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

좋은 아침입니다.

1.

미국 대학 농구 지역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선수가 ESPN과 인터뷰하면서

두 가지 인상 깊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첫째는,

자신들은 잘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시즌 초에 약팀에게 지면서

코치는 물론 선수들까지 싸잡아서 비난을 받았지만

팀이 점점 좋아지더니

결국 훌륭한 성적으로 우승했습니다.

팀이 잘 준비되어서 우승까지 왔다고

선수들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잘 준비해 놓으면

언젠가 열매가 있겠지요.

열매가 없어도

최선을 다했으니 자신에게 아쉬움이 적을 것입니다.

둘째는,

코치가 자신에게 아주 큰 영감(huge inspiration)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포지션별로 경기를 철저하게 분석했고

코트 안에 들어가면 자신 있게 경기할 수 있도록 격려했으며

무엇보다 큰 영감을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영감(inspiration)이라는 말이 크게 들렸습니다.

동시에

요즘 새벽기도회에서 읽고 있는 욥기가 생각났습니다.

고난 가운데 있던 욥은

친구들로부터 위로와 영감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친구들은 욥을 깍아 내렸고 정죄했습니다.

그들에게서 영감 또는 친구를 향한 사랑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가장 아쉽고 안타까운 장면입니다.

2.

성경에서 영감(inspiration)은

하나님의 숨결(God-breathed)이라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숨결이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깃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 말씀으로 받고 읽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우리 안에도 들어와 계십니다.

성령 하나님이야말로 “영감”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읽고

영감을 주시는 성령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삽니다.

그러니 감사할 수밖에요!

3.

인터뷰한 농구선수는

코치가 자신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목사인 제가

참빛 식구들께 영감을 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가슴설레는 목회가 되겠지요!

저뿐만 아니라

참빛 식구들께서

서로 서로에게 “큰 영감(huge inspiration)”을 주는 관계가 될 수 있다면

우리 교회는 정말 훌륭한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영감은

깊은 기도와 말씀 묵상에서 나옵니다.

아니, 서로를 진실하게 사랑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면

그 안에 하나님의 영감이 저절로 임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영감을 구합니다.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공동체가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열왕기하 2:9)

Elijah said to Elisha, “Ask what I shall do for you, before I am taken from you.” And Elisha said, “Please let there be a double portion of your spirit on me.”(2Kings 2:9)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 위에

성령의 영감이 갑절로 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3.3 이-메일 목회 서신)

오히려

좋은 아침입니다.

1.

이번 주부터 새롭게 시작된

6주간 새벽기도회에서

구약성경 욥기를 계속 읽고 있습니다.

욥과 세 친구들과의 논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신학적인 이론으로 철저하게 무장한 엘리바스는

욥이 고난받는 것은 그의 죄 때문이라고 단정합니다.

의인은 절대로 고난받을 수 없다는 자신의 신앙을 고집합니다.

이에 대한 욥의 대답을 오늘 아침에 읽었습니다.

욥기 6장입니다.

욥은 자신의 괴로움이 바닷가의 모래보다 훨씬 무겁다고 밝힙니다.

고통이 워낙 심하다보니 자신도 경솔할 때가 있었지만

그래도 친구라면 위로를 해주어야지

죄를 지적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꾸짖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욥은 지금 위로와 격려가 필요합니다.

옆에서 함께 있어줄 동지가 필요하지,

이론적인 훈수나 가르침은 욥도 모두 알고 있고

그런 교훈을 들을 정도로 몸이 편하지 않습니다.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냐 (욥6:25)

How forceful are upright words!

But what does reproof from you reprove? (Job 6:25)

그렇습니다.

어려움을 겪는 이웃을 정죄하고

특히 신앙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은 상처에 초를 붓는 격입니다.

곁에 있어주고

조용히 기도해 주고

함께 울어주는 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2.

재산과 자녀를 잃고

온 몸에 종기가 나서 기왓장으로 긁어야 할 상황인 욥이

6장 10절에서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욥 6:10)

But it is still my consolation, and I rejoice in unsparing pain,

that I have not denied the words of the Holy One. (Job 6:10)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오히려”라는 표현 앞에서 한 참을 멈췄습니다.

