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 : 예수님의 하루

올해 속회공과는 마가복음입니다. 속회를 한 달에 한 번 모이다 보니 성경공부가 이어지기 힘들고, 앞에서 배운 내용을 기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올해의 남은 주일에 속회에서 공부했던 마가복음 본문을 갖고 설교하려고 합니다. 속회에 참석하셨던 분들에게는 복습과 심화학습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속회에 참석하지 못했던 성도님들은 뒤늦게나마 속회공부를 하실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마가복음을 마태와 누가복음과 함께 공관복음(共觀福音,Synoptic Gospels)이라고 부릅니다. 비슷한 내용과 관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요한복음을 제4복음서라고 부르는데 공관복음과 달리 예수님을 로고스(말씀)로 설명하는 등 내용과 구조에 차이가 있습니다.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사역을 갈릴리에서의 순환사역과 예루살렘에서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크게 구분합니다. 갈릴리 사역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직진사역도 물론 포함합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사역을 간략하고 빠른 속도로 전합니다. 마태나 누가복음과 달리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기록을 생략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막1:1)는 선포와 함께 복음서가 시작됩니다.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 가서 시험받으신 사건도 짤막하게 알려줍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을 다니시면서 전하신 복음의 핵심은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구약에서 예언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때가 되면 메시아가 오시고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이심을 세상에 알리시면서 갈릴리 사역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특별히 마가복음 1장에는 예수님의 일과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꽉 찬 일정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사와 이적을 본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기에 휩쓸리지 않으시고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시는 데만 주력하셨습니다. 갈릴리 호수 해변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 세베대의 아들인 요한과 야고보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귀신들도 굴복하는 “권위 있는 새 교훈” (막1:27) 이었습니다. 회당에서 나온 예수님께서 시몬의 장모는 물론 소문을 듣고 찾아온 병자들을 밤늦도록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 밝기도 전에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로 세상에 오셨지만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을 입으셨기에 세상에 계시는 동안 하나님과 깊은 교제가 필요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바쁜 일정을 하나님의 뜻대로 소화하신 비결이자 힘이었습니다.
올해도 두 달 남았습니다. 분주한 연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쁠수록 예수님을 본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조용한 시간을 갖고 거기서 힘과 지혜를 얻기 원합니다.-河-

준비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월요일에 비가 오더니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물론 샌프란의 겨울철 날씨가 된 것인데

갑자기 온도가 떨어지고,

써머타임까지 해제되면서 밤이 빨리 오니

이상하게도 더 추워지는 듯합니다.

새벽에 교회가 무척 춥습니다.

미처 히터를 준비하지 못해서

오늘 처음으로 히터를 틀었더니

기름 냄새가 올라옵니다.

문을 활짝 열고

미리 준비해 놓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뒤늦게 히터를 돌려서 냄새를 없앴습니다.

2.

에베소서 마지막 시간에 배운

하나님의 전신 갑주가 생각납니다.

서서,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했습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패, 평화의 복음의 신발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입니다.

로마군대를 목격한 요세푸스라는 유대인 역사가는

로마 군대가 연병장에 모여서 열심히 연습하고

“우리는 준비되었습니다”라고 외치는 것을 보면서

로마 군대의 대단함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에베소서에 나오는

하나님의 전신갑주 역시

바울이

당시 로마 군인들을 생각하면서

도입한 개념일 것입니다.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준비한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닥쳐도 의연하게 대처하고

기쁜 일을 만나면 하나님께 먼저 감사합니다.

3.

날씨가 추우니 환절기 감기가 염려됩니다.

권사님들과 어르신들,

갓 태어난 승호(이재웅/조선미 가족)부터 아이들도 건강하길 기도합니다.

행여나

독감 예방주사(flue shot)를 아직 맞지 않으셨으면

서둘러 감기 예방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기도로 준비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믿음으로, 지혜롭게

매사에 준비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1.5 이-메일 목회서신)

스스로 겸비하여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새벽에는 역대하 12장을 읽었습니다.

“백성을 번성하게 하다”는 뜻을 가진 르호보암 왕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아버지 솔로몬의 후광과

남과 북으로 갈라졌지만,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나라를 견고히 세워갑니다.

17년 동안 왕위에 있었던 르호보암으로서는

절정기를 맞이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신앙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신앙은

아래 있을 때는 좀처럼 무너지지 않습니다.

