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 되리라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부활절에는 스리랑카에서 테러가 있었습니다.

불교 인구가 80%에 가까운 나라지만

기독교, 이슬람, 힌두교가 나머지를 차지하면서 종교 간의 갈등이 내재해 있었는데

이슬람 극렬분자들의 소행으로 연쇄 테러가 일어났습니다.

 

세상을 밝히고 선하게 만들어야 할 종교가

어둡고 비극적인 일을 야기하는 아이러니 앞에서

큰 돌을 달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지난 토요일에는 샌디에이고 유대인 회당에

백인 청년이 총격을 가했습니다.

LA에서는 군대를 제대한 한 청년이 계획한 테러를 사전에 막는 일도 있었습니다.

어제는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캠퍼스에서 총기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세상이 뒤숭숭합니다.

우리는 물론 자녀들이 사는 세상에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하기에

세상의 평화를 위한 기도가 저절로 나옵니다.

 

2.

그동안 주일예배에서는

성경의 식물들에 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결코 주인공이 되기 힘든 배경화면이지만

평생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식물의 영성이 깊이 다가왔습니다.

 

5월에는

매년 그랬듯이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게 됩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과 같아서

기독교인들에게 꼭 필요한 신앙 훈련이고 은혜의 수단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드리는 골방 기도,

함께 모여서 드리는 공동체 기도,

조용하게 드리는 기도,

함께 드리는 뜨거운 기도,

하나님께 소원을 아뢰는 간청.

이웃을 위한 기도까지 기도의 지경은 무척 넓습니다.

 

5월에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면서

각자의 기도 생활을 점검하고 실제로 기도하기 원합니다.

 

속회를 비롯한 소그룹에서 기도 제목을 나누고

교회 안에 기도 모임들이

이곳저곳에서 생기면 목사로서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3.

우리 교회에 기도의 불길이 살아나길 기대하면서

2019년 기도에 대한 말씀을 준비합니다.

 

기도에 대한 깨달음,

기도해야 숨을 쉴 수 있고 살수 있다는 결심,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경험,

기도하는 사람을 막을 것이 없다는 간증,

거기에 교회적으로 기도에 대한 불꽃이 타오른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물론 우리 교회의 특징이 있으니 억지로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기도에 게으르거나 쉬면 안 됩니다.

기도를 멀리해서도 안 됩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숨을 쉬지 않으면 살 수 없듯이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은 물론 인생도 힘을 잃을 것입니다.

 

새달을 맞이했습니다.

온 세상이 푸르게 변하는 5월에

우리 기도가 짙어지고 풍성해지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11:24)

Therefore I tell you, whatever you ask in prayer, believe that you have received it,

and it will be yours.(Mark 11;24)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참빛 식구들의 기도를 도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5.2이-메일 목회 서신)

 

 

성경의 식물들 (10): 겨자씨

성경의 식물들을 살펴보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던 떨기나무로 시작해서 오늘 함께 나눌 겨자씨까지 열 가지 식물을 나무 중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 떨기나무는 광야를 지키는 잡목이고 쉽게 불에 타는 나무인데, 그곳에 하나님께서 타지 않는 불꽃으로 임하셔서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살구나무로 번역된 <샤케드>는 아몬드 나무로서 봄을 알리는 희망의 나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는 약속의 나무였기에 히브리어 <샤카드(지키다)>와 더불어 성경에 등장했습니다. 성전을 장식했던 레바논의 백향목은 높고 고결한 자태를 자랑합니다. 우리 신앙도 백향목처럼 곧고 높이 자라길 기대했습니다.

 

사역과 삶에 지쳤던 엘리야가 광야로 나갔을 때 그에게 쉼터를 제공한 것은 로뎀나무였습니다.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서 주의 천사가 공급하는 양식을 먹고 다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수문 앞 광장에서 에스라가 읽어주는 하나님 말씀에 커다란 은혜를 받았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힘이라는 느헤미야의 격려와 계속된 말씀 탐구를 통해서 신앙을 회복하고 감사의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평화의 상징인 감람(올리브)나무, 잎이 넓고 푸른 상록수인 화석류 나무,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종려나무, 그 밖에 여러 가지 나무로 지은 초막을 보면서 우리의 신앙과 인생을 돌아보았습니다.

 

이방 땅에서 삶의 터전과 안전을 확보한 아브라함은 수양버들처럼 잎이 늘어져서 그늘이 되는 에셀 나무를 심고 그 아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삶 속에서 감사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무화과나무는 성경에 처음 등장합니다. 하나님께 죄를 지은 아담과 이브가 무화과 나뭇잎으로 몸을 가린 것입니다. 봄철에는 설익은 무화과 파게를 가난한 사람들이 양식으로 삼았습니다. 구약의 선지자 하박국은 무화과 잎이 말라도 하나님 한 분으로 기뻐하겠다고 노래했습니다.

