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좋은 아침입니다.

 

1.

청년 시절부터 좋아하는 찬양이 있습니다.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내 앞에 어려운 일 보네

주님 앞에 이 몸을 맡길 때 슬픔 없네 두려움 없네.

주님의 그 자비로운 손길 항상 좋은 것 주시도다

사랑스레 아픔과 기쁨을 수고와 평화와 안식을”

 

1절만 소개했지만

조용한 멜로디에 가사가 참 좋습니다.

 

날마다 아니 숨 쉬는 순간마다

어려운 일을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물론이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때마다 몸과 마음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의 자비로운 손길을 구합니다.

 

2.

정호승 시인은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라는 책에서

“풀을 베는 사람은 들판의 끝을 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풀을 베다가 중간에 일어나서 앞으로 보면

“아이구, 아직도 저렇게 많이 남았나!”

“아직 요것 밖에 못했나!”

지금 하는 일이 힘들어지거나

기운이 빠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풀을 베다가 일어나서 끝을 바라본답니다.

그리고는 “아, 벌써 많이 베었구나”고 생각하지 않고

“너무 많이 남았구나”고 말하면서

자신을 더욱 힘들게 한답니다.

 

시인은 다음과 같이 충고합니다: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은 바로 지금 이 순간입니다”

.

수요예배 잠언과 전도서에서 줄기차게 배웠던 교훈이기도 한데

실제로 지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과거를 생각하면서 추억에 젖거나, 아쉬움으로 마음 상해하고

미래를 생각하면서 꿈도 꾸지만 동시에 불안해하고 염려합니다.

과거는 현재가 지나간 기억이고

미래는 현재가 장차 이룰 기대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포착하고 살 수 있는 시간은 현재뿐이지요.

 

2016년도 절반이 훌쩍 갔습니다.

다시 한 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와 이곳(here and now)의 중요성을 되새깁니다.

 

내일 아침 새벽기도회에서 나눌 시편 말씀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격려가 있습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라 (시편 68:19)

Blessed be the Lord, who daily bears us up; God is our salvation. (Psalms 68:19)

 

하나님 아버지

주님 말씀대로

날마다 순간마다 참빛 식구들의 짐을 져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6.23 이-메일 목회 서신)

시편 묵상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은 새벽기도회는 물론

일 년 성경통독에서도 시편을 읽고 있습니다.

새벽기도회에서는 하루에 2-3장씩 읽어가고 있으니

한동안 시편 속에 빠져 살 것 같습니다.

 

저는 시편 말씀을 참 좋아합니다.

종종 시편 한 편을 선택해서

한 달 이상씩 설교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기도가 잘 안 되거나

마음이 힘들 때 시편을 펼쳐서 무작정 읽습니다.

 

시편 자체는

하나님 백성의 예배입니다.

기도와 찬양은 물론

하나님 앞에서의 고백과 결단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가 모두 들어있습니다.

 

“언제까지이니까(How long)?”로 대표되는

개인의 탄식과 공동체의 탄식을 읽으면서

우리 삶에 깊이 공감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래도 하나님의 의지하면서 다시 일어섭니다.

 

“할렐루야”로 시작되는 찬양 시편은

속으로 읽을 말씀이 아니라

소리 내서 읽어야 맛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라”로 시작되는 감사 시편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 만물과

세상과 우리 삶에 임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감사입니다.

요즘은 파란 하늘,

그 위에 유유히 흘러가는 흰 구름만 보아도 감사가 나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로 시작되는 시편 1편은 삶의 지혜를 주는 지혜시입니다.

 

이 밖에도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니 문을 들라는 시편은

왕의 행진과 등극을 찬양합니다.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찬양으로 읽으면

더욱 힘차고 위엄이 있습니다.

 

2.

시편 말씀은 성경의 한가운데 있습니다.

신앙과 삶의 중심에 예배가 있어야 함을 알려주는 듯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후에

주님 앞에서 크게 뉘우치는 마음과

새로운 영을 창조해 달라는 다윗의 회개 기도를 읽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편 51:10)

Create in me a clean heart, O God,

and renew a right spirit within me. (Psalms 51:10)

 

“창조하시고”에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쓰였던 히브리어 동사(“바라”)가 똑같이 사용되었습니다.