힘들 수록 더욱더 하나님을 찾게 되고 의지합니다.

그런데 위에 올라가면 하나님을 잊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귀찮아지고, 하나님보다 자신이 왕이 되고 싶어집니다.

좋은 것은 쉽게 전파되지 않지만

나쁜 것은 전염속도가 빠릅니다.

르호보암이 하나님 말씀을 떠나자

백성들도 모두 르호보암을 따라서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르호보암의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해지매

그가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받은지라 (역대하 12:1)

When the rule of Rehoboam was established and he was strong,

he abandoned the law of the Lord, and all Israel with him. (2 Chron 12:1)

르호보암이 나라가 견고해 지고 세력이 강해질수록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2.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을 떠나면

즉시 심판이 찾아왔습니다.

르호보암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이집트의 왕 시삭이 쳐들어왔습니다.

그때 르호보암과 신하들이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께 나와서 엎드립니다.

이에 이스라엘 방백들과 왕이 스스로 겸비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의로우시다 하매 (대하 12:6)

Then the princes of Israel and the king humbled themselves and said,

“The Lord is righteous.”(2 Chron 12:6)

“스스로 겸비하여” –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회개했습니다.

“여호와는 의로우시다’ – 하나님을 버렸더니 곧 바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무서운 분이고, 공의로운 분임을 고백합니다.

르호보암의 겸손과 회개를 보신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마음이 꽤 약하신 것 같습니다.

아니

“겸손과 회개”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3.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낮추고,

겸비하게 행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일일 잘 되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자신 마음대로 사람들이나 환경을 통제할 수 있을 때

즉 하나님이 필요없을 때,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낮추는 것이 진정한 신앙입니다.

평소에 준비하고 훈련해 놓치 않으면

정작 높아졌을 때

르호보암과 같은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성향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 앞에서 스스로 겸손하고

이웃들을 배려하면서 빛의 자녀로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이 어떠하든지

주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한 마음과 태도를 갖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0.29 이-메일 목회서신)

책 사재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우리 집 근처에

매우 좋은 공공 도서관이 있습니다.

스페인식 건물이 안정감있게 자리잡았습니다.

안에 들어가면 왠지 저절로 공부가 될 것 같은 건물입니다.

그곳에서 논문도 마무리했고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러 가곤 했던 추억의 장소입니다.

분위기가 익숙하니 집중이 잘 되어서 자주 찾곤 합니다.

제가 동네 도서관을 자주 가는 이유가 한 가지 더 늘었습니다.

올해 부터 거기는 늘 북 세일을 합니다.

공공 도서관이 날을 잡아서 북 세일을 하는 것은 미국의 관행인데

그 도서관에는 책을 파는 섹션을 따로 설치해 놓았습니다.

그 곳에는

제가 좋아하는 신앙서적과

언젠가 꼭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싶은 미술서적들이 심심치 않게 나옵니다.

가격은 대략 1-3불 사이입니다.

그러니 갈 때마다

관심있는 책들을 대여섯권씩 사옵니다.

뿌듯한 마음으로.

책사재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읽지 않은 책들이 점점 늘어갑니다.

언젠가 읽을 것 같지만

어쩌면 서재 한 켠에 쌓아 놓기만 할 수도 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책을 그만 사고

갖고있는 책들이나 모두 읽자.”

물론 지키지 못할 결심인 줄 알지만

좋아라하고 책을 사놓기만 하고

읽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사치라는 생각이 듭니다.

책 사재기에서

책 읽기 모드로 전환해야 겠습니다.

2.

여러분들도 저와 비슷할 수 있습니다.

집집마다 성경책들을 몇 권씩 갖고 계십니다.

신앙서적도 마찬가지구요.

이것 저것 재놓고 사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교회를 떠날 때는

한 주간 하나님과 더불어 살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제가 책을 사놓고 읽지 않듯이

결심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에 게으름을 피웁니다.

생각은 넘쳐나는데

실제로 행함이 부족합니다.

신앙은 생활입니다.

배우고 자라면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어느 덧 10월도 마지막을 향해서 달려갑니다.