 

물을 잘 머금는 우슬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당시 양의 피를 묻혀서 문설주에 바르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입에 신포도주를 적시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큰 죄를 범한 다윗은 우슬초로 정결케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생명 나무는 성경의 처음과 끝, 그리고 중간인 잠언에서 하나님께서 생명의 근원이 되시며, 생명의 삶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보는 겨자 나무는 작은 씨로 유명합니다. 작지만 그 안에  생명을 품고  있으니 크게 자랍니다. 넓게 퍼진 가지로 인해서 새들이 깃들고 믿음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성경의 식물들처럼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하나님께 쓰임 받은 참빛 식구들이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河-

부활절 그 이후

신약성경 요한복음은 21장으로 끝나지만, 마지막 21장은 에필로그와 같고 20장 마지막 절에서 요한복음이 마무리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요한복음 20장 마지막 절(31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 )( )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성경공부 시간에 괄호 안에 들어갈 두 글자를 맞추는 퀴즈를 내면 대부분 “구원” “은혜” “사랑” “능력” 등으로 답하십니다. 그런데 정답은 “생명”입니다.

 

요한복음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교리적인 용어들이 아니라 괄호 안에 “생명”이 들어간다는 사실이 크게 다가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생명이라고 하신 것과 예수님을 믿었을 때 생명이 임한다는 것은 지난주에 맞은 부활절과 관련됩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이 가는 죽음의 길을 가셨습니다. 죽음은 죄의 결과인데, 예수님은 죄의 값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죄를 지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역설적인 사건입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기독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2천년 전 팔레스타인에 살면서 많은 기적을 행한 특이한 인물, 또는 하나님 말씀을 잘 풀어낸 위대한 유대랍비 정도로 기억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악한 세력을 이기고 “승리자 그리스도”로 다시 사셨습니다. 거기서부터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따르는 기독교가 시작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제자들이 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큰일을 하실 줄 알고 미리부터 인사청탁을 했던 요한을 비롯한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증인에 해당하는 헬라어 <마르튀스>에서 순교자에 해당하는 영어 martyr가 파생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을 보고 현장을 떠났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과 함께 했던 3년을 회고하면서 요한복음을 저술했고, 그 말미에 예수님을 믿으면 “생명”을 얻는다고 기록한 것입니다. 부활 이후에 일어난 변화들입니다.

 

부활은 생명입니다. 기독교 자체가 생명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찾아왔고, 우리가 전하는 복음에 생명이 있음을 믿습니다. 이같은 고백을 하면서 사순절을 보냈고 지난주에 부활 주일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부활 이후의 삶입니다. 연중행사로 부활절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은혜와 능력, 아니 부활에 깃든 생명을 부활 이후에도 줄곧 경험해야 합니다.

 

부활 이후의 삶을 생각할 때,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역과 명령을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세상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꿈꾸시고 통치하는 세상입니다. 강물처럼 흐르는 공의, 약한 자들이 공평하게 대우받는 정의, 여전히 어둠 속에 있는 이웃들에게 생명을 전하고 행하면서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하라는 부탁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약속한 성령이 임하기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도하길 부탁하셨습니다. 120명의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힘을 다해 기도하며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우리는 사순절과 고난 주간을 지내면서 개인적으로 또는 공동체적으로 기도했습니다. 특별기도회를 가졌고 금식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부활절 이후의 기도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기다리면서 기도했던 제자들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약속을 붙잡고 더욱 열심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부활절 이후는 사순절 동안 행했던 신앙 훈련을 각자의 성품과 삶에 내면화하는 시간입니다. 제자들이 그랬듯이 세상 속에서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도 우리의 몫입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2019년 4월 25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샬롬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에는 스리랑카에서 들려온

테러 소식으로 안타까운 부활절을 보냈습니다.

불교 인구가 70%에 가까운 나라지만

힌두교, 이슬람, 기독교가 나머지를 차지하면서 종교 갈등이 심했는데

엊그제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에 의해서 연쇄 테러가 일어났습니다.

 

일반인이 투숙했던 호텔은 물론

부활절 예배를 드리던 교회까지 테러를 자행하고

수백명이 목숨을 잃는 것을 보면서

저절로 주님의 위로와 평화를 구하는 기도가 나왔습니다.

 

국지적으로 일어나는 무차별 테러가

전쟁보다 무섭게 세상을 위협할 것이라는

예측이 맞는 것 같아서 더욱더 안타깝습니다.

 

세상을 밝히고 선하게 만들어야 할 종교들이

어둡고 비극적인 일을 야기하는 아이러니 앞에서

큰 돌을 매달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온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2.

