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좋은 아침입니다.

 

미국에 살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언어 문제입니다.

살면 살수록 영어가 안되고,

그때마다 의기소침해지면서

우리 말에 대한 사랑과 집착이 점점 커집니다.

 

언어, 특히 같은 말을 사용한다는 것은

마음과 생각을 나누고

하나가 되는데 필수적입니다.

 

오늘은

조국 대한민국에서

남과 북의 정상들이 만났습니다.

 

남과 북의 경계선에 마주 선 정상들이

악수를 나누고 대화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여느 나라 정상들이 만나면 언어가 틀리니 중간에 ‘통역’이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남과 북의 정상들은 통역없이 대화를 나눕니다.

자국어로 서로 대화하고 협상하니

답답함이나 중간에 에러가 발생할 확률도 낮겠습니다.

 

“진심(眞心)”만 전제된다면

말 그대로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나누고

놓치기 쉬운 뉘앙스까지 잡아내면서

우리 민족 앞에 큰 선물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정상회담을 지켜보는 우리들 마음은 여전히 조마조마합니다.

과거를 생각하면 또 속지 않을까 염려되고,

앞으로 가야 할 길 역시 험하기에

한반도에 전쟁이 그치고 평화가 임하길 진심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어떻게 첫 술에 배부를 수 있을까요!

같은 말을 쓰는 민족끼리 서로 소통하면서

앞으로 나가면 결국에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겠지요.

 

“one day at a time (하루하루)”이라는 영어표현대로

남과 북이 손을 잡고 평화를 도모하는

오늘 하루를 즐겨도 좋겠습니다.

 

이사야를 통한 주님의 약속이

조국 대한민국에 임하길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이뤄가실 한반도의 역사를 소망 가운데 바라봅니다.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이사야 2:4)

They shall beat their swords into plowshares, and their spears into pruning hooks;

nation shall not lift up sword against nation, neither shall they learn war anymore.(Isa 2:4)

 

하나님 아버지,

우리 조국 대한민국에서

날마다 기쁜 소식이 들려오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4.26이-메일 목회 서신)

                   

스며든 편견

체격이 크신 흑인 목사님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분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대형 매장이나 공항의 검색대를 통과할 때면 꼭 추가 심문을 받는답니다. 성직자를 표시하는 옷을 입고 있으면 무사통과인데, 조금 허름한 일상복을 입고 밖에 나가면, 경계하는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그대로 느낀답니다. 우리로서는 생각하지 못할 애환을 갖고 계셨습니다.

 

지난 3월 새크라멘토에서는 두 명의 경찰이 흑인 청년에게 20발의 총격을 가해서 청년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자동차 유리를 깨고 절도를 시도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할머니 집 뒤뜰에 있던 한 흑인 청년을 발견했고, 실제 범인인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을 총으로 오인해서 총격을 가한 것입니다. 경찰 보고에 의하면 청년이 자신들을 향해서 걸어왔다고 했지만, 총탄이 흑인 청년의 등에 집중된 것이 부검결과 밝혀졌습니다. 무장한 경찰이 흑인 청년의 등에 총을 쏜 셈입니다. 경찰의 과잉 대응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암묵적 편견(implicit bias)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편견을 갖고 다른 사람을 대하거나, 어떤 상황이나 이슈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앞에서 예를 들었듯이 몸집이 큰 흑인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것, 흑인들이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이나 머리빗을 총이나 칼로 생각하는 것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서툰 영어로 인해서 은근히 무시 받는 이민 생활의 애환도 암묵적 편견의 희생물일 수 있습니다. 연구에 의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암묵적 편견을 갖고 있고, 많은 경우 의식하고 노력해서 얻은 결과보다 자신 안에 은연중에 스며든 치우친 생각으로 사람을 대하고 상황을 판단한답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암묵적 편견을 알아보는 테스트도 있었습니다. 피부 색깔, 인종, 나이, 성적지향 등에 관한 암묵적 편견을 검사하는 웹사이트였습니다. 피부 색깔에 대한 저의 생각을 알고 싶어서 검사를 시작했더니 검은 피부에 호의적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제 얼굴이 검은 편이고 늘 백옥같이 하얀 피부를 부러워했기에 의외의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있는 모습 그대로 저 자신을 사랑하고 피부 색깔에 상관없이 이웃을 대한다는 뜻으로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의식적이든 아니면 암묵적이든 편견은 떨쳐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자기 방식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하겠다는 의도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길 바라는 욕심이고 집착입니다. 자신과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심지어 적대시할 가능성도 큽니다. 만약에 편견을 가진 사람이 권력을 손에 쥔다면,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성경에서 강조하는 공의와 정의를 실천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새크라멘토의 경찰 총격처럼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피부 색깔에 따른 암묵적 편견을 갖고 있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세워둔 기준을 갖고 다른 사람이나 세상을 평가합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을 적대시하고, 마음속의 편견을 동원해서 다른 이들을 미워하고 편을 가릅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이 갖고 있는 편견을 극복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편견을 갖고 사람을 대하는 것은 신앙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으로 모든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셔서 하나뿐인 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거들떠 보지않던 죄인, 세리, 병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친구셨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서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제인 오스틴의 명작 <오만과 편견>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 우리 안에 있는 편견을 기대로 바꾸기 원합니다. 편견에서 비롯된 고정관념과 오만도 떨쳐버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대하기보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열린 자세로 서로 배우고, 희망과 기대 속에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 임하길 꿈꾸기 원합니다. (2018년 4월 26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작은 사랑 나눔

