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에서는

좋은 아침입니다.

 

1.

수요예배는

샌프란에 사는 어르신들께서 주로 참석하십니다.

 

조촐한 모임이지만,

매 주일 성경을 한 장씩 읽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창세기 50장을 완독했습니다.

작년에는 예레미야 52장을 독파할 정도로 끈기 있는 모임입니다.

 

이제 신약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만 남았습니다.

구약은 아직 읽을 부분이 많지만,

열두 권의 소예언서, 잠언, 전도서, 예레미야, 창세기를 읽었습니다.

 

아무래도 구약 성경이 지루하고 어렵기에

신약과 구약을 번갈아 읽어갈 계획입니다.

 

목요서신에

수요예배 교재를 첨부하고 있습니다.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여도

교재를 참고해서 성경 본문을 함께 읽어 가시길 부탁드립니다.

 

2.

지난 모임부터

마태복음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세리 출신인

마태(혹은 레위)가 기록한 말씀으로 매우 꼼꼼하게 구약을 인용하고

1장의 족보에서 알 수 있듯이 세밀하게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1:1)로 소개합니다.

이어서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서

한가운데 다윗이 등장하는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했습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 다윗부터 다윗 왕조의 멸망과 바벨론 포로,

바벨론 포로에서 예수님까지

14대씩 3 기간으로 족보를 구분했습니다.

 

여기서 14대는 완전수 일곱(7)의 두 배이니

완벽함을 뜻하고

예수님께서 다윗 왕의 후손으로 세상에 오셨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다섯 명의 여성이 등장합니다.

유다의 며느리 다말, 여리고의 라합, 모압 여성 룻,

헷 족속 우리야의 아내이자 훗날 다윗의 아내가 된 밧세바입니다.

마지막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여성이 등장하는 것이 특별합니다.

그것도 도덕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여성들입니다.

마리아가 약혼한 상태에서 성령으로 예수님을 갖게 되는데

행여나 그것을 책잡을 사람들이 있을까 싶어서

흠을 갖고 있는 여성들이 족보에 들어왔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마리아를 빼고 나머지 다섯 명의 여성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 민족과 관련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이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말씀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만 아니라 모든 민족의 구세주로 오셨음을 보여줍니다.

 

3.

구약성경이 말라기에서 끝납니다.

400년의 공백을 끊고 등장한 마태복음은

구약과의 연관성을 고려할 때 신약성경 맨 앞에 위치하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구약과 신약을 잇는 다리와 같은 역할입니다.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규정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수요예배에

참석하지 못 하셔도

첨부한 교재와 교회 안내 데스크에 마련된 복사본을 참고하셔서

함께 마태복음을 읽으시길 부탁드립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강절을 맞고 있기에

예수님의 탄생을 전하는 마태복음 1-2장이 더욱 뜻깊습니다.

 

말씀과 더불어

한 해를 마무리하시고, 새해를 계획하시는

참빛 식구들 되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마 1:22)

All this took place to fulfill what the Lord had spoken by the prophet. (Matthew 1:22)

 

하나님 아버지,

수요 예배는 물론 참빛 식구들 안에

하나님 말씀이 살아있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12.5 이-메일 목회 서신)

데살로니가전서 (7)

소망의 인내

 

오늘은 대강절 첫째 주일입니다. 교회력을 따르면 대강절이 새로운 한 해의 시작입니다. 교회력은 예수님을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로 시작해서,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절,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을 알리는 주현절,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의 사순절과 부활절, 그리고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거의 반년을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구하면서 보냅니다.

 

대강절은 성탄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대강절 기간 동안 매 주일 촛불을 하나씩 밝히면서 보냅니다. 빛으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을 촛불에 담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력의 첫 기간은 기다림으로 시작합니다.

