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3

좋은 아침입니다.

1.

올해가

13일 남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매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365일이라는 시간을 인생의 저금통장에 넣어주십니다.

365일은 그해에 모두 써야 합니다.

한 해가 지나면 저절로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일 년을 365일로 계산한 달력을 사용한 이래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부여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사용하는 모습은

사람마다 다양합니다.

시간을 사용해서 나온 결과물도

각기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맘때가 되면

한 해를 돌아보게 마련입니다.

아쉬움이 제일 먼저 밀려옵니다.

“이렇게 해야 했는데”

“저렇게 해야 했는데”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뭅니다.

하지만

어떤 길을 걸어가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아쉬움은 남게 마련입니다.

특히 세상의 잣대를 사용하거나

남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아쉬움은 더 크게 밀려올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판가름납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올 한 해 어떤 마음으로/어떤 태도로 살았는지

세심하게 살피실 것입니다.

“착하고 충성된 삶”이 하나님께서 보시는 기준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삶을 살았다면,

처음과 끝이 동일하게 성실한 삶을 살았다면

아니 그렇게 살려고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했다면

결과에 상관없이 합격입니다.

3.

올해 남은 13일도

하나님 앞에서 착하고 충성 되게 살기 원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고

“예수님의 옷을 입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13일이 지나면 2016년 새해가 됩니다.

그러고보니 새해까지 D-13입니다.

성탄과 송구영신의 계절에

착하고 충성스러운 태도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앞길을 미리 예비해 놓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새해를 맞기 원합니다.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잠언21:31)

The horse is made ready for the day of battle,

but the victory belongs to the Lord. (Proverbs 21:31)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새해를 맞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2.17 이-메일 목회서신)

꿈 같은 인생

좋은 아침입니다.

1.

한 달에 한 번씩

존 웨슬리를 전공하신 신학교 은사님을 모시고

우리 지역 목사님 몇 분들과 함께

웨슬리 설교를 읽는 모임을 갖습니다.

웨슬리가 1700년대 인물이어서

그의 설교가 구식인 면이 있지만

의외로 오늘 날 우리에게 도전을 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웨슬리는 의학이나 과학에도 정통해서

당시의 과학지식을 갖고 복음을 전하기도 했고,

영국의 경험론을 반박하면서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강조하고

동시에 지나친 열광주의 대신에 냉철한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무엇보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실 때

믿음이 견고해 지고,

그 힘으로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성화(거룩함 sanctification)를 강조했습니다.

연말이 되면

구세군에서 자선냅비를 갖고 구제금을 모금하는데

(구세군 자선냄비 전통이 샌프란에서 처음 시작되었답니다)

구세군 역시 웨슬리의 사회참여와 자선활동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2.

오늘 읽은 웨슬리의 설교 제목이

“꿈 같은 인생(Human life is dream)”이었습니다.

웨슬리는

우리의 인생을 꿈에 비유합니다.

우리가 현재 꿈속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꿈에서 깨는 순간은

이다음 하나님 앞에 설 때입니다.

그때 하나님을 믿는 우리 앞에

영원한 현실이 펼쳐질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꿈같이 허무할 수 있으니

세상 것들에 너무 연연해 하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웨슬리의 설교를 읽으면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꿈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세상의 삶에서 한 걸음 떨어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인생의 꿈이 끝나고 여러분이 깨었을 때 이 모든 것[영원한 세계에 있는 주님의 아름다움]이 나타난다면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이런 장면을 마음속으로 상상해 보십시오. 주님의 형상대로 새롭게 되어 깨어난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들은 진실로 견고하고, 타락하지 않으며, 시들지 않는 기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잠시 잠깐 멈춰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내려놓고

영원에 삶의 시간표를 맞춰보시기 바랍니다.

더불어

이왕 꿈 같은 인생이라면

주님 안에서 멋진 꿈을 꾸면서 새해를 맞기 원합니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골3:4)

When Christ who is your life appears,

then you also will appear with him in glory. (Colossian 3:4)

하나님 아버지,

몸과 마음이 바쁜 연말을 지내면서

하나님 백성으로 우리의 본문을 잊지 않게 하시고

주님과 함께 영광중에 나타날 소망을 간직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2.10 이-메일 목회서신)

다사다난

좋은 아침입니다.

1.