삼위 하나님 가운데 성령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을 마치 어떤 신령한 세력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이상한 영적 존재로 생각할 수 있는데, 성령 하나님은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후 우리 곁에 오셔서 우리 함께 하시는 보혜사(변호인, 위로자, 안내자)이십니다. 성령 하나님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고 있었다고 했듯이  구약성경과 복음서의 주요 장면마다 등장합니다.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으시는 영(靈)으로 태초부터 세상과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환상에서 보듯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 안에 하나님의 영(생기)이 없다면 살아있는 군대가 될 수 없습니다. 골짜기에 흩어진 마른 뼈들이 모여서 사람의 형상을 이루고, 살이 붙고, 핏줄이 생기고, 피부가 덮이는 것도 커다란 기적이지만, 그 속에 생기가 들어왔을 때 살아난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성령의 임재와 역사 속에서 살아있는 신앙을 갖게 됩니다.

 

보혜사 성령 하나님을 사모하고, 찾고, 경험하기 원합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성령 하나님을 기대하고 그 능력을 힘입기 원합니다. 말 그대로 성령에 사로잡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바람처럼 임하시지만 성령 하나님의 실재를 경험하므로 성령으로 난 사람임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특징이 곧 사랑입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가운데 맨 앞에 사랑이 있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사도바울도 믿음과 소망 사랑, 즉 신앙의 세가지 덕목 가운데 사랑이 최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했으니 우리가 사랑을 실천할 때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됩니다. 사랑이야말로 우리 신앙을 밖으로 드러낼 수 있는 최고의 기회입니다.

 

5월 첫째 주일에 올해 처음 <작은 사랑 나눔>을 가질 예정입니다. 이번에 우리가 작은 사랑을 전할 대상은 “유엔 난민 보호 기구 (USA for UNHCR)”입니다. 유엔 산하에 있으면서 지구상에서 발생하는 난민들을 돕는 단체입니다. 작은 사랑 나눔을 위해서 광고하고 도울 곳을 찾던 중에 이 단체로부터 도움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긴급히 도움을 요청한 편지에서는 방글라데시로 피난간 미얀마의 소수민족을 소개했습니다.  2017년 8월에만 647,000명이 방글라데시로 피난했답니다.

 

미얀마 뿐만 아니라 시리아에서도 화학 무기 등 전쟁의 소식이 끊이지 않고 수많은 난민들이 매일같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비록 아주 작은 도움이지만, 오병이어의 기적을 기대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모으기 원합니다. 소자에게 물 한 그릇을 대접하는 심정으로 작은 사랑 나눔에 참여합시다. 5월 첫 주에 있을 작은 사랑 나눔을 기도로 준비합시다.-河-

기초공사

좋은 아침입니다.