 

기독교는 어떤 면에서 기다림의 종교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 백성들이 구약에서 예언했던 메시아가 오기를 기다렸다면,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기도한 것이 응답되기를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세상에 이뤄지길 기다립니다. 지난 시간에 배운 대로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길 기다립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소망의 인내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으로 신앙의 첫 단추를 채웠다면, 사랑으로 꽃을 피우고, 소망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믿음이 과거라면, 사랑이 현재이고, 소망은 미래입니다. 이처럼 소망은 앞으로 될 일이기에 성취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소망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믿음과 사랑을 넘어서 소망까지 구비한 온전한 신앙을 갖고 있었습니다. 소망이 있기에 현재의 어려움을 참을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입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렸고, 예수님께서 오시면 선과 악을 심판하시고 의와 믿음이 승리할 것을 믿었습니다.

 

바울에게도 소망이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방문해서 그곳의 모든 성도와 얼굴을 보며 교제하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길이 막혀서 제자 디모데를 먼저 보냈습니다. 또한 바울이 갖고 있던 소망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끝까지 신앙을 지켜서 이다음 예수님 앞에 섰을 때 바울의 자랑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장차 이뤄질 소망과 관련해서 궁금한 점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이미 하나님께  간 친지들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기에, 모든 성도가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산 자와 죽은 자가 주를 예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날이 도둑같이 임할 것이니 깨어서 예수님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이 소망을 품고 사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우리에게도 소망의 인내가 요청됩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영원한 생명을 누릴 그날을 기다리며 끝까지 신앙의 길을 걷기 원합니다. -河-

잠시 쉬어 가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올해도 어김없이

추수감사절을 맞았습니다.

 

추수감사절은

미국 최고의 명절입니다.

미국에 가족이 계신 분들은

거리 불문하고 가족을 찾아갑니다.

한국의 추석 명절에 버금가는 휴일입니다.

 

추수감사절이 지나면

곧바로 연말 모드로 전환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기간입니다.

 

참빛 식구들께서도

한 해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바쁘게 사셨습니다.

 

일상(ordinary life)이라고 쓰지만

하루하루의 삶이 특별했고 치열했습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날들도 많았습니다.

말 그대로 은혜로 한 해를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왜 내 기도만 들어주지 않으실까,

나를 미워하시나, 하나님 믿지 않아도 다 잘 될 아니었나”하는

믿음 없는 생각이 들 때도 솔직히 있었는데,

감사의 절기를 맞아서 한 해를 돌아보니

“하나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나”하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나님 믿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 즈음입니다.

 

2.

열심히 사신 참빛 식구들이시니

추수감사절 주간을 맞으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셔도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흥청망청 지낼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쉼은 어때야 할까요?

 

1) 여유를 갖고 하나님 말씀을 읽고 기도하면서

한해를 돌아보고 이른 감이 있지만, 새해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 가운데 한 책 (예: 마태복음, 빌립보서 등)을 정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도 추천합니다.

 

2) 그동안 못했던 독서, 비디오 시청(영화 등), 운동, 만남을 갖습니다.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매일 기도하고 말씀만 읽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기본이고 (ㅎㅎ)

바쁘게 사느라 소홀했던 일, 꼭 하고 싶었던 일이나 사람을 챙기는 것입니다.

 

3) 하나님 창조하신 자연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동네처럼 아름다운 곳에 살면서

집안에만 있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 면목이 없는 일입니다.

 

4) 가족과 소홀했다면, 진하게 패밀리 타임을 갖습니다.

잠시 일을 내려놓고 가족과 즐겁게 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5) 그냥 멍하니 편안하게 있는 것도 필요합니다.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는 시간입니다.

이것을 신앙적으로 말하면

침묵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안식하는 시간입니다.

 

3.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에 감사하고

한해 동안 함께 한 가족과 친지들에게 감사하고

바쁜 일상이지만 몸과 마음이 건강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잠시라도 쉴 수 있는 시간을 주심에 감사하기 원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절로 참빛 식구들을 축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살전 1:1)

To the church of the Thessalonians in God the Father and the Lord Jesus Christ:

Grace to you and peace. (1Thessalonians 1:1)

 

Happy Thanksgiving!!!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이

잠시 삶의 짐을 내려놓고 주님 안에서 쉼을 갖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11.28이-메일 목회 서신)

믿음의 길

저는 종종 기도의 반대말은 염려라고 말합니다. 염려하고 있다면 기도하지 않았다는 표시입니다. 염려가 밀려오면 기도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염려와 기도는 서로 상극입니다. 어디 기도만 그럴까요? 믿음 자체도 염려와 반대입니다.