지금 욥은 위로를 받을 상황이 아닌데

고난이 그에게 “오히려” 위로가 되고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었다는 고백입니다.

물론 욥기가 진행되면서 욥도 사람인지라

감정의 기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속에서

“오히려”라는 말씀이 깊이 다가왔습니다.

신앙의 힘이 아니면 불가능한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앞에 여러가지 일들이 생깁니다.

특별히 힘든 상황이 펼쳐지거나

예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을 때,

“오히려”라는 말씀이 우리들 안에서도 작동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번,

현재 여러분들 상황에

“오히려”를 대입해 보시고

그 속에서 위로와 기쁨이 임하는 경험을 하시길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께

“오히려”의 말씀이 임하고

그것으로 인해서 위로받고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2.25 이-메일 목회 서신)

욥기가 없었더라면

좋은 아침입니다.

1.

새벽기도회에서

구약성경 욥기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새벽마다 한장씩 읽어온 것이

욥기까지 왔으니

보슬비에 옷이 젖는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구약성경의 욥기는

구약 전체의 메시지에서 옆으로 살짝 비껴 서 있습니다.

모세오경 특히 신명기로 대표되는 구약성경에서는

의인은 복을 받고

악인은 벌을 받는다는 인과응보의 신앙이 주류를 이룹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라살고

의인에 길에 서 있으면

하늘의 복이 임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반대로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고

죄인의 길로 가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명쾌하지만

우리네 인생이나 어그러진 세상을 설명하기에는

조금 단순할 수 있습니다.

2.

욥기로 오면

상황이 바뀝니다.

욥은 당대의 의인이었습니다.

부유했습니다.

열 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신명기 말씀 대로 축복받은 의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고난이 닥쳤습니다.

자녀들과 재산이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사라지고,

온 몸에 종기가 나서 기왓장으로 긁어야 했습니다.

오죽했으면

그의 아내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하나님을 예배했고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하나님과 사단이 내기를 하신 겁니다.

사단은 욥이 복을 받았으니 하나님을 경외하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까닭없이” 즉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할 사람은 세상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욥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을 것임을 믿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대표선수로 욥을 택하시고 인정하셨습니다.

욥은 하나님 말씀대로 잘 버텼습니다.

하나님의 믿음과 욥의 믿음이 만난 것입니다.

3.

욥기의 진수는 3장부터 이어지는

욥과 친구들의 논쟁입니다.

친구들의 신앙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과응보입니다.

욥이 죄를 지어서 고난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인과응보 신앙에 익숙하면

욥기를 읽으면서

친구들의 말에 빠져들 수도 있습니다.

욥은

까닭없이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의인의 고난입니다.

욥은 차근차근

또 때로는 감정에 격해서

친구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변호합니다.

고난 가운데 있던 욥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으로

욥기가 마무리됩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찾아오셨습니다.

폭풍 속에서 임하신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주이심을 밝히십니다.

욥은 재를 뒤짚어쓰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 42:5)

I had heard of you by the hearing of the ear, but now my eye sees you. (Job 42:5)

욥은

까닭없는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4.

욥기는 어렵고 생소합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구약성경의 주류 메시지에서 빗겨 있습니다.

하지만

욥기는 우리 인생은 물론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서 닥치는 고난을 두고 고민하게 만들고,

하나님 백성으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지 알려줍니다.

의인도 고난받을 수 있습니다.

까닭없이 고난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고난을 허락하시고

욥처럼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눈으로 보길 원하십니다.

신앙의 길은 고난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까닭없는 고난도 받아 들이고

고난 속에서 자신이 피조물임을 깨닫고

고난 속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욥기를 읽으면서

귀로만 듣던 말씀이

눈으로 보게 되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다면

아주 깊은 신앙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새벽기도회에 많이 나오지 못하시지만

사순절을 보내면서

욥기 말씀을 (쉬운 성경으로) 차근차근 읽으시고 묵상하시면서

신앙과 삶을 욥기에 비춰서 재조정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 42:5)

I had heard of you by the hearing of the ear, but now my eye sees you. (Job 42:5)

하나님 아버지,

사순절을 보내는 참빛 식구들께서

욥이 만났던 하나님을 만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2.18 이-메일 목회 서신)

D-13

좋은 아침입니다.

