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참빛
타밈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새벽기도회에서는
잠언을 읽고 있습니다.
어제 읽은 잠언 19장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입술이 패역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
잠언은 무조건 “가난”을 예찬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가난해서 삶이 힘들어지고
심지어 가난이 게으름의 결과라고 몰아붙이기도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의 편에 계시고,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하나님께 꾸어 드리는 것과 같아서
하나님께서 분명히 갚아 주실 것(pay-back)이라고 알려줍니다.
물질 또는 재물도
무조건 나쁘게 매도하지 않습니다.
재물로 친구를 사귈 수도 있고
자신은 물론 이웃이 편안하게 살 수 있다고 알려줍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물질을 잘 사용할 때로 제한합니다.
재물이 많건 적건
그것이 탐욕의 결과요
그릇된 방법으로 모은 것이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엄중하게 경고합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입니다.
2.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에서
“성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톰”입니다.
동사로 쓰이면 “타마”라고 발음하고
형용사는 “타밈”이라고 읽습니다.
어떻게 쓰이든지
성실로 번역된 “타밈”의 의미는
첫째로 완전한 것입니다.
시작한 일을 말끔하게 끝맺는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습니다.
둘째는 건전한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균형을 이룹니다.
불의한 생각이나 행동을 하지 않고,
하나님은 물론 사람 앞에서 떳떳하고 투명한 것이
히브리어 “톰”이 알려주는 건전함입니다.
셋째는 진실입니다.
앞뒤가 같습니다. 겉과 속이 같습니다.
뒤에 숨겨놓은 것이 없습니다.
뒤에서 어떤 일을 도모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집니다.
억지로 핑계를 대거나,
거짓으로 자신의 잘못을 가릴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3.
“가난해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
– 하나님께서 주목하는 사람입니다.
히브리어 <타밈>이
우리 인격과 삶 속에 깃들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거짓과 폭력을 일삼는 입술과 행동이 물러가고
<타밈>이 온전히 세워지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참빛 식구들이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 앞에서
솔직하고 진실하게 살게 하옵소서.
우리가 사는 세상에
주님의 “타밈”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11.3 이-메일 목회 서신)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5: 시편 124편
다섯 번째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시편 124편은 대표적인 감사시입니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성전에 올라오는 발걸음이 항상 감사하고 기쁠 수는 없습니다. 123편에 있었듯이 심한 멸시와 조소를 받고 성전에 오는 발걸음은 솔직히 무겁습니다. 속이 상하니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구할 뿐입니다. 이에 비하면 시편 124편은 감사의 마음이 매우 큽니다.
다윗의 시라는 표제어가 붙어 있습니다. 다윗의 소년기는 감사가 넘쳤을 것 같습니다. 목동 다윗은 악기를 연주하면서 들에서 양을 보살폈습니다. 풍족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부족함도 없었습니다. 막내로 태어났기에 형들보다 부담도 적었습니다.
도리어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면서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10여 년 이상을 광야에서 쫓겨 다녔습니다. 사울 왕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윗을 잡아서 죽일 생각이었습니다. 크게 잘못한 것 없이, 사울의 시기와 질투의 희생양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되었습니다. 30세에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입니다. 다윗은 진심으로 감사했을 것입니다. 왕이 된 다윗은 전쟁에 나가서 승승장구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자신의 이름을 딴 다윗성도 건축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상징인 법궤를 예루살렘에 모셔올 때 옷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춤을 췄습니다.
시편 124편은 다윗이 예루살렘에 왕이 되는 시점의 감사일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하지 않으셨다면 결코 예루살렘에서 왕이 될 수 없었습니다. 수많은 대적이 다윗을 치러 올라왔고 맹렬하게 공격했지만, 다윗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남았습니다.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라”(5절)는 고백을 통해서 그의 고난이 극심했음을 짐작합니다. 이처럼 시편 124편의 감사는 순탄한 적당히 인생을 산 사람의 입술의 감사가 아니라, 죽음의 순간까지 내려갔다가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의 진정한 감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와 민족이 가장 힘든 순간에 소망을 기대하면서 시편 124편을 노래했습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새가 사냥꾼의 올무에 갇힌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그때도 이들은 해방과 자유를 꿈꾸면서 시편 124편을 노래했습니다. 결국70년 포로생활에서 해방되고 자유가 찾아왔습니다. 예루살렘에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편임을 확인하면서 시편 124편을 노래하며 성전에 올라왔을 것입니다. 다윗을 비롯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한결같은 고백은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8절)였습니다. 할렐루야! -河
2016년 10월 5주 주일예배
왕의 직무
좋은 아침입니다.