추수감사절은

1620년 미국에 도착한 청교도들이

첫해 수확을 하고 감사의 예배를 드린 것에서 유래했으니

40여 년 동안 지켜 온 미국의 가장 큰 명절입니다.

추수감사절 전날

백악관에서는 흥미로운 행사가 열립니다.

칠면조 한 마리를 풀어 주는

터키 사면식(turkey pardoning)입니다.

혹자는 링컨 대통령이,

혹자는트루먼 대통령, 케네디 대통령부터 시작했다고 하지만

이 행사를 정례화한 사람은

조지 부시 (아버지) 대통령이랍니다.

어제도 오바마 대통령이 두 딸과 함께

백악관에 뽑혀 온

터키를 사면해 주었습니다.

2.

해마다

약 4천5백만 마리의 터키가

추수감사절 식탁에 오릅니다.

정확한 유래는 설왕설래하지만

아마도 죽어가는 그 많은 터키를 위로하려는(?) 마음으로

백악관에서 한 마리 터키를 (사실은 후보까지 두 마리)

대표해서 살려주게 된 것 같습니다.

추수감사절 터키는 특정 농장에서 7월쯤 부화한 새끼들 가운데 응모해서

행사 기간 동안 순하게 있을 우량 터키를 선정합니다.

보통 몸무게가 40파운드를 넘고, 날개 길이가 6피트 이상입니다.

올해의 터키는

우리 지역 근처 모데스토(Modesto) 농장에서 길러졌습니다.

대통령 앞에 앉아 있던 터키가 “정직”이고

후보로 뒤에 있던 터키 이름은

“아베(Abe, 링컨 대통령의 별칭)였습니다.

백악관에서 실시한 트위터 공모에

캘리포니아 아이들이 많이 참여했고,

두 마리 터키를 선정하는 과정에도 아이들의 의견이 반영되었답니다.

사면된 터키들은

해마다 각기 다른 농장으로 옮겨져서 여생을 마감하는데

체중을 너무 불린 나머지 심장마비나 건강상의 이유로

이듬해 추수감사절까지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3.

대통령은

터키 사면식을 하면서 덕담을 하거나 조크를 합니다.

올해 오바마 대통령은

얼마 남지 않은 임기가 아쉬웠는지,

빨리 커 버린 딸을 보면서 흐뭇했는지,

아니면 흰색 터키를 보면서 하염없이 늘어난 자신의 흰머리를 생각했는지

다음과 같은 조크를 했답니다:

“터키는 날지 못하지만, 시간은 날아갑니다

(Time flies, even if turkeys don’t).”

오바마 대통령은 터키 사면식을

아주 달갑게 생각하는 편은 아닙니다.

왜 하는지 의미가 혼란스럽다는 식입니다.

그래도 전임 대통령들이 했으니 특유의 농담을 하면서

“정직”과 “아베”를 살려 준 것입니다.

4.

초등학생들이 올해의 터키에게

“정직”이라고 이름을 붙여준 것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정직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정상이 정상으로 여겨지고,

솔직히 정직하게 살면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두 눈을 가진 원숭이가

한 눈 가진 원숭이 마을에 가서

한눈을 감고 살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수요예배에서 배우는 잠언에서는

끊임없이 “정직”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솔직하게, 정직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바른 삶이라는 교훈입니다.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잠15:8)

The prayer of the upright is acceptable to him. (Proverbs 15:8)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합당이 여기시는 기도를 드리기 원합니다.

5.

그나저나

어제 사면을 받은 “아베”와 “정직”이

남은 생을 편안하게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참빛 식구들 모두

추수감사절 연휴를

감사와 평안 가운데 보내시고

주일에 기쁜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연휴동안 참빛 식구들께 쉼을 주시고

힘차게 새 달을 맞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1.26 이-메일 목회서신)

감사 일기

*좋은 아침이라는 인사를 생략했습니다. 어제 LA에서 일어난 총격사건과 샌프란 시내에서 경찰들이 범죄 용의자에게 가한 총격까지 안타까운 일들이 연일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을 위해서 기도하기 원합니다.

1.

10년 째 지역신문에

종교인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제 칼럼이 나가는 주가

매월 마지막 목요일이다보니

매년 추수감사절에 칼럼을 써야 합니다.

