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식물들 (6): 에셀나무

세상에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창조세계의 배경을 담당하는 다양한 종류의 식물이 있습니다. 식물들은 자연 만물에 섞여서 저절로 자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시는 생명체들입니다.

 

또한 어떤 식물은 사람에 의해서 경작되고 관리를 받습니다. 집에서 키우는 식물이 대표적입니다. 식물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키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물을 주고, 햇볕이 잘 들어오는 곳으로 옮겨 주어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 자연 속에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정성껏 보호받고 사랑을 받으면 더욱 아름다운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에셀 나무는 잎이 흐드러진 수양버들 나무에 속합니다. 잎과 줄기가 발달해서 그늘을 제공하는 멋진 나무입니다. “에셀”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를 그대로 번역한 것이고 영어로는 Tamarisk tree라고 부르고, 우리말 번역은 “능수버들”정도가 됩니다. 봄철에 분홍색 꽃이 나무 전체를 덮으면 아름다움을 넘어서 우아한 느낌이 들 정도랍니다.

 

성경에서 에셀 나무는 세 번 등장합니다. 첫째는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이고, 나머지 두 번은 이스라엘의 첫째 왕 사울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울도 에셀 나무를 좋아해서 그가 거하던 기브아에 옮겨다 심었고 에셀 나무 아래 앉아서 정사를 살피곤 했습니다. 사울이 블레셋과 싸우다가 전사하자 사람들은 그와 그의 아들을 에셀 나무 아래에 장사지냈습니다. 사울이 무척 아끼던 나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이 이스라엘 남쪽 그랄이라는 곳에 내려가서 살던 때입니다. 아브라함이 처음 그곳에 갈 때는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이면서 정착을 시도했습니다. 하나님의 간섭으로 그랄왕 아비멜렉이 데려간 사라가 풀려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곧 약속의 자녀 이삭을 갖게 될 아브라함과 사라를 밀착해서 보호하고 계심을 봅니다.

 

그랄 사람들이 아브라함이 파놓은 우물을 빼앗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힘겨운 타향살이였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그랄왕 아비메렉과 평화협정을 맺고 삶의 안정을 도모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랄에서의 삶을 기념하고 감사하면서 에셀 나무를 심고 그 아래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창21:33). 이처럼 에셀 나무는 심고 가꾸는 나무입니다. 쉼을 주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입니다.

 

우리에게도 에셀나무가 있는지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나무 그늘입니다. 편안히 쉬며 삶을 영위하는 나무입니다. 그런데 에셀 나무는 우리가 심고 가꿔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이요 자기 돌봄입니다. 우리의 삶이 에셀나무 아래서 드리는 예배가 되기 원합니다.-河-

아몬드 나무

성경에는 수많은 식물이 등장합니다. 수백 년 또는 수천 년을 산다는 레바논의 백향목과 같은 나무부터 들에 피는 백합화, 가시덤불과 엉겅퀴까지 식물도감에 버금갈 정도입니다. 식물들은 씨가 뿌려지는 곳에서 평생 자리를 지키며 살아갑니다. 자신의 의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누군가 옮겨 심지 않으면, 심지어 바위틈이나 계단 사이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지탱하면서 꽃을 피웁니다. 조변석개로 변하는 인간의 마음과 한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이리저리 방황하는 부평초와 같은 인간의 모습과 대조됩니다.

 

그런데 식물은 언제나 배경화면이지 주인공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 속의 식물 역시 비유에 동원되거나,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무대로 사용될 뿐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아몬드 나무입니다. 우리 성경에서는 아몬드 나무를 살구나무라고 번역했는데 일종의 오역입니다. 영어 성경은 거의 아몬드 나무로 번역했습니다.

 

