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급함

좋은 아침입니다.

 

1.

소비자를 보호하는 미국의 정부기관에서

삼성의 신제품 갤럭시 노트7의 리콜을 결정했습니다.

충전하는 과정에서 과열로 화재를 일으킨 사례가 보고되면서

삼성 측에서는 이미 리콜을 통지했지만

결국 미국 기관이 공식적으로 리콜을 명령한 것입니다.

 

저는 기계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경쟁사인 애플을 의식해서

충분한 테스트를 거치지 않고 성급하게 시판한 것 같습니다.

 

요즘 미국에서는 웰스파고 은행이

고객 정보를 도용해서

2백만 개가 넘는 가짜 계좌를 만든 것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2억 불에 달하는 손해배상이 결정 났지만

자신도 모르게 은행 구좌가 열리고

수수료가 빠져나간 고객들 입장에서는 깜짝 놀랄 일입니다.

 

계좌를 열라는 상당한 압박이 직원들에게 가해진 것 같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몇 개의 계좌를 열었는지 점검하고,

고객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계좌 만드는 것을 묵인했다는 것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실적을 올리려는

성급함에서 비롯된 잘못(범죄)입니다.

 

2.

무한 경쟁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세상이 적자생존의 정글로 변하고 있습니다.

 

조직 자체는 물론

조직에 속한 개인에게도

상당한 압력이 가해지고,

남들보다 빨리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을 거슬러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구조를 바꾸는 것은 더욱 힘듭니다.

 

그러니 발만 동동 구르고

때로는 혼자 괴로워하고

때로는 체념한 채 세상 조류에 편승해서 살아갑니다.

 

3.

정기적으로,

세상의 흐름에서 빠져나와서

멀찍이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세상 속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차분하게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으로

구별된 삶을 살기로 다시 생각하고 다짐하는 시간입니다.

 

혼자서 고민하고 살아남기 힘들 때는

신앙 동지들의 격려, 조언을 구할 수 있습니다.

힘을 모아서 구조를 바꾸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입니다.

우리 참빛 식구들이 서로에게 신앙의 동지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참빛 공동체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거친 세상 속에서

주님을 의뢰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주님께서 보여주신 길을 걸어가실 참빛 식구들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새벽에 읽은 다윗의 고백이 힘이 됩니다.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주의 변함없는 사랑에 대해서]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시편 143:8)

Let me hear in the morning of your steadfast love, for in you I trust.

Make me know the way I should go, for to you I lift up my soul. (Psalms 143:8)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의 발걸음을 인도하시고

가야 할 길을 밝히 보여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9.15 이-메일 목회 서신)

마가복음 14장 – 닭이 울더라

어느덧 9월 중순으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올해도 네 달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연초에 참빛 식구들께서 주신 기도제목을 한 장 한 장 넘겨봅니다. 마음의 소원대로 응답된 기도, 여전히 기도가 계속되고 있는 제목들,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겠지만 섭섭하게도 응답되지 않고 지나친 기도까지 연초에 주신 기도제목 만큼이나 참빛 식구들의 삶도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인생 여정에 정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여서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고집을 피울 것도 아닙니다. 수가 많으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인생과 신앙에 유연한 태도를 갖고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지혜입니다. 2016년의 남은 날들을 주님 안에서 알차게 보내셔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들으시는 참빛 식구들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십자가 죽음을 하루 앞둔 저녁,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가지셨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 한 명이 자신을 팔 것과 베드로 역시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시면서 떡과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나눠 주셨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기 위해서 만찬 자리를 뛰쳐나갔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죽으면 죽었지 부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심문 받으시는 현장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합니다. 예수님 말씀이 그대로 이뤄진 것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이토록 무력하게 잡히실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 사역의 끝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끝날 것을 미리 알았다면 애초부터 예수님을 따라 나서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수만 명이 모이는 유월절에 말 그대로 메시아로 예루살렘에 우뚝 서실 것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동상이몽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신앙 가운데서 펼쳐지는 상황이 다를 때, 베드로와 제자들처럼 말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로마를 무너뜨리고 다윗 왕국을 세우실 것이라고 믿었던 제자들과 예루살렘 백성들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 생각대로 세상이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생각은 전혀 다르십니다. 거기서 신앙의 부조화가 일어나고 때때로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우리 역시 동상이몽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우리의 생각과 예수님의 생각을 일치시키는 과정입니다. 예수님께서 알려주시고 몸소 가시는 길이 우리의 예상과 달라도 베드로의 처음 고백처럼 죽을 지언정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 길이 십자가의 죽음이 있는 골고다 언덕을 향해도,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실 예수님을 소망 중에 바라보는 것입니다. 거기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의 힘이 나옵니다. 삶의 모습과 환경이 어떠하든지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기 원합니다.-河-