과거의 죄를 지워주시고(delete)

처음의 상태로 새롭게 창조해(create) 주시길 원하는 기도입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편 51:11)

Cast me not away from your presence, and take not your Holy Spirit from me (Ps 51:11)

 

큰 죄를 범했지만

자신을 문전박대하지 마시고

성령을 거두어 가지 마시길 구하는 간절한 애원입니다.

 

구원의 기쁨(the joy of salvation)을 회복시켜 주시길 간구합니다.

 

3.

시편 말씀으로

기도하고 찬양하고 예배하기 원합니다.

 

시편을 펼쳐서

소리 내서 읽고

속으로 묵상하고

우리 자신을 말씀 앞에 내어놓기 원합니다.

 

마음에 와 닿은 말씀을 표시해 놓고

읽고 또 읽으면서

우리도 시편 기자처럼

주의 말씀이 송이 꿀보다 달다고 고백하기 원합니다.

 

주의 긍휼히 여기심이 내게 임하사

내가 살게 하소서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시편 119:77)

Let your mercy come to me, that I may live;

for your law is my delight. (Psalms 119:77)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주의 말씀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6.16 이-메일 목회 서신)

                   

힘들 때는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 오후에 심방이 있어서

샌프란에 가는데

평소와 달리 길이 많이 막혔습니다.

 

막힌 적이 없는 길이었기에

샌프란에 차가 많아졌기 때문인지

아니면 앞에서 사고가 났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달리 우회도로가 없어서

꾹- 참고 신호등을 지나고

Stop 사인을 지키면서 운전을 했는데

앞에 “공사 중(under construction)”표시가 나왔습니다.

 

차선을 막고 공사 중이니

차가 막힐 수밖에 없습니다.

 

2.

under construction(공사 중)

– 어떤 면에서 우리 인생도 매 순간 공사 중입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인생길이 지체되고, 혼잡하고

완성될 때까지 여러 가지 필요한 것들이 많아서

염려와 근심이 이어집니다.

마음이 급해질 때도 잦습니다.

 

완성된 후의 모습을 눈에 그리면서

현재의 불편과 어려움을 참아낼 뿐입니다.

 

그런데 인생길은

크고 작은 공사를 늘 맞닥뜨리는 여정(journey)같습니다.

 

말끔하게 정돈된 아스팔트를 달리는 것도 잠시일 뿐

이곳저곳에서 고장이 나니

여기 고치고 저기 고치면서 걸어가는 발걸음입니다.

 

3.

요즘 새벽기도회에서

시편 말씀을 읽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 시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고백입니다.

 

다윗의 일생에 맞춰서 기록된

다윗의 시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그 밖에도 성전에서 함께 부르던 찬송과 기도입니다.

 

오늘 아침에 살펴본

시편 42편과 43편은 서로 짝입니다.

 

시편 기자는 주변에서 여러 가지 비난의 소리를 듣습니다.

무엇보다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라는

조롱 섞인 말이 제일 듣기 힘듭니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상황이 끝날 것 같지 않고

계속 공사 중일 것처럼 보입니다.

 

마음이 내려앉습니다.

몸과 마음이 상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향해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한탄이 나옵니다.

 

이처럼 힘겨운 상황 속에서

시편 기자는 자기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스스로 마음을 다잡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편 42:5,11; 43:5)

Why are you cast down, O my soul, and why are you in turmoil within me?

Hope in God; for I shall again praise him, my salvation. (Psalms 42:5,11; 43:5)

 

세상에 쉬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쉬워 보여도

막상 내 일로 닥치면 꽤 어렵습니다.

 

자신 있게 덤비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인생은 늘 공사 중입니다.

 

그래도 거기에 머물면 안 됩니다.

한 가지씩 한 가지씩 펼쳐놓은 인생의 공사판을 마무리해 가야지요.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허리를 동이고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다시 시작하는 하루가 되기 원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편 42:5,11; 43:5)

Why are you cast down, O my soul, and why are you in turmoil within me?

Hope in God; for I shall again praise him, my salvation. (Psalms 42:5,11; 43:5)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참빛 식구들의 발걸음을 인도하시고

주께서 저들의 소망이 되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6.9 이-메일 목회 서신)

분노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 한국에서

매우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청년이 아파트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했는데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던 분을 덮쳐서

두 사람이 함께 목숨을 잃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투신자살을 시도한 젊은이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자신감을 잃고 비관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답니다.

 

퇴근길에 비운의 죽음을 맞은 분은

뒤늦게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성실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던 가장이었습니다.

만삭의 아내와 여섯 살 아들을 두고 떠났습니다.

