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그 이후 (1)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우리는 앞으로 교회력에 따라서 부활절 후 일곱 주간을 지내게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시고 복음을 전할 사도로 제자들을 준비시키셨습니다. 교회력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오순절 성령이 임하기까지 50일 동안 부활의 기쁨, 은혜, 승리, 능력을 묵상하면서 부활의 생명으로 살아갑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서 교회에 모이지 못합니다. 가정에 머무는 삶이 단조롭고 때로는 힘겹습니다. 앞으로의 상황도 잔뜩 흐림입니다. 그렇기에 부활의 은혜와 능력이 더욱 요청됩니다. 사망의 쏘는 것을 이기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습니다.

 

앞으로 6주에 걸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신앙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그동안 살펴본 십자가 은혜로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하고 의로운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서 능력과 생명을 얻습니다. 이번 말씀을 통해서 우리 교회와 참빛 식구들 모두에게 부활의 은혜와 능력이 임하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두 명의 제자가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가장 큰 이야깃거리였습니다. 이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고 말로만 접했기에 반신반의했습니다. 부활이야말로 상상을 초월한 사건이었으니 쉽게 믿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들 옆에 임하셔서 함께 길을 걸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신비로운 몸을 입으셔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실 때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물으십니다. 자신의 부활을 의심하는 이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의 글을 갖고 예수님 자신이 왜 메시아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십니다. 흥미로운 장면입니다. 마을에 가까이 가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함께 머무시길 요청하고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떼어 축사하시고 그것을 제자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서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은 비로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찾아오셨음을 깨달았습니다. 알고 보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자신의 마음이 뜨거워진 것도 생각났습니다. 이들은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합니다.

 

제자들을 찾아오신 예수님께서 우리도 찾아오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깨우쳐 주시고 눈을 열어 주님을 보게 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예수님을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한 주간 각자의 자리에 찾아오실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참빛 식구들 되시길 바랍니다. -河-

소중한 시간으로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부활절 예배는 교회가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흩어져 예배했습니다.

다시 이런 시간이 올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니 특별한 예배였습니다.

 

찬양대에서 준비한 특별 찬양을 보고 들으면서

우리 모두 감사했고, 어르신들은 울컥하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렇게 찬양하는 것 역시 작금의 특별한 상황에서만 가능한 추억일 것 같습니다.

 

자택 격리가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번 학기에 학교에 돌아갈 수 없고

썸머 캠프도 아슬아슬한 상황입니다.

그러니 부모님들이 24시간 아이들과 섞여 지냅니다.

 

자택 근무하는 청년들도 지루하고 힘들 것 같습니다.

쉽지 않은 시간입니다.

 

권사님들도 집에만 계시니 답답하고

무엇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막연함,

뉴스를 보면서 불안함도 느끼실 것 같습니다.

 

마음고생 하실 사업체를 운영하시는 참빛 식구들,

이 기간에도 출근하시는 분들을 위해서는

저절로 기도가 나옵니다.

 

2.

우리는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믿습니다.

 

어떤 상황이 펼쳐지고

어떤 환경에 던져지든지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습니다.

 

훗날 이 시간을 돌아보았을 때,

후회나 아쉬움이 생기지 않도록

코로나 19의 시간도 창의적으로 만들면 어떨까요!

 

아이들과 지금처럼 24시간 함께 있는 기회도 많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금방 자라서 부모의 품을 떠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시간으로 알고 이야깃거리들을 많이 만들면 어떨까요?

 

홀로 지내는 것이 외로움(loneliness)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체득하는 영적 고독(spiritual solitude)으로 만들 수 있다면,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집에 계시는 권사님들께서는

하나님 말씀을 읽고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늘리시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남은 자택 격리 기간에 <신약 통독>에 도전해 보시길 바랍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직장에 출근하시는 참빛 식구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여러분들의 섬김이 절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실 줄 믿습니다.

 

3.

코로나19 상황은

우리 개인이 따로 통제할 수 없는 일종의 재앙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택격리라는 명령이 내려진 것만 봐도

상황의 심각성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통제할 수 없기에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주님의 긍휼을 구합니다.