1.

올해가

13일 남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매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365일이라는 시간을 인생의 저금통장에 넣어주십니다.

365일은 그해에 모두 써야 합니다.

한 해가 지나면 저절로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일 년을 365일로 계산한 달력을 사용한 이래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부여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사용하는 모습은

사람마다 다양합니다.

시간을 사용해서 나온 결과물도

각기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맘때가 되면

한 해를 돌아보게 마련입니다.

아쉬움이 제일 먼저 밀려옵니다.

“이렇게 해야 했는데”

“저렇게 해야 했는데”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뭅니다.

하지만

어떤 길을 걸어가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아쉬움은 남게 마련입니다.

특히 세상의 잣대를 사용하거나

남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아쉬움은 더 크게 밀려올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판가름납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올 한 해 어떤 마음으로/어떤 태도로 살았는지

세심하게 살피실 것입니다.

“착하고 충성된 삶”이 하나님께서 보시는 기준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삶을 살았다면,

처음과 끝이 동일하게 성실한 삶을 살았다면

아니 그렇게 살려고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했다면

결과에 상관없이 합격입니다.

3.

올해 남은 13일도

하나님 앞에서 착하고 충성 되게 살기 원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고

“예수님의 옷을 입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13일이 지나면 2016년 새해가 됩니다.

그러고보니 새해까지 D-13입니다.

성탄과 송구영신의 계절에

착하고 충성스러운 태도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앞길을 미리 예비해 놓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새해를 맞기 원합니다.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잠언21:31)

The horse is made ready for the day of battle,

but the victory belongs to the Lord. (Proverbs 21:31)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새해를 맞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2.17 이-메일 목회서신)

꿈 같은 인생

좋은 아침입니다.

1.

한 달에 한 번씩

존 웨슬리를 전공하신 신학교 은사님을 모시고

우리 지역 목사님 몇 분들과 함께

웨슬리 설교를 읽는 모임을 갖습니다.

웨슬리가 1700년대 인물이어서

그의 설교가 구식인 면이 있지만

의외로 오늘 날 우리에게 도전을 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웨슬리는 의학이나 과학에도 정통해서

당시의 과학지식을 갖고 복음을 전하기도 했고,

영국의 경험론을 반박하면서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강조하고

동시에 지나친 열광주의 대신에 냉철한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무엇보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실 때

믿음이 견고해 지고,

그 힘으로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성화(거룩함 sanctification)를 강조했습니다.

연말이 되면

구세군에서 자선냅비를 갖고 구제금을 모금하는데

(구세군 자선냄비 전통이 샌프란에서 처음 시작되었답니다)

구세군 역시 웨슬리의 사회참여와 자선활동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2.

오늘 읽은 웨슬리의 설교 제목이

“꿈 같은 인생(Human life is dream)”이었습니다.

웨슬리는

우리의 인생을 꿈에 비유합니다.

우리가 현재 꿈속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꿈에서 깨는 순간은

이다음 하나님 앞에 설 때입니다.

그때 하나님을 믿는 우리 앞에

영원한 현실이 펼쳐질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꿈같이 허무할 수 있으니

세상 것들에 너무 연연해 하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웨슬리의 설교를 읽으면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꿈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세상의 삶에서 한 걸음 떨어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인생의 꿈이 끝나고 여러분이 깨었을 때 이 모든 것[영원한 세계에 있는 주님의 아름다움]이 나타난다면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이런 장면을 마음속으로 상상해 보십시오. 주님의 형상대로 새롭게 되어 깨어난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들은 진실로 견고하고, 타락하지 않으며, 시들지 않는 기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잠시 잠깐 멈춰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내려놓고

영원에 삶의 시간표를 맞춰보시기 바랍니다.