손때 묻은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달 둘 째까지

대학원 공부를 위해서 데이비스로 올라가면서

우리 집은 말 그대로 빈 둥지(empty nest)가 되었습니다.

 

새벽기도회를 쉬는 이번 주간,

조금 넓고 햇볕도 잘 들어오는

아이들 방으로 이사하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이 10년여 쓰던

책상을 먼저 해결해야했습니다.

 

처음 샌프란에 왔을 때

오피스 디포에서 구입해서 하루 종일 조립했던 책상인데

이제 수명을 다한 것입니다.

 

조립했던 때와 반대로

해체작업을 하다 보니

아이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책상에 묻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책상 바닥의 칠도 벗겨지고

아이들의 손때가 잔뜩 묻어 있었습니다.

“이 놈들이 이렇게 공부했구나”

마음이 짠- 했습니다.

 

그냥 넘기기가 아쉬워서

사진을 찍어 보관해 놓았습니다.

한가할 때 아이들에게 보내줘야겠습니다.

 

2.

어떤 물건에 손때가 묻었다는 것은

주인이 얼마나 자주 사용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기준입니다.

 

예전에는

평생 한 권의 성경책만 보신 어르신들이 많으셨습니다.

그분들의 성경책을 보면

‘너덜너덜’하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손때가 잔뜩 묻어 있었습니다.

 

이제는

성경번역본의 종류도 많고

셀폰에서 성경을 읽을 수 있으니

손 때 묻은 성경책을 볼 기회가 점점 줄어들겠지요.

 

제가 좋아하는

<어머니의 언더라인>이라는 시를 소개합니다.

 

유품으로는 그것뿐이다.

붉은 언더라인이 그어진 우리 어머니의 성경책.

 

가난과 인내와 기도로 일생을 보내신 어머니는

파주의 잔디를 덮고 잠드셨다.

오늘은 가배절 흐르는 달빛에 산천이 젖었는데.

이 세상에 남기신 어머님의 유품은 그것뿐이다.

                 

가죽으로 장정된 모서리가 헐어 버린 말씀의 책,

어머니가 그으신 붉은 언더라인은 당신의 신앙을 위한 것이지만

오늘은 耳順(이순,60)의 아들을 깨우치고 당신을 통하여 至高(지고)하신 분을 뵙게 한다.

 

동양의 깊은 달밤에 더듬거리며 읽는 어머니의 붉은 언더라인

당신의 신앙이 지팡이가 되어 더듬거리며 따라 가는 길에

내 안에 울리는 어머니의 기도 소리.

-박목월-

 

성경책을 한권 지정해서

줄을 치고, 여백에 메모도 하고

손 때를 묻혀가면서 읽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119:105)

Your word is a lamp to my feet and a light to my path. (Psalms 119:105)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을 주의 말씀을 사랑하고

주의 말씀으로 참빛 식구들의 가는 길을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9.8 이-메일 목회 서신)

