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 앞에서: 분노

다윗과 골리앗에 대한 말씀은 웬만한 사람이면 모두 알고 있습니다. 말씀이 흥미진진하기에 말씀 속에 쉽게 빠져들고 자기도 모르게 다윗이 되어서 앞에 마주 선 골리앗을 대항하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골리앗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지난 세 시간에 걸쳐서 우리 앞에 닥친 크고 작은 골리앗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특별히 “두려움”과 “주춤거림”이라는 골리앗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두려움은 골리앗이라는 무시무시한 존재로부터 찾아옵니다. 우리를 가로막는 골리앗은 언제나 두렵습니다.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폭풍 속에서도 의심하지 않고 예수님을 바라보는 신뢰라고 했습니다. 삶은 두려움의 연속입니다. 안팎에서 두려움이 밀려올 때, 하나님을 향한 확실한 믿음으로 크고 작은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이 골리앗으로부터 생긴 것이라면, 지난 시간에 살펴본 주춤거림은 우리 스스로 불러온 문제입니다. 골리앗은 40일 동안 아침저녁으로 나타나서 겁을 주었지만, 실제로 이스라엘 군대를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군대 역시 전쟁터에 나갔다가 후퇴하기를 반복할 뿐 골리앗을 무너뜨리기 위한 구체적인 시도를 하지 않고 상황에 길들여졌습니다. 서로 미루며 합리화하고, 방심하면서 주춤거리는 것은 골리앗을 무너뜨리는 올바른 태도가 아님을 배웠습니다. 이 밖에도 우리가 마주하는 골리앗은 수없이 많을 것입니다. 어떤 모습으로 골리앗이 우리 앞을 막더라도 당연히 무너뜨려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주제는 “분노”입니다. 전쟁터에 나온 다윗은 분노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군대가 골리앗 앞에서 쩔쩔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다윗에게 골리앗은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삼상17:26)에 불과합니다. 그의 입에서 하나님을 모욕하는 말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반면에, 골리앗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분노하는 다윗을 본 다윗의 큰형 엘리압은 다윗을 향해서 화를 냈습니다. 아버지 집에 가서 양이나 치라는 식입니다. 골리앗을 향해서 분노해야 할 형들은 다윗에게 화를 냈습니다. 그릇된 분노였습니다. 하나님을 모욕하고 하나님 백성을 무시하는 골리앗 앞에서 형들은 물론 이스라엘 군대가 다윗처럼 분노해야 했습니다.

 

다윗의 분노가 엘라 골짜기의 판세를 바꿔 놓았습니다. 베들레헴 목동 다윗이 갖고 있던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분노였고 용기였습니다. 우리 역시 다윗의 형들이 보여준 그릇된 분노가 아니라, 다윗이 갖고 있던 의로운 분노로 세상과 삶을 변화시키고 주의 이름을 세상에 전하기 원합니다.  -河-

하나님의 형상

1.

지난 주일 저녁,

10월의 첫째 주간을 맞이하기 위해서

하루를 마감하던 우리에게 끔찍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11시부터 속보가 뜨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만 해도 라스베이거스에 총격 사건이 있었고

현장을 연결해서 목격자들의 얘기를 듣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엄청난 일이 발생했습니다.

미국의 최근 역사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총격 사건이었습니다.

 

게다가 범인이

멀쩡한 60대의 은퇴자라는 사실에

우리는 또 한 번 놀랐고 아연실색했습니다.

 

계속되는 보도를 보면서

총격을 가한 범인이 그동안 사들인 총기의 숫자,

도박장 출입, 동거녀의 정체,

도피할 것을 계획했으며, 공모의 가능성까지

정확한 범행동기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뉴스를 접할 때마다 설레설레 고개를 졌게 됩니다.

 

이번처럼 불특정 다수를 향한 총격까지 왔으니

이제는 정부나 정치권이 나서서 최고 우선순위를 두고

무엇보다 총기를 규제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미국 총기협회의 로비가 강하다고 해도

무고한 희생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길 바라고

희생자 유가족들과 부상 중인 분들의 위로와 회복을 기도합니다.

 

2.

저는 이번 사건을 보면서

다시 한번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자기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모든 사람에게 새겨져 있습니다.

