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갑 족속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 아침 묵상에서

예레미야 35장의 레갑 족속을 만났습니다.

 

레갑 족속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습니다.

레갑은 모세의 장인이 속했던 겐 족속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지만, 가나안 땅에 거주했습니다.

 

레갑의 아들 요나답(여호나답)이 성경에 나옵니다.

엘리야가 바알을 섬기던 이스라엘 왕 아합 가문을 심판하도록

예후를 기름 부어 세웠는데

예후가 레갑의 아들 요나답을 동역자로 불렀습니다(왕하10:15-17).

 

요나답은

예후의 초대에 기꺼이 응합니다.

 

2.

예레미야 35장에 의하면

레갑 족속은 바빌론 느부갓네살 왕이 침입하자

예루살렘에 옮겨와서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그들의 조상 요나답의 명령대로

200여년 동안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않고,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소유하지 않고

집도 짓지 않고 평생을 장막에서 살았습니다.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유목민으로 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예루살렘에 잠시 이주해서 살고있는

레갑 족속을 성전으로 초대해서

그들에게 포도주를 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 말씀대로 했더니

레갑 사람들이 자신들은 조상 요나답의 명령을 따라서

절대로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않는다고 강력히 거부합니다.

 

하나님께서 레갑 족속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을 내동댕이친 이스라엘 백성을

따끔하게 교훈하시려는 의도였습니다.

 

레갑 족속은

조상의 명령도 목숨 걸고 지키는데

이스라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냐는 하나님의 탄식입니다.

 

3.

지금도 전해 내려오는 전통을

그대로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미국 동부와 중서부에 많이 있는 아미쉬들이 대표적입니다.

전기는 물론 문명의 이기를 거부한 채

자신들 만의 생활방식을 고수합니다.

 

헨리 나우웬이 활동했던 라르쉬(방주the ark) 공동체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생활하는 전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삶은 물론 물질과 재능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부루더호프 공동체도 있습니다.

 

오래된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

자신들의 신앙과 생활방식을 유지하는 현대판 레갑 족속인 셈입니다.

 

이런 공동체를 통해서

혹시 세속에 물들어 있는 기독교 공동체와

기독교인들이 도전을 받습니다.

 

4.

우리에게도 레갑의 전통이 필요합니다.

 

우리 참빛교회만 갖고 있는 전통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계속 계승하고 발전시킬 전통을 만들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축복입니다.

 

가정 별로도 레갑의 전통을 세워가는 겁니다.

자신의 가정만이 간직하는 레갑의 전통입니다.

 

우리 개인의 신앙과 삶에도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끝까지 간직하려는 자신만의 레갑 전통을 갖고 있다면

그것만으로 근사한 기독교인이 될 것입니다.

 

정신 차리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끝까지 간직하고 싶은 레갑의 신앙을 꼭 만들기 원합니다.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앞에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예레 35:19)

Jonadab the son of Rechab shall never lack a man to stand before me.(Jer 35:19)

 

하나님,

우리 교회, 우리 가정, 개인마다

시대와 상관없이 변하지 않는 레갑의 전통을 세우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9. 24이-메일 목회 서신)

 

 

예수님의 손길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에는

6개월 동안 묵혀 놓았던

<예수님 우리 예수님>이라는 말씀을 마저 나눴습니다.

 

마태복음 8장과 9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적을 차례로 살펴보는 연속 설교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5-7장)을 통해서 구약의 모세 율법을 뛰어넘는

새로운 계명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두 장에서

산상수훈을 선포하신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기적을 통해서 증명하셨습니다.

 

2.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로

맹인 두 사람이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치면서

집요하게 쫓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맞아 주십니다.

보이지 않는 눈에 ‘손을 대시면서’

“너희 믿음대로 되라”고 말씀하시니

맹인들의 눈이 밝아져 보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나누면서

예수님의 손길에 주목했습니다.

 

예수님 정도면

굳이 맹인들의 눈을 만지지 않으시고

말씀하심으로 그들의 눈을 뜨게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맹인들의 눈을 만지셨습니다.

 

3.

맹인만이 아닙니다.

산상수훈 이후에 행하신 첫 번째 기적에서

예수님은 나병 환자의 몸을 만지셨습니다.

나병은 접촉을 통해서 옮깁니다.

나병 자체도 부정했지만, 부정한 나병 환자를 만지는 것은 절대 금기 사항입니다.

