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강절을 보내며

좋은 아침입니다.

 

최근 며칠 동안

한인 언론은 물론 SNS에

월넛크릭에서 있었던 백인 여성의 언행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스타벅스 커피숍에서

한인 학생들이 우리 말로 얘기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백인 여성이

이민자는 영어만 쓰라고 무례하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매장 직원들이 말리다가

결국은 경찰까지 동원되었지만

백인 여성은 끝까지 “아시안”

그것도 “코리안”을 들먹이면서 소동을 부렸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백인들의 유색인종 혐오와

백인 우월주의의 언행이 끊이지 않고 여기저기서 일어납니다.

 

미국은 원래

샐러드 보울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이민자의 나라인데

인종간의 갈등이 자꾸만 불거지는 것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번 경우

다인종, 특히 아시안이 많은 베이 지역에서 발생했기에

더욱 예의주시하게 됩니다.

한인이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 화가 납니다.

 

2.

그런데 한편 생각해보면

우리 아시안들이나 유색인종들만 이런 일을 겪는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우월하다고 여기고,

약한 사람 또는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핍박(?)하는 경우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또한,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역시 자신과 다른 사람들,

약해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습니다.

 

자신의 우월함을 고집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기 방식대로 따라오도록

강요할 수도 있습니다.

 

월넛크릭 스타벅스 사건을 보면서 몹시 화가 나지만,

엄밀히 살피면, 우리 자신을 물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전반의 민낯입니다.

 

3.

마음에 촛불을 두 개 켜고

대강절 둘째 주일을 맞고 있습니다.

 

대강절은 원래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의 지위를 버리고, 자신을 통째로 비우시고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기간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최고의 능력자, 최고의 권위, 창조주,

피조물인 인간과 100% 다른 분이셨지만,

기득권이나 자신의 권위, 다름을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질병으로 고생하고, 소외되어 외롭고,

힘없는 자들을 찾아가시고

그들의 편이 되셨습니다.

 

자신만이 최고라고 주장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차별하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분노하셨습니다.

 

대강절을 맞으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행여나 자신만이 최고요 옳다는 우월 의식,

자기와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배타성이 발견된다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의 마음을 회복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하늘의 평화가 임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너희 안에 마음을 품으라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립보서 2장 5절)

Have this mind among yourselves, which is yours in Christ Jesus (Phil 2:5)

 

하나님 아버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참빛 식구들이

예수님의 마음으로 주변에 다른 사람들을 돌보고 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12.14이-메일 목회 서신)

                   

찾아오시는 예수님 (5): 나인성 과부

우리가 믿는 기독교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주제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십자가가 맨 앞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가 십자가를 통해서 드러났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엎드려 자신을 돌아보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면서 은혜를 체험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지고 주어진 인생길을 걸어갑니다.

 

사랑도 기독교의 대표적인 주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무척 사랑하셔서 그 아들을 아끼지 않고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무 조건이 없어서, 누구든지 하나님께 나오는 사람에게 한량없이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우리도 세상에 나가서 이웃을 사랑합니다. 생명과 구원도 중요한 덕목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던 옛 자아를 버리고 예수님 안에서 거듭 태어난 것입니다. 생명의 길을 걸어갑니다.

 

또 한 가지 기독교에 있는 특별한 개념이 “성육신”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모두 비우시고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만왕의 왕께서 종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육신의 몸을 입고 스스로 찾아오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성육신 신앙이 필요합니다. 우리도 누군가 찾아 나서야 합니다. 어려운 이웃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약한 자들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들과 같은 처지에 들어가서 같은 마음으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생명의 길을 함께 걷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성육신 신앙이 있을 때, 세상 속에서 구원의 은혜와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3년 동안 사역하시면서 많은 사람을 찾아가셨습니다. 특별히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 소외되고 연약한 사람들을 찾아가셨습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고, 도움이 되셨고 그들에게 진정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 깊은 곳에 불쌍히 여기시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인성에 사는 과부가 하나뿐인 아들을 잃었습니다. 나인성 과부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아들의 장례를 위해서 성문을 빠져나오는 광경을 보신 예수님 안에 측은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눅7:13). 그리고 장례 행렬에 다가 가셔서 아들을 살려 주셨습니다. 과부가 아들을 살려달라고 예수님께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과부를 불쌍히 여기셔서 먼저 다가 가셔서 살려주신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 사랑의 특징입니다. 나인성 과부를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께서 우리도 불쌍히 여기시고 찾아오실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河-

정리정돈

좋은 아침입니다.

 

한해의 마지막 달이 되면

새해에 했던 결심과 계획을 되돌아봅니다.