성경의 살구나무는 사과나무에 가깝고, 여기에 쓰인 히브리어 <샤케드>는 아몬드 나무로 번역하는 것이 좋습니다. 감복숭아 나무라고 번역한 경우도 있는데 우리가 미국에 살아서인지 아몬드 나무보다 훨씬 생소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몬드 나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샤케드> 입니다. <샤케드>가 주목하고 지켜본다는 동사 <샤카드>와 비슷하고 때로는 발음이 같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아몬드 나무가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모세와 아론에게 반기를 들었던 고라 일당이 땅이 갈라지면서 죽습니다. 그 사건으로 백성들이 모세에게 책임을 묻자 하나님께서 열두지파에서 각각 지팡이를 가져와서 언약궤 앞에 놓도록 하셨습니다. 이튿날 보니, 열두 지파의 지팡이 가운데서 아론의 지팡이에 아몬드꽃과 열매가 맺혔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론을 자신이 세운 제사장으로 주목하고 계신다는 표시였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성소에는 언제나 등불을 켜 놓았습니다. 등불을 받치는 등대 발판에 아몬드꽃 무늬를 새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소에서 예배하는 주의 백성들을 주목하고 지켜 보신다는 뜻으로 아몬드꽃 무늬를 새겼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예언자로 부르실 때 그에게 두 가지 환상을 보여주셨는데 그 중에 하나가 아몬드 나무 환상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보느냐고 물으시니 예레미야가 아몬드 가지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몬드 나무 <샤케드>와 지켜본다는 <샤카드>를 동시에 사용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히 성취될 것을 강조한 본문입니다. 이처럼 아몬드 나무 <샤케드>는 이름 때문에 성경의 중요한 대목에서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지역에서 아몬드 나무는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것을 예고하면서 1-2월에 가장 먼저 피는 꽃이랍니다. 그러니 옛날 이스라엘에서는 아몬드 꽃이 피면 봄이 멀지 않았음을 감지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겨울을 안전하게 <샤카드> 지켜 주셨기에 봄을 맞을 수 있었으니 <샤케드> 아몬드 꽃은 감사와 희망의 상징이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연분홍색 아몬드 꽃이 만발하면 그 모습이 하도 아름다워서 노년의 백발에 비유했답니다. 우리 식으로 벚꽃을 연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몬드는 이스라엘의 특산물이어서 야곱의 아들들이 양식을 구하기 위해서 이집트에 갈 때도 아몬드를 선물로 챙길 정도였습니다. 아몬드는 우리도 즐겨 먹는 견과류에 속합니다. 아몬드를 먹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샤카드>지켜주시길 기도할 수 있습니다. 아몬드 껍질은 고동색이지만 속은 하얗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서 우리의 내면이 아름답고 정결하기 원합니다.

 

우리 동네에도 봄이 찾아왔습니다. 올겨울은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지만, 이제는 베이 지역 특유의 화창한 날씨가 이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겨울 동안 우리를 지켜주신 덕분입니다. 이제 우리 마음과 삶에도 아몬드 꽃이 활짝 피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목하신다는 표시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고진감래(苦盡甘來) – 아몬드는 소망의 꽃입니다. 새날의 시작입니다. <샤케드> 아몬드를 통해서 <샤카드> 우리를 주목하시고, 함께 하시고,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묵상하기 원합니다.(2019년 3월 28일 SF한국일보 종교 칼럼)

사이프러스 나무

좋은 아침입니다.

 

1.

주일에는 성경의 식물에 대해서

연속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식물이라고 했지만, 성경에 등장하는 식물이 너무 많기에

이번에는 성경 속의 나무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나무도 많지만 열 가지만 골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빠진 나무들은 꽤 섭섭해 할 것 같습니다.

포도나무처럼 유명한 것이야 씩- 웃고 넘어가겠지만,

평소에도 주목받지 못했던 나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아깝게 이번 연속 설교 리스트에 들지 못한 나무가

상록수인 사이프러스(Cypress)입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잣나무”로 번역했고, 구약성경에 20회 이상 등장합니다.

 

사이프러스는

잎이 뾰족한 침엽수이고 솔방울과 같은 열매를 맺습니다.

한 나무에 암/수 열매가 함께 열려서 쉽게 번식합니다.

송진이 나와서 나무를 보호해 줍니다.

 

천년 정도 살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물론 고대 근동에서 사이프러스는

“불멸(immortality)”을 상징해서, 묘지 등에 심곤 했답니다.

 

성경에서는 레바논의 백향목과 함께 성전 건축에 사용되었고

하나님께서 회복하시는 자연 만물에 등장하곤 합니다.

 

2.

사이프러스가 등장하는 대표적인 본문이

호세아 14장 8절입니다:

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지라

내가 그를 돌아보아 대답하기를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하리라.

O Ephraim, what have I to do with idols? It is I who answer and look after you.

I am like an evergreen cypress; from me comes your fruit.(Hosea 14:8).

 

우상숭배를 청산하고 하나님께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푸른 잣나무”에 비유하셨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식물에 비유한 경우가 이곳 뿐인 것 같습니다.

 

사이프러스는 사시사철 푸른 상록수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잘 어울립니다.

