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로

좋은 아침입니다.

 

1.

3월 중순부터

집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는데

우리는 집에서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넉 달 가까이 지났고

예전의 일상으로의 회복이 멀기만 하니 조바심이 납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집에서 지내다가

다른 스트레스 때문에 병이 날 것 같다는 얘기도 듣습니다.

 

초기에는 새로운 일상을 살아가는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그것을 듣고 보면서 웃으며 견뎠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길어지면서,  지루하고, 답답하고, 막막합니다.

 

아마, 사람들의 분노(스트레스)지수를 측정하면

꽤 높을 것 같습니다.

 

2.

우리라고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저는 아무리 늦어도

6월에는 예배로 모일 줄 알았는데

8월 야외 예배는 물론 참빛 식구들이 모두 모여서

마음껏 찬양하고, 친교실에서 점심을 함께할 날이

과연 찾아올지 막연합니다.

 

엊그제 임원회에서

새로운 일상을 기정사실화하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사역을 생각해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물론, 교회가 모이지 못하면 반쪽짜리 사역이 되기 쉽습니다.

분명한 한계가 있지만,

맞닥뜨린 상황을 선용하고 이것도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리기 원합니다.

 

3.

우리 교회 기도 시간은 밤 10시입니다.

 

초저녁잠이 많으신 권사님들은 8시나 9시에

그렇지 않으시면 10시를 구별하고 기도하십니다.

그 힘으로 우리 교회가 세워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월요일 10시에

Zoom으로 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10시에 <zoom 기도실>에 입장해서 채팅창에 띄운 기도 제목과

개인 기도 제목을 갖고 15분 기도하고

짧게 <센터링 침묵기도>를 갖는 식입니다.

 

30분 남짓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감사했습니다. 힘이 났습니다.

 

지난주일 설교에서 언급했듯이

집에 있으면서도 기도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영혼의 호흡인 기도 시간이 줄어드니

삶의 호흡이 가빠지고, 영적으로 답답함을 느낍니다.

 

팬데믹으로 힘겨운 일상을 뚫고 나가는 힘은 기도라고 믿습니다.

기도의 자리로 나갑시다. 다시 기본(베이직)을 챙깁시다.

 

어떻게든 시간을 내고, 골방을 확보해서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이 상황을 헤쳐 나갑시다.

 

기도에 힘이 있음을 경험하는 이 시간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요일5:14)

This is the confidence that we have toward him,

that if we ask anything according to his will he hears us.(1John 5:14)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이 각자의 소리로 기도할 때 꼭 들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7. 16이-메일 목회 서신)

 

 

 

 

 

 

피난처

좋은 아침입니다.

 

1.

어제 아침에 읽은 시편 142편이

계속 입술과 마음에서 맴돕니다.

 

“다윗이 굴에 있을 때>에 지은 시편이라는

표제어 때문입니다.

 

다윗은 10년 넘게

사울을 피해서 광야를 헤맸습니다.

자신이 죽인 골리앗 장수의 나라 블레셋까지 가서

침을 흘리고 미친 척하면서 살아남았습니다.

 

들로 산으로 피해 다녀야 했습니다.

그때, 동굴이 다윗의 피난처가 되었습니다.

 

2.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시편 142:1:1).

 

“내가 소리 내어”라는 표현이

큰 소리로 다가옵니다.

다윗의 기도 소리가 동굴을 꽉- 채웠을 것입니다.

자신의 기도 소리를 들으면서 끊임없이 기도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팬데믹을 맞아서

집에 갇혀(?) 살아갑니다.

이렇게 거주와 이동의 자유를 박탈당할 줄 누가 알았을까요!

 

큰 소리 내서 기도하고

마음껏 찬양한 지가 까마득합니다.

주일 예배가 그리운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비록 예배로 모이지 못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큰 소리로 기도하고 찬양하시면 어떨까요: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 도다.

 

3.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5절).

 

사울에게 쫓겨 다니는 다윗에게

동굴 만한 피난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동굴은 피난처이자

자칫 적들에게 들킨다면 꼼짝없이 잡히는 막다른 골목입니다.

 

그것을 알고 있는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진정한 피난처임을 고백합니다: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새로운 일상을 사는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피난처가 되심을 믿습니다.

 

앞길이 불안한 상황 속에서

우리 마음이 심히 상합니다.