 

동시에

주어진 시간을 헛되게 흘려 보내거나

염려와 근심에 휩싸이지 않고

이 시간도 소중하게 만드는 참빛 식구들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시편9:10)

And those who know your name put their trust in you,

for you, O LORD, have not forsaken those who seek you. (Psalms 9:10)

 

하나님 아버지,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이 시간도 소중하게 만들 지혜를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4. 16 이-메일 목회 서신)

십자가 십자가 (4)

승리의 십자가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부활의 능력과 기쁨 속에 들어가는 날입니다. 함께 모여서 예배할 수 없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부활절을 보내는 것도 색다른 경험입니다.

 

우리는 지난 3주 동안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께서 지고 가신 십자가를 우리도 지고 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 자신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세상을 향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우리 각자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불만과 불평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은 점점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감사와 기쁨으로 주어진 십자가를 거뜬히 지고 가기 원합니다.

 

가로목과 세로목으로 된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했습니다. 세로목은 중심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세로목만 굳게 세워진다면 십자가가 아닙니다. 세로목에 가로목이 올려질 때 비로소 십자가가 되는데, 가로목은 이웃사랑을 가리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로목과 세로목이 만나는 곳에 달리셔서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까지 풀어내시고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깃든 화목의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이유가 없었습니다. 죄가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죄인의 자리에 내려오셔서 우리 대신 죄가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가 “의”가 되었습니다.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구약의 모든 제사를 폐하고 단번에 영원한 효력을 성취하신 대속의 은혜였습니다.

 

고난 주간을 맞아서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기 원했습니다. 가로목과 세로목이 만나는 그곳에 우리 자신을 올려놓고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기로 작정했습니다.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세상도 십자가 위에 올려놓고 주님의 긍휼을 구했습니다. 우리가 치러야 할 값을 대신 치르신 예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우리도 기쁜 마음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기로 결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류를 괴롭히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15:55). 사망이 쏘는 죄도, 죄가 가져오는 죽음도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극복하셨습니다. 스웨덴의 신학자 구스타브 아울렌의 말대로 십자가는 악한 세력을 물리친 승리의 상징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상이 생각하던 저주 또는 죽음이 아니라 부활과 생명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시작입니다. 죽음은 사라지고 영원한 생명이 임했다는 승리의 선포입니다. 부활을 맞는 참빛 식구들께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승리가 실제로 임하길 간절히 바랍니다.-河-

2020 고난 주간에

좋은 아침입니다.

 

1.

고난 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올해 고난 주간의 주제를 한 단어 <외로움>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하루속히 코로나바이러스가  잡히길 바라면서

집안에서만 보내는 고난 주간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예수님도 많이 외로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복음과 행하시는 능력을 본 제자들과 백성들은

예수님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답게

악한 세상을 뒤엎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드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예상을 뒤엎고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보통 사람이 가기 힘든 저주받은 길입니다.

 

그것을 본 제자들과 따르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기에

예수님 홀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죄인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 대신 예수님께서 죄가 되셨기 때문입니다(고후5:21).

 

집에 머무는 고난주간,

많은 행동과 삶에 제약 속에 보내는 고난주간,

– 외롭게 자신의 길을 가신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길 바랍니다.

 

2.

올해 부활 주일은 교회가 아닌 가정에서 맞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일이 생길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부활절이면 으레 가졌던

성만찬,세례 예식, 찬양, 주일학교 에그헌팅, 부활절 만찬도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년 의례적으로 맞던 부활절이 얼마나 귀했는데 새삼 느낍니다.

 

비록 함께 모이지 못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에게 맞는 부활절을 준비하시길 부탁드립니다.

허전하고 아쉬움 속에서 보내는 부활절이 아니라

우리 모두 각자 색다른 부활절을 맞기 원합니다: “내가 꾸미는 부활절”.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님의 은혜와 능력은

어디나 임할 줄 믿습니다.

 

3.

코로나 19의 힘겨운 시간도

결국 지나갈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2020년에 밀어닥친 전염병에 대해서 옛날 이야기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힘들 때는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과 불평이 나오고, 답답함을 느낍니다.

외롭고 적막합니다. 때때로 탄식이 나옵니다.

 

하지만, 훗날 돌아보았을 때 후회하거나 부끄럽지 않도록

우리 모두 의미 있는 고난 주간과 부활절을 맞기 원합니다.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우리 하나님을 믿으며 굳게 의지합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마가 15:37-38)

And Jesus uttered a loud cry and breathed his last.