계획했던 것들

꼭 하고 싶었던 마음의 소원들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생각만 하고 있던 것들

한 두가지라도 실제로 실천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우리들 손과 발로,

삶 속에서 실제로 경험하고 실천해 보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깊은 물과 같은데

슬기로운 사람은 그것을 길어 낸다 (잠언 20:5)

The purpose in a man’s heart is like deep water,

but a man of understanding will draw it out. (Prov 20:5)

하나님 아버지,

미루었던 일들과

마음의 생각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0.22 이-메일 목회서신)

잊혀진 것들

10월이 되면 한국의 한 대중가요 가수가 부른 <잊혀진 계절>이라는 노래가 생각납니다. 어떤 이가 10월의 마지막 밤에 사랑하는 이와 헤어졌습니다. 얼떨결에 서로 이별에 합의했는지 한마디 변명도 못 하고 헤어진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그 노래의 가사처럼 10월이 되면 잊혀진 사람들이 생각나고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종종 멍하니 상념에 젖곤 하는 것이 어느 가을날 우리네 모습입니다.

시간이 날아가는 화살과 같다는 말이 실감 나는 요즘입니다. 시간만 빠르게 흐르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도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현실이 됩니다. 심지어 화성에 사람을 보내겠다는 계획도 이미 진행되고 있어서 수천 명의 사람이 화성이주를 신청했습니다. 이처럼 공상 과학 영화에서나 꿈꾸던 일들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세상이 좋아져도 “옛날에는 이랬었는데”하는 추억들이 마음 한편에서 새싹처럼 돋아납니다. 엊그제 낙엽이 지기 시작한 동네를 아내와 함께 산책하면서 옛날얘기를 나눴습니다. 30년 전만 해도 공중전화기가 일반적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거실에 전화기 한 대 있을 때이니 용건만 간단히 말하고 끊어야 했습니다. 어쩌다가 아내 혼자 있을 때 전화를 하면, 길게 통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중전화를 거는 저에게 문제가 생깁니다. 동전이 떨어졌습니다. 뚜-뚜-하는 소리가 아내와 저를 매정하게 갈라놓습니다. 아쉬움에 발길을 돌리곤 했습니다.

요즘은 사전도 거의 사라졌습니다. 학창시절에는 무조건 영한사전을 가방에 넣고 다녔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면 알파벳과 함께 발음 기호를 익혔습니다. 그래야 사전을 찾고 단어 옆에 있는 발음기호를 따라서 영어 단어를 발음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손때가 묻어서 사전 옆구리가 까맣게 변해가고 돌돌 말린 것이 공부한 흔적입니다. 도시락 반찬에서 흐른 김칫국물이 사전을 덮쳐서 색깔도 변하고 냄새가 배기도 합니다. 비장한 각오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사전을 통째로 외우겠다는 것입니다. 한장 한장 찢어서 외우기도 하고, 가끔 괴짜들은 사전을 먹겠다고 했습니다. 사전을 옆에 펼쳐놓고 두꺼운 영어책을 읽고 있으면 저절로 지성인이 된 듯했습니다. 요즘은 사전을 찾을 일이 없습니다. 똑똑한 전화기 스마트 폰 덕분입니다. 구글에 모르는 단어를 입력하면 발음 기호를 해독할 필요도 없이 원어민 발음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옵니다. 그래도 종종 손때 묻은 사전이 그립습니다. 단어를 찾고 발음기호를 표시해 놓으면서 영어 공부하던 때가 더 학구적으로 생각되는 것은 제가 나이가 들었다는 표시일 겁니다.

잊혀진 것들 가운데 한 가지가 더 생각납니다. 파란색과 빨간색 줄로 둘레가 쳐진 국제우편 편지봉투입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편지를 보낼 때는 꼭 그 봉투를 사용했습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모두 그렇게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손글씨로 정성껏 써내려간 편지입니다. 편지를 읽으면서 고국에 계신 부모님들과 친지들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부모님의 음성이 귓가에 들립니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훔칩니다. 지금은 편지는 물론 손글씨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엄지손가락만으로 셀폰 메시지를 보내고, 컴퓨터 자판으로 편지를 씁니다. 손글씨를 쓰려고 하면 옛날 같은 정감어린 필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삐뚤삐뚤 줄도 맞지않고 글씨체도 엉망입니다.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는 정성이 있었고, 그렇게 쓴 편지를 읽는 감동이 있었는데 어느덧 마음속의 추억이 되었습니다.