 

지위고하, 남녀노소, 인종 등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이 존귀하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무차별 총격은 물론

생명을 담보로 하는 범죄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을 향한 폭행과 폭언 등은

결국 하나님을 향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60명에 가까운 분들이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통탄할 일입니다. 하나님의 몸과 마음도 무척 아프실 것입니다.

 

범죄를 저지른 분이

모든 이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있음을 알았어도 그렇게 했을까요!

만약에 그렇다면

분노한 시민의 말대로 그분은 죽어서 정말 나쁜 곳에 가야 할 것입니다.

 

3.

세상이 혼란스럽습니다.

험한 일이 자꾸 일어납니다.

우리가 사는 미국에서 일어난 사건이기에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모든 사람의 양심에, 생각과 삶 속에 되살아나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답게 생각하고 행동하기 원합니다.

이웃을 하나님처럼 대우하고 사랑하기 원합니다.

 

세상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1:27)

So God created man in his own image, in the image of God he created him;

male and female he created them.(Gen 1:27)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는 세상에 평화를 주옵소서.

주님을 두려워하는 세상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10.5이-메일 목회 서신)

골리앗 앞에서: 주춤거림

지난 반년 동안 수요예배에서는 예레미야서를 공부했습니다. 구약의 예언서를 읽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상이 반복해서 나오고, 그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가 등장하니 읽는 우리도 위축되곤합니다. 그래도 구약의 예언서는 꼭 읽고 넘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에게 우리의 모습을 대입해 보면서 신앙을 바로잡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야했는지 깨닫게 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더 깊이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서 절반을 남겨둔 채, 지난 수요일부터 마가복음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마가복음은 복음서 가운데 가장 짧고, 내용이 빠르게 전개되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예수님을 깊이 느낄 수 있는 말씀입니다. 앞으로 16주 동안 계속될 마가복음 읽기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수요 예배에 오시지 못해도 목요서신과 안내석의 성경공부 핸드 아웃을 통해서 함께 마가복음을 읽으시길 부탁드립니다.

지난 주에는 우리 앞을 가로막는 두려움이라는 골리앗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안팎에 크고 작은 두려움이 매순간 밀려오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 폭풍 속에서도 예수님께 시선을 떼지않는 믿음을 갖고 골리앗과 같은 두려움을 넘어뜨릴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오늘 살펴볼 골리앗은 “주춤거림”입니다. 블레셋 장수 골리앗이 엘라 골짜기에 등장했을 때, 사울 왕을 비롯한 이스라엘 군대들은 자기 자리에 앉아서 수군거리고, 절망하고, 할 수 없다는 비관론에 사로잡혔습니다.

골리앗이 워낙 크고 강했으니 처음에 그를 보고 두려워한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골리앗이 40일 동안 아침과 저녁으로 나와서 이스라엘을 모욕하고 겁을 주었을 뿐, 실제로 이스라엘을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말로만 으름장을 놓은 것입니다. 그러는 중에 이스라엘 진영에도 은근히 안심하는 분위기가 생겼을 것입니다. 분명 골리앗이라는 엄청난 장수가 존재하고 블레셋에 지면 나라의 운명이 위험 한데도, 블레셋의 공격이 지연되면서 현실에 안주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렇게 40일이 지나면서. 아침과 저녁에 들리는 골리앗의 선전포고에 익숙해 졌습니다. 별일 없을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이 들고 병사들의 사기도 떨어졌습니다.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마음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주춤거림이 있습니다. 내일로 미루고, 해결하지 않은 채 지내는 주춤거림입니다. 당장 어려움이 닥치지 않으니 앞으로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편안한 현실에 안주하는 모습일 수 있습니다. 주춤거리지 말고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주춤거림도 반드시 무너뜨려야 할 골리앗임에 틀림없습니다. -河-

일각천금(一刻千金)

고사성어 일각천금(一刻千金)은 중국 송나라의 시인 소동파의 “춘야(春夜,봄밤)”라는 시에 등장합니다. 겨우내 꽁꽁 얼어붙었던 날씨가 풀리더니 온 세상에 꽃들이 만발했습니다. 사람들은 여유로운 봄날에 함께 모여서 거문고를 타며 한판 흥겨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밤이 되자 모두 집으로 돌아간 정자에 시인은 홀로 남아서 여유롭고 한가로운 봄밤의 정취를 노래합니다. 잠깐 지나가는 봄입니다. 봄꽃도 금방 지고, 정자에 모여서 함께 놀던 친구들도 시간이 지나면 떠날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귀한 봄날입니다. 이처럼 소동파의 시 춘야는 낮의 흥겨움과 봄밤의 고요함을 비교하면서 잠깐 지나가는 봄날을 추억하고 있습니다.