그때도 주님께서 우리의 위로가 되심을 믿습니다.

 

힘들수록 주님께 외쳐 기도하고

지칠수록 주님을 피난처 삼기 원합니다.

 

오늘 하루,

주님 앞에서

마음껏 외쳐 기도하고 찬양하는 시간을 꼭 가집시다!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시편 142:6)

Attend to my cry,

for I am brought very low!  (Psalms 142:6)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을 주님 품에 안아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7. 9 이-메일 목회 서신)

양선

좋은 아침입니다.

 

1.

주일에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오래 참음, 자비와 양선을 살펴보았습니다.

 

양선(goodness)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고

그것을 선한 일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양선은 친절(kindness)로 번역할 수 있는 자비와

서로 사촌지간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자비와 양선은 이웃을 향하기에

세상에서 빛이 되라는 예수님 말씀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6)

 

한 주간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예수님 말씀처럼

은밀하게 양선을 실천하시길 부탁드렸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자신만 아는 선행입니다.

 

이 다음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과 더불어 사연을 이야기 하면서

하나님 손을 잡고 춤을 출 수 있는 선행이길 바랬습니다.

 

2.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잘 믿을지 고민할 때,

죄, 구속, 은혜, 화목 등등 교리적인 것들에 집중하기 쉽습니다.

물론 우리 신앙을 튼튼하게 만드는 교리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기독교가 무엇인가”라는 교리적인 영역보다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과 더불어

그리스도인의 삶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해졌습니다.

 

예수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을 닮고

이웃들에게 양선을 베풀며 사는 것입니다.

 

이 다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듣고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잔치에 참여해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며 춤을 출 것을 꿈꾸는 삶입니다.

상상만 해도 신이 납니다.

 

이처럼 신나게 신앙의 길을 걷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3.

2020년도 반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팬데믹으로 3개월 이상을 집에서 지낸 특별한 일상이었습니다.

 

여전히 남은 반년의 세상과 삶이 불확실하지만,

새로운 일상 속에서

먼 훗날 하나님과 더불어 나눌 이야기 보따리를

풍성하게 채우기 원합니다.

 

특별히, 하나님 앞에서 풀어놓을 <양선> 주머니가

차고 넘치는 참빛 식구들의 인생길이 되길 기도하겠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스바냐 3:17)

The LORD your God is in your midst, a mighty one who will save;

he will rejoice over you with gladness; he will quiet you by his love;

he will exult over you with loud singing.(Zephania 3:17)

 

하나님 아버지

주님과 더불어 춤을 출 때를 상상하면서

오늘 하루도 양선의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7.2 이-메일 목회 서신)

신명기 신앙

좋은 아침입니다.

 

1.

신명기 읽기를 마쳤습니다.

 

신명기의 주제는 어떤 면에서 매우 단순하고 단호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만 섬기면

모든 일에 형통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거꾸로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섬기면

예비된 복이 저주로 뒤바뀔 것입니다.

 

이 과정이 지체 없이 곧바로 이뤄지니

말씀을 읽으면서 마음은 시원하지만,

실제 생활로 돌아오면 말씀과 실제 사이에 커다란 간격을 발견합니다.

 

우리의 현실과 삶이

신명기 법칙처럼 단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신명기 말씀은

약속의 땅에서 새롭게 시작할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100% 완전한 기대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가나안 신을 섬겼습니다.

 

가나안 종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야훼 종교와 달리

황금으로 만든 황소를 섬기고

도덕을 떠나서 쾌락을 즐기도록 허락하고

철저하게 신전을 찾는 손님(?)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세의 애끓는 부탁을 송두리째 잊어버리고

가나안 신앙, 제국의 신앙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2.

팬데믹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

불확실성이 드리워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백신 개발에 목을 매고 있습니다.

그만큼 백신 개발이 중요합니다.

 

반면, 교회는

이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갈 힘이 되거나

빛을 비추는 등대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팬데믹의 온상지라는 오명을 쓰고 말았습니다.

 

교회를 비롯한 신앙이 해야 할 기능이 분명히 있을텐데

그것을 찾아보기 힘드니 아쉽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지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실지요?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생각과 삶은 어떠해야 할지요?

 

3.

다시 신명기 말씀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이라면

마음과 삶 한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시고,

팬데믹의 상황을 헤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평정심을 잃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며

기쁨의 환한 미소를 잃지 않는다면 더 없이 감사한 일입니다.