 

샌프란시스코 한복판에
밀레니엄 타워(301 Mission)라는 58층짜리 주거용 빌딩이 있습니다.

높이만 197m (645ft)에 달하는 빌딩입니다.

 

2009년부터 입주가 시작되어서

SF 자이언츠의 야구선수 헌터 펜스와

농구선수 케빈 듀런트가 사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이 높은 빌딩이 내려앉고 있습니다.

2016년에 처음 제기된 문제인데

현재 17인치가 내려앉았고

북서쪽으로 14인치 기울었습니다.

 

유명하신 분들이 사는 곳이기에 난리가 났습니다.

계속 가라앉고 있는 빌딩을 어떻게 보수해야 하고

책임소재와 보상문제를 놓고 여러 건의 소송이 제기된 상태입니다.

 

엊그제 한 가지 보수 방식이 제시되었는데

보수비가 자그마치 2억-4억 달러에 이를 것 같답니다.

타워를 지을 때 들어간 3억 5천만 달러를 웃도는 엄청난 보수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도

그 효과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네요 ㅠㅠ

 

어떤 입주자들은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지을 것을 제안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답니다.

하여튼 지혜를 모으고 정확히 대책을 세워서

그 큰 건물의 안정성이 확보되길 바랍니다.

 

2.

밀레니엄 타워의 보수공사에 관한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기초공사의 중요성을 다시금 실감했습니다.

보수비용이 건축비용을 웃돈다는 기사를 읽으며

저도 모르게 혀를 찼습니다.

 

물론 건설하신 회사에서도 최선을 다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 큰 건물이 17인치나 내려앉았으니

책임을 면하기 힘들 것입니다.

(내려앉은 상태에서도 건물은 안전하다니 기술력이 대단합니다)

지난 사순절부터 주일예배에서

<사도신경>을 차례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신앙의 첫 단추라고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신앙을 높이 쌓아 올리는 기초공사인 셈입니다.

 

신앙도 기초가 부실하면

바람이 불고 홍수가 났을 때 주저앉고 무너질 수 있습니다.

기초공사는 겉모습이 아니라 속에 숨겨진 내공이니

속이 꽉 차 있어야 합니다.

 

사도신경을 함께 공부하면서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리는 참빛 식구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신앙을 갖추고,

그 위에 각자 신앙의 집을 근사하게 세워 가시길 바랍니다.

 

저는 뒤에서 기도하고 힘닿는 대로 돕겠습니다.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마태7:24-25)

Everyone then who hears these words of mine and does them will be like a wise man who built his house on the rock. And the rain fell, and the floods came, and the winds blew and beat on that house, but it did not fall, because it had been founded on the rock.(Matthew 7:24-25)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께

흔들림 없고 내려앉지 않을 신앙과 삶을 허락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4.19이-메일 목회 서신)

보혜사 성령

성부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존재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성자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죄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세상에 계시면서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르치셨습니다.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성령이 오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릴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고 열흘 남짓 지난 오순절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예수님 말씀대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거듭 태어났고 능력의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무엇보다 성령의 오심으로 예루살렘을 비롯한 온 세상에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부터 성령이 오실 것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로 시작합니다. 앞 장인 요한복음 13장은 유월절 만찬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 것을 예고하시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는 새 계명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을 들으면서 제자들은 불안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책임지실 줄 알았는데 떠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마음에 근심하지 말 것을 부탁하시면서, 아버지 집으로 가지만 제자들이 있을 곳을 예비한 후에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사도신경에서도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신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을 위한 처소를 마련하고 다시 올 테니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예수님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영(靈)이셔서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으십니다. 성령을 보혜사 (헬라어, 파라클레이토스)로 부르는데 옆에 계시는 분, 위로자, 돕는 이 또는 안내자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떠나시지만 성령께서 오셔서 제자들을 보호하시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진리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성령을 믿사오며”–우리 안에 계시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기도하시고, 진리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 하나님을 사모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마음껏 일하시도록 거룩한 마음과 삶을 준비하기 원합니다. 우리 안에, 가정과 일터, 교회와 세상에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구합니다.-河-

크고 은밀한 일

좋은 아침입니다.