 

늘 착하고 선한 분들이

희생당하는 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아내와 아들에게 주님의 위로와 힘이 임하길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2.

세상이 참 어지럽습니다.

화장실에서 먼저 들어온 여성을,

등산로에서 먼저 마주친 분의 목숨을 빼앗는 것을 보니

개인의 문제와 동시에 한국 사회 자체에 커다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제는 UCLA에서 총기 사고가 있었습니다.

살생부까지 기록해 놓고 범행을 저질렀다니 머리가 쭈뼛 섭니다.

 

우리 모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살기가 힘들고 뜻대로 세상이 펼쳐지지 않으니

마음속에 분노가 생기고

자신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화를 내고,

심하면 극단적인 행동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구약성경 창세기에서도

형 가인이 분을 조절하지 못해서 동생 아벨을 죽인 사건이 나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 얼굴빛이 달라지느냐?”(창 4:6)

“Why are you angry, and why has your face fallen?

 

가인은 자신의 화를 조절하지 못하고

들로 나가서 아벨을 죽이면서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됩니다.

 

3.

누구나 분노(anger)를 갖고 삽니다.

 

중요한 것은 분노를 통제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쉽지 않으니

평소에 분노를 다스리는 훈련을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분노를 다스릴 수 있을까요?

지난번 <참빛 보이스>에서 배웠던

12가지 tool box가 실제적인 도움이 됩니다.

그때 메모해 두었던 것에서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심호흡하기 (deep breathing tool)

스트레스를 받고, 다급하게 행동하게 되고

그것이 분노로 발전하는 순간,

잠깐 멈춰서 대여섯 번 심호흡하면 확실히 감정이 조절됩니다.

 

2) 피난처 찾기 (Quiet and safe place tool)

분노가 생기면 화를 가라앉힐 수 있는

안전하고 조용한 피난처를 우선 찾아서

그곳에서 평정심을 되찾는 것도 좋습니다.

 

3) 시간 갖기 (taking time tool)

심호흡과 동시에 잠시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말과 행동을 한 박자만 늦추는 것이지요.

중요하고 다급한 일이 아니라면 다음으로 연기하는 것도 좋습니다.

 

4) 다시 일어나기 (courage tool)

주저앉아 있으면 자꾸 밑으로 가라앉습니다.

일어나야 합니다.

제가 자주 쓰는 히브리어대로 ”쿰(stand up)”하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손을 붙잡고 일으켜 세우실 겁니다.

 

5) 쓰레기통에 넣기 (garbage tool)

화를 내게 만드는 것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대개 사소한 일들입니다.

없어도 되는 것들, 진작에 버려야 할 것들을 갖고 있다가

거기서 화가 생긴 경우가 많습니다.

화를 일으키는 자질구레한 것들을 쓰레기통에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화를 내게 만든 것을 십자가에 흘려보내고

화를 내는 자신까지 십자가에 내려놓고,

주님의 은혜, 위로, 사랑, 힘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물론

우리가 사는 세상에 주님의 평화가 임하길 기도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시편37:23-24)

The steps of a man are established by the Lord, when he delights in his way;

though he fall, he shall not be cast headlong, for the Lord upholds his hand. (Psalms 37:23-24)

 

하나님 아버지

샬롬의 은혜를 참빛 식구들과

우리가 사는 세상에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6.3 이-메일 목회 서신)

생수의 강

좋은 아침입니다.

 

1.

이번 주는

성령 강림 후 둘째 주일입니다.

 

교회력에 따르면

성령강림 주일이 27주동안 계속됩니다.

반년을 성령 강림주일로 지키는 셈입니다.

 

강단 색깔은 초록입니다.

한주 한주

성령강림주간을 보내면서

우리의 신앙과 삶이 푸르게 자라야 합니다.

 

초대교회에서부터

성령 하나님을 두고

“생명을 주는 분(life-giver)”으로 믿었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마음과 삶 속에 계십니다.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고

힘과 권세를 주시고

생명을 주십니다.

 

또한 성령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하시며

우리와 함께 탄식하시면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니다.

 

저는 성령 하나님을 떠올리면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그 만큼 친밀하고

우리와 깊이 공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

요한복음 7장에 의하면

초막절을 지낸 예루살렘 백성들을

예수님께서 초청하시는 말씀이 나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리라 (요 7:37-38)

“If anyone thirsts, let him come to me and drink.