더불어

이왕 꿈 같은 인생이라면

주님 안에서 멋진 꿈을 꾸면서 새해를 맞기 원합니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골3:4)

When Christ who is your life appears,

then you also will appear with him in glory. (Colossian 3:4)

하나님 아버지,

몸과 마음이 바쁜 연말을 지내면서

하나님 백성으로 우리의 본문을 잊지 않게 하시고

주님과 함께 영광중에 나타날 소망을 간직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2.10 이-메일 목회서신)

다사다난

좋은 아침입니다.

1.

추수감사절은

1620년 미국에 도착한 청교도들이

첫해 수확을 하고 감사의 예배를 드린 것에서 유래했으니

40여 년 동안 지켜 온 미국의 가장 큰 명절입니다.

추수감사절 전날

백악관에서는 흥미로운 행사가 열립니다.

칠면조 한 마리를 풀어 주는

터키 사면식(turkey pardoning)입니다.

혹자는 링컨 대통령이,

혹자는트루먼 대통령, 케네디 대통령부터 시작했다고 하지만

이 행사를 정례화한 사람은

조지 부시 (아버지) 대통령이랍니다.

어제도 오바마 대통령이 두 딸과 함께

백악관에 뽑혀 온

터키를 사면해 주었습니다.

2.

해마다

약 4천5백만 마리의 터키가

추수감사절 식탁에 오릅니다.

정확한 유래는 설왕설래하지만

아마도 죽어가는 그 많은 터키를 위로하려는(?) 마음으로

백악관에서 한 마리 터키를 (사실은 후보까지 두 마리)

대표해서 살려주게 된 것 같습니다.

추수감사절 터키는 특정 농장에서 7월쯤 부화한 새끼들 가운데 응모해서

행사 기간 동안 순하게 있을 우량 터키를 선정합니다.

보통 몸무게가 40파운드를 넘고, 날개 길이가 6피트 이상입니다.

올해의 터키는

우리 지역 근처 모데스토(Modesto) 농장에서 길러졌습니다.

대통령 앞에 앉아 있던 터키가 “정직”이고

후보로 뒤에 있던 터키 이름은

“아베(Abe, 링컨 대통령의 별칭)였습니다.

백악관에서 실시한 트위터 공모에

캘리포니아 아이들이 많이 참여했고,

두 마리 터키를 선정하는 과정에도 아이들의 의견이 반영되었답니다.

사면된 터키들은

해마다 각기 다른 농장으로 옮겨져서 여생을 마감하는데

체중을 너무 불린 나머지 심장마비나 건강상의 이유로

이듬해 추수감사절까지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3.

대통령은

터키 사면식을 하면서 덕담을 하거나 조크를 합니다.

올해 오바마 대통령은

얼마 남지 않은 임기가 아쉬웠는지,

빨리 커 버린 딸을 보면서 흐뭇했는지,

아니면 흰색 터키를 보면서 하염없이 늘어난 자신의 흰머리를 생각했는지

다음과 같은 조크를 했답니다:

“터키는 날지 못하지만, 시간은 날아갑니다

(Time flies, even if turkeys don’t).”

오바마 대통령은 터키 사면식을

아주 달갑게 생각하는 편은 아닙니다.

왜 하는지 의미가 혼란스럽다는 식입니다.

그래도 전임 대통령들이 했으니 특유의 농담을 하면서

“정직”과 “아베”를 살려 준 것입니다.

4.

초등학생들이 올해의 터키에게

“정직”이라고 이름을 붙여준 것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정직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정상이 정상으로 여겨지고,

솔직히 정직하게 살면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두 눈을 가진 원숭이가

한 눈 가진 원숭이 마을에 가서

한눈을 감고 살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수요예배에서 배우는 잠언에서는

끊임없이 “정직”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솔직하게, 정직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바른 삶이라는 교훈입니다.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잠15:8)

The prayer of the upright is acceptable to him. (Proverbs 15:8)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합당이 여기시는 기도를 드리기 원합니다.

5.

