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기도 (2): 하나님의 뜻/ 골로새서 1장 9-12절
하나님의 뜻
우리는 앞으로 네 시간에 걸쳐서 골로새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골1:9-12)를 살펴볼 계획입니다. 바울의 기도(골1:9-12)를 읽다 보면 내용이 명확하게 들어오지 않습니다. 분사 구문으로 이뤄진 헬라어 본문이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기도를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올바로 믿을 수 있고, 바르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 앞에서 합당하게 행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삶 속에서 실천합니다. 선한 일에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셋째는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으로 대표되는 성품입니다. 아는 것이 선한 열매로 그리고 성품으로 발전해 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갖는 것이 골로새 교회를 향한 바울의 바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도의 기업을 가졌다는 소망입니다. 우리는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업이 있고,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소망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 주제는 골로새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 가운데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고 그 길을 갈 때 비로소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데 필요한 것이 신령한 지혜와 총명입니다. 지혜는 총명보다 큰 개념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큰 그림을 알아내는 것입니다. 신령한 지혜의 보고(寶庫)는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 지혜라면, 그것을 실제 삶에 적용하는 것이 총명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혜와 총명은 서로 짝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그 모든 과정에 함께 하시고 도와 주십니다.
성경에 드러난 대표적인 하나님의 뜻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 너희의 거룩함이라 (살전4:3);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2:4).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경에서 확실하게 알려주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각자의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신령한 지혜와 총명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원합니다. -河-
좋은 아침입니다.
1.
매년 그렇듯이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올해는 골로새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기도(골 1:9-12)를 본문으로 삼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제자 에바브라가 세운 골로새 교회를 마음에 그리면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이단과 잘못된 사상이 들어와서
교회를 혼란케 한다는 소식을 들은 뒤에 보내는 편지입니다.
앞으로 한 달여 골로새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편지를
차근차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중간중간에는 기도의 자세와 방법에 대해서도 나누겠습니다.
2.
잠시 멈춰서
‘기도’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1) 기도(prayer)는 명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와서 간청하고, 교제하고,
이웃을 위해서 간구하는 모든 행위를 가리킵니다.
2) 기도는 동사(움직임)여야 합니다.
기도에 대해서 많이 아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기도의 자리로 나와야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때로는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걸으면서 기도합니다.
삶 자체가 기도가 되어야 하기에 기도는 움직이는 동사입니다.
매년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면서
행여나 기도에 대해서 게을렀다면,
다시 마음을 잡고 기도의 자리로 나가길 기대하는 것도
기도가 동사이기 때문입니다.
3) 기도의 결과(열매)는
사물이나 사건, 인물(하나님)에 대해서 묘사하는 형용사입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따뜻하고, 평화롭고, 간절합니다.
“내기도 하는 그 시간 그때가 가장 기쁘다”는 찬송대로
기도하는 순간이 가장 기쁘고 행복합니다.
솔직히, 기도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어렵습니다.
조급해지고, 참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사실 앞에서
감격하고, 자기도 모르게 신비로움을 느낍니다.
우리가 드린 기도가 응답되었을 때는
기쁨을 넘어서 전율할 정도로 경이롭습니다.
기도라는 명사는 단순합니다.
기도한다는 동사는 활기찹니다.
기도와 관련된 형용사는 기도에 얽힌 모든 것을 풍성하게 드러냅니다.
3.
올해 기도에 대한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우리 교회와 참빛 식구들 마음과 신앙에
기도를 표현하는 형용사들이 셀 수 없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기도에 대한 느낌, 감사, 생각이 계속해서 확장되길 바랍니다.
기도로 살고,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길 원합니다.
기도하는 참빛 식구들과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 사이에
수많이 이야기들이 생기는 2021년 기도에 대한 말씀 나누기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골 4:2)
Continue steadfastly in prayer, being watchful in it with thanksgiving (Col 4:2)
하나님,
참빛 식구들의 기도가 한없이 풍성해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6. 3 이-메일 목회 서신)
바울, 기도의 사람
매년 상반기에는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팬데믹으로 흩어져 있으면서 각자의 자리가 기도처가 되었지만, 기도가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분주한 삶이 기도를 훼방합니다. 다양한 볼거리와 세상 돌아가는 소문들이 우리에게서 기도할 마음을 빼앗습니다. 수요 예배에서 배웠듯이 사무엘 선지자가 기도를 쉬는 것이 죄라고 했는데, 우리는 기도하지 않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다시 기도의 자리로 나가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기 원합니다.
