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십자가 (4): 승리의 십자가/ 고전15:55-58
찬양: 사랑의 주
십자가 십자가 (4): 승리의 십자가/ 고전15:55-58
찬양: 사랑의 주
승리의 십자가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부활의 능력과 기쁨 속에 들어가는 날입니다. 함께 모여서 예배할 수 없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부활절을 보내는 것도 색다른 경험입니다.
우리는 지난 3주 동안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께서 지고 가신 십자가를 우리도 지고 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 자신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세상을 향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우리 각자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불만과 불평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은 점점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감사와 기쁨으로 주어진 십자가를 거뜬히 지고 가기 원합니다.
가로목과 세로목으로 된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했습니다. 세로목은 중심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세로목만 굳게 세워진다면 십자가가 아닙니다. 세로목에 가로목이 올려질 때 비로소 십자가가 되는데, 가로목은 이웃사랑을 가리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로목과 세로목이 만나는 곳에 달리셔서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까지 풀어내시고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깃든 화목의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이유가 없었습니다. 죄가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죄인의 자리에 내려오셔서 우리 대신 죄가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가 “의”가 되었습니다.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구약의 모든 제사를 폐하고 단번에 영원한 효력을 성취하신 대속의 은혜였습니다.
고난 주간을 맞아서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기 원했습니다. 가로목과 세로목이 만나는 그곳에 우리 자신을 올려놓고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기로 작정했습니다.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세상도 십자가 위에 올려놓고 주님의 긍휼을 구했습니다. 우리가 치러야 할 값을 대신 치르신 예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우리도 기쁜 마음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기로 결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류를 괴롭히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15:55). 사망이 쏘는 죄도, 죄가 가져오는 죽음도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극복하셨습니다. 스웨덴의 신학자 구스타브 아울렌의 말대로 십자가는 악한 세력을 물리친 승리의 상징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상이 생각하던 저주 또는 죽음이 아니라 부활과 생명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시작입니다. 죽음은 사라지고 영원한 생명이 임했다는 승리의 선포입니다. 부활을 맞는 참빛 식구들께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승리가 실제로 임하길 간절히 바랍니다.-河-
십자가 십자가 (3):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마가 15:34-37
–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오늘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기억하는 종려 주일입니다. 예루살렘 백성들은 종려나무를 흔들면서 “호산나(이제 구원하소서)”를 외치며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맞이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대로 (슥9:9)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예수님은 하나님을 떠난 예루살렘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의 장사꾼들을 내쫓고 성전의 본 모습을 회복하셨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제자들과 예루살렘 백성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은 물론 로마 정권을 뒤엎고 다윗 왕권을 회복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가지시고, 겟세마네 산에서 기도하신 후에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잡히십니다. 밤새도록 심문을 받으시고 결국 로마 총독 빌라도의 판결로 십자가형에 처해 지십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면서부터 예루살렘의 민심은 돌변했습니다. 종려나무를 흔들면서 예수님을 왕으로 맞이하던 예루살렘 사람들은 못된 죄인 바라바를 살려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칩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자신의 잇속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예고하신 것을 들었던 제자들 마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를 비롯해서 갈릴리에서 올라온 막달라 마리아와 몇몇 여성들만 끝까지 예수님 곁을 지켰습니다. 제 6시(정오)가 되니 온 땅에 어둠이 임했습니다. 그렇게 세 시간이 흐르자 예수님께서 크게 소리 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34절).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려지는 아픔을 경험하셨습니다. 겟세마네에서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신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이 그 정도로 힘겨웠습니다. 우리 죄를 대신 지고 가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처절한 모습입니다. 우리가 겪어야 할 고난을 대신 겪으신 예수님의 구속(redemption) 사역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바로 그 순간에도 “나의 하나님”이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시편 22편 말씀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절대로 놓치 않으셨습니다. 힘든 길을 가시지만, 그 길이 모든 사람을 살리는 길이고 부활로 이어지는 길임을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우리도 힘든 시기를 살고 있습니다. 탄식이 나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꼭 붙들고 가기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가신 길이니 우리도 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꿋꿋하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참빛 식구들 되시기 바랍니다.-河-
십자가 십자가 (2): 화목하게 된 자/ 로마서 5장 5-11절
화목하게 된 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 가운데 으뜸을 뽑으라면 하나님과의 화목 또는 화해(reconciliation)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세 가지 경우로 설명합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세 가지 표현이 점점 심각해 지더니 나중에는 “원수”라는 강력한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심각했습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하나 뿐인 아들을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내려 보내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같은 예수님이셨는데 자기를 통째로 비어서 종의 형체, 즉 죄의 종이 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에게 종이 되었고 성경에서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했으니 죽음에 이를 수 밖에 없는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 우리와 똑같은 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지불해야 할 죄의 값을 예수님께서 대신 지불하셨습니다. 그 결과 죄로 인해서 막혀 있던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이것을 “화목” 또는 “화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에 참여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나를) 위해서 죽으셨음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이 객관적인 사건이라면, 믿음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참여하는 주체적인 결단입니다.
화목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탈라게>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서 변화를 도모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과의 화목은 우리가 행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행하신 사역입니다. 따라서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십자가는 가로목과 세로목이 만나는 지점을 꼭 붙들어 매거나 그곳에 못을 쳐서 고정시킵니다. 십자가의 한 중심에 하나됨, 화목이 위치한 것입니다. 길이가 길고 땅에 고정시키는 세로목이 하나님과의 관계라면, 길이가 짧고 세로목에 매달려있는 가로목은 이웃과의 관계를 뜻할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위에서 그리고 십자가 한 중심에서 하나님 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화목도 이룰 수 있습니다.