사이프러스는 언제나 열매(솔방울)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입니다.

오래 사는 사이프러스의 특징도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미지와 맞습니다.

 

이스라엘의 사이프러스는

비나 햇볕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가지가 울창하답니다.

금송아지를 만들고 나무 아래서 우상을 섬기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그늘이 되시고 그들의 삶을 책임지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사이프러스 같은 하나님  안에 거할 때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3.

세상을 살다 보면 피난처가 필요합니다.

무작정 찾아가서 앉아 쉴 수 있는 곳입니다.

새로운 힘을 얻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곳입니다.

 

사이프러스에 자신을 비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남은 한주

늘 푸른 잣나무처럼 한결같으신 우리 하나님을 피난처 삼고

우리 역시 늘 푸른 하나님 백성으로 살기 원합니다.

 

사소한 일들, 지나가는 순간에 연연하기보다

천년을 사는 사이프러스, 하나님의 영원하심이라는 잣대로

우리 인생을 바라보면서 여유를 갖기 원합니다.

 

여호와의 나무에는 물이 흡족함이여 곧 그가 심으신 레바논 백향목들이로다

새들이 그 속에 깃들임이여 학은 잣나무로 집을 삼는도다 (시편 104:16-17)

The trees of the LORD are watered abundantly, the cedars of Lebanon that he planted.

In them the birds build their nests; the stork has her home in the fir trees.(Psalms 104:16-17)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늘 푸른 사이프러스 나무가 되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님 앞에 늘 푸른 상록수 신앙을 갖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3. 28이-메일 목회 서신)

성경의 식물들 (5): 여러 가지 나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곱째 달 보름에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9-10월입니다. 이집트에서 해방된 이스라엘이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했던 것을 되새기는 절기입니다.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입히고 먹이셨습니다.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때 임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초막절에는 일주일 동안 나뭇잎 등으로 초막(텐트)를 짓고 지냈습니다. 초막절을 장막절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수장절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의 가을 추수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처럼 초막절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오던 때를 기념하는 유월절, 보리 추수를 감사하는 맥추절 (오순절)과 함께 구약시대의 3대 절기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예루살렘 성을 다시 구축하고 남녀노소 모든 백성이 수문 앞 광장에 모여서 모세의 율법을 읽고 말씀의 은혜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제사장이자 성경 학자였던 에스라가 앞에 서서 모세의 율법을 읽습니다. 바벨론 포로기에 태어난 2세들을 위해서 통역을 하고, 말씀의 은혜를 경험한 백성들은 “아멘”으로 말씀을 받고 감격의 눈물을 흘립니다. 70년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말씀을 통해서 위로받고 힘을 얻는 시간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슬퍼하는 백성들을 향해서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힘이라고 알려주면서 축제를 선포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넉넉한 사람들이 음식을 준비해서 나누는 공동체 축제였습니다. 다음 날에는 백성의 대표들이 에스라를 찾아가서 모세의 율법을 다시 읽었는데, 초막절을 지키라는 말씀을 발견하고 백성들과 함께 초막절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그때가 마침 초막절 기간이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이 산에 올라가서 초막을 지을 나뭇가지들을 갖고 옵니다. 여러 가지 나뭇가지가 사용되었습니다.

 

감람나무(올리브나무)는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나무 가운데 하나인데 평화의 상징입니다. 들감람나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에는 기름을 짜는 나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기도하셨던 “겟세마네”라는 지명은 감람(올리브)유를 만드는 방앗간이라는 뜻입니다. 화석류나무(myrtle tree)는 향기로 유명합니다. 게다가 상록수입니다. 종려나무는 이스라엘 어느 곳이나 잘 자라는 대표적인 나무입니다. 잎이 넓고 커서 초막을 짓기에 적합했습니다. 기타 무성한 나무는 잎이 많고 줄기가 굵은 나무입니다.

 

이처럼 여러 가지 나무들이 초막 짓기에 동원되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드린다는 표시였을 것입니다. 초막절에 쓰인 나무처럼 다양하게 펼쳐지는 우리의 인생과 신앙도 하나님 앞에서 귀하게 사용되기 원합니다. -河-

벧세메스 언덕길

좋은 아침입니다.

 

1.

이번 주 성경 통독에서

사무엘상 6장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쟁을 하지만 이길 도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법궤(the ark)까지 동원했지만 속수무책입니다.

당시 민족 지도자였던 엘리 제사장의 아들도 전장에서 죽고

그 소식을 들은 엘리도 죽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법궤까지 블레셋에 빼앗겼습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 상징이었습니다.

