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10): 거류민과 나그네
Author: 참빛
레갑 족속
좋은 아침입니다.
새벽기도회에서 예레미야서를 읽는 중에
“레갑 족속(the Rechabites)이라는 특별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예레미야 당시에 레갑 사람들은
바벨론 군대를 피해서 예루살렘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성전의 한 방으로 초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포도주가 가득 든 항아리를 가져다가
포도주를 마시라고 권하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고
다음과 같이 자신의 조상 요나답의 말을 전합니다(렘35:6-7).
– 너희는 물론 자손들도 포도주를 먹어서는 안 된다 (거룩한 삶의 표시)
– 집도 짓지 말고 곡식의 씨도 뿌리지 말고 포도나무도 심지 말고 유목민으로 장막에서 살아라.
– 그러면 나그네로 사는 땅에서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해 주실 것이다.
레갑 족속은 그들의 조상 요나답이 가르쳐준 전통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레갑 족속의 구별된 삶은
아브라함과 모세의 전통을 저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이스라엘과 비교됩니다.
2.
레갑 사람들에 대한 성경의 기록이 많지 않습니다.
레갑사람들은 양을 치면서 이곳저곳을 다니는 유목민이었습니다.
이집트 왕자 모세가 광야에서 40년을 보내고
그곳에서 겐 족속의 제사장 이드로의 딸을 아내로 맞게 되는데,
레겝 사람들이 겐 족속(the Kenites)에서 왔다고 봅니다 (역대상 2;55).
레갑 사람들이 최고의 조상으로 여기는 요나답에 대한 말씀이
열왕기하 10:15-17에 나옵니다.
엘리야가 세운 예후가 잔악했던 아합왕의 가문을 치러갈 때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요나답)”에게 함께 가서 의로운 일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때 여호나답이 기꺼이 예후를 도왔습니다.
레갑 사람들은
이스라엘 정통 가문이 아니었지만
의로운 일에는 힘을 합쳤습니다.
무엇보다 3백여년 동안
조상 요나답이 전한 말을 그대로 지키며 살았습니다.
정착민으로 살기를 포기하고
구름처럼 떠다니는 장막 생활을 했습니다.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않으면서 거룩함을 실천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들의 길을 걸어간 것입니다.
3.
레갑의 아들 요나답은 왜 후손들에게 나그네 삶을 살라고 했을까요?
자신들의 본업인 유목민의 삶을 지속하라는 뜻일 겁니다.
조상 대대로 같은 일을 하는 것은 언제나 큰 귀감이 됩니다.
장막에서 지내는 유목 생활은 그만큼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착하지 않으니 세상에 마음을 둘 수 없고
하나님께만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하기에
나그네 삶을 살라고 부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레갑 사람들을 축복하십니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렘35:19)
자신의 길을 지속적으로 걷기가 쉽지 않습니다.
요즘처럼 급변하는 시대에는 더욱 어렵습니다.
다른 것들은 시대에 따라서 변하고 적응해 나가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한결같기 원합니다.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와 같은 상록수 신앙을 갖기 원합니다.