 

저도 염려가 많은 편에 속합니다. 아마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면 염려를 달고 살았을 것 같습니다. 염려와 근심, 불안으로 인해서 우울증에 빠졌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으면서 염려와 불안이 많이 줄었습니다. 그래도 이런저런 일로 염려할 때가 많습니다. 그때마다 무릎 꿇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말없이 기도하는 침묵 기도가 마음을 잡는데 무척 도움을 줍니다.

 

4년 전쯤에 아내와 제가 한꺼번에 대장 내시경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부부가 함께 건강검진을 받으니 검사 시기가 겹친 것입니다. 정기검진인데도 스트레스가 컸습니다. 행여나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나, 큰 병은 없겠지, 대장 내시경도 잘못하면 의료사고가 난다는데 마취에서 잘 깨어나겠지 등등 쓸데없는 염려가 꼬리를 물더니 검사 날짜가 다가오면서 잠까지 설쳤습니다. 저희 부부에게 아무 문제가 없어서 10년 후에 다시 오라는 의사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감사하고 홀가분한 마음도 잠시, 목사인 저의 믿음 없음을 한참 동안 자책했습니다. 솔직히 창피했습니다.

 

교회를 향한 염려도 항상 제 마음속에 있습니다. 지금처럼 평안하고 가족같은 교회가 계속되어야 한다는 기대 반 염려 반입니다. 연로하신 권사님들께서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시면 안 되는데, 교회를 지키는 젊은 집사님들이 직장을 옮겨서 교회를 떠나면 어떻게 하지, 저의 부족함이 교회에 걸림돌은 되지 않을까 등등 염려가 밀려옵니다. 믿음을 외치는 목사에게 염려가 상존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입니다.

 

물론 염려하는 것들이 실제로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대부분의 염려가 염려에서 끝납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염려하는 우리네 모습이 참 안타깝습니다. 강한 것 같아도 한없이 약한 질그릇이라는 반증입니다.

 

과연 믿음이 무엇일까? 매주 예배에서 함께 고백하는 사도신경에 우리가 믿는 삼위 하나님과 신앙공동체,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잘 요약해 주지만, 믿음이 머리에 머물 때가 많습니다. 알고 있는 것이 가슴으로 내려오지 않으니 확신이 부족합니다. 손과 발 즉 삶으로 이어지지 않고 허공을 맴돕니다. 그 자리를 염려와 불안이 차지하면 우리의 믿음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곤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하는 믿음의 선조들처럼 어떤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믿음을 지키고 믿음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더욱 귀하겠지요. 예수님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신 이유도 이제야 감이 조금 잡힙니다.

 

믿음의 반대말이 염려라면, 믿음의 비슷한 말은 은혜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보완하고 완성하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는 바울의 고백이 마음 깊이 다가옵니다. 목사이면서도 염려와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저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염려와 불안으로 밤잠을 설칠 때도 밤의 달이 상치 못하도록 지켜주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믿음과 은혜로 무장했다고 염려와 불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하지만 우리의 실존이 그만큼 힘겹습니다. 순간순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부르면서 믿음의 길을 가야 할 이유입니다.