늘 아쉬움이 남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흔적이 여기저기서 발견됩니다.

저절로 감사가 나옵니다.

 

목사인 저는 연초에 주신 참빛 식구들의 기도제목을

다시 차근차근 읽어봅니다.

기도하신 것이 이뤄진 것을 보면서 덩달아 기쁘고

이뤄 가시는 모습에 힘을 더하고

아직 깜깜한 기도 제목에 다시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한 해를 보내면서

인생 상자를 하나 꺼내서 그곳에 “2017년”이라는 레벨을 부치고

한 해를 정리정돈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인생길이 한 해가 끝난다고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지만

2017년을 예쁘게 정리 정돈해 놓고 새해를 맞기 원합니다.

 

2.

한 해를 돌아보고

정리 정돈하는데

“영적 일기(spiritual journal)”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차분하게 글로 한 해를 정리하는 것입니다.

 

글을 쓰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하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깊이 간직할 수 있습니다.

 

많은 시간을 들여서 많은 분량의 글을 쓸 것도 아닙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 미사여구를 사용할 필요도 없습니다.

영적 일기는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서

있는 모습 그대로 솔직히 써내려 가는 글쓰기입니다.

 

삶을 돌아보는 단상이든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문이든지,

매일같이 기록하는 to-do-list의 변형이든지

아주 간단한 메모나 그림이든지

12월 한달 동안 영적 일기를 쓰면서

한 해를 정리정돈하시길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일기 쓰기를 포함한 모든 영적인 훈련은 우리의 의식을 조율하는 과정이다.

현악기를 조율하듯이 우리 자신을 조율해서

때로는 주변에서 펼쳐지는 불협화음 속에서도

여전히 흘러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의 곡조를 알아듣는 것이다.

-내 영혼을 위한 일기쓰기(Journaling as a Spiritual Practice)-

 

3.

다윗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 만물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기록한 영적 일기

시편 8편을 묵상합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시편 8편3-4절)

When I look at your heavens, the work of your fingers,

the moon and the stars, which you have set in place,

what is man that you are mindful of him,

and the son of man that you care for him? (Psalms 8:3-4)

 

올해 마지막 달에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거나

세상 곡조에 맞춰서 춤을 추다가 몸과 영혼이 지치지 말고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고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깊이 만나고

지금도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깔끔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기 원합니다.

 

영적 일기를 쓰면서…

 

하나님 아버지,

영적 일기를 쓰는 참빛 식구들의 신앙과 삶이

더욱더 깊어지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깊이 만남으로

신앙의 터가 굳어지고 삶이 풍성해 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12.7이-메일 목회 서신)

찾아오시는 예수님 (4): 대강절에

대강절(Advent)첫 번째 주일입니다. 마음속에 촛불 하나 밝히고 성탄절에 오실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올해 대강절 기간 동안 참빛 식구들께 두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는 개인적으로 영적 일기를 쓰면서 한 달을 보내는 것입니다. 아침마다 큐티하고 그것을 경건의 일기로 기록하시거나, 편한 시간에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일기를 쓰실 것을 추천합니다. 영적 일기(spiritual journal)는 신앙과 삶에 깊이를 더해줍니다. 겉으로 표출하는 신앙을 넘어서 우리의 깊은 내면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으로 채워줍니다.

 
둘째는 올해 세 번째 <작은 사랑 나눔>으로 지역 신문사에서 주관하는 노숙자들에게 슬리핑 백과 점퍼를 나눠주는 운동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12월 둘째 주에 예전처럼 가정별 또는 개인별로 헌금한 것을 이름 없이 돕도록 하겠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서 한 번 식사비를 절약하는 마음으로 (20불 한도) 참빛 식구들 모두 참여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신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실지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날은 안식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찾아가십니다. 그리고 그를 가운데 세우시고,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과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음을 알려주신 후에 그의 손을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질병을 죄의 결과로 생각했습니다. 특히 육체에 장애가 있거나 온전하지 않았을 때 몹시 업신여겼습니다. 질병이 주는 고통보다 사람들의 시선과 비판이 더 뼈아픈 시대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병자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온전케 되기를 원했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면서 고쳐주셨습니다. 때로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손이 마른 사람처럼 예수님께서 직접 찾아가셔서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안식일에 그것도 회당에서 병을 고치시는 것을 본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 법을 어기셨다고 그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이들의 마음속에는 질병으로 고생하는 이웃들을 향한 사랑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향해서 분노하십니다. 그리고 마음이 굳어진 것을 탄식하시고 안타까워하십니다.