1.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미국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트럼프가 대통령 선거에 나섰을 때
공화당 후보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냥 웃어 넘길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왔습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힐러리도
국가의 기밀을 사적으로 관리한 것을 비롯해서 정직성이 문제입니다.
워낙 돈 많은 특권층에 속하니
힘없는 서민들 입장에서 아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열흘이 지나면
앞으로 4년을 이끌어갈
미국 대통령이 당선될 것입니다.
기도가 저절로 나옵니다.
현재 조국 대한민국도
대통령과 그 주변 인물들로 인해서
예상치 못한 혼란에 빠져있습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했는데
요즘 지도자들의 모습 속에서
귀감과 품격을 찾기 힘드니
우리 같은 범인들의 마음만 타 들어갑니다.
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왕이 세워지는 걱정하셨습니다.
왕이 세워지면 그들이 백성들을 위해서 일하기 보다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고
백성들을 더욱 힘들게 할 것을 염려하신 겁니다.
그래도 왕이 세워지면
왕 한 명에게 권력이 집중되기보다
제사장과 선지자들이 균형을 맞춰서
세상을 이끌어 가길 원하셨습니다.
구약성경 신명기 (17:14-20)에서
왕의 업무를 구체적으로 알려 주셨습니다.
그만큼 왕업(kingship)을 염려하신 것입니다.
– 반드시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왕으로 세워야 합니다.
타국인은 왕이 될 수 없었는데, 이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신들과 그들이 섬기는 점쟁이를 따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 병마를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을 희생시키는 과도한 군비경쟁이나 전쟁을 피하라는 뜻입니다.
– 아내를 많이 두지 말고,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쌓아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내를 많이 두면 쾌락에 빠지고 도덕성을 상실합니다.
권력을 이용해서 재산을 축적해서도 안됩니다. 왕의 자기관리 능력입니다.
– 율법서를 옆에 두고, 평생 동안 배우고 그대로 지켜 행하라고 했습니다.
왕에게는 하나님 말씀을 비롯한 일정 수준의 지식이 필요합니다.
평생 동안 겸손히 배워야한다는 말씀입니다.
– 교만해져서 백성들을 업신여기지 말고, 계명을 따라서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으면
자손 대대로 왕의 자리를 지키게 될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3.
시대가 바뀌었지만
신명기 말씀이 대통령을 선출하고,
대통령이 정치를 잘하고 있는 지 판단하는 기준을 제공합니다.
절대로 우상을 섬기지 말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충실하고,
자기 관리에 엄격하며
무엇보다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펴라는 것입니다.