잊혀지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편리해져서 좋지만 그래도 추억이 깃든 옛것들이 잊혀지는 아쉬움과 섭섭함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잊혀지고, 어르신들이 한 분 한 분 하늘나라로 이주해 가실 때는 저도 모르게 눈시울을 적십니다. 이것이 인생이고 세상사인 줄 알지만 그래도 지난날의 추억들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싶습니다. 그리고서 다가오는 새로운 세상을 반갑게 맞고 싶습니다. 구식이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더욱 내려앉을 테니까요. 아니 지금 우리가 최신식이라고 여기는 것도 조만간 구식이 될 겁니다. 그렇다면 변하는 것에 마음을 두기 보다 영원한 진리,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마음을 쏟아야겠습니다.(2015년 10월 22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에베소서 (17) : 하나님의 전신갑주

에베소서를 갖고 지난 4개월 이상 연속해서 설교했습니다. 이번에는 차례대로 살펴보지 않고 몇 개의 주제로 나눠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처음 두 달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에베소서의 처음 여섯 구절을 설교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성도,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신실한 자들”이라는 말씀이 가장 마음에 남습니다.

그다음에는 에베소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를 통해서 성도의 신앙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부르심의 소망과 기업의 풍성함을 발견하고, 지극히 큰 능력 가운데 살기를 소원한 바울의 기도였습니다. 무엇보다 속사람이 강건해 지고 모든 성도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기를 재차 기도했습니다.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기도와 우리들의 기도 사이에 간격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없어질 것들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영원히 계속될 진리를 구하는 기도가 되길 원했습니다.
세 번째 큰 주제는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 자체가 기적이요 선물입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믿은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선택해 주셨다는 말씀 앞에 저절로 감사가 나왔습니다. 선한 일을 위해서 지음 받았고, 그 선한 일은 하나님을 위한 예배로부터 세상 속에서 행하는 모든 일이라고 배웠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 앞에서 선한 일들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작은 일부터 하나님 앞에서 행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마지막 주제는 “빛의 자녀들”이었습니다. 빛의 자녀들의 표시인 “착함, 의로움, 진실함”은 이제 쉽게 기억하실 겁니다. 빛의 자녀들이 모인 교회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서로 결합하고 연결되어서 모두 함께 예수님을 충분히 닮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빛의 자녀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셨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일상 속으로 파송하시고 그곳에서 빛으로 살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았습니다.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에베소서 마지막 시간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두 가지 영적인 세력의 충돌을 소개합니다. 빛과 어둠입니다. 빛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생명입니다. 어둠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욕심에 갇혀서 죽음으로 치닫는 세상입니다. 어둠을 다스리는 세력을 공중 권세 잡은 자(엡2:2)라고 불렀습니다. 에베소서 마지막 장에서는 어둠의 통치자들을 마귀라고 부르면서 이들과 대항하기 위해서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부탁합니다. 세상에서 펼쳐지는 일들 같지만, 신앙의 눈으로 보면 영적인 싸움입니다. 영적 전투라고 불러도 좋겠습니다. 그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당시 로마 군인들이 완전무장을 했듯이 그리스도인들도 영적으로 무장하라는 권면입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평안의 복음으로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부탁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바울 자신을 위해서까지 기도하라는 것을 보면 기도의 중요성은 물론 영적 전투의 심각함을 발견합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군사로 잘 준비해서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기 원합니다 -河-

