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아침 다음 뉴스에 들어가 보니

한국의 한 개그맨이

불안장애(anxiety disorder)로 인해서

모든 활동을 잠시 중단한다는 기사가 떴습니다.

인기를 많이 얻었지만

그에 비례해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어느 날 갑자기 물거품처럼 인기가 사라질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인해서 무척 힘들어했답니다.

대중 앞에 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인기라는 것이 아침 안개와 같아서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습니다.

인기를 얻어서 꼭데기에 올라갈수록

내려감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더 올라갈 데가 없으니 결국 내려갈 일만 눈앞에 떠오르겠지요.

기사에는 비슷한 증상으로 고생하는

다른 인기 연예인들도 소개했습니다.

TV 앞에서는 활짝 웃고 있지만

뒤에서 괴로워하고 있을 그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안타까웠습니다.

2.

현대인들은 염려와 근심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삽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깊은 어둠이 계속될 것 같은 불안감,

일이 너무 잘 풀려도

혹시나 좋지 않은 일이 닥칠지 모른다는 염려,

갑자기 닥쳐오는 인생의 폭풍 등등

우리를 불안과 두려움으로 유인하는 요소들이 너무 많습니다.

남들과 비교하면서 느끼는

쓸데없는 경쟁의식도

불안과 초조함에 한몫을 합니다.

지난 설교에서

염려는 우리 안에 거한다고 했습니다 (dwelling care).

염려는 우리를 서서히 갉아먹는다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corroding care).

그래서 염려가 신앙의 적이라고 했습니다.

염려가 생기면 무엇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염려를 일으킨 바로 그 문제를 붙잡고 기도하길,

염려가 생기는 그 순간,

그 장소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부르시길 제안했습니다.

성경에

염려와 근심 그리고 두려움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

자주 등장합니다.

염려하지 말라

근심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 모두 명령입니다.

매우 강력한 명령입니다.

3.

우리의 삶이 쉽지 않습니다.

인기 연예인들의 정도는 아니어도

우리 안에 있는 염려와 불안이 불쑥불쑥 나타나서

마음과 삶을 휘저어 놓습니다.

솔직히 많이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가 마음에 품고 기도할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걱정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베드로전서 5:7)

Casting all your anxieties on him, because he cares for you.(1 Peter 5:7)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을 꼭 붙들어 주시고

삶의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함께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1.12 이-메일 목회서신)

감사일기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접경지역을 지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였습니다. 멀리서 열 명의 나병 환자가 예수님을 향해서 손을 흔들고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소리쳤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시고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시니, 제사장에게 뛰어가는 동안에 나병이 낫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분명히 열 명이 병에서 고침을 받았는데 예수님께 나와서 감사한 사람은 당시 유대인들이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던 사마리아 사람 한 명뿐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은근히 섭섭하셨는지 “나머지 아홉은 어디 갔느냐?”고 넌지시 말씀하십니다.

열 명 가운데 한 명만 예수님께 와서 감사했습니다. 이것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면, 하나님께서 열 가지 은혜를 주시지만, 진작에 하나님께 나와서 감사하는 경우는 한 번뿐일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염려와 근심 그리고 불안이 아홉이라면, 감사하는 마음은 달랑 하나일 때도 많습니다. 이렇듯 감사가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신앙생활에서 감사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 주셨습니다. 거짓이 판치는 세상에서 진리를 쫓아 살게 하셨습니다. 가족과 가까운 이웃들에게도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이 추수감사절인데 이웃의 도움이 없었으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습니다. 우리 자신을 생각하면서 감사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권면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때 염려가 사라집니다. 이처럼 감사는 하나님은 물론 이웃과 우리 자신을 향합니다.

감사의 유익은 여러 가지 연구를 통해서 입증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감사가 몸과 마음의 건강에 도움을 줍니다. 감사에 익숙한 사람은 활력이 넘치고 매사에 긍정적입니다. 스트레스를 덜 받고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현저하게 낮습니다. 알코올이나 약물과 같은 중독에 빠질 위험도 낮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잠이 쉬들고 숙면을 취합니다.

