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3)

새해 첫 달도 절반이 훌쩍 지났습니다. 참빛 식구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사신 줄 압니다. 힘들 때마다 <쿰>하고 일어나고, 앞으로 나가야 할 때는 <쿰>하고 힘을 받아서 새해를 살고 계시는 줄 압니다. 올 한해 주저앉지 말고 순간순간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세상에 예수님의 빛을 비춰야 합니다. 참빛되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면, 우리에게서 예수님의 빛이 발할 것입니다.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 죽음이 베어 있는 세상에 생명의 빛을,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복음의 빛을 세상에 비추는 것입니다. 참빛 식구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빛이 세상에 비치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어두운 세상이었습니다. 정의와 공의가 사라지고, 사람들의 손에는 피가 묻어있고, 악독한 말이 난무했습니다(사59:2).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없고 도리어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하나님을 속이고 패역과 거짓말을 일삼았습니다 (사59:13). 남아있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지만, 하나님의 침묵은 길어졌습니다. 구원의 손길은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나서서 자기 팔로 구원을 베푸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세상을 구하시려는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악한 길로 나갔던 사람들은 그들의 행위대로 심판하시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세상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원수들에게 보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임하시니 끝까지 믿음을 지킨 주의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순간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났지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을 몸소 지키실 것입니다(사59:21).

 

세상은 여전히 어둡습니다. 아직 바뀐 것은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서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사60:1)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의 빛과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임할 것입니다. 어둠으로 뒤덮인 깜깜한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과 빛이 임하니 세상 만국 사람들이 빛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올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이방 나라들이 제물을 갖고 예루살렘으로 올라옵니다. 미디안과 에바의 낙타들, 금과 은을 갖고 오는 스바 사람들, 남쪽 아라비아 게달 민족은 양을 갖고 와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입니다. 당시 땅끝이라고 여기던 다시스에서도 금과 은을 배에 싣고 와서 하나님께 드립니다.

 

함께 어울려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습 속에서 장차 이뤄질 하나님 나라를 봅니다. 슬픔이 사라지고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어둠이 사라지고 빛이 세상을 밝히고 있습니다. 시기와 질투, 반목으로 어두웠던 세상이 밝아질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면서 올 한해 일어나 빛을 발합시다.- 河-

위로부터 오신 이

좋은 아침입니다

 

1.

새해 첫달에 나누는 아침 말씀은

<요한복음>입니다.

 

요한복음은

독수리 복음서라고 불릴 정도로

예수님을 높은 곳에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로 묘사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요1:1) –

요한복음의 첫 구절은 창세기로 소급해 올라가서,

말씀(로고스)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함께 하셨음을 선포합니다.

 

그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는데

어두운 세상은 참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2.

요한복음 3장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바리새인이자 고위관리인

니고데모에 대한 말씀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을 보고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기다리던 메시아일 수 있기에

신분이 노출되지 않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알려주셨습니다.

 

본문에는 니고데모의 반응이 없는데

요한복음 뒤에 가면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서 향품을 갖고 옵니다(요19:39).

 

3.

요한복음 4장은

갈릴리로 내려가시던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라는 동네에서 한 여인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모든 면에서 니고데모와 다릅니다.

 

니고데모가 유대인이었고

여인은 유대인들이 천하게 여기는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니고데모는 높은 위치에 있었고

여인은 남편이 다섯 명도 넘을 정도로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유대인 남성과 사마리아 여인 사이에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간격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물을 좀 달라”(요4:7)고

먼저 여인에게 접근하셨고

결국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복음을 전해 주셨습니다.

니고데모와 달리 사마리아 여인은 즉석에서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알고, 동네로 뛰어가서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위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사마리아 수가성의 여인에게도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4.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사 60:1)

예수님의 빛을 세상에 발하기 원합니다.

니고데모부터 사마리아 여인까지

차별없이 임하는 복음의 빛을 세상에 비추는 것입니다.

 

땅에서 난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위로부터 오신 예수님에게 해답이 있습니다.

이 예수님과 더불어 올 한해 살아갑시다.

 

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32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33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요 3:31-33)

 

하나님 아버지,

위로부터 오신 예수님의 빛을

세상에 비추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1.16 이-메일 목회 서신)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2)

새해 벽두부터 중동에서 들려오는 전쟁의 소문으로 세상이 뒤숭숭합니다. 성경 말씀 그대로 세상에는 전쟁의 소문이 끊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탐욕이 존재하는 한, 전쟁은 물론 크고 작은 갈등이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완전한 평화는 불가능하더라도 무고한 목숨을 앗아가고 세계 질서를 망가뜨리는 전쟁이나 폭력이 사라지길 기도해야겠습니다.