 

일각은 15분 정도의 짧은 시간입니다. “일각천금”은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천금과 같다는 뜻입니다. “시간은 금”이라는 서양 속담과 맥을 같이 합니다. 스쳐 지나가듯이 지나갈 한 해의 봄을 마음껏 즐기자는 권면입니다. 단 15분이라도 허비하지 말고 천금처럼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라는 교훈입니다.

 

아내와 함께 동네를 산책하다 보니, 아기 손 같은 새잎이 가지마다 돋아나던 봄철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낙엽이 길가에 뒹굴고 있습니다. 아직은 여전히 젊지만, 50대 중반이 되니 시간이 제법 빠르게 지나갑니다. 제 마음은 여전히 춘삼월 봄철에 있는데 벌써 9월이 다 지나고 올해도 석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습니다. 주일을 맞고 중간에 수요 예배를 마치면 한 주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그렇게 한 주 한 주 살다 보면 한 달이 금세 지나가서 달력을 또 한 장 넘깁니다. 앞으로 남은 석 달도 순식간에 지날 것 같습니다. 소동파의 “일각천금”이 생각납니다. 15분밖에 되지 않는 시간도 천금과 같으니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을 알차게 사용해야 합니다. 아니 15분의 시간을 천금의 가치로 만들어야 합니다.

 

신약성경에서는 두 가지 헬라어를 통해서 시간을 설명합니다. 우선, 흘러가는 시간인 크로노스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크로노스의 시간을 삽니다.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시간입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살아가는 시간입니다. 반면에 사건 중심의 시간으로 카이로스가 있습니다. 크로노스가 아침을 맞고 저녁이 되면서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과 한 달 그리고 한 해가 지나가는 식이라면, 카이로스는 각자가 의미 있게 꾸며가는 시간입니다. 단지 주어진 시간이 아닙니다.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사건들로 가득 채워진 창조적 현재입니다. 시간을 부여하신 창조주 하나님과 동행하는 은혜의 시간입니다.

 

아무리 무병장수를 해도 삶 속에 카이로스적인 사건이 부족하다면, 구약성경 전도서 기자가 한탄하듯이 헛되고 헛된 인생입니다. 비록 짧은 인생을 살아도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세상 속에서 의미 있는 사건이 넘쳐난다면, 카이로스의 시간대를 살아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크로노스의 흘러감이 아니라 카이로스의 의미 있는 추억과 사건들로 채워지길 원합니다.

 

신약성경의 시간대가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로 나누어 진다면,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때”가 중요합니다. “그 날” “주의 날” 등으로 불리는 하나님의 때는 구원과 심판이 갈리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 거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룬 주의 백성들에게는 은혜의 때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주와 함께 걷는 길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걸으면서 깨알같은 간증과 고백들이 넘쳐나는 시간입니다.

 

반면에, 구약의 예언자들이 경고하듯이 주님의 길에서 벗어나서 우상을 섬기고, 거짓되고 자기 잇속만 챙기며,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무시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때는 심판입니다. 그 날이 되면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임하고 하나님의 때가 재앙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갑니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을 돌이킬 수도 없습니다. 소동파의 말대로 15분이 천금과 같습니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의미로 가득 찬 카이로스와 하나님의 때를 살면서 주의 은혜와 구원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일각(一刻)에 비하면 앞으로 남은 석 달은 꽤 많은 시간입니다. 하루하루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사건들로 이어지며,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후회없이 이웃을 사랑하는 넉넉함을 소유하기 원합니다. (2017년 9월 28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용기 2

좋은 아침입니다

 

엊그제

자신의 이름을 딴 청소기(Dyson)로 유명한

영국의 발명가이자 사업가인 James Dyson은

2020년까지 전기차를 세상에 내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미 2015년부터 400여 명의 직원들과

배터리로 작동하는 전기차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며

앞으로 2조 달러 이상을 투자해서

깜짝 놀랄만한 전기 자동차를 발명하겠답니다.

 

그는 엔지니어이자 사업가에 앞서서 발명가였습니다.