예수님은 나병 환자를 만지시면서 그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죽은 관리의 딸을 손을 잡아 일으키셨습니다.

죽은 상태에 있는 것도 부정했습니다.

구약의 율법에서 생명이 없는 것을 만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관리의 딸을 만지시면서

“달리다굼/소녀야 일어나라” 말씀하고 살려 주셨습니다.

 

3.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에

우리는 거리두기(distancing)라는 말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가까운 친지를 만나는 것도 조심스러울 정도이니

낯선 사람과 악수하던 것은 아주 옛날 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예수님의 손길이 특별했습니다.

 

예수님은 부정한 나병 환자도, 죽은 소녀도

그리고 앞을 못 보는 맹인들도 만지셨습니다.

 

말씀을 나누면서

예수님께서 우리 참빛 식구들도 만져주시길 기도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누군가의 손길이 그리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주님의 손길을 다시 한번 구합니다.

예수님께서 참빛 식구들을 꼭 안아 주시고

손을 잡아 일으켜 주시고, 함께 걸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가족 안에서 서로에게 예수님의 손길을 나누고,

몸으로는 떨어져도, 마음으로는  친지들과 이웃들에게

예수님의 손길을 전하기 원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마태 9:29)

Then he touched their eyes, saying,

“According to your faith be it done to you.”(Mt 9:29)

 

하나님,

참빛 식구들이

예수님의 손길을 깊이 느끼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9. 17이-메일 목회 서신)

 

 

기도하는 삶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7주 동안

시편 77편을 갖고

2020년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어려움을 맞아서

기도의 자리로 나온 시편 기자는

밤에도 손을 들고 하나님과 씨름했습니다.

 

지체되는 기도 응답을 두고

행여나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셨는지,

베푸실 은혜를 잊으셨는지

하나님께 질문하고 은혜를 구했습니다.

 

이렇게 시편 전반부는

어려움 한가운데서 하나님께 드린

개인 탄식시였습니다.

 

2.

시편 기자가 결국 하나님을 만납니다 (10절)

기도 응답을 넘어서 진정한 기도의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그리고 시편 77편의 후반부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빌론의 마르둑은 물론 그 어떤 신보다

크고 위대하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속량(구원)을 구했습니다.

 

바다에 아니 폭풍 속에서도 곧게 길을 내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주의 인도를 구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으니

시편 77편은 상황의 변화에 상관없이

소망의 빛을 바라는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3.

기도의 끝(열매)은 단지 기도 응답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서 우리 자신이 변화되는데 있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만나고

더 깊은 신앙의 길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기도가 중요합니다.

 

4.

팬데믹을 맞아서

우리가 있는 곳이 기도처가 되었습니다.

 

지난 설교에서 말씀드렸듯이

교회에 모여서만 기도하는 것이 아님을

코로나바이러스가 일깨워주었습니다.

 

기도는 삶입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도가 영혼의 호흡이라는 말도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도

기도가 삶이 되었을 때 가능합니다.

 

팬데믹을 맞아서

삶의 기도를 더욱더 연습하고 몸에 익히기 원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기도가 먼저 나오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을 진행하고 기도로 마무리하기 원합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무슨 상황에서도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연결되는

기도의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2021년, 내년에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눌 때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지금보다 훨씬 밝아지길 소망합니다.

 

이것이 바로 나의 아픔입니다. 나의 약함입니다.

그런데 지존자의 오른손이  변화시켰습니다.(시편 77:10)

This is my sorrow/sickness. The right hand of the Most High changed (Ps 77:10)

 

하나님,

오늘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9. 10이-메일 목회 서신)

숨마 쿰 라우데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번에

기적의 해라는 뜻의 라틴어
<안누스 미라빌리스>를 소개했습니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이

전염병으로 고향에 머물던 2년을

기적의 해로 장식했다는 일화도 소개했습니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새로운 일상을 사는 2020년을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안누스 미라빌리스>로 만들길 소망했습니다.

 

2.

미국 대학에서 최우등으로 졸업하면

<숨마 쿰 라우데 Summa cum Laude >라는 타이틀을 얻습니다.

평생 이력서에 쓸 수 있는 최고의 명예입니다.

 

<숨마  쿰 라우데> 역시 “최고의 찬사로”라는 뜻의 라틴어입니다.

“숨마”는 최정상을 뜻합니다. 영어 summit이 생각납니다.