우리 안에 감사성향이 선천적으로 50% 차지하고 있답니다. 절반이 감사하는 마음이라니 앞에서 소개한 문둥병자의 예보다 감사하면서 살 확률이 높아서 마음이 놓입니다. 그런데 나머지 절반은 훈련을 통해서 얼마든지 개발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감사도 배워야 하고 훈련해야 함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인간의 심리와 행복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훈련으로 감사일기 쓰기를 추천합니다. 실제로 100명의 대학생을 세 그룹으로 나눠서 첫번째 그룹은 일주일 동안 감사일기를 쓰게 했고, 두 번째 그룹은 일주일 동안 화나게 한 일을 기록하게 했습니다. 나머지 세 번째 그룹은 아무 일이나 일기장에 기록하라고 요청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난 후에 감사 일기를 쓴 학생들이 마음과 생각이 긍정적이었고 학업 성취의욕도 훨씬 높았습니다.

감사일기 쓰는 방법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감사일기는 구체적으로 기록해야 합니다. “좋은 아내, 좋은 가족”처럼 제목만 나열하면 감사일기가 무미건조해 지고 멀지 않아 일기장을 덮게 될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아내가 맛있는 김치찌개를 끓여주어서 감사했다” 또는 “밖에서 기분 상하는 일이 있었는데 집에 들어오자마자 딸아이가 달려와서 허그해 주어서 고마웠다”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써야 합니다.

두 번째는, 하루에 다섯 가지씩 감사의 이유를 찾아서 일기장에 적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다섯 가지를 찾기가 쉽지 않고, 매일 같이 비슷한 내용만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감사 제목을 찾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평소에 스쳐 지나가던 일들 속에서 감사의 제목을 찾아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일기장 밖으로 나가서 하루에 한 번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감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감사 전도사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감사가 습관이 되고, 성품에 녹아들어서 인격이 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올 한 해도 한 달 남짓 남았습니다. 추수감사절에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매일같이 감사일기를 쓰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면 좋겠습니다. 열 명의 문둥병자 가운데 한 명이 예수님께 왔듯이 적어도 일 년 중 마지막 한 달을 감사의 달로 만들어 보는 것입니다. (2015년 11월 26일 SF 한국일보 종교칼럼)

마가복음 3 : 감사하는 마음

어느덧 11월도 일주일이 훌쩍 지났습니다. 일 년 중에 11월은 어찌 보면 꽤 어중간해 보입니다. 10월이 지나고 11월에 접어들면 자신도 모르게 한 해가 다 갔다는 생각이 들고, 연말을 맞을 준비를 하게 됩니다. 추수감사절만 지나면 크리스마스 세일 광고들이 우체통을 가득 채우고 캐럴이 흘러나오면서 한 해가 지나갔음을 알립니다. 그러다 보니 11월은 빠르게 때로는 없는 것처럼 훌쩍 지나갑니다.

저는 11월을 맞을 때마다, “감사”를 떠올립니다. 물론 우리 삶에 늘 감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솔직히 감사보다 불평, 염려, 두려움이 더 많습니다. 믿음으로 부정적인 마음들을 없애려고 노력하고, 그런 마음마저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려 하지만 생각처럼 조절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찬송가 가사 그대로 받은 복을 세어 보면서 11월을 보내려고 애를 씁니다

올해 우리 교회를 돌아보니, 감사할 제목들이 떠오릅니다. 어르신들께서 건강하게 교회를 지켜 주셨습니다. 젊은이들도 힘껏 교회를 섬겨 줍니다. 물심양면으로 은밀하게 교회를 섬기는 손길들이 있습니다. 새로운 생명도 태중에 생겼고 또 엊그제는 이재웅/조선미 가족에 승호가 태어났습니다. 여전히 빈자리가 있고 떠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하나님께서 채워가십니다. 찬양대와 찬양팀의 섬김, 여선교회와 남선교회의 꾸준한 섬김, 주일학교와 중고등부 선생님들의 은밀한 섬김, 권사님들과 임원들의 기도와 섬김 등 감사할 뿐입니다.