예레미야가 레갑 사람의 가문에게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너희 선조 요나답의 명령을 순종하여 그의 모든 규율을 지키며
그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을 행하였도다 (렘 35:18)
you have obeyed the command of Jonadab your father
and kept all his precepts and done all that he commanded you (Jer 35:18)
하나님 아버지,
나그네 인생길을 걸으면서
레갑 사람들의 신앙을 본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7.13이-메일 목회 서신)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교회
새해를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반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표어로 시작된 우리 교회의 올해 사역도 후반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무리하게 많은 일을 계획하지 않습니다. 모임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늘 말씀드리듯이 교회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데 힘을 주는 영적 주유소와 같은 곳입니다. 신앙의 종착점은 교회가 아니라 삶의 현장임을 명심하고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사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하반기를 맞으면서, 교회의 사역을 다시금 점검해 봅니다. 주일예배는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모두 참석하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새벽 기도회와 수요 예배는 권사님들께서 자리를 지키십니다. 어르신들을 위한 성경공부를 따로 개설하지 않기에 가능한 대로 수요 예배에 참석하셔서 하나님 말씀을 배우시길 부탁드립니다.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속회에서도 힘닿는 대로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는 성도의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속회에서는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이라는 주제에 맞춰서 각자의 신앙 여정을 12과에 걸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청년부는 금요일에 만나서 성경을 공부합니다. 요즘은 예수님의 비유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기혼자 그룹을 위해서 목요일 저녁에 온라인 성경공부반을 개설했고, 필요에 따라서 기도원에 올라가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습니다. 참빛 보이스도 꾸준히 계속되어서 교회의 젊은이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격려하기 원합니다. 4월부터 시작한 금요 찬양 예배를 통해서 찬양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기 원합니다. 찬양대와 찬양팀의 은혜로운 찬양에 매주 은혜를 경험합니다. 선생님들께서 우리 아이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깊이 전해 주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확실히 전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필요에 따라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섬길 지체들이 있을 때 사역을 시작하는 것이 제 목회와 우리 교회 사역의 특징입니다. 시도하다가 섬기는 분들이 부족하거나 힘들면 과감히 접고 다음을 기약합니다. 그래도 뒷전에서 궂은 일로 교회를 섬기는 손길이 있기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김치 담그기부터 교회 이곳저곳을 살피고 수리하시는 권사님, 주일 찬양대를 위해서 간식을 준비해 주시고, 주일 친교를 맡아 주시고, 안내하시는 권사님까지 섬김의 본이 되어 주십니다. 이렇게 교회가 세워집니다.
교회를 방문하시는 분들이 정착하시고, 하나님을 알아가려는 성도님들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가면서 우리 교회가 제사장 나라로, 택하신 주의 백성의 모임으로 자라길 원합니다.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세상에 전하는 참빛 교회와 성도님들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河-
2017년 7월 2주 말씀과 찬양
베드로전서 (9): 택하신 족속
하나님의 속마음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부터 읽기 시작한
예레미야 30-33장을 일주일 동안
조금씩 조금씩 음미하면서 읽고 있습니다.
성경 통독은 하루에 3장씩
꾸준히 달려가면서 읽는 방식입니다.
성경공부는
본문 말씀을 이리저리 생각하면서 고민하고 풀어가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성경을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한 자 한 자 짚어 가면서 읽고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을 만나면
그 말씀을 붙잡고 한참을 멈춰 서 있는 것입니다.
2.
수요 예배와 새벽기도회에서
권사님들과 예레미야서를 읽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말씀이 거칠고, 비극적인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마음에 부담이 될 정도로 무겁습니다.
그러다가 위로와 소망의 말씀인
예레미야 30-33장을 만나서
사막 길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일주일을 머물면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은혜를 맛보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서의 묘미는
소망의 말씀이 52장 한 가운데인
30-33장에 위치해 있다는 것입니다.
30장에 오기까지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의 죄악상이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눈물로 탄식하며 호소하는 선지자의 애원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갈 뿐이었습니다.
33장이 지나면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성전이 무너지는 과정을
눈에 보듯이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감옥에 갇히고
죽을 위기를 넘기면서 민족의 마지막 순간을
온 몸으로 맞이할 것입니다.
3.
이처럼 비극적인 이스라엘 역사를 전하는 예레미야서 한 가운데
위로와 소망의 말씀이 씨-처럼 들어있습니다.
아무 조건없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받아주시고, 회복하시고
돌이 아니라 마음에 새 언약을 새겨 주십니다.
예레미야서의 한 가운데 소망의 말씀이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속마음을 떠올려봅니다.
때때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대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을 때는 불평과 원망이 나옵니다.