“쿰”은 전치사로 “라우데”와 함께 “찬사로”라는 뜻입니다.

 

졸업식에서

<숨마 쿰 라우데>로 졸업하면 얼마나 큰 명예이겠습니까?

하지만 모든 사람일 최우등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성적순으로 줄을 세워서

맨 앞에 있는 몇 사람에게만 주는 상이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상대 평가입니다.

 

3.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를 기억합니다.

 

주인은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이나 두 달란트 받은 종이나

그들이 열심히 일해서 갑절로 남겼을 때 똑같이 칭찬했습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마태 25:21)

 

세상 방식대로 하면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이 <숨마 쿰 라우데>가 되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최선을 다한 두 명의 종에게 똑같은 찬사를 보내셨습니다.

두 사람 모두 <숨마 쿰 라우데>인 셈입니다.

 

4.

세상은 팬데믹이 유행인 와중에도

끊임없이 줄을 세워서 누군가를 평가합니다.

 

팬데믹이 끝나면

우리 사회의 격차는 모든 면에서 더 커질 것같습니다.

 

모두 다 같이 겪는 팬데믹보다

이 상황에서도 격차가 생기고,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게 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곁눈질하면서 인생을 살면

무한 경쟁, 무한 욕망에 빠질 것입니다.

그것은 기독교인의 바람직한 삶의 태도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우리가 목표할 것은

“잘 하였도다”라는 하나님의 찬사뿐입니다.

 

하나님의 찬사를 기대하면서

하루하루 일상의 삶을 살아갑시다.

 

하나님 안에 있으면

우리 모두 <숨마 쿰 라우데>입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마 25:21)

Well done, good and faithful servant.(Mt 25:21)

 

하나님,

참빛 식구들을 마음껏 칭찬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9. 3이-메일 목회 서신)

북극곰 살리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우리 지역이 산불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베이 지역만 해도 수십 건의 크고 작은 산불이 났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샌프란의 경우, 9월에 한 번 닥치는 인디언 썸머 외에는

도시 전체가 냉장고처럼 선선한 것이 특징입니다.

여름에도 히터를 틀어야 할 정도로 춥습니다.

그런데 보름 전쯤 90도가 넘는 더위가 찾아왔습니다.

건기인 8월에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도 내렸습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몸살을 앓고 있는데

더위, 천둥 번개, 산불까지 우리 마음을 심란하게 만듭니다.

 

미국 동부에 허리케인 로라가 상륙해서

커다란 폭풍우가 예상됩니다.

 

한국에서도

건물이 반쯤 잠길 정도의 폭우를

동반한 장마가 길게 이어졌습니다.

태풍도 찾아왔습니다.

 

북극과 남극의 얼음이 녹아 내리고 있습니다.

캐나다에 있던 5천 년 된 만년설이 녹고 있다는 소식

남극의 얼음이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리는 광경까지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80년 후인 2100년이 되면 북극에 얼음이 녹아서

북극곰이 멸종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습니다.

 

2.

1951년부터 1980년까지 지구 온도를 기준 삼아서

지구의 평균 온도를 15도로 보는데

지난 10년 동안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평균기온이 2도 이상 높아지면,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상승하고

바닷가에 가까운 도시는 물에 잠길 수 있답니다.

 

이 모든 것이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한 지구 온난화의 결과입니다.

지역적으로 폭우가 내리고, 가뭄이 찾아오고

폭염은 물론 예측 못 할 생태계의 변화가 생깁니다.

 

스웨덴의 십 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쿤베리는

어른들이 손을 놓고 있으니,

장차 지구에서 살아갈 십 대가 나서야 한다면서

환경운동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중국,

일 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 1위인 미국,

– 세계를 주도하는 나라들이 지구온난화의 주범입니다.

 

이미 늦었다는 비관론도 있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마음으로

지구 살리기에 온 인류가 앞장서야 합니다.

그래야 장차 이 땅에서 살아갈 후손들에게 건강한 지구를 물려줄 수 있습니다.

 

정신 차려서 북극곰을 살려내야 합니다.

 

3.

지구는 우리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만드셔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후손들이 살아갈 생활 터전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선물을 소중하게 간직하기 원합니다.