남선교회 기도회, 참빛 보이스, 부부 세미나, 네팔 선교 음악회, 강찬 전도사 초청 등 올해는 나름대로 의미있는 행사들도 꾸준히 진행해 왔습니다. 부족하고 아쉬운 것을 생각하면 한이 없습니다. 반면에 감사한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한 해를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이 나옵니다. 이제 추수감사절과 성탄절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찬양대와 남성 중창단, 주일학교가 정성껏 추수감사 주일과 성탄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선교회에서도 예년과 같이 추수감사절 만찬을 준비하시겠지요. 이렇게 한 해가 지나갑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성도님들 각자의 삶도 한 해의 끝을 향해서 달려갑니다. 늘 만족스러울 수 없습니다. 어르신들께서는 몸이 예전만 못하십니다. 몸이 약해지시니 마음도 때로는 신앙도 내려앉습니다. 일어나셔야 합니다. 믿음으로 연약해지신 몸과 마음을 붙드시고 하늘의 평화를 깊이 누리셔야 합니다. 젊은이들의 삶도 만만치 않습니다. 경쟁이 치열하고, 미국 땅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힘겹습니다. 이기고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어려움을 훌쩍 뛰어넘어야 합니다. 주님의 백성으로 힘차게 그리고 꿋꿋하게 부르심의 목적을 쫓아가야 합니다. 이 모든 여정의 한가운데 감사가 임할 때 멋지고 근사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씨 뿌리는 비유 속에 나오는 네 가지 마음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길가, 돌밭, 가시덤불, 좋은 밭의 네 가지는 우리의 마음을 표시합니다. 우리 안에 네 가지 마음이 공존합니다. 그중에 좋은 밭의 비중이 커져서 열매맺는 신앙과 삶이 되길 원합니다. -河-

마가복음 2 : 중풍병자를 고치신 예수님

지난 주일 설교에서 매우 빠른 진행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소개하는 것이 마가복음의 특징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가버나움에서 바쁜 하루를 보내신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을 두루 다시면서 복음을 전하시고 다시 가버나움에 돌아오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은 갈릴리 지역은 물론 갈릴리 호숫가 건너편과 두로와 시돈과 같은 이방 지역까지 포함한 순회사역이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갈릴리에 퍼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왔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중풍 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서 데려왔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아서 예수님 앞까지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이들은 고정관념을 깨는 창의적인 방법을 통해서 중풍 병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갑니다. 지붕을 뚫고 구멍을 내서 중풍 병자가 누운 상을 예수님 앞으로 내리는 방식입니다.

지붕을 뚫고 병자를 내릴 생각을 한 것도 파격이고, 지붕이 뚫어지는 동안 소음과 먼지를 참으신 예수님도 보통이 아니십니다. 그런데 더 파격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데리고 와서 지붕에서 내려보낸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5절). 병을 고치시기에 앞서, 죄를 사해주신다고 말씀하신 것이 파격입니다.

이 장면을 목격한 서기관들이 하나님도 아닌 나사렛 목수의 아들이 어떻게 죄를 사할 수 있느냐고 신성모독 죄를 지었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서기관들의 속마음을 알아채십니다. 그리고 죄 사함을 얻으라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는 말 가운데 어느 것이 쉬운지 물으십니다. 두 가지 모두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는 죄를 사하는 것이나, 일어나서 누웠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말씀도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막1:1). 곧이어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향해서 일어나 걸어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중풍병자가 일어나서 자리를 가지고 모든 사람 앞을 지나갑니다. 이것을 본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중풍 병자를 일으키신 행동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모든 사람이 알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특이한 점은 예수님의 사역에 반대하고 시기하는 서기관(당시의 엘리트이며 성경학자)들과 같은 적대세력이 처음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나사렛 목수의 아들로 보았고, 자신들의 지식과 신앙 전통에 매여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고정관념을 깨고 지붕을 뚫어서 중풍 병자를 내려보낸 친구들의 믿음과 대조적입니다.