 

올해도 예외 없이 추수감사절을 맞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니 인생의 구비 구비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합니다. 인생길 골목 골목에 하나님께서 미리 가셔서 은혜의 깃발을 꽂아 놓으셨기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말씀대로 두려워하지 말고 주어진 인생길을 걷기 원합니다. 힘들 때는 기도하고, 좋을 때는 감사하며 찬양하고, 속절없이 무너질 때는 주의 은혜를 구하며 걸어가는 믿음의 길입니다. (2019년 11월 28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2019년 11월 4주 말씀과 찬양

데살로니가전서 (6): 사랑의 수고 2/ 살전 5:12-15

 

찬양(추수감사절)

감사찬송

 

보혈의 은혜

 

봉헌송: 하나님의 은혜 (이경민 지휘자)

데살로니가전서 (6)

사랑의 수고 (2)

 

오늘은 2019년 추수 감사 주일입니다. 매년 맞는 추수 감사절이지만 우리 삶의 모습과 상황이 다양하듯이 감사절을 맞는 마음도 다릅니다. 올 한 해는 하나님께서 어떤 은혜를 주셨는지,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 신앙과 삶에 어떻게 임했는지 돌아보고, 행여나 올해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았다면 앞으로 임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면서 감사절 예배를 드리기 원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감동할 정도의 믿음과 사랑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교회가 행하는 사랑의 수고는 바울이 더이상 쓸 것이 없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바울에게 배운 대로 서로 사랑했습니다. 신앙의 첫 단추인 믿음이 사랑으로 이어지니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소문이 사방으로 퍼졌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사랑의 수고는 바울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바울은 유모가 아이를 기르듯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사랑으로 돌봤습니다. 복음을 나누는 것은 물론 교회를 위해서 목숨까지 내어줄 수 있다고 고백할 정도입니다. 때로는 아버지가 자녀를 권면하듯이 위로하고 바른 길로 인도했습니다. 사랑을 받은 사람이 사랑을 나눌 줄 아는 법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로부터 받은 사랑을 교회 안팎에 나눴습니다.

 

그래도 교회는 언제 어떻게 무너질지 모르기에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더욱더 서로 사랑하기를 기도했습니다. 바울이 변함없이 그들을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당부입니다(3:12). 사랑이라고 해서 무작정 받을 생각만 하지 말고 자기 일은 자기가 감당하길 부탁합니다. 각자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자기 손으로 일하는 것도 사랑을 실천하는 한 영역입니다(4:11).

 

바울은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다시 사랑을 언급합니다. 신앙 공동체에서 사랑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인도하는 신앙의 지도자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보이라고 부탁합니다. 그때 교회에 질서가 잡히고 평안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실천해야 할 사랑의 수고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려줍니다. 게을러서 자신의 일을 하지 않고 무작정 의존적인 성도들을 권계해야 합니다. 부드럽게 타일러서 손수 일하도록 도우라는 실제적인 교훈입니다. 마음이 약한 자를 격려해야 합니다. 마음이 약한 자는 쉽게 낙심하고 절망하는 성도들입니다. 과거의 상처로 인해서, 삶의 어려움으로 인해서, 인간관계로 인해서 마음이 약해진 성도들에게 힘을 실어 주어야 합니다.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버팀목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오래 참고 선을 따라야 합니다.

 

구체적인 교훈인데, 이 말씀만 실천해도 교회가 사랑의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오늘 말씀을 실천에 옮기는 참빛 식구들 되시기 바랍니다. -河-

예수의 증거

좋은 아침입니다.

 

 

1.

주일에 살펴보는 데살로니가전서와

아침마다 나누는 요한 계시록에는

신앙에 올인한 초대교회 성도들이 등장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믿음, 소망, 사랑으로 신앙의 터를 잡았습니다.

믿음에 역사(행함), 사랑에 수고, 소망에 인내를 더한

그들의 신앙을 본 바울은 더 할 말이 없다고 감격했습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예수님을 믿으면서 닥친 어려움을 기쁨으로 이겼습니다.

핍박과 어려움을 능가하는 믿음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나눈 요한 계시록 말씀에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담대히 고백하고

끝까지 신앙을 잃지 않은 성도들입니다.

 

 

“증거”에 해당하는 헬라어에는 “순교”라는 뜻도 있으니

목숨 걸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2.

데살로니가는 당시 마게도냐 지방의 수도였습니다.

천혜의 항구요 무역도시였습니다.