마가복음 14장 – 겟세마네 기도

그동안 우리 교회 기도의 어머님이셨던 박재순 권사님께서 지난 주일 홀연히 하나님께 가셨습니다. 지난 주일예배 때 오랜만에 오신 낸시 권사님과 두 분이 나란히 앉으셔서 도란도란 말씀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평소와 똑같이 일찍 오셔서 웃음으로 교인들을 맞아 주시고, 아이들을 예뻐해 주셨는데 오늘 예배에 계시지 않으니 무척 허전합니다. 이렇게 금방 가실 줄 알았으면 손 한 번 더 잡아 드리고, 권사님과 마주하며 얘기도 더 나눌 걸 그랬다는 아쉬움도 큽니다. 저희가 권사님께 해 드린 것보다 권사님께서 베풀어주신 사랑과 기도가 더욱 크기에 권사님이 더욱 그립고 마음 한편이 빈 것 같습니다. 하늘나라에서 권사님을 다시 뵐 수 있다는 소망과 영원한 생명으로 인해서 위로받고, 권사님의 뜻을 따라 더욱 열심히 주님과 교회를 섬기기로 다짐합니다.

 

박재순 권사님께서는 평소에 소원하신 대로 오래 앓지 않으시고 기도하시는 중에 주님께 가셨습니다. 94년 일생을 권사님처럼 정갈하게 살다 하나님께 가신 분도 드물 것입니다. 날마다 예수님 만날 준비를 하시면서 90평생을 사신 권사님이셨습니다. 젊은이들을 사랑하셨고, 교회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것을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으시고 말씀대로 감사하고 기뻐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이제 하늘나라에 가셔서 우리 교회를 위해서 그리고 이 땅에서 그러셨듯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참 연약합니다. 죽음이라는 불가항력의 힘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젊고 건강할 때는 모든 일을 자기 마음대로 통제할 것 같지만 금방 한계에 부딪힙니다. 그때마다 우리 자신이 흙으로 만들어진 질그릇임을 실감합니다.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 넣어주셔서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을 뿐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그 날과 그때는 하나님만 아신다고 했듯이 우리 인생의 끝을 알 수 없습니다. 순간순간 예수님 맞을 준비 하면서 맡겨주신 달란트를 열심히 관리할 뿐입니다.

 

지난 한 주간은 죽음 앞에서 속수무책인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며 지냈습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다면 우리의 인생은 죽음에서 끝이 날 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음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이 정도로 존귀하고 실제적인 사역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이제 유월절 만찬을 마치신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기도하십니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천사가 예수님의 기도를 도왔습니다. 인류의 죄를 한 몸에 지고 가시는 예수님께서 그 순간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고뇌의 기도를 드리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기도는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로 끝납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길을 가십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가 살았습니다. -河-

깨어 있으라

지난주 홀연히

우리 교회 최고 연장자이셨고

어머니셨던 박재순 권사님께서 하나님께 가셨습니다.

 

주일 예배는 물론 친교까지

평소대로 밝게 웃으시며 마치고 헤어졌기에

더욱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가족들의 모임에서

축복기도 하시다가 주님께 가셨고

올해 93세를 맞으신 권사님 소원대로

앓지도 않고 하나님께 가셨으니 위로가 됩니다.

 

교회에서

권사님의 위치가 굳건한 기둥처럼 든든했고

준비할 기회도 없이 우리 곁을 떠나셨기에

한 주간 내내 권사님이 그립고 허전했습니다.

 

그러면서

2주 전에 나눴던 마가복음 13장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마지막 날은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닥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깨어서 그날을 준비하는 것뿐입니다.

예수님 말씀이 이렇게 실감이 날 수가 없습니다.

 

어느덧 9월이 되었습니다.

새달을 맞을 때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예수님께서 지금 당장 오셔도

내어 드릴 것이 있는 준비된 삶을 살기 원합니다.

 

주인이 맡겨주신

달란트를 잘 관리하고 선용해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듣기 원합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마태복음 25:21)

Well done, good and faithful servant. You have been faithful over a little;

I will set you over much. Enter into the joy of your master. (Matthew 25:21)

 

하나님 아버지

우리와 함께 하셨던 신앙의 선조들의 신앙과 뜻을 본받게 하시고

저희도 날마다 깨어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9.1 이-메일 목회 서신)