믿음은 예수님 앞에 자신을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지붕을 뚫는 용기와 파격입니다.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일으키실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중풍병자를 고쳐주셨고 죄 사함까지 받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을 주관하신 예수님을 우리도 믿고 있습니다. 다음 한 주간 죄를 사하는 권세와 중풍 병자를 일으키신 능력의 주님을 의지하고 일어나서 힘차게 걸어갑시다. -河-

마가복음 1 : 예수님의 하루

올해 속회공과는 마가복음입니다. 속회를 한 달에 한 번 모이다 보니 성경공부가 이어지기 힘들고, 앞에서 배운 내용을 기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올해의 남은 주일에 속회에서 공부했던 마가복음 본문을 갖고 설교하려고 합니다. 속회에 참석하셨던 분들에게는 복습과 심화학습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속회에 참석하지 못했던 성도님들은 뒤늦게나마 속회공부를 하실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마가복음을 마태와 누가복음과 함께 공관복음(共觀福音,Synoptic Gospels)이라고 부릅니다. 비슷한 내용과 관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요한복음을 제4복음서라고 부르는데 공관복음과 달리 예수님을 로고스(말씀)로 설명하는 등 내용과 구조에 차이가 있습니다.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사역을 갈릴리에서의 순환사역과 예루살렘에서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크게 구분합니다. 갈릴리 사역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직진사역도 물론 포함합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사역을 간략하고 빠른 속도로 전합니다. 마태나 누가복음과 달리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기록을 생략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막1:1)는 선포와 함께 복음서가 시작됩니다.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 가서 시험받으신 사건도 짤막하게 알려줍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을 다니시면서 전하신 복음의 핵심은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구약에서 예언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때가 되면 메시아가 오시고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이심을 세상에 알리시면서 갈릴리 사역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특별히 마가복음 1장에는 예수님의 일과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꽉 찬 일정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사와 이적을 본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기에 휩쓸리지 않으시고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시는 데만 주력하셨습니다. 갈릴리 호수 해변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 세베대의 아들인 요한과 야고보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귀신들도 굴복하는 “권위 있는 새 교훈” (막1:27) 이었습니다. 회당에서 나온 예수님께서 시몬의 장모는 물론 소문을 듣고 찾아온 병자들을 밤늦도록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 밝기도 전에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로 세상에 오셨지만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을 입으셨기에 세상에 계시는 동안 하나님과 깊은 교제가 필요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바쁜 일정을 하나님의 뜻대로 소화하신 비결이자 힘이었습니다.
올해도 두 달 남았습니다. 분주한 연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쁠수록 예수님을 본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조용한 시간을 갖고 거기서 힘과 지혜를 얻기 원합니다.-河-

준비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월요일에 비가 오더니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물론 샌프란의 겨울철 날씨가 된 것인데

갑자기 온도가 떨어지고,

써머타임까지 해제되면서 밤이 빨리 오니

이상하게도 더 추워지는 듯합니다.

새벽에 교회가 무척 춥습니다.

미처 히터를 준비하지 못해서

오늘 처음으로 히터를 틀었더니

기름 냄새가 올라옵니다.

문을 활짝 열고

미리 준비해 놓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뒤늦게 히터를 돌려서 냄새를 없앴습니다.

2.

에베소서 마지막 시간에 배운

하나님의 전신 갑주가 생각납니다.

서서,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했습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패, 평화의 복음의 신발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입니다.

로마군대를 목격한 요세푸스라는 유대인 역사가는

로마 군대가 연병장에 모여서 열심히 연습하고

“우리는 준비되었습니다”라고 외치는 것을 보면서

로마 군대의 대단함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에베소서에 나오는

하나님의 전신갑주 역시

바울이

당시 로마 군인들을 생각하면서

도입한 개념일 것입니다.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준비한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닥쳐도 의연하게 대처하고

기쁜 일을 만나면 하나님께 먼저 감사합니다.

3.

날씨가 추우니 환절기 감기가 염려됩니다.

권사님들과 어르신들,

갓 태어난 승호(이재웅/조선미 가족)부터 아이들도 건강하길 기도합니다.

행여나

독감 예방주사(flue shot)를 아직 맞지 않으셨으면

서둘러 감기 예방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기도로 준비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믿음으로, 지혜롭게

매사에 준비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1.5 이-메일 목회서신)

스스로 겸비하여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새벽에는 역대하 12장을 읽었습니다.