 

불확실한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과 소망으로 이어진다는 말씀(롬5:4)을 붙잡고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의 길을 걷기 원합니다.

 

신명기 말씀처럼 그 효력이 곧바로 나타나지 않아도

조바심 내지 말고

끈기를 갖고 세상에 임하실 하나님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것이 살길이라는

모세가 전해준 신명기 신앙을 마음에 품고

아무도 가지 않는 <뉴-노멀>을 사는 것입니다.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오늘의 일상을 살기 원합니다.

 

힘냅시다!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마음을 힘써 지키라 (신명기 4:9)

 

 

하나님 아버지

힘들수록

참빛 식구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6. 25이-메일 목회 서신)

 

 

기도 그 이후

좋은 아침입니다.

 

1.

팬데믹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기도하는 시간도 늘어납니다.

 

꼭  무릎 꿇고 기도하지 않아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삶 속에서 드리는 기도, 항상 기도하는 좋은 예입니다.

 

기도하고 나면 (특별히 매우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곧바로 응답하실 것이라는 기대가 생깁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공을 넘겨드렸으니

신속한 응답이 오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입니다.

 

그러다 보니 기도가 응답될 때까지

조바심을 내면서 기다립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기도하는 대신에 자신의 힘으로 더 열심히 노력할 겁니다.

원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운이 없었다고 털털 털고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맡겼다는 생각에서 노력을 덜 하거나,

행여나 기도 응답이 안 되면 하나님은 물론 신앙에 의문을 제기하고

뒤끝이 오랫동안 지속되거나 더 크게 실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기도하는 우리가 조심할 부분입니다.

 

 

2.

기도한 후에 응답되기 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기도 = 응답> 이라는 공식에 조급한 마음을 갖지 않고

끝까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정(情)이 깊어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것을 요구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요구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기도한 것과 그 응답 여부에만 집착하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아니라

비즈니스에서 보는 거래(deal)가 되기 쉽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도 아니고 기도의 본뜻도 아닙니다.

 

기도 제목을 발판 삼아서

하나님과 친밀히 그리고 개인적으로

대화하고 사귐의 시간을 갖는다면 더욱 좋습니다.

 

 

3.

누구나 기도하고 나면 응답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것도 빠른 응답을 원합니다. 솔직히 조바심이 납니다.

 

기도 후에 찾아오는 초조함은

신앙은 물론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조심해야 할 점입니다.

 

기도 후 밀려오는

조급증을 극복하기 원합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시편 62:1)

For God alone my soul waits in silence;

from him comes my salvation. (Psalms 62:1)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의 기도가 깊어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6. 18이-메일 목회 서신)

사로잡힘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주일 설교 서두에

일 년째 암 투병 중이신 목사님의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암이 찾아오면, 대부분 “암에 걸렸다”고 하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암에 걸려들고

그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에는 살리는 말이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이왕이면 살리는 말을 사용하고

기를 죽이고, 낙심을 불러오고,

행여나 부정적인 결과를 예측하는 말은 숨겨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전,

한국에서 중고등부를 가르칠 때,

온 종일 자신이 하는 말을 녹음해 보라고 제안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대로 실천한 아이는 없던 것 같습니다.

대신에 한 주간 자신의 말을 조심했을 것입니다.

 

말에 힘이 있습니다.

말한 대로 이뤄진다는 말도 거짓은 아닌 것 같습니다.

 

팬데믹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몸을 움직일 일이 줄어들면서

말이 많아지고 자신도 모르게 표현이 거칠어질 수 있습니다.

 

힘 있는 말,

격려하고 살리는 생명의 언어를 구사하길 바랍니다.

행여나 말로 인해서 우리의 삶이 무너져서는 안 됩니다.

 

2.

지난 석 달여 집에 갇혀 살았습니다.

마음대로 외출하지 못합니다.

친지들을 만날 수도 없습니다.

거주 이전의 자유를 박탈당한 것 같습니다.

 

구약성경의 이스라엘도

예루살렘이 멸망하면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70년 동안 유배 생활을 했습니다.

 

포로(captivity)입니다.