그나저나

어제 사면을 받은 “아베”와 “정직”이

남은 생을 편안하게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참빛 식구들 모두

추수감사절 연휴를

감사와 평안 가운데 보내시고

주일에 기쁜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연휴동안 참빛 식구들께 쉼을 주시고

힘차게 새 달을 맞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1.26 이-메일 목회서신)

감사 일기

*좋은 아침이라는 인사를 생략했습니다. 어제 LA에서 일어난 총격사건과 샌프란 시내에서 경찰들이 범죄 용의자에게 가한 총격까지 안타까운 일들이 연일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을 위해서 기도하기 원합니다.

1.

10년 째 지역신문에

종교인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제 칼럼이 나가는 주가

매월 마지막 목요일이다보니

매년 추수감사절에 칼럼을 써야 합니다.

처음에는 추수감사절의 유래에 대한 글을 쓰고

해가 지나면서

추수감사절과 관련된 일화들을 소개했습니다.

특정 절기 때마다

매년 다르게 설교를 하는 것이나

관련된 글을 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새삼 깨닫습니다.

2.

올해 저는 <감사일기>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맞고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감사의 제목을 하루에 다섯 가지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또 감사의 마음을 가족이나 가까운 이웃들에게 표현하자는 주제였습니다.

칼럼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감사일기 쓰는 방법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감사일기는 구체적으로 기록해야 합니다. “좋은 아내, 좋은 가족”처럼 제목만 나열하면 감사일기가 무미건조해 지고 멀지 않아 일기장을 덮게 될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아내가 맛있는 김치찌개를 끓여주어서 감사했다” 또는 “밖에서 기분 상하는 일이 있었는데 집에 들어오자마자 딸아이가 달려와서 허그해 주어서 고마웠다”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써야 합니다.
두 번째는, 하루에 다섯 가지씩 감사의 이유를 찾아서 일기장에 적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다섯 가지를 찾기가 쉽지 않고, 매일 같이 비슷한 내용만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감사 제목을 찾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평소에 스쳐 지나가던 일들 속에서 감사의 제목을 찾아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일기장 밖으로 나가서 하루에 한 번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감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감사 전도사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감사가 습관이 되고, 성품에 녹아들어서 인격이 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올 한 해도 한 달 남짓 남았습니다. 추수감사절에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매일같이 감사일기를 쓰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면 좋겠습니다. 열 명의 문둥병자 가운데 한 명이 예수님께 왔듯이 적어도 일 년 중 마지막 한 달을 감사의 달로 만들어 보는 것입니다. (2015년 11월 26일 SF 한국일보 종교칼럼)”
3.

일기를 쓰는 것은

신앙은 물론 우리들 삶에 매우 유익합니다.

학창시절 숙제하듯이

일정한 형식과 길이를 갖추면서 일기를 쓸 필요는 없습니다.

짧은 메모식의 일기라도

매일이 아니라 일 주일에 두 세번 기록하는 일기라도

우리들 삶을 돌아보고, 감사하고,

하나님께 앞 길을 맡기는 영성일기를 쓰는 것은

우리의 삶과 신앙을 깊고 풍성하게 만듭니다.

올 해의 마지막 달을 지내면서

우리 마음과 생각이 복잡하고, 아쉬울 수 있지만

감사 일기를 통해서 마음이 부요해지고

한 해의 삶에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편 100편은 복음성가로도 알려진

대표적인 감사 시편입니다.

한 구 절 한 구절 곱씹으면서 읽어 봅시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Enter his gates with thanksgiving, and his courts with praise!

Give thanks to him; bless his name!

For the Lord is good; his steadfast love endures forever,

and his faithfulness to all generations.(Psalms 100:4-5)

하나님 아버지,

범사에 감사하라는 하나님 말씀대로

감사로 한 해를 마무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2.3 이-메일 목회서신)

터키 사면식

좋은 아침입니다.

1.

추수감사절은

1620년 미국에 도착한 청교도들이

첫해 수확을 하고 감사의 예배를 드린 것에서 유래했으니

40여 년 동안 지켜 온 미국의 가장 큰 명절입니다.