“백성을 번성하게 하다”는 뜻을 가진 르호보암 왕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아버지 솔로몬의 후광과

남과 북으로 갈라졌지만,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나라를 견고히 세워갑니다.

17년 동안 왕위에 있었던 르호보암으로서는

절정기를 맞이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신앙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신앙은

아래 있을 때는 좀처럼 무너지지 않습니다.

힘들 수록 더욱더 하나님을 찾게 되고 의지합니다.

그런데 위에 올라가면 하나님을 잊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귀찮아지고, 하나님보다 자신이 왕이 되고 싶어집니다.

좋은 것은 쉽게 전파되지 않지만

나쁜 것은 전염속도가 빠릅니다.

르호보암이 하나님 말씀을 떠나자

백성들도 모두 르호보암을 따라서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르호보암의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해지매

그가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받은지라 (역대하 12:1)

When the rule of Rehoboam was established and he was strong,

he abandoned the law of the Lord, and all Israel with him. (2 Chron 12:1)

르호보암이 나라가 견고해 지고 세력이 강해질수록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2.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을 떠나면

즉시 심판이 찾아왔습니다.

르호보암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이집트의 왕 시삭이 쳐들어왔습니다.

그때 르호보암과 신하들이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께 나와서 엎드립니다.

이에 이스라엘 방백들과 왕이 스스로 겸비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의로우시다 하매 (대하 12:6)

Then the princes of Israel and the king humbled themselves and said,

“The Lord is righteous.”(2 Chron 12:6)

“스스로 겸비하여” –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회개했습니다.

“여호와는 의로우시다’ – 하나님을 버렸더니 곧 바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무서운 분이고, 공의로운 분임을 고백합니다.

르호보암의 겸손과 회개를 보신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마음이 꽤 약하신 것 같습니다.

아니

“겸손과 회개”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3.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낮추고,

겸비하게 행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일일 잘 되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자신 마음대로 사람들이나 환경을 통제할 수 있을 때

즉 하나님이 필요없을 때,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낮추는 것이 진정한 신앙입니다.

평소에 준비하고 훈련해 놓치 않으면

정작 높아졌을 때

르호보암과 같은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성향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 앞에서 스스로 겸손하고

이웃들을 배려하면서 빛의 자녀로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이 어떠하든지

주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한 마음과 태도를 갖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0.29 이-메일 목회서신)

책 사재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우리 집 근처에

매우 좋은 공공 도서관이 있습니다.

스페인식 건물이 안정감있게 자리잡았습니다.

안에 들어가면 왠지 저절로 공부가 될 것 같은 건물입니다.

그곳에서 논문도 마무리했고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러 가곤 했던 추억의 장소입니다.

분위기가 익숙하니 집중이 잘 되어서 자주 찾곤 합니다.

제가 동네 도서관을 자주 가는 이유가 한 가지 더 늘었습니다.

올해 부터 거기는 늘 북 세일을 합니다.

공공 도서관이 날을 잡아서 북 세일을 하는 것은 미국의 관행인데

그 도서관에는 책을 파는 섹션을 따로 설치해 놓았습니다.

그 곳에는

제가 좋아하는 신앙서적과

언젠가 꼭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싶은 미술서적들이 심심치 않게 나옵니다.

가격은 대략 1-3불 사이입니다.

그러니 갈 때마다

관심있는 책들을 대여섯권씩 사옵니다.

뿌듯한 마음으로.

책사재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읽지 않은 책들이 점점 늘어갑니다.

언젠가 읽을 것 같지만

어쩌면 서재 한 켠에 쌓아 놓기만 할 수도 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책을 그만 사고

갖고있는 책들이나 모두 읽자.”

물론 지키지 못할 결심인 줄 알지만

좋아라하고 책을 사놓기만 하고

읽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사치라는 생각이 듭니다.

책 사재기에서

책 읽기 모드로 전환해야 겠습니다.

2.

여러분들도 저와 비슷할 수 있습니다.

집집마다 성경책들을 몇 권씩 갖고 계십니다.

신앙서적도 마찬가지구요.