법궤를 메고 여리고 성을 돌았을 때 성이 무너졌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올 때,

법궤를 메고 요단강에 들어가니 강이 갈라져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전하게 건널 수 있었습니다.

 

그런 법궤를 빼앗긴 것은

하나님께서 블레셋에 볼모로 잡혀간 것이나 다름없는 일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법궤를 자신들의 신 인 다곤 옆에 모셨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보니 다곤 신이 엎드려져 있습니다.

이튿날은 다곤 신상의 머리와 손목이 끊긴 채

몸통만 문지방에서 뒹굴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법궤가 가는 곳마다

독한 종기가 생겨서 도시 전체가 초토화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법궤를 가져간 블레셋에 재앙을 내리신 것입니다.

 

2.

블레셋 사람들이

법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합니다.

 

법궤를 끌고 벧세메스 언덕길을 올라갈 암소 둘을 데려왔습니다.

한번도 멍에를 매지 않은 암소입니다.

게다가 젖먹이 새끼를 가진 암소입니다.

 

멍에를 한 번도 매지 않은 암소가

새끼가 있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벧세메스 언덕길을 올라간다면

그동안 있었던 모든 사건과 사고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확증하겠다는 것입니다.

 

암소 둘이

새로 만든 수레를 끌고 벧세메스 언덕길을 올라갑니다.

처음 매어 보는 멍에와 처음 끄는 수레입니다.

 

집에는 젖을 먹는 새끼들이 있습니다.

암소 둘이 꺽꺽 울면서도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똑바로 걸어갔습니다.

 

게다가 언덕을 다 올라가서는

희생 제사의 제물이 됩니다.

비록 암소들이지만

목숨을 바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한 셈입니다.

 

3.

벧세메스 언덕길을 올라가는 암소 두 마리를 보면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길을 오르신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조롱, 멸시, 천대, 채찍을 모두 참으시고 좌우로 흔들림 없이 걸어가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인생길도 벧세메스의 언덕길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힘겨운 길입니다. 처음 가는 길입니다. 처음 해 보는 일입니다.

벧세메스의 암소들이 새끼를 두고 왔듯이, 가슴을 쓸어 내리며 걸을 때도 있습니다.

그 길이 무엇인지, 왜 가야 하는지 모르고 걸을 때도 있습니다.

끝에는 손해(희생)만 볼 뿐 혜택을 누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빛 되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벧세메스(“태양의 집”) 언덕길을 걸어갑니다.

우리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선포되고

주님의 일이 세상에 펼쳐지길 바라며 걷는 믿음의 길입니다.

 

사순절 셋째 주를 맞는 참빛 식구들이

각자에게 주어진 벧세메스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 가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삼상 6:12)

And the cows went straight in the direction of Beth-shemesh along one highway, lowing as they went.

They turned neither to the right nor to the left (1Sam 6:12, ESV)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벧세메세의 인생길을 걷는 참빛 식구들과 동행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3. 21이-메일 목회 서신)

성경의 식물들 (4): 로뎀나무

성경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고 통쾌한 말씀 가운데 하나가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대결하는 장면입니다. 엘리야 시대의 북이스라엘은 아합왕과 바알신을 섬기는 시돈 출신 이세벨 왕비가 통치했습니다. 아합왕은 왕비 이세벨의 영향을 받아서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것을 핍박하고, 대신 바알 종교를 수입해서 널리 퍼뜨렸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떠나서 바알을 섬긴 아합왕을 “그 이전의 이스라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왕상 16:33)고 평가했습니다.

 

그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가 엘리야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되는 가뭄 속에서 까마귀를 통해서 엘리야를 먹이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엘리야가 아합왕을 찾아가서 바알 선지자들과의 대결을 요청합니다. 엘리야는 혼자였고 450명의 바알 선지자들이 모였습니다. 제단에 쌓아놓은 제물에 불을 내리는 신이 진짜라는 것입니다. 바알 선지자들이 한나절 동안 춤을 추면서 자신들의 신을 불렀지만, 불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엘리야의 차례가 되었고, 하나님께서 불을 내려 응답하셨습니다. 가뭄도 그치게 하셨습니다.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을 모두 제압했습니다. 통쾌한 승리였습니다.