조국 대한민국과 우리가 사는 미국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들을 사랑하는 진실된 지도자가 세워져서
나라가 평안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을 막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시편115:13)
He will bless those who fear the Lord, both the small and the great (Psalms 15:13)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지도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 그리고 사랑이 펼쳐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10.28 이-메일 목회 서신)
살아남기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2001년 <타임>지가 선정했던 미국 최고의 신학자입니다. 그는 1940년 텍사스의 시골 마을에서 벽돌공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벽돌 쌓는 일을 배웠습니다. 그런 일은 백인보다 흑인들이 주로 하던 작업이었는데 스탠리의 아버지는 아들이 밑바닥부터 건축 일을 익히기 원했기 때문입니다. 훗날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자신의 신학과 삶을 벽돌 쌓기에 비유해서 이야기체로 풀어냅니다.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목회자가 되려면 대학에 가야 한다는 부모님과 주변의 권유로 텍사스에 있는 조그만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곳에서 자신이 알지 못하던 학문의 세계를 경험하고, 좋은 친구들을 만납니다. 4학년 때는 사교모임에 갔다가 “앤”이라는 여학생을 만나서 일 년 만에 결혼에 이릅니다. 그러나 앤과의 결혼이 자신의 인생에 커다란 짐이 될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스탠리의 아내 앤은 평범한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심각한 정신질환이 있었습니다. 연애 시절부터 은근한 남성 편력이 있었고 때때로 자기 통제가 되지 않아서 화를 내곤 했지만, 스탠리는 아내의 성격과 행동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서 두 사람 사이에는 “아담”이라는 아들도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아내 앤의 성격이 포학해집니다. 조울증이 심해져서 감정 조절이 되지 않고, 때때로 발작까지 했습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스탠리 가정 안에서는 전쟁입니다. 어떤 일이 생길 때마다 아내 앤은 그 책임을 남편인 스탠리에게 돌리면서 남편을 집중적으로 심하게 괴롭혔습니다. 하루도 견디기 힘든 나날이었지만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24년 동안 아내와 아들을 돌봤습니다. 대단한 내공이요 신앙입니다. 결국 아내 앤은 새로운 남자를 찾아서 집을 떠나고, 얼마 후에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자서전 <한나의 아이>에서 자신의 신학 여정과 가정사를 숨김없이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어머니가 구약 성경의 한나처럼 기도해서 스탠리를 얻었기에 자신을 “한나의 아이”라고 불렀습니다. 그의 자서전 <한나의 아이>의 부제는 “어떤 신학자의 회고록”입니다. 텍사스 시골에서 벽돌공의 아들로 태어나서, 예일대학에서 기독교 윤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듀크 대학에서 가르치게 된 학문의 여정을 벽돌 쌓기 하듯이 꼼꼼하고 정확하게 짚어갑니다. 그런데 그가 겹겹이 쌓아가는 인생의 벽돌마다 조울증을 앓았던 아내와 지낸 질곡의 삶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자신이 겪은 어려움을 놓고 답을 찾지 못했다고 솔직히 시인합니다. 아니 찾을 수 없었답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스스로 선택할 겨를도 없이 닥쳐온 우발적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종류가 다를 뿐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어려움이기에 답을 제시하거나 서로 판단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대신에 그는 인생의 페달을 쉬지 않고 밟았습니다. 견디기 힘들었던 개인적 어려움 속에서도 위대한 신학자의 자리에 우뚝 서게 된 비결이었습니다.
“살아남기(survival)”는 그의 자서전에 있는 소제목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심각한 정신 질환을 앓는 사람과 같이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은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살아남지 못한다면 누구도 살아남지 못한다.” 고통의 끝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바라보면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희망의 끈을 붙들고 있게 된답니다.
스탠리 하우어워스 정도는 아니어도 우리도 인생길 여기저기서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갑자기 닥쳐오기도 하고, 서서히 찾아오는데 미처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왜 그런 어려움이 닥치는지 해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해답지 없이 주어진 인생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답이 없다고 체념하거나 질문만 쏟아내지 말고, 끝까지 견디고 결국 살아남는 것이 신앙의 힘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누군가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고 응원하고 있음을 믿으면서 말입니다. (2016년 10월 27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4: 시편 123편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Song of Ascent) 열다섯 편을 연속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번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와서 드리는 예배가 얼마나 거룩하고 신비롭고 귀한 지 깨닫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성전에서 함께 드리는 공동체 예배의 중요성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가정과 일터 그리고 골방에서 각자 드리는 예배의 귀함도 깨닫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주일 설교에서 함께 살펴본 시편을 주중에 여러 번 읽고 묵상하시면 좋겠습니다. 시편 120편부터 시작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를 복습하는 마음으로 다시 읽으시고, 예습하듯이 앞으로 살펴볼 말씀도 읽으시면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깊어지고 하나님께 이를 만큼 높아질 것입니다. 무엇보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로 묶여진 시편 자체가 기도이고 찬양입니다. 하나님께 나오는 우리의 마음을 잘 노래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 볼 네 번째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인 시편 123편은 짧지만 꽤 은혜롭습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던 세 편의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도 은혜로웠지만 오늘 우리가 만난 시편이야말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에 매우 적합합니다. “하늘에 계신 주”로 시작되는 서두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을 연상시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시다는 고백은 모든 것을 아시고, 세상을 뛰어넘으시는 초월자이자 창조주되심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산을 향해서 눈을 들었지만 결국 도움이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온다는 시편 121편의 고백과도 맥을 같이 합니다.