Whoever believes in me, as the Scripture has said,

‘Out of his heart will flow rivers of living water.’” (John 7:37-38)

 

솔직히 우리는 어떤 면에서 모두 목이 마릅니다.

갈증을 갖고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아시기에

자신에게 와서 목마름을 해소하라고 초청하십니다.

 

갈증을 해소하는 정도가 아니라

안에서 생수의 강이 흐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생수의 강”이야 말로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3.

잠시 일손을 멈추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을 느껴보십시오.

우리 안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십시오.

 

마음과 삶 그리고 신앙 가운데 있는 갈증에

생수의 강이 흐르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성령 하나님을 깊이 느끼고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시는 하루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리라.

Out of his heart will flow rivers of living water.

 

생명을 주시고

우리 안에 생수의 강을 흐르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오늘도 참빛 식구들과 함께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5.27 이-메일 목회 서신)

신중함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번

주일 예배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자동차에 문제가 생겨서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신호등에 서 있는데

아내가 후드 앞쪽에서 연기가 난다기에

서둘러 차를 길옆 상가에 세우고

후두를 얼어보니 기름이 다 흐르고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상가의 Auto Zone직원에게 도움을 청하니

서둘러 정비소로 가랍니다.

자동차에 냉각수를 공급하는 펌프(water pump)가

수명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주일에 문을 연 Sears가 가까운 곳에 있어서

그곳까지 2마일 여를 운전하는데

운전석 앞 계기판이 1분만 지나면 꼭대기까지 올라갑니다.

몇 번을 가고 서고를 반복한 끝에

정비소에 도착해서 거금을 주고 수리했습니다.

 

일찍 발견했기에 다행이지

모르고 계속 운전했다면

엔진까지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있었답니다.

 

엔진을 시켜주는 냉각수가 그렇게 중요한지 처음 경험했고

지금은 운전하면서 계기판을 보는 습관까지 생겼습니다.

 

2.

어제로 수요예배에서

잠언과 전도서 읽기를 마쳤습니다.

열 달 가까이 계속된 긴 여정이었습니다.

 

잠언에서는

하나님 백성의 거룩한 삶의 양식을 구체적으로 배웠고

전도서에서는

시간의 축을 인생의 끝에 옮겨 놓았을 때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금 이 순간,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portion)을 누리고,

사라질 것을 영원한 것과 바꾸지 말고

젊어서부터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해야 함을 배웠습니다.

 

잠언과 전도서를 마치면서

제 마음에 깊이 다가온 표현이 있다면 “신중함”입니다.

 

신중함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쉬킬”은

잠언이나 전도서의 지혜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매사에 서둘지 않고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차근차근

그렇지만 기회를 놓치지 않고

행하는 것이 신중함입니다.

 

3.

자동차에 냉각수가 작동하지 않으니

1분도 되지 않아서 엔진이 과열되고 연기가 났습니다.

 

신중함은

쉽게 열을 받지 않고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태도입니다.

 

반대로

근심과 염려가 밀려오면 균형을 잃고

밑으로 가라앉습니다.

 

신중함은

그것까지도 조절하는 능력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어지럽고

빠르게 진행되기에

당황스럽고 허둥대기도 합니다.

 

그때도 중심을 잃지 않고

신중하게 주어진 삶을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참빛 식구들께

세상을 사는 지혜와

세상의 이치를 분별하는 명철을 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말씀에 따라 조심하며 사는 사람은 일이 잘되고, 주님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을 명철하다 한다 (잠언16:20-21, 새번역)

Whoever gives thought to the word will discover good, and blessed is he who trusts in the Lord.

The wise of heart is called discerning. (Proverbs 16:20-21)

 

하나님 아버지,

우리 삶이 작은 것에 흔들리 않고

오늘 하루도 차분하게 주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5.20 이-메일 목회 서신)

부르심

좋은 아침입니다.

 

1.

얼마 전 한국에서는

특수부대 군인들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실제로 웬만한 국가들은

목숨을 걸고

작전을 수행하는 특수부대를 갖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미국 해군의 특수부대

네이비 씰(Navy Seal)이 유명합니다.

 

워싱턴 포스트 인터넷판에는

특수 부대 요원이 되기 위해서

훈련을 하던 세 명의 병사가 목숨을 잃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한 명은 수영 훈련 중에 사고를 당했고

나머지 두 명은

중간에 훈련에서 탈락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들 가족과 인터뷰한 내용도 기사에 있었는데

저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은

세 명 모두 아주 어렸을 때부터 특수부대 요원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특수부대 요원으로 부르셨음을 확신한 병사도 있었습니다.