 

이 일에 앞장서는 지도자들이 생기고

우리가 그들을 후원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조심하면서

고온으로 아파하는 지구를 살려야겠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1:31)

God saw everything that he had made, and behold, it was very good (Gen 1:31)

 

하나님,

지구를 살리는데

개인과 모든 나라가 힘을 합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8. 27이-메일 목회 서신)

행복점 찾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주일에 살펴보는 시편 77편 말씀대로

하나님을 만난 후 변화된 삶은

하나님 손길의 ‘경이로움’을 경험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경이로움(His wonders),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하나님 안에서 경험하는 깜짝 놀랄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렙니다.

 

그동안 함께 읽었듯이

시편 77편에서 시인의 삶은 여간 어렵지 않았습니다.

밤에도 손을 들고 기도하고

기도해도 안정은커녕 불안함과 한숨이 나오는 현실입니다.

 

그래도 사람의 위로까지 마다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질문하고 사정하면서

그 어려운 시간을 견뎠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약함과 슬픔을 인정하고

지존자의 오른손이 행하신 변화를 경험하면서

말 그대로 터닝 포인트를 경험했습니다.

 

이렇게 시편 77편은 10절을 중심으로

전과 후가 나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전반부가 하나님과 씨름하는 고통의 시간이었다면

후반부는 하나님의 경이와 하신 일을 고백하고 찬양하는

감사의 시간입니다.

 

이전에는 옛일을 기억하면 불안했는데

이제는 옛일을 기억하니 감사와 찬양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이 생각납니다.

 

2.

저도

팬데믹 기간은 물론

그 이전의 옛날을 기억해 보았습니다.

 

힘들었던 일이 먼저 생각났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시간을 예상해도 마음이 밝아지지 않고

여전히 어두운 먹구름이 몰려오는 듯했습니다.

 

교회가 코로나바이러스의 온상지가 되었다는

조국의 뉴스에 한숨이 나왔습니다.

 

시편 77편의 터닝포인트를 경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시편 말씀처럼 전과 후가 완전히 갈리는 것도 아닙니다.

그만큼 우리의 현실이 녹록지 않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옛일을 기억해 보았습니다.

 

예전의 행복했던 순간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했던 날들

주의 경이로움이 넘쳤던 순간들

교인들, 이웃들, 가족들과 더불어 행복했던 기억을 생각했습니다.

 

지나온 <행복점>들을 찾아서

지금 이곳으로 가지고 오니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는 찬송이 나왔습니다.

 

3.

주의 경이로움을 생각하는 주간입니다.

 

그 비결 가운데 하나가

예전의 행복했던 순간을 찾아내서

그 속에 깃든 주의 손길, 주님의 기적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행복점 찾기>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때의 하나님께서 지금도 함께하시고

앞으로도 우리의 앞길을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리이다 (시편77:11)

I will remember the deeds of the LORD;

yes, I will remember your wonders of old.(Ps 77:11)

 

하나님,

참빛 식구들의 마음 속에 기쁨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8. 20이-메일 목회 서신)

끊을 수 없느니라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 큐티 본문이

로마서 8장이었습니다.

로마서에서 보석같이 빛나는 최고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창조 세계와 양심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데 스스로 거부했습니다.

모세 율법을 알고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신

이스라엘도 율법에 걸려 넘어가서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인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내려 오시고

인류의 모든 죄를 한 몸에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

여전히 죄라는 악한 세력이 이곳 저곳에 침투해서

우리를 넘어뜨립니다.

 

바울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라고 탄식할 만큼

죄의 유혹이 큽니다.

마음은 원이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때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죄로 인해서 힘겨워하는 우리를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모든 죄에서 해방시키신 것입니다.

 

잠시 잠깐 죄에 넘어갈 수는 있어도

죄가 절대로 우리를  주관하지 못합니다.

 

2.

그래도 우리는 연약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고

그  뜻대로 기도하고 실천하는데 취약합니다.

 

그때도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서 탄식하면서 기도해 주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 거칠 것이 없고,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분리시킬 세력이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칼이나 전쟁도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도

벌거벗겨진다고 해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 놓을 것이 없습니다.

 

3.

분리불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애완견의 경우 주인과 떨어지면

몹시 불안해하고 이상하게 행동합니다.

 

우리도 누군가 또는 어떤 상황에서 분리되면

안전의 욕구가 파괴되면서 불안에 휩싸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가장 힘든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으신 하나님 부재(absence)입니다.

침묵하시는 하나님, 숨어 버리신 하나님!