처음에는 추수감사절의 유래에 대한 글을 쓰고

해가 지나면서

추수감사절과 관련된 일화들을 소개했습니다.

특정 절기 때마다

매년 다르게 설교를 하는 것이나

관련된 글을 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새삼 깨닫습니다.

2.

올해 저는 <감사일기>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맞고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감사의 제목을 하루에 다섯 가지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또 감사의 마음을 가족이나 가까운 이웃들에게 표현하자는 주제였습니다.

칼럼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감사일기 쓰는 방법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감사일기는 구체적으로 기록해야 합니다. “좋은 아내, 좋은 가족”처럼 제목만 나열하면 감사일기가 무미건조해 지고 멀지 않아 일기장을 덮게 될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아내가 맛있는 김치찌개를 끓여주어서 감사했다” 또는 “밖에서 기분 상하는 일이 있었는데 집에 들어오자마자 딸아이가 달려와서 허그해 주어서 고마웠다”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써야 합니다.
두 번째는, 하루에 다섯 가지씩 감사의 이유를 찾아서 일기장에 적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다섯 가지를 찾기가 쉽지 않고, 매일 같이 비슷한 내용만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감사 제목을 찾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평소에 스쳐 지나가던 일들 속에서 감사의 제목을 찾아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일기장 밖으로 나가서 하루에 한 번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감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감사 전도사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감사가 습관이 되고, 성품에 녹아들어서 인격이 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올 한 해도 한 달 남짓 남았습니다. 추수감사절에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매일같이 감사일기를 쓰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면 좋겠습니다. 열 명의 문둥병자 가운데 한 명이 예수님께 왔듯이 적어도 일 년 중 마지막 한 달을 감사의 달로 만들어 보는 것입니다. (2015년 11월 26일 SF 한국일보 종교칼럼)”
3.

일기를 쓰는 것은

신앙은 물론 우리들 삶에 매우 유익합니다.

학창시절 숙제하듯이

일정한 형식과 길이를 갖추면서 일기를 쓸 필요는 없습니다.

짧은 메모식의 일기라도

매일이 아니라 일 주일에 두 세번 기록하는 일기라도

우리들 삶을 돌아보고, 감사하고,

하나님께 앞 길을 맡기는 영성일기를 쓰는 것은

우리의 삶과 신앙을 깊고 풍성하게 만듭니다.

올 해의 마지막 달을 지내면서

우리 마음과 생각이 복잡하고, 아쉬울 수 있지만

감사 일기를 통해서 마음이 부요해지고

한 해의 삶에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편 100편은 복음성가로도 알려진

대표적인 감사 시편입니다.

한 구 절 한 구절 곱씹으면서 읽어 봅시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Enter his gates with thanksgiving, and his courts with praise!

Give thanks to him; bless his name!

For the Lord is good; his steadfast love endures forever,

and his faithfulness to all generations.(Psalms 100:4-5)

하나님 아버지,

범사에 감사하라는 하나님 말씀대로

감사로 한 해를 마무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2.3 이-메일 목회서신)

어린왕자

마음속에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올 영화 한 편이 올봄 프랑스를 기점으로 세계 각국에서 차례로 개봉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내년에, 한국에서는 올 성탄절에 개봉을 앞둔 <어린 왕자(The little prince)>입니다. 인터넷에서 예고편과 영화평을 둘러보니, 쌩떽쥐뻬리의 원작 어린 왕자를 현대판으로 바꾼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어린 왕자>는 제가 매우 좋아하는 소설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러모로 암담했던 대학 시절 구내서점에서 문고판 어린 왕자를 구입해서 읽고 또 읽었습니다. 17년 전 미국에 올 때 전공서적을 마다하고 챙겨왔던 애독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책꽂이에서 어린 왕자를 꺼내보니 모서리가 헤어지고 색깔도 갈색으로 변했습니다. 제 이니셜과 함께 “H.S.Y. 82.6.7 구내서점”이라고 쓰인 메모가 저를 반깁니다. 단숨에 다시 한 번 읽어보았습니다. 50대 중반에 읽는 어린 왕자는 33년 전 청년 시절에 읽었을 때와 또 다른 느낌입니다.