 

미국 명문 대학을 나온 재원들도

네이비 씰에 들어가기 위해서 지독한 훈련을 받는답니다.

 

훈련을 받다가 중간에 탈락한 이들을 세심하게 관리야 한다는 의견과

특수부대 요원이 된다는 것 자체는 목숨을 담보로 한 활동이기에

훈련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특수부대라고 해도

생명은 귀한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서 애끓게 기도하는 가족들이 있고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면서 충성을 다하려는 마음이 있으니

철저하게 돕고 관리해 주는 것은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

 

2.

하나님께서

자신을 특수부대로 부르셨다는 대목에서

지난 두 주 동안 살펴본

오바댜와 아리마대 요셉이 생각났습니다.

 

이들은 세상 한가운데서

악한 왕을 섬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단체의 회원이었습니다.

 

마음고생이 상당했을 텐데,

그 속에서 하나님 백성으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았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도 세상에서

오바댜와 아리마대 요셉의 삶을 살고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셨고,

하나님께서 세상 속에 선교사로 보내셨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만만치 않으니

네이비 씰 요원들처럼

세상에서의 생존 훈련과 그곳에서의 작전 수행 능력을 키워야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행여나 안일하게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허리띠를 꽉 묶고

각오를 새롭게 다질 필요가 있겠습니다.

 

오늘 하루

보냄 받은 곳에서

하나님 나라 특수요원으로 살아봅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편 23:4)

Even though I walk through the valley of the shadow of death,

I will fear no evil, for you are with me; your rod and your staff, they comfort me.(Psalms 23:4)

 

하나님 아버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참빛 식구들과 함께하시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보살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5.13 이-메일 목회 서신)

그가 주셨으니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은

5월 5일 한국으로 하면

어린이 날입니다.

 

일제가 통치하던 1923년 5월 1일,

소파 방정환 선생님을 비롯한 색동회 회원들이

어린이 날 행사를 처음으로 시작하였답니다.

 

어린이들의 권리도 찾아주고

꿈도 심어주면서,

그들이 장차 민족의 주역이 되길 기대하면서

해방 이후부터 5월 5일을 어린이 날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어린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교회에서 뛰노는 것을 보면

교회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흐뭇합니다.

 

저도 어린시절을

교회에서 뛰놀며 지냈고

그러는 와중에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스며들어왔기에

아이들이 교회에서 지내는 것 자체를 귀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길 기대하겠습니다.

 

2.

예수님께서도

어린아이 같아야

하나님 나라/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린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실제로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처럼 과거에 연연하거나

미래를 놓고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냥 현재를 바라보고, 현재를 즐깁니다.

그리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기뻐하지요!

 

또한 어린이들은

낮고 작은 자들입니다.

아이들을 아무리 귀하게 여겨도

그들은 여전히 약자들입니다.

부모님들의 보호가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이와 같아야

천국에 들어올 수 있다고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를 돌봐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의 보호자가 되시겠다는 선언입니다.

 

3.

매달 제게 배달되는

<Table Talk>이라는 경건의 일기 책자가 있습니다.

 

5월 주제가 “요한복음 3:16(John 3:16)”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이 책자에서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잘게 잘라서 한 단어 또는 짧은 구절들로 설명해갑니다.

그 중에 “하나님이..주셨으니 (He gave)”에 대한 해설이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신 사건이

“하나님이..주셨으니”의 절정이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 가운데 최고라는 것이지요.

 

“십자가는 복음의 심장부입니다.

우리의 죄를 이야기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The cross stands at the heart of the gospel not because of what it tells us of sin,

But because of what it tells us about the grace of God”

 

어른들인 우리는

교리에 익숙해서

십자가를 보면서 죄를 먼저 떠올릴 수 있습니다.

물론 중요합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온 죄를 회개할 때

십자가의 은혜 속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이들의 눈으로 십자가를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더 크게 보일 것 같습니다.

 

죄를 덮어버리는 사랑,

허물을 용서해주는 사랑,

우리의 연약함을 감싸주는 손길,

십자가 앞에서 느끼는 편안함,

그냥 사랑해 주시는 그 무조건적인 사랑!

