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톨스토이의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시몬이라는 구두장이가 시골에서 아내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무척 가난해서 겨울이 되었지만, 아내에게 변변한 외투 하나도 선물할 수 없었습니다. 하루는 아내의 외투를 마련하기 위해서 도시에 나갔지만, 가진 돈으로 술만 마시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술에 취한 시몬이 집으로 돌아오는데 한 청년이 교회앞에 맨몸으로 쓰러져 있습니다. 청년이 옷도 걸치지 않은 맨몸으로 교회 앞에 쓰러져 있었다는 톨스토이의 묘사에서 당시 러시아 교회가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에 눈길을 주지 않았음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구두장이 시몬은 청년에게 다가가서 자신의 외투를 입히고 집으로 데리고 옵니다. 시몬의 아내는 자신이 갖고 싶었던 외투는 그만두고 어디서 거지같은 청년을 데리고 온 남편을 구박합니다. 하지만 선한 마음씨를 가진 구두장이 부부는 오갈 데 없는 청년을 보살펴주고, 자신들의 구둣방에서 보조하는 일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미가엘이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의 솜씨가 보통을 넘습니다. 어려운 구두도 척척 만들고 수선합니다.
하루는 시몬이 구두를 잘 만든다는 소문을 들은 한 부자가 하인과 함께 찾아왔습니다. 부자는 매우 비싼 가죽을 갖고 와서 까다로운 모양의 구두를 부탁했습니다. 만약에 부자의 요구대로 구두를 만들지 못하면 그를 감옥에 넣겠다고 겁을 주었습니다. 시몬은 두려웠지만, 미가엘의 솜씨를 믿고 부자의 주문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미가엘이 그 비싼 가죽을 다 오려서 구두가 아니라 죽은 사람이나 신을 법한 슬리퍼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가게 문이 열리고 부자의 하인이 헐레벌떡 들어오더니 주인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장화처럼 목이 긴 구두 대신 시신이 신는 슬리퍼를 부탁했습니다. 시몬은 깜짝 놀랐고 청년 미가엘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얼마 후에는 한 부인이 쌍둥이 아이를 데리고 구두를 맞추러 왔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다리를 절고 있었습니다. 부인이 자초지종을 얘기해 줍니다. 쌍둥이는 부인의 이웃집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의 아빠가 죽고, 곧이어 엄마도 죽었는데 쓰러지면서 아이의 발을 눌러서 절게 되었답니다. 부인은 졸지에 부모를 잃은 두 아이가 불쌍해서 쌍둥이를 데려다 키웠는데, 그 와중에 자기 아들이 죽고 이제는 두 아이를 친자식처럼 돌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쯤 해서 톨스토이는 구두장이 시몬이 구해준 청년 미가엘이 누구인지 공개합니다. 그의 이름이 알려주듯이 미가엘은 천사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벌로 맨몸으로 세상에 내려온 것입니다. 천사 미가엘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서 세 가지 문제를 풀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였습니다.
천사 미가엘은 가난한 구두장이 시몬이 교회 앞에 쓰러진 자신에게 외투를 벗어주고 구둣방에서 일하게 해 준 것을 보면서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첫 번째 문제를 푼 것입니다. 으름장을 놓으며 구두를 만들어 달라고 명령하던 부자가 집에 가는 길에 죽는 것을 보면서 사람에게는 앞길을 예측할 능력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두 번째 문제도 풀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웃집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돌보는 부인을 보면서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야 함을 배웠습니다. 미가엘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내주신 세 문제를 모두 풀고 하늘로 올라갑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인간을 만드신 것을 반영이라도 하듯이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사랑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아가페 사랑입니다. 천상의 사랑입니다. 구두장이 시몬은 교회 앞에서 맨몸으로 쓰러져있던 청년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셈입니다. 이웃집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키운 부인은 사람이 사랑으로 사는 것임을 삶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습니다. 천년만년 살 것 같던 부자가 집에 가는 길에 사고를 당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길을 인도하시고 결국에는 선을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그때 소망이 생깁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으로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뤄 가실 인생과 세상에 대한 소망을 마음에 간직하고 믿음으로 살기 원합니다. (2019년 2월 28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