바울이 그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면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곳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는

팔레스타인 갈릴리 지방

그것도 시골 나사렛 출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로 믿는 기독교 신앙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예수님을 받아드렸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세상에서 누리는 혜택은 별로 없습니다.

 

 

도리어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인해서

가족 또는 동네에서 왕따를 당하고 직장을 잃을 수 있습니다.

심하면 감옥에 갇히거나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목숨 걸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3.

과연 우리가 데살로니가에 살고 있었다면

로마 황제 숭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면서 기독교인이 될 수 있었을까요?

“예”라는 대답이 선뜻 나오지 않습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출세하거나

마음과 몸이 건강해지는 형통이 그들에게 없었습니다.

도리어 어려움이 찾아오고, 손해를 보는 상황입니다.

 

 

그들이 무엇을 발견했기에

목숨을 걸고 신앙의 길을 갔을까요?

 

 

예수 안에서 “생명”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그 어떤 세상 것과 바꿀 수 없는

죽음도 극복할 수 있는 영원한 생명,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믿었기에

그 힘든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신앙의 길을 갔을 것입니다.

 

 

4.

우리들 각자의 신앙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스스로 질문해 보십시오:

 

 

나는 왜 예수님을 믿는가?

 

 

참빛 식구들 안에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역사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세상에서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참빛 식구들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살전 1:5)

Because our gospel came to you not only in word,

but also in power and in the Holy Spirit and with full conviction.(1Thes 1:5)

 

하나님 아버지

예수의 증인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11.21 이-메일 목회 서신)

데살로니가전서 (5)

사랑의 수고 (1)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신앙을 생각할 때마다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항상 기억했습니다. 이 세 가지 신앙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이후에 펼쳐지는 데살로니가전서 전체를 요약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하나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았습니다(13절). 말씀에 기초한 신앙입니다. 복음에 역사(행함)가 함께 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주관하고 인도하시는 분이 성령 하나님이셨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소문이 각처로 펴져 나갑니다(1:8) 믿음의 역사가 복음의 전파로 이어진 것입니다. 복음의 빛을 세상에 비추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신앙생활의 첫 단추인 믿음에 머물지 않고 사랑까지 이르렀습니다. 사랑에는 “수고”라는 말씀이 달려있습니다. 말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했다는 표시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사랑이 넘쳤습니다(3:12).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사랑에 관해서 쓸 말이 없다고 말할 정도입니다(4:9). 믿음이 사랑으로 연결된 데살로니가 교회의 신앙이 부럽습니다.

 

사랑에는 수고가 따라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마게도냐 지방의 교회들을 도운 것 같습니다. 사랑을 실천한 것입니다. 교회 안의 어려운 성도들도 도왔는데, 바울은 교회가 돕는다고 일하지 않고 게으르게 사는 것을 경고합니다. 자기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손을 움직여 “수고”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을 받으려 하지 말고  부지런히 일해서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사랑한다고 무조건 받아주는 것은 아닙니다. 무분별한 사랑은 교회에 혼란을 가져옵니다. 무엇보다 교회는 화목해야 합니다. 바울의 교훈대로 교회 지도자들을 사랑 안에서 귀히 여겨야 교회에 질서가 잡히고 평안할 것입니다(5:13). 바울이 그랬듯이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때로는 아버지의 자세로 게으르고 부족한 교회 식구들을 권면해야 합니다.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는 것도 사랑의 수고입니다.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향해서 오래 참는 것이 사랑의 실천입니다. 사랑의 수고는 교회 밖에서도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것입니다. 누구를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는 것이 사랑의 수고입니다(5:14).

 

믿음이 아무리 좋아도 행함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죽은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갖고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굳건한 믿음이 요청됩니다. 믿음이 하나님과의 관계라면, 사랑은 이웃과의 관계입니다. 믿음이 역사할 때, 사랑이 임합니다. 그런데 사랑에는 수고가 따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 행함이 있는 사랑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한 주간 사랑을 실천하고 세상에서 선하게 살아갑시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