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케 하는 자

세상이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우리가 사는 미국은 올해 말 대통령 선거가 있는데 각 당 후보들이 제각기 자신의 주장을 펼치면서 예비선거를 치르고 있습니다. 후보마다 공약이 제각각입니다. 만약에 그들의 약속이 한꺼번에 지켜진다면 미국은 산으로 갈 것 같습니다. 이렇듯 요즘 시대는 올바른 가치 기준 없이 너도나도 옳다고 말하는 상대주의가 대세입니다. 절대적인 진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 구원과 같은 거대담론이라고 불리는 크고 중요한 주제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개인이나 각 단체의 이해관계가 중요할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나와 내 편만이 존재할 뿐 우리라는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정겨운 모습과 민족이나 국가의 대의를 위해서 온 백성이 단합하는 일보다는 갈등과 분열이 앞선 시대가 되었습니다.

 

개인의 삶 속에서도 관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부부관계는 물론이고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도 쉽게 허물어집니다. 희생과 섬김의 동지의식보다 이기주의가 앞서고 강자가 약자를 무시하는 험악한 시대로 변하고 있습니다. 관계의 단절은 세상은 물론 개인의 삶이 메말라갑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서 편안한 삶을 살고 있지만 동시에 마음은 사막처럼 갈라지고 황폐해지니 왠지 모르게 서글퍼질 때도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관계의 단절이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에덴에서 쫓겨난 창세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과의 관계는 물론 아담과 이브, 자연 만물과의 관계가 망가졌습니다. 죄의 결과인 셈입니다. 또한 이브가 사단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따먹었으니 사단의 계략에 넘어간 것입니다. 관계가 단절된 세상은 “탄식(groaning)”뿐입니다. 틈이 점점 벌어집니다. 갈등이 생기고 평화가 깨졌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거역한 죄의 결과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 힘으로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수 없을 만큼 연약했을 때, 하나님을 떠나서 경건하지 못한 상태에 있었을 때, 죄인 되었을 때,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대로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와서 그의 사랑을 힘입고, 자신이 하나님을 거역했던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면 그 사랑 안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속에서 화평케 하는 자(peace maker)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갈등과 혼란에 가슴 아파하면서 그곳에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의 사랑을 세상과 나누는 것입니다. 양보하고, 희생하고, 섬기고 무엇보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작은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는 곳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임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목된 그리스도인의 의무이자 특권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로 사시는 참빛 식구들이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