐 나갈 것입니다. 일이 잘 풀려도 교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신 결과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은혜로 사는 그리스도인은 책임지는 인생을 삽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은 물론 이웃과의 관계, 세상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갖고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부여하신 사명이기에 – 이 세상 누구도 자신의 인생을 대신할 수 없음을 알기에 – 매사에 성실하게 임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삶을 대하고 마음 깊은 곳에 평안과 감사가 있습니다. 어떤 인생길을 걸어가든지 하나님께 영광이 되길 간구합니다. 주님을 송축하는 삶입니다.

 

시편 134편에서 밤에 성전에 서 있는 사람들은 성전을 지키는 레위인일 가능성이 큽니다. 밤에 성전을 지키는 것이 지루하고 힘이 들지만, 이들은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했습니다. 또는 긴 여정을 지나서 밤에 성전에 도착한 순례객일 수 있습니다. 몸은 피곤하지만, 성전에 와서 찬양하니 저절로 손이 올라갑니다. 실제로 인생의 밤을 사는 순례자일 수도 있는데, 성전에서 기쁨을 회복했습니다. 성전에 올라오는 우리의 발길을 주님께서 축복하시고 평생동안 하나님 계시는 성전을 향해서 손을 들고 그곳으로 나가기 원합니다.-河-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4: 시편 133편

지난주에는 애써서 찾은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에 모셔 온 다윗의 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가 자신의 성 예루살렘에 들어올 때 옷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춤을 추었습니다. 하나님을 모신 자의 기쁨이었습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의 특징을 기쁨과 감사라고 알려줍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입니다. 밖에서 들어오는 기쁨이 아니라 안에서 샘솟는 기쁨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신의 마음과 삶에 들어오셨다는 것 자체가 감사입니다. 멈추지 않고 죽음의 길로 치닫던 인생의 궤도를 바꿔서 영원한 생명의 길로 돌아섰다는 것이 감사입니다.

 

오늘 살펴볼 시편 133편도 춤을 출 듯이 기쁜 분위기로 시작합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 주의 백성들이 함께하는 예배가 얼마나 기쁘고 아름다운 일인지 찬양하고 있습니다. 공동체 속에서 느끼는 기쁨이고 감사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한13:35).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멀리 있는 가족이나 친형제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이 사촌처럼 가깝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한 교회에서 주님을 예배하고, 교회를 세우고 성도의 교제를 나누는 것도 같은 기쁨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주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백성이 되었으니 서로 형제와 자매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습니다. 따라서 시편 133편의 기쁨은 공동체 속에서 경험하는 하나님 자녀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공동체는 성령 충만합니다. 기름이 머리부터 옷 깃까지 흘러내립니다. 여기서 기름은 풍성함, 능력 그리고 은혜의 상징입니다. 옛날 이스라엘에서는 제사장이나 왕을 세울 때 머리에 기름을 흘러 넘치게 부었습니다. 아론은 모세의 형으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제사장이었습니다. 모세가 아론을 제사장으로 기름 부을 때 임했던 기쁨이 성전에 올라온 모든 백성에게 흘러가길 기도하는 것입니다.

 

헐몬 산은 해발 2,700미터쯤 되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높은 산입니다. 아침이 되면 헐몬 산에 이슬이 흠뻑 내립니다. 그 이슬이 이스라엘의 모든 산을 적셔줍니다. 물이 귀한 이스라엘에 날마다 내리는 새벽 이슬은 생명수입니다. 교회 안에 이슬같은 생명의 은혜가 소리 없이 내리길 기대합니다. 우리 모두 영생의 복을 향해서 함께 걸어가는 신앙의 순례자가 되기 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 기뻐하시는 공동체로 자라길 원합니다.-河-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3: 시편 132편

지난 시간에 살펴본 시편 131편과 오늘 132편은 다윗과 관련된 말씀입니다. 다윗은 양을 치는 목자로서 행복한 소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자신의 일상을 즐기면서 감당하지 못할 큰일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고, 자신이 늘 연습하던 물맷돌을 갖고 골리앗을 넘어뜨릴 정도의 믿음과 용기를 갖고 있었습니다.