 

소설은 사하라 사막에 비상착륙한 비행사가 소행성 B612에서 온 어린 왕자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저자 생떽쥐뻬리가 기호를 붙여 가면서 그린 그림이 소설의 흥미를 더해줍니다. 첫 번째 그림은 중절모처럼 생긴 그림입니다. 어른들은 이 그림을 보면서 모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린 왕자는 코끼리를 삼킨 뱀이라고 대답합니다.

 

어린 왕자는 비행사에게 양을 그려달라고 부탁합니다. 이런저런 모습으로 양을 그려줍니다. 그런데 어린 왕자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구멍이 세 개 뚫린 상자를 그려주니 매우 만족해합니다. 모자 속에서 코끼리를 삼킨 구렁이를 보았듯이 추위를 피해서 상자 속으로 들어간 양을 보았습니다. 상상력이 풍부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는 일입니다.

 

어린 왕자는 자기가 사는 소행성에 무성하게 자라는 바오 밤나무를 없애느라 애를 씁니다. 그러다가 어쩌다 날아온 꽃씨에서 자란 장미와 친해지려 하지만 관계가 틀어지면서, 여섯 개의 행성들을 차례로 여행하면서 거기에 사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혼자 살면서 왕이라고 자처하는 왕자병에 걸린 사람, 자기를 칭찬해 주는 말만 듣고 싶어 하지만 속은 비인 허풍쟁이, 술 마시는 것을 후회하면서도 술을 끊지 못하는 주정뱅이, 5억 개의 별을 세고 그것이 모두 자기 것인 양 숫자에 빠져 사는 상인, 행성이 하도 빨리 돌아서 1분마다 아침과 저녁을 맞기에 무의미하게 불을 켜고 끄기를 반복하는 점등인, 다른 이에게 들은 말과 이론에만 의존하는 지리학자입니다. 어린 왕자가 차례로 만난 사람들은 세상살이에 찌들고 자기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어른들의 궁색하고 불쌍한 모습입니다.

 

어린 왕자는 일곱 번째로 방문한 지구에서 여우를 만납니다. 여우에게서 길들인다는 말을 듣습니다. 길들인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것이라는 여우의 말에 소행성에 두고 온 꽃을 생각합니다. 장미꽃과 자신이 진정한 관계 맺기에 실패해서 결국 파국으로 치달았습니다. 자기 행성에는 하나뿐인 장미꽃이 지구에 수없이 만발한 것을 보면서 자신의 지나친 집착도 깨닫습니다. 어린 왕자는 여우가 남긴 마지막 말을 되새겨봅니다:: “잘 가라. 비밀을 알려줄게. 아주 간단한 거야. 잘 보려면 마음으로부터 보아야 한단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올해도 어김없이 성탄절을 맞이합니다. 조그만 마을 베들레헴 그것도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아기가 온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별을 보고 찾아온 동방박사들과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뿐이었습니다. 구유에 누우신 아기가 예수님임을 마음속으로 바라본 사람들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어린 왕자의 말이 생각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마음의 눈을 떴을 때 구유에 누우신 예수님 속에서 생명과 진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경기가 좋아졌는지 거리에 자동차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샤핑몰에는 사람들이 넘칩니다.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사고팔고 있는지, 행여나 어린 왕자가 방문했던 소행성 사람들처럼 의미 없는 일에 몰두하는 것은 아닌지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칩니다. 어린 왕자가 안내하는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서 성탄절을 맞고 싶습니다. 베들레헴 말구유에 누운 아기가 예수님이심을 알아차리고 그 아기 앞에 조용히 무릅 꿇고 경배하기 원합니다. 복된 성탄 맞으십시오. 메리 크리스마스!  (2015년 12월 24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마가복음 6 : 대강절에