이것 저것 재놓고 사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교회를 떠날 때는

한 주간 하나님과 더불어 살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제가 책을 사놓고 읽지 않듯이

결심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에 게으름을 피웁니다.

생각은 넘쳐나는데

실제로 행함이 부족합니다.

신앙은 생활입니다.

배우고 자라면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어느 덧 10월도 마지막을 향해서 달려갑니다.

계획했던 것들

꼭 하고 싶었던 마음의 소원들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생각만 하고 있던 것들

한 두가지라도 실제로 실천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우리들 손과 발로,

삶 속에서 실제로 경험하고 실천해 보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깊은 물과 같은데

슬기로운 사람은 그것을 길어 낸다 (잠언 20:5)

The purpose in a man’s heart is like deep water,

but a man of understanding will draw it out. (Prov 20:5)

하나님 아버지,

미루었던 일들과

마음의 생각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0.22 이-메일 목회서신)

잊혀진 것들

10월이 되면 한국의 한 대중가요 가수가 부른 <잊혀진 계절>이라는 노래가 생각납니다. 어떤 이가 10월의 마지막 밤에 사랑하는 이와 헤어졌습니다. 얼떨결에 서로 이별에 합의했는지 한마디 변명도 못 하고 헤어진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그 노래의 가사처럼 10월이 되면 잊혀진 사람들이 생각나고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종종 멍하니 상념에 젖곤 하는 것이 어느 가을날 우리네 모습입니다.

시간이 날아가는 화살과 같다는 말이 실감 나는 요즘입니다. 시간만 빠르게 흐르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도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현실이 됩니다. 심지어 화성에 사람을 보내겠다는 계획도 이미 진행되고 있어서 수천 명의 사람이 화성이주를 신청했습니다. 이처럼 공상 과학 영화에서나 꿈꾸던 일들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세상이 좋아져도 “옛날에는 이랬었는데”하는 추억들이 마음 한편에서 새싹처럼 돋아납니다. 엊그제 낙엽이 지기 시작한 동네를 아내와 함께 산책하면서 옛날얘기를 나눴습니다. 30년 전만 해도 공중전화기가 일반적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거실에 전화기 한 대 있을 때이니 용건만 간단히 말하고 끊어야 했습니다. 어쩌다가 아내 혼자 있을 때 전화를 하면, 길게 통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중전화를 거는 저에게 문제가 생깁니다. 동전이 떨어졌습니다. 뚜-뚜-하는 소리가 아내와 저를 매정하게 갈라놓습니다. 아쉬움에 발길을 돌리곤 했습니다.

요즘은 사전도 거의 사라졌습니다. 학창시절에는 무조건 영한사전을 가방에 넣고 다녔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면 알파벳과 함께 발음 기호를 익혔습니다. 그래야 사전을 찾고 단어 옆에 있는 발음기호를 따라서 영어 단어를 발음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손때가 묻어서 사전 옆구리가 까맣게 변해가고 돌돌 말린 것이 공부한 흔적입니다. 도시락 반찬에서 흐른 김칫국물이 사전을 덮쳐서 색깔도 변하고 냄새가 배기도 합니다. 비장한 각오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사전을 통째로 외우겠다는 것입니다. 한장 한장 찢어서 외우기도 하고, 가끔 괴짜들은 사전을 먹겠다고 했습니다. 사전을 옆에 펼쳐놓고 두꺼운 영어책을 읽고 있으면 저절로 지성인이 된 듯했습니다. 요즘은 사전을 찾을 일이 없습니다. 똑똑한 전화기 스마트 폰 덕분입니다. 구글에 모르는 단어를 입력하면 발음 기호를 해독할 필요도 없이 원어민 발음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옵니다. 그래도 종종 손때 묻은 사전이 그립습니다. 단어를 찾고 발음기호를 표시해 놓으면서 영어 공부하던 때가 더 학구적으로 생각되는 것은 제가 나이가 들었다는 표시일 겁니다.