 

엊그제 수요예배에서는

예레미야 33장을 읽었습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예레미야서 한가운데 위치한

30-33장은 위로와 회복의 말씀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커다란 위로와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현재 상황을 깜깜한 밤이지만

언젠가는 밝은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이 유명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Call to me and I will answer you,

and will tell you great and hidden things that you have not known.(Jer 33:3)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보이실

크고 은밀한 일을 차근차근 소개합니다:

– 하나님께 버림받고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된 예루살렘을 고치고 새롭게 만드실 것입니다.

– 바벨론 뿐만 아니라 사방에 흩어진 백성들을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하고,

세상 가운데 “기쁜 이름”과 “영광과 찬송”이 될 것입니다.

– 황폐한 예루살렘의 슬픔이 사라지고 기쁨과 즐거움이 찾아올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다윗에게서 한 의로운 가지가 나와서 나라를 통치하게 만들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로서는

믿을 수 없는 말씀입니다. 엄청난 약속입니다.

말 그대로 “크고 은밀한 일(great and hidden things)”이었습니다.

 

2.

대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부탁하시는 것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입니다.

 

부르짖는 것은 당연히 “기도”입니다.

그만큼 기도가 중요하고,

기도는 하나님의 크고 은밀한 일을 경험하는 길(way)입니다.

 

하지만, 부르짖는 것을 단순히 입술의 기도만 생각하지 말고

조금 넓게 생각해도 좋겠습니다.

 

부르짖는 것은

–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 사도신경에서 배웠듯이 “하나님 아버지”께 자녀 된 우리 마음과 처지를 알리는 것입니다.

–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생각과 능력을 구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3.

하나님께서

참빛 식구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고

크고 은밀한 것을 보여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의 한계와 상상을 넘어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힘입는 것입니다.

 

입술의 기도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힘입는

총체적인 부르짖음이 우리 안에 있기를 원합니다.

 

부활절 셋째 주일을 맞습니다.

교회력에 따라 여전히 부활절을 사는 것입니다.

부활의 은혜와 능력을 통한 크고 은밀한 일도 기대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Call to me and I will answer you,

and will tell you great and hidden things that you have not known. (Jer 33:3)

 

하나님 아버지,

전적으로 부르짖는 참빛 식구들께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4.12이-메일 목회 서신)

예수 그리스도 (7)

교회력에 따라 오늘은 부활절 후 두 번째 주일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사십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알려주셨습니다.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신 적도 있고, 예고하신 대로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베드로와 제자들을 찾아가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는 마지막 부탁과 함께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앞으로 오순절 성령 강림 주일까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은혜와 능력 그리고 평안을 구하며 부활절 이후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사도신경에서 부활 이후 예수님에 대한 고백은 세 가지 덕목입니다. 첫째는, “하늘에 오르사”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했거나 직접 전해들은 사도들이 기록한 복음서에서는 일제히 예수님의 승천을 알려줍니다. 마태복음에서는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고 세례를 주며 예수님께서 부탁하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유언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에서도 성령이 임하면 그 능력을 힘입은 제자들이 예루살렘은 물론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될 것을 약속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이처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비롯한 이 땅에 사는 모든 성도에게 세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할 것을 부탁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둘째로, 하늘에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고 고백합니다.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어디에 계실까에 대한 해답입니다. 또한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것이 단순히 우리가 날마다 쳐다보는 하늘(sky)이라기보다 하나님께서 계신 곳,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편에 앉아 계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과 같은 지위를 갖고 계심을 뜻합니다. 우편은 전능함의 상징이니 예수님과 하나님께서 같은 분임을 장소의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하늘로 올라가셔서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께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다시 오실 것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종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맡겨 놓은 주인이 다시 오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믿기에 예수님의 재림에 맞춰서 현재의 삶을 조율하고 작은 일에도 충성을 다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하심으로 죄없이 세상에 오셨고,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을 믿습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한 고백을 통해서 우리 안에 있는 궁극적인 소망을 확인하고, 그 소망을 가슴에 품고 지금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깨닫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우리도 걷는 것입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