올 해가 한 달 남짓 남았습니다. 달력이 한 장 남을 때마다 여러가지 생각이 납니다. 지나 온 한 해를 생각하면서 아쉬움에 젖기도 하고, 또 감사한 마음을 갖게되고, 동시에 남은 한 달을 잘 지내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로 결심합니다. 그런데 12월은 어느 달 보다 빨리 지나갈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한 해를 마무리하길 원합니다.
12개월로 구성된 달력 외에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 부활과 성령 강림으로 이루어진 교회력을 갖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서 주일에 모여서 예배했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모든 신앙의 근거를 부활에 두었고, 예수님의 생애를 따라서 살려는 신앙 전통이 생겼습니다. 그러한 시도는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한 4세기 경부터 예수님의 생애에 맞춘 교회력으로 발전했습니다.
교회력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실 것을 기다리는 대강절(advent)로 시작해서, 성탄절과 예수님의 공생애를 기념하는 주현절(epiphany), 사순절(lent)과 부활절을 정점으로 오순절 성령강림절로 마무리됩니다. 일년 가운데 절반을 성령강림절 주간으로 지키는데, 강단 색깔이 초록색이듯이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신앙이 자라가는 기간입니다. 오늘은 대강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대강절 (혹은 대림절)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성탄절 4주 전부터 시작됩니다. 강단보는 권위와 위엄을 나타내는 보라색입니다. 강단에 촛불을 하나씩 켜가면서 대강절을 맞습니다. 우리 교회 강단에는 촛대가 없으니 온 교회가 마음 속에 촛불을 하나씩 켜 놓으면서 대강절 4주간을 보내기 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12월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면서 보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십니다. 마지막 때에, 선과 악을 심판하시고 온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 만왕의 왕께서 오십니다.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태어나심은 모든 사람들을 품어주시고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어둔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매 주일 마음 속에 촛불을 하나씩 켜면서 빛되신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합니다. 이처럼 대강절은 기대와 소망의 절기입니다. 몸과 마음이 바쁜 연말이지만 아기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면서 뜻깊게 대강절을 지내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인 마가복음 7장은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과 논쟁을 벌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예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과 행동을 일일히 트집잡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혜롭게 이들을 물리치십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 수로보니게 출신의 여인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대적하던 바리새인들과 달리 수로보니게 여인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녀에게는 귀신들린 어린 딸이 있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 앞에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먹는 개가 되어도 괜찮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여인의 겸손한 마음과 믿음이 딸을 고쳤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거부했지만,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녀에게 예수님을 향한 참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河-

마가복음 5 : 둔한 마음

오늘은 추수감사 주일입니다. 추수감사 주일은 1620년 12월 102명의 청교도가 메이플라워를 타고 신대륙에 도착해서 혹독한 겨울과 일 년 동안의 적응기간을 보낸 후에 첫 번째 추수를 한 것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축제를 벌인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신대륙에 왔지만, 추위와 풍토병으로 절반에 가까운 동지들을 잃었습니다. 그나마 이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인디언 추장 마싸소이트와 영어를 할 줄 알았던 스콴토가 집을 짓고 사냥을 하고 농작물을 재배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청교도들은 첫 번째 추수감사절에 인디언들을 초청해서 함께 감사의 잔치를 했습니다.
이처럼 추수감사절 정신속에는 참된 신앙을 찾아서 대서양을 건넌 청교도들의 신앙과 열정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들은 신대륙에 도착하자마자 혹독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신대륙에 왔지만 그들 앞에 닥친 것은 가족과 신앙의 동지들을 잃는 아픔과 고통이었습니다. 이들은 꿋꿋하게 견뎠습니다. 돕는 손길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추수감사절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올 한 해 우리의 삶을 돌아봅니다. 신앙 가운데 힘차게 한 해를 시작했지만 지난 열한 달의 여정이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발생하기도 했고, 몸과 마음이 힘든 말 그대로 순례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겨운 인생길을 걸어가는 데 도움을 준 손길들과 함께 길을 걷는 동지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생면부지의 인디언들이 청교도들을 도왔듯이 예상하지 않은 도움의 손길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서 일하심을 몸소 경험한 것입니다. 한 해 동안 함께 해준 가족들과 참빛 식구들과 신앙의 동지들께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추수감사절은 하나님 앞에서 한 해의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께는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이웃들에게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절기입니다. 마음이 푸근해지고 우리가 여전히 살맛 사는 세상에 살고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 6장에는 마음이 굳어진 사람들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인간적인 면만 보면서 배척했습니다.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6장 중간에는 세례요한의 죽음이 나옵니다. 개인적인 앙심을 품고 옳은 소리를 한 세례요한을 죽게 한 헤로디아는 안하무인입니다. 마음이 완악합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이 먹는 기적을 경험한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에 폭풍이 불어닥치자 두려움에 떱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서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시고 바람을 잔잔하게 하십니다. 이것을 두고 마가는 제자들의 마음이 굳어져서 두려워했다고 일러줍니다.
행여나 우리 안에도 굳은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새 영으로 부드럽게 되길 원합니다(겔36:26). 굳은 마음이 있으면 감사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부드러운 마음을 갖고 한 해 동안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이웃들의 사랑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절이 되기 원합니다. -河-