 

우리가 살펴보는 이사야서 59장과 60장의 상황도 세상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공의와 정의가 무너지고, 피를 보는 폭력이 난무했습니다. 곰처럼 울부짖고 비둘기처럼 슬피 울며 기도했지만, 하나님의 구원은 멀기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이 길어진 것입니다.

 

그때 주신 말씀이 올해 우리의 표어인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입니다.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주춤거리거나 망연자실 멈출 수 없습니다. “쿰”하고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빛을 비춰야 합니다. 우리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광으로 우리와 함께하실 때 가능합니다. 아니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빛으로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면, 우리가 저절로 그 빛을 비추게 될 것입니다.

 

어두움을 해결하는 방법은 빛을 비추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 어둠이 아무리 강해도 작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어둠이 강할수록 도리어 빛이 더욱 선명해지는 법입니다. 2절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두움이 온 땅을 덮었습니다. 캄캄함이 사람들을 가렸습니다. 앞을 볼 수 없으니 사람들끼리 부딪치고 싸울 뿐입니다. 그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한 것입니다. 각 나라들과 왕들이 빛을 찾아서 예루살렘으로 모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어두운 곳이 많습니다. 겉은 환해 보여도 속이 새까맣게 탄 채 살아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이 비치길 원합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우리가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 각자 삶의 현장에서 빛으로 사는 것입니다.

 

빛으로 사는 것을 두고 세상에서 출세하거나 영향력을 끼치는 자리에 올라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빛을 비추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님이 빛으로 반사된다면 그것이 빛으로 사는 것입니다. 삶을 통해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고, 어렵고 약한 이웃을 돕고, 비뚤어진 세상에서 반듯하게 살려는 의로운 몸짓이 곧 빛의 자녀들의 모습입니다. 한 주간 빛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참빛 식구들로 인해서 어두운 세상이 조금이라도 밝아 지길 기대합니다.- 河-

샬롬

좋은 아침입니다

 

1.

엊그제 새해를 맞은 것 같은데

어느새 열흘 가까이 지났습니다.

시간이 무척 빠르게 흘러갑니다.

이런 속도로 2020년도 지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에 밀리지 말고

중간중간 멈춰서 삶을 조절하고

시간을 다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중간중간”

멈춰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시간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기도하는 시간이고,

하나님 앞에서 신앙과 삶을 바로 잡고

다시금 촘촘하게 앞길을 설계하는 시간입니다.

 

2.

연초부터

세계정세가 불안합니다.

 

화약고라고 불리는

중동 지역에 전쟁의 기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엊그제 이란이 미국 공군기지에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우연이겠지만 하필 같은 날

이란의 테헤란 공항을 떠나서 우크라이나로 향하던

170여 명의 승객을 태운 여객기가 이륙직후 추락했습니다.

 

이란은 중동의 미군 기지와 이스라엘은 물론

미국 본토까지 공격하겠답니다.

지난주 미국이 드론을 동원해서

이란 사령관을 암살한 것에 대한 보복입니다.

 

일단 미국이 군사력보다는

경제 보복을 강화하겠다니 한숨 돌렸지만

언제 다시 강대강으로 상황이 바뀔지 알 수 없습니다.

 

3.

이번 경우는 단순한 우려를 넘어서

심각한 사태로 발전할까 모두 염려합니다.

 

지난주 설교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전쟁이 나면 동원된 군인들은 물론

힘없는 아이들과 민간인들이 가장 큰 피해를 봅니다.

 

새해부터 들려온 전쟁의 소문이

하루속히 잦아들길 바랍니다.

가능하면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우리 같은 민초들은 있는 자리에서 기도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지도자들이 세워지길 협조할 뿐입니다.

 

3.

어떤 형태든지 폭력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기쁨과 평화”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그리스도의 평화, <샬롬>이 임하길 기도합시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미가 4:3)

They shall beat their swords into plowshares,

and their spears into pruning hooks;

nation shall not lift up sword against nation,

neither shall they learn war anymore;( Micah 4:3)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는 세상에 평화를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1.9 이-메일 목회 서신)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1)