하나님과 단절이 가장 힘든 순간입니다.

 

그런데 로마서 8장은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지존자의 오른손이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하나님과 우리를 단절시킬

그 어떤 세력도 없음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주의 임재(presence)를 매순간 느끼기 원합니다.

 

우리를 우리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없으리라 (롬 8:39)

Anything else in all creation, will not be able to separate us

from the love of God in Christ Jesus our Lord. (Rom 8:39)

 

하나님,

결단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와 끝까지 함께하시는 주의 사랑에 감사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8. 13이-메일 목회 서신)

 

 

 

 

 

 

 

안누스 미라빌리스

좋은 아침입니다.

 

1.

“안누스 미라빌리스 (Annus Mirabilis)”라는 라틴어 표현이 있습니다.

<기적의 해(a year of miracle)>라는 뜻입니다.

놀라운 해(wonderful year)

경이로운 해(amazing year)라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했다는

아이작 뉴턴에게

1666년이 바로 기적의 해였습니다.

 

그때도 런던에 전염병이 돌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런던을 떠나서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우리처럼 자택 격리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뉴턴도 캐임브리지 대학이 문을 닫으면서

가족이 있는 시골로 내려갔는데,

전염병을 피해서 고향에서 지내던 2년이

그에게 <안누스 미라빌리스, 기적의 해>였습니다.

 

고향에 갇혀 지내는 동안

프리즘의 원리, 중력의 법칙 등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뉴턴이 고향집 자기 방에서 누워있을 때,

유리창의 작은 구멍으로 빛이 들어와서 반사되는 것을 보고

프리즘의 원리를 발견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심리적으로 답답하고 미래가 꽉- 막힌 팬데믹이

연구에 대한 뉴턴의 열정을 막지 못했습니다.

아니, 더 큰 업적을 내는 기적의 해가 되었습니다.

 

2.

<실락원(Paradise Lost)>이라는 유명한 작품을 남긴

존 밀턴 역시 1626년 대학 1학년 때

가렛톳 패스트(bubonic plague)라고 불리는 전염병이 돌아서

학교가 문을 닫고 런던에 있는 자택에 격리되었습니다.

 

밀턴은 그때 친구를 위한 시를 썼는데

훗날 밀턴의 문학에 커다란 기초를 놓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밀턴의 인생은 역경의 연속이었습니다.

그의 최고 역작 <실락원>을 쓸 때는 눈이 보이지 않아서

그의 딸에게 불러주며 대서사시를 완성했습니다.

 

밀턴은 실락원 속에서

비록 낙원은 잃었지만

힘을 합쳐서 다시 시작하려는 가능성의 문도 열어 두었습니다.

 

 

3.

팬데믹(pandemic)이라는 말은

“모든 사람/all people”이라는 뜻의 그리스 말에서 왔습니다.

 

에피데믹(Epidemic)은

전염병 같은 재앙이 국지적으로 위로 솟아나듯 갑자기 발생하는 것이고

팬데믹은 모든 사람이 함께 겪는 재난을 가리킵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기약 없는 팬데믹을 살고 있습니다.

한편 생각하면 빛이 없는 깜깜한 어둠입니다.

여행은 물론 예배와 모임의 자유까지 빼앗긴 포로 생활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의기소침하지 말고

<안누스 미라빌리스>를 살았던 선배들을 생각하기 원합니다.

 

뉴턴이나 밀턴에 비교할 수 없어도

각자 있는 자리에서 팬데믹 기간을

“기적의 해”로 만드는 것이지요.

 

갇혀 있지만 나름대로 창조적인 시간(카이로스)을 살고

훗날 교회와 세상이 다시 회복되었을 때

서로 나눌 각자의 이야기를 많이 만들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2020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는 요즘

하나님과의 이야기로

우리 신앙과 삶이 비옥해 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안누스 미라빌리스 Annus Mirabilis!!!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편 36:9)

For with you is the fountain of life; in your light do we see light.(Ps 36:9)

 

하나님,

참빛 식구들의 마음에 삶에 빛을 비추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8. 6이-메일 목회 서신)

 

세 가지 규칙

좋은 아침입니다.

 

1.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무려 70년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소망 가운데 기다렸습니다.

 

동시에

예루살렘이 왜 멸망했는지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고,

신앙을 다시 추스르면서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구약성경 상당 부분의 편집을 마쳤습니다.