마가복음 4 : 기사와 이적

신약 성경의 복음서에는 기사와 이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곱 가지 표적을 축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특별히 표적(sign)이라고 부르는 것은 기적 자체보다도 그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표적 이후에 그에 대한 설명이 등장합니다. 처음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마태, 마가,누가 세 복음서를 공관복음서라고 합니다. 비슷한 관점에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공관복음서에도 초자연적인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자주 소개합니다. 요한복음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지만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사건들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나오는 기적을 똑같이 행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려는 것은 예수님의 위치에 올라가려는 것이기에 조심해야 합니다. 복음서의 기적을 읽으면서 예수님께서 자연을 다스리시고, 병도 고치시고, 귀신들을 쫓아내실 수 있는 분임을 깨닫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한복음의 표적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의 의미를 파악하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믿는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믿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 복음서에서 발견되는 기적을 우리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경우 신앙생활을 하면서 병 고침을 받거나 귀신이 쫓겨나는 기사와 이적을 경험하곤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그리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은혜이자 놀라운 체험입니다.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경험하면 아무래도 신앙에 확신이 생기고 역동적인 신앙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기사와 이적에 매달리는 신앙은 건전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22절에서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보다 십자가를 자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부탁합니다. 표적만을 구하고 집착하면 신앙이 왜곡됩니다. 게다가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활동하시던 2천 년 전과 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당시는 의술도 발달하지 않았고, 병에 걸리면 죄를 지은 결과라고 믿던 시대였습니다. 글을 읽거나 쓸 수 있는 인구가 매우 적어서 서기관들이 성경을 풀어주고 대신 글을 기록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시대였기에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 되심을 세상에 드러내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요즘 시대는 꼭 기적이 아니어도 하나님 말씀을 읽고, 깊이 묵상하고 삶에 적용하면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현대의 의술을 통해서 병을 고치면서도 그 과정에서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중요한 것은 기사와 이적을 통해서 또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자신이 온전해 지고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가 살아납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임을 알려주는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달리다굼(소녀야, 일어나라)” 명령하시니 죽음에서 일어났습니다.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죽음의 세력이 침투해 있다면 달리다굼하고 일어나면서 기적을 체험하기 원합니다. -河-

터키 사면식

좋은 아침입니다.

1.

추수감사절은

1620년 미국에 도착한 청교도들이

첫해 수확을 하고 감사의 예배를 드린 것에서 유래했으니

40여 년 동안 지켜 온 미국의 가장 큰 명절입니다.

추수감사절 전날

백악관에서는 흥미로운 행사가 열립니다.

칠면조 한 마리를 풀어 주는

터키 사면식(turkey pardoning)입니다.

혹자는 링컨 대통령이,

혹자는트루먼 대통령, 케네디 대통령부터 시작했다고 하지만

이 행사를 정례화한 사람은

조지 부시 (아버지) 대통령이랍니다.

어제도 오바마 대통령이 두 딸과 함께

백악관에 뽑혀 온

터키를 사면해 주었습니다.

2.

해마다

약 4천5백만 마리의 터키가

추수감사절 식탁에 오릅니다.

정확한 유래는 설왕설래하지만

아마도 죽어가는 그 많은 터키를 위로하려는(?) 마음으로

백악관에서 한 마리 터키를 (사실은 후보까지 두 마리)

대표해서 살려주게 된 것 같습니다.

추수감사절 터키는 특정 농장에서 7월쯤 부화한 새끼들 가운데 응모해서

행사 기간 동안 순하게 있을 우량 터키를 선정합니다.

보통 몸무게가 40파운드를 넘고, 날개 길이가 6피트 이상입니다.

올해의 터키는

우리 지역 근처 모데스토(Modesto) 농장에서 길러졌습니다.

대통령 앞에 앉아 있던 터키가 “정직”이고

후보로 뒤에 있던 터키 이름은

“아베(Abe, 링컨 대통령의 별칭)였습니다.