우리는 지난주에 부활절을 보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만나실 때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문안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한 이사야 선지자도

예수님을 “평강의 왕”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천사들이

양을 지키던 목자들에게 나타나서

“높은 곳에서는 영광, 땅에서는 평화”라고 노래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떠난다고 말씀하시니

제자들이 염려하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때도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평강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평강을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누리는

최고의 특권 역시 흔들림 없는 평안입니다.

 

3.

주일예배에서는 찬양 전에

언제나 “샬롬”으로 인사합니다.

히브리어 샬롬은 육신, 마음, 신앙,

세상의 평화를 기원하는 매우 훌륭한 인사법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화해)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샬롬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건강하고 온전한 몸과 마음을 유지합니다.

우리 안에 임하는 샬롬입니다.

우리의 일에도 주님의 평안이 임합니다.

인생 속에 임하는 샬롬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화평케 하는 자(peace maker)로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세상 속에서 화평케 하는 자로 사는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르십니다.

우리로 인해서 세상과 이웃 속에 임하는 샬롬입니다.

 

부활절 이후의 참빛 식구들의 삶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임하길,

우리가 사는 세상에 주님의 평화가 임하길 바랍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14:27)

Peace I leave with you; my peace I give to you.

Not as the world gives do I give to you.

Let not your hearts be troubled, neither let them be afraid. (John 14:27)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는 세상에, 우리 마음에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평안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4. 25이-메일 목회 서신)

성경의 식물들 (9): 생명나무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셨습니다/He is risen! 오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다시 사신 것을 기억하며 예배하는 부활절입니다. 부활절은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하고 큰 절기입니다. 지난주일 설교에서 말씀드렸듯이 유대인의 명절 유월절과 맞물려 있어서 음력으로 지키는 부활절은 실제 달력과 맞습니다. 우리 지역이 예수님께서 사셨던 이스라엘과 기후가 비슷하니 이맘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셈입니다.

 

당시에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죽음은 알고 있었지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와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지만,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시는 모습이 워낙 초라했기에 다시 살아날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예루살렘 백성들은 물론 제자들까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큰일을 하실 줄 알았다가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을 보고 예수님의 부활을 기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흘 만에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에서 기독교가 시작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제자들이 부활의 증인으로 생명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니 죽음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하면서 안식 후 첫날인 주일에 모여서 예배했습니다. 예수님의 3년 공생애를 되돌아보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행적을 복음서로 기록했습니다.

 

부활은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똑같은 사건이 되어야 합니다. 부활은 죽음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어두운 세력에 무너지지 않고 생명의 빛으로 우리 자신과 삶을 비추는 것입니다. 부활은 영원한 생명을 보장합니다. 우리의 삶이 어떠하든지,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 안에 임할 때 죄로 인한 죽음, 낙심, 두려움을 몰아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살펴보는 구약의 식물은 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에덴동산에 있었고, 나중에 하나님 나라가 임했을 때 보게 될 생명 나무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네 개의 강물이 흐르고 한가운데 생명 나무가 있었습니다. 요한이 환상으로 본 하나님 나라에도 수정처럼 맑은 생명수가 흐르고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서 열두 가지 열매를 맺고 있었습니다. 달마다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는 만국을 치료하는데 쓰입니다. 말 그대로 생명을 주는 나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생명 나무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것을 믿을 때, 생명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살리고 치료하며,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을 의지하면서 날마다 생명의 길을 걷기 원합니다. 가정과 교회 그리고 우리 삶의 처소가 생명 나무가 있는 동산이길 원합니다.-河-

노트르담의 66분

1.

지난 월요일 아침에 눈을 뜨자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속보가 뜨기 시작했습니다.

작년에 우리 지역에서 산불이 나서 수많은 피해를 냈고

얼마 전에는 한국도 산불이 났었기에 관심을 갖고 뉴스를 검색했습니다.

 

무엇보다 노트르담 성당은 850년이나 된 건물로

일 년에 천삼백만명이 찾는 인류의 유산이기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종탑은 무너져 내렸지만,

성당에 있는 두 개의 탑은 물론 기본 구조물은 보존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화요일 AP통신에서는

화재가 발생하고 처음 66분 동안 긴박했던 상황을 보도했습니다.

 

6:20PM, 화재 경보가 처음 울릴 당시에

성당 안에는 사제들과 미사를 드리는 신도들, 관광객 등 수백명이 있었습니다.

갑작스러운 화재 경보에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뒤쪽 문을 통해서 불과 몇 분 만에 모두 빠져나와서

불길이 종탑으로 번지는 등 화재가 본격화될 때 성당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6:43PM, 대피는 했지만 두 번째 화재경보가 울리면서 화재를 실감했고

소방관들이 성당에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맞은편 청사에서 근무하던 파리 시장도 현장으로 달려왔습니다.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충격에 울음을 터뜨리고,

어떤 이들은 침착하게 성가를 부르면서 화재가 진압되길 기도했습니다.