 

지나 온 과거는 께름칙하고

미래를 생각하면 염려와 두려움 투성이지만

죽기까지 우리와 함께 해 주시겠다는 그 약속,

그 능력을 의지해서 오늘을 삽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푹- 잠기는 하루가 되기 원합니다.

그 사랑 안에서 우리의 모든 것이 녹아 내리고

(지난 주일에 나눴던) <오바댜> 주님의 종으로 세워지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척이나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실만큼…

 

하나님,

저도 하나님을 무척 사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사랑 속에 들어가서

머리끝까지 그 사랑에 잠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5.6 이-메일 목회 서신)

그 모습 그대로

좋은 아침입니다.

 

휴가를 얻어서

가족과 함께 그랜드 캐년을 다녀왔습니다.

 

인디애나에서 샌프란으로 오는 길에

그랜드 캐년을 들렸으니

11년 만에 같은 장소를 다시 찾은 것입니다.

 

그때 고등학생, 중학생이었던

두 아이들이 이제는 성인이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도 어느 덧 50대 중반이 되었고요.

 

11년 만에 다시 찾을

그랜드 캐년이 어떤 모습일지

떠나기 전부터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큰 기대를 갖고

한국에서 오신 누님과 함께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그랜드 캐년 진입로에 들어서니

예전 생각이 났습니다.

공원에서 점심을 해 먹고,

일몰을 보겠다고 저녁 늦게까지 버텼지만

막판에 먹구름이 몰려와서 허탕쳤던 생각도 났습니다.

 

차를 주차해 놓고

캐년(“협곡”이란 뜻임)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눈 앞에 그랜드 캐년이 웅장하게 펼쳐집니다.

 

자연의 거대함, 아름다움, 신비로움

그리고 다양함까지

감히 우리 인간이 다가서기 힘들 정도로 웅장합니다.

 

아이들도 크고

우리 부부도 조금 나이가 들어서 변한 보습으로 다시 찾아왔지만,

그랜드 캐년은 그 때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제 눈으로 보기에는 조금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변하지 않고

아니 아주 천천히 변하는 자연 앞에서

우리 인간은 참 연약하고 왜소해 보입니다.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번갈아 찾아와서

웅장한 자연 앞에서 감탄할 것입니다.

찾는 사람들은 바뀌어도

그랜드 캐년은

언제나 그곳에 웅장하게 서있겠지요.

 

지난 11년을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그랜드 캐년을 보면서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변함없이 그곳에 계실 우리 주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생각하니

감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찬송이 나왔습니다.

 

자연처럼 아니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처럼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제가 되고 참빛식구들이 되길 기도했습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시편 8:9)

O Lord, our Lord, how majestic is your name in all the earth! (Psalms 8:9)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영원하심을 찬양합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고

변치 않으시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4.29 이-메일 목회 서신)

마음에 둘지어다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수요일에는

20년 동안 한 팀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프로 농구 선수가 마지막 경기를 치렀습니다.

 

올해 서른일곱 살인 코비 브라이언트는

열일곱 살에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 입단해서

지난 20년 동안 3만 점이 넘는 골을 넣었고

중간에 못된 스캔들에 휩싸인 적도 있지만

어제 경기에서 혼자 60점을 넣으면서

그의 농구 인생을 마무리했습니다.

 

팀을 옮기지 않고

20년을 한 팀에서 지낸 것도 대단하고

틴 에이저에 프로선수가 되어서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한 것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그의 모습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2.

수요예배에서 읽고 있는 전도서 7장에는

시작보다 끝을 강조하는 말씀이 연거푸 나옵니다.

 

출생한 날보다

죽는 날이 낫다고 말할 정도로

마지막을 중시합니다.

 

7장 2절에서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살아 있는 자는 <이것을> 마음에 둘지어다.

 

여기서 “이것”은

<만사에 끝이 있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계속될 것 같은 어려움에도 끝이 있습니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이 더 중요합니다.

물론, 우리 인생에도 끝이 있습니다.

 

이처럼 매사에 끝이 있음을

마음에 두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3.

시작과 끝이

분명한 인생을 살기 원합니다.

 

하루하루

아침의 시작이

저녁의 감사로 마무리되길 바랍니다.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각자에게 주어진 길을 끝까지 걷기 원합니다.

 

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 1:6)

I am sure of this, that he who began a good work in you

will bring it to completion at the day of Jesus Christ. (Phil 1:6)

 

하나님 아버지,

매사에 끝이 있음을 마음에 두고

오늘 하루를 시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4.15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