게다가 남의 나라에 잡혀간 유배(exile)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70년 바벨론 포로 동안

요즘 아침에 읽고 있는 구약성경 <신명기> 말씀을 기준으로

왜 예루살렘이 멸망할 수밖에 없었고

포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지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비록 포로로 갇힌 신세였지만

지나온 과거를 반추하고

결국 회복해 주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은

영적 부흥기였습니다.

 

학자들은 바벨론 포로기에

구약성경 대부분이 완성되었다고 봅니다.

 

 

3.

집에 머무는 것이 지루하고

같은 날의 반복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느슨해지고 게으를 수 있습니다.

 

행여나 마음이 힘들고 내려앉으며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듯 염려와 근심, 두려움과 낙심에 걸려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팬데믹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우리 내면을 돌아보고, 마음을 새롭게 하고

깜깜한 동굴 안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앉아 동굴 입구의 빛을 보면서

새로운 일상을 근사하게 살기 원합니다.

 

주일에 나누는 말씀처럼

하나님을 확실히 의지하고, 성령에 사로잡힌다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내가 이제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열심을 내어 야곱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며

이스라엘 족속에게 사랑을 베풀지라 (에스겔 39:25)

Now I will restore the fortunes of Jacob and have mercy on the whole house of Israel,

and I will be jealous for my holy name. (Ezekiel 39:25)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아닌 것에 사로잡힌 것이 있다면

성령의 능력으로 그것에서 해방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6. 11이-메일 목회 서신)

 

p.s.

–  저녁 10시는 참빛교회 기도 시간입니다. 기도 가운데 주의 부흥을 보게 하옵소서.

–  교회를 묵묵히 지키시는 어르신들이 영육간에 강건하게 하옵소서.

–  교회를 함께 세워나갈 청년들과 젊은 가정을 지속적으로 보내주옵소서.

–  진로를 놓고 기도하는 성도님들의 길을 열어 주옵소서.         

–  구제와 선교하려는 교회의 꿈이 성취됨을 보게 하옵소서.

–  부족함을 채우시는 주님을 보게 하소서.

     

 

세상 속에서 살아가시는 참빛 식구들께 보내는 서신입니다. 첨부한 주일 설교와 수요예배 교재를 읽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설교 용량이 큽니다. 아마 곧 지우셔야 할 겁니다. ^^

 

본 메일은 참빛 교회와 관련된 여러분께서도 함께 받으십니다. ^^ 

저희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면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혹시 수신을 원치 않으시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고맙습니다.^^

 

 

 

 

 

슬며시

좋은 아침입니다.

 

1.

코로나바이러스의 특징은

무증상 감염입니다.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 두기 없이

무심코 누군가와 이야기했을 때

상대방이 무증상 감염자였으면

여지없이 바이러스에 전염됩니다.

 

지역 감염이 많고

여느 바이러스와 달리

전 세계를 곤욕스럽게 하는 이유입니다.

 

2.

슬며시 찾아오는 바이러스는

나쁜 경우이지만,

슬며시 선한 일을 하거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슬그머니 좋은 일이 닥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앙도 그중에 하나입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오순절 성령강림처럼

강력한 성령의 능력으로 180도 변화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눈에 보이지 않게 신앙이 자랍니다.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도 마찬가지였습니다(요한복음 3장).

 

유대인의 공회원이면 엄청난 지위였습니다.

그런데 밤중에 슬며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거듭남(born-again)에 대한 말씀과

바람처럼 성령으로 난 사람의 특징,

하나뿐인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까지 많은 말씀을 들었지만,

니고데모가 어떤 반응을 보이며 돌아갔는지 성경은 알려주지 않습니다.

 

3.

니고데모는 요한복음 8장에 잠시 등장합니다.

예루살렘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놓고 논쟁을 벌일 때

니고데모가 슬며시 나서서

예수님의 행적을 보고 천천히 판단하자고 제안합니다.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는 비난을 듣지만

니고데모의 반응은 성경에 없습니다.

 

니고데모가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같은 공회원인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을 장사지낼 때입니다.

 

3년을 쫓아다니던 제자들은 모두 흩어졌지만

밤중에 슬며시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는

향품을 갖고 와서 예수님의 장례를 도왔습니다.

 

니고데모의 마음에 예수님이 계셨다는 증거입니다.

세상의 지위로 인해서 드러낼 수 없었지만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온 분임을 믿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니고데모는

익명의 그리스도인으로 3년여 지냈습니다.