쓰레기 백(bag)을 사용하는 진공청소기가 쉽게 막히고 고장 나는 것에 불편을 느끼던 중

제재소를 방문해서 나무에서 나오는 톱밥을 깨끗하게 빨아들이는

원심력 흡입기를 보고는 그 기술을 소형 청소기에 도입했습니다.

 

또한, 그는 디젤엔진에서 나오는 찌꺼기들을 완전 연소시키는 기술에 관심을 보였고

그것을 통해서 대기 오염을 막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가

특별한 배터리를 사용하는 전기차 시장에 뛰어든 것입니다.

 

혹자는 그의 진공청소기 기술이

기껏해야 헤어드라이어 정도로 확장되었는데

전기 자동차를 발명한다는 것에 회의적입니다.

 

하지만, 이미 앞서서 성공한 테슬라도 있고

다이슨이 갖고 있는 기술과 잠재력을 볼 때

그가 내놓을 혁신적인 전기 자동차를 내심 기대하는 분위기입니다.

 

우리나라 현대를 비롯한 자동차의 거장들이

너도나도 전기 자동차에 뛰어들고 있는 가운데

2020년대는 자동차 산업의 혁명이 이뤄질 것 같습니다.

 

2.

세상은 용기 있는 사람들로 인해서 발전해 왔습니다.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아이디어 하나 갖고 시작하는 사람들,

앞에 있는 골리앗을 향해서 질주하는 사람들,

자기 혼자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고

인류의 문제를 풀어보려는 사람들.

그런데 이들의 용기는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

 

올해 70세인 Dyson만 해도

1970년부터 원심력을 사용한 공기 흡입기를 연구했습니다.

한때는 미술 선생님이었던 아내가 가계를 책임졌고

그의 발명품을 받아주는 회사가 없어서 여기저기 구걸을 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길에 대한 확신과 신념을 갖고

발명가, 사업가의 길을 걸어서 청소기 업체의 거장이 되더니

전기 자동차 산업에 뛰어든 것입니다.

앞으로 Dyson의 용기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지켜보는 것만도 흥미진진합니다.

 

3.

골리앗을 무너뜨린 다윗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모두 골리앗을 두려워하고 있을 때,

다윗은 담대하게 골리앗을 마주했습니다.

 

그의 입에서만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나왔습니다.

전쟁에 나간 이스라엘 군대 가운데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고백입니다.

발상의 전환입니다. 골리앗을 대면하는 용기입니다.

 

다윗의 용기도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양들을 공격하는 야생동물로부터

양을 보호하던 경험에서 우러나온 용기였습니다.

다윗은 일찍이 삶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지럽습니다.

개인의 삶도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믿음에서 우러나온 용기를 갖고 세상을 살기 원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걸어온 삶과

지금 현재 갖고 있는 자산들이

앞길을 열어가는 데 꼭 사용되고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시편31:24)

Be strong, and let your heart take courage,

all you who wait for the LORD! (Psalms 31:24)

 

 

하나님 아버지,

주님 주시는 용기로 세상을 살아가고

세상을 이끄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9.28이-메일 목회 서신)

골라앗 앞에서 : 두려움

다윗과 골리앗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이긴 사건입니다. 본문을 자세히 읽다 보면, 다윗의 승리 외에도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는 주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울왕은 물론 다윗의 형제들과 이스라엘 군인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배웁니다.

 

사무엘상 17장은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본문이지만, 본문의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다윗이 백성들로부터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받게 된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초심을 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교만하게 행동하는 사울을 버리시고, 사무엘 선지자를 시켜서 베들레헴의 목동 다윗을 왕으로 기름 부으셨습니다. 다윗이 왕이 된 것은 사무엘 선지자와 다윗의 가족만 알고 있을 뿐 사울이나 백성들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에게 이스라엘 왕은 다윗이었기에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이처럼 다윗과 골리앗에 대한 말씀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블레셋 장수 골리앗 앞에서 사울과 이스라엘의 모든 군대는 몹시 놀랐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골리앗에 맞서서 싸울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골리앗은 키가 3미터에 가깝고, 그가 입고 있는 갑옷의 무게가 57킬로그램(126파운드)입니다. 7 킬로그램(15파운드)에 이르는 칼을 손에 들고 있으니 그를 보고 겁먹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처럼 골리앗은 이스라엘의 안전과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두려움을 느낍니다.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두려움은 염려와 근심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것들을 통제하거나 해결할 수 없을 때 두려움으로 발전합니다. 그래도 마음 속에서 생기는 두려움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면서 다스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맞닥뜨린 골리앗 처럼 외부에서 밀려오는 두려움입니다. 안전을 위협하는 두려움입니다. 자신이 상대하기에 힘겨워 보입니다. 골리앗처럼 크고, 완전 무장한 채로 다가와서 위협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물리칠 수 없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나타나서 모욕하는 말을 쏟아내니 자존심이 상하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없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마주친 골리앗을 우리도 갖고 있습니다.