2020년 새해 첫 번째 신년 주일입니다. 지난 주일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지만 새해 첫 주일이라고 하니 예배하는 마음가짐이 새롭습니다. 그래서 새해가 좋은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는 일상을 사는 교회입니다. 새해를 맞아도 큰 변화가 없습니다. “특별”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경우가 거의 없고 같은 것들의 반복입니다. 매년 드리는 새해 기도제목 신청서도 촌스럽고, 주보도 화려하지 않습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변화를 최소화하지만, 우리 각자 일상 속에 의미를 부여하고 일상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가면서 진정으로 삶이 예배가 되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우리 교회는 교회 안에서의 활동보다 가정과 세상 속에서의 삶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물론 비공식적인 만남은 활성화되어 있지만, 공식적인 교회 행사나 모임이 많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활동하는데 에너지를 쏟기보다 가정을 세우고, 각자의 삶의 터전에서 “작은 예수”의 삶을 사는 데 최선을 다하기 원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교회 주일예배는 매우 중요합니다. 참빛 식구들이 함께 모이고,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임이 주일예배와 예배 후 친교입니다. 올해는 우리 모두 좀더 적극적인 예배자가 되어서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설교 시간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 처음 조용한 기도부터 축도까지 모든 예배 순서에 주님의 임재를 구합니다. 예배 후의 애찬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하기 원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해서 예배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며 예배 가운데 성령의 지혜, 위로, 능력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이처럼 삼위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예배하는 참빛 식구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주보에 광고하듯이 함께 부르고 싶은 찬양이 있으면 찬양팀에, 듣고 싶은 찬양은 찬양대에, 원하는 설교 주제는 제게 말씀해 주시면 저희 예배팀에서 참빛 식구들의 제안을 최대한 반영하겠습니다. 교회 사역에 대한 좋은 의견도 안내석 제안함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 모두 적극적이고 간절히 사모하는 열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기 원합니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가 <일어나 빛을 발하라 Arise, shine, 쿠미/오리>입니다. 옛날 이스라엘이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 말씀입니다.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살라는 하나님의 요청이었습니다. 새해는 물론 2020년대를 맞으면서 우리 참빛 식구들이 세상 속에서 빛이 되길 기도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참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서 전하길 원합니다. 우리모두 빛으로 사는 한 해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河-

만남과 헤어짐

처음 담임 목회를 인디애나주의 블루밍턴이라는 학원촌에서 시작했습니다. 교인 대부분이 유학생이었습니다. 한 학년이 끝나고 졸업 시즌인 5월이 되면 수십 명의 교인이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동안 정들었던 교인들을 떠나 보내기가 쉽지 않아서 예배 시간마다 감정을 추슬러야 했습니다. “울보 목사”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방학 동안 남아 있는 교인들과 관심사 소그룹을 만들어서 운동, 요리, 성경통독, 유적지 탐사를 하면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새 학기가 되면 영락없이 새로운 교인들이 교회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외향적이지 못한 제 성격 탓에 새로운 교인들과 다시 정이 드는 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별의 아쉬움이 새로운 만남으로 치유가 되었지만 매년 반복되는 이별이 쉽지 않았습니다.

 

14년 전 샌프란시스코로 목회지를 옮기면서, 이민 교회이니 헤어짐 없이 교인들과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을 것을 기대했습니다. 정주목회라고 할까요! 그런데 이민 목회 역시 이런저런 일들로 이별의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교인들의 이동이 생각보다 잦았습니다. 목사인 저의 부족함이 컸지만, 교회를 떠나는 이유도 다양했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주고받는 이별이 반복되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주신 힘으로 지금까지 목회의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우리 인생은 이렇게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입니다. 한국의 유명한 가수가 노래했듯이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어쩌면 운명입니다. 특정 시간과 공간에서 얼굴을 마주하며 함께 삶을 나누는 만남은 그 끝이 어떠하든지 축복이고 모든 만남이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반면, 이별은 언제나 아쉽습니다. 함께 있을 때, 더 잘해 주어야 했습니다. 헤어짐 없이 함께 할 수 있기를 서로 노력했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서로 축복하면서 헤어질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은혜입니다.

 

2020년대를 여는 경자년(庚子年) 새해를 맞았습니다. 올해는 쥐띠 해입니다. 쥐띠에 “아들 자(子)”를 쓰는 것은 서생원(鼠生員) 쥐님들의 빠른 번식을 강조한답니다. 새해에는 우리 삶이 번창하길 원합니다.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바쁘게 살아가는 이민 생할에 열매가 있고, 약하고 가난한 이웃들까지 허리 펴고 살 수 있는 정의로운 세상이 되길 기도합니다.

 

새해에도 만남과 헤어짐을 끊임없이 경험할 것입니다. 마음 설레는 만남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외롭고 힘든 이민 생활에서 잠시라도 만나서 회포를 풀고 마음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만남이 소중하기에 옷깃을 스치는 만남도 귀하게 여기고 눈인사라도 나누기 원합니다. 세상의 만남과 차원이 다른, 하나님과의 영원한 만남도 지속해야 합니다. 매일 아침, 삶의 고비마다 하나님과 만남이 풍성하길 원합니다. 아무쪼록 헤어짐이 필연적이라면 좋은 이별이길 바랍니다.