스스로 하나님을 떠나서 제 길로 갈 때도 많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진심(속마음)을 이해하면
다시금 신앙을 회복하고 주의 길을 걷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펼쳐져도
하나님께서는 그 속에 “희망의 씨”를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속마음을 느끼고
우리도 마음 깊은 곳에서 주님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하나님과 교통하기 원합니다.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예레미야 32:40-41)
And I will put the fear of me in their hearts, that they may not turn from me. I will rejoice in doing them good,
and I will plant them in this land in faithfulness, with all my heart and all my soul. (Jer 32:40-41)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 살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속마음을 그대로 느끼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7.6 이-메일 목회 서신)
2017년 7월 1주 말씀과 찬양
베드로전서 (8): 산 돌이신 예수님
산 돌이신 예수님
이번 연속 설교에서는 신앙을 세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머리로 알고 정리해 놓는 교리, 가슴으로 느끼는 체험, 손과 발로 실천하는 삶입니다. 교리와 삶을 합쳐서 신앙생활이라 부르고, 신앙과 생활의 통합이 거룩함입니다. 가슴으로 느끼는 체험은 신앙생활에 활력과 확신을 줍니다.
7월 찬양 예배가 금요일에 있습니다. 찬양 예배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또 다른 신앙의 방식입니다. 함께 모여서 찬양할 때 힘이 생깁니다.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느낍니다. 찬양 속에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맛볼 수 있습니다. 가능한 모두 참석하셔서 찬양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찬양에 목마른 분들이 주위에 계시면 초청하셔도 좋겠습니다.
지난 주에는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보아 알기 위해서 다섯 가지 (모든 악독, 모든 기만, 위선, 시기, 모든 비방하는 말)를 버리고 갓난아이처럼 신령한 주님의 말씀을 사모할 것을 배웠습니다. 버릴 것을 버리고 추구할 것에 집중할 때 비로소 주의 인자하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주의 인자하심을 맛본 성도의 모습을 집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 돌이 되셨습니다. 원래 돌에는 생명이 없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생명의 돌이 되신 것입니다. 산 소망이 되셨습니다. 죽음에 생명이 들어온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가져온 생명입니다.
소아시아의 흩어진 나그네에게 편지를 쓴 베드로의 이름 역시 “반석”이란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그를 베드로라고 부르셨습니다. 돌 또는 반석이란 용어가 베드로에게 특별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산 돌에 비유하고, 소아시아에 흩어진 나그네들이 산 돌이 되길 부탁하고 있습니다. 산 돌이신 예수님을 건물의 모퉁이 돌 삼아서 신령한 집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은 집처럼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때 요청되는 것이 앞에서 말한 다섯 가지를 버리고 신령한 말씀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성전에서 제물을 갖고 희생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제 소아시아에 흩어진 나그네들은 자신이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의 모임이 산 돌이신 예수님을 모신 교회입니다. 짐승으로 드리는 희생 제사 대신에 거룩한 삶을 갖고 드리는 산 제사입니다. 성전에서는 제사장들이 제사를 인도했지만, 예수님을 산 돌로 모신 교회에서는 모든 성도가 제사장이 되어서 주님께 나갑니다. 새로운 예배입니다. 우리 모두 산 돌이신 예수님을 모퉁이 돌 삼아 교회를 세우고 신앙과 생활의 집을 세우기 원합니다. -河-
주의 은혜
좋은 아침입니다.
1.
새벽 기도회에서는
오늘부터 예레미야 30장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예레미야서는
남유다가 멸망하기 20여 년 전부터
하나님을 떠난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으면 심판이 임할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서 한 가운데인30-33장에
위로와 소망의 말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새벽에 권사님들과
예레미야서의 심판 메시지를 읽기가 쉽지 않았는데
오늘 새벽부터 30장을 읽기 시작하니 말씀의 은혜가 쏟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2.
예레미야서의 핵심 메시지 가운데 하나가
“돌아오라(return)”입니다.
예레미야서에서 돌아오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면서
하나님께 돌아와서 하나님 백성으로 살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 백성으로 언약 가운데 살 수 있지만,
교만한 마음에 하나님을 버리고 끝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인과응보>의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위로와 소망의 말씀인 30장에 이르면
돌아오라는 조건이 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무조건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3.
은혜는 선물입니다.
선물에 조건이 붙으면 거래가 됩니다.