에베소서 (16) : 빛의 자녀들 4

“빛의 자녀들”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에베소서에서는 우리가 전에는 어둠이었는데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참빛되신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심으로 빛이 된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빛의 자녀라고 부르면서 빛의 열매를 맺으라고 부탁합니다. 이처럼 에베소서 5:8-9절에서는 어둠에서 빛으로, 빛의 자녀에서 빛의 열매로 유사한 단어들이 반복해서 등장하면서 우리가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졌으며, 빛에 걸맞은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빛의 열매를 뜻하는 세 가지 덕목들인 <착함> <의로움> <진실함>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 가지 덕목들은 하나님의 속성이자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성품들입니다. 빛의 자녀들이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함은 물론, 세상을 향해서 하나님의 빛을 비추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향해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도 의미심장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빛으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끼리 즐기라고 빛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우리들 각자를 빛으로 세상에 파송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빛을 등경아래 숨겨놓으면 안 됩니다. 등경 위에 올려놓고 세상을 밝혀야 합니다.
성경에서 세상을 어둠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영역입니다. 아니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어둠입니다. 우리는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보냄을 받았습니다. 성경대로 하면 예수님께서 빛을 비춰주셔서 우리가 주님 안에서 빛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는 곳은 어둠이 물러가고 밝은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그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들 신앙은 교회가 아니라 세상에서 판가름이 납니다. 교회 안에서는 부족해도 상관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 빛을 비추려고 경쟁할 이유도 없습니다. 교회에서는 세상 속에서 빛이 되기 위해서 준비할 뿐입니다. 세상 속에서 빛으로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빛이기 때문이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에베소서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3장은 어떻게 빛의 자녀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후반부인 4-6장은 빛의 자녀들의 삶에 대한 말씀입니다. 전반부가 이론이라면 후반부는 적용인 셈입니다. 빛의 자녀들은 교회 안에서 신앙의 동료들 간에 거짓없이 진실되게 지내야 합니다. 주님의 공동체인 교회를 한마음으로 세워가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빛으로 살아야 합니다. 가정에서 부모와 자식들, 부부간에 빛의 자녀답게 서로 사랑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가정은 배운 것을 실천하는 최고의 장(場)입니다. 부부간에 사랑으로 대하고, 부모와 자식 간에도 존경과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일터에서도 빛의 자녀들의 삶이 드러나야 합니다. 직장 속에서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주님께 하듯이 동료들을 대하고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시간을 아끼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기회를 잘 사용해야 합니다. 그 비결이 성령 충만인데, 그때 빛의 자녀로서 최고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河-

열정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은

류집사님 초청으로 <beGlobal 2015>라는

스타트-업 회사들의 발표회에 다녀왔습니다.

류집사님의 비손 콘텐츠는

톱 10회사 가운데 하나로 뽑혀서 발표까지 했습니다.

자랑스러웠습니다.

그곳에 가니

저처럼 50대로 보이는 분들을 만나면 반가울 정도로

대부분 20-30대 젊은이들이었습니다.

새롭게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분들과

유망한 회사를 찾으려는 투자자들까지

눈들이 반짝 반짝하고 열정이 넘쳐 보였습니다.

무한경쟁의 스타트-업 세상에서

수익을 올리고 살아남는 것이 쉽지 않을텐데

아이디어와 비전, 그리고 열정을 갖고 도전하는

젊은이들 가운데 있으니 그 열기가 제게도 전해 지는 듯 했습니다.

2.

무엇이든지 열정(passion)을 갖고 임하는 것은

가치있고 멋진 일입니다.

성패가 어찌 되었든

새로운 세상에 도전하고

자신의 꿈과 열정을 펼쳐보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속에서부터 타오르는 열정입니다.

제가 예전에 읽었던

그렉 로리(Greg Laurie)목사님의 책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지난 주에 빛의 자녀들이 세상 속에서 살기 위해서

성령충만해야 한다는 말씀과 같은 맥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능력을 감정적으로 느끼라고 주시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할 수 있도록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실제로 힘이 있습니다. 감정적인 느낌이 온다면 그것도 마음껏 누리십시요. 하지만 행여나 특별한 느낌이 없다고 주춤거리지 말고,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하라고 하시는 일을 그대로 행하십시오.” (Greg Laurie, Passion for God, 23)

God didn’t pour out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to make us feel something but to help us accomplish something. God’s power is practical power. Enjoy the good feelings when they happen, but don’t let the lack of feelings prevent you from stepping out in the power of the Spirit to do what God wants you to do.

그렉 로리 목사님은 다이나마이트(dynamite)와 발전기(dynamo)를 비교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이 어떤 때는 다이나마이트처럼 폭발적으로 임하지만

대부분은 발전기처럼 지속적으로 임한다고 말합니다.

폭발적이든지,

은근하고 지속적이든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령충만하길 원하시고

그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주님을 향한 열정,

하나님께서 부르신 세상을 향한 열정,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열정을 마음에 간직하고,

오늘 하루도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면서

열정적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열정,

성령 충만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0.15 이-메일 목회서신)

약이 되는 말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은 한국 시간으로

10월 9일 한글날입니다.
세종대왕께서 모든 백성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한글을 창제하신 지 569주년이 되었습니다.
<훈민정음(訓民正音)>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입니다.
우리 말 한글은

말도 예쁘고, 소리를 내는 입모양도 좋고

자음과 모음으로 거의 모든 소리를 표시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세종대왕께서는

일반 백성들에게 글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한글 창제를 포기하지 않으셨다고 전해 집니다.
요즘은

한글이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한 쪽에서는 한글이 망가지고 있다고 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한글이 확대발전하고 있다고 하는 논쟁도 있는데

이왕이면 아름다운 한글을 잘 보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글,

“으뜸가는 글” “하나 밖에 없는 글”이라는 뜻 그대로 말입니다.
2.