 

골리앗이 무너져야 하듯이 안팎에서 생기는 두려움도 무너져야 합니다. 우리 앞에 선 골리앗을 보고 떨며 두려워한다면 하나님을 떠난 사울 왕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움을 몰아내고 담대하길 원하십니다. 다윗처럼 골리앗과 마주하고, 그를 향해 달려나가서 무너뜨리길 원하십니다. 우리의 힘으로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두려움을 이기는 것입니다. -河-

용기

좋은 아침입니다

 

미국 군대에서 가장 힘들다는 해병대 보병학교에서

최초로 여성 장교가 졸업하게 되었다는 보도를 접했습니다.

 

2012년, 여성 장교에게 보병학교 입학을 허용한 이래

35명의 여성이 도전했지만 13주 훈련을 통과하지 못했고

이름을 밝히지 않으려는 이번 여성 장교만이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가장 힘든 장교 훈련이랍니다.

훈련소에 입소한 첫날 10%가 포기하고,

전체의 25%가 중도 탈락하는데,

여성 최초로 훈련을 마치고 일선에서 군대를 지휘하게 된다니.

이 분의 용기가 대단합니다.

 

세상은 물론

우리 자신이 처한 곳에서

아니 각 개인의 삶에서 어떤 일을 최초로 해내는 것은 박수받아 마땅합니다.

 

앞선 사람들이 실패했던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모두 힘겨워하는 일을 끝까지 참고 성취하는 것은

그 일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대단한 업적입니다.

 

2.

지난주부터

사무엘상 17장에 있는

<다윗과 골리앗>에 대한 말씀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블레셋 장수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 앞에 섰을 때,

그 누구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난공불락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때 아버지 심부름을 온 베들레헴 목동 다윗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모욕하는 골리앗 앞에 섭니다.

 

그러고 보면

다윗 역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홀로 나선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해낼 수 없음을 알면서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해서 용기를 냈습니다.

그리고 골리앗을 무너뜨렸습니다.

 

3.

살다 보면, 어떤 일을 위해서

용기가 필요한 때가 의외로 많습니다.

 

혼자서 가는 길입니다.

아무도 성공하지 않은 길일 수 있습니다.

끝까지 갈 확률이 높지 않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 길을 시작하는 믿음과 용기입니다.

 

그 힘들다는 해병대 보병 학교에 지원했던

36명의 여성이 그 길을 갔습니다.

그중에 최초로 졸업을 앞둔 여성이 있기에

앞으로 더 많은 여성 장교들이 희망을 품고 도전할 것입니다.

 

우리 앞에 크고 작은 일들이 닥칩니다.

지금 하는 일이 힘들어도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해내기 원합니다.

아무도 가 보지 않은 길이어도 “선구자” “개척자”라는 소명을 갖고 걷기 원합니다.

 

각자의 인생길이 힘겨워도

용기를 갖고, 주님과 더불어 끝까지 걸어가기 원합니다.

골리앗을 무너뜨린 다윗처럼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걷는 믿음의 길입니다

 

오늘 우리가 걷는 인생길은

누가 대신 살아줄 수 없고 앞에서 미리 가본 사람도 없이

날마다 새롭게 써나가는 개척자의 길입니다.

그 길에서 하나님의 도움과 인도하심을 경험하고,

마지막까지 걸어가는 사람에게 임하는 감사와 기쁨을 누리가 원합니다.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무엘상 17:37)

And David said, “The LORD who delivered me from the paw of the lion and from the paw of the bear will deliver me from the hand of this Philistine.” (1Samuel 17:37)

 

하나님 아버지,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는 참빛 식구들께

지혜와 힘과 용기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9.21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