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기도 (4)

받은 줄로 믿으라

 

기도에 대한 두 가지 극단적인 입장이 있습니다. 이 경우 기도하기가 어렵고 기도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나는, 기도해도 이뤄진 것이 없고 상황이 변하지 않으니 기도할 마음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가 모두 응답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응답되지 않은 기도를 욕심으로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기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큼 선한 의도로 했지만, 응답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즘처럼 기도에 관해서 공부하고 마음을 먹고 기도를 시작했지만, 상황이 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때는 솔직히 힘이 빠지고 기도하려는 마음도 사라집니다.

 

기도 응답의 불확실성으로 인해서 기도가 꺼려진다면, 다시 한번 기도의 동기를 살펴보길 권합니다. 욕심이나 이기적인 마음으로 기도했다면, 응답되지 않을 것입니다. 선한 뜻으로 기도했다면, 기도 응답이 지체되거나 하나님께서 다른 대안을 준비하고 계실 가능성이 큽니다. 자기 생각만 고집하지 말고 상황을 두루 살피면서 하나님의 응답을 헤아릴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로 기도를 맹신한 경우입니다. 기도만 하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맹목적인 믿음으로 기도에 임합니다. 그런데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기도 속에 자신을 숨겼을 가능성이 큽니다. 기도 역시 우리의 노력이 동반되어야 할 때가 많은데 기도만 하다가 일을 그르칠 수 있습니다.

 

기도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거나, 기도가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극단적인 입장은 기도에 대한 바른 접근이 아닙니다. 양극단을 갖고 논쟁하는 것이 곧 “의심”이라고 했습니다. 의심없이 기도하는 것은 어느 한 가지로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온전한 기도가 무엇인지 세심하게 살피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기도하다가 지치는 경우는 기도 제목에 연연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기도한 것이 이뤄지는 것과 기도를 동일시합니다. 하나님을 자신을 만족시켜 주시는 대리인으로 생각합니다. 우리의 기도 제목이 모두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뜻대로 기도해도 기도 응답이 지체되거나, 다른 것으로 응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을 분별해 내는 것이 의심 없는 기도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믿으라”는 예수님 말씀을 기도의 토대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기도할 때 산이 옮겨지는 것을 볼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는 말씀이 실제가 될 것입니다. 기도의 힘입니다. 기도하는 우리가 갖는 확신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고 기도합시다. 그 힘으로 세상을 살고 산을 옮기는 기도의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