요즘 수요예배에서 배우는

잠언에서는 유독 입술의 말에 대한 교훈이 많이 나옵니다.
글 뿐만 아니라

입술로 하는 말도 그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겠지요.
어제는

잠언에 자주 나오는 세 가지 표현들인

“마음” “말” “길”을 자동차 운전에 비유해서 설명해 보았습니다.
마음이 엔진이고

길이 자동차가 달려야 할 도로이자 목적지라면

말은 운전대와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무리 엔진이 고급이고

가야할 목적지가 분명하고 길이 평평해도

똑바로 운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야고보서에서 혀를 배의 키에 비유했는데

우리들 입술의 말이 바로 자동차의 운전대와 비슷하기에

말에 대해서 그토록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3.

잠언 15장 4절에서

온순한 혀는 생명나무라고 했습니다.

(a gentle tongue is a tree of life).
여기서 “온순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의미 속에는

“치유하다”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말 속에 치유기능이 있다는 것은

그 동안 많이 경험했습니다.
누군가 해 주는 말 한 마디에 위로받고

힘을 얻습니다.

스스로에게 하는 말 속에서도 왠지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러고보니 온순한 혀는 잠언 말씀 그대로

생명나무임에 틀림없습니다.
잠언 15장 22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도 있습니다.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To make an apt answer is a joy to a man,

and a word in season, how good it is!
때에 맞는 말은

경우에 맞게, 적절하게 하는 지혜로운 말입니다.
어디 말만 그렇겠습니까?

한글날인데 우리가 일상 생활 속에서

쓰는 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예의바르고 격에 맞는

글을 쓰고

말을 하는

빛의 자녀가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가 쓰는 입술의 말이

우리들 자신은 물론 이웃을 살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0.8 이-메일 목회서신)

에베소서 (15) : 빛의 자녀들 3

“빛의 자녀들”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빛과 어둠을 비교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졌다고 알려줍니다. 어둠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고집과 욕심대로 행하던 상태입니다. 어둠 속에 그리스도께서 거하실 수 없습니다. 반면에 빛은 예수님을 마음에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속에 들어온 상태입니다. 빛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비추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빛이 되었습니다.

빛의 열매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입니다. 착함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착하다면 사람들 앞에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속에서 착하다는 평판을 듣는 사람들입니다.

의로움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바른 상태입니다. 죄로 인해서 우리의 의로움은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 안에 깊이 자리잡고 있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고, 그 은혜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죄의 구름이 걷히고 하나님과 소통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상태가 의로움입니다. 진실함은 거짓이 없는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참된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 역시 진리의 영입니다. 이처럼 삼위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하나가 참됨(진리)입니다. 따라서 빛의 자녀들인 그리스도인들 역시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튼튼하고 세상 속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를 맺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이 세 가지를 그리스도인의 표지(마크)라고 말합니다.

빛의 자녀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물론 완벽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빛의 자녀가 되었지 행동이나 업적으로 빛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빛의 자녀답게 행하려고 노력합니다. 빛의 열매를 맺으려는 마음과 의지가 강력합니다. 교회로 모인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입니다.

빛의 자녀들은 교회에 모여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봉사의 일을 하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준비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 믿은 것에 하나가 되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길 소망합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어린아이의 신앙을 벗고 그리스도를 충분히 닮은 빛의 자녀들이 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사랑 안에서 모든 참된 것을 행하는 멋진 그리스도인들로 세워줍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훈련소와 같고,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와 같습니다.

빛의 자녀들인 성도들은 교회의 예배와 배움에 기쁨으로 참여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들이 서로 연결되고 결합되어서 그리스도를 배우고. 그리스도에게 이르도록 자라갑니다. 그래서 교회를 공동체라고 부릅니다. 더불어 살아가고 함께 주님을 찬양하는 빛의 자녀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세상 속에서 빛으로 살려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곳입니다.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 끊임없이 배우고 자라가는 모임입니다. 그 안에서 주님의 임재와 도우심을 경험합니다. 할렐루야.-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