요즘처럼 힘들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위로를 얻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으로 부숴진 우리 마음도 십자가를 통해서 회복하고 다시금 힘을 얻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외롭고 지루한 시간도 홀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보면서 견딥니다. 우리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힘들기에 모든 사람이 힘을 합쳐서 이 위기를 이길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화목케 하고 결국 생명으로 회복하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믿습니다. 할렐루야! -河-
자기 십자가를 지고
우리는 지금 코로나바이러스로 발생한 전염병 재난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 지역을 위협하는 가장 큰 재난은 지진입니다. 지진의 공포심을 늘 느끼고 살지만, 89년이래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지진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 다음은 가뭄입니다. 몇 년 전 찾아온 극심한 가뭄으로 자동차 세차는 물론, 사업체 화장실의 물을 조절하고, 정원에 물주는 것까지 제한했습니다.
전염병은 금세기에 처음 찾아오는 재난 같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치사율이 높지 않은데도 우리 삶에 매우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전염병으로 수 만명이 죽고, 전염병이 닥치면 온 백성이 하나님께 나와서 회개하고 주의 은혜를 구하던 것이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과학이나 의술이 매우 발달했다고 믿었는데 이번 경우처럼 바이러스를 쉽게 잡지 못하는 것도 의아할 정도입니다.
어려움은 안팎에서 찾아 옵니다. 우리 자신이 자초한 어려움도 힘은 들지만, 어떻게든 애를 쓰면서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와서 자신의 잘못을 고하고 풀어나가면 됩니다. 혼자서 밤잠을 설치며 끙끙댈 지언정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지 않습니다. 우리 개인의 잘못으로 세상이 그릇될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처럼 밖에서 시작된 재난은 개인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습니다. 혼자서 잘한다고 해결될 것도 아닙니다. 개인의 재량으로 풀어나갈 수 없는 어려움입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겪는 어려움이기에 위로가 되지만, 그 어려움의 끝에는 각 개인이 오롯이 담당할 몫이 기다리고 있기에 불안합니다.
사순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 언덕을 오르신 예수님을 묵상하고, 부활의 기쁨을 준비하는 절기입니다. 하지만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 있어야 부활이 찾아 옵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십자가의 죽으심을 전제합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어려움도 부활의 능력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 언덕을 오르셨 듯이, 우리도 각자 져야 할 “자기 십자가”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겪게 되는 어려움입니다. 개인적으로 지고 가야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부활의 영광에 도달하기 위해서 감당해야 할 것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온 세상이 겪는 어려움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견디고, 그 속에서도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도 우리가 지고 가야할 예수님의 십자가가 될 것입니다.
고통은 견디라고 닥치는 것이랍니다. 고통 가운데 만나는 하나님은 오랫동안 기억하게 됩니다. 함께 겪는 고통입니다. 서로 돌아보고 격려하면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예수님 생각하면서 우리에게 닥친 고난을 견딥시다. 부활의 생명과 은혜가 우리 앞에 있음을 믿기에 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河-
십자가 십자가 (1): 자기 십자가를 지고/ 마태 16:24
예수님, 우리 예수님 (7): 믿음을 보시고/ 마태 9:18-26
찬양: 내가 주님을 (이경민 지휘자)
봉헌송: 공감하시네
두 가지 기적
나병 환자, 백부장의 종,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신 첫 번째 기적 묶음, 갈릴리 바다를 잠잠하게 하시고, 귀신을 쫓으시고,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두 번째 기적 묶음에 이어서 마지막 세 번째 그룹은 아픈 자들과 세상에서 소외된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깃든 세 가지 기적이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중심에 그리고 예수님의 마음이 잘 드러난 기적들이 처음과 끝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그룹은 두 가지 기적으로 시작합니다. 한 관리가 예수님께 와서 절을 하면서 자신의 딸이 죽었는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딸의 몸에 손을 대면 살아날 수 있으니 함께 자신의 집에 가시길 부탁합니다. 같은 사건을 기록한 마가복음에 따르면, 이 사람은 회당장 야이로였습니다. 마태복음은 그동안 살펴본 기적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 초점을 맞춰서 간략하게 기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집으로 가십니다.
많은 사람이 뒤를 쫓았습니다. 회당장이라는 지역 유지의 부탁이었으니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실지 궁금해서 더 많은 인파가 몰렸을 것입니다. 그때 한 여인이 예수님 뒤로 와서 예수님의 겉옷을 만졌습니다. 알고 보니 이 여인은 12년 동안 하혈을 하는 부정한 병을 앓고 있었는데, 예수님 소문을 듣고 옷깃이라도 만지면 자신의 병이 나을 것 같아서 인파를 무릎 쓰고 예수님께 나온 것입니다.
여인은 살짝 예수님의 옷깃을 만졌는데, 예수님께서 여인의 손길을 감지하시고 여인을 불러 세우셨습니다. 여인이 얼마나 깜짝 놀랐을까요! 지붕을 뚫고 예수님께 나왔던 중풍 병자를 대하시듯이 이 여인에게도 “안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9:22)고 선포하셨습니다. 12년 동안 하혈을 하면서 부정한 병을 앓았으니 세상에서도 죄인 취급을 받고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마음도 헤아리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여인과 대화하면서 시간이 지체되었기에 회당장의 집에 갔을 때는 피리를 불며 장례절차를 밟고 있었습니다. 그 다급한 순간에도 재촉하지 않은 회당장의 성품과 믿음이 대단합니다. 예수님께서 장례 행렬을 물리시고,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비웃었습니다. 죽은 사람을 어떻게 살려내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소녀에게 가서 “달리다굼(소녀야 일어나라)” 말씀하시고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죽었던 소녀가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온 땅에 퍼졌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임을 회당장의 딸을 살리심으로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