 

10여 년 동안 광야를 배회하면서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을 피해 도망자의 삶을 살았지만 나이 서른에 이스라엘 왕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다윗 같은 왕이 없을 정도로 승승장구했습니다. 하지만 최고의 자리에 올랐을 때, 신하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면서 그의 인생은 또 다른 광야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다윗은 하나님을 잊지 않았습니다. 죄를 짓고 벌을 받으면서도 하나님 품으로 달려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쓰러져가는 자신의 인생을 다시 세워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132편은 성전에 올라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이 겪었던 어려움을 기억하면서 부른 노래입니다. 개역 개정에서 “겸손”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에는 고난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다윗의 삶에 드리운 고난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한 그의 믿음을 노래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지낼 때 그들과 함께했던 하나님의 임재 상징 법궤를 찾아서 예루살렘에 모셔 오고 싶었습니다. 다윗은 밤낮없이 쉬지 않고 법궤를 찾아다녔습니다. 그 길이 쉽지 않았지만 그것을 찾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추구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런 다윗의 열심이 그를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법궤를 찾은 다윗은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고 하나님의 법궤를 영원히 모시기로 작정합니다. 하나님께서도 다윗과 함께하시고 그의 후손을 왕으로 삼으시고, 예루살렘 성에 풍족한 먹거리와 복을 내리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비록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지만, 변함없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추구한 다윗의 믿음은 후손들에게도 귀감이 되었습니다. 백성들도 다윗의 믿음을 닮고 싶었을 것입니다.

 

시편 132편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추구하는 다윗의 열심을 보여줍니다. 그는 이스라엘과 함께하셨던 하나님 능력의 상징인 법궤를 찾기 위해서 과거로 돌아갔고, 하나님을 지금 자신이 있는 곳에 모셨고, 장차 성전을 지으려는 꿈을 꾸었습니다.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과거를 새로 구축했고 미래를 바라보았습니다. 우리 역시 지나온 발자취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장차 펼쳐질 앞날을 꿈꾸기 원합니다.-河-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2: 시편 131편

지난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순절은 부활절 전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을 가리킵니다. 초대교회부터 시작된 절기로 예수님의 부활을 준비하는 기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부활절에 세례받을 성도들이 신앙과 삶을 주님께 조율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사순절 기간에는 신앙 훈련에 힘썼습니다. 일년 가운데 10분의 1을 경건하게 살려는 전통입니다. 기도와 말씀 때로는 금식을 동반하면서 마음과 몸을 하나님께 집중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깊이 묵상하고 그 은혜 속에 들어가길 소원했습니다. 이웃을 섬기고 선행을 베풀면서 몸으로 신앙을 실천했습니다.

 

올 해도 사순절 기간을 보내면서 참빛 식구들의 신앙과 삶이 주님께 가까이 가고, 마음과 영이 맑아지고 주님을 닮아 가시길 바랍니다. 또한 사순절 기간을 보내면서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삶 한 가운데서 꼭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오늘부터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마지막 네 편의 말씀을 차례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작년 말에 열 한 편의 시편을 통해서 하나님을 예배하러 오는 우리의 마음을 점검했고, 함께 드리는 공동체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 지, 예배 가운데 만나는 하나님에 대해서 살펴보고 묵상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세상에서 살다가 주님께 오는 발걸음이 감사가 넘치고 가벼울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무거워서 억지로 주님께 올 수도 있습니다. 상황이 어떠든지 성전에 올라오는 그 순간이 감사하고 그 발걸음이 믿음인 것을 배웠습니다.

 

오늘 살펴볼 시편 131편에는 다윗의 시라는 표제어가 붙어 있습니다. 영국의 설교가 찰스 스펄전은 오늘 본문을 시편 속의 진주라고 불렀습니다. 그 정도로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우선 오늘 본문은 하나님 백성이 세상 속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지 알려줍니다. 첫째로, 다윗은 성전에 올라오면서 교만을 버렸다고 고백합니다. 교만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보다 앞서려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길 바라는 욕심입니다. 둘째로 거만한 길에서 돌아섰습니다. 거만함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자랑하고 이웃을 자기 뜻대로 통제하려는 태도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자기 능력이나 처지를 넘어서는 일을 추구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입니다. 교만함과 거만함을 다스린 사람의 최종적인 고백입니다.