 

느헤미야 8장에 의하면

에스라가 율법 책을 읽는 장면이 나오는데

많은 학자들이 모세 오경이 정경으로 완성된 때라고 봅니다.

 

2.

우리는 포로로 잡혀가지 않았지만

넉 달 이상을 집에서 격리되어 살고 있습니다.

 

이 기간에

말씀과 기도를 소홀히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특히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으니

기도에 깨어있는 시간이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깊이 경험하기 원합니다.

 

또한 각자의 삶을 돌아보고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고 설계할 수 있다면 더욱더 좋겠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세 가지 단순한 규칙(three-simple rules)을 제시했습니다.

 

가능하면 (if we could),

1)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면 안 됩니다 (No harm)

2) 선을 행해야 합니다 (Do good)

3)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해야 합니다 (Stay in love with God).

 

그리스도인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거나 방해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훼방꾼이 되거나, 일을 그르치는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선한 생각을 하고 선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가 선하고 바르게 작동하는데 참여하는 것입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1)는 말씀도 생각납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때 이 모든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충분히 경험하고, 그 사랑을 흘려 보내는 것입니다.

 

간단한 규칙이라고 했지만,

이 세 가지 규칙을 마음에 두고 살아간다면,

팬데믹 기간은 물론 그 이후의 삶이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3.

집에 포로로 잡혀 있는 듯한

지루하고 답답한 일상입니다.

하지만 이 시간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보내기 원합니다.

 

No harm, Do good, Stay in love with God.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9)

And let us not grow weary of doing good,

for in due season we will reap, if we do not give up.(Gal 6:9)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을 닮고 선한 길을 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7. 30이-메일 목회 서신)

교회 앞

좋은 아침입니다.

 

1.

예배로 모이지 못한지

넉 달이 넘어갑니다.

 

교회는 잘 있습니다.

예배실은 물론

아래층 친교실도 상쾌하도록 가끔 청소하고,

뒤꼍 아이들 방에 먼지가 덮이지 않도록 걸레로 닦아 줍니다.

 

그래도 우리 교인들의 발길이 뜸하니

거미들이 이곳저곳에 줄을 치고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에클레시아 (부름받은 성도들의 모임)>라는 말 그대로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성도임을 실감합니다.

 

2.

우리 교회는

흩어지는 교회를 강조했습니다.

 

교회 모임을 많이 만들지 않았습니다.

주일 공동체 예배에 집중하고

나머지 6일 동안은 가정과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기로 약속했습니다.

 

대신,

주일에 모여서 함께 예배하고 친교 하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세상에서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기를 기대했습니다.

 

코로나가 발생하면서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교회가 흩어지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모임이 적은 우리 교회도 힘든데

일주일 내내 모임이 많던 교회들은 꽤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코로나가

교회를 흩어 놓는 것에도 뜻이 있겠지요.

 

 

3.

교회에 흐뭇한 일도 생겼습니다.

 

우리가 예배로 모이지 못하는 동안

교회 앞 정원에는 예전에 없던 과일들이 많이 열렸습니다.

 

가지가 휠 정도로 사과가 열리고

우체통 옆에는 배, 자두, 사과가 다닥다닥 붙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할 정도입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자연이 살아난다고 하더니

그 말이 우리 교회 앞 과일나무에도 임한 것입니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교회 앞 도로가 한적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거리에 서 있는 자동차들이 발진할 때 매연이 많이 나와서

길가 나무며 꽃이 죽곤 했는데 올해는 교통편이 훨씬 줄었습니다.

 

샌프란 공기도 좋아졌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아침에 내리는 이슬이 맑은 공기와 합쳐서

나무들이 많은 열매를 맺도록 도운 것 같습니다.

 

4.

세상일이 모두 나쁠 수는 없습니다.

 

교회들이 너무 모임을 강조하니

팬데믹 기간 동안 저절로 흩어지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공기가 맑아지면서

도심의 과일 나무도 신이 나서 열매를 맺습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자꾸 좋지 않은 생각을 하게 되고

부정적인 뉴스나 소식에 민감하게 됩니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세상 한 가운데서 여전히 선하고 진실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포착하기 원합니다.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길이 되심을 믿고

오늘 하루도 감사로 시작합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Rejoice always, pray without ceasing,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for this is the will of God in Christ Jesus for you.(1Thes 5:16-18)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에게 생명과 길이 되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7. 23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