잊혀진 것들 가운데 한 가지가 더 생각납니다. 파란색과 빨간색 줄로 둘레가 쳐진 국제우편 편지봉투입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편지를 보낼 때는 꼭 그 봉투를 사용했습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모두 그렇게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손글씨로 정성껏 써내려간 편지입니다. 편지를 읽으면서 고국에 계신 부모님들과 친지들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부모님의 음성이 귓가에 들립니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훔칩니다. 지금은 편지는 물론 손글씨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엄지손가락만으로 셀폰 메시지를 보내고, 컴퓨터 자판으로 편지를 씁니다. 손글씨를 쓰려고 하면 옛날 같은 정감어린 필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삐뚤삐뚤 줄도 맞지않고 글씨체도 엉망입니다.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는 정성이 있었고, 그렇게 쓴 편지를 읽는 감동이 있었는데 어느덧 마음속의 추억이 되었습니다.

잊혀지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편리해져서 좋지만 그래도 추억이 깃든 옛것들이 잊혀지는 아쉬움과 섭섭함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잊혀지고, 어르신들이 한 분 한 분 하늘나라로 이주해 가실 때는 저도 모르게 눈시울을 적십니다. 이것이 인생이고 세상사인 줄 알지만 그래도 지난날의 추억들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싶습니다. 그리고서 다가오는 새로운 세상을 반갑게 맞고 싶습니다. 구식이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더욱 내려앉을 테니까요. 아니 지금 우리가 최신식이라고 여기는 것도 조만간 구식이 될 겁니다. 그렇다면 변하는 것에 마음을 두기 보다 영원한 진리,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마음을 쏟아야겠습니다.(2015년 10월 22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에베소서 (17) : 하나님의 전신갑주

에베소서를 갖고 지난 4개월 이상 연속해서 설교했습니다. 이번에는 차례대로 살펴보지 않고 몇 개의 주제로 나눠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처음 두 달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에베소서의 처음 여섯 구절을 설교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성도,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신실한 자들”이라는 말씀이 가장 마음에 남습니다.

그다음에는 에베소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를 통해서 성도의 신앙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부르심의 소망과 기업의 풍성함을 발견하고, 지극히 큰 능력 가운데 살기를 소원한 바울의 기도였습니다. 무엇보다 속사람이 강건해 지고 모든 성도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기를 재차 기도했습니다.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기도와 우리들의 기도 사이에 간격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없어질 것들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영원히 계속될 진리를 구하는 기도가 되길 원했습니다.
세 번째 큰 주제는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 자체가 기적이요 선물입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믿은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선택해 주셨다는 말씀 앞에 저절로 감사가 나왔습니다. 선한 일을 위해서 지음 받았고, 그 선한 일은 하나님을 위한 예배로부터 세상 속에서 행하는 모든 일이라고 배웠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 앞에서 선한 일들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작은 일부터 하나님 앞에서 행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마지막 주제는 “빛의 자녀들”이었습니다. 빛의 자녀들의 표시인 “착함, 의로움, 진실함”은 이제 쉽게 기억하실 겁니다. 빛의 자녀들이 모인 교회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서로 결합하고 연결되어서 모두 함께 예수님을 충분히 닮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빛의 자녀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셨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일상 속으로 파송하시고 그곳에서 빛으로 살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았습니다.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에베소서 마지막 시간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두 가지 영적인 세력의 충돌을 소개합니다. 빛과 어둠입니다. 빛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생명입니다. 어둠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욕심에 갇혀서 죽음으로 치닫는 세상입니다. 어둠을 다스리는 세력을 공중 권세 잡은 자(엡2:2)라고 불렀습니다. 에베소서 마지막 장에서는 어둠의 통치자들을 마귀라고 부르면서 이들과 대항하기 위해서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부탁합니다. 세상에서 펼쳐지는 일들 같지만, 신앙의 눈으로 보면 영적인 싸움입니다. 영적 전투라고 불러도 좋겠습니다. 그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당시 로마 군인들이 완전무장을 했듯이 그리스도인들도 영적으로 무장하라는 권면입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평안의 복음으로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부탁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바울 자신을 위해서까지 기도하라는 것을 보면 기도의 중요성은 물론 영적 전투의 심각함을 발견합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군사로 잘 준비해서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기 원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