백악관에서 실시한 트위터 공모에

캘리포니아 아이들이 많이 참여했고,

두 마리 터키를 선정하는 과정에도 아이들의 의견이 반영되었답니다.

사면된 터키들은

해마다 각기 다른 농장으로 옮겨져서 여생을 마감하는데

체중을 너무 불린 나머지 심장마비나 건강상의 이유로

이듬해 추수감사절까지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3.

대통령은

터키 사면식을 하면서 덕담을 하거나 조크를 합니다.

올해 오바마 대통령은

얼마 남지 않은 임기가 아쉬웠는지,

빨리 커 버린 딸을 보면서 흐뭇했는지,

아니면 흰색 터키를 보면서 하염없이 늘어난 자신의 흰머리를 생각했는지

다음과 같은 조크를 했답니다:

“터키는 날지 못하지만, 시간은 날아갑니다

(Time flies, even if turkeys don’t).”

오바마 대통령은 터키 사면식을

아주 달갑게 생각하는 편은 아닙니다.

왜 하는지 의미가 혼란스럽다는 식입니다.

그래도 전임 대통령들이 했으니 특유의 농담을 하면서

“정직”과 “아베”를 살려 준 것입니다.

4.

초등학생들이 올해의 터키에게

“정직”이라고 이름을 붙여준 것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정직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정상이 정상으로 여겨지고,

솔직히 정직하게 살면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두 눈을 가진 원숭이가

한 눈 가진 원숭이 마을에 가서

한눈을 감고 살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수요예배에서 배우는 잠언에서는

끊임없이 “정직”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솔직하게, 정직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바른 삶이라는 교훈입니다.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잠15:8)

The prayer of the upright is acceptable to him. (Proverbs 15:8)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합당이 여기시는 기도를 드리기 원합니다.

5.

그나저나

어제 사면을 받은 “아베”와 “정직”이

남은 생을 편안하게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참빛 식구들 모두

추수감사절 연휴를

감사와 평안 가운데 보내시고

주일에 기쁜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연휴동안 참빛 식구들께 쉼을 주시고

힘차게 새 달을 맞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1.26 이-메일 목회서신)

깔끔하게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아침 새벽 기도회에서는

역대하 27장을 읽었습니다.

하루에 한 장씩 성경을 함께 읽고

10분 내외로 말씀을 전하는 새벽기도회 시간에

본문 말씀을 모두 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4절과 5절까지 있는 찬송가를 불렀고

말씀도 자세히 전했건만 5분이 남았습니다.

오늘 본문인 역대하 27장이

단지 아홉 절이었기 때문입니다.

25세에 왕이 되어서

16년 간 남쪽 유다를 다스렸던 “요담”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웃시야는 정치를 잘했지만

성전에서 제사장의 일을 자신이 행하다가 그만

나병에 걸려서 남은 인생을 격리된 채 살았습니다.

그의 할아버지 아마샤 역시

처음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면서 영토를 확장했는데

에돔을 물리친 후에

에돔에 있는 신상을 갖고 와서 숭배하는 잘못을 범합니다.

나중에는 쿠데타가 일어나자 피난가서 살다가 그곳에서 죽었습니다.

아버지 웃시야나 할아버지 아마샤에 못지 않게

요담 역시 성전을 증축하고, 영토까지 확장하는 등

나름대로 나라를 잘 다스렸습니다.

그의 신앙과 통치가 끝까지 어긋나지도 않았습니다.

요담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바른 길을 걸었으므로 점점 강하여졌더라. (역대하 27:6)

So Jotham became mighty, because he ordered his ways before the Lord his God. (2Chronicles 27:6)

2.

요담에 대한 말씀을 읽으면서

보기좋게 정돈된 인생을 사는 것도 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을 길게 나열해서 보여주는 지루한 인생보다

아홉 구절로 단순하게 정리된

요약판 인생도 의미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4S로 표현하곤 합니다:

silent, simple, strong, sacrificial.

그렇습니다.

이제 한달여 남은 올 한해 우리의 삶이

단순하고(simple) 강력하게(strong) 마무리되길 원합니다.

거기에 하나님 앞에서의 조용함(silent)과

이웃을 향한 희생(sacrificial)이 더해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추수감사절을 앞 둔 참빛 식구들의 삶이

주님 앞에서 깔끔하게 정돈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1.19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