추수감사절 전날

백악관에서는 흥미로운 행사가 열립니다.

칠면조 한 마리를 풀어 주는

터키 사면식(turkey pardoning)입니다.

혹자는 링컨 대통령이,

혹자는트루먼 대통령, 케네디 대통령부터 시작했다고 하지만

이 행사를 정례화한 사람은

조지 부시 (아버지) 대통령이랍니다.

어제도 오바마 대통령이 두 딸과 함께

백악관에 뽑혀 온

터키를 사면해 주었습니다.

2.

해마다

약 4천5백만 마리의 터키가

추수감사절 식탁에 오릅니다.

정확한 유래는 설왕설래하지만

아마도 죽어가는 그 많은 터키를 위로하려는(?) 마음으로

백악관에서 한 마리 터키를 (사실은 후보까지 두 마리)

대표해서 살려주게 된 것 같습니다.

추수감사절 터키는 특정 농장에서 7월쯤 부화한 새끼들 가운데 응모해서

행사 기간 동안 순하게 있을 우량 터키를 선정합니다.

보통 몸무게가 40파운드를 넘고, 날개 길이가 6피트 이상입니다.

올해의 터키는

우리 지역 근처 모데스토(Modesto) 농장에서 길러졌습니다.

대통령 앞에 앉아 있던 터키가 “정직”이고

후보로 뒤에 있던 터키 이름은

“아베(Abe, 링컨 대통령의 별칭)였습니다.

백악관에서 실시한 트위터 공모에

캘리포니아 아이들이 많이 참여했고,

두 마리 터키를 선정하는 과정에도 아이들의 의견이 반영되었답니다.

사면된 터키들은

해마다 각기 다른 농장으로 옮겨져서 여생을 마감하는데

체중을 너무 불린 나머지 심장마비나 건강상의 이유로

이듬해 추수감사절까지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3.

대통령은

터키 사면식을 하면서 덕담을 하거나 조크를 합니다.

올해 오바마 대통령은

얼마 남지 않은 임기가 아쉬웠는지,

빨리 커 버린 딸을 보면서 흐뭇했는지,

아니면 흰색 터키를 보면서 하염없이 늘어난 자신의 흰머리를 생각했는지

다음과 같은 조크를 했답니다:

“터키는 날지 못하지만, 시간은 날아갑니다

(Time flies, even if turkeys don’t).”

오바마 대통령은 터키 사면식을

아주 달갑게 생각하는 편은 아닙니다.

왜 하는지 의미가 혼란스럽다는 식입니다.

그래도 전임 대통령들이 했으니 특유의 농담을 하면서

“정직”과 “아베”를 살려 준 것입니다.

4.

초등학생들이 올해의 터키에게

“정직”이라고 이름을 붙여준 것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정직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정상이 정상으로 여겨지고,

솔직히 정직하게 살면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두 눈을 가진 원숭이가

한 눈 가진 원숭이 마을에 가서

한눈을 감고 살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수요예배에서 배우는 잠언에서는

끊임없이 “정직”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솔직하게, 정직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바른 삶이라는 교훈입니다.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잠15:8)

The prayer of the upright is acceptable to him. (Proverbs 15:8)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합당이 여기시는 기도를 드리기 원합니다.

5.

그나저나

어제 사면을 받은 “아베”와 “정직”이

남은 생을 편안하게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참빛 식구들 모두

추수감사절 연휴를

감사와 평안 가운데 보내시고

주일에 기쁜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연휴동안 참빛 식구들께 쉼을 주시고

힘차게 새 달을 맞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1.26 이-메일 목회서신)

깔끔하게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아침 새벽 기도회에서는

역대하 27장을 읽었습니다.

하루에 한 장씩 성경을 함께 읽고

10분 내외로 말씀을 전하는 새벽기도회 시간에

본문 말씀을 모두 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4절과 5절까지 있는 찬송가를 불렀고

말씀도 자세히 전했건만 5분이 남았습니다.

오늘 본문인 역대하 27장이

단지 아홉 절이었기 때문입니다.