우리는 예배에 와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바라보며 경배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낮의 해와 밤의 달이 해치지 못하도록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세상이 엉망진창으로 돌아가는 것을 안타까운 눈길로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선과 악을 심판하실 하나님이십니다.
123편을 기록한 시편 기자는 세상 속에서 힘겹게 살았습니다. 특히,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다가 하나님께 오는 중입니다. 심한 멸시도 받았습니다. 세상에서 잘난 사람이 멸시하더니 이번에는 자기보다 못해 보였던 사람까지 나서서 조롱하니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내세울 것이 없어 하늘에 계신 주를 바라보면서 성전에 올라오는 길입니다.
그때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키리에 엘레이손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반복해서 기도합니다. 자신을 불쌍히 여겨주시길 바라는 것은 주님께 나오는 사람이 갖는 최고의 겸손이고 간절함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의 자비를 구하는 기도는 교회사에서 가장 아름답고, 간절하고, 솔직하고 깊은 기도였습니다: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河-
2016년 10월 4주 주일예배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3: 시편 122편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1;1)로 성경이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 되심을 선포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둠과 혼돈의 세상에 빛과 질서를 부여하시는 하나님의 창조를 소개합니다. 하늘과 땅을 구별하시고, 하늘에 해와 달과 별, 공중을 나는 새들, 바다의 물고기를 차례로 만들어 가십니다. 공간을 먼저 만드신 후에 살아있는 생물들로 공간을 채워 가시는 과정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자신의 형상을 가진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을 다스릴 책임과 권리를 부여하십니다.
지으신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흡족하고 선한 창조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6일간의 창조를 마치시고 제7일에 안식하셨습니다. 이처럼 창세기 1장의 창조는 6일의 일하심과 마지막 일곱 번째 날의 안식으로 이뤄집니다. 6일의 창조 끝에 안식이 있는 것은 십계명에 있듯이 하나님께서 안식의 본을 보여주신 셈입니다. 어떤 학자는 창세기 1장에서 창조의 목적이 안식일에 있다고 주장할 정도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느 곳에 있든지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제 7일에 안식하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표지(mark)였습니다. 안식일을 중심으로 삶의 리듬과 싸이클을 맞춰 놓은 것입니다. 우리도 6일 동안 세상에 살다가 주일에 교회에 와서 예배합니다. 온 교회가 함께 예배함으로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맞추고, 다시 세상에 나가서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주의 영광을 맛봅니다. 하나님 마음속으로 들어가고, 하나님을 우리 마음속에 모시는 신비롭고 은혜로운 시간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시편 122편은 주의 집에 올라갈 것을 서로 격려하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누군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고 말했을 때, 마음이 기뻤습니다. 주님 앞에 나오는 기쁨입니다. 예루살렘에 올라와 보니 모든 백성이 감사함으로 성전에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감격스러웠습니다.
이처럼 성전에 올라올 때 우리 마음에 감사와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거룩한 신비 속으로 들어가는 기쁨입니다. 감사와 기쁨은 함께 갑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기뻐하고, 기뻐하는 사람은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음이 감사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해 주신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6일 동안 하나님 백성으로 살게 하시고, 낮의 해와 밤의 달이 해치지 못하도록 보호해 주심이 감사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의 평안을 구합니다. 샬롬 – 평안은 개인으로 말하면 몸과 마음은 물론 영이 온전한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다툼과 시기와 갈등 없이 더불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은 평안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때 임하는 평안입니다. 감사와 기쁨, 평안과 복이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을 예배하는 참빛 식구들 위에 임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