 

2006년 6월부터 13년 6개월 동안 매월 마지막 주에 한국일보에 종교 칼럼을 기고했습니다. 번호를 매기면서 칼럼을 저장했더니 오늘이 161번째입니다. 첫 번째 칼럼 제목이 “인연(因緣)”이었는데,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인연이 꽤 길게 이어졌습니다. 제 글을 빼놓지 않고 읽으신다면서 격려해 주시던 분들, 13년 전 사진을 교체하지 않았더니 실물을 보면서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으시던 분들, 전화로 칼럼에 대한 내용을 토대로 상담을 요청하신 분들이 종종 계셨습니다. 종교 칼럼이 맺어준 인연이었기에 더욱 특별한 만남이었습니다.

 

오늘이 마지막 칼럼입니다. 그동안 썼던 글의 제목을 훑어보았더니 샌프란시스코에서 제 목회와 칼럼이 맥을 같이 했습니다. 지난 십여 년 세상의 변화도 제목 속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칼럼을 쓴지 십 년이 지나면서 더 훌륭하신 필진께 이 공간을 물려드려야겠다고 생각해서 사진을 교체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이 푹- 들어서인지 쉽게 펜을 놓지 못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칼럼을 보내려니 더 좋은 글로 독자들을 만났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생기지만,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인 우리 인생길에서 또 하나의 헤어짐을 마주할 시간입니다. 십 년 이상 글을 쓸 기회를 주신 한국일보와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머리 숙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20년 1월 3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새해에

좋은 아침입니다

 

1.

2020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가 되면서 새로운 법이나 규칙들이 시행됩니다.

제가 사는 동네(Millbrae)의 경우 새해부터 공동주택에서 금연입니다.

캘리포니아는 머리치장 등을 두고 직장에서 차별할 수 없습니다.

15년 이전에 지은 공동주택은 연 5%(+소비자 물가지수) 이상 렌트비를 올릴 수 없습니다.

이처럼 1년 단위로 새로운 법이나 규칙이 시행됩니다.

 

우리도

“새해 결심”을 하면서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12월 31일과 1월 1일이 주는 느낌과 의미가 사뭇 다릅니다.

 

사실 같은 날입니다.

그런데 총명한 인류는 달이 지구를 돌고,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을 알아차려서

음력과 양력을 만들었습니다. 수천 년 전의 발명입니다.

그리고 개인의 삶과, 국가와 사회의 운영을 캘린더에 맞췄습니다.

꽤 공정하고 지혜로운 시간 관리 기법입니다.

 

2.

새해를 맞으면서 기대를 갖지만

혹은 부담이 됩니다.

 

의미 없이 한해가 지나는 것 같고,

늘어가는 나이에 대입하면 약간 시무룩해지고,

매번 새해 결심을 하지만, 지키지 못할 것이 뻔해서 자책합니다.

같은 날인데 왜 괜히 달력을 만들어서 스트레스를 주는지 푸념도 나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류가 오랫동안 사용한 시간 단위 앞에 서 있습니다.

현재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도 2020년 365일을 맞았습니다.

세상의 운영체계도 여기에 맞춰 있습니다.

 

그렇다면 2020년 새해를 과감히 마주하고

선하게 사용하는 것이 올바를 것입니다.

 

3.

“세월을 아끼라”(엡 5:16)는 말씀도 생각납니다.

여기에 주어진 기회를 잘 이용하라는 의미가 있다고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기회를 이용하는 주체는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가(내가) 기회를 잘 이용해야 합니다. 적극적인 자세가 요청됩니다.

 

시간의 흐름을 두고,

단순히 흘러가는 <크로노스>와

주어진 시간을 창조적으로 의미 있게 만드는

<카이로스>로 나누는 것도 익숙합니다.

 

주어진 기회를 값지게 사용하기 원합니다.

이왕이면, 주어진 시간을 단순한 크로노스가 아닌

창조적인 “카이로스”로 만들 수 있기 바랍니다.

 

4.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부담감을 떨칠 수 없습니다.

 

이쯤 해서 엊그제 송구영신 예배에서 나눈

데살로니가전서 말씀을 다시 떠올립니다.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서

마지막으로 기도한 후에(살전 5:23) 교회를 축복한 말씀입니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살전 5:24)

He who calls you is faithful;

he will surely do it. (1Thes 5:24).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살전1:9)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일 것입니다.

 

이 말씀이 도피처가 아니라,

우리의 부족, 부담, 한계를 뛰어넘고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한 해의 표어이자 능력이 되길 바랍니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참빛 식구들을 축복합니다.

한 해도 여러분 뒤에서 매일같이 기도하며, 힘닿는 대로 돕겠습니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살전 5:24)

He who calls you is faithful;

he will surely do it. (1Thes 5:24).

 

하나님 아버지,

새해를 시작하는 참빛 식구들을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함께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20.1.2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