올해 기도에 대한 말씀은 골로새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골 1:9-12)입니다. 골로새서는 에베소서, 빌립보서, 빌레몬서와 함께 바울이 감옥에서 보낸 옥중서신입니다. 바울은 골로새 출신 에바브라로 하여금 고향에 가서 교회를 세우도록 부탁했고, 골로새에 에바브라에 의해서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잘 전해지고 심어져서 교회가 세워졌지만, 복음을 흔드는 세력들이 교회에 있었기에 바울은 서신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교회,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삶에 대해서 알려줍니다.
골로새에 편지를 쓴 바울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빌립보에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을 때는 한밤중에 기도하고 찬양했습니다. 지진이 나고 감옥 문이 열리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면서 감옥에서 풀려났습니다(행 16:25-26). 감옥에 갇힌 바울은 소아시아와 유럽에 있는 교회를 위해서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기도에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있습니다. 자신이 개척한 교회와 성도들을 마음에 품고 기도했습니다. 지난 시간까지 배운 로마서에서도 바울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롬1:9)라고 했습니다. 바울 자신의 후계자인 디모데를 위해서는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딤후1:3)라고 알리면서 바울이 “밤낮”기도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는 권면을 스스로 실천한 셈입니다. 그런 점에서 바울은 믿음과 삶이 일치한 훌륭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었습니다.
교회를 위한 바울의 기도 속에는 “감사”가 있었습니다. 흩어진 교회들이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간직하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생각하면서 감사했습니다. 교회마다 복음을 훼방하는 세력들이 들어왔지만, 꿋꿋하게 신앙을 지키는 것을 듣고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기도의 자리로 나가기 원합니다.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기도를 넘어서 교회는 물론 세상까지 기도의 지경이 넓어지기 원합니다. 골로새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기도가 깊어지고 확신이 넘치길 바랍니다. -河-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아침에 함께 나누는 말씀이
출애굽기의 계약법전(출20-23장)입니다.
시내산에 임하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십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 백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출애굽기의 계약법전은
십계명을 서두로
하나님 백성의 삶을 자세히 알려줍니다.
물론, 고대 이스라엘의 생활 관습과 신앙이 깃들어 있어서
현대를 사는 우리가 그대로 지킬 것은 많지 않습니다.
그만큼 구약의 율법과 우리 사이에는
문화적, 시대적, 심지어 신앙의 간격(gaps)이 존재합니다.
구약의 율법서를 읽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2.
많은 경우,
구약은 세상에 오실 예수님에 대한 예언,
신약은 예언의 성취라는 도식으로 설명합니다.
맞는 말이지만,
구약에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 외에도
다채로운 사건, 이야기, 지혜가 들어 있기에
예수님에 대한 예언으로 일갈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입니다.
신약 성경도 예언의 성취 이상으로 다양한 말씀들로 이뤄졌습니다.
3.
사실 구약과 신약 성경의 메시지를 아우르는 것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출애굽기의 계약법전을 비롯한
율법의 정신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귀결됩니다.
우상을 섬기지 말고
이방 종교에서 행하는 관습을 따르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 사랑의 표시입니다.
하나님을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 묘사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우리)이 다른 신들을 따라간다면
하나님께서 질투하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행동하든지 상관하지 않으시면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사랑의 언약 관계가 아니라
남남이라는 표시일 수 있습니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구약 율법의 정신입니다.
4.
구약의 율법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율법 조항이 있습니다.
때로는 눈살이 찌푸려지는 조항들도 많습니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많은 율법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에 대한 존중,
당시의 상황에 맞는 공정함, 공평함,
특히 약한 자에 대한 배려를 비롯한 이웃 사랑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구약의 율법서를 읽어갈 때는
그 속에 숨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메시지를
보물 찾듯이 찾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대의 문화와 언어로 표현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작업입니다.
그때 지루한 율법서가
흥미롭고 귀한 교훈으로 뒤바뀔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태복음 22:37-40)
하나님,
어려워 보이는 구약의 율법 속에서
하나님께서 숨겨놓으신 보화를 발견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5. 27 이-메일 목회 서신)
은혜와 평강
로마서 서문(롬1:1-7)을 살펴보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로마서 서문은 바울이 로마에 보낸 편지의 첫 부분입니다. 당시 편지의 형식대로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인사말이 등장합니다. 대신, 로마에 간 적이 없는 바울은 서문에서 편지의 내용을 요약할 정도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 비교적 자세히 알려줍니다.