 

시편 131편이 이스라엘 최고의 왕인 다윗의 고백이기에 더욱 깊이 다가옵니다. 이처럼 다윗은 성전에 올라오면서 자신과 세상 속에서의 삶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만을 의지하겠다고 고백하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할렐루야!  -河-

흩어지는 교회 (2)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그리스도인을 두고 하늘나라 시민권을 소유했다고 알려줍니다(빌3:20). 로마가 세상을 통치하던 시대에 로마 시민권은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고 사도 바울 자신도 전도여행을 하면서 로마 시민권의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시민권에 비할 수 없는 하나님 나라 시민권을 갖고 있다고 깨우쳐줍니다.

 

사도 바울의 가르침대로 우리는 두 가지 시민권을 갖고 삽니다. 하나는 이 세상 국가에 속하면서 얻게 된 시민권입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세상 국가의 시민권입니다. 동시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됩니다. 바울은 이것을 세상의 시민권과 비교해서 하늘나라 시민권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바울은 또한 그리스도인을 두고 하나님 나라 대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고후5:20). 미국에 파견된 한국 대사가 한국을 대표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이 세상에 알려지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찾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대사는 파견된 국가에서 본국을 위해서 일합니다. 만약에 대사로 파견되어서 대사의 일은 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잔치를 하고 대사관 안에서만 활동한다면 본국에서 파견한 대사의 임무를 올바로 실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대사는 밖에 나가서 활동해야 합니다. 파견된 국가와 협력하고 그들에게 자신의 나라를 소개해야 합니다. 또한 그곳에 살고 있는 자국민을 보호하고 도와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라는 지위와 대사라는 임무를 생각하면 왜 우리가 세상 속으로 흩어져야 하는 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만 활동하고 우리끼리 좋아한다면 그것은 대사의 임무를 실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밖인 세상 속에서 각자에게 맡겨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로 모이는 것이 시작이라면 세상으로 흩어지는 것은 모임의 목적이고 종착점이라고 지난 주에 말씀드렸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슴에 품고 세상으로 흩어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4장속의 예수님처럼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소개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복음을 전할 목적으로 사람들에게 접근하거나 그들을 조종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언제든지 복음을 전할 준비를 하면서 이웃을 섬기고 삶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교회 문을 나서는 순간 우리 각자가 교회임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흩어진 주의 백성으로 맡겨진 거룩한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기 원합니다. -河-

흩어지는 교회 (1)

교회(敎會)에 대한 한자어의 의미는 “가르치는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말 그대로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에 대해서 가르치고 배우는 모임입니다. 교회에 대한 헬라어 “에클레시아”도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교회가 신약시대부터 시작되었지만, 구약시대에도 “카할”이라는 히브리어를 통해서 하나님 백성들의 모임이 존재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알려주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이 임할 것을 기다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로부터 열흘 정도 지나고 오순절이 되자 약속하신 성령이 사도들이 모여서 기도하던 마가의 다락방에 임했습니다. 성령을 받은 베드로가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니 수천 명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이때부터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초대교인들은 각 가정에서 모였고, 성전에서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사도들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날마다 모여서 떡을 떼며 자신들이 믿는 신앙을 함께 나눴습니다. 어떤 이들은 재산을 팔아서 제자들 앞에 갖다 놓고, 필요에 따라 나누는 놀라운 일도 벌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성령의 역사가 임하니 믿는 자의 숫자가 날마다 늘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예루살렘 교회에 박해가 찾아왔습니다. 일곱 집사 가운데 한 명인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특별히 아끼셨던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도 헤롯에 의해서 죽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커다란 박해가 일어나자 베드로를 비롯한 주요 사도들 외에는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디아스포라>가 된 것입니다. 흩어진 성도들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민들레 홀씨가 사방으로 흩어져서 봄철이 되면 온 잔디밭을 노란 꽃으로 수놓듯이 성도들이 가는 곳마다 복음이 전해지고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령이 임하면서 예루살렘부터 시작된 복음이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땅끝까지 전파된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박해는 성도들을 사방으로 흩어지게 했고 예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교회는 흩어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로 모이는 목적은 결국 흩어져서 각자의 자리에서 또 하나의 교회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흩어지는 교회를 지향합니다. 주일예배로 모여서 함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지친 마음에 위로받고 다시 세상에서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세상으로 흩어져서 가정과 일터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갑니다. 참빛 식구들이 가는 곳에 그리스도의 복음도 함께 가서 그곳에 씨가 뿌려지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전파되길 원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