And the curtain of the temple was torn in two, from top to bottom.(Mark 15:37-38)

 

하나님 아버지,

우리와 세상의 환경이 어떠하든지

십자가 예수님, 부활의 주님을 같은 마음으로 기억하고 예배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4. 9 이-메일 목회 서신)

십자가 십자가 (3)

–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오늘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기억하는 종려 주일입니다. 예루살렘 백성들은 종려나무를 흔들면서 “호산나(이제 구원하소서)”를 외치며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맞이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대로 (슥9:9)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예수님은 하나님을 떠난 예루살렘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의 장사꾼들을 내쫓고 성전의 본 모습을 회복하셨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제자들과 예루살렘 백성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은 물론 로마 정권을 뒤엎고 다윗 왕권을 회복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가지시고, 겟세마네 산에서 기도하신 후에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잡히십니다. 밤새도록 심문을 받으시고 결국 로마 총독 빌라도의 판결로 십자가형에 처해 지십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면서부터 예루살렘의 민심은 돌변했습니다. 종려나무를 흔들면서 예수님을 왕으로 맞이하던 예루살렘 사람들은 못된 죄인 바라바를 살려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칩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자신의 잇속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예고하신 것을 들었던 제자들 마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를 비롯해서 갈릴리에서 올라온 막달라 마리아와 몇몇 여성들만 끝까지 예수님 곁을 지켰습니다. 제 6시(정오)가 되니 온 땅에 어둠이 임했습니다. 그렇게 세 시간이 흐르자 예수님께서 크게 소리 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34절).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려지는 아픔을 경험하셨습니다. 겟세마네에서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신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이 그 정도로 힘겨웠습니다. 우리 죄를 대신 지고 가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처절한 모습입니다. 우리가 겪어야 할 고난을 대신 겪으신 예수님의 구속(redemption) 사역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바로 그 순간에도 “나의 하나님”이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시편 22편 말씀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절대로 놓치 않으셨습니다. 힘든 길을 가시지만, 그 길이 모든 사람을 살리는 길이고 부활로 이어지는 길임을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우리도 힘든 시기를 살고 있습니다. 탄식이 나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꼭 붙들고 가기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가신 길이니 우리도 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꿋꿋하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참빛 식구들 되시기 바랍니다.-河-

세가지 기도

좋은 아침입니다.

 

1.

현재 바이러스로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가

유럽의 이태리입니다.

시신을 실은 군용 트럭의 행렬을 보면서

마음이 짠하다 못해 먹먹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태리 그리스도인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도를 새롭게 발견했고

기도의 힘을 경험하고 있다는

<Christianity Today>의 기사를 요약해서 나눕니다.

 

1) 탄식의 기도/ Prayers of Lament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눈물로 침상을 적시거나,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주님의 은혜를 눈물로 구하는 시편의 탄식시를 읽으면서

아주 먼 옛날에 살았던 누군가의 기도라고 건성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시편의 탄식시들이 마음 깊이 울려 퍼집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시편 10:1)

Why, O Lord, do you stand far away?

Why do you hide yourself in the times of trouble (Ps10:1)

 

성경 속의 막연한 기도가 아니라

“나” “우리”의 기도로 변했습니다.

 

2) 이웃과 세상을 위한 기도/ Prayers of Intercession

그동안 우리 기도는 내 마음과 내 삶에 머물렀습니다.

종종 “기도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기도하지 않은 적도 무척 많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이태리]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몸 바쳐 일하는 의료진들, 병원에 누워있는 환자들과 가족들,

연구진들, 교회들을 위한 기도가 저절로 나옵니다.

 

전 세계의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우리를[이태리 국민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 모두 기도 속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3) 고요한 기도/ Prayers of Silence

아직 희망적인 뉴스는 없습니다.

전 세계가 바이러스에 휩싸여 있고 깜깜합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으면, 말문이 막혀서 침묵이 흐릅니다.

무슨 기도를 드려야 할지 막막해서 외마디 기도가 나옵니다:

“언제까지입니까? How long”

 

예전에 기도할 때 생각났던 수많은 단어와 말이 아니라

말없이 우리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기도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우리와 함께 탄식하시며 기도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의뢰할 뿐입니다.

 

2.

우리도 언제나 다시 만나서 함께 예배하고,

언제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지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를 괴롭히는 바이러스는 잡히고 말 것입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 기도의 언어들이 하나님 뜻에 합하고

더욱 순수하고, 확신있으며, 힘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시편18:1)

I love you, O LORD, my strength.(Ps 18:1)

 

하나님 아버지,

어려운 시기를 지나면서

우리의 기도가 더욱더 깊어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 4. 2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