밤중에 만났던 예수님을 멀리서 지켜보고,

슬며시 들어온 성령의 바람, 믿음을 키웠습니다.

 

4.

막연한 팬데믹을 살고 있습니다.

밖으로 드러나는 일보다

슬며시 진행되는 일이 훨씬 많습니다.

 

오순절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기대합니다.

동시에 슬며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슬며시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실

성령 하나님을 찬양하고 의지합니다.

 

이 어려운 시기, 참빛 식구들께

슬며시 생기는 선한 일이 많아지길 기도하겠습니다.

 

힘을 냅시다.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요3:21)

Whoever does what is true comes to the light,

so that it may be clearly seen that his deeds have been carried out in God (John 3:21)

 

 

하나님 아버지

슬며시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 하나님, 진리를 따라 빛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6. 4 이-메일 목회 서신)

 

 

미소

좋은 아침입니다.

 

1.
코로나 사태 초기에
미국 사람들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습니다.
마스크쓰는 것을 터부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미국에서 마스크를 쓰는 경우는
사업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지
일상생활에서 마스크를 쓰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팬데믹이 오면서
마스크 착용이 의무가 되었습니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코스코를 비롯한 마켓이나
은행과 같은 공공장소에 입장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예배가 시작되어도
당분간 6ft 거리 두기와
마스크 착용이 의무가 될 것 같습니다.

 

마스크를 착용하면
바이러스 전파를 훨씬 줄일 수 있다니
우리 자신은 물론 이웃의 안전을 위해서 당연히 협조해야 합니다.

 

지난 몇 달 새 세상이 참 많이 변했습니다.

 

2.
그런데
마스크를 쓰면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바로 “미소”입니다.

 

이전에는 눈만 마주쳐도 미소로 인사했습니다.

 

지금도 습관적으로 마스크 안에서 미소를 짓지만
서로 알아볼 수 없습니다.
조금 허전하고 삭막합니다.

 

백신이 나오고 치료제가 개발될 때까지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면
모두의 얼굴에서 퍼지는 미소를
꽤 오랫동안 못 볼 것 같습니다.

 

3.
미소를 되찾아 올 때까지
다른 방법으로 이웃들과 소통해야겠습니다.
눈인사를 하거나
손으로 반가움을 표시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다가
우리의 마음도 멀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한
마스크를 착용하는 동안
내면의 미소를 개발해야겠습니다.

 

당장 떠오르는 내면의 미소는
이웃을 향한 배려,
섬김과 따뜻한 돌봄,
특별히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해주는 것,
이웃을 위한 간절한 기도 등입니다.

 

예전의 정상적인 삶을 기대하면서
새로운 노멀을 살고 있듯이
예전의 미소를 기대하면서
새로운 미소를 개발하면 좋겠습니다.

 

참빛 식구들 안에
새로운 미소가 꽃을 피우길 바랍니다.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신명기 24:21)
When you gather the grapes of your vineyard, you shall not strip it afterward.
It shall be for the sojourner, the fatherless, and the widow.(Deut 24:21)

 

하나님 아버지
힘들수록 참빛 식구들의 미소가
세상으로 퍼져나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5. 28 이-메일 목회 서신)

A-type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 아침 묵상은

전쟁에 나가서도 무조건 폭력을 사용해서 적을 공격하지 말고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네가 어떤 성읍으로 나아가서 치려 때에는

성읍에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 (신명기 20:10)

 

 

전쟁은

양측의 분노가 극대화된 상황이어서 이겨야 살아남습니다.

그런데 우선 화평을 선언하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평화(샬롬)”의 하나님이심을 알려줍니다.

 

저는 말씀을 읽고

<오늘 하루 한 번도 화내지 않기>라는 적용을 제시했습니다.

 

“오늘 하루”라는 말에서 안심이 되셨을 것입니다.

“화내지 않기”도 마음만 굳게 먹으면 가능한 일입니다.

“한 번도”라는 말에는 부담을 느끼셨을 수 있습니다.

 

지난 화요일 말씀을

우리 참빛 식구들께서 얼마나 실천하셨는지 궁금합니다.

 

2.

악하고 공정하지 못한 세상이나

그릇된 행위나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에게 분출하는

의로운 분노가 있습니다.

 

그런데 일상에서 화를 내는 것은

대부분 자기 절제와 관련 있습니다.