 

소방관들은 성당에 있던 귀중한 유물들을 챙겨 나왔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쓰셨다고 알려진 “가신 면류관”입니다.

금 가지로 장식한 것을 보면 후대에 예수님께서 쓰신 면류관을 본떠서 만들었을 텐데

주후 6세기 이전부터 전해오는 성당에서 가장 값진 유물입니다.

소방관들이 목숨을 걸고 인간 띠를 만들어서 구했답니다.

루이 9세가 입었다는 왕복과 성당에 있던 예술품들도 챙겼습니다.

 

사람들은 물론 유물과 예술품까지 안전하게 대피하고 나니

종탑과 지붕이 무너져 내렸답니다.

7:49PM, 그때까지 걸린 시간이 66분이었습니다. 골든 타임을 제대로 확보한 것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그렇듯이 소방관들의 목숨 건 구조활동이 빛을 발했습니다.

 

2.

고난 주간 첫날에 들려온 화재 소식이어서 더욱더 안타까웠습니다.

고난 주간 내내 미사가 계획되었을 것이고

부활절 예배를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을 텐데 그만 화재가 났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가능한 한 빨리 복구가 이뤄지고

어려울수록 더욱 은혜롭고 특별한 부활절을 맞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고난주간 한가운데 있습니다.

내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성금요일입니다.

 

부활절을 준비하면서 우리가 과연 무엇으로 사는지 생각하기 원합니다.

 

800년 동안 한자리를 지켰고, 2차 대전도 견뎌낸 성당의 종탑과 지붕이

한 시간 남짓 만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들이 그렇게 쉽게 무너져 내리는 것들은 아닌지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 우리가 추구할 것은 무엇인지요?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목숨 걸고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는 고난주간이길 바랍니다.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음성을 듣느니라 (요한 18:37)

For this purpose I was born and for this purpose I have come into the world—

to bear witness to the truth. Everyone who is of the truth listens to my voice.(John 18:37)

 

하나님 아버지,

고난 주간을 맞아서

행여나 무너진 삶의 영역이 있다면 회복하게 하시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예수님을 꼭 붙들고 부활절을 맞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4. 18이-메일 목회 서신)

 

 

성경의 식물들 (8): 우슬초

3년간의 공생애를 마치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말씀은 메시아의 복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행적은 로마 권력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물론 제자들까지도 예수님께서 로마 식민지를 종식하고 다윗 왕조를 세우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실 것이라고 몇 번을 말씀하셨지만, 그것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예루살렘 군중들은 종려나무를 흔들면서 호산나(“구원하소서”)를 외쳤지만, 예수님께서는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와 같은 예루살렘을 보고 우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가셔서 그곳을 점령한 장사꾼들을 쫓아내셨습니다. 하지만 더이상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찾지 못할 것입니다. 뿌리까지 말라 버린 무화과나무가 그것을 미리 말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유월절 만찬을 마치시고, 3년을 함께 했던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십자가의 길을 가십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마다 습관처럼 가셨던 감람산 겟세마네에서 올리브 기름을 짜듯이 힘겹게 기도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가셔야 할 십자가의 길입니다. 예수님 시대는 물론 이전과 이후의 모든 인류의 죄를 지고 가시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밤새도록 심문을 받으시고 빌라도에 의해서 십자가형이 내려지고 골고다 언덕에서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신 후에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통을 받으실 때 군병들이 우슬초 (hyssop)에 신포도주를 묻혀서 예수님께 드렸다고 했습니다(요19:29). 우슬초에 해당하는 순우리말은 “쇠무릎”이랍니다. 줄기에 소 무릎처럼 생긴 마디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가지마다 작은 꽃이 피고, 물을 잘 머금는 특징이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떠나던 마지막 밤에, 우슬초에 양의 피를 묻혀서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은 죽음의 사자가 지나쳤습니다(유월,pass-over). 여기서부터 우슬초는 죽음의 사자 또는 귀신을 쫓아내는 식물이 되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죽으신 것으로 묘사하는 요한복음에 우슬초가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레위기를 비롯한 구약의 율법에서는 우슬초가 죄를 정결하게 하는 식물로 등장합니다. 우슬초로 정결하게 몸과 마음을 씻었습니다. 시편 51편에서는 신하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다윗이 회개하면서 우슬초로 자신을 정결하게 해 주시길 간청합니다. 우슬초로 죄를 씻고 새사람이 되길 바라는 것입니다.

 

고난 주간을 맞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고 추한 모습을 우슬초로 정결케 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부활절을 맞기 원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