 

아합왕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바알 선지자들을 칼로 죽인 것을 왕비 이세벨에게 고하니 이세벨이 화를 내면서 엘리야를 죽일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엘리야가 이스라엘 남쪽 끝에 있는 브엘세바까지 피신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식물인 로뎀나무 아래 앉아 쉬면서 자신의 목숨을 가져가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엘리야가 그만큼 지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그를 어루만져 주시고 먹을 양식을 공급해 주십니다. 그리고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던 호렙산으로 가라고 말씀하시고, 그곳에서 엘리야의 마지막 사명을 알려주셨습니다. 아합 가문을 심판할 왕들과 엘리야 자신의 후계자로 엘리사를 세우라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몸을 맡기고 쉬었던 로뎀나무는 팔레스타인 사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덤불 나무입니다. 12피트(3.5미터)까지 자라고, 사막의 여행자들에게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입니다. 가지로 빗자루를 만들 수 있어서 영어로 빗자루 나무(broom tree)라고 부릅니다. 성경에서는 로뎀나무가 연료가 쓰이거나 (시120:4), 뿌리를 양식으로 먹을 수 있다고(욥30:4) 소개합니다.

 

사막의 로뎀나무가 엘리야에게 쉼터가 되었습니다. 바알 선지자와의 대결에서 큰 승리를 거뒀지만, 왕비 이세벨의 경고에 위협을 느낀 엘리야가 다시금 하나님을 만난 장소입니다. 우리에게도 로뎀나무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강해도 지칠 때가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어루만져 주시고 새 힘을 주시는 우리 인생의 로뎀나무를 인생길 곳곳에서 경험하기 원합니다. -河-

고넬료

좋은 아침입니다.

 

1.

토요일 새벽기도회에서는

사도행전을 한 장씩 읽어 나갑니다.

토요일에만 읽으니 진도는 느리지만

차례대로 꾸준히 성경을 읽는 것은 언제나 중요합니다.

 

목소리가 크고 화려하지 않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꾸준히 자기 일을 하는 것이

우리 교회의 특징입니다.

 

저는 우리 참빛 식구들께서 각자의 자리에서

<소리없이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바라면서 목회하고 있답니다.

 

2.

지난 토요일에는 사도행전 10장을 읽었는데

베드로를 통해서 세례를 받고 예수님을 믿은

로마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가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사도행전 본문은 고넬료가 어떤 사람인지

비교적 자세히 소개하였습니다.

 

이달리야(로마) 부대에서 적어도 100명의 군인을 거느린 백부장입니다.

로마에서 식민지에 파견된 군지휘관이니 힘이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로마 부대라면 세계 최강입니다.

로마 사람이니 로마의 신들을 믿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달랐습니다.

그는 식민지 백성들이 믿는 구약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창조주가 되시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진리임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2절).

 

당시 유대교에서는 유대인이 아닌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God-fearers)”이라는 명칭만 주면서

할례를 받고 아브라함의 후손인 자신들과 구별했습니다.

일종의 차별인데, 로마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는 그것을 감수하고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확실히 만나고, 하나님 안에서 진리를 발견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고넬료는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날도 제 9시(오후 3시)에 기도한 것을 보면

매일같이 규칙적으로 기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고넬료는 “백성들을 많이 구제”했습니다.

지난달 속회 공부에서 배운 복음서의 또 다른 백부장이 생각납니다(눅7:1-10).

 

이처럼 고넬료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균형,

즉 신앙과 생활의 통합을 이룬 멋진 인물이었습니다.

 

3.

고넬료가 기도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그를 찾아와서

베드로를 초청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으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같은 시간에 베드로도 고넬료에게 가라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을 방문해서 복음을 전하니

고넬료와 그의 가족은 성경을 체험하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고넬료를 찾아 온 하나님의 사자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delivery)되어 기억되신바가 되었으니 (4절).

 

그렇다면

우리의 기도와 구제도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고 기억하실 테니

기분이 좋아지고 힘도 생깁니다.

 

신앙과 생활의 통합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지향해야 할 목적입니다.

그런 점에서 고넬료는 우리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사순절을 보내면서

온 가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항상 기도했던 고넬료의 신앙을 묵상합니다.

백성을 구제하는데 힘썼던 그의 삶도 본받기 원합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기도와 구제를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는 말씀에서

힘을 얻고 올해 사순절도 우리의 신앙과 삶을 주님께 드리기 원합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행10:2)

a devout man who feared God with all his household,

gave alms generously to the people, and prayed continually to God.(Act 10:2, ESV)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의 기도와 삶을 꼭 기억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 3. 14이-메일 목회 서신)