 
대강절을 맞아서, 우리의 부족을 채우시고 회복시켜 주실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고 복음을 향해서 마음을 활짝 열기 원합니다. 행여나 우리 안에 굳은 마음이 있다면, 부드러운 마음을 준비하고 주님을 기다리기 원합니다. 어려운 이웃에게 선을 행하고 생명의 복음을 전하기 원합니다.-河-

다니엘

좋은 아침입니다.

 

새벽기도회에서

다니엘서를 읽고 있습니다.

 

이사야와 예레미야, 에스겔를 거쳐서

다니엘까지 왔는데

앞의 세 예언서에 비교하면 훨씬 은혜롭습니다.

 

무엇보다 익숙한 말씀이 나오니

권사님들과 읽기도 편하고 나눔도 풍성합니다.

 

그렇지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제국의 종교와 학문을 익히고

이름도 바벨론식으로 바뀌면서 살아가는

다니엘의 삶이 그리 낭만적이지 않음을 곳곳에서 느낍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섬겨야 하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교만하고

때때로 안하무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영광과 권력을 주셨다고 전할 정도로

부족함이 없는 말 그대로 당시 최고의 왕입니다.

 

2.

내일 나누게 될 다니엘서 4장을 묵상하면서

머리가 쭈뼛 서는 표현을 발견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의 꿈을 해석하기 위해서

바벨론의 모든 술사를 동원하지만 아무도 답변하지 못합니다.

결국, 다니엘을 불러서 해석을 부탁하고

다니엘이 왕의 꿈을 해석해 주는 본문입니다.

 

그 순간,

왕이 다니엘을

박수장 벨드사살아”라고 부릅니다.

 

벨드사살은 다니엘의 바벨론식 이름으로

“벨신이 왕의 생명을 보호하신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심판관”이라는 다니엘의 이름이

바벨론 신과 바벨론 왕을 찬양하는 것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런 다니엘을 보고 “박수장(the chief of magicians)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렇다면, 다니엘은 바벨론 신들의 이름으로 점을 치고

세상을 판단하는 술사들의 대장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니엘이 바벨론에서 그런 일을 하면서 살아남았습니다.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3.

오늘도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참빛 식구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다니엘 정도는 아니지만

참빛 식구들 역시 하나님이 없는 세상 속에서

고군분투하면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갑니다.

때로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상관없는 일을 앞장서서 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바벨론에서 살아남은 다니엘을 떠올리면서

끝까지 살아남고

결국에는 승리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조금 일이 잘 안 돼도 너무 상심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힘내십시오!

그리고 주일에 함께 모여서

뜨겁게 찬양하고 기도하고

우리 하나님을 예배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참빛 식구들과 함께하시고

보호자와 안내자가 되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11.30이-메일 목회 서신)

찾아오시는 예수님: 게네사렛 호숫가

추수감사절이 지나면 한 해가 다 지나간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도 그럴 것이 12월은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갑니다. 동시에 마음이 바빠집니다. 물론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늘 아쉬움은 남게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을 보면서 한 해를 알차게 마무리하려는 결심이 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남은 한 달 주님 앞에서 최고의 달로 만들기 원합니다.

 

우리는 “찾아오시는 예수님”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한 달 남은 올해 우리를 찾아오신다면, 어떤 일이 생길지 생각해 봅니다. 요즘 세상이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미움, 거짓, 폭력이 난무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힘없고 외로운 이웃들을 방문해서 힘과 위로를 주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모르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들에게도 우리가 믿는 예수님께서 실제로 계심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우리 교회로 초대했을 때, 흐뭇하게 미소지으시며 우리와 함께하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라보시고 잠잠히 기뻐하시는 참빛 식구들과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주에는 가나 혼인 잔치에 찾아가셔서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는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져서 난감해할 때,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는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잔치가 더욱 풍성해진 것입니다. 비록 신분은 낮았지만, 예수님의 기적을 몸으로 경험한 하인들의 믿음이 특별했습니다. 요한복음의 일곱 가지 표적 가운데 첫 번째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된 것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열어가실 새로운 세상을 예감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베드로를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시는 말씀입니다. 갈릴리 바닷가의 베테랑 어부 베드로는 밤새도록 그물을 내렸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아침이 되면서 고기 잡기를 포기하고 해변에서 그물을 씻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많은 무리와 함께 찾아오셨습니다. 하필 고기를 잡지 못해서 마음이 편치 않았을 베드로의 배에 오르셔서 말씀을 전하시더니, 그물을 씻고 있는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그물을 던졌고, 두 배가 물속에 잠길 만큼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육지로 나온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향해서 이제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시기 위해서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는 만선보다 귀한 인생의 사명을 찾았습니다. 할렐루야!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