바울의 편지를 받는 수신인은 로마에 있는 모든 성도입니다. 바울이 다른 편지에서는 교회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로마서에서 성도라는 표현을 쓴 것이 색다릅니다. 로마 교회가 매우 커서 하나의 교회로 모이지 않고 여러 가정에서 모였을 수도 있고, 여전히 유대인 회당 등에서 모였기에 교회라고 부를 정도로 조직이 갖춰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이 편지를 쓰는 대상은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로마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구약의 예언대로 다윗의 혈통으로, 성결의 영으로 태어나시고 능력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로마 교인들은 성도로 선택해서 부르셨습니다. 성도는 “거룩한 무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거룩하게 구별하신 주의 백성들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었지만, 이제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서 부르신 성도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예수님께서 구약에서 약속하신 메시아이심을, 구약의 이스라엘이 성도로 발전했음을 강조합니다.
“은혜와 평강”은 로마 시대에 편지 서두에 사용하던 관용 문구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은혜와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임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에게 임한 구원이 대표적인 은혜입니다.
평강(샬롬)은 은혜가 주는 열매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면 내적 평안이 임합니다. 세상이 줄 수 없고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평안입니다. 은혜와 평안을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나가면 “화평케 하는 자”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자녀를 통해서 세상에 평화가 임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임하는 은혜와 평강이 로마 교회에 임했듯이 우리 안에도 임하길 원합니다. 은혜와 평강으로 서로 격려하고 인사하기 원합니다. 주의 은혜로 삽시다. 샬롬! -河-
좋은 아침입니다.
1.
지금부터 17년 전인 2004년
인디애나에 있을 때입니다.
갑자기 온 세상이 매미 천지가 되었습니다.
창문에도, 자동차 위에도, 길에도, 나뭇가지에도
심지어 길을 갈 때 매미가 옷에 와서 붙을 정도입니다.
셀 수 없다는 말이 맞을 겁니다.
씨케이다(cicada)라는 매미였습니다.
17년 동안 땅 밑에서 애벌레로 살다가
한꺼번에 성충으로 지상에 나타나서 짝짓기를 하고 한두 달 후에 사라집니다.
자연의 신비입니다.
2.
엊그제 신문에 보니
동부에 씨케이다가 나타나기 시작했답니다.
그러고 보니 2004년 인디애나에서 씨케이다를 본 후
정확히 17년이 지났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씨케이다를 보면
다음 씨케이다가 태어날 때 어떤 모습일지 상상한답니다.
연세가 드신 분들은
다음 씨케이다를 볼 수 있을지,
아이들은
다음 씨케이다가 나올 때 몇 살이 되고 무엇을 하고 있을지,
17년이 짧은 세월이 아니기에 막연한 소원부터
구체적인 계획까지 씨케이다 생애 주기를 보면서 꿈을 꾸는 것입니다.
저희도 2004년 씨케이다를 보면서
17년 후에는 저희 부부가 60 가까이 될 것이라며 놀라워했었습니다.
아이들은 서른을 넘거나 가까이 갈 것이라면서
그때가 오지 않을 것처럼 얘기했는데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니
올여름에도 동부와 중서부에는 매미 천국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매미 철이 지나면,
앞으로 17년을 떠올리면서 각자 인생의 꿈을 꾸겠지요.
3.
씨케이다가 살아가는
17년이라는 주기(cycle)는 너무 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 하루,
주일을 중심으로 한 주간, 한 달, 일 년을 삽니다.
각각의 주기에 맞게
삶을 준비하고, 펼치고, 열매 맺기를 바랍니다.
17년 전, 씨케이다를 보면서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는데
올해 다시 나온다는 보도에 갑자기 씨케이다가 그리워집니다.
어쩌면 펜데믹을 비롯한 지금 우리의 삶에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께름칙한 것들도 있지만,
훗날 돌아보면 그립고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이었음을 회고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물(present)로 주신 오늘 현재(present)를
마음껏 누립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전도 3:11)
He has made everything beautiful in its time. Also, he has put eternity into man’s heart. (Ecc 3:11)
하나님,
길고, 때로는 짧게 느껴지는 삶의 순간을
하나님의 신비,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 채우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1. 5. 20 이-메일 목회 서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