 

화를 참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습관이 되면 <A-Type>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A = Anger 입니다.

 

또한, 화를 내는 것은 우리 자아(ego)와 연관됩니다.

자기 마음대로 세상 또는 상황이 돌아가지 않으면 화가 납니다.

내가 우선이고, 내가 최고의 자리에 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화가 납니다.

내가 대접을 받고, 내가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도 화를 참기 어렵습니다.

– 이 모든 것이 ‘자아’가 강하다는 증거입니다.

 

이처럼 대부분의 분노는 “내려놓지 못한 자아”

또는 “성숙하지 못한 자아”에서 비롯됩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자리를 내려놓지 않고,

자신을 비우지 않고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면

33년을 사시면서 엄청 화를 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탁하듯이

“자기를 버리고” “섬기는 자”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자아(ego)는 영(zero)이었습니다.

 

그러니 제자들의 부족함, 엉뚱함, 배신을 참아내실 수 있었고

호시탐탐 예수님을 시험하던 종교지도자들을 여유 있게 따돌리시고

십자가로 향하는 길목에서 받은 조롱, 멸시, 아픔과 죽음을 감내하셨습니다.

 

3.

팬데믹 상황이 계속되니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막연한 자택 격리가 쉽지 않고

온 가족이 작은 공간에서 온종일 삼시 세끼를 해결하며 지내기도 어렵습니다.

 

자칫 각자의 자아( ego) 가 한 번에 분출되면

집안이 전쟁터가 될 수 있습니다.

 

이유없이 마음이 불편하고

자기에게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런 때일 수록 자신을 돌아보고

성령의 열매 “절제( self-control)”를 연습하며

하나님 사랑의 “A-type”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기 원합니다.

여기서 A = Agape 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2-23)

But the fruit of the Spirit is love, joy, peace, patience, kindness, goodness, faithfulness,

gentleness, self-control; against such things there is no law.(Gal 5:22-23)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안에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풍성히 열매 맺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5. 21 이-메일 목회 서신)

믿음으로 사는 것

좋은 아침입니다.

 

1.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아직 백신 개발이나 사회적 면역 소식은 막연합니다.

 

계속 망가지는 경제와 소상공인들을 생각하면

지금처럼 경제를 꽁꽁 묶어둘 수도 없으니

뚜렷한 해법 없이 딜레마에 빠진 듯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별것 아닌 바이러스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주 까다로운 바이러스였습니다.

 

2.

자택 격리를 시작한 지

두 달 가까이 다가옵니다.

“새로운 일상”에 적응될 법도 한데

시간이 갈수록 예전의 일상이 그립습니다.

 

온라인으로 드리는 예배도,

가정에서 드리는 예배도 어딘가 부족합니다.

 

참빛 식구들이 보고 싶고 그립습니다.

함께 모여서 예배하고,

친교실에서 시끌벅적 담소를 나누며 친교하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얼른 보고 싶습니다.

 

행여나

경제가 더 망가져서

우리에게도 큰 파도가 밀려온다면 어떻게 할 지에 대한

불안감도 느낍니다.

 

3.

지난 주일에는

부활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의 “기다림”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기다림의 끝이 있음을 믿고

그 끝을 갖고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한마음으로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기다림이 소극적인 대처라면

현재의 일에 충실하고

앞일을 예견하고 준비하는 것은 팬데믹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적극적인 대처입니다.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믿는 사람답게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성경에 수없이 등장하는 “두려워 말라”는 말씀을 꼭 붙들고

현재의 상황을 대면하고, 필요한 일을 해내는 것입니다.

 

당장 눈앞에 어려운 일을

믿음으로 대처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각자의 자리에서 깊이 생각하고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4.

예수 믿는 사람답게

생각하고, 마음먹고, 행동하기 원합니다.

 

어려운 시기 한 가운데 서서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은 물론 세상에 펼쳐 보이는 것입니다.

 

힘들 때 임하는 하나님의 손길을 기대합니다.

깊은 골짜기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한 주간, 말 그대로 믿음으로 삽시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Fear not, for I am with you; be not dismayed, for I am your God;

I will strengthen you, I will help you,I will uphold you with my righteous right hand.(Isa 41:10)

 

 

하나님 아버지

어려운 시기를 ‘실제로’ 믿음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5. 14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