25세에 왕이 되어서

16년 간 남쪽 유다를 다스렸던 “요담”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웃시야는 정치를 잘했지만

성전에서 제사장의 일을 자신이 행하다가 그만

나병에 걸려서 남은 인생을 격리된 채 살았습니다.

그의 할아버지 아마샤 역시

처음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면서 영토를 확장했는데

에돔을 물리친 후에

에돔에 있는 신상을 갖고 와서 숭배하는 잘못을 범합니다.

나중에는 쿠데타가 일어나자 피난가서 살다가 그곳에서 죽었습니다.

아버지 웃시야나 할아버지 아마샤에 못지 않게

요담 역시 성전을 증축하고, 영토까지 확장하는 등

나름대로 나라를 잘 다스렸습니다.

그의 신앙과 통치가 끝까지 어긋나지도 않았습니다.

요담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바른 길을 걸었으므로 점점 강하여졌더라. (역대하 27:6)

So Jotham became mighty, because he ordered his ways before the Lord his God. (2Chronicles 27:6)

2.

요담에 대한 말씀을 읽으면서

보기좋게 정돈된 인생을 사는 것도 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을 길게 나열해서 보여주는 지루한 인생보다

아홉 구절로 단순하게 정리된

요약판 인생도 의미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4S로 표현하곤 합니다:

silent, simple, strong, sacrificial.

그렇습니다.

이제 한달여 남은 올 한해 우리의 삶이

단순하고(simple) 강력하게(strong) 마무리되길 원합니다.

거기에 하나님 앞에서의 조용함(silent)과

이웃을 향한 희생(sacrificial)이 더해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추수감사절을 앞 둔 참빛 식구들의 삶이

주님 앞에서 깔끔하게 정돈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1.19 이-메일 목회서신)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아침 다음 뉴스에 들어가 보니

한국의 한 개그맨이

불안장애(anxiety disorder)로 인해서

모든 활동을 잠시 중단한다는 기사가 떴습니다.

인기를 많이 얻었지만

그에 비례해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어느 날 갑자기 물거품처럼 인기가 사라질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인해서 무척 힘들어했답니다.

대중 앞에 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인기라는 것이 아침 안개와 같아서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습니다.

인기를 얻어서 꼭데기에 올라갈수록

내려감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더 올라갈 데가 없으니 결국 내려갈 일만 눈앞에 떠오르겠지요.

기사에는 비슷한 증상으로 고생하는

다른 인기 연예인들도 소개했습니다.

TV 앞에서는 활짝 웃고 있지만

뒤에서 괴로워하고 있을 그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안타까웠습니다.

2.

현대인들은 염려와 근심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삽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깊은 어둠이 계속될 것 같은 불안감,

일이 너무 잘 풀려도

혹시나 좋지 않은 일이 닥칠지 모른다는 염려,

갑자기 닥쳐오는 인생의 폭풍 등등

우리를 불안과 두려움으로 유인하는 요소들이 너무 많습니다.

남들과 비교하면서 느끼는

쓸데없는 경쟁의식도

불안과 초조함에 한몫을 합니다.

지난 설교에서

염려는 우리 안에 거한다고 했습니다 (dwelling care).

염려는 우리를 서서히 갉아먹는다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corroding care).

그래서 염려가 신앙의 적이라고 했습니다.

염려가 생기면 무엇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염려를 일으킨 바로 그 문제를 붙잡고 기도하길,

염려가 생기는 그 순간,

그 장소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부르시길 제안했습니다.

성경에

염려와 근심 그리고 두려움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

자주 등장합니다.

염려하지 말라

근심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 모두 명령입니다.

매우 강력한 명령입니다.

3.

우리의 삶이 쉽지 않습니다.

인기 연예인들의 정도는 아니어도

우리 안에 있는 염려와 불안이 불쑥불쑥 나타나서

마음과 삶을 휘저어 놓습니다.

솔직히 많이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가 마음에 품고 기도할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걱정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베드로전서 5:7)

Casting all your anxieties on him, because he cares for you.(1 Peter 5:7)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을 꼭 붙들어 주시고

삶의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함께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1.12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