예레미야가 말하는 은혜 역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내려주시는 선물입니다.
아무 조건이 없습니다.
예레미야서의 은혜를 묵상하면서
마치 하나님의 은혜가 공기처럼 우리 주변에 가득 차 있음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마음을 열면
은혜가 큰 물결처럼 우리 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져야 은혜가 임하는 것이 아니고,
믿음을 가져야 은혜라는 방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믿음으로 문을 열면,
문 앞에까지 이른 은혜가 우리에게 밀려 들어오는 것입니다.
주체할 수 없는 주님의 선물, 주님의 은혜입니다.
새벽에 이 은혜를 묵상하니 얼마나 감사하고,
은혜가 주님의 선물인 것이 실감 나던지요!
오늘 하루
주님의 은혜로 살기 원합니다.
은혜로 숨을 쉬고,
우리 마음과 삶에 물결처럼,
샌프란의 밀려오는 안개처럼,
맑은 공기처럼 임하는 주의 은혜를 체험하기 원합니다.
그들에게서 감사하는 소리가 나오고 즐거워하는 자들의 소리가 나오리라. 내가 그들을 번성하게 하리니 그들의 수가 줄어들지 아니하겠고 내가 그들을 존귀하게 하리니 그들은 비천하여지지 아니하리라 (예레미야 30:19)
Out of them shall come songs of thanksgiving, and the voices of those who celebrate. I will multiply them,
and they shall not be few; I will make them honored, and they shall not be small. (Jer 30:19)
하나님 아버지,
믿음으로 마음의 문을 여는
참빛 식구들의 마음과 삶을
주의 은혜로 가득 채워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6.29 이-메일 목회 서신)
주의 인자하심
신앙에는 우리의 모든 지각이 총동원되어야 합니다. 이성을 사용해서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고 우리가 믿는 신앙에 대해서 고민하고 탐구합니다. 교리 (doctrine)에 관한 공부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하나님을 마음으로 느껴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experience)하는 것입니다. 체험은 신앙에 확신을 줍니다. 물론 교리가 빠진 체험은 쉽게 뜨거워졌다가 식어버리는 롤러코스터 신앙이 되기 쉽습니다. 체험이 빠진 교리 역시 탁상공론으로 전락할 수 있기에 머리와 가슴의 조화가 필요합니다. 교리와 체험에 손과 발로 실천하는 행위(practice)가 더해지면 말 그대로 성숙한 신앙입니다.
우리는 교리와 체험과 행함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야 합니다. 어느 한 가지에 치우침 없이 세 가지 덕목에서 균형을 이루며 자라간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소아시아의 흩어진 나그네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베드로 역시 교리와 체험과 행함의 세 가지 덕목을 반복해서 교훈했습니다.
하나님의 미리 아심을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와 성령이 순종케 하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강조합니다. 금과 은보다 더 귀한 믿음을 갖고 보지 않은 예수님을 굳게 믿고 사랑하기를 권면합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산 소망을 갖게 됩니다. 거듭 태어남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 태어난 후에는, 거룩한 길을 가야 합니다. 생각과 삶이 구별되는 것입니다. 선한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떳떳할 수 있어야 합니다. 뜨겁게 서로 사랑함으로 진실되고 정결한 신앙을 실천해야 합니다.
거룩한 삶을 위해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헛된 행위들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썩지 아니할 복음의 말씀으로 거듭 태어난 그리스도인에게 적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갓난아이처럼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젖먹이의 심정과 태도로 하나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말씀은 순전해서 우리를 진실하게 만듭니다. 하나님 말씀은 신령해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힘을 줍니다. 말씀을 통해서 구원을 이루고 예수님을 닮아 갑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이 복음입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인자하신 하나님을 맛보아 알기 원합니다. 그만큼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자신의 백성을 돌보시고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는 은혜입니다. 친히 자라도록 힘을 주시고 인도하시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맛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꼭 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 한 주간도 깊고 실제적인 주의 은혜로 살아갑시다.-河-
2017년 6월 4주 말씀과 찬양
베드로전서 (7): 주의 인자하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