마가복음 14장 – 옥합을 깬 여인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시고, 제자들에게는 형식적인 믿음이 아니라 진실로 하나님을 믿을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믿음이 열린 세계라는 사실과 무한한 믿음의 세계에 들어가는 비결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와 이웃을 향한 용서임도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권위가 있고 생명과 능력이 있었기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럴수록 대제사장들과 서기관을 비롯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직접 예수님께 나와서 난처한 질문으로 예수님을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예수님의 지혜와 권위를 따라잡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을 십자가 못 박아 죽일 것을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포도원을 맡아서 농사짓던 농부들이 주인이 보낸 종들을 능욕하더니 마지막에는 주인의 아들까지 죽이는 비유였습니다. 여기서 주인의 종들이 구약의 예언자들이었다면, 주인의 아들은 예루살렘 지도자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것을 징검다리 삼아서 마지막 종말에 일어날 징조들과 종말을 맞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에 대해서도 알려주셨습니다.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졌듯이 종말은 분명히 올 것입니다. 그렇다고 언제 어떤 방식으로 종말이 오는 가에 지나친 관심을 기울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하나님만 아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종말을 맞고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의 태도입니다. 깨어서 매 순간 예수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삶을 선하고 충성 되게 관리해서 예수님 오셨을 때 기쁜 마음으로 내어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사역 전반부가 마무리되고, 본격적으로 십자가의 길을 가십니다. 하지만 하늘의 지혜와 능력으로 거침이 없으셨던 예수님께서 죄인들이 달리는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오셔서 행하신 말씀, 지도자들과의 논쟁, 그리고 저주받은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사건 등을 보아도 예수님께서 매우 크신 일을 행하실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마음과 발길은 십자가를 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살고 있던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 한 여인이 매우 비싼 향유가 들어있는 옥합을 깨뜨려서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제자들이 3백 데나리온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서 일 년을 일해서 산 향유 옥합입니다. 제자들은 물론 주위에 있던 사람들에게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었습니다. 옥합을 깨서 낭비하기보다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이 낫겠다는 현실적인 의견도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행동을 칭찬하십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특별한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여인의 일이 기억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은 받은 은혜가 감사해서 자신이 가진 것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을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자기가 갖고 있던 동전 두 개를 성전에 드린 과부와 같습니다. 반면에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팔 계획을 세우고, 예루살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순수한 믿음으로 행할 때 예수님의 일에 참여할 수 있음을 여인을 통해서 배웁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 있었던 일들입니다.-河-

이제 말하기를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새벽기도회에서는

시편 120편부터 시작되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를 읽고 있습니다.

 

시편의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시편 120-134편)는

마가복음 연속 설교를 마무리하는 대로

올 하반기에 살펴볼 말씀이기도 합니다.

 

어제 본문이었던

시편 124편은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회상하면서

성전에 올라가는 예배자들의 노래입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If it had not been the Lord who was on our side

 

이집트 군사들이 쫓아오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을 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편에 계시지 않았더라면

이스라엘은 거기서 모두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너게 하셨습니다.

 

물이 없고 칠흑같이 깜깜한 광야 길을 걸을 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편에 계시지 않았다면

40년 광야를 통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낮에는 구름 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시고

반석을 쳐서 물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이스라엘을 구해 주셨고

언제나 이스라엘 편이 되어 주셨습니다.

 

2.

시편 124편을 읽으면서

그동안 우리와 함께 해주시고

우리 편이 되어 주셨던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회상해 보길 부탁드렸습니다.

 

우리 역시 삶의 구비구비마다

하나님의 손길이 임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하나님께서는 절묘한 타이밍으로

자신이 우리 편임을 알려주셨습니다.

 

크고 작은 일 속에도

하나님의 손길이 임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인해 주셨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인생의 골짜기에서,

심지어 무심코 운전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했고,

지금 돌아봐도 시편 기자와 똑같은 고백이 나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If it had not been the Lord who was on our side

 

3.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기억하는 것은

우리가 걸어갈 앞길에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우리 편이 되어 주실 것을 믿고 의지하는 근거가 됩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셨던 일들을 회고해 보고

그것을 발판 삼아서 힘차게 앞으로 나가는

참빛 식구들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지금까지 우리 편이 되어주시고 함께 해 주셨던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8.26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